고양이가 쓴 원고를 책으로 만든 책 - 새끼 고양이, 길 잃은 고양이, 집 없는 고양이를 위한 지침서
폴 갈리코 지음, 조동섭 옮김 / 윌북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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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양이가 묘어(猫語)로 쓰고, 폴 갈리코가 영어로 번역하고, 조동섭이 한국어로 옮겼다?
지금은 고양이를 기르고 있지 않지만 애묘가로서 솔깃한 글귀가 아닐 수 없다.
작가인 고양이가 새끼고양이, 길 잃은 고양이, 집 없는 고양이들을 위해 만든
지침서라고 하니 더더욱 그 내용이 궁금했다. 대체 뭘 알려주고 싶어서 글을 썼을까. 

타자기를 놓고 뒤돌아 앉아 있는 고양이의 모습이 무척이나 재밌다.
뭔가 비밀스러운 작업이라도 하고 있는 듯.
이 책의 원고를 어떻게 발견했는가에 대한 사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지은이, 아니 영어로 번역을 맡은 폴 갈리코에게 원고를 넘긴 이는
큰 출판사에서 교육 관련 책을 만드는 편집자인 이웃이었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집 앞으로 배달된 암호로 가득한 원고를 받아들고
난감해 하다가 문득 암호해독에 관심이 많은 폴이 생각났다나?
암호 연구가들이 가장 어려워 한다는 문자와 숫자의 조합으로 이뤄진 이 원고는
몇 달 동안 방치돼 있다가 뜻하지 않게 첫 문장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원고의 암호가 술술 풀리더란다.  

거얀이. 이 원고를 작성했을 것 같은 주인공인 거얀이가 뭔가 한참 생각하다가
알고 보니 그것은 고양이이며, 일부러 암호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
뭔가 둔탁하고 무딘 것으로 타자기를 조작했음으로 원고는 암호처럼 보인 것이다.
사람의 날렵한 손가락이 아닌 고양이의 말랑말랑한 발바닥이 있는 둥근 앞발 말이다.
그러니까 고양이가 암호를 일부러 작성한 것이 아니라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단 것. 

결국 이건 폴 갈리코의 영역, 그러니까 영어권에 있는 고양이가 영어로
작성했다는 결론 아닌가? 그럼 고양이가 묘어(猫語)로 썼다는 글귀는 바뀌어야 한다.
영어는 묘어(猫語)가 아니니까 말이다. 묘어라고 하면 반드시 고양이만 알아들어야 할
그 무엇,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절대 모를 언어여야 하는 거 아니냐 말이다.
그리고 글을 아는 고양이가 그리 많지는 않을 테니 지은이인 고양이가 정말
고양이만을 위한 원고였다면 차라리 자신의 육성을 테이프로 녹음하던가 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두 가지 결론이 보인다.
하나는 인간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어떤 고양이 한 마리가
자신 종족들의 우월성을 알리려고 영어로 작성하되 일부러 암호인 것처럼
타이핑을 엉망으로 해서 원고를 작성해 갖다 놓았든가, 아니면 폴 갈리코
혹은 원고를 건네 줬다는 그 이웃이 똘망똘망해 보이는 고양이 한 마리를 잡아서
앞발을 잡고 억지로 타이핑을 시켜 원고를 만들었든가.
두 가지 모두 가능성 있어 보인다.  

어찌됐든 폴이 원래 작가라고 우기는 고양이가 생후 6주 만에 사고로 엄마를
잃으면서 생존을 위해 야생생활을 버리고 인간의 집을 접수하기로 한다.
그리고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며, 자신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쩔쩔매게 만들고 그걸 위해 오래 참고 기다릴 줄 알며, 자신만의 재산
예를 들어 침대(특히 인간의 것), 의자(사람들이 앉을 수도 없는)등을 차지하는
과정, 인간의 집을 접수한 고양이로서 잃지 말아야 할 자세와 태도,
인간을 꼼짝 못하게 하는 소리 없이 울기, 그리고 다시 자신의 자녀를 교육시켜
또 다른 인간의 집을 접수해 자신이 왕 노릇 하게 만드는 비법까지
나를 포함한 인간이 보면 혀를 내두르고 경악할 만한 것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정말이지 반박을 하고 싶은데, 그러고 싶은데. 할 말이 없었다.
인간의 심리를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는 얄미운 고양이 같으니라고.
내용으로 미뤄보아 이 원고를 작성한 고양이는 암컷인데 인간 여자를
매우 조심하라고 한다. 인간 여자나 고양이나 아주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 역시 반박하기 힘든 내용이 들어있다. 이 고양이 심리학 전공했나? 

갑자기 중학교 때까지 키웠던 고양이가 떠올랐다.
이름은 고순이었는데 책에 실린 일러스트에서처럼 하얀색 바탕에
머리, 등, 궁둥이에 황토색 반점이 있는 정말 사랑스러운 고양이었다.
다른 고양이들 같지 않게 둥글고 귀여운 눈이며 고양이들의 비장의 무기인
그 소리 없는 울기. 처음엔 한 번 야옹~했다가 다음엔 입모양만 야옹하며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다.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모습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걸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나 또한 내 팔뚝만한 생선을
우리 인간가족이 먹지 않고 고스란히 고순이에게 내어준 적도 있으니.
아니 그런데! 그것이 모두 고순이의 작전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아연실색 할 수밖에. 살며시 배신감도 느껴지고 말이다.
그랬니? 정말 그랬던 거니, 고순아? 

하지만 인간이 승리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읽다보면 영물로 여겨지는 만큼 정말로 고양이가 사람의 머리 꼭대기위에
앉아있는 걸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렇지만 난 확신한다.
설사 실제로 고양이가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 자신이 요구하는 바를 모두
얻어냈다 할지라도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는 고양이보다 우월하다는 사실 말이다.
그건 바로 우리 인간이 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고양이조차도 신비해 마지않는 성(性)과 구별된 그 사랑.
그리고 고양이도 스스로 의아해하긴 하지만 자신이 접수한 가정의 가족들을
사랑했다고 고백했듯이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참 기가 막혔다. 고양이에게 조종당했던(?) 내 모습이라니.
그렇지만 변함없는 사실이 있다면, 난 여전히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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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사생활 - 아나운서 유정아의 클래식 에세이
유정아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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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클래식과 더불어 살아왔다. 내가 클래식을 스스로 접한 것이 아니라
내 삶 속의 곳곳에서 클래식은 어떠한 영상의 배경으로, 만화영화에 생동감을
더해주는 소품으로 함께 했던 것이다. 클래식을 잘 몰랐지만 때때로 귀에 들려오는
선율이 그렇게 고풍스럽고 우아하며, 발랄하고 유쾌할 수 없었다.
그리고 비통함을 맛보게도 해줬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클래식의 매력에 빠져든다. 

아나운서이자 라디오 진행자로서 클래식과 함께, 아니 그녀 자체가 클래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클래식과 친숙해 보이는 유정아. 그녀가 클래식을 이야기한다.
첫 번째 저서인 클래식에세이-마주침에서 음악 자체가 아닌,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한
음악가에 초점을 맞추었듯이, 이번 두 번째 에세이에서도 작곡가와 연주가인
‘사람’과 그들의 ‘삶’에 대해 풀어가고 있다. 

처음 클래식을 알게 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클래식에 대한 한결같은 생각은
‘클래식은 고상하다’라는 것이다. (클래식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허나 귀에 들리는 선율이 고상할지언정 그 곡을 작곡할 당시 작곡가의 심기까지
고상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책을 읽어가며 깨닫는다. 

책장에는 오래전부터 모 대학에서 출간된 대학음악이론이라는 책이 꽂혀 있다.
음악이 전공은 아니지만 순전히 관심에 의해 손에 넣었던 책이다.
사실 마른 바게트를 씹는 것처럼 딱딱하고 건조한 내용 때문에 꼼꼼하게 읽진 않았지만.
음악이론서답게 시대별 음악가가 나오는데, 각 음악가가 언제 어디서 태어나고
어떤 음악을 작곡했는지에 대해 간략한 수준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이 에세이는 뭐랄까. 좀 더 천재적이고, 좀 더 감성적이며, 좀 더 열정적인
‘보통 사람’을 만나는 느낌? 이게 무슨 모순 같은 소리냐고?
나도 예전에 그랬듯이 클래식과 친숙한 편이 아닌 사람들에겐
클래식 음악과 작곡가들은 그야말로 범접할 수 없는 범위의 것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클래식을 좋아하고 많이 듣고 있는 나 역시 아직은 클래식이 많이
어렵고, 때론 그 성역(?)과 같이 여겨지는 곳을 침노하고픈 생각이 드니까 말이다.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작곡가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기쁨, 슬픔, 번뇌,
고통가운데서 클래식 음악을 탄생시킨 것이다. 여전히 대단해 보이지만 비유하자면
이건 마치, 죽을 만큼 힘든 훈련 끝에 값진 금메달을 손에 넣은 선수들이
“저도 보통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력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면
너무한 비약일까?  

음악을 작곡하는 능력을 신으로부터 직접 하사 받은 것처럼 들을수록 놀랍기만 한
그 선율과 화음을 악보에 담아낼 때 작곡가들의 머리 뒤에 후광이 비치고
그들의 삶은 음악처럼 경건하기만 할 것 같은데,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기도 하고
사후 또는 작금에 이르러서야 인정받는 곡들이 당시엔 별 볼 일 없는 곡으로
치부되기도 하며, 다툼과 경쟁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 모습은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이들이 음악계에 한 획을 긋는 위대한 사람이 된 것은
음악에 대해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잃지 않아서이기 때문일 테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보니 아이들이 어떤 것을 요구할 때 앞뒤 재지 않고
오로지 그 요구사항 하나만 바라고 구한다. 그처럼 오직 음악에 대한 열정이
보통사람인 그들을 특별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차이가 있다면 단순히 음악을 하기 위한 바람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갈고 다듬어 보석으로 만들 줄 아는 원숙함을 동시에 지닌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니 잘못 해석했다며 혹 분노하는 분이 안 계시길.)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은 어렵다고 한다. 특정 부류를 위한 음악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느낀 점은 유정아가 특정 부류를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클래식을
만나게 해주었다. 클래식을 애써 외면하던 이들도 좀 더 친숙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이들(예술가든 연예인이든)이 한자리에 모인 것도 그렇지만
당대의 작곡가들, 문학가, 화가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한 것을 보면 참 흥미롭다.
책 속에서 역시 가장 주목을 한 것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
나의 필명에 들어있는 그다. 그의 오라토리오 마태수난곡 전곡을 연주하고(성가대)
아침을 깨우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나의 인생을 참으로 풍요롭게 해줬다.
여전히 바흐는 어렵지만 그 어떤 작곡가보다 가장 나의 마음에 전율을 흐르게 한 이유는
자신이 작곡해 자비로 출판, 배급한 “이 음악들은 음악 애호가들이 자신의 영혼을
기쁘게 하기 위해 연주해야 하는 곡들.”이라고 말한 그의 음악에 대한 심오하고 고귀한
정신 때문이다. 이 결론을 유정아씨의 책을 통해 확실히 내리게 되었다. 

처음 클래식의 사생활이라는 제목을 봤을 땐 뭔가 내가 모르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누가 그랬대.”하는 가십거리를 들을지도 모른다는.
책장을 덮고 나니 그런 사생활이 아니라 음악가 한 사람 한 사람이 걸어야했던,
인생길로부터 들려지는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끝없는 멜로디로써. 

책과 함께 동봉된 CD에 담긴 음악과 클래식 앞에서 아직도 조금은 주뼛거리는
마음을 토닥토닥 다독여주는 유정아의 목소리를 통해 보통사람이면서
동시에 위대한 작곡가, 그들의 삶이 투영되는 한여름 밤.
더위를 식혀주는 한줄기 바람위에 나지막하게 허밍으로 선율을 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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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마을여행 - 소통하고 나누는 착한 여행을 떠나자 참여하는 공정여행 1
이병학 지음 / 컬처그라퍼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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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장을 하나하나 넘길수록 왜 이리도 애가 타는 듯 먹먹해지는가 모르겠다.
내 고향도 아닌데, 그곳에 나의 추억이 서린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콧잔등이 시큰해지는지.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상기해내는 느낌이랄까. 

저자인 한겨레 이병학 기자가 대한민국을 여행했다.
자동차로 편하게 이곳저곳을 누비며 수박 겉핥기식으로 취재를 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곳곳의 마을을 뚜박뚜박 걸으며 그 장소와 시간 속에 온전히 묻혀
그곳에서 보고 느꼈던 것을 책장 속에 고스란히 담았다. 

그의 여행은 강원도로 시작해 충청도 전라도를 지나 경상도로 끝맺는다.
굳이 마을을 여행한 까닭은 ‘마을이란, 사람이 함께 모여 몸 비비고 먹고사는
곳이고, 모여 먹고살다 보면 곳곳에 지명이 만들어지고 푸짐한 이야깃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란다. 저자는 그 이야기를 책에 담고 싶었던 것일 테다.
도시사람들과 농촌 사람이 정을 나누는 참 아름다운 여행을 널리 알리는 것도. 

이 책이 더욱 의미 있음은 1~2년의 짧은 시간이 아닌 10년에 가까운
오랜 시간동안 골짜기 마을, 비탈 마을, 트인 강마을 등을 들여다본 이유에서다.
TV에서 심심치 않게 시골마을의 어르신들이 하시는 “젊은 사람들은 죄다
떠나고 노인들만 남았소.”라는 말씀은 책에서도 여지없다. 

옛 마을 공동체 모습이 사라져가는 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르신들만 남아
별다른 희망도 없던 이 마을들이 농촌체험마을 등을 통해 활기를 되찾았다는 거다.
나 역시 가족들과 지난 8월 초에 양평의 한 체험마을로 휴가를 떠났다.
아직 아이들이 너무 어려 적극적인 체험은 힘들었지만 개울가에서 뗏목을 타고
송사리 잡는다고 물가를 서성이며 옥수수 밭에서 옥수수를 한보따리 따온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책을 보니 이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대한민국 곳곳의 마을에는 내가 아직 보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했던, 무궁무진한
흥미로움이 가득한 곳들이 정말 많았다. 단순히 재미거리가 아니라 그곳에
수백 년 된 삶이, 이야기가 살아 숨 쉰다는 사실이 가슴을 벅차게 한다. 

왜 책을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는지 전라도 편에 들어서서야 이유를 알았다.
나의 외갓집. 끝내 가슴에 묻어버린 그 집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난 서울 출생이다. 서울서 나고 서울서 자랐다. 고향이 어디냐 물으면 언제나
서울이라고 답하지만 나의 마음속에선 늘 외갓집, 전라도가 고향이었다.
검푸른 기와가 얹힌 지붕이며 담장, 흙 마당, 지하수를 끌어온 우물(나중엔 수도),
장독대가 놓인 뒷마당, 높다랗게 자란 탱자나무가 한쪽 담장을 대신하고
봄이면 앵두가, 가을엔 땡감이 오감을 즐겁게 해주던 그곳.
방학 때 찾아가면 할머니가 말 그대로 버선발로 뛰어나와 나를 안아 올리시던 그곳.
기차시간에 맞춰 대문 앞에 섰다가 지나가는 기차를 향해 손 흔드시던 그곳.
아침엔 담장을 휘감은 나팔꽃 위에 이슬이 아롱지고 저녁엔 노오란 달맞이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던, 밤새 집 근처를 가로지르는 철길 위로 달리는
기차소리를 들을 수 있던 그곳. 새벽마다 마을회관에서 새마을운동 노래가
힘차게 울려 퍼지던 그곳. 삼촌과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다시는 갈 수 없는
바로 그곳. 아직도 꿈에서나마 볼라치면 눈물부터 흐르는 그곳...
그곳이 글 두렁과 사진 사이에서 얼핏 보이는 듯하다. 

책에서처럼 정말 볼 것도 많고 체험할 것도 많은데 난 외갓집밖에 몰랐다.
돌아다닌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모와 삼촌을 따라 전주공원에 다녀온 기억이
가물가물 나긴 하지만. 어린나이니 누가 데려가주지 않으면 갈 수 없기도 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그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외갓집이 있던 마을 자체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있고 체험거리가 있었기에 굳이 어디로 나갈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대문 앞 텃밭에서 뽑아 먹었던 당근이, 채 익지 않았지만 맛이 최고였던 딸기가,
할머니가 설탕을 뿌려 만든 말린 누룽지가, 왜 이리도 사무치게 그리운 건지. 

밤하늘에 총총 떠 있는 별빛, 타닥타닥 나무 타는 냄새
가족끼리 와서 조용히 쉬고 느끼고 가면 쓰것소
토속적인 걸 좋아하니 그럼 아이들을 데리고 민속촌에 자주 갔느냐는 말을
가끔 듣게 된다. 그런데 난 민속촌에는 별로 가지 않았다. 이유는 인위적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삶도 이야기도 없어서 발걸음을 잘 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자주 다니자며 남편과 약속을 했는데 이 책을 들고
마을 곳곳을 하나씩 찾아다닐 생각이다. 마을의 이야기 끝에는 저자가 친절하게도
어떻게 찾아가는지, 어떤 체험거리가 있는지 연락처와 함께 상세하게 실었다.
검소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조용히 다녀와야겠다.
왁자지껄 놀다 가는 곳이 아니라 그저 가족단위로 몸과 마음을 평안히 쉬고 가길 바라는
마을 어르신들의 바람처럼 내 마음도 그렇기 때문이다. 

다리가 아프다. 책 한 권 읽었을 뿐인데 마치 팔도를 걸어 다닌 양 다리가 아프다.
그런데 마음은 넉넉해졌다. 이렇게 푸근할 수가 없다.
잃었던 보물을 다시 찾은 느낌?
언제고 꺼내볼 수 있는 보물을 담은 쌈지 하나를 얻은 기분?
무엇보다 이제 눈물바람 하던 외갓집을 미소로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책장을 덮고 눈을 감는다.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고 마음의 문을 열어 한 걸음 내딛는다.
발걸음 끝에 대한민국 마을이 있다. 고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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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세트 - 전13권 위험한 대결
레모니 스니켓 지음, 홍연미 옮김, 브렛 헬퀴스트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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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감정의 격통 속에 독서 자체가 힘들다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은 책보다 영화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케이블 방송에서 여러 번 방영을 해준 덕분에 영화를 5번도 넘게 봤다.
영화를 보면서 “올라프 진짜 악랄하다!”를 수없이 외쳤다.
표정과 연기력이 뛰어난 짐 캐리는 정말 그 자신이 올라프인 것처럼
그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그리고 올 여름 책에서 만난 진짜 올라프!
아! 정말이지. 영화 속 올라프는 차라리 신사였고 애교였다.
13권의 책 속의 올라프는 악당 중의 악당이고 사악함, 단어 그 자체였다.
발목에는 물론 그가 가는 곳마다 발견한 눈동자에서는 일말의 동정심조차
찾을 수 없었다. 영화는 책의 3권까지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영화와 대조해가면서 비교적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4권부터가 문제였다. 권수가 넘어갈수록 올라프의 악랄함도 극을 향해 달렸다.
마치 뱃속에서 뭔가 묵직한 것이 울렁이는 것 같았고,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심하게 찰진 개펄에 두 발이 박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기분이었으며,
눅눅하고 벽에 곰팡이가 잔뜩 난 방에서 잔뜩 구부린 채 자고 일어난 기분!
그 감정의 격통으로 인해 13권의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보들레어 아이들의 목숨을 건 대결, 그 서막이 오르다
이 책의 내용은 화재로 부모님의 여의고 유족이 된 보들레어家 세 남매의 이야기다.
유능한 발명가이며 맏이인 바이올렛, 탁월한 두뇌회전의 소유자이며 연구자인
둘째 클로스, 칼싸움에서도 이기는 괄목할만한 치아를 가진 막내 서니.
의문의 화재 때문에 졸지에 고아가 돼버린 이 삼남매는 자신들의 후견인으로 나선
올라프 백작이 양육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그들에게 남겨진 유산을 노리며
자신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백작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치는 것은 물론
때론 생명의 위협까지 당한다. 아이들은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운명과 같이
고공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아니, 그 이상의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치게 된다.
맏이 바이올렛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재산을 사용할 수 없다는 유언에 따라
올라프는 어린 바이올렛과 결혼까지 하려는 수작을 부리는 것을 위시하여,
갈수록 추악하고 잔인한 방법을 동원한다. 

악에 대해 악으로 대항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올라프는 단순히 보들레어 아이들의 재산만을 노리고 추악한 싸움을 하는 게 아니었다.
보들레어 뿐만 아니라 쿼그마이어 등 유족이 된 다른 아이들의 재산까지 노렸다.
왜 아이들이 모두 유족이 되었는가? 모두 부모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모두 사고였다. 아니 사고를 가장한 살인 때문이었다.
책속의 올라프는 진정한 악인이었지만 더 무서운 건 올라프와 같은, 때로는 더 심하게
악한 이들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이 있었다. 때문에 보들레어 아이들, 그리고
함께 싸우는 좋은 사람들은 때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악행을 저질러야했다.
열쇠를 훔쳐내거나 뜻하지 않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방화까지 하게 되는 것.
주인공들은 물론 독자인 나도 혼란에 빠졌다. 천인공노할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야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들을 처벌하기 위해 똑같이 악행으로 되갚아 주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건 옳지 않아.’라고 생각하지만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올라프와 그 일당의 만행을 마주할 때마다 괴리감에 빠진다. 

징글징글하고 과도하게 친절한 작가, 레모니 스니켓(다니엘 핸들러)
얼굴 없는 작가로 유명한 레모니 스니켓. 다니엘 핸들러가 그의 본명이다.
13권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의 숫자로 보들레어 아이들의 대결을 완간한 그는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서 얼굴을 드러냈다. 레모니는 독자들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작가인 나로서도 이렇게 불행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슬플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행복한 아이들의 행복한 이야기를
읽고 싶은 독자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이 책을 내려놓고
다른 책을 찾아보세요. 감사합니다.”
이 경고문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된다. 보들레어 아이들의 끝없는 고통을
전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유감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거북한 속을 달랠 길이 없었다.
꼭 이랬어야 하나? 보들레어 아이들을 그 위험에서 건질 수 있는 힘이
작가에겐 진정 없었단 말인가? 저따위 책임감 없는 경고문대신 좀 더 힘 있고
아이들을 도와줄 인물하나 찾아내지 못하다니. 자긴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아이들이 구렁텅이로 빠져 드는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작가.
옆에 있었으면 멱살을 잡던지 정강이를 걷어차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어떠한 단어들이 나올 때마다 어쩜 그리 친절하게 다시 풀어 설명하는지.
읽는 내내 아이들의 후견인 중 한 명이었던 조세핀 숙모는 혹시 작가의 친척
아닌가 생각될 정도이다.(조세핀 숙모는 문법을 너무나도 중시하여
토씨 하나라도 틀리면 견디지 못하고 꼭 바로잡아야 직성이 풀린다.)
물론 작가가 문법을 중시한 건 아니지만 자꾸 연상되며 멀미 증세가 난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작가의 경고를 무시했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감정의 격통을 겪으며 보들레어 아이들과 더불어 벌인 악과의 사투로써. 

이 책의 내용은 단순히 창작이고 허구일 뿐이다?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린 건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무관심이다
작가가 경고했듯이 이건 그냥 어린이를 위한 동화가 아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목숨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악심(惡心),
끝없는 살인, 상해, 거짓, 짓밟음이 난무하는 위험한 동화. 바로 위험한 대결이다.
보들레어 아이들이 정말 운이 너무 나빠서 이런 일을 겪은 걸까?
아니다. 이들을 위험에 빠뜨린 건 돈만을 추구하는 더러운 탐욕,
나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이기심, 남의 얘기에는 귀를 닫아버리는 무관심이다.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13권 분량의 위험천만한 대결 후 올라프가 최후를 맞는다.
드디어 보들레어 아이들에게 평화가 찾아온다. 이제 대결은 끝이 났는가? Never!!
올라프가 최후를 맞은 곳에서 한동안의 세월을 보낸 보들레어 아이들은
다시 세상으로 향한다. 책장은 덮였지만 보들레어 아이들과 더불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는 아직 끝나지 않은 대결이다.
혹시 이 시리즈의 후속 작이 나온다면 보들레어 아이들 역시
또 위험한 대결을 펼칠 것이다. 좀 더 성숙하고 좀 더 강한 대처법으로.
앞서 말했듯이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은 물론 독자인 우리들에게도
선과 악을 생각하게 한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노동을 착취당하고
재산을 빼앗기거나, 절대적인 보호가 필요한 어린아이들이 학대를 당하는 세상.
얼마 전에는 유족이 된 아이들의 재산을 노려 친족들 간에 추잡스러운 다툼을
한다는 뉴스기사가 떠올랐다. 레모니가 전한 이 불행한 이야기와 뭐가 다를까?
우리도 싸워야 한다. 선(善)이라는 이름으로 악(惡)을 상대로 대결을 펼쳐야한다.
내가 작가의 경고를 무시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책 속에서도, 책 밖에서도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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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아, 친하게 지내자! - 어린이가 꼭 알아야 할 화학 이야기 풀과바람 지식나무 15
이영란 지음, 시대 프로덕션 그림 / 풀과바람(영교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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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라면 화학은 어렵고 지루한 것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기억이
한번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나도 학교 다닐 때 그랬으니까.
그 엄청난 화학식을 외워야 하는 심리적 압박이 상당한 작용을 한 탓이다.
아마도 화학이 싫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한 이유를 가지지 않았나 싶다. 

사실 화학 자체가 싫은 건 아니었다. 아니 좋아하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나. CA 활동에서 난 과학반을 했었다.
멋진 실험도구들로 암모니아 분수를 만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친구들이 그 사악한(?) 냄새에 기겁을 하고 뿔뿔이 도망을 쳐 먼발치서
코를 쥐고 있을 때 난 용감무쌍하게 암모니아 분수를 완성했었다.
눈이 시리고 코피가 날 것처럼 콧등이 찡한데도 꿋꿋하게 참았다.
고난 끝에 난 암모니아 분수가 멋지게 솟아오르는 걸 보며 친구들이
탄성을 지르는 소리를 즐겁게 들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화학인데 한 번 놓치고 나니까 걷잡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안타깝다. 다시 한 번 차근차근 시작하면 나도
화학이랑 무지 친한 친구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하여튼 화학과 그렇게 관계가 틀어진 후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에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지만 사실 난 화학과 화해를 하고 싶었다.
철없이 놓쳐 버린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눈에 띄는 제목이 참 친근하다. 화학아, 친하게 지내자!
화학이 과연 친구처럼 친근한 것인가? 지은이는 그렇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지는 화학식이 화학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화학은 우리 생활 곳곳에, 아니 생활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의 종이도 화학처리를 해서 만들어지고, 지금 자판을 치고 있는
키보드도 마찬가지이다. 즐겨먹는 과자의 파손과 산화를 방지하기 위해
봉지에 질소를 넣는다던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딸기우유 초코우유도
그 맛과 향을 내기 위해 색소나 착향료를 넣으니 이 모두가 화학이다.
인공색소와 착향료 등은 알레르기를 유발하거나 콩팥에 무리를 주고
솔빈산과 같은 보존료는 오래 섭취하면 암세포가 발생할 수 있으니
가능한 섭취를 자제해야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이처럼 생활에서 사소하게 만날 수 있는 것서부터
아이들이 조금 어려워 할 수도 있는 원자, 분자, 이온 등의 화학 용어도
쉽게 접할 수 있게끔 친절하고 재미있는 설명과 일러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지각에 산소와 규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고
그 구성을 이루는 것과 산소, 탄소, 수소, 질소 4개의 원소가
서로 결합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질, 비타민을 만들어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비교한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움을 자아낼 것이다.
철이 녹슬면 붉게 변하듯, 우리 몸에 흐르는 피가 혈액 안의
금속성분인 철분이 산소와 만나 산화철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빛과 눈을 구성하고 있는 성분이 엄청난 화학반응을 일으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알까? 맛있게 먹은 음식이 소화되는 것도 화학작용이라는 것도. 

화학은 이처럼 매우 유용하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많이 발생했다.
환경오염이 그 결과이다. 이렇게 오염된 환경을 되돌리려면 대체에너지 개발 등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화학과 많이 친해지고
훌륭한 화학자가 되어 각고의 노력 끝에 초록빛 지구를 지켜가는 데
그 역할을 담당해주길 간절히 바라본다.  

책의 끝에는 화학상식코너가 있어서 읽은 내용을 곱씹어 볼 수 있게 했다.
화학을 지식으로써 처음 접하는 어린이들에게 매우 유용한 책이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며 화학과 화해한 나를 발견했다. 화학은 우리의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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