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1 - 눈동자의 집, 개정판 위험한 대결
레모니 스니켓 지음, 한지희 옮김, 브렛 헬퀴스트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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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답지 않은 낮은 채도의 그림 속의 아이들의 우울한 표정이
심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날 것을 예고라도 하는 듯하다. 

아낌없는 사랑을 아이들에게 주는 보들레어家.
아이들이 브리니 해안에 놀러간 사이 집이 화재로 전소되어 갑작스럽게
고아가 된 사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들에게 남겨진 막대한 유산을
성인이 될 때까지 관리하는 은행가 포 아저씨의 집에 잠시 머물다가
고조부의 10촌쯤 된다는 친척, 올라프 백작의 집으로 보내진다.
여기저기 더러운 얼룩이 묻은 회색 양복, 면도를 하지 않아 얼굴에 털이 덥수룩하고,
붙어 있어 일자로 보이는 눈썹, 무엇보다 매섭게 번뜩이는 두 눈동자는
그를 몹시 굶주리거나 매우 화난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올라프 백작에게 느꼈던 첫인상은 암울한 현실이 되었다. 

연극배우인 올라프 백작은 바이올렛, 클로스, 서니에게 울퉁불퉁한 침대를
하나만 주고 온갖 집안일을 시키며, 클로스의 뺨을 올려붙이기까지 한다.
너무나도 어린 나이. 부모님의 사랑이 담긴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이들에게
마냥 눈물 흘리며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건 사치였다.
어떻게든 올라프 백작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훨씬 더 추악하고, 훨씬 더 잔인하다
눈동자 속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었다
원작을 보기 전에 짐 캐리 주연의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이라는 영화를 봤다.
아이들이 고통당하는 것은 몇 번을 봐도 못할 짓이지만 올라프 백작이
혼나는 장면은 그야말로 통쾌했다. 더 혼내줘야 한다고 흥분하며.
그렇지만 그렇게 당할 올라프 백작이 아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위험한 대결이 13개 묶음의 책에 실리진 못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본 올라프는 차라리 신사였다. 책에서 만난 올라프는
훨씬 더 추악하고, 훨씬 더 잔인했다. 너무나도 뻔뻔하게 아이들을 부리고
그들의 재산만을 노리며, 합법적으로 빼앗기 위해 연극을 통한 진짜 결혼식을
계획하거나, 그 계획이 무산되지 않기 위해 서니를 볼모로 잡아
바이올렛과 클로스를 위협하는 모습에 구역질까지 느꼈다.
눈동자는 마음의 창이며, 소유자를 대변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눈을 바라보며 소통하지 않는가. 그러나 아이들을 옥죄며 감시하는 듯
올라프의 발목에, 문에, 벽에 새겨진 눈동자는 예외이다.
그것에선 일말의 동정심조차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경고를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다
레모니 스니켓, 본명 다니엘 헨들러는 참으로 친절했다.
“작가인 나로서도 이렇게 불행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슬플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행복한 아이들의 행복한 이야기를
읽고 싶은 독자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이 책을 내려놓고
다른 책을 찾아보세요. 감사합니다.”
이 얼마나 친절하냐 말이다. 그런데 난 이 경고를 무시했다.
덕분에 난 심장이 아리는 고통을 보들레어家 아이들과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레모니 스니켓(다니엘 헨들러)는 나쁜 작가이다?
어떻게 이토록 끔찍한 글을 썼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눈곱만한 희망이라도 주면 안 되겠느냐고 사정이라도 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레모니 자신의 마음 그 기저에 잔인함과 몰인정함을 가졌기 때문일까?
아니라고 본다. 세상에는 올라프처럼 천인공노할 추악함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니까.
얼마 전 유족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재산을 노려 친척들 간의 역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뉴스기사는 허위가 아님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레모니는 그만의 특유의 재치와 날카로움으로써 그런 이들을 캐릭터로 만든 것뿐이다. 

궁금했다. 영화에서 올라프가 응징을 당하긴 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난 건 아니기에.
어쩐지 그 후에 더 무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것.
불길한 예감은 늘 적중한다던가. 남은 12권의 책들이 어디 한 번 읽어보시지 하며
노려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책이지만 사실 두렵다.
1권에서 느낀 고통은 충분하지 않다는 건가. 그러나 질 수 없다.
때문에 앞으로도 레모니 스니켓의 경고를 무시할 것이며,
나도 바이올렛처럼 끈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아이들이 당할 시련에
함께 맞설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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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우리 그림책 3
장영복 글, 이혜리 그림 / 국민서관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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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들어서는 입추를 아쉬워하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말복이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하루답게 매미는 아침 일찍부터 매암매암 노래를 한다.
마지막 피서를 즐기는 피서객들의 차량이 고속도로를 느릿느릿 달리는
모습을 보며, 모두들 어떻게 피서를 즐기셨는지 문득 궁금하다. 

1년에 한 번 있는 동물원의 휴일.
얼룩말도, 옆집 사는 펭귄도 가족들과 해수욕장에 간다고 으스대며 자랑하는데
질 수 없어 코끼와 코리도 “우리도 간다!”고 큰소리다.
그런데 아빠 코끼리는 코만 골며 깊은 잠에 빠져있다.
하루에 세 번씩 분수 쇼를 하는 탓에 피곤한 이유다. 

아빠 코끼리의 모습 위에 우리 집 두 아이들 아빠의 모습이 겹친다.
조리사인 아빠는 늘 바쁘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온종일 뜨거운
불 앞에서 요리를 하고, 하루에 앉아 있는 시간이 10분을 채 넘기기 힘들다.
또 한 달에 세 번 쉬는 탓에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한 달에 세 번 밥을 먹는다.
그런 이유로 몸이 천근만근인 걸 알기에, 아이들과 늘 많이 놀아주지 못하는 걸
미안해 하지만 “좀 놀아줘~.”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다른 집은 해외여행이다, 해수욕장이다 놀러 가는데 휴일도 정해지는 일 없이
늘 변경되는데다 올여름 직장에서 일이 너무 바빠 휴가도 기약이 없었다.
올해 다섯 살이 된 큰아이는 요즘 들어 아침에 눈뜨자마자 하는 말이 있다.
“엄마~ 에버랜드는? 사자하고~ 곰이하고(곰하고) 버스타고 보러 갈래요.”
이런 아이에게 아빠가 바쁘시니 나중에 가잔 말을 못한다. 응, 그래. 담에 가자. 

드르렁~ 푸우~ 코만 고는 아빠 코끼리 때문에 의기소침해진 코끼와 코리.
코를 골던 아빠의 호흡이 멎었다. 엄마! 아빠가 이상해. 숨을 안 쉬어!
엄마 코끼리가 놀라 허둥지둥 달려오니 읍, 푸우~~ 하고 숨을 쉬는 아빠 코끼리.
아빠 코끼리의 콧바람에 코끼와 코리가 바닷가로 슝! 날아간다. 곧이어 엄마도.
그렇게 해수욕장에 간 코끼, 코리와 엄마는 파도 넘기, 오징어 그네 타기,
문어공 굴리기 등을 하고 놀지만 별로 재미가 없다. 아빠가 함께 한 게 아니라서.
우리 집 꼬마들이 그렇다. 뭔가 하고 놀다가도 “엄마, 아빠는요?”하고 묻는
아이들 모습이 코끼와 코리 같다. 아빠의 빈자리가 참으로 크다.
아빠는 너무 바쁘셔서 그렇다고 설명을 해주는데 다섯 살짜리 아이가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은 그리 크지 않다. 못내 아쉬워 할 뿐. 

요즘 너무 바쁜 아빠들, 함께 놀아주고 싶어도 체력이 달리는 아빠들.
그리고 서운한 아이들. 이런 감정들이 책 안에 소르르 녹아있다.
글자 하나하나에, 그림의 선 하나하나에.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이 책을 참 좋아한다. 아기 코끼리가 아빠랑 엄마랑
놀러가서 수영도 한다며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아마도 자신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책이라는 걸 느꼈던 걸까?
자신들도 코끼 코리처럼 슝~ 날아서 놀러가고 싶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놀다가 잠든 코끼와 코리, 엄마 코끼리의 콧바람에
아빠가 슝~ 날아올라 해수욕장 모래언덕에 떨어진 것. 콧바람 에피소드로 인해
진정한 의미의 행복한 휴가를 즐기는 코끼 코리 가족. 그야말로 신나게 논다.
우리 집에서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올해 휴가는 포기하고 있었는데
지난 주 퇴근한 남편이 휴가를 받았다는 것. 갑작스레 아빠와 휴가를 떠나게 된
아이들은 그야말로 신나서 폴짝폴짝 뛰었다. 어디 멀리 가지 않더라도
아빠차를 타고 어딘가 간다는 사실 그 자체로도 좋아하는 아이들이니.
올해 여행지는 양평에 있는 한 체험마을이었다. 5살, 3살. 아직 어린 탓에
사실 적극적인 체험은 무리였다. 파리만 날아가도 기겁을 하고.
그래도 아빠가 냇물에서 밀어주는 뗏목을 타고 물장구치거나, 물총에
냇물을 집어넣어 이를 악물고 아빠에게 물을 쏘는 놀이, 물고기를 잡겠다고
냇가의 돌을 들춰내는 모습에서 행복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그 소소한 행복들을 체험마을에서 간식으로 쪄준 찰옥수수의 향기에 묻어
추억 속으로 보낸다.  

밤하늘을 바라보는 코끼 코리 가족의 뒷모습으로 행복은 노래가 되어 흐른다.
체험마을에서 본 별들이 책장 안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휴가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목욕을 하고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그르렁~ 그르렁~ 푸우~ 푸우~.”
이번에 듣는 소리는 고단해서 나는 소리가 아닌 것 같다.
아빠 엄마와 함께 떠났던 휴가가 즐거웠노라고, 다음 여름이 오면 또 가자고
꿈에서 부르는 노래일지도. 그래 사랑하는 아이들아.
우리 다음 여름이 오면 휴가를 떠나자꾸나.
아빠 엄마 그리고 너희들, 온가족이 함께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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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 - 사라져가는 모든 사물에 대한 미소
장현웅.장희엽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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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없이 작거나 적은, 사소함.
세계가 놀라서 뒤집어지는 발견이 아니라 그야말로 소소하고 작은 일상에서의 발견.
그러나 결코 작지 않은 의미, 어쩌면 인생에 있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것들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을까? 

남들이 그리 주목하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껍질로부터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되는 나무를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길을 지나면서 구석에서 피어난 꽃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어렸을 땐 어려서 저렇겠거니 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그러고 있는 나를 보면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었다. “너 참 연구대상이다.” 

이랬던 내가 요즘에는 육아와 결혼 생활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너무 바쁘고
조금은 지쳐, 주위에 있는 것들에 눈길조차 줄 틈이 없어졌다.
아니면 눈이 부옇게 되고 마음에 군살이 박혀 버렸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 빛바랜 공간에서 사물이 말을 걸어왔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열두 색 사인펜. “나 기억하니?”
유난히 깔끔한 성격을 가진 아버지는 스프링 노트에 관심 있는 것을 신문에서 오려
스크랩 하신 후 사인펜으로 그 테두리를 센스 있게 장식하셨다.
처음 구입할 당시 꽂혀 있던 순서 그대로 사인펜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꼼꼼함이 왜 그리도 서글프게 느껴지던지.
또 젊은 날 어린 나와 엄마를 두고 중동에 일을 하러 가셨는데
그 때부터 갖고 계셨던 낡은 선글라스. 20년을 훌쩍 넘긴 그 안경은
신기하게도 별 흠집도 없이 오랜 세월 아버지의 콧잔등에서 뽐을 냈다.
그리고 코트 하나가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사촌언니가 결혼할 때
마땅한 외투가 없었던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코트 하나를 사드렸는데
큰딸이 사준 거라며 어찌나 으스대시며 자랑하시던지. 아주 고급도 아니었던
그 코트는 아버지가 갖고 있던 모든 물건 중에서 가장 새것처럼 보였다.
“우리 큰딸이 사준 거야.” 친했던 분들께 자랑하시면서 혹시라도 때가 탈까,
흠이라도 생길까 구입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마치 방금 라벨을 뗀 것 같은 그 코트를 붙잡고 난 결국 왈칵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 그냥 막 입으시지. 닳고 닳도록 입고 입으시지. 그러시지 그랬어요. 

그 빛바랜 공간을 박차고 나왔다. 이면지를 반듯하게 오려 서랍 가득 쌓아둔 메모지며,
함부로 구겨 버리지 않고 가지런히 구석에 모아둔 꽁초까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불효자의 가슴 속 깊이 아리게 만드는 사무침에 견딜 수가 없었다.
참 별것도 아닌데. 정말 사소한 것들인데.
당분간 내게 말을 걸어오는 이것들을 보기 힘들 것 같다.
훗날 이 사소함이 조금은 덜 아프게 느껴질 때,
슬픔 어린 눈빛으로나마 다시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 때는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지. 

두 저자가 카메라에 담은 사소한 일상의 발견, 감성을 자극하는 그림과 글을 통해
때론 무료하게 느껴지고 때론 무의미했던 것들이 내게 얼마나 큰 존재였는가를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사소함은 기억의 고리로 이어져 의미 있는 삶이 된다.
책 뒤편에는 저자들이 담은 일상의 사진과 더불어 독자가 각자의 추억을 상기하도록
메모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사진에 담긴 것들을 보며 난 어떤 추억을 갖고 있는지
차근차근 기억의 징검다리를 건너 올라가 본다. 그리고 쓸쓸한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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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의 엄마가 알았더라면 - 우리 시대 부모 14인이 젊은 날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안정숙 외 지음 / 글담출판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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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두 아이의 엄마다. 여느 엄마들처럼 육아에 관심이 많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더 잘 키울 수 있을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평범한 엄마다.
때문에 육아와 교육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는 편인데 그런 나의 시선을 붙잡는
책 한 권이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의 엄마가 알았더라면.
하버드생 금나나의 어머니, 역도선수 장미란의 어머니 등 14인의 부모가 쓴
책이라는 빨간 띠지를 보니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꼭 읽어야만 한다는 의무감(?)과 함께.
아니, 성공적으로 자식을 키워낸 부모들의 노하우를 배우고 싶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고백한다. 

코이라는 물고기 기억나지? 작은 어항에서는 5cm, 수족관이나 연못에서는 25cm,
강물에 방류하면 무려 120cm까지 자란다는 물고기.
제 스스로 어항과 연못을 박차고 강물로 나간 거야. 그 길에 좌절이 없다는 게
말이 되니? 지켜보자.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p.24)
이런 물고기가 있었구나. 글을 읽으니 우리의 아이들은 코이가 아닐까 싶다.
부모가 가둬 두면 5cm 자라고, 넓은 세계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면 100cm가 훨씬 넘게 자랄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 말이다.
내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부모라는 이름으로,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영혼을 속박하고 있었던 게 아닌지 두렵다.
때때로 보이는 아이들의 슬픈 표정이 마음에 아리게 박혀 온다. 

좋은 부모라는 건 완벽한 부모는 아닐 거야. (p.80)
어렸을 때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환경 탓에 친구들 다니는 유치원도,
피아노 태권도 학원 등에 단 한 번도 다닌 적이 없었다. 매일 오던
한 장짜리 시험지를 열심히 풀었고, 유일하던 동화책 전집을 친구 삼았으며,
맞벌이 하던 부모님을 대신해 어린 나이서부터 동생들을 돌봐야했다.
그 땐 착한 딸이 되고 싶었다. 그래도 그런 어려움과 궁핍함을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에, 태교한다며 음악을 듣기도 하고 책도 많이 읽었다.
나름대로 노력을 했는데 희한하게 어찌 갈수록 부모 노릇에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이유를 깨달았다. 완벽하지 않은 내가 완벽한 부모 노릇을
하려고 했으니 당연히 힘든 거다. 욕심을 내려놓자. 완벽한 부모가 아닌
좋은 부모가 되는데 더 관심을 기울이자. 그럼 어떤 게 좋은 부모일까?
답이야 정말 많겠지만, 내 아이와 함께 고민하고 함께 성장하며 성숙해 가는 것.
자식이 행복의 길을 찾는데 지켜봐 주는 것, 도움을 청할 때 기꺼이
그 길을 함께 걸어주는 것. 이 정도면 좋은 부모이지 않을까.
또한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믿어주기(p.105), 이것은 엄마인 나만이 할 수 있다.
내 아이의 엄마라는 역할은 세상에서 나에게만 주어진 것이니까.
더 중요한 사실은 그 역할을 잘 할 사람도, 잘 못할 사람도 바로 나라는 것. (p.40) 

바쁘고 안 바쁘고를 떠나서 엄마한테 뚜렷한 주관이 없으면,
애들 교육은 죽도 밥도 안 된다. (p.255)
어떤 부모가 자식이 잘 안 되기를 바랄까. 나 또한 엄마이니 내 아이들이 이 책 속의
아이들처럼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꼭 좋은 대학을 목표로 하거나 좋은 직장에
다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물론 그러면야 좋겠지만. 하하)
불과 얼마 전까지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이 있었는데, 다른 건 다 괜찮지만
직업군인이나 전문운동선수, 연예인은 안 시킬 거야. 대체 무슨 권리로?
아이들이 아직 3살 5살이니 좀 이를 수는 있는데 아이들이 갈 길에서 내 마음대로
이 길은 안 된다고 벌써 싹을 자르고 있었다. 내 자신에게 실망!
좋은 부모가 된다면서 자질 하나를 잃은 셈이다. 앞서 말했듯이 욕심을 내려 놔야지.
믿는 거다. 아이의 꿈에 대해서. 선택에 대해서.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이 깨진다 해도 “거 봐. 엄마가 말했지?”라거나 원망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좌절한 아이의 어깨를 펴고 무릎을 세워줄 수 있는 것도 부모, 나이지 않을까. 

유치원에서 오는 아이를 마중하느라 아파트 입구에 서 있다 보면 학원 차에서 내려
바로 다음 학원차를 타는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늦은 밤에도
학원차가 아파트 단지를 돈다. 안타깝다.
난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강요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홈스쿨링 책을 쓴 엄마들처럼
훌륭한 자질을 갖춘 것도 아니기에 사실 좀 두렵기는 하다. 혹시 내 아이들만
뒤처지는 게 아닐까 해서이다. 그렇지만 나 자신을, 내 아이를 믿어 보기로 했다.
내 신념을 밀 수 있는 자신이 조금 생겨서인데, 이유는 진심이 담긴
편지꾸러미(이 책)를 읽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자식농사에 성공했다는 내용의 책들을 보면 역경을 이겨내고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 성공담인 경우가 많다. 부모가 썼든, 자녀가 성장해서
직접 썼든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시선의 위치가 독특하다.
지난 날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선택한 길에서의 역경을 어떻게 이겨내고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고민에 때론 눈물로
밤도 지새워야했던 옛날 선택의 기로에 선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이다.
더불어 그 때 자신이 걸어야 했던 길과 비슷한 갈림길에 선 후배 부모들에게
보내는 편지일 것이다. 바로 나 같은. 

마음속에서 사랑이라는 종이를 한 장 꺼낸다.
신념이라는 펜을 들어 한 자 한 자 꼭꼭 눌러가며 과거에 대한 회상,
현재에 대한 대책, 미래에 대한 나의 꿈을 적어본다.
그리고 믿음이라는 우표를 붙여서 나에게 보낸다.
난, 내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겠다. 정말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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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일의 겨울 사거리의 거북이 10
자비에 로랑 쁘띠 지음, 김동찬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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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치는 근육이 탄탄해 보이는 말 위에 앉은 어른과 아이.
그리고 하늘 높이 허공을 가르는 검독수리.
황량한 겨울의 산 위에서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TV 다큐멘터리에서 말을 타고 광활한 대지를 힘차게 달리는 몽골 사람을
간간히 본 적이 있다. 이 책은 바로 그곳 몽골 평원, 그리고 어린 소녀
갈샨의 이야기이다. 갈샨의 동생을 임신한 엄마가 너무 심한 입덧으로 고생을 하니
갈샨의 아빠는 갈샨을 할아버지 댁에 5달 동안 보내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영어 선생으로 평원의 생활에는 쓸모없는 직업을 가진 며느리에
대를 이어야 하는 첫 손자가 아들이 아닌 딸이어서 적잖이 노여워하는,
편안한 도시 생활을 마다하고 광야에서 양 떼를 돌보며 검독수리를 길들이는,
양 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이리떼와 맞서 싸우는 늙은이. 바이타르.
오랜 출장 생활 때문에 가족을 온전히 돌볼 수 없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그 바이타르에게 자신의 어린 딸을 맡기는 것이다.
갈샨은 그런 할아버지가 싫었다.
미친 늙은이라고 말했다가 아빠에게 맞을 뻔도 했다. 

싫든 좋든 현실은 갈샨을 몽골 평원으로 내몰았다.
하루하루를 집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갈샨을 처음엔 인정하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집안의 남자에게만 허락된 검독수리 길들이기를 가르치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의 겨울도 춥다지만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다브카르 쭈트(죽음의 흰 가루)라고 불리는 눈폭풍을 이겨내고, 뼛조각 하나까지도
남김없이 해치울 것 같은 그 짐승의 발톱과 이빨로부터 할아버지를 구해낸 갈샨이
그렇게도 대견할 수 없었다.  

인상적인 구절이 있는데 갈샨을 학교에 보내라고 독촉하는 교육과 감독관에게
바이타르가 한 대답이다. (중요한 부분만 적었으며 중략한 대화가 있음)
“읽을 줄 아냐?”
“읽는 거요? 읽는 거야 오래전에 배웠죠.”
“좋아. 그럼 셈은?”
“당연하죠!”
“그럼, 양 젖은 짤 줄은 아냐?”
“아직 그렇게 잘하지는 못해요. 이제 막 시작한 거니까요.”
“그럼, 늑대가 양 떼를 공격하면 막을 수 있냐?”
“늑대요!”
“들었나, 힐방? 내 손녀는 자네가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네.
그리고 내가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손녀가 모르는 것들이지. - 중략.” 

아마도 갈샨이 바이타르와 함께 했던 153일은 단순히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가 있던 시간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 중요한, 어떻게 보면 대안학교에 다닌 것
아니었을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동안 말이다.
이 책을 보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좀 더 혹독하고 현실적인 내용의. 

청소년을 위한 책이지만 살아있는 것 같은 글자 하나하나, 문장 한 구절 한 구절
사이에서 몽골평원의 황량함과 재무쇠(갈샨의 말)의 거친 호흡과 불뚝거리는 근육,
쭈트의 잔인함, 소녀와 할아버지의 가족애 그리고 검독수리와의 서로에 대한 신뢰로
인해 삶을 유지했던 일로 인해 내 마음까지 훌쩍 자란 느낌을 받았다.
갈샨 또한 이런 마음이었겠지?
언젠가 몽골 평원에 가게 되면 검독수리와 호흡을 맞추는 갈샨을 만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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