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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너스에이드
치넨 미키토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7월
평점 :
<이웃집 너스에이드> / 치넨 미키토 지음 / 신유희 옮김 / 소담출판사 펴냄>
치넨 미키토의 『이웃집 너스에이드』는 단순한 의료 미스터리가 아니다. 이 소설은 일본의 병원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하여 의료인의 전문성과 인간성, 그리고 환자와 의료진이 맺는 관계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주인공 사쿠라바 미오는 언니의 죽음 이후 PTSD로 주사기조차 잡지 못하는 간호조무사다. 하지만 그는 환자의 곁에서 마음을 보듬고 지지하는 일을 통해 오히려 더 깊은 의미의 치료를 수행한다. 반대로 통합외과의 에이스 류자키 타이가는 환자의 감정을 불순물이라 치부하며 오직 지식과 기술만을 신뢰하는 인물이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충돌하고 협력하면서 드러나는 긴장은 곧 "의료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책을 읽으며 가장 충격적이었던 점은 일본의 간호조무사가 별도의 자격증 없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의료행위를 전혀 할 수 없고, 침대 정돈이나 배식, 식사 보조와 같은 업무만 맡는다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미오가 “우리는 환자에게 다가가는 프로”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깊은 울림을 받았다. 환자 곁에서 마음을 읽고 불안을 덜어주는 역할이야말로, 비록 주사기를 잡지 못하더라도 의료 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임을 새삼 깨달았다.
한국의 현실을 떠올리면 씁쓸해진다. 우리나라의 간호조무사 제도 역시 여전히 열악하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업무 범위는 늘 논란거리이고, 현장에서의 존중과 처우는 부족하다. 의사 중심의 수직적 구조에서 간호사와 조무사들은 묵묵히 잡무와 감정 노동을 떠안는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우리는 의료진들의 헌신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음에도, 정작 이들의 처우 개선은 뒷전으로 밀려난 현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이 책에서 류자키가 "환자의 마음은 불순물이 아니다"라는 미오의 태도에 결국 귀 기울이는 장면은, 지금 한국 의료 체계가 반드시 귀담아들어야 할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책 속 문장들에 밑줄을 그으며 나는 여러 번 멈춰 서야 했다. "살리겠다고 마음먹은 환자를 못 본 척 한다면, 나는 내가 아니게 돼"라는 구절은 의료인이 단순히 자격증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품은 자부심과 사명으로 존재함을 말해준다. 또 "인간은 기계가 아닙니다. 감정이, 마음이 있습니다"라는 대목은, 효율과 속도만을 강조하는 현대 의료가 얼마나 환자의 인간성을 놓치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의료란 생명을 다루는 과학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어루만지는 예술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웃집 너스에이드』는 단순히 흥미로운 의료 서스펜스가 아니라, 의료 현장에 서 있는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품이었다. 환자를 향한 진정한 프로 정신이란 기술만이 아니라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임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의료인도 함께 치유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책을 덮으며 나는 다시 한번 의료진들의 헌신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되었다. 우리가 무심히 누리는 삶과 안전은 결국 그들의 땀과 희생 위에 놓여 있음을, 그리고 그들이 존중받고 지켜져야 우리 사회의 건강도 유지될 수 있음을 이 소설은 강력히 환기시킨다.
P.S 딸아이가 유튜브에서 너스에이드를 봤다며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그러던중 나의 책상에 놓여있던 책을 발견하더니 자기가 먼저 읽겠다고 뺏어갔다. 대체 얼마나 재미있길래라고 했는데 역시나다. 잠을 잘 수가 없다. 장면마다 결말이 궁금해서.
#너스에이드#치넨 미키토 지음#소담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