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두의 행복 -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정원을 걷다 ㅣ 열다
버지니아 울프 지음, 모명숙 옮김 / 열림원 / 2025년 5월
평점 :
<모두의 행복> / 버지니아 울프 지음 / 모명숙 옮김 / 열림원 펴냄
버지니아 울프의 산문집 『모두의 행복―버지니아 울프와 함께 정원을 걷다』는 한 권의 책을 넘어선 문학적 정원이다. 이 책은 단순한 자연에 대한 묘사나 회고를 넘어, 기억과 감정, 존재와 부재를 엮어낸 서정의 지형도이다. 울프는 일기와 편지, 문학 속 풍경을 통해 삶의 찬란한 파편들을 하나하나 끌어올리며,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삶의 밑바탕이 되는 기억’들을 다시금 바라보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울프의 섬세한 감수성과 정교한 묘사력이다. 특히 <파도>의 한 장면은 정적과 움직임이 동시에 존재하는 파도의 풍경을 시처럼 표현하며, 독자에게 자연의 리듬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파도는 멈추었다가 다시 물러나며, 무의식적으로 숨을 쉬는 잠든 사람처럼 한숨을 쉬었다”는 문장은 파도라는 존재에 감정을 부여하며, 정물화 같은 풍경에 생동을 불어넣는다. 울프는 자연을 보는 눈으로 자신의 내면을 비추고, 그 정서를 언어로 형상화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자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 인간 내면의 울림을 전한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울프의 삶과 공간, 감각을 따라간다. 세인트 아이브스에서의 유년 시절부터 몽크스 하우스의 정원, 런던의 거리,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체득한 풍경들까지, 울프는 자신이 경험한 공간을 시적 언어로 풀어낸다. 개인적으로는 몽크스 하우스의 정원에 관한 이야기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삶의 위기 속에서도 자연은 그에게 평온한 리듬을 선사하고, 글쓰기를 가능하게 했으며, 그 속에서 ‘행복’이라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나 역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일기 쓰기 방식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지나치게 감정에 휘둘리는 글을 써왔다. 하지만 울프는 감정을 절제하며, 묘사 속에 감정을 녹여낸다. 예컨대 그는 “벌이 윙윙대는 여름 오후”라는 문장 하나만으로도 어떤 분위기와 감정을 전달한다. 나도 이제부터는 울프처럼 날씨를 관찰하고, 주변의 사소한 풍경에서 감정을 길어 올리는 일기를 써보고자 다짐하게 되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필사’의 중요성도 새삼 느꼈다. 울프의 문장들은 단순히 아름다운 언어를 넘어서, 문장을 구성하는 리듬과 호흡 자체가 감정을 만들어낸다. 문학적 묘사가 어떻게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풍부하게 전할 수 있는지를 체감하게 되었고, 필사를 통해 나만의 언어 감각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울프가 묘사한 꽃과 나무, 그 색채와 시간대에 대한 감각은 나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장미, 카네이션, 라일락이 저녁 6시와 7시 사이에 가장 활짝 핀다는 그의 관찰은 단순한 묘사에 그치지 않고, 시간과 감정, 색의 삼중주로 다가온다. 나도 이처럼 하루 중 다른 시간대의 빛과 색, 감정을 섬세하게 바라보며 기록해보고 싶다.
책 속에서 울프는 전쟁이라는 절망 속에서도 정원의 햇빛과 공기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삶을 감각하고자 했다. 그 자세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불안한 세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잃어버렸던 감각과 감정을 다시 불러내는 힘이 글쓰기와 자연을 통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책을 읽고 버지니아 울프에 빙의되어 내가 다녀온 여행지들에 대해 써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이탈리아 피렌체와 로마, 영국을 묘사한 그녀의 글은 내 기억의 창고를 열게 했고, 울프의 문장을 빌려 나만의 정원을 언어로 가꾸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모두의 행복』은 단순한 산문집이 아니라, 문학과 삶, 자연과 감정이 어우러진 하나의 시적 체험이다. 이 책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친 순간들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일깨우며, 글을 쓰는 이에게는 깊은 영감을, 감정을 잃은 이에게는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글쓰기를 좋아하거나, 일상을 예민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조용하지만 강렬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
#모두의행복#버지니아울프#열림원#묘사#정원#문학작품묘사#풍경의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