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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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의 저자 하퍼 리의 55년만의 출시작, < 파수꾼>은 전세계적으로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 외국 독자들은 서점에서 줄을 서서 책을 구매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특히, 전작에서 주인공 스카웃이 6살 소녀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갔다면, 파수꾼은 스카웃이 20년 후 성인이 된 시점의 이야기인지라 독자들의 궁금증을 일으켰다.


 저자 하퍼 리는 <앵무새 죽이기>의 예상치 못한 성공에 위압감을 느낀 나머지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은둔생활을 했다고 한다. 실제 책은 <앵무새 죽이기> 이전에 집필되었고,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는데, 출판사의 권유로 차기작을 쓴 다음 그것을 먼저 출간했다고 한다. 그 후, <파수꾼>은 그녀의 안전 금고 속에서 원고가 발견되어 최근에 출간되기에 이른다. 내용만큼이나 출간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책은 1950년대 미국 남부의 작은 시골 도시 메이콤을 배경으로 한다. 진 루이즈 스카웃은 뉴욕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26세의 여성으로, 휴가를 얻어 고향 메이콤으로 내려온다. 스카웃의 집안은 남부 중상류층의 모습을 보여준다. 큰고모 엘리자베스는 코르셋을 갖춰입고, 교양을 쌓기 위한 여자대학을 졸업한 전형적인 귀족지향적인 남부 여성이다. 비교적 자유분방한 스카웃과는 자주 부딪힌다. 아버지 에티커스는 변호사로, 앵무새 죽이기의 모티브가 된 강간죄로 기소된 흑인 청년의 사건을 변호하여 무죄를 이끌어낸, 스카웃에게는 정의와 신념의 인물이자 우상이다. 헨리는 스카웃이 결혼 상대로 꼽고 있는 청년으로, 이웃에서 사고로 고아가 된 헨리를 에티커스가 교육시키고 이제는 변호사 사무소를 같이 운영하고 있다.


 책의 초반부는 스카웃의 집안과 메이콤 읍의 분위기를 그리고 있다. 그러던 중, 스카웃은 충격적인 발견을 하게 된다. 바로 아버지가 인종차별 팜플렛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 스카웃은 그것을 읽으며 상당한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교회에서 개최되는 위원회. 그곳은 흑인민권운동을 대항하기 위한 집회였고, 아버지가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있었다. 그의 남자친구 헨리는 이미 아버지의 추종자가 되어 행동을 같이 하고 있었다.


 "그녀가 전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신뢰했던 유일한 사람이 그녀를 실망시켰다. 그녀가 알았던 사람들 중, <그는 신사입니다, 마음속으로부터 신사입니다>라고 전문가로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대놓고, 흉하게, 파렴치하게 그녀를 배신했다.(p.161) 진 루이즈가 통찰력을 지녔더라면, 그래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고도로 선별적이고 배타적인 세계의 장벽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더라면,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평생 동안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 알아채지 못하고 간과한 시각 장애를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을, 선천적으로 색맹이란 것을.(p.173)"


 앵무새 죽이기를 먼저 접한 독자들에게도, 에티커스의 변모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무엇보다 백인 중상류층 사회에서 NAACP(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에 대한 공포감, 저항감이 팽배한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당시 '니그로'가 중립적인 표현으로 쓰이는 시대 상황에서, 그러한 흑인 민권 운동은 남부의 소도시 메이콤 백인들에게 기득권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래서메이콤 시의 백인들만의 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에티커스 또한 참석하고 있었다.


 "NAACP가 남부를 전복하기 위해 전념하는 단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p.246) 오히려 스카웃에게 색맹이라고 꾸짖는 그들. 책은 이러한 남부의 시대적 분위기와 이제는 뉴욕 외지인인 스카웃과의 대립, 스카웃이 우상이었던 에티커스의 이면을 발견하고 아버지와 대립하는 구도를 그리고 있다. 에티커스는 결국 딸에게 "네가 자랑스럽다고"(p.390)라고 말한다. 스카웃은 에티커스와의 격렬한 설전과삼촌 잭 핀치와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신념과 우상의 파괴만이 아닌,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와 같이 할 수는 없다는 스카웃. 결국 자신의 길을 간다.


 <앵무새 죽이기>가 워낙 대작인 탓일까. <파수꾼>은 그에 비해 이야기의 갈등 구조가 보다 평이하고,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이나 감성을 일깨우는 명문장은 부족한 느낌이다. 실제로 집필 순서가 <파수꾼>이 먼저인지라, 스카웃의 20년 후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연계하여 그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1950년대 보수적인 미국 남부의 모습을 이해하고, 또한 스카웃의 여정에 집중하면서 읽어나가면 작품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의 작품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어찌됐든 선물같은 작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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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긍정을 춤추게 하라 - 긍정심리학의 권위자 바버라 프레드릭슨의 긍정의 힘
바버라 프레드릭슨 지음, 우문식 외 옮김 / 물푸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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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살아라.', '긍정적인 마인드가 성공을 불러온다.'고 자주 말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자기계발서들 중에서 상당수도 긍정적인 태도와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하지만 도대체 긍정적인 사고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은 채, 막연히 동기부여만 하는 책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독자들이 자기계발서에 회의를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그렇다면 긍정심리학이란 무엇일까? 긍정이란 주제가 일련의 학술적 분야로 분류될 만큼, 과학적인 연구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인가? 『내 안의 긍정을 춤추게 하라』 는 이러한 긍정심리학을 다루고 있다.


저자 바버라 프레데릭슨 박사는 노스캐롤라이나 심리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긍정심리학이 본격적으로 창설된 1999년부터 학계의 일선에서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았다. 특히, 각종 심리학회에서 긍정정서에 관한 연구로 수상하였다. 저자의 내공 덕분에 책은 학술적인 깊이를 가지면서도 대중적인 교양서로 쉽게 다가온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 긍정 정서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가. 즉, 정량적인 측정이나 검증이 가능한 영역인지 궁금했다. 혹시 긍정적인 태도를 갖자는 자기계발서식의 슬로건으로 마무리되는지 의심하기도 했다. 특히, 긍정 정서를 사람이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있는지, 정서와 기분, 감정과는 무엇이 다른지 알기 위해서 계속 읽어나갔다.

책을 읽고, 정서가 감정, 감각, 생각, 행동으로 이루어진 포괄적 개념인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좋은 기분이나 느낌은 정서의 일부분이지 그 자체는 아니었고, 정서란 보다 지속적이고 일관된 마음의 상태였다. 특히, 긍정 정서의 최적 상태를 '플로리시'라고 하는데, 이는 긍정 정서로 인해 인간의 잠재능력까지 발휘하는 만개 상태를 말한다.(p.8)

책은 이러한 긍정 정서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이를 유지시키기 위한 처방을 내린다. 긍정정서는 사람의 기분을 좋아지게 함은 물론, 사고를 확장시키며, 여러가지 인생의 자원을 구축(build)하게 한다. 또한 인생의 회복탄력성을 높이며, 인간은 긍정정서를 의도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한다. 긍정정서와 부정정서 간의 비율이 3:1 정도가 되면, 플로리시의 상태를 예고하는데, 이 범주의 사람들은 생기와 창의력, 각종 긍정적인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고 한다.(p.334~338)

『내 안의 긍정을 춤추게 하라』는 이러한 긍정 정서의 '여섯 가지 사실들'은 각종 연구 결과를 통해서 증명하고 있으며, 제 4부 내 안의 긍정정서를 춤추게 하라 에서 소개되는 처방으로,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게 된 사람들, 젠, 빅터, 니나 등등의 사례를 들어서 독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한다.

구체적인 긍정정서의 예로, 기쁨, 감사, 평온, 흥미, 희망, 자부심, 재미, 영감, 경이, 사랑 열 가지 등이 있다. 특히, 이러한 긍정정서는 사람의 인지능력과 문제해결력을 향상시키며, 두뇌와 심혈관 등 각종 장기에 가시적인 호전 상태를 일으키는 연구 결과를 보면서, 실제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인생의 자원을 구축'은 구체적으로 이러한 변화를 경험하며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 대인관계 등-이 보다 원만하고 풍요로워짐을 말한다.


무엇보다, 긍정정서 자가진단 테스트로 나의 긍정 정서/ 부정정서 비율을 테스트해 보고, 긍정정서를 올리는 방법, 부정정서를 낮추는 법 등을 통해 실제적인 변화를 계획할 수 있다는 점이 유용했다. 나만의 긍정정서 포트폴리오를 작성해 보고, 부정정서의 비율이 상승할 때 이를 마음 속으로 꺼내보면 보다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변화의 사례에서 나온 니나의 경우처럼, 명상이 긍정정서에 가시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명상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 책을 읽고 꼭 지키고 싶은 스스로와의 약속이 생겼다. 『내 안의 긍정을 춤추게 하라』를 읽고, 많은 독자들이 긍정이 춤추는 경험. '플로리시'를 느껴보길 바라며, 보다 원만하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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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한 생각 밥상 - 박규호의 울림이 있는 생각 에세이
박규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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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는 먹방을 넘어 쿡방이 대세다. 인기 셰프들은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할 만큼 요리 프로그램의 인기가 뜨겁다. 처음 소담한 생각 밥상을 접했을 때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나름 미식가가 쓴 요리 이모저모인 줄로 알았다. 목차가 '에피타이저'로 시작해서, '한국요리', '일본요리', '중국요리' 가 차려져 있고, '디저트'로 마무리하니 얼핏 삼국의 음식문화를 다룬 책인가 싶다. 『소담한 생각 밥상』을 직접 읽으니 조금은 맞다. 음식 이야기도 나온다. 실상은 제목처럼 저자의 삶을 독자들에게 정성스레 담은 생각 밥상이 옳다.

 

저자 박규호씨는 1979년부터 한국전력공사에 근무한 베테랑 공기업 임원으로, 2013년부터 한전 국내 국내 부문 부사장으로 재직중이다. 뿐만 아니라 각종 에너지 관련 기관의 자문, 마이스터고 이사장, 대학 강단의 겸임 교수로 활발히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과거 중국, 일본 주재원, 지사장 등을 거쳐서 해외통으로 ​통한다. 책은 저자의 인생과 인간관계, 사회적 관계의 노하우, 인간관, 글로벌 마인드, 아직도 끊이지 않는 배움에 대한 열정 등으로 차린 에세이다.

 

밥상을 들고 나니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란 경구가 떠오른다.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익히면 스승이라 할만 하다 라는 뜻이다. 책이 단순히 사회적 명망인의 성공담, 자화자찬 형식의 자서전이 아닌 이유다. 고전과 인문학을 향한 열정으로 서울대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을 오십이 넘은 나이에 졸업할 정도이다. 그만큼, 고전과 인문 정신을 바탕에 두고 경영 일선에서 새로운 기술과 경영지식, 환경을 수용하는 지혜가 돋보인다.

 

"예컨대, 혁신이란 , 가죽이 닮을 정도로 과학적으로 궁구하여 앎에 이르는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실행이다. 온축된 지식으로 한 분야에 물꼬가 트이고 여기에 창의적 사고가 결합되어야 나오는 것이다." "말로만 하는 융합이나 통섭 정도로는 개선은 가능할지 몰라도 진정한 혁신은 어림도 없다."(p.74)고 말한다. 세종대왕의 경연經筵 원칙인 "견狷, 광狂, 지止"의 법칙과 창조적 마찰(p.81), 어원으로 경영management 의 핵심을 설명하기도 한다. 저자가 MBA 과정에서 배운 경영 지식과 인문학적 지식이 융합되어 일선 경영환경과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이 인상적이었다.

 

해외 경험도 흥미로웠다. 복어 요리에 얽힌 한, 중, 일 삼국의 이야기. 일본에서 스시를 싸게 즐기는 법, 속된 말로 쓰는 '사바사바'가 일제 강점기에 고등어(일본어로 '사바') 한 손(두마리)를 들고 순사에게 뇌물을 준데서 비롯됐다는 것. 각국의 정서에 맞는 에티켓으로 외국에서 고위급 관계자들과 친교를 맺은 일 등, 마치 호사가 같은 입담으로 맞깔나게 이야기한다. 저자가 해외에 주재하며 각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직접 피부로 느끼고 깨달은 점들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근본은 각국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처할 것은 대처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여 우리나라를 발전시키자는 소망이었다. 역사적 감정이 좋지 않은 일본에 대해서도. 지일知日이라야 진정한 극일克日을 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세운다.

 

『소담한 생각 밥상』은 무엇보다 사회적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대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논어』의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를 실천하는 저자의 열정이 돋보인다. 첫 에세이인지라 제목대로 소담한 생각 밥상으로, 미술로 치면 소묘에 가까웠다. 박규호씨의 보다 정밀하고 맛깔나는 생각을 담은 두 번째 만찬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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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 - 전략이란 무엇인가 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
조유 지음, 문이원 옮김, 김근 감수 / 동아일보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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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溫故以知新 可以爲師矣.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익히면 가히 스승이 될만 하다는 뜻이다. 옛 사람들의 지혜와 발자취를 통해 오늘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안목이 생긴다. 『반경 - 전략이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다시금 고전의 진가를 발견했다.

 

저자 조유는 중국 당대唐代 학자이다. 조정의 부름을 고사하여 출사하지 않았으나 일찍이 제자백가를 읽고 책략에 능통하여 명성을 떨쳤다. "조유는 책략에 능했고 이백은 문장에 뛰어났다."(p. 9)는 평을 얻을 정도였다. 채근담을 지은 홍자성은 생전에는 불우한 삶을 살았지만, 조유는 당시에도 인정받았던 대학자였다.

 

 


책략에 능했기 때문일까. 반경은 고담준론이나 도덕적 경구 위주의 동양고전이 아니었다. 정치, 처세, 병법을 실질적으로 논한다. 예컨대, 용인술을 설명하면서 관상학을 덧붙인다. "책략을 날줄로 삼고 역사를 씨줄로 삼았다."는 책은, 먼저 실질적인 논점을 제시한 뒤에 사상과 역사를 인용하여 구체적인 답을 내린다. 동양 고전이나 중국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는 매력적이다. 당대唐代의 학자인지라 춘추전국시대, 한나라의 역사와 인물평이 많이 나오는데, 평소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 등으로 익숙한 위인들에 대한 비평이 흥미로웠다. 조유의 평가는 확실하다. 예컨대, 조조, 유비, 손권 중에 단연 군주로서 나은 인물이 누구인가를 논증하면서도 명확한 입장을 밝힌다.

 

 


입체적인 시각이 발군이다. 제자백가, 인물, 역사적 전례을 논할 때도 장, 단점을 명확히 설명하고 핵심을 드러낸다. 중용에 보면, '집기양단 용기중어민 執其兩端  用其中於民'이란 경구가 있다.  "양 극단을 잡아 그 중간을 백성에게 쓰시니, 이 덕분에 순임금이 된 것이다"라는 내용 중의 일부인데,  이처럼 양 극단을 이해하고 그 가운데 핵심을 파악하여 지혜롭게 처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경』은 각종 사상과 인물, 역사의 양 극단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덕분에 독자는 가운데 핵심을 파악하게 한다. 단순히 경구를 외우거나 공리공담이 아니다. 특히 14장 시비是非에서는 대치되는 각각의 주장을 본격적으로 따져보는데,

 


 

시) 공자가 말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춰내는 것을 미워하는 자가 곧은 사람이다."

 

비) 관자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숨기는 것을 미워하는 자가 인의로운 사람이다."라고 했다.......(p.139)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엮었다.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한다. 말 그대로 『장단경』이다.

 

 


『반경』은 단순한 훈계나 경문이 아닌, 실제 삶과 처세, 전쟁의 지략을 논한다. 조유는 서문에서, "시대에 따라 맞는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면 어찌 만물이 이루어지며 그 변화에 따라 힘쓸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인정이 후할 때는 왕도로 다스리고 인심이 각박할 때는 패도로 다스리는 것이다."(p. 5)라고 한다. 특정 사상과 가르침을 추종하지 않고, 시의적절하게 배움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지혜를 추구한다. 지극히 실용적이다.  고대 중국의 외교 전문집단인 종횡가를 비중있게 다루고, 특히 합종연횡으로 유명한 소진과 장의의 행적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실용적인 책략을 구사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더러는 반유가적 사상을 담고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책의 제목인 13장 반경反經, "반면을 살핀다"는 뜻은 앞서 말했듯, 단편적인 이해를 지양하고 입체적인 관점에서 조망한다.  "법규와 제도는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쓸 줄 아느냐 모르느냐가 중요하다."(p130)고 하듯이, 공리공담이나 도덕적 훈계가 아닌 실질적인 논점을 제기하고, 이와 관련된 사상과 역사 전례의 장, 단점을 파악하여, 시세에 맞게 지혜롭게 활용하는 것. 『반경』의 핵심이자 묘미이다. 현대 중국 지도자들에게 끊임없이 회자되고, 기서奇書로 불리는 이유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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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책 - 사춘기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불온서적들
이재익.김훈종.이승훈 지음 / 시공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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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책』 - '사춘기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불온서적들'.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빨간 책'이라 하면 19세 이상 섹스어필용 서적이나, 당국으로부터 불온하다고 낙인찍힌 책들이 번뜩 떠오른다. 한때 국방부에서 장하준 교수 저서 등을 금서 목록으로 지정하자, 오히려 책의 판매가 늘어나 저자와 출판사가 감사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그만큼 금지된 것들은 흥미를 끈다.

선 교육현장과 가정, 심지어 언론과 tv 매체까지 독서를 권장하고 책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하지만 대체로 권장도서들이란 세계명작 혹은 과연 현재 청소년 수준을 고려해서 뽑은 것인지, 선정자의 과도한 욕심 때문인지 모를 고루한 책들이었다. 책에 대한 강박관념만 주입시킨 채, 독서를 현학적인 고등 취미로 만들어버린 결과, 독서와 현실의 삶은 겉돌고 오히려 책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정말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책들은 '빨간 책'이 아니었을까. 『빨간 책』은 세 남자가 이야기하는 자기 삶의 '빨간 책'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담준론이 아니라 술자리에서 푸는 썰에 가깝다.

세 명의 저자 이재익, 김훈종, 이승훈 PD는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을 진행 중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면 마치 팟캐스트 방송을 듣는 듯하다. 팟캐스트의 장점인 보다 자유롭고, 개인적이며, 다양한 소재들을 다루는 특성을 십분 살렸다. 이승훈 PD는 인사말부터 심상치 않다. 출판사를 따지고 든다. 소싯적에 한창 땡전뉴스로 유명했던 대통령 아들이 운영하는 출판사 출간 제의가 마뜩찮아, 맨 먼저 강풀 작가의 『26년』을 소개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이 PD. 결국 조율 끝에 "뜨거운 기억, 6월 민주항쟁"이란 부재를 단 최규석 화백 『100℃』로 운을 띄운다.

 

오락실에서 게임을 즐기는 데 동네에 최루탄 연기를 피우며 방해하는 운동권 학생들. 어른들로부터 상종하지 말라고 했던 그들의 실상을 알고부터 자신의 짧은 식견을 반성했다는 이 PD. 그의 성찰을 『100℃』 란 책 소개에 솔직하게 담았다. 뿐만 아니다. 소설가이자 라디오 PD인 이재익 작가는 묻는다. 자신이 봤던 일본 야설 『황홀한 사춘기』와 세계명작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무엇이 다른가. 후자 또한 당대에는 비난과 금서 목록을 벗어나지 못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특히 『황홀한 사춘기』의 남주인공이 테니스 강사라서 그를 따라 테니스를 배웠는데, 정말로 자신을 가르쳤던 테니스 코치가 치정살해를 당했다는 고백은 무릎을 탁 치게 한다. 친구에게 빌려줬다가 친구 엄마에게 성교육 설교를 들었던 후기까지, 『빨간 책』은 정말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H2』 , 야설 『황홀한 사춘기』 , 『조선왕조 500년』,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리차드 도킨스, 제레미 리프킨, 무라카미 류, 『체 게바라 평전』까지, 심의불문 장르불문 국내외 작가들의 다양한 책들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포인트는, 저자들만의 인생과 그들만의 시각으로 책에 대한 '썰'을 푼다는 것. 『조선왕조 500년』 구중궁궐 비사를 여성지의 란제리모델 사진보다 더 섹스 어필하게 읽었다는 김훈종 PD의 독법을 누가 나무랄 수 있을까.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성장하면서 깨닫게 되는 고전과 철학서의 묘미까지. 그리고 소개된 책과 썰을 통해 세 PD 각각의 성향을 추리해 보는 것도 독자들에게 하나의 재미이다.

 

당시에 인터넷도, 다양한 전자 매체도 없던 시대. 외려 책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갔던 그들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재밌었다. 우리네 인생이 꼭 모범생의 생활과 정도로만 가지 않았듯, "우리는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잘못 배운다."고 솔직하게 썰을 푸는 그들의 입담이 무엇보다 재밌었다.  자신만의 독법과 자신만의 인생으로 책을 이해했던 썰을 읽으면서, 책이란 매체가 얼마나 도발적이며 섹시한가를 깨닫게 했다. 내 인생의 빨간 책은 무엇인가. 책은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인가. 마치 술자리의 썰을 듣고 왔는데, 집에 와서 곱씹어 보니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였다고나 할까. 『빨간 책』 이후의 내 독서인생은 보다 도발적이고 섹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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