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자꾸 바보짓을 할까? - '생각의 사각지대'를 벗어나는 10가지 실천 심리학
매들린 L. 반 헤케 지음, 임옥희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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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자꾸 바보짓을 할까?>는 생각의 사각지대, 이른바 사고의 맹점에 관한 책이다. 살다보면 내가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혹은 남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있다. 책은 10가지 사고의 맹점을 통해서 '바보짓' 혹은 '밉상짓'의 원인을 살펴본다. 저자인 매들린 L. 반 헤케 교수는 "교육학, 인지심리학, 창조성 연구, 비판적 사고, 유아 발달, 철학 등" 간학문적 관점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분석한다.


여기서 '바보짓'은 의도된 행위가 아니다. 많은 인간이 타인에게 악의를 품고 행동하거나 뻔히 자기가 잘못한 줄을 알면서도 모르쇠로 버틴다. 그러나 책은 의도된 '나쁜짓'보다 인간의 태생적인 맹점을 꼬집는다. 악의적인 행동은 애초에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 무조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기 전에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탐욕이나 이기심, 게으름 때문으로 보이는 행동들도 찬찬히 살펴보면 얼핏 본 것과 달리 훨씬 더 복잡한 이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일단 상대방을 심각한 결함이 있는 존재로 대하면 그들을 좋은 방향으로 유도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p.43)



맹점은 생존 본능과 관련돼 있다. 인간의 인지 용량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복잡한 정보를 모두 파악할 수 없다. 삶이 피곤한 것은 물론이고 일상 생활을 하는 데 터무니 없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게다가 망각은 신의 선물이란 격언이 있듯이, 적절한 자기합리화는 심리적 평온을 위한 필수 요소다. 복잡한 사회를 살기 위한 뇌 나름의 효율적인 전략이다.



그러나 이 전략은 생각의 사각지대를 일으킨다. 생각 없이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익숙한 사고방식과 패턴을 고집하고 새로운 것을 거부한다. 전체적인 시스템을 보지 못할 뿐더러 불충분한 증거를 바탕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린다. 맹점이 모여 편견으로 고착화되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방해한다. 개인 차원을 넘어 "집단, 즉 국가나 종교 집단, 민족이나 인종 집단, 회사나 학교 등도 맹점이 있다. 맹점에 관한 국가적, 국제적 딜레마"(p.9)가 벌어지기도 한다.



최악은 '내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다. 맹점은 사전적 의미로 망막에 시세포가 없어 상이 맺히지 않는 부분이다. 시야에 잡히지 않아서 자각하지 못한다. 사고의 맹점도 마찬가지다. 은연중에 작동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고치기가 어렵다. 반면에 남의 맹점은 잘 보인다. 예컨대 미운 인간이 있다. '그 인간'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밉상짓을 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러나 나도 누군가에게 '그 인간'이지 않을까. 객관적인 자기 성찰을 하지 못하는 맹점이 가장 안타깝다.



누구에게나 맹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그러면 누군가가 자신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이 설령 불완전하더라도 단순한 관점상의 차이를 넘어서서 그 관점을 통해 배울 점이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상대방의 견해가 우리와 다르고, 나름대로 한계가 있다 할지라도 그들의 관점으로 보면 자신이 놓치고 있는 부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다. (p.7~8)


두 번째 메시지는 우리가 각자의 맹점을 극복하면 더 나은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고, 타인과 관계가 개선되며, 창조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사고 방식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p.8)

인간은 맹점을 갖고 있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 결정을 저지르고 자책하기보다 맹점을 알고 대비를 해야 한다. 매들린 교수가 말하는 '돌아보기' 방법은 10가지 맹점에 대한 대처법이다. 무엇보다 인간이 맹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인지하는 단계가 첫 걸음이다. 부인하는 태도가 가장 큰 잘못이다. "맹점은 면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p.42)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를 다시금 바라보게 된다. 내가 혐오하는 남의 결점은 악의가 아니라 맹점에서 비롯되고, 남이 나를 꺼려하는 이유가 나의 맹점 때문일 수 있다. 지혜가 필요하다. 흑백 사고를 벗어나 이성적이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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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2일 분노의 질주 시리즈 8편인 <분노의 질주 : 더 익스트림>이 개봉했다. 개인적으로 자동차는 운송수단 쯤으로 여기는 사람이라 15년 간 시리즈가 일곱 편이 제작되고 흥행에 성공했는데도 눈길이 안 갔다. 잊을 만하면 개봉하는 액션 영화 정도였다. 전작 <분노의 질주 : 더 세븐>이 상영된 2015년 상반기엔 <킹스맨>, <스파이>,<피아니스트>를 극장에서 봤던 것 같다. 도대체 시리즈가 8편이나 나오는 이유는 뭘까. 결국 개봉 당일 영화를 직접 관람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본격 카 체이스 액션 영화다. 뤽 배송 감독의 <택시> 시리즈를 제외한 대부분 액션 영화에서 한 꼭지로 등장했던 자동차 액션 신을 전면에 내세웠다. 슈퍼카와 미녀가 나오는 카체이싱. 자동차에 로망을 가진 액션 관객층에겐 더없는 취향 저격 영화였다. 실제로 원작 만한 속편은 없다는 불문률을 깨고, 시리즈가 제작될수록 스케일은 점점 커진데다 흥행 기록을 경신했다. 전작 <더 세븐>은 전세계 박스오피스 6위를 기록했다. <컨져링> 등 공포 영화 명장으로 유명한 제임스 완 감독이 연출했고 빈 디젤과 함께 시리즈의 한 축을 담당했던 폴 워커가 촬영 도중 부고하는 바람에 추모 열기가 더해졌다. 헐리우드에서도 2억 달러 ~ 2억 5천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인 블록버스터여서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15억 달러에 달하는 흥행수익을 올려서 영화계의 걱정을 불식시켰다.

 

 

 

 

 

 

이번 <분노의 질주 : 더 익스트림>은 그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가족처럼 지낸 팀의 리더 격인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이 팀원을 배신하고 사이퍼(사를리즈 테론)과 전세계적인 테러를 계획하면서 시작된다. 시리즈 동안 끈끈한 우애를 보였던 팀인 만큼, 만약 도미닉이 배신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설정이다. 비록 범죄를 저지르고 전과도 있지만 폭주족 집단에서 야쿠자, 세계적인 마약상, 전직 특수요원의 비밀 테러집단의 음모에 맞서서 평화를 지켰던 그들이다. 그 과정에서 팀으로 뭉쳤으며 위기를 헤쳐나가며 팀웍을 다졌는데, 이번에 리더 도미닉이 어나니머스도 건들지 못하는 세계적인 해커 사이퍼와 손잡고 도리어 테러를 획책했던 것이다. <어벤져스 : 시빌 워>처럼 같은 팀, 선역끼리의 대결이란 흥미로운 설정이다.

 

 

 

 

브라이언 오코너(폴 워커)의 부재때문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폴 워커가 나오지 않는 분노의 질주에 대한 관객의 우려가 컸다고 한다. 파격적인 구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덧붙여 본인처럼 시리즈를 처음 접한 관객은 전작을 보지 않아도 관찮은지 궁금증이 생긴다. 실제 영화 초반에 어리둥절 했던지라 검색을 했다. <분노의 질주 : 더 익스트림> 이해에 필요한 인물들의 이력을 말하자면,

 

 

 

 

1. 루크 홉스(드웨인 존슨)는 시리즈 5편부터 출연했다. DSS(미 국무부 외교경호처) 비밀 요원으로 도미닉 팀을 체포하여 이송하던 도중, 세계적인 마약 조직인 에레난 일당에게 습격을 받고 팀이 전멸되는 위기에 처한다. 도미닉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도미닉 팀과 우애를 다졌고, 그후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도미닉 팀에게 협조를 요청한다. 루크 홉스에 협조한 덕분에 도미닉 무리는 범죄 이력과 수배범 신세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사이퍼 일당의 테러를 저지하려고 그들을 부른다.

 

 

 

 

2. 데카드 쇼(제이슨 스타뎀)은 전작 <더 세븐>에서 악당으로 루크 홉스, 도미닉 팀과 대립했다. 전직 영국 비밀요원 출신으로, 시리즈 6편인 <분노의 질주 : 더 맥시멈>의 악역인 오웬 쇼(루크 에반스)의 형이다. 동생의 복수를 위하여 루크 홉스와 도미닉 팀에게 테러를 가하지만 결국 제압당하고 CIA 비밀 감옥에 수감되었다. 영화 초반 루크 홉스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이를 가는 이유다.

 

 

 

3. 엘레나(엘사 파타키)는 한때 도미닉과 연인 사이였다. 리우 데 자네이루 경찰 출신으로 도미닉 팀과 엮이게 되고, 도미닉과 오래된 사이였던 레티 오티즈(미셸 로드리게즈)가 참혹한 죽음을 당한 후,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나 레티가 실제로 죽지 않고 그의 곁으로 돌아와서 둘 사이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는데, 루크 홉스가 그녀를 DSS 조직 요원으로 발탁했다.

 

 

 

 

4. 사이퍼(샤를리즈 테론)은 전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해커다. 이번 작품에 나온 악역이나 데커드 쇼의 동생 오웬 쇼와도 연관이 있고, 도미닉과는 구면인 듯하다. 

 

 

 

 

 

현지 위키백과에 따르면, 전편과 같이 <더 익스트림>도 2억 3천만 달러 가량의 제작비가 투입되었다고 한다. 두 시간 반(150분) 분량의 러닝타임이지만 지루할 만하면 거액의 제작비로 만든 카체이싱 장면이 등장한다. 고물차에서부터 슈퍼카, 리무진, 탱크에 이르기까지 차종도 다양하여 시선을 붙잡는다. 잘 만든 카체이스 블록버스터다. 긴 러닝타임에 거액의 액션신. 가성비가 훌륭하다.

 

 

 

 

 

 

 

 

 

 

 

 

 

 

* 영화 포스터, 스틸컷은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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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드 라이언스의 거대한 전환 - 새로운 세계 질서는 어떤 기회와 위협으로 다가올 것인가
제러드 라이언스 지음, 김효원,김혜민 옮김, 이영구 감수 / 골든어페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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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간 세계 경제 이슈에 둔감해서인지 제러드 라이언스가 생소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했고 각종 외신에서 전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 분석가로 꼽히는 이코노미스트라고 한다. 2016년 6월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한 브렉시트(Brexit) 사건이 일어났는데, 제러드 라이언스는 영국의 유로화 채용 반대, 브렉시트를 지지한 대표적 경제학자였다. 당시 브렉시트를 우려하는 입장을 많이 접했던지라 반대로 브렉시트를 옹호하는 세계적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에 관심이 갔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위기는 비교적 진정되었으나 미중 간의 알력 다툼, 4차 산업혁명의 도래 등 새로운 경제 질서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이러한 전환을 어떻게 바라보고 전망할 것인가. 경제를 예측하는 통찰이 필요하다. 제러드 라이언스는 수리경제학이나 통계학에 기반한 시각이 아닌 경제의 시스템적 사고를 지향한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 경제가 '제 5차 산업혁명'으로 이행하고 있는데,  5차 산업혁명이란 일반적으로 '제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정보통신기술 융합 산업을 비롯하여 인공지능, 녹색 혁명, 바이오기술 혁신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거대한 전환>은 경제를 움직이는 네 가지 영역으로 다가올 세계 경제 질서를 전망한다. 경제와 금융, 소프트 파워, 하드 파워, 글로벌 시스템과 정책이다. 경제적 측면에선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슈퍼맨'으로 중국, 무역, 영감 : 신기술의 성장, 땀 : 인구와 노동력의 변화, 중산층의 성장, 도시화를 들고 있다. 단순한 경제 전망서보다 세계경제를 화두로 한 미래학 서적으로 볼 수 있겠다. 우리나라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중산층 붕괴가 논의되고 있는 현실에서 중산층의 성장 키워드는 의아스럽다. 이것은 신흥국의 성장을 의미한다. 과거 중국이 메이드 인 차이나(중국산)였다면, 이제는 보우트 바이 차이나(bought by china, 중국의 구매력)를 주목하는 식이다.(p.68)



대체로 비관적인 경제 예측이 많은 가운데, 제러드 라이언스는 긍정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여기서 핵심은 앞으로 다가올 수십 년간 세계경제는 굉장히 흥미로운 성장기를 맞이하리라는 점이다. … 만일 세계 경제가 실제로 성장한다면, 신흥국의 경제활동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고 미국 경제는 다시 한 번 부흥기를 맞을 것이다."(p.24) 미국의 혁신 역량, 중국 경제의 성장세, 신흥국은 성장 잠재력을 일정 부분 달성하고 유럽은 경제적 판단을 적절히 한다면 다시금 전 세계적인 경제 발전기가 도래하리라는 관점이다.

다만 제러드 라이언스는 2008년 경제위기의 원인은 4G, 즉 글래스 스티걸법의 폐기, 그린스펀의 통화정책 실수, 거버넌스의 부재, 탐욕(Greed)을 들고 있다. 글래스 스티걸법이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는 법안으로 1999년 폐지되었다. 낙관적인 분위기 속에서 금융 전체가 투기적 성향을 띄게 되었고, 이른바 닌자금융,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수익성을 줄이는 대신에 금융의 안정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경우, 저자는 영국의 정치와 통화 정책의 독립성을 위하여 브렉시트를 지지했고 심지어 유로존이 붕괴될 것이라 예측한다. 유럽 연합은 통화 동맹을 바탕으로 한 정치 동맹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고, 해법에 따라 유럽 경제의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단일통화 동맹으로 야기된 정치적, 경제적 문제를 관리하는 역량을 보여주었다.



<거대한 전환>은 시스템적 관점에서 세계 경제를 진단하고 전망한다. 경제를 움직이는 네 가지 영역과 세계 경제의 여섯 가지 동력을 잣대로 분석한다. 현재를 진단하기 위해 경제사와 과거 경제 위기 사례를 살펴보는데, 우리나라가 IMF 구제 금융을 받아야 했던 동아시아 외환위기 사태도 있다. 제러드 라이언스는 금모으기 운동을 거론하며 짧은 시간 고도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한국의 역량을 칭찬하지만 일부 무역회사가 이득을 편취했던 사실은 몰랐으리라. 읽으면서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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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하자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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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하자>는 이광재 작가의 신작이다.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전작 <나라 없는 나라>로 혼불 문학상을 수상하였는데, 책장에 꽂혀 있는 소설이라 낯익은 작가였다. <수요일에 하자>는 중년 마이너 뮤지션들의 삶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이자 대한민국 사회를 풍자하는 세태 소설이다. 소재에 취향 저격 당해서 읽게 되었다.



작가라면 이러한 균열을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다. 궁극적으로 소설은 세태소설일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 이소설은 더욱 세태소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이 균열 속에서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작가의 말)


소설은 중년 밴드의 이야기다. 음악에 삶을 바쳤고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음악을 생계 수단으로 삼기란 녹록치 않았다. 굴곡진 인생이 패키지처럼 따라왔다. 이혼 후에 원룸에 살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전전하는 대학 나온 학구파 기타리스트 리콰자, 전 남편에게 온갖 모함을 받고 이혼 후에 대장암 투병 생활을 마친 키보디스트 라피노, 치매 노모를 돌보는 밤무대 기타리스트 니키타, 일용직 노가다 3개월 차인 배배이스, 채무자에게 쫒기며 사는 위장이혼남 드러머 박타동, 니키타가 기타를 쳤던 룸살롱 텐프로 출신 보컬 김미선이 뭉쳤다. 그리고 7080 라이브클럽 '낙원'에서 수요 밴드를 결성했다.


"무대를 잃은 사람에게 한 끼 밥값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p.75)


"나는 수요일에 하자. 아무 이유 없어. 우리 연습 날이 수요일이잖아. 그리고 직장인들에겐 수요일이 일주일의 고비 같은 날이거든. 월화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하는데 주말까진 좀 버텨야 하는, 그러니까 수요일엔 뭐든 하자 이거야. 섹스든 술이든 음악이든 ……."(p.123)



보컬 김미선은 룸살롱 접대일을 하며 가명인 김해진으로 살았다. 다른 이들은 밴드를 할 때면 으레 닉네임으로 불린다. 세상살이에 휘둘리는, 사회적 굴레와 질곡이 담긴 이름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열정을 담은 닉네임을 쓴다. 내막을 보면 어이없는 작명 센스에 실소하게 되지만, 때로는 실명보다 진실된 호칭이다. 호스티스 김해진이 아닌 본명 김미선으로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역설적이다. 라이브클럽 '낙원' 장사는 관리비조차 제대로 못낼 적자 운영이지만 그들에겐 아지트고 맘껏 음악할 수 있는 터전이다. 낙원이다.



수요 밴드는 레드 제플린, 딥 퍼플, 퀸같은 팝송과 함께 자작곡을 섞어 부른다. 세월호 참사를 모티브로 한 <검은 바다>, 그들의 굴곡진 인생을 담은 <노래 불러>, <철수야 놀자>, 나중에 율도 해수욕장 행사를 난장판으로 만든 <쓰나미가 온다>. 노랫말엔 대한민국의 고달픈 세태,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른바 마이너들의 애환을 담았다.



수요 밴드로 뭉친 그들의 에피소드에 웃음이 터진다. 소설 종반부 율도 해수욕장 쓰나미 사태가 클라이막스다. 애잔한 개인사도 청승 맞게 다루지 않는다. 말 한마디로 대한민국을 풍자하고, 노랫말로 세태를 어루만진다. <수요일에 하자>. 세상의 먹먹함을 유쾌하게 풀었다.  

작가라면 이러한 균열을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다. 궁극적으로 소설은 세태소설일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 이소설은 더욱 세태소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이 균열 속에서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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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4-10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신간이라서 그런지 읽고 리뷰쓰시는 분이 많네요.
잘 읽었습니다.
캐모마일님, 따뜻하고 좋은밤되세요.^^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 혹은 <기사단장 살인>이 올 여름 문학동네 번역판으로 나옵니다. 하루키는 노벨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동시에 대중적인 큰 인기를 얻은 작가입니다. 4년 만의 신작이라 화제가 되었고, 올해 초 일본에서 출간 당시에 우리나라 언론도 비중있게 다뤘습니다. 주말 아침에 어떻게 되었는지 문득 궁금해져서 검색을 했습니다.

 

 

<기사단장 죽이기>는 아내와 이별한 30대 초상화가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바니를 묘사한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에 얽혀 불가사의한 체험을 겪는 내용입니다. 하루키 특유의 개성이 잘 녹았다는 평입니다.

 

 

작품 속 인물이 난징대학살을 언급하여 일본 우익 세력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매국노"라는 비하까지 당했다고 합니다. 하루키는 2015년 한 인터뷰에서, "사죄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과거 일본의 침략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국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습니다. 소설가로서 작품을 통하여 왜곡된 역사와 맞서 싸우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만큼, 이번 신작은 작가의 역사 의식이 깃들었다고 봐야겠습니다.

 

 

http://www.ajunews.com/view/20170402185853826

 

 

무라카미 하루키는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하루키스트라 불리는 고정 팬층이 두터워서 최고의 선인세를 받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에선 1, 2권 초판만 130만 권 찍었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덕분에 한때 출판계에서 선인세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한간에선 30억을 호가하리라 예상했답니다. 20억 원 지불할 경우 최소 100만 부 이상을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출혈 경쟁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과열 금전 경쟁이 출판 생태계에 도움이 안 되고 우리나라 작가에 대한 처우와 비교하여 지나치다는 입장입니다. 선례를 보면, <1q84>의 경우 9억 가량이었고 총 200만 부 이상의 성공적인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반면에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구루...>는 16억 정도를 지불했으나 약 50만 부만 판매하였으니 적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현지는 <기사단장 죽이기>가 50만 부 선에서 판매량이 꺾였다는 정보도 있던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다섯 곳의 중대형 출판사가 경쟁에 참여했고 더 큰 금액을 제시한 회사가 있었지만 <1q84>를 200만부 넘게 판매한 이력과 출판사 명망 덕분에 문학동네가 선정되었다는 후문입니다. 우리나라 번역본도 두 권 이상의 시리즈로 나올 예정입니다. 아마 <1q84>와 비슷한 양장본 형태로 제작되어 하루키스트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리라 짐작됩니다.

 

 

고액 선인세 논란은 우리나라 독자의 뜨거운 팬심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루키의 작품에 물려서 손을 안 댄 지가 꽤 되었습니다. 겉으론 무던해 보이지만 고독한 남성 주인공, 몽환적이고 때로는 비현실적인 세계와 주제의식, 작품에 드러나는 작가의 문화적 취향 등 그의 작품에 빠져들게 했던 매력 요소들에 오히려 질렸다고 해야할까요. 그런데 <기사단장 죽이기>는 4년 만에 나온 장편이라 공백기 덕분인지, 주인공이 미스테리한 사건을 겪으며 하루키식 치유를 경험한다는 소개 덕분인지요. 내심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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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4-08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젠 하루키도 할아버지티가 나는군요.
하루키가 우익으로부터 비난을 받을수록
해외에선 더 뜨거운 관심을 받겠죠.
암튼 대단한 작가입니다.

캐모마일 2017-04-08 13:31   좋아요 1 | URL
49년생으로 한국 나이로 일흔에서 한 살 빠지는지라
이제는 할아버지라 해도 어쩔 수가....

그런데도 꾸준히 집필 활동하고
젊은 독자층에게 어필해서 그런지
나이가 잘 가늠이 안 되네요.

북프리쿠키 2017-04-08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망언을 내뱉는 작가 쓰쓰이와는
격이 다릅니다. 일본이 감히 품을 수 없는 작가죠~~

캐모마일 2017-04-08 15:56   좋아요 1 | URL
<시간을 달리는 소녀> 원작 작가 이름이 쓰쓰이 야스타카였군요...망언 소식을 들었을 때 진짜 어이없고 황당하더군요...ㅎㄷㄷ

akardo 2017-04-08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쓰이 같은 노망나고 천박한 작가에 비하면 하루키는 사람됨됨이도 엄청 괜찮은 작가임을 깨달았습니다. 쓰쓰이 그 노인네가 쓴 트윗글 보고 그 천박함과 몰염치함에 치를 떨었죠.

캐모마일 2017-04-08 15:56   좋아요 1 | URL
댓글로 언급하기도 어려운 망언을 서슴없이 하는 작가의 손에서 <시간을 달리는 소녀>같은 작품이 나온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서점가에서 쓰쓰이 작가의 책이 퇴출당하고 있다고 기사에 나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