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룡팔부 1~10 세트 - 전10권
김용 지음, 이정원 옮김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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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에서 신수판 정식완역본 《천룡팔부》가 출간되었다. 신수판은 故 김용 작가가 2005년 최종 개정한 판본을 정확하게 번역했다는 뜻이고, 정식완역본은 그동안 해적판이나 암암리에 번역했던 작품을 정식 판권을 계약하여 완역한 것을 말한다. 해적판에서 출판사, 번역가가 임의로 고친 부분, 개정판 일부만 반영한 판본과 달리 온전히 완역한 번역본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제목인 《천룡팔부》는 불교의 팔부신중(八部神衆)을 말한다.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 다른 신적 존재 혹은 불법에 감화된 악신들이었으나 결국 자신들의 신력으로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호법신으로 포섭되었다. 그중 으뜸인 천신, 용을 비롯한 야차, 건달바, 아수라, 긴나라, 마후라가,가루라를 일컫는다. 소설은 이 여덟 신장의 특징들을 작품 속 인물들에 투사하여 불교적 주제를 부각시킨다. 



《천룡팔부》는 작가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특유의 불교적 주제뿐 아니라 다양한 중국 역사, 철학, 기예 등을 담고 있는 덕분이다. 작품은 중국 북송 시대(北宋, 960년 ~ 1127년)를 배경으로 주인공 소봉, 단예, 허죽 세 인물을 내세워 요, 서하, 토번, 대리, 여진족 사이 벌어진 역사적 갈등과 인문철학을 버무려 무협 장르를 대하역사소설로 승화시켰다. 일각에선 중화권 문화를 가르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한다. 작품에 담긴 역사, 문화적 소양이 깊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 읽는 데 부담이 없어서다.



작품은 대중성과 함께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무협 소설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위대한 문학 작품으로서, 반지의 제왕이라는 기념비적 작품을 남긴 톨킨을 빗대어 고 김용 작가에게 중국의 톨킨, 신필이란 수식어를 부여하였다. 작가를 연구하는 김학(金學)이란 학문이 정식으로 개설되었다. 한동안 중국 교과서에 처음으로 무협 소설이 수록돼 우리나라 뉴스에도 비중있게 다뤄졌는데, 바로 당시 작품이 《천룡팔부》였다.



이번 김영사판 《천룡팔부》는 중국어 전공자이자 다수의 중화 드라마, 영화를 번역한 이정원 번역가가 번역을 했다. 2018년 하반기에 나온 전정은 번역가의 《소오강호》가 독자에게 호평을 받아 부담이 될 만도 했고, 무엇보다 쉽지 않은 대작을 맡아서 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독자평, 여러 후기, 무협 카페 등에선 칭찬 일색이다. 매끄럽게 읽히면서 필요한 한자 단어는 억지로 한글화하지 않되 작가가 일일이 주를 달았다. 마니아층은 물론이고 김용 소설 입문자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김영사의 사조삼부곡, 《소오강호》처럼 세트에 해설 소책자가 동봉돼 있다.



솔직히 리뷰를 남기는 이 시각, 10권 모두를 독파하진 못했고 중반부를 넘어섰다. 흥미로운 스토리와 매끄러운 번역 덕분에 가독성이 좋아서 술술 읽힌다. 반면에 예전 해적판을 읽을 때보다 인물의 묘사가 더욱 눈에 들어오고, 인물들의 은원관계나 업보, 그것을 풀어나가며 겪는 고뇌와 시련이 한층 잘 느껴지고, 작품 속 불교를 비롯한 동양적 세계관과 철학, 문화가 그려진 부분에선 두 번, 세 번 눈이 가고 되새기며 읽고 있다. 그냥 넘기기엔 아까워 일부로 속독을 피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천룡팔부》가 신수판 정식완역본으로 출간된 점에 출판사 관계자, 번역가에게 다시금 감사드린다. 여러 번 드라마, 영화로 리메이크된 작품이라 대중에게 익숙하고, 무협 마니아에겐 필독서임에도 정식완역본이 없었다. 옛 고려원 《영웅문》 시리즈가 7백만 부나 팔린 베스트셀러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해적판 독자의 수가 적지 않다. 이번에 작품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또한 작가는 생전에 당신 작품을 여러 번 고쳐쓰기로 유명했는데, 신수판을 통해 작가가 마지막으로 어떻게 개정했는지 그 궤적을 따라가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일반 독자는 대중성을 가진 무협 장르 소설로 읽어도 되고, 특히 동양권, 중화 문화권, 역사에 관심 많은 독자는 재미 너머 작품성에 감탄하리라 예상한다.



P.S 고 김용 작가가 쓴 또다른 명작 《녹정기》가 김영사에서 정식완역본 발매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청나라 강희제 치세와 반청복명 세력 간의 갈등, 그 사이에서 주인공 위소보가 미천한 출신임에도 뛰어난 잔머리와 신적인 말빨로 일세를 풍미하는 이야기다. 주인공과 스토리가 기존 무협, 작가의 작품과 상당한 차이가 있어 화제가 되었지만 이 또한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독자에겐 즐거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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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각본집 & 스토리보드북 세트 - 전2권
봉준호 지음 / 플레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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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 2020년 제 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외국어 영화상) 4관왕을 달성했다. 아카데미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영화 시상식이다. 자국 시상식이기 때문에 이른바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베니스, 베를린에 들지는 않지만, 세계 영화계에서 미국 헐리우드가 차지하는 지분이 높은만큼 전세계인이 주목하는 영화제이다.

 

기생충은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미술상, 편집상, 국제장편영화상이다. 많은 평론가, 관객이 아시아계 최초 타이틀을 비롯해 기생충의 파란을 예견했다. 2020년 2월 10일 오늘 이 중 4관왕을 달성했다. 사전에 국제장편영화는 수상이 확실시되었다. 감독상, 각본상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다만, 작품상은 유력 후보 중 하나였으나 아카데미는 엄연히 미국의 자국 영화계 시상식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이유로 회의적이었다. 기생충이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자 글로벌 소식을 접하고 놀라는 국민도 많았다. 일례로 우리나라는 더빙보다 자막을 선호하지만 해외 시장은 자막보다 더빙 영화 선호도가 높다는 점이다. 시상식 관계자가 더빙본이 없어서 영화를 못 보고 더빙 작업으로 인해 영화 개봉이 미뤄졌다는 소식을 우리나라에서 들은 적이 거의 없었다. 다른 후보인 미술상, 편집상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기생충은 비영어권 영화의 벽을 넘어섰다. 더욱 놀라는 것도 당연한 정서다.

 

이로써 미친 영화 기생충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받게 되었다. 각종 비평가상과 지역 영화상도 값진 영예다. 다만 세계 3대 영화제 중에 가장 유명한 프랑스 칸, 세계 영화산업의 정점에 있는 미국, 거기서 메이저 중의 메이저로 꼽히는 아카데미를 동시에 석권한 것은 영화사에 남을 업적이다. 자긍심 강한 두 영화제, 시상식이 모두 인정했다. 아마도 2020년 이후 출간, 개정되는 영화학 개론, 영화사의 이해 교과서에서 기생충을 다루지 않기는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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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 : 운명을 읽다 - 기초편 명리 시리즈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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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을 공부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불안한 현실과 미래를 대비함에 있어 명리학이 하나의 나침반이 될 거라는 기대, 내 운명을 남의 카운셀링에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알아보고자 하는 주체성이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생년월일시 네 기둥 여덟 글자(사주팔자)로 이루어진 한 인간의 명식, 하늘의 이치를 풀어서 현실의 길흉화복을 분석하는 학문인 사주명리학이 갈수록 음지에서 양지로 뻗어가고 있다.

 

 

그중에 <강헌 : 명리는 읽다>는 독특한 책이다. 저자가 전업 명리학자가 아니라 음악평론가 강헌 씨다. 물론 명리학 강연과 강의, 저술 활동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명리학자보다 음악평론가란 수식어가 익숙하다. 동양학, 역술 전문 출판사가 아닌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서 유명한 돌베게에서 출간되었고, 2015~2016년에 베스트셀러가 된 점도 특기할 만하다. 대중적으로 <비전 : 사주 정설>이나 낭월 박주현, 김동완 씨의 책이 유명하고 스테디셀러이지만, 이 책처럼 명리학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반향을 일으킨 사례는 드물다.

 

 

게다가 저자는 좌파명리학자를 자청하고, 책의 토대가 된 강의 이름 또한 "강헌의 좌파명리학"이었다. 왜 사주팔자를 다루는 학문에 좌파가 붙는가. 의문을 가진 독자가 많을 것이다.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를 보면, 명리학은 체념의 학문이자 변혁의 학문이라고 했다. 자기 분수를 알고 안분지족하라는 체념의 성격과 동시에,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변혁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기성 사회 체제를 공고히 하는 논리가 되면서도, 또한 혁명의 명분이 되는 아이러니한 학문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밝힌다. 이러한 "명리학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이 남는다. '골방의 명리학'을 '광장의 명리학'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이른바 도사님들만 봐주던 명리학을 스스로도 볼 수 있는 명리학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나의 슬로건은 '만인(萬人)의 명리학자화(命理學者化)'이다."(p.13)이고, "명리학은 인간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데 아주 유용한 학문이며, 많은 사람들이 명리학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재구성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는 더 행복해지고 더 정의로워질 거라는 믿는 마음"(p.26)으로 강의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내용에서도 철학이 드러난다. 예컨대, 사주에서 중요한 개념인 십신(十神) 혹은 육친(六親)을 보는 관점이다. 음양오행이 가진 우주적 논리를 인간 사회에 대입한 것인데, 인간관계를 비롯해서 재물과 관운, 학업운 등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분석하는 도구이다. 남자 사주에서 재물복이 탄탄하면 이성운도 좋다더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다.

 

 

과거엔  사회 규범에 순응하고 조직 사회에 무난하게 적응하여 인정받는 안정적 요소가 중요했다. 십신 중에 식신(食神), 정재(正財), 정관(正官), 정인(正印)으로, 사길신(四吉神)이라 불렸다. 한눈에 봐도 바를 정(正)자를 써서 반듯해 보인다. 상대적으로 개성적이고 활동적이며 기성의 관습과 체제에 맞서는 힘을 사흉신(四凶神)이라 불렀다. 상관(傷官), 편재(偏財>, 편관(偏官), 편인(偏印)이다. 이름부터가 상(傷)하게 하고 기울어진(偏) 힘이다. 특히 관(官) 중심의 과거 사회에선 관운이 입신양명의 주요한 키포인트였다. 대표적으로 정관(正官)이 사랑받았다. 정관을 극하는 상관(傷官)을 꺼렸다.

 

 

하지만 4차 산업, IT 시대, 복잡하고 변화와 다양성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선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 기존의 관습과 사고를 전복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꼭 공적 조직이나 안정적인 조직이 아니라도 전문직화가 가능해졌다. 수많은 크리에이터가 명성과 부를 쌓고 있다. 상관이 재조명받고 무언가 큰 예술적 기량을 펼치기 위한 디딤돌이 되는 시대다. 기존 명리학 서적도 당연히 수차례 지적한 바지만, <명리 : 운명을 읽다>는 저자부터 음악평론가다. 인문학적 소양을 토대로 많은 창작자, 예술가를 만난 덕분인지 논리와 사례가 더욱 탄탄하다. 좌파란 수식어는 이런 관점에서 나오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물론 명리학은 조화를 중시한다. 기운마다 제 역할이 있다. 마냥 많으면 탈이 난다. 부족한 점은 적절히 보완해주고, 지나친 점은 억제해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게 된다. 예전에도 정관이 지나치면 상관으로 억제해줘야 하는 상생상극의 이치는 같았다, 그러나 사흉신보다 사길신이 뚜렷한 사주를 반기는 풍조가 다분했다. 특히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공공연히 드러났다. 현대 사회에 걸맞는 합리성을 통해 구습을 비판한다.

 

 

<명리 : 운명을 읽다>는 저자의 철학이 담긴 명리학서다. 명리 에세이는 아니다. 저자의 소신과 경험담뿐 아니라 명리 개론서로서 설명해야 할 개념들을 이해하기 쉽게 다룬다. 글쓰기가 업인 저자의 장점이다. 주요 개념을 차례로 배우면서 하나씩 실전에 대입해 본다. 각 챕터 끝마다 저자, 고 노무현 대통령, 조용필, 베토벤 네 명의 사주 명식으로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커리큘럼이 재밌다.

 

 

사주는 인간의 운명을 다루기 때문에 이론적 텍스트와 더불어 주변 환경과 상황, 맥락에 따른 콘텍스트가 중요하다. 유명 명리학자들이 사주를 제대로 보려면 다양한 경험과 학문적 소양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역술인도 본인이 잘 알고 많이 만나본 스타일과 업계 종사자 부류에 익숙하다. 익숙한 것이 잘 보인다. 저자의 강점은 무엇일까. 정치, 문화, 예술 분야의 인문학적 내공이다. 평론가로서 쌓은 경험과 많은 인맥이 명리학을 만나 시너지를 낸다.

 

 

기초편으로 개론에 가깝다보니 책을 읽고 바로 사주 통변을 하기는 어렵다. 책 한 권 읽어서 명리학적 문리가 트이기는 불가능하다. 단점으로 짚기엔 무리가 있지만, 이 점을 고려하여 실전 사주 통변을 다룬 심화편, <명리 : 운명을 조율하다>가 세트로 출간되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다만 기존 명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격국론을 넘어간다. 자칫 사주로 귀격과 천격같은 등급을 메긴 후 나아가 사람의 운명에 차등을 정하는 행위로 비춰진다는 논리에서다. 한결같은 소신이 보인다.

序文을 빌려 世上에 告함

나는 萬人의 命理學者化를 꿈꾼다. - P4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은 바로 자신이다.

레프 톨스토이 - P27

모든 사람은 다이아몬드 원석과 같다. 갈고닦으면 누구나 찬란히 빛난다.

토마스 에디슨 - P245

당신 스스로 하지 않으면 누고도 당신의 운명을 바꿔주지 않는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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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yse 2020-02-01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읽어보고 싶네요
 
리바이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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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의 주춧돌 역할을 한 사람들에게 바친다.

 

메리 셀리

브램 스토커

H.P. 러브크래프트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도널드 윈드레이

프리츠 라이버

오거스트 덜리스

셜리 잭슨

로버트 블록

피터 스트라우브

 

그리고 「판이라는 위대한 신」이라는 단편소설로 평생 내 기억에 아로새겨진 아서 매컨.

 

 

스티븐 킹의 장편소설 <리바이벌>은 위의 헌사로 시작한다. 단순히 치하하는 글이 아니라 작품 전체에서 그들의 영향을 의도적으로 드러낸다,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유명한 호러소설 작가들에게 바치는 헌사처럼 그들의 자취를 잘 따라간다는 것.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크툴루 신화처럼 불후의 고전을 사랑하는 독자에겐 선물같은 작품이다. 단점도 마찬가지. 이들 작품을 본 독자는 낯익은 설정과 장면을 자주 접하게 된다.

 

 

1950~60년 즈음 미국의 한 작은 마을 교회. 젊은 목사 부부가 부임해 온다. 목사 부부는 친절하고 열성적이어서 소년, 소녀들의 우상이 된다. 목사는 이공계 출신이었는지 각종 전기 장치를 곧잘 만들었다. 성경에 나오는 이적을 전기 장치로 개발하여 어린 소년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단란하고 멋진 목사 부부에게 어느날 재앙같은 사고가 일어난다. 차사고로 아내와 딸(아들일지도 모른다.)이 처참하게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후로 목사에게 불신이 싹트기 시작하고 급기야 충격적인 내용의 설교를 하여 마을을 뒤집어놓는다. 결국 목사는 마을을 떠난다.

 

 

한편 한 어린 소년은 목사를 유난히 따랐고, 그를 잊지 못한 채 성장한다. 히피 문화를 받아들이고 b급 뮤지션으로 생활하면서 알콜과 약물에 찌든 삶을 살던 중, 목사에게 다시 연락이 온다. 그는 기상천외한 실험에 동참하게 된다.

 

 

작품은 중년이 된 어린 소년의 회고록이다. 스티븐 킹의 <그것>이나 여타 소설처럼 우여곡절 많은 성장기를 보낸다. 유년 시절 젊은 목사를 만나 잊지 못할 체험을 하게 된 계기, 청년기에 히피 문화에 빠져 산 시간, 장년이 되어 목사를 다시 만나면서 겪는 충격적인 초자연적 경험담이 소설의 큰 줄거리다.

 

 

전도유망한 목사가 충격적인 사고를 겪고 변해가는 모습이 인상 깊다. 목사였던 그는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전기 장치를 고안했지만, 사고 이후 그는 신의 존재를 회의하고 초자연적 세계를 탐구하는 매드사이언티스트로 거듭난다. 전기, 전자공학자가 미치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온 몸으로 보여준다,

 

 

앞서 밝혔듯, <리바이벌>은 호러소설 마니아들이 익숙하지만 읽고 싶어하는 요소를 잘 버무렸다. 대신 신선하진 않다. 러브크래프트,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에게 영감을 받은 스티븐 킹에게 초자연적인 경험, 사후세계란 어떤 모습일지 대충 짐작이 간다. 개인적으로 미국 히피 문화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중반부가 지루하고 짜임새 없게 느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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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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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煞) -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는 공포 소설계에서 촉망 받는 박해로 작가의 국산 오컬트 미스터리 공포물이다. 제목인 살(煞)은 민간 신앙에서 흉악한 기운을 일컫는 것으로, 살을 통해 남에게 저주를 내리기도 한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한가인(성수청 무녀 월)이 김수현(왕 훤)에게 살을 쏘았다는 누명을 받고 모진 고문을 당할 때, 엄동설한에 주리를 틀리며 "저는 살을 쏘지 않았습니다." 절규하던 그것이다.

 

 

장르 앞에 굳이 국적을 붙인 이유는 우리나라 무속 신앙을 소재로 하여 현지화된 공포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영화로 치면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 <사바하>나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떠오른다. 국적 있는 공포물은 현지인에겐 살갖에 와닿는 소름을, 외국인에겐 신선한 충격을 준다. 어중간한 세계화보다 목적 뚜렷한 현지화가 더 경쟁력 있다.

 

 

<살(煞) - 피할 수 없는 상갓집의 저주>를 읽은지 1년이 넘었다. 독특한 설정과 스토리 덕분에 잊을만하면 가끔식 생각이 나는 작품이라 결국 리뷰를 쓴다. 초등학교 교사 조윤식은 동료 여교사 영희를 사랑하고 결혼까지 게획하지만 걸림돌이 있다. 교도소에서 출감한 새엄마 정금옥이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하필 윤식이 결혼을 염두해 둔 시점에서 석방되었다. 영희는 윤식에게 넌지시 금옥을 제거할 방법을 알려주고 윤식은 영희가 소개시켜 준 무당이 시키는대로 상갓집을 오가며 살을 날릴 준비를 한다. 한편, 소도시에서 연이어 일어나는 죽음과 기이한 현상에 의혹을 품은 형사 종환은 미스터리를 파헤지기 시작한다.  

 

 

상갓집을 전전하며 새엄마를 죽이기 위한 살을 준비하는 윤식, 그를 부추기는 영희와 미스터리한 주변 인물들, 때마침 소도시에서 연이어 들리는 부고 소식과 새엄마 금옥의 발작 증세, 이를 파헤치는 종환의 스토리가 무속 신앙과 살을 소재로 맞물려 돌아간다. 우리나라에서 무속 신앙이 가지는 위치가 아이러니해서 설정이 더 흥미롭다. 골목 골목 다녀보면 신점 상담소가 많고 내 주변엔 무속인 팔자를 타고났다는 친척과 이웃이 한 명쯤은 꼭 있다. 하지만 무속 신앙하면 일단 학을 떼는 사람도 많다. 일상에서 의지하고 당연한듯이 소재거리로 삼으면서, 한편으론 금기시하고 경계한다. 친근하지만 멀다. 그래서 미스터리하고 무섭다.

 

 

후반부로 갈수록 서서히 살의 정체가 드러나고 막바지엔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평이 엇갈린다. 드디어 미스터리와 복선이 풀리고 스케일이 커지며 거대한 공포가 시작되니 흥미진진했다는 입장이 있는 반면에, 미시적이고 알 수 없는 공포를 끝까지 끌고 나가서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살려나갔다면 전개가 더 세련됐으리란 평가가 있다 보여지지 않아 더욱 두렵던 미지의 것들이 일순간에 거대한 형체로 뚜렷이 나타나니 현실감과 두려움의 여지를 오히려 반감시켰다고 볼 수 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니 참고 바란다.

 

 

우리나라에 오컬트 매니아, 공포물 매니아층이 의외로 두텁다. <퇴마록>이 천만 부 이상 팔렸고, 스티븐 킹 작가의 소설은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퇴마나 크툴루 신화를 소재로 한 영화도 흥행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창작 현실은 개척할 점이 많다는 것이 중론이다. 장르 소설에 대한 편견도 한 몫 거든다. 양질의 한국형 오컬트물을 더 갈망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사바하> 정재현 감독이 우리나라 영화계의 오컬트 거장이 되길 바라는 관객이 많은 것처럼, 소설 독자라면 박해로 작가를 기대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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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1-24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캐모마일님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새해복많이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