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눈에 보이는 상황이 열세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열세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언제든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 - P56

협상을 잘하기 위해서는 겉으로 똑같아 보이는 협상 대상이라도 상대방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 P104

성공적인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가치만 생각하고 협상에 임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가질 수 있는 가치를생각하여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가치는 주관적일 뿐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다. 협상을 진행하면서 지속적으로 협상 대상의 가치를 상대방에게 심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P1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완벽함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는 하지만 결코 완벽함을 이룰 수 없음또한 우리의 운명이기도 하다. - P23

협상이란 싸움이 아니라 서로 힘을 합하여 해결점을 찾는 것이다. 이 평범한 원리를 모르고 협상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서로 갈데까지 가보자는 파국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다분하다. 파국의 결과는 너도 손해, 나도 손해인 결국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 P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보의 확산이 꼭 사회의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을 근거는 없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15세기 중반 활판인쇄술을 발명하자 그 뒤를 이어 종교혁명과 종교전쟁이 일어났다. 그것은 인쇄물이 갑자기 보급되면서 종교적 논쟁을 촉발하고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고충들을 일깨웠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정보의 확산은 새로운 사회적 충격으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일치할 수 없는 새롭고도 복잡한 이슈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됨에 따라 새로운 분열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 P24

전자통신은 직접적인 대면을 피할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우리가 순수한 전략과 기만이라는 추상적 영역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별다른 심리적 부담 없이 훨씬 더 쉽게 잔혹행위를 
실행할 수 있게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부분적으로는 산업사회의 기술이 독일의 가해자들을 현장으로부터 분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 P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세기 영국의 지상 과제는 아시아의 은 경제에 승리하는 것이었다. 영국에는 은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영국은 전 세계적으로 은본위제를 금본위제로 전환하고 파운드 지폐를 세계 통화로 만드는 데 혈안이 되었다. - P146

1870년대 이후 금과 자국 지폐의 무제한 교환을 보증하는 나라가 늘면서, 세계는 은화 시대에서 금본위제하의 지폐 시대로 전환했다. - P151

영국은 세계 각지에 투자한 자금에서 나오는 이자·배당금 수입, 인도나 동아시아 국가, 오스만 제국과의 무역에서 발생한 흑자로 유럽 및 미국과의 무역에서 발생한 적자를 메우는 방식으로 국제 수지의 균형을 유지했다. 이를 통해 런던이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는, 돈과 물자의 흐름이 완성되었다. - P154

명·청 시대에는 신대륙에서 들어와 축적되어 있던 막대한 양의 은을 조세 납부에 이용했다. 농민이 곡물을 팔아 받은 은을 조세로 내는 시스템으로, 은은 제국 통치의 근간이었다.
이 근간을 뒤흔든 것이 영국과 미국 상인에 의한 아편 무역이다. 아편의 대가로 많은 은이 국외로 유출된 탓에 은값이 급등했고 이로 인해 농민들의 생활은 점차 궁핍해졌다.
청나라는 민간에서 사용하던 동전이 아니라 제국 통치를 지탱하던 은값의 급등으로 쇠망에 이른 것이다. - P156

1861년에 발발한 남북 전쟁을 ‘노예 해방 전쟁‘ 이라며,
북부의 전쟁 프로파간다를 그대로 기술한 책이 많다.
하지만 실제 남북 전쟁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보호관세를 계속 유지하려는 미합중국에서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남부의 11개 주가 독립하려 한 전쟁이었다. - P161

전쟁 중이던 1862년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서부의 여러 주를 아군으로 만들기 위해, 그들이 관심을 보일만 한 홈스테드법Homestead Act(자작농 창설법)을 내놓았다. 5년간 서부 개척에 힘쓴 21세 이상의 남성 호주에게 등기 비용만 부담하면 20만 평의 국유지를 분양한다는 법률이었으므로, 미국뿐 아니라 궁핍한 유럽인들에게도 엄청난 환영을 받았다.
1870~1890년대에 걸쳐서 유럽은 장기 불황 상태였던 탓에 미국으로 건너가 몇 년만 고생하면 대지주가 될 수 있다는 소문이 아메리칸 드림이 되어 퍼져나갔다. 남북 전쟁 후유럽 출신 이민자가 대거 몰려오면서 25년 만에 서부의 미개척지는 자취를 감추었다. 미국이 변한 것이다.
20년간 계속된 유럽의 대불황 시대에 뜻밖에도 미국 서부가 유럽의 실업자와 과잉 자본의 수용처가 되어 단기간에 경이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 P168

제1차 세계대전은 일반 시민을 끌어들인 ‘총력전‘이 되었고, 막대한 전쟁 비용이 부담으로 작용해 ‘유럽의 시대‘는 급격히 붕괴했다. 파운드 지폐가 세계 경제를 견인하던 시대 또한 국채의 과잉 발행으로 영국 재정이 파탄을 맞으면서 무너져갔다.
제1차 세계대전 중 공장을 풀가동해 군수물자를 유럽에 수출함으로써 운 좋게 세계 최대 채권국으로 급부상한 나라가 바로 신흥국 미국이다. 금이 무서운 기세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유럽의 통화와 달리 금과 태환할 의무가 없는 달러(연방준비권)가 점차 세계 통화로 떠올랐다. - P179

유럽 국가 중에서는 독일의 경제 상황이 심각했다. 대공황으로 위기에 빠진 미국 은행이 자본을 회수한 탓에, 4년간 공장의 60퍼센트가 도산했다. 1932년에는 실업률이 약40퍼센트, 실업자는 600만 명 이상이라는 절망적인 상태가되었다. 하지만 의회는 효과적인 정책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으므로, 희망을 잃은 대중과 몰락한 중산계급은 나치스Nazis 에서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 P193

통화 발행량이 늘면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기 마련이지만 빈틈없는 월가는 ‘통화의 이중구조‘를 구축함으로써 인플레이션에 대처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돈의 실제 가치는 점차 감소하는 반면, 자산가치는 증가한다. 따라서 자금의 흐름을 ‘돈으로 돈을 불리는 시스템‘인 ‘투자‘ 쪽으로 돌려 인플레이션을 상쇄하려는 계획이었다.
그 결과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보유해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격차가 구조적으로 점차 확대되었다.  - P211

1980년대에 미국은 이 기술을 폭넓게 응용해,
주택 담보 대출, 자동차 담보 대출, 신용카드 채권 등을 바탕으로 다양한 종류의 증권을 만들어 수많은 투자 기회를창출해냈다. 돈을 불리는 도구와 기회가 단숨에 늘어난 것이다.
금융 상품과 금융 파생 상품이 잇달아 만들어졌고, 물품매매에 사용되는 통화량을 훨씬 초과하는 통화가 마치 게임을 즐기듯이 통화, 상품, 증권의 선물거래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여기에 인터넷까지 보급되면서 세계적 규모의 대금융 시대가 막을 올렸다. - P212

금융으로 돈을 벌려면 밑천이 필요하다. 이런 까닭에 미국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달러 약세에서 달러 강세 쪽으로 방향키를 전환하고, 높은 국채 이자로 전 세계에서 자금을 끌어모았다. 그러자 급격하게 달러 환율이 폭등해 1995년에 달러당 79엔이었던 엔-달러 환율은 3년 후에는 147엔으로 치솟았다. 이로 인해 호경기에 취해 있던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의 경제는 재난과도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바로 아시아 금융 위기다. - P220

하지만 최근에는 채굴 전용 대형 컴퓨터설비를 갖추고 24시간 풀가동하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의
‘채굴 농장mining farm‘ 13개 사가 비트코인의 약 80퍼센트를 생산한다고 한다. 과점이 진행되고 있으므로 비트코인은
‘민주적 화폐‘ 로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슬로건은 이미 무너진 셈이다. - P2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 왕조를 이어받은 청 왕조1616~1912도 지정은이라는 은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하지만 징세 시스템이 세계 시장과 연동된 은에 의존하게 된 것은 제국의 지배력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훗날 아편 전쟁 전후에 발생한 은의 대량 유출과 이에 따른 은값 폭등으로 청나라가 맥없이 붕괴한 사건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 P98

멕시코 달러는 세계 최초의 세계 은화로서 유럽과 아시아대륙에 널리 유통되었다. 한 예로, 태평양을 횡단해 필리핀 마닐라로 운반된 멕시코 달러는 비단, 도자기와 교환되어 명나라에 대량으로 유입되었고, 평량 화폐(거래할 때마다 일일이 감정해야 하는 화폐)가 되어, ‘원‘ 혹은 ‘묵은‘이라 불렸다.
이 명칭을 바탕으로 한국의 원(둥글다는 뜻), 중국의 위안(원과 똑같은 음. 글자가 복잡해 ‘元‘으로 간략화), 일본의 엔(원과 똑같은 뜻)이란 통화의 이름이 탄생했다. 동아시아의 통화명은 공통으로 멕시코 달러라는 주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달러dollar 의 어원은 16세기 이후 유럽의 표준 은화였던 보헤미아산 대형 ‘탈러 은화‘ 다. 탈러 thaler란 은이 채굴되는 ‘골짜기‘란 뜻이다. - P99

영국의 튜더 왕조House of Tudor 1485~1603에서는 바이킹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략선Privateer‘ 이 크게 활약했다.
사략선은 국왕으로부터 적국의 배를 빼앗을 권리를 인정받은 일종의 해적선인데, 이 배가 은을 운반하기 위해 대서양을 왕래하던 스페인 선박을 습격한 것이다. 대형선, 무기,
승조원, 자금, 장물 시장, 후원자(포로가 됐을 때는 석방을 위해 노력) 등으로 구성된 사략선 조직은 고수익이 기대되는 합법적인 해적이었다. - P110

영국이 세계 역사상 최대 제국이었던 19세기에는 특정 민간 상인이 국가로부터 위임을 받아 지폐를 발행했다. 현재 우리의 생각으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프랑스의 중앙은행, 미국의 연방준비은행 FRB 등은 모두 민간 은행이다. 돈의 발행권을 특정 상인(은행)이 쥐고 있고, 국가는 여기에 법화로서의 유통력을 보증하는 시대가 오랜 기간 이어졌던 것이다. - P119

18세기 초 영국에서는 조폐국 장관이었던 아이작 뉴턴에 의해 금본위제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 P122

프랑스 혁명은 본래 정부의 재정난에서 비롯되었다. 혁명 직후, 정부는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국유화된 교회의 토지와 재산을 담보로 아시냐Assignat(이자가 5퍼센트 붙은 채권)를 발행했다.
아시나는 교회의 재산을 담보로 하는 일종의 약속어음으로, 혁명 때 100만 명을 무장시키는 과정에서 발행량이 늘어 실질적으로는 지폐로 바뀌었다. 하지만 총재 정부가 혁명을 수습해 통제되었던 경제가 풀리자 총재 정부는 아시냐를 과도하게 계속해서 찍어냈다. 이 일이 한몫해 1795년에는 세계 최초로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결국 아시냐는 액면가의 고작 1,000분의 3의 가치밖에 안 되는 완전한 휴지 조각으로 변했고, 이듬해에는 발행이 중지되었다. - P1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