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제스 월터 지음, 오세원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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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 제스 월터 장편 소설, 오세원 옮김 

<타임>지 선정 2009년 10대 소설

 

여러 번 웃었고, 한 두 차례 울었다. 엉엉 운 건 아니지만 울긴 울었다. 

지은이 제스 월터는 내 기준으로 ‘나 저 인간 쫌 알 거 같어’에 속하는 사람이다. 만나고 싶다. 만나서 한국어로 대화하고 싶다. 그가 좀 힘들어 하겠지. 영어로 하자면 뭐 까짓거 못할 것도 없다. 헬로. 제스 월터 양반. 왓? 아하. 양반? 양반 민즈 ... 엄... 엄...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고 싶은 사람은 내게 연락하시라.

1억부터 50억 사이에서 견적 내드릴 테니.

물론 내가 메가폰을 잡을 것이다.

어허, 이거 왜 이러셔 이래 뵈도...

 

< 나의 필모그래피 >

참은 방귀(1995년, 연출) - 데뷔작. 생리 현상의 억압이 어떻게 사회 억압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코믹한 고찰. 정작 관객들은 코믹도 고찰도 건질 수 없었다는 반응. 당시의 여주인공 H양과 3개월 교제하다가 위장병을 얻고 헤어짐.

 

국산 슈퍼맨(1997년, 연출) - 슈퍼맨이 요람에 실려 지구로 향하던 중, 이것 참, 운석과 접촉 사고를 일으켜 미국의 평화로운 농가에 떨어지지 못하고 대한민국의 지랄같은 가정에 떨어진다. 한국 전쟁 직후 초능력자가 근현대사의 굴레 속에서 어떻게 무능력자가 되어가는지에 대한 코믹한 고찰. 대체로, 고찰은 몰라도 코믹은 건졌다는 반응. 당시의 슈퍼맨 의상 중 망토만 빼고 요즘도 입고 다님.

 

데프 카사노바(1999년, 시나리오) - 청각 장애우들의 성생활을 진지하게 그린 에로물. 그들이 섹스할 때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6개월 동안 취재함. 결국 ‘좀 더’, ‘세게’, ‘그래 거기’, ‘벌써?’ 등의 대화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라는 결론을 얻고, 그에 힘입어 장장 150분 분량의 시나리오를 단숨에 써 내려감. 아무래도 민감한 이야기라며 모두들 투자를 꺼림. 우리 동네 ‘쌍문 쌀‧과일’ 사장님만이 본인 취향이라시면서 8kg 짜리 쌀 두 포대를 투자함. 제작이 무산 되어서 돌려드리려고 했으나, 시나리오를 읽은 것 만으로도 그 정도 가치는 했다며 한사코 거절하셨음. 이듬해 이사를 갔으나 지금도 곡류와 청과물은 쌍문 4동에 가서 구입하고 있다. 이후로 ‘가족 오랄관’, ‘헨젤과 그랬대’, ‘라이언 일병과 하기’, ‘월레스 위엔 그로밋’, ‘혀준’ 등의 시나리오를 씀.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음.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친구 나종진(2005년, 연출) - 국산 슈퍼맨으로 전 재산(1600만원 정도)을 날리고 8년 동안 절치부심하다가 만든 재기작.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은 나종진과 기억 상실증에 걸린 여주인공 심재숙. 그들의 애처로운 사랑이, 시한부도 아니고 기억도 좀체 상실하지 않는 인간들에게 어떻게 조롱당하는지에 대한 애절한 고찰. 코믹했다는 반응. 노린 건 ‘애절’이었는데. 그래서 재기했냐고? 재기했다면 지금 내가 이 모양... 후우.... 결국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작품이 되어버린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친구 나종진’.

 

그 외에, <수안보 가는 길>, <마크레빈슨 코리아> 등등이 있지만 아직은 여러 관계자들과 대외비 약속이 걸려 있는 터여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

...........

 

그렇다고 진짜 연락하신다 또.

 

* 데프 카사노바에서 언급한 '그 이후로 썼다는' 시나리오 제목들(참 애틋도 하죠?)은 제가 지어낸 제목들이 아닙니다. 천재적인 작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질투와 존경을 담아 인용했습니다. 여러 번 웃고 한두 차례 울었다는 내용만 빼면 그 외의 모든 것도 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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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눕 - 상대를 꿰뚫어보는 힘
샘 고슬링 지음, 김선아 옮김, 황상민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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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눕 - 샘 고슬링

 

이 책에 나오는 얘기. 자기 성격을 파악해 보란다. 까짓거 해 보았지.

 

이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란다.

완전히 부정한다 1점

다소 부정한다    2점

약간 부정한다    3점

동의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4점

약간 동의한다    5점

다소 동의한다    6점

완전히 동의한다 7점

 

매겨보았지.

내 생각에 나는 :

1. 외향적이며 열정적이다 - 1점

2. 비판적이며 화를 잘 낸다 - 1점

3. 믿을 만하며 자기 관리를 잘한다 - 5점

4. 불안하며 쉽게 우울해진다 - 1점

5. 새로운 경험에 개방적이며 복잡하다 - 7점

6. 수줍어하며 과묵하다 - 2점

7. 동정심이 많으며 따뜻하다 - 5점

8. 계획성이 없으며 부주의하다 - 3점

9. 침착하며 감정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 6점

10. 전통적이며 창의성이 없다 - 2점

 

계산법은 이렇다네.

개방성 = (8-10문항의 점수) + 5문항의 점수  : 13점

성실성 = (8-8문항의 점수) + 3문항의 점수   : 8점

외향성 = (8-6문항의 점수) + 1문항의 점수   : 7점

동조성 = (8-2문항의 점수) + 7문항의 점수   : 12점

신경성 = (8-9문항의 점수) + 4문항의 점수   : 6점

 

 

평균 성격 분포가 있기에 내 것을 비교해 보았지.

5대 성격 유형      여성       남성         조르그

  개방성             10.8        10.7            13

  성실성             11.0        10.4             8

  외향성              9.1         8.5              7

  동조성             10.6        10.1            12

  신경성              6.7          5.7             6

 

평균보다 나은 것도 있고 평균보다 못한 것도 있다.

저자의 분류에 따르면 나는 '느긋하고 긍정적인 유형'과 '예민하고 감상적인 유형' 중간 쯤에 속한다.

느긋할 때도, 감상적일 때도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매긴 점수를 보고 누군가는 '웃기시네' 하시는 분 많을 줄 안다.

스스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니가 비판적이지 않다고?"

"다만 권력과 이기심과 권모술수와 상술과 미신과 아집 등에게만 비판적이었을 뿐"

"믿을 만하며 자기 관리를 잘한다고?"

"정직하게 살아 왔으며, 밑바닥까지 떨어질 위기 혹은 유혹을 잘 견딘 것에 대한 평가일 뿐"

"새로운 경험에 개방적이지 않잖아 너."

"길과 음식에 관한 것 외엔 모두 그렇다고 나는 보고 있어."

"동정심이 많으며 따뜻하다고? 아닌데..."

"이미 말한 바, 권력과 이기심과 권모술수와 상술과 미신과 아집 등을 제외하면 대체로 따뜻하게 대했다고 생각해."

"좋아, 다른 건 인정한다고 해도, 네가 화를 잘 안 낸다고? 나한테 매일 같이 퍼붓던 건 화가 아니고 뭔데"

"미안해, 너한테만 좀 심했던 것 같아. 널 갖기 위해 점점 권력과 이기심과 권모술수와 상술과 미신과 아집 등에 집착하게 되어가는 내가 싫어서 그랬어. 미안해, 미안해."

"뭐 그렇게 사과할 것까지야... 근데 너 내가 누군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냐?"

"뭐? 너 H 아냐?"

"거봐. 나 J거든."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

"그건 알 거 없고. 내가 늘 그랬잖아. 넌 좀더 성실하고 외향적인 사람으로 변해야 한다고."

"그건 Y가 해주던 얘긴데..."

"아차!"

"어쨌든 그 얘기엔 동의해. 좀더 성실하고 외향적인 사람으로 변해야 한다는 거. 잘 지내라."

"너도."

 

 

 

아직 3분의 1밖에 못 읽었다.

버스를 타고 충주를 왕복하면 대충 다 읽지 않겠나 싶다.

책 읽을 시간과 돈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더불어 당구와 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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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사랑학
목수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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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든 행위에서 상거래 이상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 사람들에겐 서늘한 야유가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인류가 저지른 가장 참혹한 사건들은 불복종이 아니라, 복종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나는 여기에 한마디 더 덧붙인다. 인류가 이룬 가장 위대한 해방은 복종이 아니라 불복종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그리하여 성은 우리가 그것을 원하는 모든 순간에 금지되었다. 결혼이라는 의식의 틀 안에서만, 다시 말하면 우리가 그것을 가장 흥미 없어 하는 조건 안에서만 허락된다.

결과적으로 보면 종교는 인간이 창조해 낸 모든 것들 중에 가장 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가장 많은 불행을 생산해 낸, 최악의 발명품이다.

결국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건 여자의 정조뿐인 것이다. 외삼촌, 이모는 가짜가 없지만, 고모, 큰아빠, 작은아빠들 가운데는 가짜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대체로 외가 친척들과 가까운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가장 유명한 간통범은 수천만원의 카드빚을 져 가면서 풍요로운 성생활을 즐기는 남편 옆에서 섹스리스로 비참한 결혼생활을 이어 가다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던 사실을 떳떳이 인정했던 한 여배우였다.

인간의 타고난 마술적 능력인 직관과 자연에 조응하는 명민한 본능은, 그들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정과 사회 전반에 무수히 장전된 규제의 폭격에 의해 훼손되고 파괴된다.

우체국에 가 봐도 뒷자리에 앉아 부채질하고 있는 아저씨들은 안 입지만, 앞에 앉아 분주하게 우편물을 접수하는 언니들은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남행원들은 안 입는다. (중략) 유니폼을 입으라고 명하는 건 당신의 자아를 드러내지 말라고 명하는 것이다.

일 못하는 사람보다 잘난 척하는 사람을 더 못 견뎌 하는 우리 사회의 특징은 이렇게 제도 안에 들어와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전방위에 걸쳐서 유니폼을 강권한다. (중략) 유니폼은 우리의 사고를 매우 간단하게 요리한다. 유니폼이 늘어나고 있는 사회는(심지어는 붉은 악마의 그 붉은 셔츠마저도) 그래서 위험하다.

자신의 생에 대해서 완전한 주체인 동시에 미와 진리와 사랑에 대해서 열려 있고, 끊임없이 세상에 대해 탐구하며, 예술에 대한 감수성도 가진 그런 남자. 자신이 걸친 옷들과 걸음걸이, 그가 머릿속에 담고 있는 사고가 하나의 톤으로, 자신만의 색깔로 정렬되는 사람. 세상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강인하면서도 다름을 충분히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유연한 그런 인간.

스킨십을 가능한 한 많은 인류에게 건네시길, 특히 아이들에게. 인류를 구원하는 아주 쉽고 달콤한 방법이다.

68혁명은 여학생 기숙사에 남학생이 드나들 수 없게 한 대학기숙사의 반자연적인 규율로 인해 발발하였다.

유교는 오늘을 사는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선택한 적이 없으나, 여전히 그 누구도 그 틀을 벗어나서는 사회 속에서 정상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관습과 이데올로기의 감옥이다.

세상엔 언제나 저항보다 적응을 택하는 사람이 많은 법이니.

현 정부가 밀어붙이는 이 과도한 삽질에서는 여성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근력으로 성행위를 행하는 남성의 일방성과 가학성의 얼굴이 드러난다.

행복은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이 내게 보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머쥐고 발견해 내는 습관에서 온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으면서 모두가 아는 척하다가 가장 적게 피임하고(오이시디 국가 중 콘돔 사용률 최하) 가장 많이 낙태하는 사회가 한국사회다.

성을 긍정하기 위해선, 긍정적인 성을 경험하는 것이 우선이다.

김수영은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 사랑을 발견하겠다”고 노래했다. 산다는 행위에 우리가 마지막까지 희망을 걸 이유는 오직 사랑에서 발견된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을 읽고 반해서 곧이어 읽은 책이다. 

이 사람이 책을 또 쓰면 또 읽게 될 것이다(우선 한두 권, 그 이상은 나도 몰라).

목수정 씨는 말을 너무 막 하신다.

그런데, 막 해도 된다. 대체로 옳거나, 어쨌든 옳게 기능하니까(현재로서는).

말을 막 해도 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요즘 진보랍시고 세상을 바꾸겠다면서도 제 인격 다듬을 줄 모르는 이들이 종종 눈에 띄는데

목수정 씨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의 인격 얘기할 때가 아닌데...)

남자도 읽고, 여자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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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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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인터넷 서점에서 반값으로 판다기에 덥썩 사버렸다.
점점 거대해지는 인터넷 서점들의 권력과 횡포도 문제고 나도 문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좀 울적해진다.
읽는 동안 꽤 즐겁고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울적함을 조금 덜었다.
요즘도 이따금 스크린 쿼터 문제에 대해 생각한다.
당시의 나는 기이한 논리를 내세웠다.
"스크린 쿼터보다는 한복 쿼터가 더 시급해. 주에 이틀은 한복을 입게 해야 해. 포목점의 생존권은 누가 보장해? 그리고 국악 쿼터는?" 변명하자면 거의 모든 사안에 적절한 보호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였지만, 운동을 실천하는 이들을 모욕하고 상처 준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홍대 근처에서 돼지 껍데기를 먹으며 논쟁하던 친구 한 명 외에 아무도 위의 발언을 모른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진심으로 반성한다. 멍청해서 그랬다. 나아지고 있다.
똑똑한 사람들이 쓴 책들을 많이 읽으려고 애쓴다.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이 책, 똑똑한 사람이 쓴 책이다. (어, 비아냥 아닌데)

자본의 집중과 소비를 향해서만 거대한 관용의 10차선 도로를 내주는 이 사회에서, 한 뼘의 자유를 차지하려고 투사가 되는 것보다 ‘고객님’으로서의 존재로 충실히 지내는 것은 쉽고 편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 나로서는 투사가 되는 것도 어렵고, '반가운 고객님'이 되기도 어렵다. 이거 원 진퇴양난이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기보다는 손쉽게 믿고 맹목적으로 나아가는 대중의 비합리적이고 도착적인 욕망이 파시즘적인 정치 지도자를 불러왔다고 빌헬름 라이히는 지적한다. 프랑스와 한국에서 각각 사르코지와 이명박이라는 인물들이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된 지금의 상황을 이처럼 잘 설명하는 논리가 있을까.- '문제의 본질' 얘기만 나오면 거만해지려고 하는 나의 내면이 문제의 본질이다. 나는 요새 그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적잖이 미움을 사고 있다. 걱정이다. 그건 그렇고, 내가 만약 출판사를 차리게 된다면 이런 이름 어떨까?  미움산책.

실로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세 가지가 바로 사랑과 노동과 지식인 것을!- 셋다 나와 거리가 꽤 있다. 하려고 해도, 즐기려고 해도, 가지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거 세 가지.

폭력은 여자보다 월등히 우월한 남자의 근력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의식에서 나온다.- 남자 얘기만 나오면 창피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안 그런 남자도 있을 수 있을 가능성이 없지 않을 수 있을 공산이 그리 작지 않을 수도 있을 법 할 수도..."

외환위기가 들이닥치자 이 사회는 염치와 위엄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본 앞에 무릎 꿇고 말았다.- 정답은 대체로 간단 명료하다. 이런 통찰력은 어디에서 구입하셨을까 목수정씨. (구입이라니. 그러니까 멍청하단 소릴 듣지)

기껏해야 자본의 제단에 머리나 조아리는 존재들이 여성들 앞에서는 기어이 군림하려 드는 현상... 됐다.
- 또 남자 얘기. 백번을 해도 때마다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는 거 압니다. (진짜? / 쉿, 아직 멀었지만 일단은 안다고 해. 얼른 머리부터 조아리고. 어, 비아냥 아닌데)

시민연대계약- 목수정씨가 남편 희완씨와 혼인신고 대신 하신 건데, 자세히 설명하자면 쫌 길어. 아니 계약서가 길다는 게 아니고. 아무튼 꽤 근사한 계약서란 거만 알고 궁금하면 체게바라, 아니 책사봐라. 

하지만 엄마는 ‘이웃 아줌마들’이라는 가장 무서운 벽을 아직 못 넘고 계셨던 것이다.- 프랑스 남자 사이에서 혼외의 자녀를 갖게 된 딸을 둔 어머니의 두려움. 그 실체는 다른 어느 것도 아닌 '이웃 아줌마들'. 내가 덧붙여야 하는 얘기는 "안 그런 아줌마도 있을 수 있을 가능.........................." 

 희완은 웃을 때 100%로 웃는 것처럼 사랑을 할 때도 마음 밑바닥까지 다 바쳐 사랑한다. 그는 아침에 헤어질 때면 늘 다시 못 볼 사람처럼, 저녁에 만날 때면 10년 만에 재회한 것처럼 뜨겁게 포옹하는 남자다.
- 살아오면서 아무 것에도 누구에게도 마음 밑바닥까지 다 바쳐 사랑한 적이 없다. 결과는 현재의 상황이 적나라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것은 태도의 문제라기보다 능력의 문제라고 나는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삶이 남아 있고 스스로 개전의 정을 품고 있으니 좋아질 것이다. (너무 늦은 거 아냐? / 안 늦었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취향이란 많은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처럼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출신계급과 교육수준, 집안 환경 등이 촘촘히 얽혀서 구조적으로 생산되고 똑 확산된다. 개인의 의지로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유기적 습성이다.- 그래 그래. 맞어 맞어. 나도 저렇게 생각했다니까. / 근데 넌 왜 재즈 음악을 듣니? / 그거야 뻔 하지 나의 출신계급과 교육수준과 집안 환경 등에서 유발 된 유기적 습성이 뭐 이 정도란 걸 어필하고 싶은 거지. 그러니까 사기지. / 그럼 진실은? / 김완선이나 본조비나 아바 등등)

이른바 명품 취향이 다른 계층과 서둘러 경계를 긋고자 할 때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 가장 손쉬운 선택이기도 하지. 나 지금 제이빔 셔츠와 쬬다쉬 청바지와 옴파로스 벨트와 무등 양말과 독립문 속옷과 까발로 운동화를 신고 있지. 게다가 길에서 음악을 들을 땐 마이마이 카세트 집에서 음악을 들을 땐 태광 에로이카까지. 나, 된장남?

 

 "사랑은 학문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것을 연구해서 모든 인류가 더 많이 더 만족스럽게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
- 이거야말로 본인이 사춘기 시절부터 주창해오던 바, 사랑에 얽힌 여러 불행들을 극복하는 방법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 당연한 것이, 당시의 나는 근의 공식이나 묘청의 난보다는 부모님이 덜 싸우시고 옆집 소영이가 날 그만 쫓아다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훨씬 절실했으니까. (어, 뻥 아닌데)

중년 남성의 가슴 콩닥거리는 연애는 차단되어 있지만, 매춘은 무한히 허락되어 있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부추기는 사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흥미로운 관계 맺기인 연애를 특정 시기, 특정 연령층의 전유물로 규정하고 비좁은 김밥의 틀 속에 밀어 넣어버린 사회. 어쩔 수 없이 옆구리로 삐져나오는 비명과 분출되는 욕구들은 모두 어두운 음지 속에 처넣어 버리는 사회. 이 숨 막히는 사회적 모순을 비집고 우리가 건강하고 싱그러운 연애를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 글쎄요.

사랑은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기쁨과 똑같은 크기의 절망이나 상처를 반드시 내포하고 있다. 사랑이 내게 안겨주는 희열의 능선이 가파르면 가파를수록 그 뒤에 필수적으로 따라다니는 절망의 계곡은 음습하고 깊다.
- 그러게요.

아직 그 광적인 에너지를 체험하지 못했다면, 당신의 겨드랑이 밑으로 천사의 날개가 돋아나 연인과 함께 천상을 날아다니며 공기 중에 퍼져 있는 행복의 입자를 혀끝으로 맛보지 못했다면, 당신은 사랑을 제대로 체험해보지 않은 것이다.
- 그러니까요.

결혼과 이혼 사이에는 우리가 찾고자만 한다면, 또 다른 대안들이 널려있다.
- 그렇죠?

지구라는 이 넗은 별에서 쉼없이 경계를 지우며 살아갈 터이다.
- 지지합니다. 

 

확신과 자신감에 차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난 부끄러우면서도 조금 쓸쓸해진다.
나는 그것도 일종의 소유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진 자도 있고 못 가진 자도 있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그것 역시 각자의 환경에 영향을 받은 유기적인 습성일 것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건 움직여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신중함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동안 열심히 해보라는 충고엔 '집중력 핑계'
움직여 보라는 충고엔 '길눈이 어둡다는 핑계'를 대며 살아왔다.
언젠가부터는 저 두 핸디캡을 장식품으로 승화하려고까지 하기도 했다(기가 막혀).
이럴 때 마다 늘 떠올리는 시가 있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나는 너무 성하다. - 이정록

자, 감상에 젖지 말고,
결론, 늦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
(무엇을? / 그게, 그러니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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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2011-01-28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엊그제 한 삼일동안 이 책을 읽고 참 많이 생각하게 하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한 서평 잘 보았습니다. 항상 실천이 문제지요. 적어도 저자는 실천을 하면서 사는 당찬이라 부럽기도 했구요.^^;

조르그 2011-02-07 10:5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참 좋은 책입니다.
공감하는 글을 보게 되어 기쁩니다. ^^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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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니체 선생께서 이런 말씀하셨다.
"신은 죽었다."
하늘에서 당구를 치고 계시던 신께서 우라와마시를 돌리시려다 그 소리를 듣고는 삑사리를 내셨다.
노여운 표정으로 이렇게 대꾸하셨다.
"니체, 너 나한테 죽었다."
그 당시 당구는 물리신 걸로 알려져 있다.
누구랑 쳤냐고? 낸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데이비드 실즈> - 나는 여기에 밑줄 쳤네(그리고 토 달았네)
 

우리 앨런은 이렇게 설명했다. '섹스와 죽음의 차이? 죽는 것은 혼자 할 수 있고 남들이 절대 그 문제로 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 흠, 죽음은 안 해봐서 선뜻 잘 와닿지가 않는 걸. 섹스는? 뭐 그런 걸(발그레)
 

그래도 칼라는 나를 사랑했다. 내 복잡한 영혼, 하여간 뭐 그 따위 것 때문에 나를 사랑했다.
- 요새는 아무도 복잡한 영혼 때문에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복잡한 통장이면 몰라도. 나도 영혼이 복잡하단 소리를 몇 차례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말은 한 자들은 하나같이 내게 조상님께 은공을 드려야한다고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 도에 관심 없다.
 

영국의 의학자 윌리엄 오슬러 경은 말했다. '세상의 모든 쓸모 있고, 감동적이고, 고무적인 업적은 25세에서 40세 사이의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이 말은 사실이다. 창조성은 30대에 절정에 달한 뒤 급격히 쇠퇴한다.
- 헐, 끝장 났다. 이제는 쓸모 없고, 무감동적이고, 합성수지적(고무적)이지 않은 삶을 살 차례이다. 그래도 괜찮다. 가벼운 유머 정도만 있어도 나는 살 수 있다(정말? / 쉿, 이 책의 저자도 정직하게 쓴 것만은 아니던데 뭐).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인생의 첫 40년이 텍스트라면 나머지 30년은 그것에 대한 주석이다.'
- 헐, 본문은 끝장 났다. 이제는 주석이다. 번호나 별표를 달고 작은 글씨로 페이지 바닥 부분에서 살게 되는 걸까.
 

한편 우디 앨런은 말했다. '나는 작품을 통해서 불멸을 얻기는 싫다. 나는 죽지 않음으로써 불멸을 얻고 싶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살기는 싫다. 나는 내 아파트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
- 우디 앨런 선생, 알아줘야 해. 아파트가 그럴싸하니까 저런 소릴 하시지. 
 

신부와 목사와 랍비가 자기가 죽어 관에 뉘였을 때 사람들이 뭐라고 말해주면 좋을지 이야기했다. 신부가 말했다. "'정의롭고, 정직하고, 자비로운 분이었다'고 한다면 좋겠군요."
목사가 말했다. "'친절하고, 공정하고, 교구민들에게 상냥한 분이었다'고 한다면 좋겠군요."
랍비가 말했다.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군요. '저 봐, 시체가 움직여'."
- 목사와 신부가 당구를 치고 있었다. 시네루가 뜻대로 먹지 않아 목적구가 빗나 가자 목사가 이렇게 말했다. "시발, 존놔 안 맞네." 신부가 깜짝 놀라 말했다. "목사님, 어떻게 그런 상스런 말씀을..." 목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예의 육두 문자를 날렸다. 신부는 하늘에 대고 기도했다. '하느님 이 자가 한번 더 욕을 하면 벼락을 내려 주시옵소서." 목사가 마지막으로 쓰리쿠션을 때리려는 순간 삑사리가 나자 또 한 차례 욕을 퍼부었다. "시발, 존놔 안 맞네." 그때 하늘이 우르릉 쾅쾅 울리더니 벼락이 떨어져, 글쎄 그만 신부님 정수리에 정통으로 떨어졌다. 하느님이 뭐라 그랬게?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을 처형하려고 기다리는 사형집행인의 발을 밟은 뒤에 말했다. '무슈, 미안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 귀엽네. 요런 유머 꽤 있었는데. 교수대를 오르는 사형수가 계단을 헛밟아 잠시 휘청한 후에 "휴~ 죽을 뻔했네."라고 하는 유머 등등.


그러니까 수선 피우지 말고 그냥 번식하면 된다. 종을 유지하면 된다.
- 알어. 하지만 그게 잘 안 돼.
 

아버지는 으쓱 하더니 진부한 질실들을 총총 꺼내어 말했다. "늙는 데 위안이 하나 있지. 이 일을 다시 할 필요는 없다는 것." "죽은 건 쉽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그건 하잖이. 사는 게 재주지."
- 할 말 없음.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 어떻게 보면 바로 그런 자세였다.  기존의 지혜를 의심해보라는 것, 스스로 본 시각을 고집하라는 것, 언어를 운동장처럼 생각하라는 것, 운동장을 천국처럼 생각하라는 것, 아버지는 내 입과 내 타자기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들을 사랑하라고 알려주었고, 내가 내 몸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사랑하라고, 다른 누구의 거죽이 아니라 내 거죽에 담겨 있는 사실을 사랑하라고 알려주었다.
- 알어. 하지만 그게 잘 안 돼.
 

아버지가 이겼다. 또 아버지가 이겼다. 언제나 아버지가 이긴다. 하지만 결국에는 아버지도 진다. 우리 모두 언젠가 진다.
- '언젠가 진다'고? '언젠가 이긴다'겠지. 내가 언제 이겼다고 그래. 하지만 언젠가는 이긴다. 우리 모두. 

 

이거 참으로 기묘한 수필이다.
나는 너무 슬플까 봐 잔뜩 겁을 먹고 읽기 시작했다가
이내 키득대면서 페이지를 넘겨갔다.
이 책은 어쩌면 '이기적인 유전자(리처드 도킨스)'의 수필 버전일 수도 있겠다. 그것도 유머가 넘치는.
실즈는 아버지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내내 고민하면서도 새침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왜 그랬을까. 나는 쫌 알지. 죽음을 앞둔 이를 평소와 사뭇 다른 태도로 대하는 것이 실례이기 때문이지.
꽤 재미있는 책이지만 슬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면 이 슬픈 책을 너는 어찌 이리 천박하게 리뷰하였느냐고?
실즈의 부친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나는 내 입과 내 타자기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들을 사랑한다. 천박하다니, 어디서!!
(미안, 사실은 창의성이 급격히 쇠퇴하는 중이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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