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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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이 추구하는 바는 '논픽션같음'이다.

아주 오랜 시간 이야기꾼들은 그에 대한 수많은 노하우들을 만들고 전수했다.

드디어 이 작품에 이른다. 존 버거가 썼다. A가 X에게. 

멋진 말로 이 작품을 찬양하고 싶지만 말주변이 부족하다. 속상하다

어느 작가의 수필집을 통해 이 책을 알았다.

뒤늦게 그 작가에게 별을 하나 더 드린다.

지하철, 감격스런 부분이 하도 많아 여러 번 한숨을 쉬다가

135쪽에서 울컥하여 잠시 고개를 쳐들었다.

맞은 편의 젊은 여자가 다가왔다.

내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는 바닥을 향하고 있는 책 표지를 살짝 들추었다.

나는 당황했지만 그녀의 목적을 알 듯하여 양해했다. 

목적 달성한 그녀는 다시 목례를 하고 제자리로 가 앉았다.

주변의 몇몇이 그녀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첩을 꺼내 메모를 했다.

책 제목일 터이다.

조만간 그녀도 이 책을 읽겠지.

나처럼 감동한다 해도 다시 만날 순 없겠지.

이내 전동차 문이 열리고 그녀는 내렸다.

나는 안 내렸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구글링을 해 보았다.

이 책에 관한 리뷰들이 여럿 있었다.

서너 개의 글을 읽다가 발견했다.

지하철, 맞은 편에 앉은 남자가 책을 읽으며 울먹울먹 하고 있었다.

어떤 책인지 궁금했다.

저기요, 하고 말을 걸지

조용히 다가가 책 제목만 살짝 들출지 고민했다.

둘 다 비슷한 양의 큰 용기가 필요했다.

말을 걸러 다가갔다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바닥을 향한 책 표지를 들추어 살폈다.

남자는 당황한 듯했고, 나는 실례를 범한 처지여서 안절부절했다.

그가 내게 미소를 건넸다.

용서를 받은 듯하여 나도 웃으며 눈인사했다.

약수역, 내리려고 문 앞에 다가섰다.

그도 내리는지 얼핏 살폈다.

그대로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결혼 했겠지.

아쉽지 않았다.

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책은 재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약수역이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미소를 건냈다고? 내가?

 

이 모두가 거짓말이지만,

별 다섯을 준 마음은 거짓이 아니다.

이 책도 모두 꾸며낸 이야기이지만,

거장이 보여준 세계관, 인간관은 꾸며낸 것이 아니다.

이후로 연달아 그의 작품을 몇 읽어서 알았다.

 

135쪽에 이렇게 썼다.

연애시! 그건 길게 지켜온 순결함이 상상력에 주는 것이겠죠!

재킷에서 단추를 떼어냈어요.

당신의

아세틸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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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3-02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재미있네요. ㅋㅋㅋ.

조르그 2014-03-04 08: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 남자와 함께하기로 결정한 당신에게
남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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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 있는 제목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으레 생기는 문제들이 있다.

그 문제들을 여성이 주체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원인분석과 해법을 제시한다.

왜 여성이 주체적이어야 하냐고 물을 수 있겠다.

여성 주체의 책이 먼저 나왔을 뿐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

나 역시 이에 대구를 이룰 만한 책이 나오길 바란다.

'어쨌거나 여자는 필요하다'

근데 제목을 지어보니 어째 좀 구리다.

열 한 글자에서 '남'과 '여'만 바꾸었을 뿐인데

하나는 매력적이고 하나는 전근대적인 냄새를 풍기는 이유는 왜일까?

알 듯도 하고, 알쏭달쏭하기도 하다.

내용은 얼핏 남자의 속성을 변호해 주는 느낌이 들게도 하는데,

오해다.

저자는 '어쨌거나 필요한 남자들'의 병증을 잘 다스리는 노하우를 전할 뿐,

그에 대해 면죄부를 주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남성을 대상화하여 다루었다 말한다면, 그게 장점이든 단점이든 맞게 보았다고 답하겠다.

때문에 남성들이 알아서 먼저 읽고 스스로 문제들을 인식, 자가치료 한다면 제일 좋겠다.

나도 읽으며 나 자신의 진단서를 읽는 느낌이 들어 계면쩍었고, 위로도 받고, 의지도 가다듬었다.

어쨌거나 남자는 고쳐(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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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트 키즈 -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 젊은 날의 자화상
패티 스미스 지음, 박소울 옮김 / 아트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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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한참 관심이 쏠려 있을 20대 시절 메이플도프를 접했다. 

그는 기괴한 예술가였다.

나는 기괴하지도 않고 예술가도 아니었지만 그를 동경했다.

패티 스미스는 음악을 한참 듣던 10대 시절 접했다.

그는 여성 락커였다.

그녀의 음악을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여차저차하여 한 장의 음반을 구입했다.

그 둘이 특별한 사이인 줄은 아주 나중에 알았다.

묘한 질투심이 일었다.

둘 중 어느 한사람에게 질투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묘하다는 얘기다.

옮긴이는 책의 끝에 오노 요코를 두고 존레넌이 한 말을 전한다.

'주위엔 예쁜 여자들이 항상 많았지만 예술적 온도가 맞는 여자는 그녀 단 한 사람이었다.'

저 표현을 찾기 위해 수십년을 고민했다.

그렇지. 그것은 온도다.

어떤 지점도 아니고, 방향도 아니고, 양도 아니고, 질도 아니고, 성분도 아니고, 성격도 아니고, 성향도 아니고, 취향도 아니고...

그렇다. 그것은 온도다.

바로 책을 구입했다.

패티와 로버트 각각의 수은주를 확인했다. 가끔 어긋났지만 대체로 같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질투는 나지 않았다.

그들의 고군분투에 대해 조금 슬펐고, 그들에 대한 동경이 아직 끝나지 않은 나에 대해 조금 울적했다.

본문에 등장하는 많은 음악들을 번갈아 틀어 놓고 책을 읽었다.

도어즈, 밥 딜런, 존 콜트레인, 그리고 비틀즈 등등.

그들의 또래였다면 나도 예술가가 되었을까?

그러기엔 난 온도가 좀 낮다.

 

이후로 술자리에서 저 '온도'라는 표현을 종종 쓰는데 반응이 좋다.

아직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존 레넌에게도 감사하고 번역자에게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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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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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69, 데미안, 주홍글씨, 식스센스, 유주얼서스펙트, 올드보이, 가족의탄생, 페드라 등 

무엇에서든 도움을 받고 싶다. 하다못해 속담에서라도.

예컨대, 사위 사랑은 장모?

부러 짓궂게 쓰려는 건 아니다. 아무리 짓궂으려해도 이 소설만큼은 짓궂긴 어렵다.

목하 화제의 중심에 선 소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주인공 토니는 학창시절 베로니카와 연애했다.

둘 사이가 끝날 즈음 토니의 절친인 에이드리언에게서 편지가 온다.

"베리니카와 데이트해도 되겠니?"

토니는 질투심으로 두 사람에게 저주의 편지를 쓴다.

얼마 후 에이드리언이 자살한다.

이유는 알쏭달쏭하다.

40여 년이 지난다.

토니는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유산과 유품을 남겼다는 편지를 받는다.

유품에는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 포함되어 있는데, 현재 베로니카가 가지고 있다.

그녀는 그것을 돌려주려 하지 않는다.

토니는 이유를 알고 싶어 그녀를 만난다.

그녀는 속시원한 답을 주지 않고 몇 가지만 암시한다.

토니는 문득 그들에게 큰 불행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자, 매우 간단하게 정리하였지만 사실상 이게 전부라고 해도 맞다.

나머지는 모두 결말을 위한 복선 또는 맥거핀일 뿐이다.

 

소설을 다 읽자마자 '이게 도무지 어떻게 된 스토리'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았다.

네티즌들은 대체로 비슷한 추정을 하고 있었다.

이렇다.

[ 과거 토니가 베로니카의 집에 놀러갔을 때, 예의 '큰 불행'의 발단이 될 만한 무언가를 감지했다.

베로니카가 에이드리언과 연애한다는 소식을 듣고,

토니는 그 둘을 저주하며 편지에 불행의 발단이 될 만한 그 무언가를 에이드리언에게 종용했다.

에이드리언을 그렇게 했을 테고, 불행의 덫에 빠진다. 그리고 자살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투덜댔다. 그러면서도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적어도 그럴 만한 책이었다.

 

90년대 중후반, 유주얼서스펙트와 식스센스가 이른바 '반전영화' 붐을 일으켰다.

두 영화의 스토리는, 강렬한 결말이 이전의 모든 이야기를 역전시킨다는 점에서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유주얼서스펙트의 충격이 일종의 '다 뻥이야'였다면

식스센스의 그것은 일종의 '다 착각이야'였다는 면에서

전자는 기술적인 반전이고 후자는 서정적인 반전이라 부를 만했다.

유주얼서스펙트는 복기가 필요없었다.

다 뻥이라는 이야기를 곱씹을 이유가 없었다.

식스센스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돌이켜 보아야 했다.

그게 진짜 다 착각이었는지, 정말 그랬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이야기인지를 확인해야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나는 이 소설 마지막의 반전에 어리둥절했다.

그럴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큰 불행'이라는 것이 우리 주변에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는 해도, 

드라마트루기의 기준으로는 지나친 비약이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의 추정으로 돌아가 보자(현재로서는 그것이 제일 그럴싸하다는 전제로).

여기부터는 스포일러.

추정이 맞으려면 포드 부인이 젊은 남자(또는 딸의 애인)을 탐하는 버릇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베로니카의 집에 일주일 머무는 동안 포드 부인의 행동거지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계란 프라이? 허리춤에서 가볍게 흔들던 손사레? 딸을 조심하라는 멘트?

그렇다면, 토니는 그것을 유혹으로 인식하고, 게다가 일회적인 것이 아닌 그녀의 습성으로 깨닫고

에이드리언을 저주할 요량으로 그에게 포드 부인을 만나라고 종용했다는 것인데,

아무리 관대하게 보려해도 매우 빈약한 단서이다.

그렇지 않다면,

베로니카가 토니를 원망할 수도,

토니가 죄책감에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그건 누군가의 종용에 의한 사건이 아니라, 어쩌다 생긴 '러브 어페어'였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런 면에서 2부에서 볼 수 있는 토니와 베로니카의 답답한 갈등은 요령부득이다.

 

또 다른 시각.

에이드리언과 포드 부인은 (적어도 당시에는) 서로 사랑한 걸까?

역시 알 수 없다.

물론 어느 쪽이어도 불행의 성격이나 정도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테지만,

소설 중 몇 군데에서 복선같은 진술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테면 포드 부인이 편지에서 말한 '그가 죽기전 몇 달 동안 행복했다'는 말.

이를테면 토니의 친구 알렉스가 마지막으로 에이드리언을 만났을 때 그가 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말.

둘이 사랑해서 생긴 불행이라면 역시 토니가 자책할 필요가 없어진다.

하지만 그 복선들도 명확하지는 않아서 만일 둘이 사랑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긴 불행이어도 상황은 마찬가지.

토니의 자책이 이 이야기의 시작점이라면 엉성한 개연성이다.

물론 그 엉성함이 의도한 것일 가능성은 있다.

의도한 엉성함에 대해선 나중에 살핀다.

 

시작점 이야기를 해 보자.

모든 진술은 토니의 부정확한 기억에 의존하여 후일담 형식으로 적힌다.

이미 말한 것처럼 '큰 불행'에 대한 토니의 자책이 이 소설의 시작점이라면

적어도 1부의 진술들은 진위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1부는 토니 부인의 메시지를 받기 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토니 일당이 헌트 영감과 역사를 논하는 기억도

현재의 토니(큰 불행을 알고 있는)의 것이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후일담을 전하는 화자 토니는 1부, 2부 각각 언제의 토니인가?

만약 2부가 시작하는 시점의 토니가 1부의 화자라면 어째서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지가 애매해진다.

여기서 시점의 딜레마를 볼 수 있다.

위에서 말한 모순을 해결하려면

전지적 시점으로 써야 하는데,

그러자면 적어도,

독자가 토니에게 감정이입하여 느끼게 될 정서적 충격이 반감할 터.

이 모순을 바로잡으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 째.

1인칭(토니)의 시점으로 진술하되 2부의 화자가 현재의 토니인 것과 달리 1부의 화자는 당시(학창시절)의 토니여야 하는 것.

이 방법은 매우 독특한 방법이 될 텐데, 이런 사례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어색해 보인다.

2번 째.

애초에 어떤 목적을 암시하고 진술하다가, 몰랐던 사실(큰 불행)을 알게 되는 구성을 택하는 것.

예를 들어 1부의 진술이 토니의 일기장 형식을 띠고 있다면, 그 일기장이 그리운 베로니카에 대한 그리움으로 쓴 것이라면,

그래서 하루하루 기억을 들추다가 문득 포드 부인의 메시지를 받는 것이라면,

그 이후에는 일기장이 아닌 1인칭 시점으로 쓴다면,

그걸 기점으로 1부와 2부를 나눈다면 해결될 문제로 본다.

이것도 어쨌든 어색해 보인다.

지금의 시점 선택이 작가로서 최선일지 몰라도 어쩔 수 없는 모호함은 남는다.

역시 의도한 걸까?

 

풀리지 않는 의문은 계속이다.

 

읽는 내내 어리둥절했던 것. 

토니와 베로니카가 어째서 헤어지게 되었는지다.

이후로 토니는 베로니카를 '나를 교묘히 조종하는', '이가 갈리게 까다로운' 여자라고 회고하는데,

그걸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아무리 봐도 없다.

소설이 제시한 에피소드들을 보면 오히려 평범한 20대 여자에 가깝다.

토니의 베로니카에 대한 기억은 베로니카보다 토니의 캐릭터를 설명하려고 한 것일까?

하지만 이런 의문도 소설의 줄거리에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포드 부인은 유산과 에이드리언의 유품을을 어째서 토니에게 물려줄려 했을까?

이 역시 개연성을 찾기 어렵다.

한때 딸의 남자친구여서?

한때 딸의 또 다른 남자친구의 동성 친구여서?

본인이 사랑한 남자의 친구여서?

아이의 아버지의 친구여서?

아니면

'큰 불행'의 주범이라고 여겨서?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한 답이 되어주지 않는다.

 

베로니카의 남동생, 그러니까 포드 부인의 아들이자 에이드리언의 이름을 이어 받은 그의 아들 에이드리언은

왜 토니를 보면 심난해하는 걸까.

아버지를 죽게 한 장본인이어서?

누나가 싫어하는 사람이어서?

 

에이드리언과 포드 부인이 관계를 (어떤식으로든 남녀의 관계를) 맺게 되었다면,

그 시점은 언제일까?

에이드리언이 베로니카와 사귀는 도중?

아니면 헤어진 후?

아니면 베로니카 모르게 양쪽을 다?

어떤 경우였어도 베로니카에게는 충격이었겠지만,

누구보다 똑똑하고 지성인이었던 에이드리언이

이 모든 불화와 불행을 예상하지 못하고 철없이 저지른 일일까?

아니면 포드 부인의 유혹에 불가항력이었을까?

아니면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진정 서로 사랑한 걸까?

 

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

에이드리언은 정말이지 왜 자살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에이드리언과 포드 부인의 관계는 둘로 추정할 수 있다.

하나는 서로 사랑해서 관계를 맺은 사이,

다른 하나는 사랑하지 않았지만 한 순간 실수로 운우지정을 나눈 사이.

전자라면 이후의 상황을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원해서 임신한 경우, 다른 하나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

그의 자살이 개연성(실제의 개연성이 아닌 드라마적인 개연성)을 가지려면

서로 사랑하여 원하는 임신을 한 경우는 제외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둘이 사랑했을지 모른다는 복선들은 붕 떠 버린다.

에이드리언이 죽기 전 몇 달 동안 행복했다면,

그것은 베로니카와의 행복일까, 아니면 포드 부인과의 행복일까?

베로니카와의 행복이었다면 우연히 포드 부인과 육체 관계를 맺은 것 때문에 자책감에 자살한 것일 텐데,

그렇다면 에이드리언이 '축적의 공식'에 언급한 알파벳 'b(baby)'를 몰랐을 테니까 모순.

포드 부인과의 행복이었다면 임신 사실을 알았다는 얘기가 되고,

그렇다면 원하는 임신이었을 가능성이 크고, 그렇지 않더라도 우연한 임신이 자살의 원인이 되었을까?

이는 또 베로니카 모르게 얻은 행복일까, 베로니카에게 알려 그의 동의를 얻은 행복일까, 베로니카의 반대를 무릅쓰고 얻은 행복일까?

어쨌든 포드 부인과의 행복이라면 불행의 주범은 토니가 될 수 없다.

물론 에이드리언의 자살이라는 불행으로 끝났지만, 행복을 이어준 건 토니의 종용이 아닌가.

 

이 모든 모호함을 작가가 의도하고 배치해 놓았을까?

목적은 무엇일까?

b=s-v*+a1 혹은 a2+v+a1*s=b

에이드리언이 남긴 이 공식이다.

토니는 알파벳 b는 baby, a1는 에이드리언, a2는 자신이라고 추정했다.

억지같기도 하고 그럴싸하기도 하다.

그런 식으로 덧붙이자면 s는 사라 포드 부인, v는 베로니카가 되겠지.

그럼 풀어보자

b(아기)는 사라 포드 부인 빼기 베로니카 곱하거나더하기 에이드리언?

토니 더하기 베로니카 더하기 에이드리언 곱하기 사라 포드 부인은 아기?

도대체 원...

 

마지막에 토니는 마침내 '감을 잡았다'라고 말한다.

포드 부인이 일기장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

에이드리언이 죽기 전에 몇 달 동안 행복했다고 하는 이유,

간병인이 말한 '특히 지금은'의 의미 - 난 이 부분을 발견할 수 없었다

베로니카가 이메일에 쓴 '피 묻은 돈'의 의미,

에이드리언의 편지 말미에 적힌 '그래서 예를 들면 만약 토니가'의 뒷부분에 실렸을 내용.

감을 잡았으면 말을 좀 해주지, 끝내 독자를 약 올리고 만다.

 

이 총체적인 모호함을 작가가 의도했다면,

짓궂기보다 가학적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이 짓궂거나 가학적인 게임에 난 이미 휘말려 이토록 호들갑을 떨고 있지 않은가.

이게 이 게임, 아니 이 소설의 핵심 가치라면 더 이상의 개연성 찾기 퍼즐은 멈추어야 하지만,

마지막으로 추정해본다.

줄리언 반스가 이 텍스트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 놓은 것은 바로

생명의 소중함 아닐까?

비웃지만 말고 생각해 보자.

테마가 하도 진부해서 어설피 드러내지 않고 꼭꼭 숨긴 것을 아닐까?

어차피 이런 소설이야,

지어낸 사람이야 비웃거나 말거나,

돈과 시간을 투자한 독자 개인이 어떻게든 의미를 만들어내야 만족스런 것 아닐까?

나만 봐도 그런 것 아닐까?

 

결론.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사라 포드 부인.

테마는, 그녀는 예견되는 도저한 불행들을 무릅쓰고, 주변의 모두가 반대했을 터인데도, 아기를 낳았다.

 

덧붙여,

작가의 명성과 맨부커상의 권위를 모르거나 혹은 무시하고 이 책을 읽었다면,

그게 옳은 독해든 그른 독해든,

그러하지 않은 쪽과 적이 다르게 읽히지 않았을까?

임금의 전위적인 패션 감각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투덜댔다.

"어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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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laowkeh 2012-07-15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글 재미있게 잘쓰시네요ㅋㅋㅋㅋㅋ 저도 이책 이해 잘 안갔어요ㅋㅋㅋ

조르그 2012-07-17 13: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darksugar 2012-10-29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 읽고 나서 머리가 다 아프네요T.T
잘 이해가 안 가서 내 머리가 나쁜가 자학했는데, 설명 감사드려요^^


조르그 2012-11-03 12:08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 그랬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 일리노이 주립대 학장의 아마존 탐험 30년, 양장본
다니엘 에버렛 지음, 윤영삼 옮김 / 꾸리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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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짓이다.
아무리 학문과 종교가 위대하기로서니
가족을 이끌고 아마존 밀림으로 들어가다니.
 
글의 대강을 살핀다.
언어학자인 다니엘은 아마존에 사는 '피다한' 부족의 언어를 익혀
그들을 선교하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오지에 들어간다.
가족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여러 위험들을 극복하고
서서히 그곳 생활에 적응한다.
시간이 지나 그들의 언어를 익히고,
성경의 복음서를 번역하여 매일같이 들려주지만
그들은 선교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촘스키로 대표되는 형식주의 언어학의 오류를 발견,
주류 언어학에 끊임없는 반론을 제기하며 논쟁의 중심에 선다.
또한 피다한 부족의 삶에 감화되어 무신론자가 된다.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는 물론 심지어 가족과도 회복하기 힘든 관계가 되고 만다.
그는 지금도 연구를 계속 하고 있다. 

저자는 선교를 목적으로 피다한 부족과 만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피다한 사람들의 순수함에 스스로 종교를 버리게 된다.
시혜자로서 또 문명인으로서 지닌 오만과 편견을 스스로 깨치고 반성하는 과정은 퍽 감동스럽다. 

이 책은 문명과 미개, 종교와 무신론, 주류와 비주류의 충돌을 다루고 있다.
그것들이 마구 뒤섞여 한 권의 책 안에서 자연스럽게 구성되지 못한 느낌이 있다.
아쉬운 점이다. 

어차피 에세이의 형식을 띤 책이라면
다니엘 박사와 피다한 부족과의 우정,
학계의 주류인 촘스키학파와의 갈등,
그가 독실한 신앙인에서 무신론자가 되어 가는 심리적인 과정,
때문에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가족과 관계를 끊어야 했던 이야기 들을
극적으로 다루었다면 훨씬 재미있는 책이 되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아쉽다.
책은 재미있어야 한다.

아쉬운 점 있지만 이 책의 재미는 꽤 괜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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