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더브레 저택의 유령
루스 웨어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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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전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요.

스마트 홈 시대가 열렸지만 우리는 여전히 스마트보다 아날로그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손바닥에 접착이라도 된 듯, 스마트폰을 떼어 놓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전기로 가동되는 집안의 온갖 것들을 집 안팎에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건 참 매력적이지만, 아주 넓은 집이라면 모를까 직접 움직이는 게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물론 잠자리에 누웠을 때 누군가가 대신 불을 꺼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아주 자주 들지만요.

모든 것이 제어되는 스마트 홈 환경에서, 만약 아날로그 방식을 겸하지 않거나 겸하였더라도 편리함에 수동으로 움직이는 법을 잊었다면 - 정전이 되거나 시스템 오류가 생겼을 때를 상상하면 불쾌함을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상상하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은 스마트함이 있는 대저택 헤더브레.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스마트함은 고전적 슈퍼 히어로의 집을 떠올리게도 했지만, 그 기묘한 부조화는 각자 다른 것을 숨기고 있던 등장인물들의 내면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인물들은, 심지어 아주 어린아이까지 비밀을 가지고 있었는데, 두 살 난 아기 페트라 만이 가면 없는 정직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설은,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노라 호소하는 한 여자의 편지로 진행됩니다.

그녀는 자신이 어쩌다가 교도소에 오게 되었는지 저명한 변호사에게 도와달라 호소하고 마침내 아주 길고 긴 편지를 쓰게 되었는데요. 독자는 변호사가 되어 그녀의 편지를 읽습니다.

스물여덟 살의 아이 돌보미 그녀는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 지어진 대저택에서 입주 아이돌보미로 일하게 된 과정부터 입주 후에 아이들의 보호자가 없는 상태에서 낮이고 밤이고 겪었던 무시무시한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밤마다 느껴지는 한기, 누군가가 걸어 다니는 듯한 소리. 그리고 제어가 되지 않는 스마트 기기 등. 전형적인 폴터가이스트 현상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그 집 아이들은 그녀에게 우호적이지 않은데요.

미워하고 밀어내려 하는 것이 도를 지나친 듯합니다.

그녀가 오기 전의 아이 돌보미들도 며칠 견디지 못하고 그 집을 나가버렸다고 하는데요.

아이들의 말썽과 영악함에 질렸던 건지, 아니면 유령 때문인지 알 수 없습니다.

여기 오지 마세요. 여긴 안전하지 않아요.

다들 안 좋아할걸요.

마침내 셋째 아이 엘리가 그녀에게 마음을 겨우 열기 시작하고, 기숙학교에 있던 큰 아이 리안논이 그녀에게 험악하게 대하던 그날, 둘째 아이 매디가 사망하고 맙니다.

온 집안에 흩어져 있던 CCTV도 매디의 죽음의 원인을 밝혀 낼 수 없었는데요. 자신의 방에 부착되어 있는 카메라가 고용인에 대한 부당한 행위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양말로 그것을 가려 놓았었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매디는 그녀의 방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기 때문이죠.

과연 그 헤더브레 저택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과거 그 집에서 약물로 인한 소녀가 사망했던 사건과 연관이 있는 걸까요.

정말로 유령이 나타나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매디를 죽게 만든 것일까요.

이 모든 기괴한 스토리는 클래식한 저택 안 곳곳에 숨겨진 스마트한 장치처럼 컨트롤할 수 없는 지경으로 흘러가버립니다.

현대의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찬사를 받는 루스 웨어의 소설이지만, 굳이 애거서 크리스티를 갖다 붙이지 않아도 루스 웨어는 그 자체로 특별한 환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 스릴러로, 점점 종장이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스토리의 결말을 알 수 없기에 더욱 긴장하게 되는데요. 마지막 장면에서 '이걸 어쩌나..'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들 중 가장 나쁜 사람은 누구일까, 무엇이 그들을 비극으로 몰아 넣었을까하는 고민은, 책을 닫고도 한참이나, 하루가 넘도록 저를 떠나지 않습니다.

표지까지 고풍스럽고 벨벳 느낌이라 손에 착 붙는 이 소설은.

한 번 펼치면 닫기 어려우니 시간 여유가 있을 때 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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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치들에게 배우는 돈 공부
신진상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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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한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딱 말 그대로 돈에 관한 개념이 없는 저는 그냥 손에 쥐어지는 작은 돈으로 빠듯하게 살아왔고 때로는 빚을 지기도 하면서 헉헉거리면서 살아왔고 실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성인(에 가까운 나이가)이 되자 새로운 눈이 띄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엄마를 데리고 있는 탓에 녀석은 경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앞으로의 미래를 설계하며 고민하였습니다. 자식과 함께 발맞추어 나가길 원하는 저는 이제라도 '돈이란 무엇인가.' 그 녀석이 뭐길래 나를 괴롭혀왔는가에 대해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돈 공부의 첫 번째 걸음으로 신진상의 <슈퍼리치들에게 배우는 돈 공부>를 선택했습니다.

어려운 경제 용어 같은 게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만일 그렇다면 인터넷에서 검색도 해보고 테셋 자격증이 있는 아이에게도 물어보고 하며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 책은 저 같은 초보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저술되어 있었습니다.

그건 아마도 그가 논술의 전문가 이기 때문일겁니다. 저자는 대치동의 논술 스타강사이면서 유웨이 입시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데, 논술과 입학사정관제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고 하는군요. 어려운 분야를 쉽게, 하지만 논리적으로 이야기하여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최적화 되어 있는 분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자가 제일 처음 꼽은 것은 독서였는데요. '책', 그리고 '독서'는 슈퍼리치들과 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므로 책 전반에 걸쳐 넓게 분포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공부를 위해서는 전략적 독서는 반드시 필요하기에 연령대에 맞는 도서를 추천하기도 합니다. 혹은 돈 공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을 얻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거장들의 책을 정독하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취하는데, 만일 시간이 부족하다면 발췌독도 좋다고 합니다.

저는 초보니까 처음에는 발췌독을 하면서 대략의 느낌을 보고 그다음 아주 꼼꼼히 읽어보려고 하였으나 나도 모르게, 메모를 하고 플래그를 붙여가면서 정독을 하고 있지 뭔가요. 책을 좋아하는 저에게 책 추천을 해주어서 그런 걸까요?

하지만 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돈에 대해 배우고자 하면 일단 이 책을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이어지는 다음 책을 고려하며 시야를 넓힐 수 있을 테니까요. 거장의 인생과 이론을 배우는 데에는 책만 한 것이 없습니다. 요즘은 유튜브 등의 영상 매체로 많은 것을 공부하기도 하는데, 책을 읽어나가며 얻는 것은 영상물과는 다른 것들입니다. 이건 비단 이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적어도 아직까지는 - 다른 책에도 적용되는 것이죠.

이 책은 돈과 그 흐름을 읽기 위한 모든 부분을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돈의 속성, 감각에서부터 뇌과학이나 철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이 다 돈과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책입니다. 돈, 경제할 것 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술술 읽고 있다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슈퍼리치의 일화, 말.... 그런 것들과 경제 흐름, 돈의 속성 등을 자연스럽게 섞어 이야기하는데,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니 어떤 초보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초보 단계를 벗어난 분도 돈과 경제를 공부할 때 필요한 책을 추천받을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다가 포기한 영화 '리미트리스'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도 끝까지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주식과 독서에 대해 상당 부분 할애해 이야기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 부동산, AI, 빅데이터, 저출산 고령화, 그리고 코로나19 같은 사회의 큰 변화 등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정치력이 관여하는 것 때문에 변동되는 경제 상황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광범위한 '돈'이야기를 다룹니다.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시대의 흐름이나 변화를 따라가거나 앞서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죽은 돈이 될 테니, 공부와 철학, 사람의 심리 그런 것들의 박자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관점의 다양성이 무척 주요하다는 말입니다.

아직은 그런 눈이 없지만 이 책을 중심으로 하여 추천도서를 찾아 읽어나가다 보면 나도 언젠가는 까막눈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작은 희망이 생겼습니다. 부끄러우니 더 이상 돈에 관해 잘 모른다는 소리를 하지 않게 되길 원합니다.

잠자는 동안에도

돈이 들어오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당신은 죽을 때까지 일해야만 할 것이다.

-p.54 워런 버핏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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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도시 SG컬렉션 1
정명섭 지음 / Storehouse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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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의 제3 도시는 개성 공단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풀어내는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 장르가 아닌데도 폐쇄된 제3의 공간이라는 특성 때문에 미묘하게 갇혀있는 느낌이 듭니다. 이들은 드나들 수 있으나 갇혀있고, 통제된 듯하지만 모든 걸 통제 당하는 것도 아닌데, 겉으로 보이는 통제자와 실제로 그들을 단속하는 이는 또 다른 이라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공간적, 사회적 배경에서 존재합니다.

언뜻 보면 한통속이고 또 달리 보면 척을 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모든 일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주인공부터 조연에 이르기까지 그들 스스로도 누가 자신의 편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고로 저는 낯선 환경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그곳은 실재하고, 절대로 사건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곳입니다. 세상 어느 곳보다도.

마치 스탈린 체제의 소련 땅처럼, 그곳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결국' 살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여긴 사고가 나면 안 되는 동네야."

"제가 있던 군대도 사고가 나면 절대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원래 사고는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곳에서 일어납니다."

"아무튼, 여긴 사고가 나서는 절대로 안 되는 곳이야."

-p.42

곪을 대로 곪은 부정행위가 터져버린 것일까요. 아니면 개성 공단의 폐쇄로 악화된 남북 감정을 노린 세력의 음모일까요.

'제3 도시'의 미스터리는 이른 아침부터 내 손목을 잡아끌고 갑니다.

클래식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사티의 짐노페디 조차도 내 혼란을 멈춰주지 않아 스스로 노트에 메모를 해가며 혼란스러움을 가라앉혀야 했습니다.

주인공 강민규는 운영난을 겪고 있는 민간 조사 업자, 즉 탐정입니다. 헌병 수사관 출신의 그가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상세히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혹시 후속작이 나온다면 그의 배경을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리퀄이 좋겠지만, 정명섭 작가 지하실에서 시카고 타자기를 두들기고 있는 난쟁이 요정들이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주길 기대하며 지금은 개성 공단을 배경으로 하는 <제3도시>에 집중해봅니다.

강민규의 서울에 있지만 이름만은 뉴욕 탐정사무소인 사무실에 개성 공단에서 속옷 공장을 운영 중인 외삼촌 원종대가 찾아옵니다. 자신의 공장에서 물품이 자꾸만 사라지는 것 같은데 CCTV를 달 수도 없는 데다가 함부로 사람을 자를 수도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물품 횡령 사건을 조사해 달라고 합니다. 공단에 과장 직함을 달고 들어간 그는 금세 남측 책임자인 법인장 유순태가 수상쩍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주변 공장들과 더불어 좀 더 조사하고자 합니다. 그러던 중 강민규가 실은 남측 국정원 요원이라는 헛소문이 퍼지고 이로 인해 유순태와 강민규는 심하게 다툽니다. 그리고 유순태가 자신의 방에서 살해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강민규는 제1 용의자가 되고, 체포당하고 마는데요.

강민규는 자신의 누명을 벗고 진범을 찾아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추방당해 남한에 가서 살인범으로 조사를 받아야만 합니다. 단서와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살인자로서 재판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강민규는 갇힌 이 공간에서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살인자는 교묘하게 남과 북 사이에 숨었다. 그리고 살인 자체보다는 그 파장을 감추는 데 힘을 기울일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블랙박스와 CCTV가 없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이 이상한 도시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하마터면 미궁 속으로 사라질 뻔했다.

-p.248

이 소설 <제3 도시>는 개성 공단의 배경과 상황을 상세히,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늘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정명섭 작가이기에 개성 공단의 묘사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의 묘사는 상상에 그치지 않을 거라는 걸 믿고서요.

이 소설은 스토어 하우스 출판사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국내외 장르 소설 시리즈, SG 컬렉션의 첫 번째 책입니다.

그 문을 잘 열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스토어하우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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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다만 나로 살 뿐 1~2 - 전2권 다만 나로 살 뿐
원제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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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방 선원에서 안거를 하던 원제 스님은 스스로 수행을 하기 위해 세계 일주를 떠납니다. 누군가의 우려처럼 밖으로 다니며 재미있는 것을 즐기기 위함이 아닌, 넓은 세상에서 정진하는 수련입니다.

2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과 함께 기록한 에세이라니, 무척 독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오천축국전 같은 걸까요, 아니면 서유기처럼 서천취경을 목표로 가는 길일까.

광활한 자연 위에 홀로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갖은 상상을 했습니다만 <다만 나로 살 뿐>은 고전과 같은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원제 스님은 본디 소박하고 규칙적인 삶을 좋아하는 이입니다. 그가 군 제대 후 고무신이었던 여인에게 홍대 앞에서 거침없는 하이킥을 맞은 후 출가를 결심했다던데,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는 출가했고, 해인사의 스님이 되어 수행을 하던 중, 2012년 세계 일주를 계획합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라고 하는군요.

세상이 바뀌길 원한다면 내가 먼저 바뀌어야만 하고, 세상이 안정되길 원한다면 내가 먼저 안정이 되어야 합니다. 인류 역사의 위대한 성현들은 하나같이 나의 변화라는 과정을 뼈아프게 치러냈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한 과정 뒤에 그 성현들의 역할과 본분이 각자가 처한 사회나 문화라는 인연에 따라 자연스럽게 익어가며 변화를 일구어냈습니다. 나의 변화라는 수순을 경시하고 곧장 자신의 생각대로 사회를 바꾸려는 열망은 아무래도 성급합니다. 깊은 안목이 그 모든 변화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므로, 안목을 심화하기 위한 수행의 시간은 필수적입니다.

-1권 p.190

원제 스님은 카우칭서핑으로 숙박을 하기도 하고 여의치 않을 때는 숙소를 잡고 생활하기도 하며 그 여정을 사진과 글로 기록해 나갔습니다.

얼마 전 한 스님의 풀 소유로 스님들에 대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 어쩌면 좋아 보이는 - 행동을 할 때 거부감이 일어났던 것도 사실입니다. 허나 그 풀소유 스님에 대한 이야기, 일부 타락한 종교인들을 배제하고 보편적인 스님들에 대해서는 저에게 편견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건 몇 년 전 제주시 한복판 주택가에 위치한 제법 큰 절 앞에 살았던 탓도 있을 겁니다. 그들에게는 새벽을 깨우고 마물을 내쫓는 의식이었지만 저로서는 동트기도 전에 괴로움을 맛보아야 하는 시간을 겪으며, 이 종소리에 괴로운 나는 혹시 마물인 건가 고뇌할 정도의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것도 한몫했을 겁니다.

사실상 고정된 문제란 없습니다. 문제란 문제시할 때에만 문제가 되는 법입니다.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그 어떤 문제도 문제시하지 않는다면 단지 상황이 됩니다. 그리고 상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입니다. 문제로 고착되지 않고 상황으로 흘러갈 수만 있다면, 여유는 자연스럽게 스며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유가 사람들의 성정을 만듭니다. 그래선지 모릅니다. 잔지바르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게 느긋했습니다. 그리고 이토록 여유를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이라면, 그 섬마저도 한껏 여유로운 풍광을 보여주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이 제가 잔지바르를 ‘여유’라는 단어로 기억하는 이유입니다.

-2권 p.111

원제 스님의 <다만 나로 살 뿐>을 읽으며 저의 편견이 조금씩 깨져갔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집 앞의 스님들을 보면서도 깨지지 않았던 편견이 그로 인해 깨어졌으니 이는 책을 통한 연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불교에 대한 호감이 늘어난 수준은 아닙니다. 마치 원재 스님이 런던에서 교회 예배에 참석했을 때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원제 스님은 '종교를 떠나'가 아닌 - 애초에 떠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죠 - 종교에 대한 예를 지키며 각국을 여행하고 많은 이를 만났습니다.

무척 좋은 사람도 있었지만 때때로 범죄자, 꼬마 폭력배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소매치기, 도난 사건을 겪기도 합니다. 소설에 나오는 - 허허 웃으며 '이 또한 연이겠지요.' 하는 타입의 스님은 아니라서 슬프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내면의 의지와 사색으로 정화시킵니다.

세계 일주를 하면서 저는 줄곧 두루마기를 입고 삿갓을 쓰고 다녔습니다. 많은 짐을 메고 걸어가야 할 때나, 스쿠터를 타고 운전할 때, 험한 산을 오를 때, 해변에서 수영할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두루마기와 삿갓이었습니다. 제가 고집스럽게 두루마기와 삿갓 복장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눈에 띄는 이 복장이 저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 1권 p.223

그리고 오늘 밤 그 기대와 믿음이 저에게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세계 일주를 시작한 지 1년을 훌쩍 넘긴 그 기간 동안 승복은 알게 모르게 저를 지켜줘 왔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이 승복을 아머(Armor)라고 소개했습니다. 나쁜 상황에서 헤쳐 나오게 해주고, 혹 지독하게 나쁜 상황도 덜 나쁜 상황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의 아머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승복은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보호구였습니다.

-2권 p.124

이 여행기는 거룩하지도 신비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읽은 여행 에세이 중 단연 최고였습니다. 눈을 뗄 수 없는 전재, 팔랑거리지 않는 여정. 지나치게 무겁지 않으면서 마음에 와닿는 철학. 그리고 그의 고집과 의지.

비록 다른 종교이지만 그의 여정을 따라가는 길이 어찌나 즐겁던지.

그의 삿갓 차경과 염주 현요와 만나게 된 인연처럼 나 또한 인연이 되어 그와 함께 그 길을 눈으로 좇아 걸어갑니다.


수오서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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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히트 시그널 - 글로벌 아이돌을 설계하다 케이팝 산업에 대한 모든 것
윤선미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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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랜 시간 동안 TV에 나오는 가수들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실력으로 승부하는 가수보다 실력도 없으면서 춤으로만 승부하는 보이 그룹, 걸 그룹을 보며 가수가 아니고 댄서 아닌가 했기에 그들이 별로였습니다. 그들에게 열광하는 팬들도 이해하기 어려웠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K-POP에 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K-POP을 듣기 시작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녀석도 저와 비슷한 음악 취향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쪽으로는 좀 둔했거든요.

저는 아주 예전부터, 그러니까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때부터 뮤직비디오를 좋아했습니다. 음악이 좋아서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는 경우보다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그 음악이 좋아지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K-POP도 뮤직비디오가 먼저였습니다.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저를 K-POP으로 데려다 놓았고, 저는 무심결에 보다가 금세 홀린 듯이 보게 되었습니다.

음악 실력과 댄스, 비주얼을 두루 갖춘 아이돌들이 탄생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엔터테인먼트란 스타를 발굴하고 키워내 음악과 스타를 활용한 문화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 또는 그와 연관된 일을 말한다.

-p.8

그들은 혹독한 훈련을 거쳐 세상에 나옵니다. 언뜻 화려하게만 보이는 그들일지라도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생과 노력을 하고 K-POP의 아이돌이 되기 위해 나타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아이돌들이 탄생했다가 반짝하고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하늘에서 빛나고 있는 스타가 있기에 아이돌 지망생들은 BTS, 블랙핑크를 꿈꾸며 도전을 계속합니다.

전 세계 팬덤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글로벌 아이돌들은 어떻게 육성되며 탄생하는 것일까요.

그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책이 <빅히트 시그널>입니다.

아이돌 그룹의 콘셉트, 퍼포먼스, 소통도 중요하지만 어쨌든 아이돌 기획사의 핵심 자산은 음악이다. 프로듀서가 내부에 있는 경우도 있고 외부 작곡가, 작사가에게 곡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지만 음반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기획사의 입장에서 음악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특히 케이팝은 대개 듣는 음악보다는 무대로 보고 듣는 음악이기 때문에 음악의 개념이 확장된 것이다. 그래도 어찌 됐든 가수, 아이돌 모두 활동의 기반은 음악이다.

-p.71

'빅히트'하면 예전에는 앨범 판매량이 높거나 많은 이들의 애창곡이 되는 그런 노래를 연상했지만 지금은 어쩐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먼저 떠오릅니다. 방시혁의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아주 작은 회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BTS를 키워낸 회사로 주가는 연일 고공행진 중입니다.

이 회사가 이렇게 커질 수 있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기획부터 선발, SNS를 활용한 홍보 등의 마케팅, 아이돌 각자 개성에 맞는, 그러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코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박자가 완벽했기 때문에 BTS의 성장과 더불어 회사도 함께 커졌던 것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그들의 아름다운 노래와 몸짓을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된 것이고요.

<빅히트 시그널>은 JYP 신입 기획 마케터로 시작해 FNC 실무 교육자,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사를 거쳐 현재 퍼스트원 프로듀싱 본부장을 맡고 있는 13년 차 엔터테인먼트 기획자 윤선미의 책입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주식상장으로 관심이 높아진 엔터테인먼트 주식,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으로, 엔터테인먼트에 관심이 있는 이나 엔터테인먼트에 취업을 하려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 그야말로 엔터테인먼트의 A_Z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처럼 뮤직비디오를 즐기며 예능에서 만나는 아이돌을 보며 즐거워하는, 때로는 연합 아이돌 - 슈퍼 M을 보며 흐뭇해하는 이들도 읽으며 그들이 이렇게 활동을 할 수 있는 데에는 그들 자신은 물론이고 수많은 이들의 피, 땀, 눈물이 필요했다는 걸 느끼며 감동하기도 합니다.

팬은 아이돌 기획사에서 독특한 존재다. 소비자가 아니라 어디서 무얼 하든 아이돌을 응원하고, 관심을 갖고, 활동 기간 동안 함께 역사를 만들고, 추억을 만들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대에 서는 아티스트에게도 특별하고 회사 입장에서도 특별하다.

-p.174

하지만 아무래도 이 책은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특별부록으로 엔터테인먼트 취업 정보 및 실전& 면접 꿀팁이 공개되어 있기에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제4세대 아이돌 산업을 멋지게 이끌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블랙피쉬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리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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