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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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솔직히 말해서 이 작품과 같이 묘사가 많은 소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반전도 없고 치밀한 복선도 없고 몰아치는 격정도 없으며 그 어떤 스릴도, 서스펜스도, 카타르시스도 느끼지 않게 만드는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추석이라는 휴일 자체는 좋아하지만, 성묘하러 갈 때 겪어야 하는 차안에서의 멀미, 가족들의 짜증, 상을 차릴 때의 고역, 모기들을 싫어하는 이유와 같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모 중간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 갓길로 나와 어둑해진 풀길을 걸을 때의 고요와 사색을 저는 좋아하며, 그렇기에 저는 이 책과 같은 책들을 싫어할지언정 이 책은 좋아합니다. 시간이 많으신 분들이 읽으시길 추천합니다. 지금 당장 시간에 쫓기시는 분들이라면 일단 하던 일을 마치고 여유가 생길 때 읽으시길 바랍니다.


너무나도 귀찮고, 지루하고, 신경 쓴다고 해서 내 삶에 딱히 도움을 주지도 않을 이 책은,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부모가 기대했던 것보다 약하고, 조금은 옹졸하며 생각보다 의지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자식들은 그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가족이라는 짐을 조금 더 멀리할 수 있는 구실을 찾은 것에 기뻐하며, 그들을 자신의 반면교사로 삼고 싶어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정말 당연한 사실을 저와 같은 사람에게 말해줍니다. 그분들은 본인들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으며, 더 옹졸하고, 더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음에도, 크게 노력한 끝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음을, 그리고 나 또한 그렇게 해야함을. 이 책은 사랑하는 법보다는 미워하지 않는 법을 알려줍니다. 먼 옛날부터 내려오는 끔찍한 상처들이 대물림 되는 것을 조금씩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 내가 해야할 일임을 알려줍니다. 내 자식들이라도 온전한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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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사랑하는 우리는 선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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