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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보다 잘 사는 사람
법상 지음 / 마음의숲 / 2025년 11월
평점 :
「지금의 회복을 말하는 시대적 텍스트」
법상 스님의 『부자보다 잘 사는 사람』은 단순한 위로의 산문집이 아니다.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이라는 시간의 감각을 매개로 개인의 삶을 되돌아보고, 더 깊게는 현대 사회가 놓친 가치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만드는 철학적 텍스트에 가깝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성과 중심적 시간관’을 매우 강하게 요구한다. 학교·직장·가정뿐 아니라 자기계발의 영역까지, 삶의 모든 순간이 미래의 효율·결과·가치로 환산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현재는 종종 ‘통과해야 할 시간’ 또는 ‘더 나은 결실을 위해 마땅히 희생되어야 할 시간’으로 격하되고, 개인의 내면은 만성적인 피로와 압박, 불안에 의해 잠식된다. 법상 스님은 바로 이 지점을 문제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책에서 가장 일관되게 강조되는 메시지는 현재는 업신여김당하는 시간이라는 통찰이다. 저자는 우리의 시선이 늘 미래에 매몰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더 나은 조건과 더 나은 나를 위해 지금을 소비하는 구조를 경계한다.
이 점은 현대 심리학과 사회학의 담론과도 깊게 맞닿아 있다. ‘미래 지향적 효율 중심의 자기 서사’ ‘성과 우선주의’ ‘비교 문화의 내면화’ 이 세 요소가 결합되면 개인은 지금 여기에서의 안정과 만족을 상실하게 된다. 저자는 불교적 관조의 언어로 이를 설명하지만, 그 메시지의 본질은 심플하다. 바로 현재를 잃은 사람은 미래에서도 안정과 행복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의 현대적 의의는 바로 이 지점, 즉 ‘현재 회복’이야말로 심리적·정서적 번아웃의 시대에 필요한 핵심 기술이라는 주장에 있다.
저자는 성장·성취·계획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다림의 방식’이 문제라고 말한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다음 결과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현재의 고통을 정당화하고 자기 학대를 정상화하며 성취 후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구조를 낳는다.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전환이 바로 ‘기다림의 놓음’ 전략이다. 이는 방기나 포기가 아니라,
과열된 삶을 제 온도로 되돌리는 일이다.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면, ‘현재 중심적 주의전환’을 통해 불안을 낮추는 기법과 유사하다.
즉, 이 책은 단순한 마음 수련이 아니라 과도한 경쟁 구조 속에서 망가진 시간 감각을 재조직하는 실천을 제안하는 셈이다.
책의 여러 장은 현대인들이 겪는 긴장 상태를 매우 정밀하게 포착한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 쉬면 뒤처진다는 공포,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 목표 달성 중심의 자기 가치 판단, 이 모든 감정은 현재를 잠식하는 대표적인 불안 요소다. 저자는 이를 “몸과 마음이 늘 경계 태세로 살아가는 상태”로 규정하며, 그 원인을 ‘지금과의 단절’에서 찾는다.
이 시각은 노동·교육·가정 등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와도 긴밀히 연결된다. 책이 지닌 현대적 시사점은, 단순히 개인에게 “멈추라”고 권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가 요구하는 속도와 효율의 규범을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책 후반부에서 강조하는 ‘사랑’과 ‘자비’는 불교적 가르침이지만, 현대의 고립된 인간관계 구조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관계의 소모화, 정서의 과잉 소비, SNS 중심의 얕은 연결, 돌봄의 개인화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스님은 “나 아닌 존재를 돌보는 행위가 결국 나를 구원한다”고 말한다. 이 진술은 윤리학적·심리학적 관점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 타인을 돌보는 행위는 자아를 안정시키고 정체성을 강화한다는 연구들이 그것이다. 이 책은 전통적 가치인 ‘자비’를 현대의 고립 구조 속에서 새로운 치유 전략으로 재해석한다.
‘회복’과 ‘멈춤’은 최근 몇 년간 여러 분야에서 주요한 화두가 되었다. 팬데믹을 거치며 일상의 속도가 재정의되었고, 많은 이들이 번아웃과 탈진을 경험했다. 그리고 지금, 사회는 다시 과속을 요구하고 있다.
법상 스님의 이 책은 이러한 시점에서 “지금이라는 시간의 회복”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동시대적 가치가 크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왜 항상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삭제하는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나를 희생하는 방식은 과연 지속 가능한가?
사랑과 자비, 자족과 현재의 감각은 어떻게 현대인의 삶을 다시 구성할 수 있는가?
책은 구체적 처방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하지만 단단한 결론을 건넨다. 지금을 되찾을 때, 비로소 미래가 바뀐다는 것이 바로 그 결론이다.
『부자보다 잘 사는 사람』은 특정 종교의 교리를 넘어, 현대인의 시간 감각·관계 구조·삶의 속도를 진단하는 매우 현대적인 성찰의 기록이다. 이 책은 개인적 위로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오늘의 시점에서 새롭게 비추는 사유의 텍스트다.
책을 덮고 나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이 질문과 마주한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살아야 할 미래만을 좇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이 남긴 울림이, 바로 이 책의 가장 본질적인 가치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