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증인 - 상 대한민국 스토리DNA 7
김성종 지음 / 새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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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없애 마침내 증언하는 살신성인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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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칠단의 비밀 - 방정환의 탐정소설 사계절 아동문고 34
방정환 지음, 김병하 그림 / 사계절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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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 읽었다. 희한하게도 책에 실린 두 소설(<동생을 찾으러>와 <칠칠단의 비밀>) 모두 기억이 초중반부에 멈춰 있었다. <동생을 찾으러>에 나오는 기차역 장면, <칠칠단의 비밀>에서 중국 봉천으로 건너간 뒤의 이야기 등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튼, 다시 읽으면서 이 소설들이 민족주의에 매우 단단히 기반되어 있음에 먼저 놀랐다. <동생을 찾으러>와 <칠칠단의 비밀> 모두에서 동생(순희, 순자)을 찾는 주인공(창호, 상호)들은 모두 나라를 빼앗긴 한민족의 은유이다. 이 두 작품 모두에서 남매 사이는 매우 단단히 결속되어 있고, 주인공들은 공권력의 힘을 거의 빌리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의 힘을 빌려 일을 해결한다. 특히 주인공들이 혼자서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이 중요한데, 방정환은 소설 내에서 끊임없이 주인공의 한계 상황을 제시하고 그 해결책으로 새로운 동료들을 등장시킨다. <칠칠단의 비밀>에서는 보다 더 노골적인데, <동생을 찾으러>와 달리 태생부터 잃어버린 곡마단 남매의 등장이나 후반부 한인 협회의 등장 등은 명백히 정치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

 한국 미스터리, 혹은 첩보 소설의 시초와 같은 장르적 평가도 이 책엔 충분히 가능하다. <동생을 찾으러>에서는 아직 그 면모가 확실히 드러나지 않지만, 2년 뒤 발표된 <칠칠단의 비밀>은 상당히 감탄스럽다. 일개(?) 곡마단을 대륙의 아편 밀수업체로 확장시키는 설정부터, 이 설정과 남매의 비밀을 엮어 깔아놓은 복선, 칠칠단의 암호나 소굴의 비밀 등까지 첩보물의 클리셰를 동양적으로 훌륭히 변용한 사례들이 많다. 특히 상호가 펼치는 각종 계교들은, 흡사 셜록 홈즈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것 같은 느낌까지 있다.

 그러나 두 소설 모두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은 결말부이다. <칠칠단의 비밀>의 경우 <동생을 찾으러>보다는 서사 안배가 잘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작품 역시 결말부가 급히 마무리되었으며 허술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동생을 찾으러>는 전체적인 서사의 균형조차 조금 기우뚱하다. 장르물의 초창기 작품들에게 이 정도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그럼에도 이 책을 읽다보면 방정환의 타고난 재능에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앞에서 이야기한 장점들도 분명히 있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아직도 생생하게 읽히게 하는 방정환의 필력이다. 그러니 나는 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한국 장르 소설이 꽤나 기분좋게 출발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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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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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강점은 논리성도, 깊이도 아니다. 지독한 일관성이 진정한 강점이다. 뻔한 생각이라고 여기다가 어느 순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해독제인 동시에, 최후에 살아남을 유일한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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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미스터리
엘러리 퀸 지음, 김석희 옮김 / 섬앤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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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떨어지는 단편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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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3권 합본 개역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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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편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 내에서 숨을 쉬는 것과 같지 않을까. 단편 소설이나 시와 달리 장편 소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읽기 쉽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장편소설이 일정한 시간 내에 처음부터 끝까지읽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장편 소설은 읽다가 어느 순간 끊어야 하고, 그 때 잠깐 미뤄두었던 삶은 다시금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소설과 삶은 계속해서 서로 침범하고, 소설은 더 이상 거리를 두고 읽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장편 소설은 문학 장르 중 가장 책읽기의 본질에 부합하며, 단편 소설이나 시는 오히려 음악이나 미술, 영화에 가깝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따라서 장편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드는 모종의 허탈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현실의 생을 지탱해주던 하나의 세계가 끝난 것에 대한 허탈감. 역자가 쓴 작품 해설에서,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글쓰기를 정신분석에 비유하는 행위를 비웃으며 작품 완성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행복이 아닌 허탈감이라고 고백한다. 아마 글쓰기를 소설 읽기로 바꾸어도 이는 성립할 것이다. 기승전결을 완전히 갖춘 소설이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수 있고, 혹은 명료한 인식이나 벅찬 감동으로 마무리하는 소설이라면 이 허탈감을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소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러한 허탈감 속에서 누군가는 내용을 반추하고 누군가는 책을 들춰보며, 또 누군가는 글을 쓰고 누군가는 독서 모임에 나감으로써 흐릿해져가는 세계를 조금 더 지속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이러한 노력 또한 그저 투정일 뿐이다.

 

2.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세계를 지속시키려는 노력이 투정일 뿐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세계의 모든 의미를 한순간에 뽑아내어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끝끝내 무겁게 짓눌려 있던 감정마저 흩어내 버린다.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책을 읽은 후의 나는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 묘한 허탈감만이 남을 뿐이다. 세계를 지속시켜 보려 해도 할 수 없다. 이미 저 세계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1<비밀 노트>는 원초적 혼돈과 고통으로 가득 찬 세계이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배경 아래, 온갖 형태의 폭력이 아무런 감정 없이 발생한다. 이토록 어두운 세계이기에 쌍둥이의 생존도 그토록 어두울 수밖에 없다. 생존을 위한 그들의 단련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단련일 뿐이다. 거기에는 어떤 희망도,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다. 홀로코스트의 현장 앞에서 그들은 슬픔 대신 구역질을 느낀다.

반면 2<타인의 증거>는 훨씬 더 인간적인 세계이다. 여기에는 전쟁이라는 배경이 없다. 그 대신에 체제 간의 대립과 긴장, 그에서 촉발된 불안의 감정들이 있다. 사랑과 성욕, 호기심과 갈망이 중첩되어 얽혀 있고, 또한 미움과 자조가 있기도 하다. 모든 인물들은 제 각기 나름의 사연을 갖고 있고, 그것들은 모두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동반한다. 그러나 이 모든 사연은 결국 비극으로 끝난다.

슬픔 대신 구역질을 느꼈던 그들이 구역질을 멈출 때, 최종적으로 느낄 것은 슬픔이다. 거기에 행복은 잠깐 왔다가는 것일 뿐이다. 고통을 행복으로 바꿔보려 하지만, 끝내 슬픔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바로 삶이다. 그런데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2부 말미에서 이토록 아픈 삶의 현장 앞에 더 아픈 진실을 폭로한다.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

마지막 두 페이지로 인해 모든 것이 뒤집혀지는 것은 (지젝이 이름 때문에 헷갈렸다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기법이다. 그러나 이 둘은 다르다. 왜냐하면 아가사 크리스티는 장편을 단편처럼 쓰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을 지배하는 재빠른 호흡은 소설을 장편보다는 단편처럼 읽을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거기서 마지막의 뒤집기는 하나의 유희가 된다.

그러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세계에서 뒤집기는 유희가 아니라 조롱이다. 삶의 모든 희노애락과 원초적 공포마저 깃든 모든 세계의 부정. 삶과 존재는 그저 하나의 거짓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독자는 깨닫게 된다. 이 세계 뿐 아니라 본인의 세계조차 거짓말일 수 있다는 것을. 본인의 삶과 존재조차 하나의 거짓말이라는 것을.

 

3.

<50년간의 고독>은 거짓을 넘어 진실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파편화되어 있다. 거짓된 삶과 진실된 삶, 그리고 현재와 꿈이 마구잡이로 뒤섞인다. 물론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 별로 아프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진실은 그저 또 하나의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인공 둘이 모두 그것을 거짓말처럼 느낀다.

작가는 주인공 둘이 만나 진실을 부정해버리는 장면을 통해 진실의 중요성을 되묻는다. 진실이 정말 진실이라면, 진실을 찾았을 때 삶은 맑게 개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초라하고, 그들 뿐 아니라 모두가 초라하다. 파편화되어 뒤섞인 이 삶은 정말로 진실이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진실은 존재의 세 번째 거짓말이다.

<비밀 노트>에서 느껴지던 무겁게 짓누르는 어둠과, <타인의 증거>에서 느껴지는 존재의 비통함은 <50년간의 고독>에서 완전히 해체되어 버린다. 여기서 느껴지는 것은 그저 거대한 듯 작은 허무일 뿐이다.

그렇다. 결국 세상은 허무하고 삶도 허무하며 존재도 허무하다. 이 소설은 결국 존재의 허무를 확인하는 여정이다. 또한 이 소설은 작가 본인이 행하는 허무를 향한 글쓰기이도 하며, 독자가 행하는 허무를 향한 책읽기이고 하다. 더 나아가 한 세대 전체가 허무를 확인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40년대와 50년대에 믿었던 희망은 결국 80년대에 가서 해체된다. 존재는 결국 거대한 권태를 느낀다. 희망은 오직 죽음에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세대를 거슬러 4~50년대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삶을 반추해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것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투정이다. 왜냐하면 모두 거짓이니까.

이 글 또한 그러한 투정의 일부다. 그렇기에 이 투정 끝에서 나는 다시금 허무를 느낀다. 그러나 뒤집어서 말하면 투정을 계속하고 허무를 느끼는 것은 운명이므로, 이 투정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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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3-13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캘채 2023-03-13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서니데이 님도 좋은 하루보내세요^^

은하수 2023-03-13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작 되심을 축하드립니다.
리뷰도 너무너무 잘 읽고 갑니다.
전 이 책 읽으면서 살짝 회의가 왔거든요.
끝가지 잘 읽어봐야겠군요.
용기를 얻어 갑니다^^

캘채 2023-03-13 23:22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