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강남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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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오히려 더 밝은 곳그렇다고 밤인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는 곳.

대치동 447번지에 위치한 38층 고층아파트 침실에서 내려다본 강남이다.“

 

강남에서 일어나는 부와 쾌락의 어두움을 그린 소설메이드 인 강남이다.

저자는 주원규열외인간 잔혹사반인간 선언』 등의 책을 쓰고 tvN 드라마 <아르곤>을 집필한 작가다.

드라마 작가라서 그럴까이 책 역시 드라마나 영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소재도 소재고묘사나 사건 전개 등도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장면들이 머릿속에 쉽게 상상되는 책이었다.

표지 디자인이 꽤 잘 된 책이라고 생각한다양복을 입고 얼굴을 가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슈퍼맨과 배트맨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다작중 '설계자'의 역할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일러스트다.

 

?Y로펌의 주목받는 변호사인 '민규'는 일반 변호사들이 하는 일과는 조금 다르다강남의 재력가권력가들에게 의뢰를 받고 유명인들이 사건이나 사고에 휘말리면 그것을 의뢰인들이 원하는 대로 조작하는 것이 민규의 일이다이러한 일을 하는 변호사를 이른바 '설계자'라고 부른다.

어느 날 강남의 카르멘 호텔 펜트하우스에서 열 구의 시체가 발견된다다섯은 남성다섯은 여성인데시신은 전부 나체다사인은 사체 복부의 자상정황상 마약에 취해 혼음 파티를 즐기다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여성 다섯은 콜걸남성 다섯은 금감원증권회사부동산 브로커 등인데문제는 그 다섯 명 중 하나가 인기 연예인 '몽키'이다.

민규가 받은 의뢰는 몽키의 죽음을 보다 명예롭게 포장하는 것.

그리고 또 한 명의 주인공인 강력계 형사 '재명'이 있다.

재명은 하루아침에 3억 원의 도박빚을 지게 되는 등 행실이 별로 좋은 형사는 아닌 것 같다그러다 카르멘 호텔 펜트하우스 사건을 접하게 되는데그는 몽키의 친부인 서린개발 회장 민경식에게 의뢰를 받게 된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찾아 잔혹하게 죽여달라고.

 

?어두운 주제에 비해 스토리 자체는 제법 평이하다복잡한 추리를 필요로 하거나 시간대를 왔다갔다하는 일 없이단지 민규와 재명에게 초점을 번갈아 맞추며 사건 전개에 집중한다소재도 흥미로운 만큼 몰입해서 책을 읽을 수 있다.

작품에서 그려지는 강남 상류층의 모습은 정말 지저분하다마약은 기본에 스리섬 등의 용어가 빈번히 등장하고 형사에게 돈을 쥐여 주며 살인청부도 한다영화나 드라마 등 대중매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패한 상류층의 전형이다돈도 많고 권력도 있고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중산층들보다 잘났다는 사람들이 한다는 짓은 전혀 잘나 보이지가 않는다.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보통 이런 장르의 서사에서는 주인공이 보다 정의로운 중산층으로 등장하여 최종적으로 부패한 그들이 마땅한 벌을 받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데(영화 베테랑이나 검사외전을 떠올려 보자), 이 작품은 두 주인공마저 모두 직업윤리를 망각한 채 돈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그리고 끝까지 변하지 않는 평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예시로 든 두 영화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주체인 형사 캐릭터조차도 이 작품에서는 도박빚이나 지고 살인청부에 협조하는 인간이다그런 주인공이 두 명 다 법의 집행자라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랄까.

도무지 저자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서 작가의 말까지 읽어 보니공멸의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를 강남의 오늘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말인즉슨실제로 강남에서는 이런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거나 일어났다는 뜻일까.

작중 인물이 사망하며 '어쩔 수 없지여긴 강남이니까.'라는 말을 하며 죽음을 받아들일 정도로 강남은 '그들만의 리그'라는 건가.

 

?나는 강남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거기서 살아본 적도 없다그냥 땅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싸며 한국의 대표적인 부자들의 마을이라는 것밖에는.

이 책은 자본에 미친 자들이 어떤 비극을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해 줄 만큼 심오한 책은 아니다대신 내가 주목한 점은 다른 쪽인데작중 등장하는 콜걸 '정혜주'와 '검은 개들의 왕'이라 불리는 포주 '엄철우'이다.

정혜주는 그쪽 바닥에서는 유명해서 높으신 분들만 상대하고엄철우는 국적도 출신도 모르는데 별명까지 붙을 정도로 엄청난 포주라고 한다그런데 책에서 묘사하길 스모키 화장과 모자로 가리는 그들의 얼굴이 젊다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어려 보인다고 한다.

이들이 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만어리다는 말이 더 어울릴 나이대의 사람들을 어둠 속으로 몰아넣는 곳이 지금의 시대라는 것은 느껴졌다.

 

나한테 궁금한 건 이제 딱 하나야내 통장에 30억이 꽉 채워질 수 있는지 없는지.”

 

?한번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인데한 가지 불편했던 점.

콜걸들이 많이 등장한다그건 상관없는데 다른 등장인물은 그녀들을 사람 취급도 안 하고부자가 그녀들 중 하나를 집단강간할 정도로 취급이 정말 안 좋다그리고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전부 콜걸이다.

이 책이 인권을 말하는 작품도 아니고 도덕과는 거리가 멀며여성 인물을 무조건 넣어야 한다거나 올바르고 정의로운 인물로 나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긴 한데왜 꼭 이래야 했는지 난 잘 모르겠다.

게다가 주인공 민규는 작품의 첫 등장에서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묘사가 나오고줄거리의 중요한 사건인 카르멘 호텔 펜트하우스 사건도 혼음 중 일어난 사건이다.

강남의 욕망과 일그러진 쾌락을 그리고 싶었던 건 알겠는데 왜 꼭 이렇게 성적인 부분을 부각해야만 했을까?

성적인 묘사를 그리 반기지 않는 내 취향 문제도 있긴 할 텐데그래도 좀 아쉽다안 그래도 소재 자체가 자극적인데 지나치게 자극성만 추구한 것 같달까.

 

진실감춰질 수 없는 것가공되지 않은 본연의 것.”

 

?화려함으로 무장한 채 온갖 오물을 묻히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메이드 인 강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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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 심윤경 장편소설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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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쁘고 아무 생각 없는 별이 되는 대신 부끄러운 유기아동이 되어서 세상의 몫이 되어야 마땅한 창피함을 대신 짊어졌다."

 

당당하고똑똑하고독특한 아이 '윤설'의 이야기인 설이이다.

 저자는 심윤경자전적 성장소설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주인공 설이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풀잎보육원 앞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졌다설이의 의지와 아무 상관없이 벌어진 이 일은 설이의 삶을 정의하는 가장 큰 부분이 되어 버렸다.

 설이는 세 번 파양당해 함묵증을 앓은 경험이 있고올해 열세 살이 되었으며졸업을 앞둔 지 얼마 되지 않아 세 번째 파양을 당하는 바람에 우상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설이에게 미안했고안타까웠다.

 설이의 삶은 많은 부분이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굴곡져 있었다설이 주변의 어른들은 설이를 멋대로 이곳저곳에 보내고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쳐다보지도 않거나 멸시한다설이가 쌓아 온 것들을 마음대로 정의하고 누가 정했는지 모를 세상의 기준에 맞출 것을 요구했다.

 한때 잠깐 내게 머물렀다 금방 떠나버린 나의 어린 시절내게도 분명 저런 것들이 요구되었다그렇게 해야 한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했고그때 그렇게 살아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해 버리는 어른이 되었다.

 해야 한다고 하니까 했던 나와는 달리 설이는 자기 자신을 확실히 붙잡은 채그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거기에 당당히 반항하기도 한다화장을 하고집을 나오고어른들의 말에 또박또박 말대답을 하거나 흘겨보는 것은 반항이었기만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설이의 노력이었다.

 어느 작품에서 '나는 이제 세상을 바꾸지 못한 죄를 물어야 하는 나이인 게지.'라는 문장을 읽었던 적이 있다나도 어느새 그런 나이에 발을 들이고 만 걸지도 모른다.

 

"사실이라는 건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같아."

 그게 그렇게 무서우니까 세상엔 그렇게 많은 거짓말들이 있는 거겠지.

 

"얘야제발 어른 말을 좀 들으렴!"

 실제 이 대사가 나왔던 적은 한 번밖에 없지만그동안 등장한 모든 어른들이 설이에게 늘 그 말을 하고 있었다눈으로표정으로규칙으로 늘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그나마 예외는 설이의 위탁모인 이모 정도였을까설이의 생각개성가치 등은 어른들의 가진 것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고잔머리라고 정의되었다.

 모든 어린이들이 그렇다어른들이 보기에 어리고 미숙할지라도어린아이들에게도 분명한 생각과 좋아하는 것싫어하는 것이 있고그 모든 것들에는 이유가 있다한 아이이자 한 사람을 구성하는 그것은 어른들의 눈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비친다.

 그래내 모습과 같았다.

 절대 그런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어느새 나는 8살 어린 내 동생을 그렇게 보고 있었다고이 책을 읽으며 그 점을 처절하게 깨달았다어린애의 의견보다는 어른들의 의견이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그렇게 은연중에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해 왔다그렇게 아이들의 입을 막았다내 동생에게모든 어린이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했다. '아이'가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야 했는데나와 같은 사람이라고내 의견이 네 의견보다 우선될 이유 같은 건 없다고 말해줬어야 하는데.

 어른과 아이의 의견이 상충될 때는 언제나 어른의 의견이 우세하다어른은 아이보다 더욱 분별력이 있고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아이에게 더욱 좋은 선택을 내릴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는 걸 설이가 보여 준다한 명도 예외 없이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에게 설이는 분명히 외친다.

 "선생님은 거짓말쟁이에요!"

 

"내 안에는 삶이 나에게 가져다준 억울함의 휘발유 통이 가득 쌓여 있었고목구멍 아래에서 그것의 알싸한 냄새를 느끼곤 했다."

 

또다른 아이인 시현 역시 설이와는 조금 다르지만희생양이다.

 시현에게 중요한 것은 부모님에게 중요하지 않고부모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현에게 의미 없는 것이다.

 물론 가족끼리 의견 충돌이 있을 수도 있고그럴 땐 잘 풀어나가면 된다지만중요한 것은 그것이 시현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마지막에 결과를 결정할 수 있는 마스터키는 시현의 손에 주어졌어야 하지 않을까.

 시현 역시 아이이고설이와는 또 다른 입장의 희생양이다그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잠깐 이 아이에게 묻고 싶다.

 설이에게 사과는 했느냐고.

 시현은 설이를 못살게 괴롭히고자존심을 짓밟고설이의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이후 두 사람이 아무리 가까워지더라도시현의 잘못이 없어지진 않는다별거 아니라고들 하는 그 한 마디가 중요하다미안하다고이 한 마디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이런 시현과 우상초 아이들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희생양이 되어더 큰 괴물의 가능성을 품은 채 자라는 모습을.

 우상초 반 아이 중 한 명은, '아버지가 필리핀 가정부가 말을 안 듣는다며 배를 걷어찼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한다.

 아이라는 사람은 가능성의 집합체다어른들이 그 가능성을 멋대로 재단한 결과의도하지 않았던 품지 말아야 할 가능성이 생겨나고 말았다.

 시현은 그 대표격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저자는 말한다아이들이 침묵하는 세상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그걸 따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 책이 길이 되고 빛이 되었으면아이들 전체가 함묵증을 겪고 있는 이 세상에서 아이들의 말길을 환히 비춰 주었으면.

 

"넌 항상 네가 원하는 걸 알고 그쪽을 찾아가거든. 

나침반은 처음엔 원래 많이 흔들리지만결국 옳은 방향을 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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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미숙 창비만화도서관 2
정원 지음 / 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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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허벅지를 꼬집으며 모든 걸 인내하는 모습이었다."

 

창비만화도서관 두 번째 작품인 올해의 미숙이다저자는 만화가 정원.

 정원 작가는 단편 만화 노르웨이 고등어」 「삼점몇키로를 그렸고웹툰 플랫폼 코미코에서 만화 불성실한 관객을 연재했다청소년소설 옥수수 뺑소니에 그림을 그렸다올해의 미숙은 첫 장편 만화책이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람인 '장미숙'의 평범한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극히 평범해서그렇기에 서글픈 그런 삶.

 이 책은 아마 읽은 사람마다 감상과 의미가 모두 다를 것이다충분히 그럴 만한 작품이었다누군가는 더없이 지루했다 말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그 말에 장단 맞춰 주다가 남몰래 눈물 한 방울을 닦아 낼지도 모른다누군가는 미숙에게 도무지 공감이 안 간다고 할지도 모르고 누구가는 미숙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아무것도 담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수없이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작품 같기도 했다사람의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그래서 이 작품에 감상은 있을 수 있어도 비평은 별 의미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아껴 줄 거면 끝까지 아껴 주지....

...씨이발."

 

책을 읽는 내내 상처투성이 삶을 어떻게든 보듬고 핥고 끌어안은 채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처음부터 좋지 않았던 것과 좋은 것 같다가도 결국 나빠지는 것들에 대해서그러다 어쩌다 만나는 좋은 것들을 우리는 필사적으로 붙잡고 살아간다고.

 작중 미숙의 상황은 좋지 못하다가정적이지 못했던 아버지는 폭력을 휘두르고동경했던 언니 역시 미숙을 때린다미숙의 엄마 역시 다정한 사람은 아니고학교에서는 '미숙아'라고 놀림을 받으며 못생겼다는 폭언도 서슴지 않게 듣는다.

 도저히 잔잔할 수 없는 배경 설정인데도 잔잔하다 싶었는데작품 내내 미숙은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화나거나 슬프다는 듯 인상을 찡그리거나 얼굴을 붉히는 일은 있어도소리 내어 우는 모습하다못해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한 번쯤은 크게 소리 내어 울거나 고함쳤어도 좋았을 텐데그럼 좀 시원해졌을 텐데그 많은 상처를 다 어떻게 안고 사나.

 후반부로 갈수록 미숙의 표정은 점점 더 고요해진다.

 

?나는 이 이야기가 '상처에 견뎌내며 사는 법을 배우는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장미숙'은 어렸을 때부터 다 자라 독립을 준비할 때까지 계속해서 상처받기만 한다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은 날도 있었지만 그것도 결국 상처로 남고 만다그런 상처들이 전부 지나가고미숙은 지금까지 그랬듯 태연하게앞으로도 상처투성이일 길로 걸어간다.

 작중 내내 미숙은 '미숙아'라는 별명으로 놀림을 받는다어쩌면 저 별명은 세상이 우리 모두에게 붙인 별명이 아닐까우리는 누구나 상처를 받는 데 미숙하다그걸 끌어안은 채 계속해서 살아가는 데는 더 미숙하다그런 우리에게 올해의 미숙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계속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고좋은 일은 그날 여름의 햇볕처럼 쨍했다 겨울이 되면 사라지고여름이 되면 다시 쨍하니 인생을 비출 거라고.

 우리는 올해도 미숙하고내년도 미숙할 것이고계속해서 조금 더 나아지겠지만 언젠가 어느 순간에서 우린 분명 미숙할 것이다사람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럼 그 순간에 우리는 여전히 미숙한 채로조금 더 나아지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의 일들이 먼 미래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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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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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가능성이 타고 남은 잿속에서 사악하게 반짝이는 현실일까요그게 없으면 훨씬 더 소박하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책은 평범한 샐러리맨이 우주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다.

 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환한 별이 떠오른다꿈이라는 건 너무도 눈부시게 반짝이는 것이라서제대로 눈을 뜨고 쳐다볼 수도 없다그래서 그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사람들도 반짝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와는 달리 책 속의 주인공 이진우의 여정은 참으로 고달프기 짝이 없다내가 느끼기에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히 '꿈을 좇아라'뿐만 아니라 '원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토록 큰 노력이 필요하다'인 것 같다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진우와 다른 후보들은 책 속에서 몇 번이나 자신의 한계를 넘는다.

 

"삶은 가끔 사람을 기만하는 모양이다하지만 처음부터 가망 없는 일을 권유하진 않았겠지그 정도로 잔인하지는 않겠지."

 

작가는 책을 쓰기 위해 무려 13년의 자료조사 기간을 가졌다고 한다그 노력이 책에 깊이 녹아들어 있어서우주인이 되기 위한 자격이나 과정훈련 내용이 아주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직장을 얻은 이후로도 평소에 끊임없이 우주인을 되기 위해 몸을 단련하던 이진우조차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다바다에 불시착했을 때 탈출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 체감 온도 90도 속에서 겹겹이 옷을 껴입고 견디거나무중력 상태를 재현하기 위해 상공에서 빠르게 낙하하는 전투기 안에서 환복을 하는 것이 훈련 내용이다이 고된 훈련을 거치면서도 건강 상태가 무척 중요해서감기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탈락 위기에 놓이기도 한다.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는 이 생활을 하다 보면 회의감이 들 법도 한데등장인물들에게는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그저 탈락에 대한 두려움과동료이자 경쟁자인 서로를 향한 죄책감과뽑히고 싶다는 열망뿐이다.

 그 정도의 열정과 능력을 가지고서도 못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이 책을 읽는 내내 차갑게 다가왔다.

 

"용기는 계속할 힘이 아니다힘이 없어도 계속하는 것이다우레 같은 외침만 용기가 아니다쉬었다가 다시 해보자나지막이 속삭이는 것도 용기다."

 

우주인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넷 중 단 하나나 둘만 우주로 나갈 수 있다아차하면 아무도 가지 못할 수도 있다.

 나 혼자만 잘하고 노력해서 되는 일이라면 그나마 좀 위안이 될 텐데내 손이 닿는 않는 외부적 요인 때문에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도 너무 크다이제 난 돌아갈 곳도 없는데.

 꿈이라는 단어가이토록 잔인하고 너저분하고 답답한 단어였던가읽는 내내 내가 그리던 꿈과는 너무도 큰 차이에 고민했던 것 같다그 과정이 언제나 즐겁거나 아무런 고난도 없으리라는 팔자 좋은 상상을 한 것은 아니지만(dream)이란 단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일 만큼 흙탕투성이일 줄은 몰랐다.

 

"언제나 그렇다모든 앞날은 지금 나한테서 출발한다."

 

하지만주인공 이진우의 행보를 마지막 장까지 지켜보고 생각해 보았다.

 꿈은 반짝일지라도 그 과정까지 빛나리라는 법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그 과정은 생각보다도 더 무덥고 힘들고 때로 아니 제법 자주 지저분하기도 한 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생각했다꿈이 빛나는 것이 아니라 꿈꾸는 사람들의 열정이노력이어떤 것에 대한 그 애정이 빛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그런 사람들의 용기가여정이힘겨운 결단과 지난한 고민이 너무도 귀중해서 꿈이 빛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꿈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그 과정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힘겨울지도 모른다당신을 끝없이 울게 할 수도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할 수도 있다어쩌면 아무리 간절히 바라고 노력할지라도 결코 거기 가닿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나 역시 그렇겠지.

 하지만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그 모든 과정의 당신이 넘치도록 아름다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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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생활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72
조규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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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뭐랄까, 어떤 일이든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잘되지 않더라도 버텨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버텨 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잘된 거니까.

그것만으로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첫 장을 펼치고 하루 만에 다 읽어 버렸다. 청소년소설이 내 학창시절을 지켜 주었는데, 그런 책을 다시 만난 것 같아 기쁘고 반가웠다.

독자를 끌어들일 만한 재미도 분명 가지고 있는데, 게다가 한국 문학계에서 흔치 않은 SF소설이다.

정확히 언제인지 모를 미래 시대. 경제적으로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은 '청소년 기숙사'에 맡겨져 길러지는 경우가 많다. 이 이야기는 그런 청소년 중 하나인 '진진'이 가면 회사 '아이마스크'의 베타테스터로 선정되면서 시작된다.

아이마스크에서 출시하는 가면은 보통 가면이 아니다. 판게아라는 물질로 만들어진 이 가면은 묘사된 내용을 토대로 상상해 보자면 가면보다는 팩에 가까운데, 착용하는 순간 사용자의 얼굴을 보다 아름답게 바꿔 준다.

이 가면은 신기한 만큼이나 가격이 매우 높아 소수의 경제적 부유층만 사용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가면 사용자들을 '가면생활자'라고 부른다. 가면생활자와 가면 베타테스터들에게는 또 하나의 특전이 주어지는데, 가면생활자들 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정원'이라는 부자들만의 낙원이 그것이다. 진진은 베타테스터로 선정되면서 그토록 꿈에 그리던 정원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된다.

한편 진진과는 다른 청소년 기숙사에 살고 있는 오타는 어느 날 자신의 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서 뜻 모를 편지를 받는다. 오타는 그 편지를 통해 '안티마스키드', 가면에 반대하는 집단의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형이 아이마스크 연구원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면에 뭔가 심각한 결함이 있고, 형은 아이마스크 측에 감금되어 있다고 추측한 안티마스키드는, 그 진위를 알기 위해 오타를 베타테스터로 위장시켜 정원으로 들여보내기로 한다.

이러한 설정에서도 확연히 느낄 수 있듯이, 빈부 격차가 눈에 보이는 형태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경제적 부유층이 빈곤층을 배척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이러한 모습은 미성년자인 진진에게도 여과 없이 드러나는데, 이로 인해 진진의 열등감은 두려움으로 바뀌어 버린다. 상대적 박탈감과 배척감이 청소년인 진진에게도 고스란히 얹혀지는 것이다.

기존의 기득권층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부조리가 미래 세대에게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한편 같은 정원에서 베타테스터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는데도 진진과 오타의 행동이나 생각은 사뭇 다르다.

진진은 어떻게든 더 오래, 자주 정원에 머물고 싶어하며 가면생활자들 사이에 섞이기 위해 룸메이트의 구두나 옷을 훔쳐서 착용하고 나오기까지 한다. 그러나 오타는 따로 목적의식이 있어서였을까. 정원의 화려함에 크게 현혹되지도 않고 자신의 본 목적을 잊지 않는다.

정원과 가면에 집착하는 진진을 보면서는 조금 씁쓸했다. 아무리 애써도 결코 가면생활자들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것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여기서 기 드 모파상의 『목걸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친구에게서 값비싼 목걸이를 빌렸다가 그것을 잃어버린 르와젤 부인은, 목걸이 값을 갚기 위해 온 생을 바쳐 돈을 벌었지만, 그녀가 빌린 목걸이는 사실 몇 푼 안 하는 가짜였더라.

가면을 단단히 붙잡은 채 기숙사로 도망치는 진진의 뒤를 쫓아가며 계속 생각했다. 정말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바라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만, 딱 한 번만 생각해 본다면 좋을 것을.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은 좋은 청소년소설 중 하나였지만, 이야기가 조금 더 길었으면 했다.

등장인물 각자가 마주한 사건은 얼추 마무리되었지만, 정원과 아이마스크와 가면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건재하다. 소설은 이제 막 무언가 시작하려 할 때 끝나 버린다.

그 점이 아쉬웠다. 계속해서 사회의 도구로만 이용당해 온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무언가 바꾸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이 책은 거기까지는 보여 주지 않는다. 진진과 오타는 분명 한 단계 성장했지만, 그 성장한 날개를 마음껏 펼치는 전개까지 갔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물론 현재의 결말도 깔끔하니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기 마련이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본성이란 것은 추악한 형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면에 먹힐 수는 없다. 거기에 지배당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번 잘 생각해 보자. 정말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말 바라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말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런 것들은 조금만 방심해도 잊히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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