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가 과거의 사실에 한정되지 않고 현재에도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것이 현재에 시사하는 바가 있고 또한 교훈은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역사는 기술하는 사람 또는 저자의 주관이 반영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역사가 얼마나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가 하는 점은 우리가 역사에 접근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송시열이란 이름이 조선왕조실록에 3천번 이상 언급될 정도라 하니 인물의 호악을 떠나 그 영향력이 대단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생원시에 급제한 것이 인조때이고 사약을 먹고 죽게되는 것이 숙종때이니 실록에 거론될 수 있는 것이 네 임금의 시기에 해당된다. 사후 60여년이 지난 영조때에 문묘에 종사됨으로써 유학자로서의 최고의 영예를 받게 되고 정조때에는 송자대전이라는 책까지 편찬되었으니 후대의 섬김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만큼 송시열의 영향력이 컸다는 것이리라. 

  그러나 역사는 한 틀에 갇혀있지 않고 변하는 법. 송시열은 비롯한 서인들은 중국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바뀌고 서양 문물이 동양에 들어오고 있음에도 과거의 틀에서만 고집을 부린다. 즉, 성리학과 주자를 최고로 여기며 그 밖의 것은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배척한 것이다. 또한 중국을 군주의 나라로, 조선을 소중국으로 생각한 것이다. 효종의 북벌 역시 그 현실성 여부를 떠나 이들에게는 받아들여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집단이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할 때 그것이 나머지 사회 구성원에 미치는 폐해는 과거에만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열린 사회,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그런 면에서 정당하고 의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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