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순간 (양장)
파울로 코엘료 지음, 김미나 옮김, 황중환 그림 / 자음과모음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믿을 수가 없다. 코엘료가 이 따위 책을 펴냈다니... (혹은 출판사의 영악한 전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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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구판절판


나는 그녀를 사랑했던 것일까.
내가 사랑한 것이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분별없는 끌림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의 우행(愚行)이 사랑'이라면 결혼은 '장기간에 걸친 우행'이라는 니체의 말을 나는 결혼 전부터 언제나 숭상했다. 서른일곱이 될 때까지 결혼하지 않았던 것도 그 잠언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2년여에 걸친 결혼 생활은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진실로 사랑한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온갖 것들이 내 속에 들어와 본래의 가름을 넘어 해낙낙 해낙낙 한통으로 섞이는 뜨거운 열락의 순간도 시시때때 있었다. 문제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선 '우행'이라는 그 확신이 계속 유지됐었다는 점이었다. 혼자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실려 있을 때, 개수대에 모아놓은 지저분한 빈 그릇들을 무연히 내려다볼 때, 혹은 빅뱅의 오르가슴을 만나고 숨을 고르기 위해 그녀로부터 잠시 돌아누워 있을 때, 난데없이 쭈뼛해지며 그 '우행'이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결혼할 때부터 이렇게 다른 방향으로 떠날 날이 오리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던 것도 같았다.-25-26쪽

"달고 시고 쓰고 짜다 인생의 맛이 그런거지
아, 사랑하는 나의 당신 달고 시고 쓰고 짜다
달고 시고 쓰고 짜다 나는야 노래하는 사람
당신의 깊이를 잴 수 없네 햇빛처럼, 영원처럼."-70쪽

"꼭 대학까지 다녀야겠냐?"라고 묻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치사하고 치사했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어둠 속에 귀를 열어놓고 있으면 밤낮없이 사람들이 아우성, 아우성치는 거대한 소움이 이 고요한 호숫가에까지 들리는 듯했었는데, 그 역시 세계의 모든 아버지들이 중얼거리는 "치사해, 치사해, 치사해!"의 장대한 합창이었던가 보았다. 애비들이 치사하면 세싱이 모두 치사해진다는 아버지의 말은 하나도 그른 데가 없었다. 치사한 아버지들과 치사함을 견뎌내는 아버지들에겐 모두 '새끼'들이 딸려 있었고, 아버지들의 소망과 달리, 그 새끼들 역시 치사하게 살아가며 "치사해, 치사해, 치사해!"를 대물림받는 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76-77쪽

"3월은 일종의 공백기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겨울의 권력은 레임덕을 맞고 있지만 아직 봄의 권력을 다 장악한것도 아니니깐."-220-221쪽

예전의 삶이 부랑이었다면 그즈음의 삶은 유랑이었고, 자유였고, 자연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역시 참된 단맛이었다. 누가 인생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말할 참이었다. "인생에 두 개의 단맛이 있어. 하나의 단맛은 자본주의적 세계가 퍼뜨린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빨대로 빠는 소비의 단맛이고, 다른 하나는 참된 자유를 얻어 몸과 영혼으로 느끼는 해방감의 단맛이야." 그가 얻은 결론은 그랬다. 이가 썩어가기 마련인 단맛에서 새로운 생성을 얻어가는 단맛으로 그 자신의 인생을 극적으로 뒤바꾼 것이었다.-253-254쪽

아버지들은 근엄했지만 아무 힘이 없었다.
체제에 편입돼 과실을 따 오는 대표 선수로서 그럴듯해 보이긴 했지만, 가족들이 거대한 소비 체제에 들어 있는 한 아버지에겐 그 체제를 방어할 항거 능력이 전무했다. 핏줄에게 빨리고 핏줄의, 핏줄의, 핏줄에게도 빨렸다. 핏줄이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명분으로 삼은 저들이 자신들의 깔때기를 채우기 위해 그 구조를 전적으로 허락하고 돕기 때문이었다. 성장한 자식을 독립시키겠다고 해도, 핏줄이므로 아버지만이 비난받는 이 구조는, 체제의 입장에선 양보할 수 없는 규범이었다.
-333쪽

그 대신 자식들은 늙은 아버지를 돌볼 필요가 없었다.
여력도, 시간도 없다고, 그러니 늙은 아버지는 체제가 돌봐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노인 요양원을 더 많이 지어 자식들의 짐을 덜어야 한다는 주장을 복지라고들 불렀다. 철저히 불공정한 비윤리적 거래였으나 아버지들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에 침묵하는 게 최선의 미덕으로 간주됐다. 늙은 아버지의 죄는 더 이상 생산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생산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늙은 아버지들은 '폐기품'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간편히 처리해야 이미 성장해 또 다른 자식들을 거느린 자식 출신의 젊은 아버지들을 체제가 마음놓고 부려먹을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가리켜 역사 발전이라고 말했다.

거대한 고리(高利)의 구조가 바로 역사 발전이었다.-333-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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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빈곤 - 이기주의는 자본주의의 필요악인가
찰스 핸디 지음, 노혜숙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7월
품절


나는 우리가 창조한 서구 사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염려스러워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우리의 복지 증진에 기여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빈부 격차와 기진맥진한 근로자들을 보면 우리가 보다 만족스러운 세상을 향해 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나로서는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경제체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우리 자신의 삶까지 하나의 사업으로 바꾸어버리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방식이 정답처럼 보이지는 않는다.-6-7쪽

우리가 누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것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까? 또한 만일 ILO(국제노동기구)의 조사 결과처럼 세계 노동자의 3분의 1이 현재 실직자이거나 불완전 취업자라면, 그러한 부를 창조하기 위해 필요한 효율성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성장에 대한 열정은 어디에서 끝날 것인가? 만일 현재와 같은 속도로 성장을 계속한다면 100년 후에는 모든 것을 16배로 소비하게 될 것이다. 지구의 환경이 그 짐을 견딜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다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70여 개의 회사가 다수의 소국가보다 규모 면에서 상위로 평가되고 있는데, 그 규모는 계속해서 더욱 성장하게 될까? 그리고 그것은 정말 중요한 일일까?-7쪽

문제점은 변화와 시대에 따라 불가피하게 생겨나기 마련이고, 기술과 경제의 성장으로 대부분 해결될 것이라는 가설에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 풍족한 사회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 허덕이며 삶을 탕진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화가 난다. 삶과 삶의 목적에 대한 보다 선험적인 성찰의 부재,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왜곡시키는 경제의 통념이 나는 걱정스럽다. 돈은 삶의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7-8쪽

우리는 과학, 경제 그리고 종교가 저마다 경쟁적으로 주장하는 그릇된 필연성Certainty에 현혹되어왔다. 과학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사회가 발전하므로, 우리는 뒷전에서 그것을 즐기기나 하라고 넌지시 제안하고 있다. 경제는 물질적인 번영을 인류의 유일한 목표로 제시하는데, 만일 우리가 그러한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시장의 법칙과 효율성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다른 모든 문제점들을 감수해야 한다. 종교 역시, 만일 우리가 그들의 교리를 지키고 어떤 초월적 힘을 믿는다면 이승이 아닌 어떤 상상 속의 저승에서라도 잘살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들 나름의 궤변을 펼친다. 이성적으로 보면 그런 이론들 중에 일부는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우리의 목적이 이러저러하게 예정되어 있다는 견해에 반감을 가지게 된다.-8쪽

자본주의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대신 경제적 의무를 강조함으로써 우리를 노예로 만들지도 모른다.-9쪽

믿음이란 사실을 밝힐 수 없는 시점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신의 믿음이 옳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만족스럽게 증명해줄 수는 없다. 그러나 진리에 대해 다른 사람과 이해를 같이 한다면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10쪽

나는 아일랜드인이며 다른 사람들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삶은 나로부터 출발한다. 나는 그것을 '올바른 이기주의Proper Selfshness'라고 부른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 자신을 가장 잘 알게 된다. 올바른 이기주의는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넘어서는 보다 큰 목적을 발견하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연설처럼, 사람은 자기 자신 너머를 바라볼 때 자신에게 가장 만족할 수 있다.-14쪽

만일 우리가 만든 체제가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원칙을 근거로 하고 있다면 그들은 구태여 신뢰를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능하며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종종 우리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다.
낙관론은 항상 실망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희망이 없는 삶은 우울하다.-15쪽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 오래전에 주장했다. "부는 분명 우리가 추구하는 선이 아니다. 왜냐하면 부가 이바지하는 유일한 목적은 무언가 다른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이미 언급한 목적(즐거움, 미덕 그리고 명예)들은 선으로 고려될 만한 더 나은 자격을 갖추고 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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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품절


"내가 몇 년째 상담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상담자 중에는 답장을 받은 뒤에 다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 답장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지."-167쪽

지금 선택한 길이 올바른 것인지 누군가에게 간절히 묻고 싶을 때가 있다. 고민이 깊어지면 그런 내 얘기를 그저 들어주기만 해도 고마울 것 같다. 어딘가에 정말로 나미야 잡화점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밤새 써 보낼 고민 편지가 있는데, 라고 헛된 상상을 하면서 혼자 웃었다. 어쩌면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 너무도 귀하고 그리워서 불현듯 흘리는 눈물 한 방울에 비로소 눈앞이 환히 트이는 것인지도 모른다.-4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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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더 월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4월
절판


독일 출신의 수리물리학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관련된 문서를 몇 페이지 찾을 수 있었다. 불확정성 원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물리학에서는 움직이는 입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 입자들이 어디로 움직일지 예측할 수 없죠.'
당시에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며 혼잣말로 중얼댔다.
'바로 그게 인간의 운명이야. 임의대로 떨어져 나온 입자들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듯이 인생도 우리를 상상하지 못한 세계로 데려가는 거야. 결국 불확정성 원리가 인간 존재의 매순간을 지배하는 것이지.'-566쪽

인생은 - 가장 고통스러울 때조차 - 본래의 부조리함에서 몇 걸음 떨어져 있지 않으니까.-553쪽

"사람들은 삶을 마음먹은 대로 살지 못해요. 삶이라는 무대에서는 항상 시끄러운 소동이 벌어지죠."
"그러다가 사라지게 되죠, 죽음이 찾아오면."
"죽는 게 두려워요?"
"내가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 내 모든 사연이 죽음과 더불어 사라진다는 게 당황스러울 뿐이죠. '나'가 없는 것. 내 존재가 영원히 사라진다니?"
"'나'가 없는 것?"
나는 번의 말을 되뇌고 나서 덧붙였다.
"일 년 전 내게는 죽음만이 유일한 대안 같았어요."
"지금은?"
"지금은 만신창이가 된 나 자신을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갈지 고민하고 있죠."-459쪽

서가에 꽂힌 백 권 가량의 책 중에서 제법 괜찮은 작품이 더러 있었다. 그레이엄 그린의 <사랑의 종말>을 꺼내 읽었다. 8년 전, 처음 읽었을 때는 감명을 받았지만 상실감을 다룬 주제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린의 정확한 언어와 간략하고 함축적인 문장은 여전히 마음에 들었다. 그린은 소설에서 '인간은 충동적이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감정에 충실하려는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다.'라고 썼다. 예리한 통찰이었고, 내게 큰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그린이 '모든 인간은 결점이 있고, 상처가 있고, 혼돈의 삶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욕망이 있다.'라고 설파한 점도 위로가 되었다.-334쪽

"왜 내 인생은 상호 모순되는 불운의 연속일까?"
"우리는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는다/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다/그리고 그 일이 우리를 살아가게 해준다는 생각에 기댄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브라우닝 풍이긴 하지만 사실은 매튜 아놀드의 시야. 아무튼 당분간은 일에만 전념해. (...)"-182쪽

"우리의 인생에서 접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지의 여부가 인생이라는 서사시를 어떻게 기술할지를 결정합니다. 누구나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 선택합니다. 나이를 먹게 되고 경험이 축적되면서 최초의 인식은 차츰 변하죠. 월러스 스티븐스가 시에 썼듯이 검은 새 한 마리를 보는 방법만 해도 13가지가 있습니다.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지 결정하는 건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인생 또한 매우 주관적이죠."-158쪽

나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바람이 등 뒤에서 불었다. 돌아올 때를 생각하니 아찔했다. 바람이 등을 떠밀다시피 했다. 눈은 커지고 콧구멍이 얼어붙는 느낌이었지만 짭짤하고 알싸한 공기를 피하지 않고 들이마셨다. 광활한 해변에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밖에 없었다. 발목이라도 겹질려 쓰러지면 며칠이 지나도 발견되지 않을 곳이었다. 그렇지만 혼자 위험한 곳에 있다는 생각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변을 걷다보니 갑자기 엔도르핀이 저절로 솟아나는 것 같았다. 마치 만물에 신성이 깃드는 순간을 경험한 듯 했다. 대자연의 압도적이고 위대한 힘에 저절로 경외심이 느껴졌다. 갑자기 삶의 시름도 저만큼 물러섰다. 어두운 빛깔의 성난 바다가 빚어내는 웅장한 풍경에 잡다한 생각들이 모두 녹아내렸고, 나는 비로소 환희를 느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온몸을 관통했다.
밤잠을 설치게 만든 온갖 고뇌를 벗어던지는 순간, 대자연의 경이로운 풍경에 압도되어 시름을 잊은 순간 나는 환호작약했다.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기까지 필요했던 건 추위와 바람, 드넓은 바다에서 포효하는 파도가 전부였다.-144-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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