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재 오늘의 젊은 작가 23
황현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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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재는 고모부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호재에게 고모부 내외는 부모와 같은 사람이었다. 친엄마는 도망간 지 오래였고 택시 운전을 하는 아버지는 일 년에 고작 두 번 정도 호재를 보러 오는 게 다였다. 그마저도 10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빚을 진 누군가를 쫓는 길에 호재를 데려갔고, 아무 소득 없이 끝난 그 추적 이듬해에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 발견된 건 문이 다 열린 채 방치되어 있던 택시뿐이었다.


고모부는 평생 큰 거 한방을 노리는 무일푼의 사내였으나 친절하고 착한 남자였다. 씹다 버린 껌만도 못한 호재를 거둬 그나마 사람답게 만들어준 건 그 가난한 사내였다. 그러나 늘 그렇듯 아이는 나이를 먹고 부모와 소원해진다. 고모부는 재개발 단지에서 인생 마지막 한 방을 꿈꾸며 낡은 복덕방을 운영했다. 매주 로또를 사는, 요행의 꿈을 곁들이면서. 그리고 어느 날 저녁 퇴근길에 괴한의 칼에 맞아 살해당한다. 훔쳐갈 거라곤 낡은 슬리퍼밖에 없는 복덕방이었다.


미스터리가 <호재>의 핵심은 아니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건 고모부의 죽음을 계기로 불려 나온 고모 두이와 그 동생 두오, 그리고 그의 딸 호재의 구질구질한 인생사다. 시간은 과거를 한참 거슬러 이 일가가 어디서부터 파멸하기 시작했는지 보여준다. 문제는 역시 두오였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우연히 시비가 붙은 동갑내기를 죽이면서부터. 폭력에 가담한 두 친구들 대신해 기꺼이 죄를 뒤집어쓰면서부터. 두오는 멍청함을 의리로 착각했고 평생 그 의리의 빚을 받으러 다녔지만 두 친구는 멍청함에 값을 치를 만큼 바보가 아니었다. 이 괴리가 그의 인생을 구렁텅이로 처박는다. 혼자였으면 다행일 그 구덩이에 온 가족이 빠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두이는 살인자의 누나, 호재는 살인자의 딸이었으니까.


그다지 흥미로울 거 없는 이 이야기를 팽팽하게 당기는 건 죽은 줄 알았던 두오가 다시 두이의 앞에 나타나면서부터다. 그것도 1등에 당첨된 로또를 들고서. 불길한 소름이 호재의 등줄기를 타고 오른다. 고모부를 죽인 건 누구일까? 혹시 두오가 당첨됐다는 그 로또가 고모부의 것은 아니었을까? 소설은 의문을 남긴 채 불현듯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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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가의 생각노트 - 좋은 아이디어는 어떻게 탁월한 비즈니스로 발전하는가?
박지영 지음 / 가나출판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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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가의 생각노트>는 린 스타트업 경영 전략을 기반으로 원포인트 강의를 시도한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문제 인식

사업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고객의 불편'에서 시작해야 한다. 써놓고 보면 맥이 풀릴 정도로 당연한 말이지만 망하는 사업의 대부분은 내가 잘하고 익숙한 일에서 싹을 틔운다.


2. 해결책

MVP를 만들어 가볍게 시작해야 한다. 모든 필요를 예측해 완벽한 제품을 만들려는 생각은 집념이 아니라 멍청함이다. 서비스는 끊임없는 피드백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3. 시장 잠재력

현대 사회는 정신이 나갈 정도로 빠르게 변한다. 2022년에는 유튜브 광고 매출이 줄어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애들 장난으로만 여겼던 숏폼이 이제는 영상의 대세가 됐다. 지금은 큰 나무들 사이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조만간 그 숲을 지배할 새싹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4. 비즈니스 모델

무엇으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사업은 결국 이 3개의 퍼즐을 맞추는 일이다. 이 답 안 나오는 과제를 푸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보고 또 보자.


5. 경쟁 우위

당신이 돈을 좀 만진다는 소문이 돌면 여기저기서 당신을 따라 하기 시작한다. 배민과 요기요가 싸우고 카뱅과 토스가 격돌한다. 그들이 주지 못하는 우리 서비스의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 그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6. 성장 전략

쿠팡이 흑자에 전환했다는 거짓말 같은 뉴스를 들었다. 의도적 적자를 계속하며 성장에 치중했던 쿠팡의 전략이 맞았다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역시 스타트업은 폭발적인 성장을 통한 미래 가치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 보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케일을 키울 것인가.


7. 팀 역량과 미션

당신이 투자자라면 회사의 무엇을 보고 돈을 태울 것 같은가? 그 회사의 아이템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한국의 경우 의외로 사람에게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이 세상엔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무엇'이 아니라 '누가'인 법. 이를 잘 설득하려면 회사의 비전과 창업가들의 스토리가 필요할 것이다.


길게 적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던 건 아니다. 사실 이런 부류의 책들이 갖는 공통적인 한계, 뻔한 말들의 러시가 재현된다. 출간은 2020년이다. 고작 2년 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읽다 보면 그때와는 또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라면 솔직히 겁나서 이런 류의 책을 쓰지는 못할 것 같다. 불과 1년 전에 좋은 사례라며 꺼내온 사업이 지금은 망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뻔한 회사를 끌고 들어오자니 너무 약하고. 이 딜레마를 알면서도 시도하는 저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이런 게 스타트업 정신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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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러블 스쿨보이 1 카를라 3부작 2
존 르 카레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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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러블 스쿨보이>는 카를라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나는 이 3부작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스마일리의 사람들>, <오너러블 스쿨보이> 순으로 봤는데, 비슷한 걱정을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면, 시간 순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떤 책을 먼저 읽어도 당신은 이 마스터피스의 깊이와 우아함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물론 이 3부작이 모두 다 번역 출간된 이 시점에서 굳이 시간 순서를 다르게 읽을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아마 판권이 문제였던 것 같은데 팅커와 오너는 열린책들에서, 스마일리는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펴냈다. 나는 팅커를 영화로 시작해 정주행을 노렸으나 중간이 비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금단 현상에 괴로워하다 결국 스마일리에 먼저 손을 댔다. 이제라도 퍼즐을 다 맞췄으니 여한이 없다.


<오너러블 스쿨보이>는 카를라가 무너뜨린 영국 정보부를 스마일리가 재건하는 과정을 다룬다. 스마일리의 역습. 그러나 이 단어가 풍기는 역동적 에너지와 다르게 이 늙은 스파이는 천천히, 은밀하게, 적의 숨통을 조여나간다.


이야기는 3부작 중 가장 방대하다. 중국-러시아-홍콩-영국-태국-베트남-기타 국경을 마주한 동남아시아가 배경이다. 씨실과 날실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어 최종 단계의 문양을 추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심지어 전말이 드러난 최종장에 이르러서도 그 완성된 무늬가 무엇을 그려낸 것인지 모를 정도다. 바로 이 부분이 존 르 카레의 소설을 단순한 장르를 떠나 위대한 작품으로 만드는 요소이자 독자를 괴롭히는 요인이기도 하다.


행간에는 수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어 두 번 세 번 곱씹어야 한다. 그 어떤 스파이도 행동의 이유를 시원하게 밝히지 않는다. 존 르 카레의 캐릭터들은 진짜이기 때문이다. 빈 공간을 유추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이 속을 알 수 없는 노인의 이야기가 그저 지루한 중얼거림으로 들려 피로를 이기기 어려울 것이다. 취향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존 르 카레, 특히 이 카를라 3부작을 지나친다면 인류 문학사의 아주 중요한 페이지를 찢어버린 거라고 생각해도 좋다.


존 르 카레의 스파이 세계는 언제나 회색지대에 놓여있다. 그들의 활약은 결코 영웅적이지 않다. 삶은 늘 비참하다. 이 비참함을 이겨내는 건 사랑 같은, 촌스럽지만 결코 시들지 않는 인류의 보편 가치인데 이걸 강렬히 추구할수록, 그러니까 온 힘을 다해 인간다워지려고 노력할수록, 처참하게 짓이겨지는 게 이 이야기의 특징이다.


스마일리의 이야기를 거의 모두 읽은 이 시점에서 나는 이 작고 뚱뚱한 노인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체 위에 쌓아 올린 정보부, 아니 영국이란 국가는 스마일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인간다워지기 위한 노력을 짓밟아 버리는 체제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저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스마일리가 이 관점에서 그 모든 고독을 짊어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렇다고 용서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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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스 해킹 - 데이터와 실험을 통해 성장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방법
양승화 지음 / 위키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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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랍박스(Dropbox), 이벤트브라이트(Eventbrite), 로그미인(LogMeIn) 서비스의 초기 성장을 이끈 션 앨리스는 '그로스 해킹'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스 해킹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저마다 다른 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혹자는 데이터 분석과 동의어로 생각할 수도, 또 어떤 사람은 마법 같은 저비용 고효율 바이럴 마케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로스 해킹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성장'을 '해킹'하는 것이다. 성장의 이유를 갈기갈기 해체해 가장 확실한 법칙을 찾아내는 일. 이 개념을 좀 더 쉽게 이해하려면 그로스 해킹이 등장한 배경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은 스마트폰이 시작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게 된 환경은 수많은 서비스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열대 우림이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시장은 성숙화 단계에 접어들고, 경쟁은 치열해지고, 소비자의 니즈는 파편화되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했다. 더 큰 문제는 이 필요와 욕망이 빠르게 변화한다는 점이다. 인터넷 세상에선 1억 광년의 속도로 시간이 흐른다. 어제의 핫 아이템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구식이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시장을 조사하고, 수개월, 심하면 몇 년에 걸쳐 기획해 서비스를 출시한다면 마치 구리와 주석을 열심히 연구하여 최고의 청동검을 만들었더니 세상은 이미 철기 시대가 돼버린 것과 유사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핵심은 속도다. 필수 기능만 정제하고 정제해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개발한 뒤 사용자의 이용 방식을 추적해 기능을 추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기획 단계에서 모든 요소를 고려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게 탁월한 재능의 증거였던 시절은 끝났다. 요즘엔 이렇게 일하면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미래는 근본적으로 예측 불가하기 때문에 최선의 방법은 흐름을 파악하여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다.


새로 만든 서비스의 가입자 수가 마음처럼 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전통적인 회사의 전통적인 마케터라면 새로운 프로모션을 기획할 것이다. 가입 시 5천 원 쿠폰 증정! 그러나 아무리 마케팅 비용을 때려 박아도 활성 사용자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가장 유용한 방법은 데이터를 쪼개 보는 것이다. 앱 설치 수는 늘어나는데 가입자 수가 지지부진하다면 회원 가입 UX를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입력 정보가 너무 많은가? 본인 확인 과정이 너무 어려운가? 가입자 수는 폭증했는데 실제 매출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결제 프로세스를 톺아볼 필요가 있다. 카드를 등록하는 방법이 너무 복잡한가? 아니면 선택할 수 있는 결제 수단이 너무 적은가? 이처럼 회원 가입, 결제 등 서비스를 구성하는 프로세스를 서비스 기획에선 퍼널(funnel)이라고 부르는데, 그로스 해킹은 단순하게 말해 이 퍼널들을 최적화하여 이용자의 이탈을 막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책은 이 바닥에서 가장 유명한 프레임워크인 AARRR을 기반으로 그로스 해킹을 설명한다. 사용자를 확보하고(Acquisition), 활성화시키고(Activation), 계속 사용하게 만들고(Retention), 다른 사용자에게 추천하고(Refferal), 최종적으로 매출을 일으킨다(Revenue)! 너무 오래된 개념이라 촌스럽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사실 서비스의 핵심 지표를 이해하고 발굴하는데 이것만큼 훌륭한 틀이 없다.


주제도 괜찮은데 저자의 설명은 또 얼마나 친절하고 쉬운지. 항상 외서에 의존해왔던 과거의 경험을 비추어볼 때 <그로스 해킹>은 그야말로 어둠을 뚫고 떨어지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책이다. 서비스 기획을 처음 시작했거나, 도전해보려는 사람들. 혹은 업계에서 오랜 시간 구르며 그저 시킨 일을 꼼꼼하게 마무리하는 것을 프로페셔널이라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진짜 기획이 무엇인지 느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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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풍부하고 단순한 세계 - 실재에 이르는 10가지 근본
프랭크 윌첵 지음, 김희봉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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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시간과 공간이 단순히 개념적 존재가 아니라 물리적 실재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공간은 고무처럼 휘고 팽창할 수 있으며 우리는 저마다 그 고유한 공간 속에서 자기만의 시간을 산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시공간의 비밀을 알게 되면 시계를 거꾸로 돌려 태초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견디기 힘들다. 태초의 순간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었을까? 사실 이러한 질문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시간과 공간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는 무엇이 '존재'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문이 여기서 멈춘다면 좋겠지만 아마 많은 사람의 호기심은 마지막 한걸음을 향해 괴로움 움직임을 계속할 거라 믿는다. 그렇다면 '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를 인지할 수 있을까? 마치 저 신화 속 신들이 행했던 것처럼? 경험의 세계에서는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무를 인지한다. 무 자체가 아니라 무와 쌍을 이루는 존재의 부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개념적 존재에 불과했던 시간과 공간이 물리적 실재로 밝혀진 것처럼, 언젠가는 무의 실체가 밝혀질 수도 있지 않을까? 무라는 현상이 사실은 어떤 입자가 만들어낸 장이라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상상일까? 그렇다면 무는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무라는 것이 존재하는 공간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시공간을 만드는 무가 있고 그 무가 있는 시공간이 있고, 무가 있는 시공간을 만드는 무가 또 있고...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다 보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바로 이 질문들이 끊임없이 나를 우주로 되돌아오게 만드는 이유 같다. 돌고 도는 이 문제의 최종 답을 찾기 위한 여정. 이 세상은 무에서 출발해 아주 단순한 몇 개의 규칙에 따라 움직였다. 심지어 이 규칙들도 사실은 단 '하나'의 다양한 측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힘 중 하나인 중력은 끊임없이 평형을 향해 가려는 우주의 관성에 저항하며 항성과 행성과 그리고 생명을 낳았다. 모든 힘이 사실 하나라면, 왜 그 힘은 동시에 상반되는 결과를 낳는 걸까. 이 기적과 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혹자는 초월적 존재를 끌어오지만 현대 과학은 이것이 누군가의 의지가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토록 풍부하고 단순한 세계>는 시공간의 역사를 설명한다. 두껍지 않지만 독해는 결코 쉽지 않다. 김영사라는 전설적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번역이 훌륭한 것도 아니다. 각 장은 현상의 해답을 제시할 것처럼 굴다가도 명쾌한 답변 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이 책은 스스로에게 질문할 기회를 준다. 우리는 무엇인가.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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