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한글깨치고리뷰쓰기 (한깨짱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3372146</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이제 막 한글을 깨친 아프리카인.</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Mon, 29 Jun 2026 21:35:54 +0900</lastBuildDate><image><title>한깨짱</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A_007.gif</url><link>https://blog.aladin.co.kr/733372146</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한깨짱</description></image><item><author>한깨짱</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고통 없는 사회 - [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359379</link><pubDate>Sun, 28 Jun 2026 08: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3593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8355&TPaperId=173593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940/21/coveroff/893498835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8355&TPaperId=173593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통 없는 사회 -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a><br/>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04월<br/></td></tr></table><br/>수억 년에 걸친 진화 과정에서 고통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이 생존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lt;매트릭스&gt;의 아키텍처가 처음 만든 버전에는 고통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냥 행복하기만 하면 세상이 잘 돌아갈 거라 생각했지만 어쩐 일인지 인간은 모두 죽어버렸다. 그렇게 몇 번의 디버깅을 거쳐 아키텍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완전히 똑같은 세계를 만들었다. 아키텍처는 네오에게 말한다. 인간은 '고통을 통해 현실을 인지한다'라고.<br>인간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줄곧 고통을 지배수단으로 사용해 왔다. 중세 시대에 성행했던 고문은 고통을 야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이는 전근대, 대한민국에서는 현대에도 널리 사용됐다. 군부독재 시기 이들은 고문기술자 혹은 고문전문가로 불리며 일종의 장인으로 대우받았다.<br>한국처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고통을 구사하는 방식은 육체적 폭력에서 규율이라는 간접적 폭력으로 대체됐다. 이제 인간의 행동을 제어하는 것은 고문이 아니라 분위기다.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직감. 규율은 명문화된 지침으로 존재하지만 더 넓게는 불문율이라는 형태로 우리의 정신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br>성과사회에 이르러 규율은 완전히 내면화한다. 외부에서 강요된 게 아니라 스스로 설정한 것이라는 말이다. 모든 게 가능한 사회에서 실패는 오롯이 자기 것이 된다. 내가 뚱뚱한 이유는 입맛을 조종하는 식품회사의 전략 때문이 아니라 자기 관리가 부족한 나의 게으름 때문이고 내가 가난한 이유는 구조적 불평등이 아니라 노력의 부족이다.<br>우리는 모두 자기 착취를 내면화했지만 거기에 고통이 없는 건 아니다. 고통이 너무 심해 임계점을 넘어서게 되면 우리는 이 현실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우리의 행동을 바꿀 때가 왔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자각은 현재를 유지하려는 권력에게 치명적 위협이다.<br>고통은 혁명의 씨앗이기 때문에 부정하고 억압해야 한다. 의학과 심리학은 완벽한 부역자였다. 아픈 걸 왜 참아야 하나? 고통을 부정하라는 명령에 의학은 완벽한 해답을 내놓았다. 미국은 질릴 정도로 마약에 고통받아왔지만 최근 더 큰 문제를 일으킨 건 병원에서, 완전히 합법적으로 처방한 마약계 '진통제'였다. Painkillers kill people.<br>의학이 외과적 처방이라면 심리학은 정신적 처방이라 부를만하다. 오늘날 온 세상을 뒤덮은 위로와 긍정의 심리학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위로는 고통이 드러낸 현실의 결함을 가리고 그것이 분노로 전환되는 것을 막는다. 긍정은 좀 더 적극적인 사람들을 위한 처방이다. 긍정은 아주 교묘하다. 고통을 긍정함으로써 부정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가난은 기회다. 성공은 절박함에서 잉태된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꽃을 피우고 진주는 고통을 먹고 자란다.<br>여기까지가 내가 읽고 이해한 &lt;고통 없는 사회&gt;의 일부다. 이 책은 선언으로 가득하기에 전부를 이해하는 건 대단히 어렵다. 한병철의 문장은 자기가 깨달은 진리에 취해 듣는 사람이 이해를 하든 말든 쏟아내는 방언 같다.<br>오늘날 우리는 탈서사적 시대에 살고 있다. 이야기가 아니라 계산이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 서사는 몸의 우연성을 극복하는 정신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이야기가 모든 병을 치유할 수도 있다는 벤야민의 생각은 일리가 있다.(p. 39)<br>고통 없는 사회에 왜 갑자기 서사가 나오고 발터 벤야민이 등장하는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나도 엄청 애를 먹었다. 현대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진단하는 제목에 깊이 깊이 깊이 깊이 깊이 깊이 깊이 공감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완독 하지 못했을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940/21/cover150/893498835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9402113</link></image></item><item><author>한깨짱</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마술사가 너무 많다 - [마술사가 너무 많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346334</link><pubDate>Sun, 21 Jun 2026 07: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34633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7222&TPaperId=173463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02/4/coveroff/k8221372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7222&TPaperId=1734633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술사가 너무 많다</a><br/>랜달 개릿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릭시르 / 2026년 04월<br/></td></tr></table><br/>마법을 쓰는 셜록 홈즈 이야기다. 물론 홈즈가 쓰는 건 아니다. 영원한 그의 조수 왓슨이 마술사로 등장한다. 로드 다아시와 마스터 숀 오로클린. 셜록과 왓슨을 빼다 박은 콤비가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br>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방법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작가의 수만큼 많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세계관을 창조하는 것 같다. 영화 &lt;스타 워즈&gt;는 제목부터 구린내가 진동하고 연출 수준이 심형래와 자웅을 겨룰 정도지만 그 세계관의 크기와 매력은 D-War가 넘볼 수 없다. 캐릭터는 죽고 에피소드는 망할 수 있어도 세계는 영원하다. 기다리면 &lt;만달로리안&gt;과 &lt;아소카&gt; 같은 게 나오는 것이다.<br>아가사 크리스티나 아서 코난 도일이 창조한 것도 세계다. 포와로나 홈즈의 무게를 이기고 고개를 돌리면 그 아래 놓인 땅이 보인다. 두 작가는 그런 살인과 그런 살인을 해결하는 탐정이 존재하는 세계를 창조했다. 다른 말로는 '장르'를 만들었다고도 한다.<br>장르가 있기에 &lt;마술사가 너무 많다&gt;도 탄생할 수 있었다. 랜들 개릿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장르는 OS고 개별 소설은 애플리케이션이다. 애플리케이션을 잘 만드는 사람은 OS를 완벽히 이해한다. 이 소설에는 장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득하다. 이야기도 재미있는데 그 마음까지 다가오니 뭐랄까, 친밀한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아는 이야기를 조곤 조곤 나누는 느낌이다.<br>나는 원래 이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러 번 얘기했는데, 단어 하나하나에 부스러기처럼 흩어 놓은 단서를 꼼꼼히 따져가며 읽는 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탐정 소설의 살인 사건은 오직 그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만 해결할 수 있게끔 조작되어 있다. 장르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는 말로 들리겠지만.<br>460페이지가 순삭 된 이유는 '마술사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장르에 첨가한 이 조미료 한 줌이 완전히 다른 맛을 냈다. 마스터 숀 오로클린은 오직 홈즈에게 조롱당하기 위해 창조된 것 같은 왓슨과 달리 명확한 역할을 갖는다. 심지어 그는 홈즈에게 월권을 주장하며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킨다. 마술사의 힘이다.<br>매리언 짐버 브래들리는(나도 모르는 작가다) &lt;마술사가 너무 많다&gt;를 "판타지와 탐정소설의 가장 좋은 점만을 결합한 작품이다."라고 평했다. 새로운 장르는 서로 다른 장르를 영리하게 결합하는 것으로도 탄생한다. 랜들 개릿은 단순한 애플리케이션 개발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 소설로 OS를 만들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02/4/cover150/k8221372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0020476</link></image></item><item><author>한깨짱</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종교란 무엇인가 - [종교란 무엇인가 - 종교를 바라보는 또 다른 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333546</link><pubDate>Sun, 14 Jun 2026 08: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3335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137121&TPaperId=173335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90/46/coveroff/k3521371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137121&TPaperId=173335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종교란 무엇인가 - 종교를 바라보는 또 다른 눈</a><br/>오강남 지음 / 김영사 / 2026년 04월<br/></td></tr></table><br/>오강남 교수의 책을 처음 읽은 건 20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골수 감리교인으로 매우 열심히 교회를 나가는 건 당연하고 청년부 활동까지 수행하던 신앙인이었다. 그렇게 신실한 사람이 비교종교학자의 책을, 그것도 &lt;예수는 없다&gt;라는 제목의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대학 시절의 교양 수업이었다.<br>'세계 종교와 철학'. 이 과목에서 우리 조는 '악마의 종교'인 이슬람교를 맡았다. 때마침 개인 미디어 붐이 일어 촬영 장비가 꽤 흔했던 탓에 나는 카메라 한 대를 들고 이태원의 이슬람 사원으로 쳐들어갔다. 그들의 민낯을 샅샅이 밝힐 포부를 가득 담고. 그 성전의 결과를 자세히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개신교의 종교 교육에 완전히 실망했다. 아니, 수치심이 들었다. 그때의 경험은 야훼가 알라와 같은 신인줄도 모르고 신실하다 믿었던 내 신앙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br>이후로 종교란 무엇인가에 깊이 빠져들었다. 종교의 종류를 수집하는 단순한 정보 섭렵에서부터 교리의 논리적 탐구, 철학적 검증, 역사 되짚기까지, 믿음이 충만한 이들이 흔히 무시하듯 마음이 아닌 머리로 보았고 그 때문에 다행히 사이비 종교에 빠지지는 않았다. 나는 신을 믿을 수는 있어도 종교를 믿을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종교를 질병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혼자서는 신과 대화할 수 없는 구제불능의 의존형 인간이 스스로 구속과 착취를 선택하는 게 종교를 갖는 것이라 생각했다.<br>오강남 교수는 "종교란 본질적으로 '궁극 실재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자각과 변화의 체험'"(p. 105)이라고 말한다. 종교인에게 궁극 실재란 대부분 자기의 신이다. 자기 신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자각이란 내가 딛고 선 이 세상이 결코 실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그 자체가 변화이면서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변화의 원동력이 된다. 어렵다면 중간을 몽땅 떼어낸 뒤 이렇게 읽어도 좋다. 종교란 궁극 실재를 통한 변화의 체험이다.<br>문제는 궁극 실재다. 기독교인에게 이는 하나님이고 이슬람교도에게는 알라, 불교도에게는 부처, 힌두교도에게는 브라만, 비슈누, 시바, JMS 교도에게는 정명석, 신천지 교도에게는 이만희다. 열거한 사례를 보면 명쾌하게만 보였던 종교의 정의가 쓰레기 가득한 똥통에 빠져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걸 느낄 것이다.<br>모든 종교는 변화의 체험보다는 궁극 실재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변화의 체험은 '실재를 통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재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으면 그것을 통해 변화를 체험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예컨대 야훼는 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다. 야훼는 질투가 많은 신이고 다른 신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야훼를 통한 변화의 체험은 모스크를 볼 때 분노에 치를 떠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br>오강남 교수는 종교가 궁극 실재를 정의하는 말이나 글이 아닌 궁극 실재 그 자체를 보고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일을 아주 훌륭하게 해낸 사람을 여럿 안다. 정명석과 이만희, 문선명, 아사하라 쇼코, L. 로널드 하버드, 제임스 워런 존스, 죠셉 스미스. 이들은 기존의 종교가 정의하는 궁극 실재를 훌쩍 뛰어넘어 자신만의 실재를 만들어냈다.<br>궁극 실재를 객관적으로 정의하려 들면 우리는 끝나지 않는 피의 성전을 보게 되고 그것을 주관적 체험의 영역에 놔두면 사이비 종교의 늪에 빠지게 된다. 앞뒤를 포위한 적을 뚫는 정의는 한 가지뿐이다.<br>종교란 무엇인가?<br>결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90/46/cover150/k3521371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904621</link></image></item><item><author>한깨짱</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유원 - [유원 (양장)]</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321175</link><pubDate>Sun, 07 Jun 2026 08: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3211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442X&TPaperId=173211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319/41/coveroff/893643442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442X&TPaperId=173211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유원 (양장)</a><br/>백온유 지음 / 창비 / 2020년 06월<br/></td></tr></table><br/>백온유의 쇠맛을 보고 싶어 골랐는데 몽글몽글 따뜻하다. &lt;유원&gt;은 2019년에 제1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받았는데 요즘 청소년들은 수준이 참 높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로 섬세한 소설을 이해하고 즐겼다는 얘기니까.<br>유원이라는 여고생이 주인공이고 그녀의 학창 생활이 주무대다. 유원은 특별한 아이인데, 그 언니가 아주 특별했기 때문이다. 유원의 이름도 언니가 지었다. 원할 원, 외자. 빨리 나오기를 너무 원해서 그렇게 지었다. 두 사람은 터울이 컸다.<br>윗 층의 할아버지가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다 그 재가 유원의 집에 떨어진 게 화근이었다. 원이 언니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었고 베란다에 한 가득이었다. 무식한 담뱃재는 그 교양을 씹어 삼키며 맹렬하게 타올랐다. 집에는 언니와 둘 뿐. 여기는 아파트 11층. 언니는 똑똑한 사람. 자기는 살 수 없을 거라 판단. 원이는 아직 어리고 가벼우니까. 이불을 적신다. 그 안에 원이를 싼다. 꽁꽁. 창문을 열고 원이를 던진다. 원이는 살았다. 언니는 죽었다.<br>덤으로 얻은 삶. 원이는 좀처럼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그 삶은 늙지도 않고 실수할 일도 없고 나쁜 짓을 저지를 수도 없는 영원히 빛나는 존재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영혼은 너무 눈부셔 원이의 삶을 가린다. 산 자가 죽은 자의 영광을 이기기란 불가능하다. 원이를 아는 모든 이들은 원이를 보지 못한다. 그들은 원이가 아니라 그녀에게 삶을 주고 떠난 언니를 본다.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유아적 환상을 찰나로 스친 뒤 어른으로 멸렬하는 것이 인생인데, 그 짧은 순간조차 누리지 못한 고등학생의 영혼은 얼마나 약하고 불안한가.<br>소설은 안 그래도 예민한 사춘기 소녀의 마음이 무너지고 일어나고 무너지고 일어나는 과정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눈빛만 닿아도 부러질 것 같은 조각들을 하나하나 쌓아 지은 이야기. &lt;유원&gt;은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아슬아슬한 소설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319/41/cover150/893643442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3194140</link></image></item><item><author>한깨짱</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307235</link><pubDate>Sun, 31 May 2026 09: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3072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137404&TPaperId=173072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7/94/coveroff/k88213740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137404&TPaperId=173072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 -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착각</a><br/>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 양병찬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03월<br/></td></tr></table><br/>&lt;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gt;는 무지무지 어려운 책이지만 이해가 안 되는 장을 두세 번 반복해서 읽을 만큼 흥미롭다. 작가는 냉소적이고 지적으로 대단히 날카롭다. 이런 류의 인간은 비아냥과 조롱에 탁월한 재능을 지녔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싸가지가 없다고 말하고 개인적으로는 유머러스하다고 평가한다. 인식론, 인지 심리, 뇌과학, 신경망, 카오스 이론, 창발, 양자역학, 심지어 부의 불평등과 능력주의 신화까지 꺼내 이 책이 말하려는 것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없다는 것이다.<br>내가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게 내 자유의지가 아니라는 말인가?<br>그렇다. 나는 뇌과학, 카오스 이론, 양자역학 따위를 좋아한다. 이 학문들은 전반적으로 보통의 인간이 상식이라 믿어온 것에 철퇴를 가하기 때문이다. 나는 싸가지가 없다는 평가를 자주 받는데 그 이유는 대개 누군가가 하는 말을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어가는 법이 없어서다. 많은 사람들이 강하게 믿을수록 내 마음은 반대로 간다. 이 태도는 본능적이다. 타고났다는 말. 그렇다면 누구로부터 타고 왔을까? 나는 나와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을 한 명 안다. 그것은 바로 내 아버지다.<br>이 책을 고른 결정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방목 자생을 강조하며 울타리 안에 가두기를 싫어했던 엄마 아빠의 양육 태도, 우연한 인스타그램 광고 노출과 서점 방문이 총체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다. 이 사이에 자유의지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납득하기 어렵다면 좋아하는 음식을 하나 떠올린 뒤 이렇게 써보라.<br>나는 자유의지로 성천 막국수를 좋아하기로 결정했다.<br>왜 성천 막국수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이런저런 이유를 댈 수는 있을 것이다. 말하면서도 느끼겠지만 그건 사후에 구성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사랑은 이유를 동반하지 않는다. 첫 젓가락을 뜨는 순간 그냥 알 수 있다. 나는 이 음식을 사랑하는구나. 그럼 그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이 음식을 좋아하기로 결정한 나의 자유의지가 아닌 것만큼은 확실하다.<br>그럼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자. 만약 서점에서 이 책을 집었을 때, 내가 나의 지적 편향을 비판하며 이런 류의 책을 그만 보겠다고 결정했다면, 이것을 자유의지라 부를 수 있을까? 확실히 자유의지는 무언가를 하려고 결정할 때 보다 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순간에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유전자의 힘을 인지하고 거부할 정도면 생물학 체계를 넘어서는 초월적 실체, 즉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br>나는 인간을 자극을 투입하면 행동을 내놓는 생물학 기계로 정의한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저자의 주장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오직 나의 생각이니 주의하기 바란다. 자극을 처리하는 알고리즘은 앞서 얘기했든 유전자, 문화, 교육, 각종 경험과 우연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구성된다. 우리가 동일한 자극에도 다른 행동을 하는 이유는 첫째, 알고리즘이 확률을 기술하기 때문이고 둘째, 자극이 알고리즘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br>알고리즘이 확률을 기술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 나에게 A라는 자극을 투입하면 C라는 행동이 나올 확률이 60%, D는 25%, E는 15%라는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 행동이 일관성을 보이는 이유는 특정 자극에 대한 주된 행동이 높은 확률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 확률이 여러 개의 행동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사람을 보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변덕스럽다', '예측할 수 없다' 또는 '우유부단'하다고 부른다.<br>자극에 따른 행동의 피드백은 알고리즘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우리는 이 세상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존재인데 그 대상이 쉴 새 없이 변하므로 우리의 특정 행동이 항상 동일한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점심 메뉴로 평양냉면을 고를 확률이 99%인 내가 그걸 먹고 심하게 체했다면 당분간 이 확률은 0%에 가깝게 떨어질 것이다. 이는 결코 나의 의지가 아니다. 경험에 맞춰 행동 양식을 바꾸는 건 아주 유용한 생존기제기 때문에 진화가 이걸 놓쳤을 리가 없다.<br>다시 이 책을 읽지 않기로 결정한 가정으로 돌아가보자. 내가 서점을 방문하기 전 나의 싸가지 때문에 누군가와 심한 갈등을 겪었고 이런 삶에 염증을 느꼈다면 책을 선택하는 알고리즘도 영향을 받는다. 이 책을 거부한 순간에는 그것이 마치 나의 자유의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선택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했는지 곰곰이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결국 생물학과 환경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초월적 의지란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br>인생을 돌이켜보면 변하기로 결심한 것보다 그냥 변한 경우가 더 많았다. 내가 열렬히 사랑했던 모든 것들, 목숨을 바칠 정도로 좋아했던 니체와 다자이 오사무는 지금 내 마음 어디에 있을까? 나는 언제부터 그들을 좀 덜 좋아하기로 결정한 걸까? 혹시, 좀 더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을 접해야겠다는 내 자유의지의 힘일까? 살다 보면 매일 똑같이 하던 행동의 결과가 전혀 다르게 돌아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책은 여러 번을 읽어야 겨우 겨우 이해되고, 가까운 글자가 흐릿해지고, 분당 천타를 넘게 치던 손가락이 삼백타에 머문다. 우리의 신체는(특히 호르몬이) 변한다. 주변의 사람도, 환경도, 마음도.<br>자유의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시험을 제시한다. 이 시험에 통과하면 여러분은 그 어떤 경우에도 자유의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br>1. 나는 이 책을 읽고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이것은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확실한 증명이다.2. 억만장자 브라이언 존슨은 젊음을 되찾기로 결심한 뒤 실제로 노화를 늦추는 결과를 얻고 있다. 이것은 브라이언 존슨의 자유의지인가?3.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일란성쌍둥이 중 하나는 변호사가 됐고 다른 한 명은 범죄자가 됐다. 유전자와 환경의 힘을 뛰어넘는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7/94/cover150/k88213740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879495</link></image></item><item><author>한깨짱</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여기서 나가 - [여기서 나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294060</link><pubDate>Sun, 24 May 2026 07: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2940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135311&TPaperId=172940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5/93/coveroff/k22213531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135311&TPaperId=172940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기서 나가</a><br/>김진영 지음 / 반타 / 2026년 01월<br/></td></tr></table><br/>&lt;여기서 나가&gt;는 장재현이 좋아할 것 같지만 그가 영화로 만들지는 않을 소설이다. 이야기가 별로라서가 아니라 '일제'라는 소재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lt;파묘&gt;를 만들고도 반일 종족주의자 취급을 받았는데 이런 이야기를 연달아 내놓으면 친일극우주의자들과의 전쟁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br>전 세계를 통틀어 샤머니즘이 없는 나라는 없겠지만 일본은 그 정도가 좀 달라 보인다. 물론 미디어의 영향이 상당하다는 건 인정한다. 아베노 세이메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lt;음양사&gt;라든가 클램프의 &lt;X&gt;, &lt;도쿄 바빌론&gt;, 주술을 모에화 한 &lt;카드캡터 사쿠라&gt;, 아쿠타미 게게의 &lt;주술회전&gt; 등등. 하지만 이런 창작물이 큰 인기를 얻는다는 건 그 땅을 지배하는 주술의 정서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여우가 뱀의 허리를 물었다'는 대사는 그래서 더 귀에 꽂힌다.<br>원혼은 어떤 한가? &lt;링&gt;, &lt;주혼&gt;, &lt;착신아리&gt;. 강렬한 이미지가 눈을 채운다. 일본의 원한은 그들이 가진 주술의 정서로 더 강화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원귀들은 축축한 가시를 몸 깊이 박아 넣은 것처럼 음침하고 서늘한 느낌이 있다. 한국의 처녀 귀신과는 대화할 의사가 있지만 사다코라면 글쎄, 도망가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br>그런 일본 귀신이 군산 땅에 뿌리를 박았다. 이순신 때문에 발도 딛지 못했던 한을 풀듯 일제는 군산을 통해 전라도에서 생산한 미곡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군산은 착취의 본거지였고 군산에서 돈을 번 일본인들은 근사한 집을 짓고 살았다. 해방 후 적산가옥으로 남겨진 이 건축물은 아직도 그 땅에 남아있다. 착취의 유산이 이제는 관광 자원이 됐다.<br>&lt;여기서 나가&gt;는 착취를 관광으로 바꾸는 조선인의 욕망을 씨앗 삼아 다시 이 땅에 뿌리를 내리려는 일본 귀신과의 싸움을 그린다. 그들은 원혼이 추동하는 욕망을 쫓아 서로를 물어뜯다가 마침내 누가 원흉인지를 깨닫고는 퇴마를 거행한다. 너무 늦었나 싶지만, 모든 시작에 너무 늦은 건 없는 법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5/93/cover150/k2221353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959322</link></image></item><item><author>한깨짱</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일본 광고 카피 도감 - [일본 광고 카피 도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281245</link><pubDate>Sun, 17 May 2026 07: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28124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135461&TPaperId=1728124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4/33/coveroff/k5721354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72135461&TPaperId=1728124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일본 광고 카피 도감</a><br/>오하림 지음 / 서교책방 / 2026년 01월<br/></td></tr></table><br/>짧은 시간 안에 마음을 파고들어야 한다는 점이 광고의 매력이다. 사실은 상업 자본주의의 천박한 선동꾼에 불과하지만, 역시 돈만큼 사람의 창의력을 자극하는 것은 없다. 광고는 마음을 흔드는 걸 넘어 전율을 강타할 때가 종종 있다. 완벽한 카피 하나가 완전한 문학 하나를 뛰어넘기도 한다.<br>카피라이터인 저자가 살면서 착실히 모아 온 카피가 이 책에 실렸다. 일본. 하이쿠의 전통을 이어가는 나라답게 촌철에 담긴 기지가 눈부시다. 나는 소설의 첫 문장을 만드는 취미가 있는데 이 카피를 읽으며 몇 개나 썼는지 모르겠다. 일상에 절여진 뇌를 깨끗이 닦아 돌려놨다. 자극은 언제나 옳다. 이런 식이라면, 중독으로 죽는다 한들 여한이 없다.<br>카피 하나에 작가의 이야기 하나. 뒤쪽은 사족에 가까워 과감히 건너뛰어도 괜찮다. 애쓴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이다. 가끔 괜찮은 알맹이가 나오기도 하니 이걸 놓치고 싶지 않다면 꼼꼼히 읽어도 좋다.<br>인상 깊었던 카피를 몇 개 적는다.<br>사랑이라든지, 용기라든지, 보이지 않는 것도 함께 타고 있다.- JR큐슈(p. 36)<br>습관이 된 노력을, 실력이라 부른다.- 입시 전문 학원 가와이(p.44)<br>별이 되어도, 달을 걷고 있을 거야.- 마이클 잭슨 유품 전시회(p. 70)<br>사랑에 피의 연결이 필요없다는 것은 부부가 가장 잘 알고 있다.- 특별양자제도(p. 96)<br>쉬지 않으면, 쉬게 된다.- 라쿠텐 트래블(p. 108)<br>우리들은 훌륭한 과거가 될 수 있을까?- 산토리(p. 120)<br>등을 밀어준 것은, 그때 도망가지 않았던 자신이었다.- 칼로리메이트(p. 284)<br>어려운 문제를 사랑하자.- 혼다(p. 296)]]></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4/33/cover150/k57213546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843383</link></image></item><item><author>한깨짱</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슬픔의 물리학 - [슬픔의 물리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267502</link><pubDate>Sun, 10 May 2026 07: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2675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009&TPaperId=172675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8/61/coveroff/k8521370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009&TPaperId=172675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슬픔의 물리학</a><br/>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03월<br/></td></tr></table><br/>양자 물리학에 따르면 이 세계를 존재하게 만드는 건 관측이다. 관측을 '보다'로만 한정하면 쓸데없는 형이상학이 끼어들 여지가 있으니 각자의 상상력을 총 동원해 그 범위를 넓혀보기 바란다.<br>관측하기 전까지 세계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한다. 우리가 만지고 느끼는, 이른바&nbsp;물질세계는&nbsp;관측하는 순간 그 모습으로 나타난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조각에 대해 그저 대리석이 갖고 있는 형상을 끄집어낸&nbsp;것뿐이라고&nbsp;말했다. 대리석이라는 가능성의 덩어리가 피렌체인의 관측을 통해 피에타가 된 것이다.<br>새로운 책을 사서 손에 올려놓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미켈란젤로처럼, 내가 이 책이 가질 수 있는 이야기 중 하나를 꺼내준 건 아닐까?&nbsp;첫 장을&nbsp;펼치기 전까지 이야기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나는 책장에 손을 올리고 그 책이 들려줄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nbsp;귀담아듣는다.&nbsp;이야기 앞에서 설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이야기의 파동 함수는 붕괴한다. 무한의 가짓수는 맹렬히 잘려나가고 두 번째 문장이 붙는 순간 붕괴는 가속도를 얻는다. 평범한 이야기는 한 단락을 넘기도 전에 결말이 좁혀진다. 뛰어난 이야기는 마지막 문장을 읽는 그 순간까지도 여러 가능성을 내놓는다.<br>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문학도 양자적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책을 읽었다는 정의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 책을 읽었다고 얘기하는 건 미친 소리일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nbsp;책뿐만 아니라&nbsp;과거와 미래에 존재했을, 존재할 모든 책들을 단 한 페이지도 넘기지 않고 읽을 수 있다.<br>생각이 여기까지 나아가면 책장 맨 앞에&nbsp;쓰여&nbsp;있는, 무슨 수를 써도 끌어내릴 수 없는 최고 존엄, 이른바 저자의 존재도 위태로워진다. 내가 읽은 &lt;슬픔의 물리학&gt;은 정말로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가 쓴 게 맞을까? 이야기를 좀 더 작은 단위로 지속해서&nbsp;환원하다 보면&nbsp;결국 무의미한 소리, 자음과 모음의 조합에 가닿는다. 우리는 '우리'라는 단어에 우리의 존재를 담을 수 없다. 그것은 그저&nbsp;약속일 뿐이고,&nbsp;그 무의미한 자음과 모음의 조합에서 의미를 만들어낸 건 독자인 우리다.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가 도움을 준 것은 부인하지 않겠다. 우리가 뭔가를 캐낼 수 있도록 일련의 규칙에 따라 글자를 배열한 건 맞으니까. 하지만 마침표를 찍는 건 결국 우리다.<br>&lt;슬픔의 물리학&gt;을 읽으면 이 책의 줄거리와는 아무런&nbsp;상관없이,&nbsp;이런 생각이 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8/61/cover150/k8521370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86141</link></image></item><item><author>한깨짱</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254840</link><pubDate>Sun, 03 May 2026 10: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2548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137988&TPaperId=172548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5/48/coveroff/k532137988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137988&TPaperId=172548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a><br/>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03월<br/></td></tr></table><br/>우리는 가족이라는 불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모른다. 가족은 선택할 수&nbsp;없을 뿐만&nbsp;아니라 바꿀 수도 없고 혁명도 불가하다. 책임자를 색출해 단죄하기도 어렵다. 이 비극의 원인제공자를 찾아 시간을 거슬러 가다 보면 말도 통하지 않는 단세포 하나를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br>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친구, 동료, 동지 같은 유사 가족에 더 마음을 쓴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유전자로 이어진 진짜 가족보다 피&nbsp;한 방울&nbsp;섞이지 않은 이 가짜들에 더 가닿는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이 극도로 비정상적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족이라는 비극은 우울의 막을 연다. 가족은 비극 중의 비극, 그 어떤 작가도 쓸 수 없는 마스터피스다.<br>비극이 영원한 이유는 가족이 세대를 거쳐 자신의 이야기를 물려주기 때문이다. 부모의 관계를 파괴하는 능력과 육체적 폭력, 가혹한 통제, 잦은 외도, 방탕함, 우울 등은 후성유전되는 것이 확실하다. 저자 이랑의 형제들이 재생산을 멈추기로 결의한 이유도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유전자에 후천적으로 새겨진 비극의 배역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기로 했다. 이들은 자기 자식들이 무대에 오를 기회를 제거함으로써 이야기의 막을 내렸다. 그 마음은, 눈물이 날 정도로 숭고하다.<br>유전자에 쓰인 이야기가 어떻든 내 삶은 내가 다시 쓰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매 순간 자신을 돌아보며 부단히 행동을 수정하라고 말해주고 싶다.&nbsp;알코올중독자&nbsp;부모가 죽도록 싫었던 사람이&nbsp;알코올중독에&nbsp;빠지고, 툭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부모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혐오했던 사람이 아내와 자식을 두들겨 패는 장면을 연출하는 건 클리셰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br>저자의 불안하고 예민한 정신은 가족이 길러낸 것이 분명하다. 자살한 첫째 언니는&nbsp;두 명의&nbsp;동생을 사랑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가족이어서가 아니다. 그 폭력을 함께 겪은 피해자 동지이기 때문이다.&nbsp;이 비극이 아이러니한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족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언니는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겼다.<br>성한이&nbsp;사랑해.엄마 아빠 사랑해.완이 랑이 사랑해.이게 내 진심.(p. 111)<br>정말 정말 우울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힘이 되는 수필. &lt;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gt;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5/48/cover150/k53213798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054879</link></image></item><item><author>한깨짱</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트위터 X - [트위터 X - 트위터를 둘러싼 440억 달러의 싸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238882</link><pubDate>Sun, 26 Apr 2026 07: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23888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135017&TPaperId=172388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75/32/coveroff/k3721350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135017&TPaperId=1723888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트위터 X - 트위터를 둘러싼 440억 달러의 싸움</a><br/>커트 와그너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01월<br/></td></tr></table><br/>트위터는 좀 복잡했다. 트윗이 있고, 리트윗이 있고, 멘션이 있고, DM이 있고. 글을 올리고 좋아요를 누르는 페이스북과는 확실히 달랐다. 어떤 사람들은 트위터가 인류의 의사소통 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 핵심은 실시간성이었다. '지금 마포대교 많이&nbsp;막혀요?'라고&nbsp;트윗을 올리면 '네, 많이 막혀요'라고 답이 왔다. 트위터는 검색을 대체할 수도 있었다. 당시 네이버에서는 생활 정보가 많이 검색됐는데 어떤 면에서는 트위터가 훨씬 나았다. '여의도 역 근처의 맛집이&nbsp;어디예요?'라는&nbsp;질문에 그 지역의 토박이나 거기를 잘 아는 지인으로부터 멘션이 왔기 때문이다. 인간을 신뢰할 수 있는 동물종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트위터를 의사소통의 혁신이라&nbsp;부를 만했다.<br>그리고 트럼프가 나타났다.<br>트위터가 트럼프 때문에 이상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nbsp;트럼프 같은&nbsp;사람이 맹목적 추종자를 모집하고, 그들의 정신을 왜곡된 정보로 절여 폭력과 혐오를 조장하기에 최적의 도구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트럼프가 출마 선언을 했을 때부터 높은 지지율을 얻은 것은 아니다. 그는 주류 언론의 왕따를 당했다. 그게 기회였다. 트럼프는 순식간에 트윗을 장악했다. 언론의 자유를 신봉하는 트위터의 창업자 잭 도시는 트럼프의 활약을 보며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을 것이다. 트위터는 이 세상이 절대 보장할 수 없는 언론의 자유를 제공한다. 그것은 자기 서비스의 승리였으며, 자기 신념의 승리였다.<br>잭 도시가 트럼프를 인간적으로 좋아했을 거라고, 그의 생각에 동조해서 그를 가만히 놔둔 건 아니라고 확신한다. 잭 도시는 실리콘 밸리 대부분의 기술자가 그렇듯 좌측으로 더 기울어진 남자였다. 그런데 이런 기술자들 중에는 기술을 오직 가치중립적인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트위터든 페이스북이든 유튜브든 원하면 언제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팔로우하고 구독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하나도&nbsp;틀린 게&nbsp;없는 이 말이 우스운 건&nbsp;나뿐인가?<br>트위터는 어느 순간 똥통에&nbsp;처박혀&nbsp;제자리를 맴돌았다. 트위터의 주요 수익은 브랜드 광고였는데 광고주들은 인종차별주의자, 성폭행범, 총기 난사를 계획하는 사람, 사이비 종료&nbsp;신봉론자,&nbsp;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트윗과 함께 자신의 광고가 노출되는 걸&nbsp;원치 않았다.&nbsp;트위터는 좀 더&nbsp;빡세게&nbsp;이용자의 계정을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잭 도시는 이런 일에 전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언론의 자유를 뼛속 깊이 새긴 히피였으며 트위터에서 쫓겨난 뒤 스퀘어라는 결제 서비스를 창업해 운영하다 트위터 이사진의 복귀 요청에 스퀘어와 공동 운영을 허용하지 않으면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우겨 결국은 원하는 걸 쟁취한 남자였다. 잭 도시는 트위터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갖추지 않았을&nbsp;뿐만 아니라&nbsp;스퀘어라는 취미 생활 때문에 그 일에 전념할 수도 없었다. 이 우유부단한 겁쟁이는 이 시점에서 기이한 탈출구를 모색하기 시작한다.<br>트위터를 매각하는 것이다.<br>잭 도시는 일론 머스크야 말로 트위터의 구세주라고 생각했다. 잭 도시는 트위터가 상장 기업으로&nbsp;남아있는 한&nbsp;주주와 광고주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광고로 연명하고 실적으로 보상하는 회사가 어떻게 중립을 지킬 수 있겠는가. 이 점에선 일론 머스크도 생각이 같았던 것 같다. 그는 트위터의 주식을 사모으면서도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트위터를 인수하겠다고 말했다가 안 사겠다고 말했다가 법정에서 트위터가 얼마나 사기를 쳤는지 말했다가, 다시 트위터를 사겠다고 말했다. 그가 트위터를 인수하겠다고 다짐한 계기는 전처의 문자 메시지였다.<br>"트위터를 사서, 없애줄 수 있어!?" (p.229)<br>일론은 답했다.<br>"트위터를 사서 언론의 자유를 제대로 지지하게 바꿀 수도 있지."(p.229)<br>일론은 트위터를 인수해 이름을 X로 바꿨다. 한국 사람이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br>X 됐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75/32/cover150/k37213501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753256</link></image></item><item><author>한깨짱</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허균의 맛 - [허균의 맛 - 『도문대작』, 조선 미식선비의 음식 노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225456</link><pubDate>Sun, 19 Apr 2026 08: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22545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5339&TPaperId=1722545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35/55/coveroff/k99213533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5339&TPaperId=1722545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허균의 맛 - 『도문대작』, 조선 미식선비의 음식 노트</a><br/>김풍기 지음 / 글항아리 / 2026년 02월<br/></td></tr></table><br/>&lt;허균의 맛&gt;은 &lt;도문대작&gt;에서 기원한다. 도문대작이란 푸줏간 앞을 지나며 입맛을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한나라 환담의 &lt;신론&gt;에 나오는 말로,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없는 처지에 음식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나도 이 짓을 꽤 많이 했다. 출퇴근할 차비가 없어 회사에서 숙식을 하던 시절. 일하는 내내 나는 동료와 함께 먹고 싶은 음식을 '말'로&nbsp;주고받았다.&nbsp;그러면 정말로, 기분이 나아졌다.<br>허균은 1610년 10월 19일 과거 시험을 관리하는 시관으로 발령을 받는다. 정시는 아니고 별시였다. 광해군이 선조의 3년상을 무사히 치르고 세자를&nbsp;책봉한 데다&nbsp;그 세자의 입학 및 관례 등 경사가 이어져 특별히&nbsp;치러진&nbsp;시험이었다. 이 과거의 급제자 명단을 사람들은 '자제서질지방' 또는&nbsp;'자서제질사돈방'이라고&nbsp;물렀다. 아들, 동생, 사위, 조카, 사돈을 위한 명단이라 비꼰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은 다를 게 없었다.<br>허균은 이 시험의&nbsp;총책임자는&nbsp;아니었으나 가장 크게 당한 관리였다. 그는 함열로 귀향을 간다. &lt;도문대작&gt;은 그 시절 제대로 먹지 못한 허균이 좋아하는 음식을 상상하며 글로 옮긴 책이다. 허균은 중앙 정치를 하기 전 지방을 두루 돌아다니며 여러 음식을 먹어본&nbsp;것 같다.&nbsp;태어난 곳이 강릉 바닷가니 그 옛날 내륙에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식재료도 많이 접해봤을 것이다. 당대의 천재로 불린 사람이라 차이에도 민감했을 것이고 글쓰기에&nbsp;특출 난&nbsp;재능을 지녔으니 표현도 범상치 않았을 것이다.<br>그러니 어찌 &lt;허균의 맛&gt;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br>하지만 &lt;도문대작&gt;은 감상평이라기보다는 메모에 가까운 글 모음집이다. &lt;허균의 맛&gt;은 그 짧은 글들을 저자의 해설로 엄청나게 불려놓은 책이다. 애초에 원재료가 진한 맛이 아닌데 물까지 많이 탔으니 어찌 간이 맞겠는가?&nbsp;슴슴하다면&nbsp;최고의 칭찬이 될 것이다. 그거보다는 싱겁다는 쪽이 더 가깝겠지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35/55/cover150/k99213533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355563</link></image></item><item><author>한깨짱</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방문자 - [방문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211381</link><pubDate>Sun, 12 Apr 2026 07: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2113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136220&TPaperId=172113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7/15/coveroff/k2521362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136220&TPaperId=172113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방문자</a><br/>리 차일드 지음, 다니엘 J. 옮김 / 오픈하우스 / 2026년 03월<br/></td></tr></table><br/>리 차일드를 읽으면 문학이란 무엇인가를&nbsp;곰곰이&nbsp;생각하게 된다. 문학을 '미'의 한 종류로 생각한다면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쉽게 말해 문학은 무언가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심지어 독자조차&nbsp;필요 없다.&nbsp;문학이&nbsp;아름다운 건&nbsp;건 당신이 그걸 읽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자기 자신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문학사에는 이런 유미주의적 사조가 존재했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가 그랬고, 미시마 유키오가 그랬다. 한국에는&nbsp;친일 반민족행위자&nbsp;김동인이 있다.<br>당연하겠지만 그 반대의 생각도 있다. 소비에트 연합 시절 동유럽의 문학들은 혁명에 봉사할 의무를 가졌다. 인민의 혁명 의식을 고취시켜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치게 만들 책임. 이 시절 유미주의는 똥통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쓰레기였다. 미 따위를 논하다간 반동 세력으로 잡혀 7.62mm 풀 메탈 쟈켓을 두개골에 박아 넣거나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br>물론 이런 종류의 봉사만 있는 건 아니다. 민주 사회에서는 대부분 문학이 시민을 위해 봉사한다. 과거에는 시민을 무지에서 일깨우기 위해 노력했던 적도 있다. 이것이 이른바 계몽이라는 것이다. 요즘 계몽은 좀 더 세련됐다. 독자를 정치적으로 무장시키기 위해 빈부의 격차나 자본의 횡포를 정교한 이야기로 구현한다.<br>그럼 진짜 봉사는? 읽는 사람 위에 서거나 다른 무언가로 바꾸려는&nbsp;목적 없이&nbsp;그저 독자를 위해 존재하는 문학. 이런 종류에는 두 개의 방향이 있다. 하나는 독자를 문학을 완성할 하나의 구성 요소로 간주하는 것이다. 포스트 모던 계열의 일부 작가들은 이것을 문학적 형식으로 이야기 안에 직접 구현할 때도 있다. 상상이 안 된다면 공연 도중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연극을 떠올려보라.<br>다른 하나는 이 모든 복잡 괴상한 헛소리 없이 그냥 독자를 즐겁게 해주는 문학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전자는 대개 순수 문학으로 인정받는 반면 후자는 장르 문학으로 격하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화가 난다.<br>리 차일드를 그냥 장르 소설 작가라고 볼 수 있을까?<br>나는 인류를 위해 이 정도로 봉사하는 작가를 본 적이 없다. 리 차일드의&nbsp;소설은 빨리 다음 페이지를 읽고 싶게 만드는 것 말고는 아무 기능도 갖지 않는다. 리 차일드는 실패가 없다. 따라서 개별 소설에 대한 감상 따위는 필요치 않다. 나는 앞으로 이 작가의 소설에 대한 모든 감상에 이 글을 복사, 붙여 넣기 할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7/15/cover150/k2521362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071574</link></image></item><item><author>한깨짱</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하멜 표류기 - [하멜 표류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197425</link><pubDate>Sun, 05 Apr 2026 07: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1974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136831&TPaperId=171974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8/69/coveroff/k47213683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136831&TPaperId=171974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하멜 표류기</a><br/>헨드릭 하멜 지음, 최유경 옮김 / 올리버 / 2026년 03월<br/></td></tr></table><br/>&lt;하멜 표류기&gt;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박연을 만나는 장면이다. 박연은 인조 4년에 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얀 얀세 벨테브레이다. 하멜은 효종 4년에 태풍을 이기지 못하고 난파선과 함께 제주도에 도착했다. 인조는 대충 27년을 통치했고 그를 이은 아들이 효종이니 하멜이 벨테브레이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박연으로 산 지 30년은 된 셈이었다.<br>두 더치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br>세상에.&nbsp;지옥 같은&nbsp;표류 속에서 구원의 동족을 만났거늘 마음을 전할 방법이 없었으니 허탈함은 몇 십배가 됐을 것이다. 하멜은 박연에게 네덜란드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다행히 박연은&nbsp;3개월 만에&nbsp;자신의 모국어를 완전히 되찾았다.<br>하멜은 1653년 35명의 동료들과 살아남았고 1666년 9월 4일 나가사키 탈출에 성공한다. 그 당시 남아있던 더치는 모두 22명이었다. 여수에 12명, 순천에 5명, 남원에 5명. 탈출을&nbsp;주도한 건&nbsp;하멜이 속한&nbsp;여수 파였다.&nbsp;여기에 순천의 동료 몇 사람이 가담했다. 이 중 일본에 도착한 게 정확히 몇 명인지는 확실치 않다.<br>탈출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삶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우선 조선의 정책상 표류한 외국인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없었다. 이들의 살림은 왕과 관리의 성향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한 때 그들은 난파선에서 건진 가죽을 팔아 정원까지 갖춘 근사한 집을 사기도 했다. 그들은 조선에서&nbsp;장사도하고&nbsp;구걸도 했다. 하멜에 따르면 조선에서 구걸은 나쁜 짓이 아니었다. 승려들이 집집을 돌아다니며 시주를 받은 것도 구걸이라 말한 걸 보면 하멜이 생각하는 구걸의 의미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br>여기서 주목하는 점은 누가 호의적이고 누가 적대적이었냐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은 확실히 그들에게 잘해줬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nbsp;싶어 했고,&nbsp;물어볼 게 많았다. 이건 정말 중요한 교훈이다. 다른 세상에 호기심을 갖지 않는 사람은 고이고, 고이면 내 경계에 다른 생각이 끼어드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br>&lt;하멜 표류기&gt;는 조선이 왜 20세기에 일본의 속국이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단면을 제시한다. 일본은 자기들이 못하는 것을 가져왔고, 자기들이 잘하는 것을 내어줬다. 그러면서 이른바 열강이라 부르는 유럽 국가들과 실력을 겨뤄볼 수 있었다. 조선인들이 모두 멍청해서 망국을 맞은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문화와 그 문화를 전파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 필사적으로 연구해야 할 부분은 바로 여기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8/69/cover150/k4721368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086930</link></image></item><item><author>한깨짱</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인형의 정원 - [인형의 정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180609</link><pubDate>Sun, 29 Mar 2026 09: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3372146/1718060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5101&TPaperId=171806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48/10/coveroff/k9921351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5101&TPaperId=1718060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형의 정원</a><br/>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26년 01월<br/></td></tr></table><br/>&lt;인형의 정원&gt;은 작가가 과거에 썼던 작품들을 &lt;서미애 컬렉션&gt;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판한 책 같다. 컬렉션의 순서가 시간순인지는 모르겠다. &lt;인형의 정원&gt;은 컬렉션 중 4번째 작품이다. 이 책은 2009년에 대한민국 추리 문학대상을 받았다. 1994년에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가 활동을 시작했으니 &lt;인형의 정원&gt;은 어느 정도 완숙기에 쓰인 책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br>&lt;인형의 정원&gt;은 치밀한&nbsp;소설이라기보다는&nbsp;단순 명쾌한 TV드라마 각본에 가깝다. 범인은 자신을 쫓는 경찰 수사팀에 자기가 죽인 피해자의 머리를 잘라 택배로 보낸다. 이 대목에서 '대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잘 맞을 것이다. 다행이다.<br>나에게는 이런 설정 자체가 재미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영향을 주는 지점은 동기였다. 범인은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 그게 잘 보이지 않으면 다음 장에 대한 흥미가 뚝 떨어진다. 동기와는 무관할 정도로 파격적인 설정이라면 감안할 여지는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나온 시기를 앞에서 지루하게 늘어놓은 것이다. 그 당시에 이런 이야기는 충격일 수 있었겠지만 이제 와서야 손에 든 사람들에게는 글쎄.<br>어쩌면 내가 추리, 서스펜스라 불리는 장르의 문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돌아보면 그 사람들은 아주 작은 부스러기들을 문장에&nbsp;구두점만 한&nbsp;크기로 뿌려놓는 것 같다. 행간을 세세하게 탐색해 증거를 끌어모은 뒤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는 재미. 나는 그 정도로 똑똑한 독자는 아니고, 그 정도로 애정을 가진 독자는 더더욱 아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스티븐 킹도, 아서 코난 도일도, 애거사 크리스티도, 도저히 이해하지&nbsp;못하는 걸&nbsp;보면 그냥 '안 맞다'는 결론이 가장 명확하지 않나 싶다.<br>그런데 나는&nbsp;데이비드&nbsp;핀처나 코엔 형제는 더럽게 좋아하는데! 난 정말 재미있는 서스펜스를 읽고 싶다.&nbsp;미스터리어도&nbsp;좋다. 푹 빠져서 그 작가의 작품을 모조리 찾아 읽고 신간이 나오기를 &lt;마인드 헌터&gt; 시즌3 보다 더 기다리게 하는 그런 소설.<br>&lt;인형의 정원&gt;이 좋았던 점은 따옴표로 되어 있는 인물의 대사들만 읽어도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 소설을 드라마 각본처럼 느꼈는지 모른다. 대사와 대사 사이의 지문들은, 솔직히 왜 썼는지 모르는 것들이 많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48/10/cover150/k9921351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48108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