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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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사실 이 책을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는데는 이 한문장으로 충분했다. 나의 경우는 읽지 않는 쪽이었다. 건조함이 익숙한 나에게 저 말은 너무 달았다. 삼킬래야 삼킬 수 없는 끈적함이 입 안에 오래 남아 기분을 망칠 것 같았다.


선입견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나는 이 상냥한 남자에게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낀 것 같다. 우연한 결심이 아니었다면 평생 김연수의 책을 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오후, 서점에서 김연수의 책을 발견한 순간 마음 속에 이상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과거에도, 앞으로도 절대 읽지 않을 책을 읽어보자는 것이었다. 그 갑작스런 충동이 나를 김연수에게 이끌었다. 그리고 나는 내 편견이 얼마나 단단한 껍질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언뜻 멜로처럼 보이지만 추리 소설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의 긴장감을 유발한다. 어릴 때 입양을 갔던 한국 여자 카밀라가 양모의 죽음을 계기로 생모를 찾아 한국에 오는 식상한 이야기지만, 거기에 얽힌 진실이 매서울 정도로 차갑다. 카밀라를 방해하려는 사람들과 끝까지 진실에 가 닿으려는 그녀의 전진이 마음 속에 선연한 자국을 남긴다.


나처럼 편견을 가졌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김연수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일면과 가슴 따뜻한 드라마를 엮어내는데 대단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주제와 재미, 둘 중 어느 것도 놓치지 않는다. 쓰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해낸다. 특히 이야기를 전개하는 기술에 있어선 감탄이 나올 정도로 훌륭했다. 중요한 순간 진실을 던져놓고 이야기를 끊는 시점이 책장을 덮을 수 없게 만드는 절묘함이 있다. 충격적인 답을 보고 나면 그 풀이를 알고 싶어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배경인물들이 산만하게 등장하고 충분히 소비되지 못한다는 점, 시간과 화자를 이리저리 바꾸는 탓에 줄거리를 따라가기 힘든 점은 있지만 그만한 재미를 얻기 위해 충분히 희생할만한 불편함이라 생각한다. 3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책이니 속도감을 즐기다 보면 언제 도착했는지도 모르게 결말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날 오후 이 책을 손에 든 건 좋은 판단이었고, 건강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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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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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만든 뒤 신은 대단히 곤란했을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신의 예측을 완전히 벗어났다. 이브와 아담은 하지 말라는 것 중 가장 치명적인 것만을 쏙쏙 골라했고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 낙원에서 쫓겨나 광야로 도망쳤다.


그때부터는 완전히 재앙이었다. 형은 신을 사랑하는 동생을 시기해 몽둥이로 쳐죽였다. 용서를 구하는가 싶더니 그는 여기저기 자손을 퍼뜨려 국가를 만들고 전쟁을 일으켜 살인을 대량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신은 어디에도 마음을 둘 곳이 없었는데, 죽이는 쪽과 죽임을 당하는 쪽, 죽었다 복수를 하는 쪽 모두 신의 이름으로 그 행위를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의 입장에서 보면 그때가 그나마 좋았던 시절이었으리라. 당시엔 뭐만하면 신의 이름이 거론됐다. 전쟁도, 정치도, 경제도, 결혼도, 식사도 모두 신의 뜻에 의해 행해진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영광은 짧았고 망각은 길었다. 요즘엔 아무도 신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를 미워하는게 아니라, 아예 잊어버린 것이다. 어쩌면 신은 우리의 생각이 만들어낸 존재고 따라서 우리가 그에 대한 생각을 거두는 순간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존재일지 모른다. 지금쯤 신은 축소된 힘과 영향력으로 인해 전전긍긍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버젓이 살아있는 자신을 믿지않는 사람들에게 분노하며 지진과 해일을 일으키고 간혹 마음을 따뜻히 적시는 기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신은 이제 무엇을 해야할까? 그 우울한 마음을 누구에게 털어놔야할까?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그도 심리상담사를 만나 치료를 받고 싶지 않을까?


<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는 위기에 처한 신이 인간 심리상담사를 만나며 벌어지는 일들을 기록한 소설이다. 늙고 작은 신은 스스로 신이라 고백하지만 그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다. 지치고 힘든 신은 급기야 죽음을 생각한다. 신은 전능하므로 스스로를 무능하게 만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는 어떻게 될까? 신은 우울 속에서 죽음을 맞을까? 다시 기운을 차리고 세상 속으로 달려갈까?


이 책은 신과 인간, 그리고 믿음에 대한 메타포로 가득하다.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신은 많은 소동을 벌이지만 인간의 믿음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인간은 신을 눈 앞에 두고도 그의 존재를 부정한다. 심지어 그를 핍박하고, 사기꾼으로 몰아세운다. 이 모든 상황은 인간과 신이 관계를 맺는 법, 우리의 신앙 생활을 절묘하게 상징한다. 그 적확성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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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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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단편집은 거의 실패하는 경우가 없다. 매끈하게 씻겨져 나온 메밀국수를 후루룩 삼켜 먹는 맛이 있다. 무겁지 않고, 깔끔하다.


<렉싱턴의 유령>은 유독 에피파니라는 테마가 반복되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하루키는 거의 모든 소설에서 이 테마를 써먹는다. 그 자신이 소설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진구 구장의 야외 잔디에 앉아 야구를 보다 타자가 때린 타구를 보는 순간 결정한 것이니, 이 경험이 그의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여러 개의 단편들을 연달아 읽으며 반복해서 마주하다 보니, 적당히 좀 하시지(웃음) 하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이 에피파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등장인물들이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변해 버리는 것이다. 인물들은 그 변화를 확실히 인지하지만 이유는 알지 못한다. 예컨대 <얼음사나이>라는 작품에선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남극에 있는 이 나의 남편은 예전의 나의 남편은 아닌 것이다."(p. 118)


<일곱 번째 남자>에서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는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나는 지금까지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p. 193)


다음은 <침묵>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표현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거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나는 그걸 알아버렸다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p. 63)


하루키의 소설엔 이 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그는 우리가 그 충격을 오롯이 받아들이길 원한다는 듯이 글자 하나하나에 점을 찍는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현듯 변화를 맞는다.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많은 독자들이 이 불충분한 설명때문에 하루키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설명대신 변화 전후에 벌어지는 사건의 정경을 묘사한다. 그 모호한 정경이 누군가에게는 말할 수 없이 신비한 경험으로 다가오지만 현실주의자들에겐 개뿔도 없는 허세가 된다.


나는 이 모호함이 오히려 인생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변했다. 삶은 그게 뭔지를 알아가는 여정인 것이다. 인생이 눈에 보이는 이정표로 가득한 도로라면 삶은 그날 그날 걸어야 할 할당량을 채우는 노동에 불과할 것이다. 삶이라는 건 모험이고 우리는 예기치 않게 그 모험을 시작한다.


하루키 소설의 공백은 많은 독자를 열받게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소설을 읽을 때보다도 농밀한 상상을 하게된다. 그의 소설엔 어렴풋이 떠오르는 미지의 환상이 있다. 나는 그래서 하루키의 소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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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의 탄생 - 자본은 어떻게 종교와 정치를 압도했는가
그레그 스타인메츠 지음, 노승영 옮김 / 부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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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콥 푸거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는 게 신기하다. 나름 르네상스 역사에 관심이 있고 책도 꽤 읽었다고 생각했다. 베네치아 상인들이 벌이는 전쟁, 메디치 가의 흥망성쇠도 읽었는데 왜 야콥 푸거를 들어본 적이 없을까? 하지만 이 남자는 독일에서 상당히 유명한 것 같다. 푸거가 지은 공동주택은 현재에도 실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 유럽 최강의 가문 합스부르크가도 일을 벌이기 전에는 늘 손을 벌려야 했던 어나더 클래스의 금융가를 여지껏 몰랐다는 것이 정말로 신기하다.


1525년 푸거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재산은 유럽 내 총생산의 2퍼센트에 육박했다(p.13). 독일 내 총생산이 아니라 유럽 내 총생산임을 직시하자. 이는 역사상 최고의 부호라 일컬어지는 존 D.록펠러조차 누리지 못한 부였다. 인지도로 따지면 훨씬 위인 피렌체의 지배자 메디치 가도 푸거에 비하면 지방 은행의 지점에 불과할 정도로 그의 부는 압도적이었다.


푸거는 주로 광산업과 금융업으로 부를 쌓았고 다양한 소비재를 독점 판매하기도 했다. 광산업은 주로 왕들에게 대량의 채무를 넘기고 받은 담보였다. 그는 광산에서 생산된 금속으로 화폐를 주조하거나 대포를 만들어 인류 최대의 수요, 전쟁을 후원했다.


그가 유럽의 경제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돈이 처음으로 전쟁과 정치를 좌우하는 세계에 살았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의 왕들은 오늘날과 같은 국민군이 없었다. 대부분 용병을 고용해 전쟁을 벌였는데 그게 전부 돈이었다. 돈을 받지 못한 용병은 파업을 벌이거나 심지어 고용주를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산다고 누구나 돈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푸거의 경쟁자들이 대부분 파산해 처량하게 죽은 것만 봐도 이 남자가 단순히 시대를 잘 타고 나 성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푸거는 돈에 대한 감각만큼 정치적 감각도 뛰어났던 것 같다. 그는 여러 곳에 적절히 줄을 대 균형을 유지했고 그 균형을 언제 깨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혹자는 무려 왕들과 밀당을 벌이는 건방진 장사치를 왜 그 권력자들이 잠자코 두고 봤는지 의아할지도 모른다. 죽이면 그만아닌가? 없애고 재산을 몰수하면 빌릴 필요조차 없을텐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토록 강력한 '왕권'을 가진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인지를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푸거는 언터쳐블의 장사꾼이었다. 왕들은 그를 증오하고 때로는 죽이고 싶었지만 푸거를 살려두는 게 자신에게 더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지키기 위해 그가 겪었을 일들을 생각하면 눈 앞이 까마득하다. 압박감은 얼마나 대단했을까? 푸거는 자칭 그 어떤 고민도 밤이되면 옷을 벗듯 벗어던지고 편안히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가 가진 최고의 능력은, 어쩌면 이 배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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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들 - 장강명 연작소설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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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의 소설을 왜 읽는지 알겠다. 기름기를 쫙 뺀 돼지고기처럼 절제된 감정과 취재에 기반한 사실이 돋보인다. 소설이 아니라 취재기라 부르는 게 맞을 수도 있지만 둘 사이의 균형이 미묘하게 맞춰진다. 무겁되 너무 무겁지 않고, 가볍되 너무 가볍지 않다. 읽는 재미가 충분한 소설이다.


<허삼관매혈기>를 쓴 위화의 말이었던가? 그는 인민의 적은 인민이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인민의 삶을 핍박하는 건 저 위의 권력이 아니라 옆 집에 사는 또 다른 인민이라는 것이다. 얼핏 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지만 우리의 실생활을 돌아보면 이보다 뼈져리게 느껴지는 말이 없다. 예를 들어보자. 식당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신은 누구에게 따져 묻는가? 종업원이다. 새로 산 휴대폰이 자주 고장나 AS를 받으러 가면 당신은 누구에게 화를 내는가? 수리기사다. 택배가 늦으면? 분리수거장 청소가 잘 안 되어 있으면?


식당의 서비스가 엉망인건 주인이 최저시급도 안 되는 돈으로 종업원들을 혹사시켰기 때문일 수 있다. 택배가 늦는 건 엉터리 같은 물류시스템과 비용을 짜내려는 관리자들의 판단 때문일 수 있다. 휴대폰이 자주 고장난다면? 그 잘못은 애초에 그런 휴대폰을 만든 연구원들과 그걸 출시하기로 마음 먹은 경영진들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상 뒤에 숨은 원인을 헤아리지 않기 때문에 분노는 늘 우리와 얼굴을 맞댄 사람들에게 향한다. 그것은 때때로 죽음을 불러오기도 한다. 불타는 공장에서 숨이 막혀 죽는 건 파업 노조와 이간질에 동원된 사측 임직원이다. 건설사의 욕심으로 편의 시설이 부족한 아파트단지에서 주차 시비가 붙어 옆집 사람이 앞집 사람을 살해한다. 삶은 약자들끼리 벌이는 전쟁이다. 실제 전범들은 통유리로 된 박스석에 앉아 레어 스테이크와 와인을 마신다. 난장판이 된 세상을 내려다보며, 왜들 저렇게 서로 싸우냐고, 교양이 없다고 혀를 차면서.


<산 자들>에서 서로의 멱살을 움켜쥐고 밥그릇 다툼을 하는 것도 평범한 약자들이다. 장강명은 이 소설을 통해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건 연대다' 라거나 '관점을 전환하라' 혹은 '고개를 들어 진짜 적을 봐라' 라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소설을 그저 짜증나는 삶에 대한 짜증나는 일기로 받아들일까봐 겁이 난다.


소설가는 손가락을 들어 정확히, 자기가 말하고 싶은 걸 가리킬 수 없다. 그건 소설이 아니라 논설이다. 기사를 쓰던 장강명이 소설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손가락을 들어 말하고 싶은 걸 바로 가리키는데도 바뀌지 않는 세상에 신물이 났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소설을 고르다니, 이 죽어가는 매체를, 오해로 점철될 수 밖에 없는 모호한 도구를.


그의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이 소설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소설 쓰기를 선택했고 나는 그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복잡한 세상에 터럭 한 톨 만큼의 균열도 내지 못하는 행동들.


사실을 마주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좋은 소설을 읽어 기분이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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