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 리(理)와 기(氣)로 해석한 한국 사회
오구라 기조 지음, 조성환 옮김 / 모시는사람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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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주자의 성리학으로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책이다. 방법은 귀납적이면서 동시에 연역적인데, 한국 사회의 다양한 양상을 수십 개 늘어놓고 그 하나하나를 성리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이야기하기에 앞서 주자학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주자의 성리학은 이 세상을 '리'와 '기'로 설명한다. '리'란 쉽게 말해 우주의 보편적 이치, 정신, 도덕이다. '리'는 순수하게 선한 것이며 인간 모두는 하늘로부터 이 '리'를 부여받는다. 이것이 바로 주자학이 성리학으로(성즉리) 불리는 이유다. 주자학은 곧 성선설의 철학이다.


한편 '기'는 물질성이다.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것들. 정리하면 '리'는 인간의 도덕 혹은 정신 '기'는 육체다. 희한한 건 주자학이 악행의 원인을 '리'가 아닌 '기'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기에는 조(치우침)와 색(막혀있음)이 있는데 이런 것을 부여받은 이들이 바로 오랑캐라 부르는 민족들이다. 나쁜 기는 리를 흐리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악행을 저지르게 한다.


저자 오구라 기조에 따르면 한국인은 본성적으로 리 지향적인 민족이었다. 주자학이 조선에서 그토록 성행했던 이유는 애초에 리 지향적인 사람들이 드디어 그 성향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혹은 정당화하는 철학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인을 한국인과 동일시할 수 있느냐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비약으로 보인다. 어째서 한국을 고려도, 신라도, 고구려도 아닌 조선으로 설명하려 하는가? 이런 질문은 의미가 없다. 한국인의 리 지향은 이 민족이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간 태초의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리를 추구하는 것이 과연 한국인만의 특성인가. 리란 앞서 말했다시피 정신, 이치, 혹은 도덕이다. 이 세상에 도덕 지향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독일인들은 몰 도덕적이라 유럽을 향해 그토록 진지한 사과를 거듭하는 걸까? 한편 서양인들이 수학과 물리 같은 세상의 근본 원리를 설명하는 학문에 능한 이유는 뭘까? 그들의 선천적 리 지향성 때문일까 아니면 주자학을 섭렵한 후천적 학습의 결과일까?


저자는 주자학의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며 두 나라의 특수성을 드러내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리기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례들이 너무 많다. 리기론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모호하고 추상적이라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끼워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2002년 월드컵 유치 경쟁에서도 일본에는 도덕 지향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여실이 드러났다. 한국은 "월드컵을 한국(과 북한)에서 열면 남북통일과 동아시아의 평화에 기여한다"라는 장대한 기상과 대계의 의지가 넘치는 제언을 했다. 이에 반해 일본 측의 "전례가 없다"는 주장은, 처음부터 메시지를 포기한 자가 하는 말이다.(p.17)


그렇다면 2042년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이 "월드컵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열면 중동 평화에 기여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유치 홍보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성즉리가 반영된 결과일까? 세계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명분 없는 메시지를 내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국제사회에서 깡패로 통하는 러시아, 중국, 북한의 행동에도 자기 나름의 명분이 존재한다.


'도덕 지향성 국가'인 한국에서 도덕의 최고 형태는, 도덕이 권력 및 부와 삼위일체가 된 상태라고 여겨지고 있다. 한국인이 이상으로 여기는 인생 또한 이 세 가지가 전부 구비된 상태이다.(p. 21)


도덕과 권력과 부가 일치된 삶을 최고선으로 간주하는 게 한국인의 특수한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었구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정말 놀랍다.


오구라 기조는 한국인이 강력한 도덕 지향성 = 리 지향성을 갖게 된 이유가 지정학적 위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대국으로 둘러싸여 항상 존재의 위기를 겪었던 한국이 '힘'으로는 도저히 대항이 불가하자 오히려 도덕으로 무장하는 반대 심리가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사실 주자학 자체가 비슷한 환경에서 뿌리를 내린 학문이었다. 주자학은 남송 시대의 주희가 창시했는데, 당시 남송은 한족 왕조 역사상 최약체로 불리는 나약한 국가였다. 주희는 금나라의 위협으로 왕조의 멸망을 눈앞에 둔 시기에 이 강력한 도덕 지향적 학문을 창시했다. 놈들이 우리를 지배해도 사실은 우리가 더 선하고, 옳은 인간이라는 일종의 정신승리를 위해! 자자 이런 관점이라면 우리는 비폭력 무저항 운동으로 영국과 도덕성 대결을 벌인 마하트마 간디를 주자의 성즉리를 체화한 성인으로 추앙해야 할 것이다.


조선 전기에는 그래도 여유가 있었으나 임진왜란과 명의 멸망을 계기로 조선 사회의 도덕 지향성은 심화되어 급속도로 경직되어 갔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국가의 위기에 따른 변화가 아니라, 계급의 위기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한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노비 문서 때문에 조선의 계급 사회는 극도의 혼란을 맞았다. 이런 상태에서 주자학의 리기론은 지배 계급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학문이었다. 리기론은 리에 우위를 두는 철학이지만 그 리가 혼탁해지는 원인은 기에서 찾는 모순적 사상이다. 과거에는 조와 색을 타고난 기의 인간을 구분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행색으로도, 문서로도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으로 모두 거지가 되고 보니 가시적인 단서가 사라진 데다 최후의 보루인 문서까지 불타버려 이제 반상을 구분하는 법은 리를 논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됐던 것이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오늘날의 한국인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논쟁에 왜 목숨을 바쳤는지 이해할 단서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사회를 리기론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상당히 참신한 면이 있고, 일부는 '오!' 하는 대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주자학은 결국 지배계급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통치 수단이었을 뿐이다. 한 국가에서 지배계급의 문화가 갖는 영향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게 민족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러모로 비약과 끼워 맞추기가 많은 책이니 읽는 데 각별히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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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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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한자와 나오키>를 처음 봤을 때가 기억난다. 듣도 보도 못한 이 드라마를 주저 없이 선택했던 이유는 이 작품을 만든 게 <화려한 일족>의 제작진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지지 않는다는 문법을 정면으로 돌파한 이 드라마는 취저를 넘어 큰 감동을 주었다. 주연 배우 기무라 타쿠야가 박수를 칠 때마다 등장하는 황금 잉어씬을 제외하면 정말 나무랄 데 없는 이야기였다.


<한자와 나오키>는 과연 기대한 대로였다. 구성은 짜임새가 있었고 일본 연기 특유의 과잉 감정이 없어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특히 치밀한 논리와 코뿔소 같은 저돌성, 곰 같은 끈기로 난관을 헤쳐나가는 한자와의 캐릭터에는 답답한 마음을 폭우처럼 쓸어버리는 시원함이 있었다. 다소 뻔한 이야기임에도 완주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러한 장점들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 원작 소설의 한자와는 달랐다. 뭐랄까, 상대가 너무 약하달까? 논리의 허점을 잡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한자와의 공격력은 그럭저럭 봐줄 만했지만 적들이 받아치는 힘은 눈에 띄게 약해 긴장감이 생기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그냥 한자와의 먹잇감 아닌가. 이마에 나는 악당입니다라고 써붙인 인물들이 유치원생도 속지 않을 것 같은 논리로 도쿄중앙은행 오사카 지점 대부계의 에이스를 이길 생각을 하다니, 야무지다 못해 맹랑한 꿈은 오히려 한자와의 캐릭터를 두드려 펴 평범하게 만드는 역효과가 있었다.


세상엔 원작보다 뛰어난 드라마나 영화가 종종 태어난다. 사실 이 말은 원작이 별로라는 게 아니라 원작의 가치를 훌륭하게 보존했다는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한자와 나오키>에서 만큼은 예외를 인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소설은 확실히 드라마보다 못하다. 솔직히 말해 일본 엔터테인먼트 소설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작품이다. 선악의 명쾌한 구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인물들, 단순한 이야기 전개는 복잡한 세상살이에 잠시 엔터테인먼트를 선사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을 바라는 독자들에게는 갈증을 남길 수밖에 없다. 애초에 그런 바람 자체가 잘못된 거 아니냐고 한다면, 흠,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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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심리학 - 누가 권력을 쥐고, 권력은 우리를 어떻게 바꾸는가
브라이언 클라스 지음, 서종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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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 하는 문제는 철학사의 오랜 골칫거리였다. 맹자는 우물에 빠지는 아이를 그냥 두고 보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근거로 성선설을 주장했다. 그런 본능적인 행동은 확실히 교육이나 문명화의 산물은 아닌 것 같다. 한편 인간이 저지르는 온갖 악행들을 보고 있으면 그 주장의 근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닫게 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철학은 성무성악설을 내놨다. 사람은 애초에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 교육과 환경에 의해 선할 수도 악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양비론의 문제는 명쾌함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건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두 가지가 혼재된 존재 양태를 목격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양자역학이 난해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뇌는 어떤 존재가 A이면서 동시에 B인 상태를 인지하기 어렵다. 눈으로 목격하는 세계는 대개 A이거나 B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성무성악설쪽에 가깝다. 무언가를 '동시'에 갖고 있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그 단어를 '함께' 혹은 '모두'로 바꿔보자. 여기에 '정도'를 추가하면 훨씬 쉽다. 인간은 어떤 조건에 따라 스위치를 바꿔 순식간에 선과 악으로 돌변하는 게 아니라 선 30 악 70처럼 경향성을 지닌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견물생심을 예로 들면 선 30, 악 70의 경향성을 지닌 사람은 '견물'을 했을 때 '생심'을 하게 될 확률이 70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은 유혹의 상황을 줄여 자신의 행동을 통제해야 한다. 나는 이 경향성이 교육과 환경에 의해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수치가 태어날 때 50대 50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각의 기질에 따라 20대 80, 혹은 60대 40으로 정해진다고 믿는다.


이런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사상 논쟁을 왜 하나 싶겠지만, 이 본성의 문제는 누가 권력을 쥐느냐는 질문과 만났을 때 아주 중요해진다. 악마의 재림이라고 해도 충분치 않은 인류사 최악의 권력자들을 떠올려보자. 애초에 악한 사람이 권력을 추구하는 거라면 악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기른 뒤 민주적 절차를 확립해 그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 권력이 인간을 부패시키는 거라면? 당연히 우리는 권력을 분해해 그 자체를 재구성해야 한다.


<권력의 심리학>은 크게 네 가지 질문을 통해 이 문제를 파헤친다.(p.23)


첫째, 더 악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되어 있는가?


둘째, 권력은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가?


셋째, 왜 우리는 우리를 통제할 권리가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이 우리를 통제하게 놔두는가?


넷째, 부패하지 않을 사람에게 권력을 주고 그 권력을 공정하게 행사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심오한 질문들과 함께 이 책은 재미있고 유용한 정보도 많이 제공한다. 어떤 집단에서 리더가 되는 것만으로 뇌 내 도파민 수용체의 수가 달라진다는 걸 알고 있었는가? 어깨뽕이란 단순한 태도의 변화가 아니라 호르몬에 따른 생물학적 변화인 것이다. 또 급속한 사회의 변화와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뇌의 진화가 우리에게 얼마나 나쁜 선택을 강요하는지도 알게 된다. 우리가 합리적이라 믿는 그 수많은 선택의 근거가 사실은 벌거벗은 몸으로 매머드를 잡으러 뛰어다니던 시절에 형성된 기준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황당과 민망이 파도처럼 밀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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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쫓는 모험 -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신태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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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쫓는 모험>은 1982년에 출간한 하루키의 첫 장편 소설이다.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한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단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장편으로 분류하기엔 양적으로 모자란 면이 있다. 못다 한 얘기가 아쉬웠는지 하루키는 데뷔작의 주인공들을 이 책에 다시 불러 모은다.


그러나 분위기는 한결 다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뿌리 없이 떠도는 젊은 청년들의 빈 곳을 스케치하듯 훑었다면 이 소설은 미스터리와 모험을 담았다. 제목 그대로, 양을 쫓는 모험이다.


이 이야기에는 이후 하루키 장편에서 등장하는 테마의 씨앗들이 보인다. 여기서 모험을 확장하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되고 악의 실체를 좀 더 명확히 하면 <1Q84>가 된다. 초기작인 만큼 강도는 좀 떨어진다. 어쨌든 첫 모험 아닌가. 인물들도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좀 쭈뼛거리고 이야기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작위적 우연을 겹겹이 포개어 놓는다. 나는 이 유명한 소설가의 작품들을 거슬러 오르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좀 더 눈에 띄는 게 아닌가 싶다. 솔직히, 그렇게 재미는 없었다.


하루키가 일본 사람인 걸 감안하면 그는 매우 특이한 사람이다. 일본인은 과거보다는 현재에 집중한다. 사상과 이론보다는 감각과 경험이 중요하다. 아마 내세가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신앙(신도)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경제 발전 시기에는 이런 것들이 장점이 되어 압도적인 제품을 많이 만들어냈다. 그러나 찢기고 짓밟힌 과거를 기억하는 우리 입장에서 저들의 현실 지향적인 태도가 분노의 응어리를 만들어낸다.


그들에겐 반성이 없다. 자꾸만 과거를 물고 늘어지는 한국인이 참 못나고 지긋지긋해 보인다. 유력 정치인들은 여전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TV에 나와 왜곡된 역사를 공표한다. 이런 태도가 지배적인 일본 사회에서 자꾸만 거울을 들이대는 하루키는 변태, 변종에 속한다. 난징 대학살을 다뤘다고 여겨지는 <기사단장 죽이기>는 출간 이후 테러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지적 토양이 어디서부터 유래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른바 68혁명 세대에 속하고, 학창 시절엔 그 강력한 투쟁에 꽤 깊숙이 관여했을 듯한데, 잡담이 난무하는 그 수많은 에세이 속에서도 당시의 일만큼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마침내 결심을 맺었으나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으로 희망을 잃은 우리처럼 일본의 68세대도 완전히 패배해 이후 깊은 허무에 빠져버린다. 하루키의 초기작에서 자주 등장하는 목적 없는 인간들은 이 상처의 결과물인지 모른다. 그러나 하루키는 이후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고,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기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과 그 폭력성을 고발하려 한다. <양을 쫓는 모험>이 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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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2-06-12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로는 대학생 때 운동권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관찰자였던 것 같아요. 바람의노래를들어라 읽고 이 작품은 안 읽었는데 리뷰 잘 봤습니다~

한깨짱 2022-06-17 15:36   좋아요 1 | URL
아, 운동권은 아니었군요. 생각해보면 역시 그게 어울리는거 같기도 하고요. 저는 아무래도 후기작들이 좀 더 마음에 드네요.
 
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 안전가옥 쇼-트 9
류연웅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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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는 제목 그대로 전통문학의 근본을 단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문도! 가고 싶은 대로 간다' 식의 줄거리에 인터넷 밈을 적절히 버무린 소설로, 작가는 이야기 안팎을 오가며 독자와 소통하는 포스트 모던한 형식을 취한다. 작은 판본에 쪽수도 170페이지가 채 안돼 출판사는 경장편이라 부르는데 스압이 좀 있는 인터넷 사연 정도로 봐줘도 될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를 선택할 독자들을 위해 줄거리를 12줄로 정리해보겠다.


1. 주인공 한채연은 '미디어 제작 실습'이라는 대학교 수업에서 불곡고등학교 3학년 1반 김덕배를 인터뷰하게 된다.


2. 김덕배, 그는 축구 경력이 전무했지만 월드컵 예선 최종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극적인 결승골을 넣어 국가의 영웅이 된 고딩이다.


3. 그가 한국 대표팀에 선발된 계기는 '이따위로 할 거면 너네 불곡고등학교 3학년 1반 김덕배나 뽑아라'라는 어느 네티즌의 악플.


4. 우여곡절 예선은 통과했으나 당연히 본선에서 참패 참패 참참패한 한국 대표팀에 국민적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5. 시민들은 대표팀이 입국하자마자 공항에서 선수들과 패싸움을 벌이고 인근은 준 폭동 상태가 되어 상당한 피해가 발생한다.


6. 국가는 가정폭력, 성폭력, 불량 식품, 학교 폭력과 함께 축구를 5대 사회악으로 지정해 프로팀 폐지를 비롯 한국 땅에서 축구 행위를 완전히 근절한다.


7. 김덕배는 사라졌다.


8. 한채연은 김덕배를 찾지 못한다.


9. 하지만 그녀는 김덕배를 인터뷰해야만 한다. 친구들에게 인당 50만 원씩 받고 과제를 전담했기 때문이다. 위약금은 200배.


10. 한채연은 스스로 김덕배로 변해 가짜 인터뷰를 제작한다.


11. 감동한 교수가 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한다.


12. 세상이 다시 김덕배로 들썩인다.


줄거리는 대략 이 정도다. 나름 곳곳에 반전이 숨어있고 실제로 읽어보면 나의 요약본 보다 훨씬 어이없는 전개가 펼쳐진다.


안전가옥의 쇼트 시리즈는 작고 귀여운 소설들을 출판한다. 엉덩이 한쪽이 불룩해지는 걸 각오하면 청바지 뒷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다. 읽기가 빠르면 출근-퇴근 한 쌍으로 박살 낼 수도 있다. 호불호는 꽤 갈릴 거라 예상한다. 쇼트 시리즈가 원래 실험적이긴 한데, 걔 중에도 이 책은 톱클래스에 위치한다.


근본을 따지는 사람은 뇌절을 각오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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