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협력한다
디르크 브로크만 지음, 강민경 옮김 / 알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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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온 세상이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했으며, 근본적으로 같다는 비교적 신비주의에 빠져든 사람들에게 인지편향을 더해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각 장의 주제를 간단히 살펴보면 복잡한 연결망, 조화, 임계성, 티핑 포인트, 집단행동, 협력이며 이 주제를 설명하는 소재로 버섯, 메트로놈, 친구의 친구, 모래더미와 팬데믹, 기후 위기, 청어, 세균총 등이 등장한다.


이 난잡한 집합에 한 가지 혼란을 더하기 위해 나는 저자의 약력을 소개하고 싶다. 저자 디르크 브로크만은 원래 이론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한 독일인이다. 그는 일찌감치 전통적인 물리학에서 멀어졌는데 그의 학사 논문 주제가 '포유동물의 호흡과 호흡 조절 방식'이었다는 것만 봐도 그 거리가 얼마나 멀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는 이제 막 연구가 시작된 신경망으로 관심을 옮겼고, 안구의 무작위 운동과 앨버트로스의 먹이 탐색, 거미원숭이의 밀림 이동 경로 사이의 공통점을 연구했으며, 물리학 박사로서 생물학 교수로 임용되기 전에는 미국에서 응용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이 얼마나 복잡한 인생인가!


그는 현재 자신을 '복잡계 과학자'라고 소개한다. 이 복잡계 과학자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주제를 한데 엮어 책으로 낸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는 이 모든 것들이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서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은 '보기'에 관한 책이다.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 그 관점에서 도출된 이미지들을 때로는 좁고 깊게 탐구하고, 때로는 전체적으로 연결해 어느 순간 강하게 불을 튀기며 융합되는 조화의 경이를 체험한다면 우리가 몸담은 자연과 사회를 복잡계 과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동력이 될 것이다.


둘째는 이 현상들 사이의 분명한 연관을 어떻게 찾아내고 탐구하는지를 돕는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공통점의 흔적을 어떻게 찾아낸 걸까? 연관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 관계를 통해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


평소에 잡학다식하다는, 칭찬과 비하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평을 자주 들어온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역시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과 함께 동류의 동료들을 찾은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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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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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세상은 온통 암흑으로 느껴진다. 한참을 허우적대다 쓰러지면 더 이상 일어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쓰러진 자리엔 어둠이 쌓여 담이 되고 가끔 스쳐가던 한 줌의 빛조차 막아버린다. 무게도, 냄새도, 색도 없고 만져지지도 않는 암흑이 짓누르는 무게에 온 몸은 깊이 가라앉는다.


육체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그 한계를 깨달을 때마다 멈추고 주저앉는 시간은 끝 모를 불안을 만들어낸다. 불안에 빠지면 자신에게 이 시간의 한계를 뚫고 미래를 열어갈 능력이 있다는 걸 잊게 된다. 작가는 그 능력을 이렇게 말한다.


미래를 기억하기.


나의 시간은 유한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무한하다. 내가 벽을 허물고 일어나 타인의 목소리를 품에 안고 내 목소리를 그에게 들려줄 때, 비로소 나는 우리가 되어 영원으로 이어진다. 좋았던 과거를 기억하는 건 비관의 먹이가 되지만 미래를 기억하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려준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미래를 기억'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최근 한국사회에 불어닥친 불행과 패배를 상징한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이들을 동정하는 편과 그렇지 않은 편으로 나눠 등을 돌리고 살아왔다. 이 극단의 시대에, 혐오와 무관용의 칼날을 헤쳐나갈 방법을, 김연수는 이야기한다.


나는 지난날 김연수를 외면해왔는데 대개는 그가 펼치는 이야기가 오글거리고 희망에 대한 강요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본 청춘 드라마에 나오는 열혈 담임선생님처럼 말이다. 한두 권만 읽어봐도 이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편견인지를 깨달을 수 있지만, 비로소 이 단편집을 통해 나는 이 작가가 정말로 대가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김연수는 완전히 다른 8개의 소설을 한 개의 주제로 정확히 꿰뚫는다. 몽골의 사막에서 조선의 바다로, 북한의 수도원으로, 도쿄의 진보초로, 작가는 경계를 알 수 없는 다채로운 이야기로 독자를 이끌며 소설이란 과연 시공간의 한계가 없는 궁극의 이야기 수단이구나 라는걸 깨닫게 해 준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으며 나는 비로소 소설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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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3회 나오키상 수상작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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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옌이 미스터리 소설을 썼다면 아마 <류>가 나왔을 것이다. <류>의 작가 히가시야마 아키라는 대만에서 태어나 9살까지 살다가 일본으로 갔다. 그때부터 쭉 후쿠오카에서 살고 있다.


모옌은 대륙의 남자고 히가시야마는 섬 사나이다. 그러나 그들이 다루는 인물은 모두 대륙인이다. 차이는 대륙에 쭉 남았느냐 섬으로 옮겼느냐다. 여기에는 중국 역사의 슬픈 분열이 있다. 모옌의 대표작 <홍까오량 가족>은 국공내전을 주요한 배경으로 하고 히가시야마의 <류> 또한 그 역사를 뿌리로 이야기가 흐른다.


두 사람이 비극을 견뎌내는 방법은 유머였다. 피와 정신을 나눈 형제들끼리 잔인하게 학살하고, 그 복수를 위해 또 다른 참상을 만들어내고. 사상의 분열은 오직 피만이 피를 씻어낼 수 있다는 듯 극단으로 치닫고 피해는 늘 이름 없는 자들의 몫이 된다. 이 고리를 잘라내는 방법은 우리에게 인간성이 있음을 다시 깨닫는 것이다. 유머는 이 일을 가장 잘 해낸다. 터질 것 같은 긴장을 순식간에 녹이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 힘을 빼준다. 웃음은 전염된다. 유머는 결코 역사를 가볍게 만들지 않는다. 부드럽게 만든다. 그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아볼 수 있게.


주인공 치우성은 본토에서 쫓겨나 섬에 정착한 산둥성 출신 예준린의 손자다. 배경은 70~80년대로 국민당의 아버지 총통 장제스가 죽고 흡수 합병을 위해 중국이 대만인에게도 자국의 여권과 비자를 발급하던 시기였다.


이 혼란의 시기에 치우성은 예준린의 죽음을 목격한다. 할아버지는 운영하던 가게의 욕조에 손발이 묶인 채 누워있었다. 그의 폐를 가득 채운 건 욕조의 물이었다. 가게 어딘가에서 습격을 받은 뒤 욕조로 끌려가 익사한 것이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가장 먼저 발견한 치우성은 오로지 이 사건에 정신을 뺏겨 학창 시절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든다. 누구보다 자기를 사랑하던 할아버지였다. 비록 젊은 시절 무고한 백성 56명을 학살해 고향땅에는 그 잔인함을 새긴 비석이 세워질 정도였지만.


이야기를 열고 맺는 건 예준린의 죽음이지만 그 사이에 흐르는 건 고향 땅을 떠나 대만에 정착했던 1세대와 그 자손들의 삶, 대만의 역사다. 단순하고 멍청한 삶 속에는 정과 의리가 숨어 있다. 예준린 일가를 지켜주는 도깨비불이 등장하고, 귀신의 원한을 풀어주는 등 다소 황당한 사건도 펼쳐지는데 이 모든 것들이 자연히 스며들어 무리 없이 통하는 게 이 소설의 힘이다. 미스터리는 소재일 뿐, 결코 주제가 될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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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회계 1도 모르겠습니다 - 0부터 시작하는 나의 첫 회계 공부
고야마 아키히로 지음, 김지낭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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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표지에 쓰여 있는 것처럼 '0부터 시작하는 나의 첫 회계 공부'가 맞다. 크게는 재무회계, 관리회계, 세무회계로 나누고 이를 손익계산서, 재무상태표, 현금흐름표라는 재무 3표를 기반으로 설명한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쉽고 기본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책상 앞에 각을 잡고 앉아 읽을 필요가 없다. 나는 출퇴근 길에 읽었다.


쉽다고 깊이가 없는 건 아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기본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실상 체계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얻을 것인가 낚는 법을 배울 것인가. 재무 3표가 무엇이고 복식부기와 단식부기의 차이를 아는 건 물고기를 얻는 것에 해당한다. 반면 이것들이 어떤 필요에 의해 생겨났으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낚는 법에 해당한다. 재무 3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관련 자격증을 따고 취업 기회를 얻을 수 있겠지만 이해하는 사람은 재무 4표, 5표를 만들어내고 세상의 변화에 맞춰 그 시스템을 수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해의 시작은 지식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괜찮은 내용을 전달한다. 핵심만 간결하게. 내가 추천하는 독법은 이렇다. 일단 전체 내용을 쭉 한 번 훑어본다. 그다음 종이에 무엇을 배웠는지 정리해본다. 정리한 내용을 읽으며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파악하고 그 내용만 다시 읽는다. 어느 정도 개념이 잡혔다 싶으면 상장 기업의 재무제표를 받아(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분석해본다. 이 작업을 반복한다.


최근에 서점을 가지 못해 읽을 책이 너무너무 없었고, 주변 사람들의 책장에서 안 읽은 책을 선택한 거라 사실상 기대가 0에 가까웠지만 나름 배울 게 있어 기분이 좋았던 책이다. 힘들고 어려웠던 프리랜서 시절 세무 신고를 할 때 수익이 낮아 복식부기를 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귀찮음을 덜었다는 생각에 마냥 즐거웠던 바보 시절도 생각나고, 아주 먼 옛날 영업이익이 인건비를 뺀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친구와 설전을 벌이던 일도 떠올랐다. 적어도 이 두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알게 되어 마음이 가볍다.


그래도 가장 큰 불씨는 다른 회사의 재무제표를 읽어보겠다는 마음을 지펴준 것이 아닐까 싶다. 때로는 가벼운 시작이 긴긴 여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오래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이 있는데, 더 중요한 건 가볍게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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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요괴 도감
고성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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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어른이 되서까지 왜 요괴 따위에 관심을 갖느냐 하면, 어릴 때부터 버려지고 소외된 것들을 주워 모으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내 책상 서랍에는 부서진 전화기 부품부터, 자석, 고장 난 시계, 다양한 크기의 쇠파이프 등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했다. 용도는 당연히 불명. 남들이 보기엔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을 고이 모아 보관했다.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 힐끗 눈길을 주고 지나친 것들 일지 몰라도 내게 괴물과 귀물 온갖 귀신들은 과거에 실재했고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 자기들만의 세계를 갖추고 살리라는 상상의 끈을 이어가게 만든다. 물론 최근 몇 년 동안은 이런 소재들을 내가 만들려는 이야기와 게임에 활용하겠다는 목적이 더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한국 요괴 도감>은 나 같은 사람들이 돈을 모아 꾸린 개인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책이다. 오덕들의 구매력은 워낙 정평이 나있지 않은가. 정가의 10배로 거래되던 책이 위즈덤하우스에서 정식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삼국유사>, <삼국사기>, <용재총화>, <어우야담> 등 고문헌과 도시전설, 다양한 민담을 바탕으로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국에 존재했던 괴물, 귀신, 사물, 신적 존재 218종을 소개한다.


분류는 크게 괴물, 귀물, 사물, 신으로 나뉜다. 괴물과 귀물은 살아있느냐 아니냐, 물리적 실체냐 영적 존재냐의 차이로 보면 된다. 예컨대 구미호는 괴물에, 도깨비는 귀물에 속한다. 사물은 영험한 또는 사악한 힘이 깃든, 일종이 아이템이라고 보면 된다. 신은 사방신, 설문대할망 등 한국의 신화에 등장하는 존재들이다.


신화는 고대인들이 이 세상을 나름대로 이해하기 위해 도입한 수단이니 그렇다고 넘어가도, 괴물과 귀신의 목격담은 왜 시간을 막론하고 계속되는 걸까? 문헌을 보면 장삼이사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역사 속 위인들이 진심으로 믿는 듯 진지하게 남긴 기록들도 있다. 일부는 이야기 속 주인공을 더 돋보이게 만들려는 목적이 있었을 것 같다. 거구귀를 타고 과거를 보러 가 장원급제했다는 이야기는, 알에서 태어났다는 박혁거세 이야기처럼 인물을 신화화하는 기술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한편으론, 그래, 그 시절에도 버려지고 소외된 것들에 마음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할 필요는 없는 책이다. 기승전결을 갖춘 이야기들이 아니라 출처, 생김새, 목격담을 짤막하게 구성한 글이니까. 쭉 읽어나가기엔 지루할 가능성이 높다. 인덱싱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기에도 좋다. 하지만 나는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내 손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이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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