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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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솔닛의 책들은 하나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 설명한다기보다는  그녀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사유를 엿볼 수 있는 에세이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특정 키워드, 예컨대 페미니즘 같은 키워드를 통해 솔닛을 접한 사람들은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그녀가 비록 '맨스플레인(men + explain)'이라는 단어의 탄생에 지대한 공헌을 한 작가이긴 하지만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페미니스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들을 공격하는 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독자는 고명하신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로 그녀의 책을 만나는 게 아니라 메가폰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 열변을 토하는 행동가와 보도에 서서 그녀를 쳐다보는 구경꾼의 관계로 만난다. 그녀의 목적은 물론 당신을 그 보도에서 걸어나와 길 한복판에 서게 만드는 것이다. 장담컨대 눈과 귀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비록 그 주제가 정치에서 여성혐오, 기후문제에서 인권 문제로 여기저기 옮겨다니지만, 하나 하나의 꼭지에 담긴 생각들은 모두 반짝이는 보석같다.


누구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꼬치 꼬치 캐묻기를 싫어한다. 사람들은 설명하기 힘든 문제, 설명하기 난처한 문제들에 대해 '원래 그런 거야' 라고 말하고 덮어두기를 좋아한다. 마치 썩어가는 음식물들을 가려둔 것 처럼, 누군가 조금이라도 들추려 들면 정색을 하고 화를 낸다.


레베카 솔닛에게 '원래 그런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문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번째 단계는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예컨대 결혼이라는 제도가 이어져온 수천년 동안 인류 역사에는 부부싸움이 있었을 뿐 '가정 폭력'은 없었다는 사실을 돌아보자. 이게 무슨 말이냐고? 부부싸움은 서로 다른 두 남녀가 같이 살면서 겪는 일상적인 일, 그러니까 개인과 개인, 크게 봐줘야 가정의 문제기 때문에 가정 내에서 당사자들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가정폭력'은 어떠한가? 그것은 가족 구성원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일이며, '사회적 문제'이고, 따라서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된다. 이것이 왜 '이름들의 전쟁'인지 이제 알겠는가?


솔닛이 여기저기 분탕질을 벌이고 돌아다니는 이유는 익숙한 현상을 문제로 명명함으로써, 즉 그들을 그들의 진짜 이름으로 불러줌으로써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만들려는 것이다. 당연한 것들은 차곡차곡 눌러 내부에 쌓아둘 수 있지만 문제들은 그럴 수 없다. 그것은 표면이 거칠고 여기저기 삐죽 삐죽 튀어나와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린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어쩌겠는가? 누군가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을 각오를 하며 이런 일을 벌인다. 그래야 세상은 균형을 맞출 수 있으니까.


개인적으로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라는 한국어판 제목보다는 <Call them by their true names>라는 원제가 훨씬 마음에 든다. 전쟁을 벌이자는 게 아니다. 그들을, 그저 진짜 이름으로 한번 불러보자는 것이다. 다같이 거리로 나와서. 혹은 공원에 비잉 둘러 앉아서 말이다. 나는 이 제안이 주는 평화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이것은 사사건건 성대결로 번지고 있는 최근의 우악스러운 사태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문제는 당신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다.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건 당신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그러니 다같이 모여 그들을, 그들의 진짜 이름으로 한번 불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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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19
박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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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은 시간으로 시를 쓰고 살핌으로 사랑을 하는 시인이다. 책날개에 쓰인 말,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라는 말은 그의 사랑과 시에 섞일 정서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박준은 늘 한발짝 뒤에 떨어져 걷거나 미리 나와 기다리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이가 행여나 잠에서 깰까 조용 조용 책장을 넘기다 깼다는 기침을 느끼는 순간 조용히 책장을 덮고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나는 박준의 시에서 항상 아련하고 왠지 뜻 모를 아픔을 느끼는데 아마도 그것은 그의 시가 늘 과거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시인이 더 이상 그 사랑을 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면서도 박준은 펑펑 울거나 주고 받은 크기의 부당함에 억울해하거나 가버린 것에 집착하는 법이 없다. 그는 사라진 것을 조용히 놔둔 채 묵묵히 바라보는 시를 쓴다. 연필이 원고지 위를 구르는 소리라도 들렸다간 기억이 산산히 부서지기라도 한다는 듯이. 박준은 한번 뱉은 말은 결코 죽지 않고 어딘가에 모여 쌓인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사랑을 이야기할 때 대상을 직접 찾아가 묻는 대신 말이 쌓인 숲을 찾아간다. 거기서 그는 꽃을 찾듯 흘러간 말들을 기어 올린다. 그렇게 구성된 시간을 박준은 시로 옮겨 쓴다. 그의 말들이 뚜렷한 형체나 색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전체가 흐릿하게 채색된 인상으로 남는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는 쓰는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읽지 않는 시대에 살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들은 쓰러진 담장을 매일 아침 다시 쌓아올리는 답답한 사람들이고 파도에 쓸려 바다 밑으로 끊임없이 가라앉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시를 쓰는 사람은, 그 중에서도 서정을 노래하는 사람은 발목에 가장 큰 족쇄를 차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박준의 성공이 놀랍고 또 반갑다. 그의 서정시가 읽지 않는 시대에 새기는 울림은 우리의 쓰기가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다. 그동안 우리는 시대의 벽을 뚫을만큼 단단하지 못한 우리의 글에 끊임없이 담금질을 계속해왔던 건 아닐까? 젊은이의 외투를 벗게 한 건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었다는 옛 이야기를 까맣게 잊은 것처럼 말이다.


현실의 고통이 클수록 사람들은 과거에 광택을 더하곤 한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뒤를 돌아보며 자신이 더한 밝기에 취해 오늘의 고통을 마취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박준의 시가 성공을 거두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의 과거는 항상 아름다운 배려로 가득하니까. 만화경에 홀린 아이처럼, 우리는 그 아름다운 세계를 다시 현실에 지으려 노력하기 보다는 과거의 환상에 주저앉는 것이다.


이 시의 성공이 차갑게 식은 우리의 심장에 다시 불을 붙였기 때문인지, 우리를 돌려세워 오늘의 고통에서 눈을 떼도록 마취시켰기 때문인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생각하기에 앞서 나는 그냥 박준의 시가 좋다. 이 시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든, 그것이 작가 스스로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옅은 향만으로도 취해 설레이는 사람처럼, 그의 시를 읽고, 또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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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북유럽 신화
닐 게이먼 지음, 박선령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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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읽다보면 신들이 인간 중에서도 최고의 멍청이들을 모아 놓은 집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온갖 지혜와 진리를 획득한 신조차 어이없을 정도의 속임수에 넘어가는데, 솔직히 그런 실력으로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는지 알 도리가 없다. 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이 이토록 어지러운 건가?


신화는 고대인들의 세계 해석서였다. 해가 뜨고 달 지고 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고 강이 범람하고. 그들은 변덕스러운 자연 현상이 두려웠고 그 두려움을 몰아내는 방법으로 놀랍게도 이야기를 선택했다. 태양이 움직이는 것은 그것을 집어 삼키려 달려오는 늑대를 피하기 위해서고 천둥이 치는 것은 천둥의 신이 노했기 때문이다. 이유를 알게된 사람들은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게됐고 그것을 섬김으로써 다가올 재앙과 화를 막을 수 있기를 바랐다. 이것이 바로 신화가 탄생한 이유와 인간이 신을 섬기게 된 유래다.


따라서 신들은 엉망진창일 수 밖에 없다.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의 변화, 단 일초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만물의 특성을 신의 속성으로 반영해야 했기 때문이다. 신들은 인간과 닮았고 인간의 삶에 깊숙히 들어온다. 나는 언제나 그 시절의 이야기가 흥미로웠고 정말로 그 시절이 그립다. 세계에 대해 최초로 입을 연 자가 이야기꾼이라는 것도 반갑다. 그래서 나는 항상 신화에 탐닉했다. 인도, 이집트, 수메르, 동이, 그리스, 북유럽 기타 등등. 만물에 깃든 신들의 세계. 모두가 각자의 신을 섬겨도 벌받거나 생존을 위협당하지 않던 세상.


그 중에서 최고는 역시 북유럽 신화였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역시 현대 판타지물의 배경과 가장 흡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북유럽 신화에는 고블린과 드워프를 연상케하는 난쟁이와 다크엘프, 트롤이 등장한다. 스케일 면에선 어떤가? 미드가르드 뱀에 비하면 메두사는 어린 애 장난 같고 미노타우루스는 펜리스의 에피타이저 수준이다. 생활도 훨씬 구체적이다. 토르는 오딘, 로키와 함께 연회장에 모여 매일 맥주를 마신다. 즐기는 고기는 돼지와 염소인데 황당하게도 그 염소가 이끄는 마차를 탄다. RPG 게임의 전설템 같은 도구들도 수두룩하게 나온다. 태양신 프레이에게는 저절로 싸우는 검과 황금갈퀴를 날리는 돼지가 있고 그의 주머니에는 차곡차곡 접어 넣을 수 있는 배 한 척이 들어 있다. 오딘은 절대로 빗나가지 않는 창 궁니르를, 토르는 그 유명한 망치 묠니르를 휘두른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을 끈 건, 그들에게 라그나로크가 있었다는 것이다.


라그나로크. 신들의 황혼. 인간만큼 어리석고 타락한 신들은 약속의 때에 이르러 서로를 죽이는 대전쟁을 벌인다. 이 날 오딘은 드디어 펜리스에게 먹혀 음흉과 비밀로 가득했던 삶을 마감한다. 항상 말보다 주먹이 빨랐던 폭력범 토르도 미드가르드 뱀이 뿜은 독에 맞아 죽는다. 나는 그 어떤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핏빛 대멸망이 마음에 든다. 이 이야기는 아무리 위대한 존재도 결코 소멸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는가? 라그나로크가 벌어진 뒤 펼쳐지는 무의 잿더미는 삶의 끝이지만 동시에 싸움과 증오, 슬픔과 고통의 끝이기도 하다. 피로한 신들은 하늘에 올라 지긋지긋한 영생을 사는 게 아니라 마침내 완전한 무로 돌아간다. 나는 여기서 지극한 안도를 느낀다.


<북유럽 신화>는 어린애들도 넘어가지 않을 조악한 이야기와 대화로 가득하고 아주 조금 남은 재미마저 번역이 먹어치우지만, 나는 이 책을 두 번이나 읽었다. 이야기는 그런 것이다. 머리를 통째로 꺼내 박박 문질러 닦아도 지워지기는 커녕 점점 넓게 번져나간다. 이것은 평생 조금씩 변하며 머리 속에 고유한 흔적을 남긴다. 이야기가 우리와 평생을 함께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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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투 원 - 스탠퍼드 대학교 스타트업 최고 명강의
피터 틸 & 블레이크 매스터스 지음, 이지연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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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투자가 피터 틸이 이 세상의 기업인들에게 전하는 메세지는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제로에서 하나를 만들라는 것(Zero to One).


지구상의 모든 위대한 기업은 영에서 하나를 만들며 탄생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과 기존의 것을 10배에서 100배 정도 개선하는 것이다. 헨리 포드는 자동차를 만들어 말을 밀어냈고 라이트 형제는 하늘을 나는 최초의 인간이 됐다. 에디슨은 캄캄한 밤을 빛으로 바꿨고 벨은 우편보다 수십만배 빠르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했다.


위대한 기업은 기본적으로 독점 기업일 수 밖에 없다. 다른 기업은 0인데 본인만 1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기업은 자신이 최초로 만들었던 시장에 경쟁자들이 난립하면서 기존의 1을 1.1이나 1.2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순간 평범한 기업으로 전락한다. 이 징후를 확인하는 법은 쉽다. 실리콘밸리의 괴짜 CEO들이 재무에 밝은 관리형 CEO로 바뀌고 청바지에 티셔츠, 슬리퍼를 끌던 엔지니어들이 넥타이를 멘 양복쟁이들로 교체될 때를 보면 된다.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징후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실제 피터 틸은 양복을 입는 스타트업 CEO에게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영에서 하나를 만들어내는 기업의 두번째 공통점은 대부분 카리스마 넘치는 CEO가 회사의 전반을 독단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의견을 수렴하고, 조화를 이루고, 이사회와 주주들의 말을 듣고, 온건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 중에 창조와 관련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티브 잡스, 제프 베조스, 엘론 머스크 모두 자타가 공인하는 폭군이며 자신의 엔지니어들을 주 80시간 근무의 지옥 속으로 갈아넣는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는 사람들이다. 위대한 사람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보다 일을 중시하며 자신의 직원들 또한 자신의 삶보다 일을 중요하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한다. 폭군의 군사들은 술탄의 예니체리처럼(직속 경호부대) 집단 최면에 걸린 최정예 수호병들이다.


이 책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경영의 잠언을 수없이 담고 있지만 상당히 편향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독점의 중요성을 강조하느라 다른 사례에 대해선 아예 귀를 닫아 버린다. 예컨대 우버는 왜 리프트가 선점한 시장에 달려들어 세계 1위의 승차공유서비스가 됐을까? 우버는 정말로 리프트보다 10배 혹은 100배 훌륭한 서비스일까? 피터 틸은 또한 MS가 모바일에서의 출혈적 경쟁을 포기하고 클라우드 사업으로 돌아섬으로써 다시 한번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됐다고 주장하는데(얼마전 애플을 밀어내고 시총 1위가 됐지만 다시 아마존에게 뺏겼다) 사실 그들은 경쟁 상대를 애플, 삼성, 구글에서 아마존으로(AWS) 바꾼 것 뿐이다. 사실 독점과 경쟁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 도저히 뗄레야 뗄 수가 없다. 독점은 경쟁이 낳은 결과이지 결코 그 자체가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예전엔 기업이 정부와 유착 관계를 형성해 독점권을 얻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도 다른 기업과의 부패 경쟁을 벌여야만 가능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위대한 기업들 모두 물밑에선 수많은 경쟁자와 싸워왔다.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경쟁자를 모두 침몰시키고 수평선 위로 솟아오른 단 한척의 배이기 때문에 그것이 무에서 탄생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경제학자들은 완전경쟁을 가장 이상적인 시장의 상태로 생각하며 21세기의 대다수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좋고, 옳은 것이라 믿는다. <Zero to One>은 정치와 경제 두 관점에서 우리가 가진 통념을 배반한다. 사실 이런 생각은 10년도 더 된 '블루오션 전략'이나 지금도 수없이 쏟아지는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혁신가들 이야기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이지만, 피터 틸의 자신감 넘치는 문체와 실제 그가 이룬 수많은 업적들이 오버랩되며 상당히 흥미진진한 전개가 펼쳐진다. 쉽게 말해,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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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대량살상수학무기 - 어떻게 빅데이터는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캐시 오닐 지음, 김정혜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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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미래를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미래는 데이터다.


최근 수년 사이에 벌어진 급격한 기술 발전은 대부분 데이터를 처리하는 능력과 관련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딥러닝을 이용한 기계학습은 이제 산업 전체로 확산됐다. 예전엔 슈퍼컴퓨터로도 분석이 어려웠던 대규모 데이터들이 PC와 연결된 클라우딩 컴퓨팅으로도 가능한 시대가 됐다. 그동안 발만 동동구르며 데이터를 쌓기만 했던 기업들이 앞다투어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이토록 데이터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객관적 증거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겪는 갈등의 대부분은 사실 한쪽이 틀린 주장을, 다른 쪽이 옳은 주장을 펼치기 때문에 벌어지지 않는다. 첨예한 갈등은 대개 양쪽이 모두 옳은 주장을 펼칠때 폭발한다. 양쪽은 모두 논리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내세우며 자신의 주장을 강화한다. 하지만 논리적인 것이 정말 옳은 것일까? 대한민국의 집값이 오르는 이유는 공급이 부족해서일까 투기를 하기 때문일까? 양쪽 모두 데이터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말할 수 있지만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선 맞는 말이 다른 시기, 다른 지역에선 완전히 틀린 말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 이유는 특정 현상이 발생하는데 관여한 변수들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 모든 변수들을 수집할 방법도, 분석할 능력도 없다. 바로 여기가, 빅데이터 분석의 필요성이 절실해지는 지점이다.


데이터가 사람보다 공정하다는 믿음은 우리 사회에 널린 통용되는 미신이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은 태어난 곳도, 졸업한 학교도 지인도 없으며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이해관계가 전무하기 때문에 프로그램은 누구보다 공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념은 우리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는 프로그램이 인간에 의해 운영된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한다. 여기 10년 동안 한 번도 연체를 해본 적이 없는 직장인이 있다고 해보자. 그러나 이 사람은 그동안 신용카드도, 대출도 써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신용평가 회사에서 평가하는 신용 수준은 5등급으로 다소 낮은 편이다. 프로그램은 신용등급이 낮지만 이 사람의 과거 행적을 볼 때 성실한 채무 변제가 예상되므로 최저 이율을 적용하겠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판단을 그대로 적용할 은행은 장담컨대 단 한군데도 없을 것이다. 이를 위해 프로그램의 설계자들은 모든 변수에 동일한 중요도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변수의 중요성을 재배열 할 것이며 계속해서 수집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조정해 나갈 것이다.


프로그램이 설계자들의 개입을 막기 위해 실제 현장에서 최고의 업무 성과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업무 방식을 학습하는 경우에도 상황은 동일하다. 업계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편향된 사고를 갖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니 사실 그들은 앞서 언급한 설계자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실적이 좋았을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편향된 생각을 학습한 알고리즘이 피드백을 통해 강화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직장인에게 은행이 높은 이율로 대출을 해줬다고 가정하자. 이 사람은 그 돈으로 결혼 후 살집을 구매했다. 그런데 잠깐. 은행이 요구한 변동 금리는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하는데 집 값은 제자리라 매달 내야하는 원리금은 조여드는 가시처럼 압박해 온다. 결국 이 사람은 채무를 연체하기 시작한다. 시스템은 이 데이터를 근거로 최초에 높은 이율을 부과한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확신한다. 애초에 낮은 이율을 부과했다면 이 직장인이 연체할 일은 없었을텐데도 말이다.


이와 비슷한 판단은 금융계를 비롯하여 대학 입학, 회사 취업, 의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빅데이터 알고리즘은 크게 세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우리의 일상생활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 둘째, 그 피해가 막심하다. 셋째, 사람들이 자신이 왜 그런 평가를 받아야하는지 해답을 요청할 때 철저히 침묵한다(기계학습 특성상 판단의 과정은 블랙박스로 처리된다. 기계는 결론을 내놓을 수는 있지만 그 판단의 근거를 정확하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그 누구도 내부 구조를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일컬어 '대량살상수학무기'라고 부른다.


데이터에 관한한 대한민국은 아직 문턱에 서 있는 수준이다.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알고리즘에 대한 감사를 강화하는 것으로 데이터 사용자들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할까? 데이터는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에 현재의 기득권자들에게 유리한 해석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사태를 감시해야 하는 사람과 그런 사태를 만들어낸 사람이 동류라는 말이다.


하지만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복잡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우리가 앞으로 어떠한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며 그 미래를 만들어낸 존재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관심갖고, 읽고, 보고, 알아가는 것. 이것만 잘해도 미래는 그렇게 실망스럽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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