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작된 전쟁 - 북한은 왜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가
이철 지음 / 페이지2(page2)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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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베이징에서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중국이 샤오캉 사회 건설의 완성을 선언한 순간이었다. 샤오캉 사회란 절대빈곤의 문제가 해결되어 인민 모두가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대만인이었다면 이 오래된 적의 눈부신 발전보다는 뒤이은 말이 더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이 날 시진핑은 타이완의 통일을 완성하고 공식적인 독립을 위한 어떤 시도도 분쇄하겠다고 엄중하게 발표했다(p.40). 인구가 14억이 넘고, 4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자, 3대 이상의 항공모함을 갖춘 유이한 국가인 중국이, 만약 대한민국을 향해 저런 발언을 했다면 나는 아마 잠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2022년 중국이 발표한 통일 백서는 이 공포가 막연한 것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표면상 이 백서는 '우리는 앞으로 최대한의 성실과 최선을 다해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할 것'(p.44)이라고 말했지만 2000년에 발행한 백서에 포함했던 '중앙 정부는(통일 후) 타이완에 군인과 행정인력을 배치하지 않을 것'(p.44) 이라든가 '어떤 문제도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협상할 것'(p.44)이라는 문장은 삭제했다.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하면 샤오캉 사회의 건설을 완성한 중국 공산단의 다음 100년 목표는 중화의 통일이며 이 과정에서 무력이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3 연임에 성공한 시진핑은 재임 중에 통일을 이뤄 스스로를 가장 위대한 공산 지도자로 만들 야욕에 불타오르고 있다.


자, 그럼 이 양안 전쟁이 대한민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최강 반도체 회사 TSMC가 전쟁으로 궤멸하여 한국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나 안이하다. 대만과 중국의 전쟁은 사실상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며 이는 대한민국이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 군사 동맹인 미국 사이에서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이완 점령을 위해 중국은 바다로 나올 것이며 본국에서부터 대략 3시간이 소요된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미국과 그 우방이 개입하기 전에 대만을 점령하는 것이다. 이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한국과 일본에 주둔한 미군이다.


<이미 시작된 전쟁>은 중국이 한, 미, 일을 잡아두기 위해 한반도 전쟁을 일으킬 거라 주장한다. 북한과 중국의 목적은 한반도의 적화통일이 아니다. 적당한 도발로 주한 미군을 묶어두고, 러시아를 이용해 일본 해안을 위협하면 이들이 양안 전쟁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진다. 비로소 속전속결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미국의 제재를 숱하게 받아온 북한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 전쟁은 오히려 북한에게 활로를 뚫어준다. 물론 러시아에 무기를 파는 것과 직접 전쟁을 치르는 건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간 넘을 듯 말 듯 미묘한 도발을 기가 막히게 수행해 온 북한이 아닌가? 북한은 국지전을 치를지언정 결코 전면전으로는 번지지 않을 정도의 군사 도발을 절묘하게 찌르고 들어올 것이다.


대한민국은 양안 전쟁으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제 자국 영토 내에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위험에 직면했다. 저자는 이 위기를 '북진통일'로 돌파하자고 주장하는데, 앞선 분석의 설득력에 비해 너무 급진적인 면이 있다. 자국 영토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스스로 초래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략까지 생각해야만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외교는 오직 자국의 이득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기적 행위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죽고 다치는 게 뭐가 그리 대수겠는가? 대만을 점령할 수만 있다면, 중국을 꺾을 수만 있다면, 센카쿠의 영유권을 얻어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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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 - 2세기에 걸쳐 진화한 세계화의 과거, 현재, 미래
마크 레빈슨 지음, 최준영 옮김 / 페이지2(page2)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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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표준 컨테이너의 크기는 길이가 약 12.5미터, 너비는 약 2.5미터다. 이 표준 컨테이너는 20세기의 마지막 수십 년 동안 국제 운송비라는 항목을 기업의 비용 목록에서 거의 삭제했다. 컨테이너선은 미국 매사추세츠에 위치한 제조업체가 27개국에 공장을 운영할 수 있게 했고, 호주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와인 한 병을 병당 15센트의 가격으로 운반하게 만들었다. 컨테이너선이 없었다면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현대의 중국도 존재할 수 없었다. 세계화는 디트로이트 같은 자동차 왕국에서 한국의 크고 작은 제조업 중심 도시까지, 수많은 도시에 몰락을 가져왔다.


1956년 역사상 최초의 컨테이너선이 운항을 시작했을 때 이런 미래를 예측한 사람이 있었을까? 물류 혁신은 관세와 운송비라는 장벽에 둘러싸인 개별 국가를 '세계'라는 단일 시장으로 통합했다. 2차 세계 대전과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촉발한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를 제외하면 세계화는 늘 괴물같이 성장해 왔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 세계화는 뚜렷한 적신호 앞에 주춤거리기 시작한다. 가장 큰 이유는 제조업 자체가 세계 경제에서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2002년에 세계 총생산량의 17%를 담당했던 제조업은 2010년대에 2% 포인트 감소했다. 세계인은 공산품보다 이제 교통, 교육, 의료 및 통신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


제조업의 쇠퇴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전 세계가 마주한 고령화다. 고령 가구는 냉장고, TV, 의류를 새 걸로 바꾸기보다는 여행, 외식, 의료에 지출하는 돈이 더 많다. 두 번째는 많은 공산품들이 SW의 힘을 빌려 서비스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비디오와 CD, 블루레이는 이제 스트리밍으로 대체됐고, 제조업의 왕으로 군림하던 자동차조차 점점 공유 서비스로 전환되는 중이다. 현대 기아차가 미래 비전을 선포하면서 괜히 스스로를 '서비스 기업'이라 칭한 게 아니다.


많은 부분에서 제조 혁신이 일어나면서 생산 공정은 더 단순해지고 자동화되었다. 이는 많은 기업들이 생산직 노동자를 고용할 필요성을 감소시켰으며 더 싼 인건비를 찾아 공장을 이전할 요인 또한 사라지게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2019년에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은 수많은 나라에 문어발처럼 뻗어 놓은 긴 가치 사슬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줬다. 단 한 개의 부품 때문에 생산 라인 전체가 멈춰서는 기적. 미국이 대만을 보호하려는 이유는 대만 시민의 자유와 행복 때문이 아니다. TSMC가 생산하는 반도체가 자국의 하이테크 산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세계화는 끝난 걸까? 저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동하는 게 공산품에서 서비스와 아이디어로 바뀌었을 뿐, 그 속도와 규모는 변치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소프트웨어의 아웃소싱은 전혀 핫하지 않다. 이미 너무 평범해졌기 때문이다. 과거 정부들은 세계화의 파고를 넘기 위해 높은 관세와 규제를 갖추었다. 하지만 이런 법규들이 오늘날 인도의 개발자가 github에 소스코드를 commit 하는 걸 막을 수 있을까? 변화는 늘 파괴와 창조를 동반한다. 20세기에 시작된 세계화는 100년도 지나지 않아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 새로운 질서 속에서 어떤 기회와 몰락이 발생할지, 유심히 지켜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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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토머스 해리스 지음, 이창식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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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침묵>에서 자유를 얻은 한니발 렉터의 살인 여행이 다시 시작된다. 렉터의 새 도살장은 이탈리아의 피렌체다. 내국인을 압도하는 고어 구사 능력과 역사 지식으로 박물관 관장에 임명된 한니발 렉터는 그곳에서 변함없는 고급 취향을 향유하며 포식자의 삶을 이어간다. 육체적 감금이 없는 렉터에게 인간의 세계는 그저 장난감에 불과하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얻어내는 이 초월적 능력은 그가 소시오패스 살인마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보인다.


연쇄 살인범을 검거해 일약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으나 증거 조작 혐의로 명예가 실추된 이탈리아 경찰 파치의 도전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그도 뛰어난 감각과 수사 능력을 지닌 경찰이었지만 렉터의 상대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파치가 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고작 렉터의 가면을 벗겨내는 것이었다. 정체가 드러난 렉터는 피렌체에서 원하는 만큼 살인을 저지른 뒤 미국으로 향한다. 이 난동의 배후인 메이슨과 그의 오래된 연인 크라리스 스탈링이 사는 나라로.


메이슨은 한니발 렉터의 희생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그것이 정말로 '생존'한 것인지 의문을 품을만한 상태이긴 했다. 그는 눈꺼풀과 코와 입술이 없었다. 눈이 마르지 않게 안경은 끊임없이 물을 뿌려줘야 했고 호흡은 기계에 의존했다. 거동은 불가했다. 얼굴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요소는 한니발 렉터가 메이슨이 기르는 개에게 먹이로 줬다. 그중 일부는 메이슨이 직접 먹었다. <한니발> 속 렉터의 범죄 행위는 여자들의 가죽을 뜯어 옷을 만드는 것 정도는 애교로 만들 만큼 잔인하다.


바늘 하나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구성을 보여준 <양들의 침묵>에서 유일하게 모호했던 부분은 왜 클라리스 스탈링이 한니발의 인터뷰어로 선정됐느냐는 것이다. 그녀는 아직 연수도 다 마치지 않은 FBI 교육생이었다. 소설은 행동과학부에 워낙 일이 많아 어쩔 수 없었다고 얼버무리지만 미연방수사국의 인재풀이 교육생을 동원할 만큼 얕지는 않았을 것이다. 행동과학부의 수장 잭 크로포드는 스탈링의 든든한 지지자였고, 시리즈 내내 유사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 심리적 유대가 잭 크로포드의 잔인성을 숨겨주는 가림막이 된다. 잭은 누구보다 렉터를 잘 알았기에 이 살인마의 파트너를 아주 유심히 골랐을 것이다. 그는 렉터와 스탈링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예측했음이 분명하다. 스탈링이 견뎌야 했던 그 모든 절망이, 사실은 그녀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의 철저한 계산으로부터 나왔다는 바로 이 아이러니가 클라리스 스탈링의 삶을 이해불가한 비극으로 만든다.


영화 <한니발>과 소설 <한니발>은 결말이 완전히 다르다. 원작을 읽어보면 그 이유를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소설 <한니발>의 결말은 소름이 돋는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괴기스럽다. 경우에 따라 다시는 토마스 해리스의 책을 거들떠보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요즘 나오는 웹소설이었다면 독자의 항의로 작품이 내려지거나 작가가 이야기를 수정했을지도 모른다.


클라리스 스탈링이 마주한 이 장난 같은 운명은 상실과 좌절로 점철된 비극의 수준을 넘어선다.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무려 행복해 보이기까지 한 그녀의 삶보다, 내장을 쏟은 채 발코니에서 목이 매달린 파치의 운명을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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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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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현상과 그것에 대한 학문 사이의 심리적 거리가 먼 순으로 우열을 가리는 대회가 있다면 아마 경제학이 압도적으로 우승을 거둘 것이다. 경제, 경제, 경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단 일초도 거르지 않고 피부로 느끼는 실제가 어떻게 학문으로 변했을 때 그토록 다른 향기와 모양을 갖는 걸까? 실업과 도토리만 한 월급은 치가 떨릴 정도로 생생한데 자유무역이나 관세, 자본의 국제적 이동이라는 말은 밤하늘 저 끝의 흐릿한 별보다도 멀게 느껴진다. 그들이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말이다.


장하준이 전 세계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책은 <나쁜 사마리아인>이다. 이 책은 그의 전작 <사다리 걷어차기>와 거의 같은 얘기를 했음에도 판매부수에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다. 둘 다 읽어본 내 입장에도 <사다리 걷어차기>보다는 <나쁜 사마리아인>이 훨씬 재미있었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라 기억이 정확 지는 않다는 점을 감안하고 말하면, 전자는 통계가 가득한 논문에 가까웠던데 비해 후자는 훨씬 이야기 같았다.


<나쁜 사마리아인>은 내 경제학 입문서였다. 이후 장하준 교수의 책은 물론 수많은 경제학 저서를 전전했고 하이에크 같이 저자와는 완전히 다른 별에 존재하는 경제학자를 만나기도 했다. 물론 당시에는 내가 상당히 경도된 시절이라 다른 사상이라면 무조건 물어뜯기 바빠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 시절 장하준 교수의 책들은 내 사상의 방패이자 창이 되어주었다.


장하준 교수 책들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보다 쉽고 명료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몇 년 전 다시 읽어본 <나쁜 사마리아인>은 결코 쉬운 책이 아니었다.(내 독해 능력이 떨어졌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알면 알 수록 어려워진다는 우주적 진리가 적용했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교수님도 그런 점을 의식했는지 글에서 점점 더 무게를 덜어내는 것 같다.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그 길의 정점에 선 책이다.


이 책에는 마늘부터 초콜릿까지 총 18개의 식재료가 등장한다. 이를 이용한 실제 요리 레시피를 소개하면서 정치, 경제 이야기로 휙휙 방향을 트는데 어떤 과정은 예측 가능하기도 했지만 많은 것들은 솔직히 말해 의식의 흐름을 따라 퀀텀 점프를 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무척 재미있고 유익했다. 지금까지 장하준 교수가 세상을 향해 외쳐온 경제학 이론을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깝게, 입에 넣고 싶을 정도로 맛있게 조리한다. 경제학 에세이라고 볼 정도로 부드럽고 포근하다. 식탁에 마주 앉아 손수 요리한 음식을 먹으며, 와인 한 잔을 곁들이고, 해가 질 때까지 조곤조곤 담소를 나누는 기분.


여행을 가서 왜 책을 읽어?라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추천한다면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야 말로 그 취지에 딱 맞는 책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나는 료칸에 놀러 가 온천을 마친 뒤 연한 붉은색으로 물드는 노을을 바라보며 이 책을 읽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산다는 게, 행복이라는 게, 정말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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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침묵 (리커버 에디션)
토머스 해리스 지음, 공보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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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에 출간된 토마스 해리스의 장편 소설 <양들의 침묵>은 그야말로 서스펜스의 마스터피스라 할 만하다. 토마스 해리스는 한니발 렉터가 등장하는 이 시리즈들 이후로 이렇다 할 작품을 내지는 못했는데, 아마도 여기서 본인이 가진 문학적 에너지를 모두 쏟아버렸기 때문인 듯하다. 그렇다고 이 작가를 감히 원 히트 원더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해리 포터>의 조앤 K. 롤링을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듯이, 토마스 해리스는 소시오패스 천재 살인마가 등장하는 서스펜스 장르에서, 우주의 역사가 다한다 해도 변하지 않을 주춧돌을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들의 침묵>을 읽고 있으면 요즘 나오는 그 세련된 범죄 이야기들이 모조리 빛을 잃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988년이라니. 35년 전 이야기가 이토록 생상하게 읽힌다는 건 이 소설이 가진 생명력을 21세기 내에선 사실상 측정 불가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적어도 2100년까지는 이 시리즈가 문학계에서 차지한 자리에서 먼지 한 톨만큼도 밀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토머스 해리스는 기자 출신답게 이야기를 완벽하게 구성한다. 수많은 문장들 중 단 하나만 거짓이 있어도 모든 게 무의미해지는 기사처럼 이 소설은 구성의 허점을 용납하지 않는다. FBI가 연쇄살인범의 도움을 받아 다른 살인범을 추적한다는 것 자체는 그렇게 놀라운 점이 아니다. 실제 FBI의 행동과학부는 수많은 연쇄살인범들을 인터뷰해 '악의 마음을 읽는 지도'를 개발했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 '프로파일링'이라 부르는 수사 도구의 시발점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점은 자칫 반복되고 따분해질 수 있는 한니발 렉터와의 면담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방식에 있다. 이야기는 덩치 큰 여자의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드는 버펄로 빌의 새 희생자를 상원이원의 딸로 설정함으로써 자기 꼬리에 불을 붙인다.


렉터를 출세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정신이상 범죄자 수감소의 소장 프레더릭 칠튼은 이 사건을 계기로 욕망의 고삐를 단단히 쥐는 기회를 마련한다. 칠튼-렉터-스털링으로 이어지는 삼각관계에서 힘을 잃고 주저앉던 한 축이 일어서자 이야기에 균열이 생기고 그 사이로 새로운 사건들이 고여든다. 그중 백미는 역시 렉터의 탈옥일 것이다.


버펄로 빌과 스털링의 마지막 대결은 손에 땀을 쥔다는 말로는 민망할 정도로 압도적인 긴장감을 선사한다. 스털링은 연쇄살인마의 집에서 그와 마주치는 순간 희생자의 생명, 범인의 검거, 자신의 안전이라는 연쇄적 도전에 직면한다. 스털링은 이 무게에 밀려 전기가 나간 지하실에 갇힌다. 야간 투시경을 끼고 먹잇감을 향해 다가오는 버펄로 빌과 창백하게 질린 여성 수사관. 담담히, 또 대범하게 묘사해 나간 이 대목은, 어떻게 해야 이야기를 팽팽하게 당길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참고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완벽하게 알고 있었음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숨을 죽였다. 페이지를 넘기는 두 손은 힘이 들어가 떨렸고 이마에는 땀이 흘렀다. 양들이 결국 비명을 멈춘다는 비밀을 아는 건 이 이야기의 재미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양들의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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