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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의 남자
백민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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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들은 모험이 가득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아름다운 신데렐라가 왕자님과 함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 것이 당연하게만 생각되었다. 지금 어른이 되어 읽는 신데렐라는 신데렐라, 그녀가 맞는 행복한 결말을 보며 흐뭇하기도 하지만 신데렐라 앞에 나타난 멋진 왕자님의 모습은 나의 가슴도 두근거리게 만든다. "이런 멋진 왕자님이 나에게도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이지만 멋진 주인공들이 나오는 드라마에 빠져드는 이유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동화 앞에 '잔혹'이라는 단어가 붙어 잔혹동화라는 말도 있지만 단편 [신데렐라 게임을 아세요?]는 우리 시대가 만들어낸 끔찍한 상상으로 신데렐라 이야기를 바꿔 버린 아주 슬픈 이야기였다.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신데렐라 책방> 주인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정말 끔찍할 정도로 슬픈 잔혹동화였다. 가까운 곳에 <신데렐라 책방>이 있다면 나도 한번쯤 들여다 봤을 것이다. 몇 번 오고가다 책을 샀겠지. 왜 유독 예쁜 여자들이 신데렐라 책들이 있는 곳에만 있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겠지만 이 책방에는 읽고 싶은 책들이 거기에만 있나보다 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번쯤 나도 신데렐라 이야기들이 가득찬 책장 앞에 서 봤겠지. 그리고 그곳은 나에게 그저 스쳐지나가는 책장일 뿐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그저 그렇게 끝을 맺는 것도 괜찮았을텐데, 몇 명은 신데렐라 이야기의 결말을 그들 자신의 이야기로 바꿔 버리고 말았다.

 

각 단편들을 완전하게 이해할 순 없었지만 [혀끝의 남자], [폭력의 기원], [연옥 일기], [신데렐라 게임을 아세요?], [일천구백팔십 년대식 바리케이드], [재채기] 등 거의 모든 단편들은 어느 장르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익숙한 이야기들이었다. [연옥 일기]는 얼마전에 읽은 위화의 '제 7일'을 생각나게 했는데 죽고난 후 저승으로 넘어가지 못한 7일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연옥 일기]의 규칙이 없는 세상에 떨어져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피비린내가 나는 이곳에서 떠나지 못해 끝을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위화의 '제 7일'을 떠올리게 했다. 위화의 '제 7일'은 이승을 떠난 후 저승으로 넘어가지 못한 상태였긴 하지만 [연옥 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였다. 타인에 의해 삶이 바뀌었고 하늘을 나는 피가수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삶이 바뀌었지만 1년 동안 먹지를 못한 상태로 살아남을 수 있는 이는 없으니, 딱히 이들이 살아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나는 내가 처한 상황대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단편들을 읽을때마다 하는 생각은 단편들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있을까 고민한다는 것이다. 각 단편들은 그것대로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들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그래도 대표 제목을 걸고 단편들을 모아 놓았다면 어떤 주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모호한 결말, 갑자기 끝맺는 이야기,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들로 인해 단편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여기에 담겨져 있는 대부분의 단편들은 '이 의미는 뭘까?'하는 고민을 하게 하지는 않았다. 다만 [신데렐라 게임을 아세요?]는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신데렐라가 되고 싶었던 그녀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를 떠올리면 쉽게 마음을 내려 놓을 수가 없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황태자들에게는 신데렐라들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여자들일 뿐이었을 것이다. 황태자들이 움직이는 세상속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없다. 가슴 아프지만 나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 안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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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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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길을 돌아 이제야 제자리에 돌아온 것 같다. 반전이라고 할 수 없는 히다 히로마사의 딸 카자미의 출생에 얽힌 진실들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로인해 이제 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렸다.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에 남은 것이라면 히다 히로마사의 카자미를 향한 사랑, 그것뿐이다. 솔직히 이마저도 타인이 만들어준 결과였을 뿐 히다 히로마사가 한 것은 다만 이 한 가지 뿐이다. 카자미를 보호하기 위해 그가 행한 모든 것들이 진실을 묻어 버린다 하여도 다 용서받고 이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싶었나 보다. 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부모들의 자식을 향한 사랑을 품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저기 건드려 놓았던 소재들이 마무리 되는 과정은 억지로 끼워 맞춘 듯 나를 불편하게 했고 차라리 19년 전 카자미가 태어난 병원에서 납치되어 히다 히로마사의 딸로 키워줬다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 갔다면 더 좋은 소설이 만들어졌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특히 추리, 미스터리, 일반적인 가족 이야기를 함께 버무리고 싶었을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 보면 넣지 않아도 좋았을 이야기도 있었다는 것이 많이 아쉬웠다. 다만 막장 드라마 소재처럼 카자미의 출생에 얽힌 비밀이 밝혀지려는 찰나,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부딪치게 되는 '정의', 거기에 더없이 끔찍한 참사를 보게 되는 불편한 시간들이 있었지만 결말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끔 한 것이 지금까지 보았던 작품들과 다르지 않았기에 안도했다. 
 
신세 개발 산하 스포츠 과학 연구소의 부소장 유즈키는 히다 히로마사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카자미에게서 'F패턴 유전자'가 별견 되었으니 아버지인 히다의 유전자를 함께 연구하게 해 달라고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카자미가 자신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히다에게 유즈키는 유일하게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그러나 늘 삶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나를 옭아매니, 카자미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협박장이 오면서 히다는 이제 모든 진실을 마주보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 유즈키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모든 것을 알게 되고 진실을 묻으려는 히다의 의견에 동조하게 되면서 사건은 모두 마무리가 된다. 이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진실이 닫혀 버리는 것이니 '정의' 어쩌고 하면서 말을 꺼낼 생각은 없으나 히다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카자미가 안전해진다는 것은 역시 불안하다. 어디서든 진실이 툭 튀어나와 그녀를 위협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처음 시작은 카자미의 출생에 얽힌 사건이었으나 사건은 19년 전 다른 이들의 삶에 얽혀 버린 인연들을 풀어낸다. 악연이긴 하지만 얽힌 실타래가 풀어져 지금 카자미는 히다의 딸로 성장했고 히다의 아내가 19년 전 어떤 생각으로 카자미를 자신의 딸로 키웠는지 그 마음은 알 수 없으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카자미는 히다와 그의 아내 도모요의 딸이라는 것이다. 친딸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상관이 없다. 카자미가 원래 자신의 부모에게서 키워졌다면 지금과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죽을때까지 히다를 괴롭히겠지만 카자미에게는 히다가 아버지여서 자신이 원하는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는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의 자식을 향한 사랑이 담겨져 있다. 비록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 '사랑'이 있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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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분의 1의 우연]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10만 분의 1의 우연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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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가 교스케는 10만분의 1의 행운으로 <독자 뉴스사진 연간 최고상>을 받았다. 야마가 교스케는 10월 3일 도메이 고속도로 고텐바-누마즈 구간의 연쇄 추돌 사고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격돌'이란 이름으로 상을 받았다. 그날 활활 타오르고 있는 사고 차량 안에는 죽어 있는 사람도 있었고 구조를 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거리가 멀어 구조를 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야마가 교스케는 그 끔찍한 사고 현장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으며 <독자 뉴스사진 연간 최고상>을 떠올리며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은 그때 상황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했다.

 

나에게 '양자 택일을 해야 할 경우 보도와 인명 중에 당신은 어느 쪽을 우선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는가. 여기에 대한 답은 현재 차분하게 생각해 봤을 때 떠올릴 수 있는 답은 인명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이지만 막상 눈 앞에서 사고가 생기면 나에게 던져진 질문을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그래서 야마가 교스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누마이 쇼헤이처럼 야마가 교스케에게 온 10만분의 1의 행운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 야마우치 아키코를 10월 3일 사고로 잃은 누마이 쇼헤이는 경찰의 도움 없이 혼자 그날 발생한 사건을 파헤친다. 이것은 야마가 교스케가 수상 소감에 대해 쓴 글에 의구심이 들어서인데, 그것이 아니더라도 곧 결혼하게 될 사랑하는 사람을 끔찍한 사고로 떠나 보냈으니 여기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물론 한편으로 생각하면 너무나 냉정하게 사건을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어쩌면 이렇게 사건에 몰두함으로써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10만분의 1의 우연>은 독자들이 쉽게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을 드러낸 채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이것은 야마우치 아키코란 이름은 잠시 잊혀진채 누마이 쇼헤이가 밝혀내게 될 사건의 트릭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야마가 교스케가 올린 '격돌'이라 이름 붙인 사진만큼 끔찍하게 여겨진다. 내게 던져진 질문 '보도와 인명 중에 어느 쪽을 우선하겠는가?'란 질문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말았다. 사건의 진실만이 남아 있을 뿐.

 

유능한 경찰이 10월 3일 발생한 사건을 파헤치고 경찰을 돕는 역할로 누마이 쇼헤이가 등장했다면 사망자가 나온 이 사건을 이렇게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진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는 누마이가 설명하는 것의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언어로만 느껴진다. 그가 왜 이렇게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에 집착하는가. 모든 진실을 알게 되면 그는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누마이 쇼헤이 스스로가 만든 '정의'를 약혼자 야마우치 아키코가 원했을지 한번쯤 생각해 봤다면 그는 지금과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사건이 일어나게 된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유족들이 가장 원하는 일이겠으나 사건 안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잊혀진 채 이렇게 사건을 일으킨 사람과 사건이 발생하게 된 진실을 밝혀내는 사람만이 드러나는 소설은 가슴이 서늘해져서 비록 활자로 만나는 것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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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인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세트] 제3인류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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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몽 웰즈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7권이라....이 글을 본 순간 나는 그의 글을 본 적이 언제였던가 아득히 먼 옛 시간을 떠올렸다. 20여년 전이었던가? 그때는 '개미'를 읽은 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었건만 아주 작은 개미가 이동하는 모습조차도 경외감을 가지고 지켜봤던 시간이 있었다.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웠던 시간이었으며 지금도 그때의 감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개미'와 '제3인류'의 내용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에드몽 웰즈, 샤를 웰즈, 다비드 웰즈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다비드가 왜 '에마슈'라는 신인류를 탄생시킬 수 밖에 없었는지 사건의 전개에 조금 뒷받침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신인류가 탄생한다면 좋았겠지만 사람들의 이기심과 그때의 상황에 맞춰 신인류가 탄생하게 되니 아니, 만들어지게 된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샤를 웰즈가 발견한 <호모 기간티스>의 거대한 모습, 천년 가까이 살았던 그들을 왜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는지 알아가는 시간은 매우 유익했다. 샤를 웰즈와 멜라니가 예측한 것들의 사실 여부를 떠나 샤를 웰즈와 그의 조수 멜라니, 여기자 바네사 비통은 인류 역사상 아주 대단한 발견을 했으며 이것을 세상에 알리지도 못하고 불운한 일을 겪게 된 것은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샤를 웰즈가 처음 호모 기간티스를 발견했을 때의 그 벅찬 감동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이를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을 하게 만들었지만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시간도 없이 모든 것은 지구(가이아)의 뜻대로 일은 진행되고 말았다.

 

이야기를 주로 이끌어 가는 화자가 지구(가이아)라는 것이 조금 의외인데 그래서인지 '제3인류' 이 책이 꼭 동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잔혹동화 말이다. 왕자나 공주가 나오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다. 신인류조차 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며 느끼게 될 모든 고통에 대하여 또한 곧 닥치게 될 죽음에 대해 알게 되니 설마 미래가 이렇게 변화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을 느낄 정도여서 지금의 인류에게 끝이 있을까 상상하는 것조차 저어된다.

 

'제3인류'에서는 인류, 문명의 탄생, 전염병, 전쟁,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 모두 이곳에서 다루지 않는 이야기들이 없다. 그동안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이 작품을 위해 '개미', '아버지들의 아버지', '뇌', '파피용' 등의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될 정도로 그의 작품들 모두를 집대성한 작품이 이 '제3인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주 방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을텐데 어떻게 참았을까 싶을 정도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이 많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 모두를 믿는 것은 아니다. '아, 이럴 수도 있겠구나. 이런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구나' 라고 느낄 뿐이다. 하지만 신인류 에마슈가 등장하게 된 배경과 그 이면에는 철저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를 위한 목적이 숨겨져 있어 가슴이 서늘한데, 결국 작가도 과거와 미래만을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작품에서 보여준 이야기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고 싶었겠지만 역시 익숙한 현실만을 보여줬을 뿐이다. 이제 1부의 이야기가 끝났을 뿐이라 2부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살아가는 익숙한 현재의 모습과는 다른 미래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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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을 깨치다
원성혜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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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지순한 사랑, 운명과 만남 그 인연에 이어지는 사랑, 이것이 여기에 담긴 모든 것이었다. 민우상 공의 왕실을 향한 '충', 그것은 아들 민명하에게는 '충'이 아니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충'과 '효'가 모든 것이라 알고 있는 그에게 아버지 민우상이 남긴 말은 자신의 삶을 지탱해 주었던 모든 것들을 와르르 무너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의 임금에게 마음을 다하지 말고 가문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소명을 지키라니,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알아서 방도를 찾으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왕과 민우상, 그의 아들 민명하, 그들의 이야기 안에 딸 민예하와 유안이 있었다. 이 시대에 여자에게 허용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유안을 사랑하지만 신분의 차이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예하는 그를 마음에서 밀어내었다. 유안이 죽을 수도 있다 하기에 가까스로 그 마음을 닫아 다스려왔건만 임금과 아버지 사이의 해묵은 일은 예하와 유안을 천길 낭떠러지 밑으로 떠밀어 버리고 말았다. 아니, 그들에게 안락한 삶에서의 내침은 더이상 감정을 숨길 수 없는 그들의 사랑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원성혜의 '푸른빛을 깨치다'는 왕실의 비밀, 이것을 지키기 위한 예하의 아버지 민우상 공의 굳은 절개와 별개로 유안과 예하, 명하와 그가 사랑하는 이 부인의 이야기들로 중심을 이룬다. 그 속에 예하의 정혼자 정수겸이 있으며 민우상과 그의 가족들을 압박하는 수겸의 아버지 정원대가 있다. 아무리 잇속 빠른 사람이라지만 정원대가 이 일에 발을 넣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임금이 관련된 일에 그가 나서서 뭘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목숨을 내어 놓을 정도의 위험한 일에 왜 정원대가 나선 것인지, 그 이유가 불분명하다. 하물며 아들 수겸과 대립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니 그의 속내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이야기가 끝으로 치달을수록 이야기들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흩어진다. 결국은 이렇게 맺어질 수 밖에 없는가 생각하고 나니 힘이 빠지고 만다. 모든 것은 예하와 유안을 이어주기 위한 것이었을 뿐, 그 무엇도 분명한 것은 없었다. 민우상에게 '충'이란? 명하가 생각하는 '충'과 다르겠지만 상황에 따라 달리 변하는 것이 과연 '충'일 수 있을까. 결국엔 왕실을 위하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인가. 이러니 내 눈에는 예하와 유안, 명하와 이 부인의 사랑만 보일 밖에. 예하와 유안의 위협이 되는 이는 정수겸 뿐이었다. 거기에 명하를 뒤쫓는 정원대.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 되었던 민우상은 자택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보니 그의 역할은 미비하고, 나머지는 손아귀에 잡히지 않고 흩어지고 말 이야기들 뿐이었다. 예하와 유안, 명하와 이 부인의 사랑은 이들이 겪는 험난한 사건으로 인해 더 단단해질 수 밖에 없으므로 여기에서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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