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 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우리는 지금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지금 이 나이에 이런 시를 웅얼거리는 건 조금 낯간지러운 일이다. 그리고 사실 본인은 강은교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강은교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페이퍼에 뭐 올릴 만한 시가 없나 생각하다가 문득 이 시가 생각났을 뿐이다.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처럼 어떤 영화에서 이 시가 소개되었던 것 같은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시인은 1945년생이니 환갑이 지났다. 과거에는 여류(女流)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 여류시인이니 여류화가니, 여류작가니.....  - 요즘은 그런 말은 어디로 멀리 가버렸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류가 있었다면 남류(男流)도 있었을 텐데, 남류라고 말해놓고 보니 생뚱맞고 또 웃긴다. 남류란 것이 원래 없었으니 여류도 어디론가 달아나 버린 모양이다. 여류라는 발언이 다분히 성차별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멋있는 구석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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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06-04-01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가만 생각해 보니 위 시가 영화에 소개된 것이 아니라 소설 같은 데 소개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왜 있잖은가.. 최인호가 <별들의 고향>에서 마종기의 '연가'를 인용했듯이 작은 글씨로 시의 한구절 혹은 전문을 인용하고 소설의 처음 혹은 한 장이 시작되는 그런 거 말이다..
 

 

카필라바스투의 동문 (주1)

- 거기에서 당신이 얻은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옆에서 얻을 수는 없는 것이었나요? (주2)


 빛나는 신들은 신을 명상한다 메마른 강이 흐르

그늘의 그물을 쓰고 사내는 대답하지 못했다

무수한 벽돌들이 밤바다의 성좌처럼 흩어져 있다

(저렇게 무거운 세계가 이토록 가뿐하게 떠 있을 수

있다니) 벽돌 속으로 엉킨 실타래처럼 갈래지어져

있는 소로, 모든 것을 버려본 적이 있는 정처 없는 자

의 운명은 그렇게 상처입은 끝없는 길들을, 오래도록

노래하며 가야 한다 비밀한 길들은 발자국을 간직하지

않는다 내의 발바닥에도 몇 천분의 일 지도 같은

미세한 길들이 사방으로 팔방으로 나 있었다 필시,

객사의 운명이려니 - 신성한 강도 얼른 몸을 바꿔 타락

을 드러내보이고 저 강변의 보리수는 서서 죽었다 이제

나의 집은 여기이다

   (내가 버린 것들이 이렇게 무성하구나)

   다시 태어난다면 숲을 이루는 저 바람으로 태어나

리라 나 저 바람처럼 몸이 없는 마음으로만 떠돌다가

나, 또 몸의 울음으로 잉잉 전신주도 울리고, 다시는

저 너머를 꿈꾸지 않으리 (네가 나를 견디었구나) 온

몸에 향기로운 기름을 바르고 아름다운 음악과 산해

진미를 맛보며 마약과 섹스로 아아, 이 즐거운 생을

노래한다 폐허, 폐허, 썩은 연못과 잡풀에 가려진 길

들 : 당신이 없는 밤

   무너진 길들과 서로 다른 은하들이 충돌하여 우주

의 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뜨거운 별들이 서서히 식고

나는 불의 온도 속에서 밖을 보았다 (어머니 또 혼자

계신다) 몸에 따르는 자 양세를 얻으리라 흰 베옷을

입은 사내가 저 메마른 강을 건너는 마음의 무늬들,

무늬들

  내 정든 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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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부다의 탄생지인 룸비니 근처 석가족의 성. 부다는 그 모든 권세와 아름다운 부인을 버리고 오직 자기 가슴속의 욕망만을 간직한 채 이 카필라바스투의 동쪽 문으로 출가한다. 성은 피폐하고 한 인간의 욕망은 유구하다.

주2 : 이윽고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 카필라 성에 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부인 아유다라가 부다에게 던진 질문. 경전은 아무 대답이 없는 부다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내 옆에서의 깨달음, 출세간보다는 세속에서의 깨달음을 일깨우고 있다. 아마도 부다는 이 질문을 통하고서야 비로소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었을 터

문학과지성 시인선 208  함성호 시집 <聖 타즈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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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

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

특히 수학시간마다 꺼내 읽은 아슬한 삼중당 문고

위장병에 걸려 1년간 휴학할 때 엠포젤 엠을 먹으며 읽은 삼중당 문고

개미가 사과껍질에 들러붙듯 천천히 핥아먹은 삼중당 문고

간행목록표에 붉은 연필로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을 표시했던 삼중당 문고

경제개발 몇 개년 식으로 읽어간 삼중당 문고

급우들이 신기해하는 것을 으쓱거리며 읽었던 삼중당 문고

표지에 현대미술 작품을 많이 사용한 삼중당 문고

깨알같이 작은 활자의 삼중당 문고

검은 중학교 교복 호주머니에 꼭 들어맞던 삼중당 문고

쉬는 시간 10분마다 속독으로 읽어내려간 삼중당 문고

방학중에 쌓아놓고 읽었던 삼중당 문고

일주일에 세 번 여호와의 증인 집회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교장실에 불리어가, 퇴학시키겠다던 엄포를 듣고 와서 펼친 삼중당 문고

교련문제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때 곁에 있던 삼중당 문고

용돈을 가지고 대구에 갈 때마다 무더기로 사온 삼중당 문고

책장에 빼곡히 꽂힌 삼중당 문고

싸움질을 하고 피에 묻은 칼은 씻고 나서 뛰는 가슴으로 읽은 삼중당 문고

처음 파출소에 갔다왔을 때, 모두 불태우겠다고 어머니가 마당에 팽개친 삼중당 문고

흙 묻은 채로 등산배낭에 처넣어 친구집에 숨겨둔 삼중당 문고

소년원에 수감되어 다 읽지 못한 채 두고 온 때문에 안타까웠던 삼중당 문고

어머니께 차입해 달래서 읽은 삼중당 문고

고참들의 눈치보며 읽은 삼중당 문고

빧다맞은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읽은 삼중당 문고

소년원 문을 나서며 옆구리에 수북히 끼고 나온 삼중당 문고

머리칼이 길어질 때까지 골방에 틀어박혀 읽은 삼중당 문고

삼성전자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문흥서림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레코드점 차려놓고 사장이 되어 읽은 삼중당 문고

고등학교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고시공부 때려치우고 읽은 삼중당 문고

데뷔하고 읽은 삼중당 문고

시영 물물교환센터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박기영 형과 2인 시집을 내고 읽은 삼중당 문고

계대 불문과 용숙이와 연애하며 잊지 않은 삼중당 문고

쫄랑쫄랑 그녀의 강의실로 쫓아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여관 가서 읽은 삼중당 문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오 짜장면집 식탁위에 올라앉던 삼중당 문고

앞산 공원 무궁화 휴게실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파란만장한 삼중당 문고

너무 오래 되어 곰팡내를 풍기는 삼중당 문고

어느덧 이 작은 책은 이스트를 넣을 빵같이 커다랗게 부풀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네

집채만해진 삼중당 문고

공룡같이 기괴한 삼중당 문고

우주같이 신비로운 삼중당 문고

그러나 나 죽으면

시커먼 배때기 속에 든 바람 모두 빠져나가고

졸아드는 풍선같이 작아져

삼중당 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

붉은 흙 뒤집어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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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불현듯 마흔을 넘어섰거나 아니면 그 근처쯤 어디를 어정거리고 있는 세대는 알 것이다. 삼중당 문고. 크기는 손바닥만 하고 종이질은 누리끼리 똥색이고 글짜는 정말로 깨알같아 흔들리는 버스같은 데 앉아서 읽자면 눈알이 다 빠져버릴 것만 같았던, 하지만 그 목록만은 동서고금의 기라성같은 작가들의 보석같은 명편들로 빽빽하게 넘쳐났던 그 삼중당 문고. 서점마다 빼곡하게 꼽혀있던 그 많던 삼중당 문고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 시는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삼중당 문고에 바치는 헌사다. 없어진 삼중당 문고를 생각하니 쓸쓸한 마음이다. 혹시 '잊혀진 책들의 묘지' 에 간다면 만날 수 있을까


계대 불문과 용숙이는 장정일의 아내로 <숨어있기 좋은 방>을 쓴 신이현을 말하는 것이리라. 계대 불문과에는 시인 이성복이 있었는데(지금도 있나?), 용숙이 따라다닐 당시의 장정일이 이성복을 만났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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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

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

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

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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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가 20살 때 썼다는 시다. 20살 그 나이에 쓸 수 있는 시라는 느낌이다. 본인처럼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는 어렵다. 감정이 시베리아 벌판 혹은 사하라 사막 같으니 저런 표현을 생각해내기에는 실로 난감하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20살이라고 아무나 저런 시를 쓸 수 있는건 아니다. 우리같은 사람이 20살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저런 시를 노트에 적어놓고 다니거나 아니면 외우고 다니면서 술자리에서 어설픈 가객 행세를 하는 정도가 아닐까. 그렇다. 황순원의 아들이나 되니 가능한거다. 나는 우리 아부지의 아들이라서 안된다. 본인도 20살 나이엔 그게 몹시 슬프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40가까이 되고 보니 뭐 그다지 슬프지도 않고 또 세상살이가 대충 그렇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문지에서 지금까지 나온 시집이 대충 300여권 쯤인 것으로 아는데, 황동규 1인의 시집이 8권을 차지하고 있으니 다작이라면 다작이겠고.... (다작하면 역시 고은인데, 본인이 시야 잘 모르지만 어떨 때는 시인께서 대충 막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손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선생께서 시낭독을 하는 것을 보면 너무 폼 잡는 것은 아닌가 그런 또 황송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오다.) 

 

창비와 더불어 우리나라 시집출판의 양대산맥중 하나인 문지가 신인발굴보다 안정된 기성작가에 메달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우리나라 시인이 몇 명이관대, 불쌍한 후생들을 좀 양성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문지시인선 1번의 작가로서 8권이 아니라 80권도 쓰기만 하면 출판해주는 것이 당근지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 이런저런 생각이 중구난방......

 

위의 황동규 문지 시집들중 no image는 문지시인선53 <악어를 조심하라고?>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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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니 2015-06-16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편지˝ 덕분에 많은걸
알게되었네요..저도 이분 시집은
딱 1권 뿐이라.
 

 

어느날 국무회의에 많이 늦은 이항복이더러

「대감, 어인 일이시옵니까?」 누가 물었더니,

「오는 길에서 패싸움이 벌어졌기에 그걸 좀 구경하느라구요.」했다.

「어떤 사람들이 싸우고 있었기에요?」또 물으니

「고자 대감은 스님 머리끄뎅이를 움켜잡고, 스님은 고자 대감 불알을

잔뜩 거머쥐고설라믄.」 했다.

이조 고관들의 허망한 당파 싸움이 이 때도 벌써 볼 만한 판이었으니,

이만큼한 풍자도 무던하긴 무던한 세음이었겠다.


<연려실기술> 제18권, 선조조(宣祖朝)


 

이항복 (1556∼1618, 명종 11∼광해군 10)

조선 중기 문신. 자는 자상(子常), 호는 백사(白沙) 본관은 경주(慶州).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에 봉군되어 오성대감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특히 소년시절 친구인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과의 기지에 관한 이야기로 유명하다. 위의 시를 봐도 알수 있지만 한 개그 했던 것 같다. 우리 어릴때 <오성과 한음> 만화도 참 많이 봤던 것 같다. 1617년 광해군의 계모인 인목대비 폐모논의에 반대하다가 관직이 삭탈되고 이듬해 북청(北靑)에 유배되어 배소(配所)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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