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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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지만 1984는 아직도 널리 읽히고 있다. 어딘가에서 이 소설은 현재진행일 수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즉 어느 곳에서,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의 시대는 아직 유효하다. 어쩌면 2019 대한민국에도 일부 잔존해 있을지도.


1984의 세계는 전 지구가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로 3분할되어 대립중이다. 화자 윈스턴 스미스는 오세아니아의 영사(영국 사회주의)’ 당원이다. 오세아니아는 미국의 영 연방 점령으로 탄생한, ‘빅 브라더라는 초월적 존재가 통치하는 일당독재국가이며, ‘신어(新語)’를 통해 언어를 극도로 통제한다. ‘사상범죄라는 명목으로 온갖 빌미를 잡아 당원을 속박하기도 한다. 스미스는 당에 반감을 느끼고, 자신의 행동을 구체화해나간다. 그 뒤는 말 안 해도 알겠지?


텔레스크린이란 장치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사회, 시시각각으로 온갖 정보를 통제하며 의도한 것이 곧 사실이 되는 사회, 까지 죄악시되는 사회. 극도로 제한된 언어 사용으로 문학하저 사멸하고 마는 사회는 모두 오세아니아의 단면들이며 극단화된 전체주의의 패악이다. 당원이 아닌 노동자(프롤레타리아)는 감시망의 바깥에 위치하지만, 우민화정책으로 그들은 동물과 동일시된다. 자유롭지만 존엄하지 못한 존재들이다. 문학이 허용되는 것도 그들뿐이다. 그러니까 문학은 저급한 유희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신어 부분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고, 조금 암담했다. 부록으로 실린 신어 사전에서 신어의 조어 원리를 읽으면서는 더욱 그랬다. 소설을 쓰겠다는 입장에서 언어의 제한은 극약일 터(비단 소설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저 세계에서 나는 뭘로 밥을 벌어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소설 밖의 이 세계에서 문학은 체제의 현실을 밝히는 등불의 역할을 해 왔지 않았나, 그곳의 사람들은 무엇으로 현실을 감각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이곳에서의 문학은 점점 무용해지지만 그곳에서의 문학은 애당초 발생할 가능성부터 차단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안도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전체주의, 1당 독재, 감시사회는 아직도 우리의 지척에서 빈번히 목격할 수 있는 현실이다. 오늘도 나는 처참히 망가져버린 윌북 이후 백석의 시를 읽으며 안도해야 하는지, 참담해해야 하는지 헷갈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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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08-13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십 대에 읽었는데 이 소설을 애정물로 읽어버려서 그런가 아직도 이 표현만 생각나요. 허리 아래의 반역자.

그레고르옥자 2019-08-13 22:55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그 반역은 결국 여러모로 실패로 돌아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