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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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교육적 목적에 의한 체벌은 허용 가능한가? 의도가 선하다면 괜찮은가?


 10년 전만 해도 이 명제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체벌의 교육적 효과? 없다. 당시의 짧은 순간에는 공포와 위협의 기세에 눌려 문제 행동이 없어지거나 줄어든 것처럼 보여 우쭐할 수 있겠지만 그냥 그뿐이다. 일시적인 반짝효과에 비해 모욕, 부끄러움이 가득한 상처와 함께 아이 속에 내면화되는 폭력이 훨씬 크고 무섭다.

 잊을만하면 뉴스에 나오는 어린이집이나 학교 아동학대 사건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비난을 쏟아낸다. 당연히 분노할 일이다. 그러나 정작 집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가 80% 이상이라는 사실. 특히 최근 아동학대 뉴스를 보면, 가정에서의 학대가 훨씬 더 폭력적이다. 인간의 형상을 한 짐승의 수준이랄까. 밀접한 관계에서의 반복적 폭력이라는 면에서 훨씬 더 잔인하다. 나는 언제든지 너를 내 맘대로 취급할 수 있다 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심어준다.


 

 

 아동학대는 비정상적인 사람들의 고의적 폭력인 것처럼 보이지만, 보통 사람들의 체벌도 통제력을 잃고 끝까지 치닫게 되면 그것이 바로 학대의 모습이다. 저질체력과 수면부족상태로 독박육아를 몇 날 며칠 계속 해본 사람은 영혼이 탈곡된다. 소리지르기, 위협하기, 협박하기, 잡고 흔들기, 등짝스매싱, 아이가 듣는데서 욕하기(여기까지는 솔직히 내가 다 해본 거. 다음부터는 주위에서 실제로 듣거나 본 내용) 침대에 내던지기, 밀어붙이기, 욕설하기, 귓방맹이때리기, 풀스윙으로 가격, 도구 이용해서 때리기 등등. 이에 비하면 뉴스에서 보이는 보육교사의 아동학대 cctv 한 장면은 가정 속에서는 오히려 그닥 낯설지 않은 장면일 수 있다. 내가 하면 아니고 남이 하면 아동학대인 셈. 내 애 내가 알아서 키운다는 데 뭐!! 이게 아동학대 가해자들의 가장 흔한 레파토리 아닌가. 그러다가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어 자기도 모르게 반복이 되다 보면 어느 순간 명백한 가해자로 변할 수 있다.


 부모도 아이에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신체적 정서적 유린은 절대 훈육이 아니다. 이는 부모가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될 행동임을 누구나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부모체벌금지를 법적으로 명시하여 학대로 이어질 수 있는 싹을 애초에 잘라버리는 게 상책이 아닐까..

p.30
나는 언제든 너의 몸에 손댈 수 있다는 가르침, 과거 여성에 대한 폭력도 같은 메시지를 깔고 있었다. 체벌을 비롯하여 친밀한 관계에 있는 타인에 대한 반복적 폭력은 모두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언제든 당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권위주의적 메시지.

p.217
명백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매우 선명한 메시지를 내보내는 것. 폭력과 비폭력 사이에 아주 단순하고 선명한 줄을 긋는 것이다. 어른의 책무는 아이들에게 폭력이나 협박, 위협에 기대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며, 정부의 책무는 비폭력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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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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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 반바지, 2002

나는 가끔 예전 식으로 그를 불러본다. 하안만우우우, 라고. 그러고 나면 과연 이 한 많은 삶에 의미 같은 것이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생이 아니라 구체적인 개인의 삶에 말이다. 그의 삶의 갈피갈피에도 의미 같은 것이 있었을까. 아니, 없었겠지.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삶에도 특별한 의미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삶에도 특별한 의미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삶에도, 언니의 삶에도, 내 삶에도.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건 없는 거라고. 무턱대고 시작되었다 무턱대고 끝나는 게 삶이라고. 

----- 무턱대고 시작되었다 끝나는 삶이라니. 언어가 참 무심해서 슬프다. 근데 의미없는 삶인가. 그래도 누군가에게 작은 어떤 의미가 남진 않을까. 짧지만 작고 소중한 추억이 누군가에게는.


 

p.35 반바지, 2002

아이의 웃음소리는 내게 죄를 알리는 종소리 같다. 아이는 곧 초등학교에 가고 나는 학부형이 될 것이다. 열일곱살 6월까지도 나는 내가 이런 삶을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이런 삶을 원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살고 있으니, 이 삶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이 삶을 원한 적은 없지만 그러나, 선택한 적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 이런 삶 원한 적 없지만, 순간순간 내가 선택해왔던 길의 끝자락이 여기다. 원하던 삶이 아니지만 후회도 없다. 그리고 선택은 앞으로도 계속 될거다. 100살까지 살려면 앞으로도 아주 창창하다.


 

P,145 무릎, 2010

어떤 삶은 이유 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 가혹한 줄도 모르고, 불합리한 것도 모르고, 부당한 것도 모르고. 가련한 벌레처럼. 같은 작가의아직 멀었다는 말친구에서 해옥과 그녀의 아들 민수가 떠올라.. 다늦게 다시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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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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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이들은 부모의 성별, 재산, 혼인상태, 사회적 출신, 종교, 인종, 출생지 등 어떤 이유에 의해서도 차별받지 않고 자라나야 한다. 결혼 제도 안의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핵가족.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큰일나는 줄 아는 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기를.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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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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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레몬이 쨍 하지가 않네요.
되는 노릇이 없을 수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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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6-29 0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사서 나 앉은 뒷편에 고이 꽂아뒀는데...아직 멀었다는 말도...유월에는 소설을 통 안 읽었네요. 시다 셔.
 
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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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정물. 끼어들 틈 없는 무력함. 벌레의 눈으로  보는 삶. 넌.

 

겁이 많아 거북이.  6년째 같이 살고있는 우리 거북이들을 봐도 쫄보도 그런 쫄보들이 없다. 껍질이 그렇게 단단한데 왜?.. 그래서 껍질이 단단해진 걸까.

 

책이든 사람이든 무언가 내게 날아올 때 휘청하며 흔들릴 때가 있다. 떨림. 떠나는지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게 현실이지만, 예상치 못한 떠남에는 파동이 남는 때가 있다. 흔들림. 그리고 다시 멈춤. 때로는 날아든 지도 모르는 채로, 퍼뜩 놀라 고개 드니 이미 퍼드득 떠났더라. 그래도 다시 멈추겠지. , 이제 다음 흔들림.

 

 

 

p.28 「모르는 영역」
어디선가 새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 날갯짓의 급격한 감속, 날개를 접고 사뿐히 가지에 착지하는 모습, 가지의 흔들림과 정지…… 그런 정물적인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새는 돌연 가지를 박차고 날아갔고 그 바람에 연한 잎을 소복하게 매단 나뭇가지는 다시 흔들리다 멈추었다. 멍하니 서서 새가 몰고 온 작은 파문과 고요의 회복을 지켜보던 그는 지금 무언가 자신의 내부에서 엄청난 것이 살짝 벌어졌다 다물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새가 날아와 앉는 순간부터 나뭇가지가 느꼈을 흥분과 불길한 예감을 고스란히 맛보았다. 새여, 너의 작은 고리 같은 두 발이 나를 움켜잡는 착지로 이만큼 흔들렸으니 네가 나를 놓고 떠나는 순간 나는 또 그만큼 흔들려야 하리.

p.92 「희박한 마음」
디엔이 겉옷에 달린 모자를 덮어쓰며 거북이가 되자고 했다. 데런도 겉옷에 달린 모자를 덮어썼다. 모자를 쓰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지 않느냐고 디엔이 물었고 데런은 그렇다고, 거북이처럼 숨을 곳이 생긴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p. 208 「재」
이해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그렇게 자꾸 날 의심하는 일, 그만하고 싶어요. 고단해요 나도. 이제 늙었기도 하고. 도대체 누가 뭘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p. 211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린 정물화인 듯, 그가 도저히 끼어들 수 없는 허구인 듯 여겨졌다.

p.276 (해설: 당신이 알고 있나이다)
새로운 소설을 읽을 때, 또다른 사연과 의미를 만날 때, 우리는 "무엇인가가 드러나기보다 사라진다는 느낌"(250쪽)도 받는다는 것이다. 읽는 행위 속에서, 전에는 또렷했던 무언가가 희미해진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같은 쪽) "무언가 희미하게 점멸하며 살아 있다."(같은 쪽) 그러니까 점점 쌓이고 넘치는 게 아니라 희미한 것들이 깜빡이다 사라지고 또 나타나는 것이겠다. 몰랐던 세계를 찾는 것과 알았던 세상을 떠나는 것은 함께 일어나는 일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을 때의 깜빡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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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6-2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참 전 사두고 아직 읽으려면 멀었네요. 무님이 먼저 읽으셨으니 따라 읽어야지...

무식쟁이 2020-06-22 17:48   좋아요 1 | URL
반반님 따라 읽다간 가랑이가 찢어질테니 난 안따라 읽을거요. (비장)

반유행열반인 2020-06-22 19:45   좋아요 0 | URL
아니 무어가 왜요 ㅎㅎㅎ저보다 먼저 읽는 책도 많으신 분이 겸손하기까지...저는 따라가려면 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