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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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레몬이 쨍 하지가 않네요.
되는 노릇이 없을 수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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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6-29 0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사서 나 앉은 뒷편에 고이 꽂아뒀는데...아직 멀었다는 말도...유월에는 소설을 통 안 읽었네요. 시다 셔.
 
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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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정물. 끼어들 틈 없는 무력함. 벌레의 눈으로  보는 삶. 넌.

 

겁이 많아 거북이.  6년째 같이 살고있는 우리 거북이들을 봐도 쫄보도 그런 쫄보들이 없다. 껍질이 그렇게 단단한데 왜?.. 그래서 껍질이 단단해진 걸까.

 

책이든 사람이든 무언가 내게 날아올 때 휘청하며 흔들릴 때가 있다. 떨림. 떠나는지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게 현실이지만, 예상치 못한 떠남에는 파동이 남는 때가 있다. 흔들림. 그리고 다시 멈춤. 때로는 날아든 지도 모르는 채로, 퍼뜩 놀라 고개 드니 이미 퍼드득 떠났더라. 그래도 다시 멈추겠지. , 이제 다음 흔들림.

 

 

 

p.28 「모르는 영역」
어디선가 새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 날갯짓의 급격한 감속, 날개를 접고 사뿐히 가지에 착지하는 모습, 가지의 흔들림과 정지…… 그런 정물적인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새는 돌연 가지를 박차고 날아갔고 그 바람에 연한 잎을 소복하게 매단 나뭇가지는 다시 흔들리다 멈추었다. 멍하니 서서 새가 몰고 온 작은 파문과 고요의 회복을 지켜보던 그는 지금 무언가 자신의 내부에서 엄청난 것이 살짝 벌어졌다 다물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새가 날아와 앉는 순간부터 나뭇가지가 느꼈을 흥분과 불길한 예감을 고스란히 맛보았다. 새여, 너의 작은 고리 같은 두 발이 나를 움켜잡는 착지로 이만큼 흔들렸으니 네가 나를 놓고 떠나는 순간 나는 또 그만큼 흔들려야 하리.

p.92 「희박한 마음」
디엔이 겉옷에 달린 모자를 덮어쓰며 거북이가 되자고 했다. 데런도 겉옷에 달린 모자를 덮어썼다. 모자를 쓰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지 않느냐고 디엔이 물었고 데런은 그렇다고, 거북이처럼 숨을 곳이 생긴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p. 208 「재」
이해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그렇게 자꾸 날 의심하는 일, 그만하고 싶어요. 고단해요 나도. 이제 늙었기도 하고. 도대체 누가 뭘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p. 211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린 정물화인 듯, 그가 도저히 끼어들 수 없는 허구인 듯 여겨졌다.

p.276 (해설: 당신이 알고 있나이다)
새로운 소설을 읽을 때, 또다른 사연과 의미를 만날 때, 우리는 "무엇인가가 드러나기보다 사라진다는 느낌"(250쪽)도 받는다는 것이다. 읽는 행위 속에서, 전에는 또렷했던 무언가가 희미해진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같은 쪽) "무언가 희미하게 점멸하며 살아 있다."(같은 쪽) 그러니까 점점 쌓이고 넘치는 게 아니라 희미한 것들이 깜빡이다 사라지고 또 나타나는 것이겠다. 몰랐던 세계를 찾는 것과 알았던 세상을 떠나는 것은 함께 일어나는 일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을 때의 깜빡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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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6-2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참 전 사두고 아직 읽으려면 멀었네요. 무님이 먼저 읽으셨으니 따라 읽어야지...

무식쟁이 2020-06-22 17:48   좋아요 1 | URL
반반님 따라 읽다간 가랑이가 찢어질테니 난 안따라 읽을거요. (비장)

반유행열반인 2020-06-22 19:45   좋아요 0 | URL
아니 무어가 왜요 ㅎㅎㅎ저보다 먼저 읽는 책도 많으신 분이 겸손하기까지...저는 따라가려면 멀었습니다...
 
우리 나무 이름 사전
박상진 지음 / 눌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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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을 나중에서야 읽었다. 읽고 나니 더욱 좋았다. 이 책을 내면서의 저자의 고민과 우려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책을 발간해주신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이다. 몇 십 년 묵은 궁금증들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백프로 정확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렇게 즐겁게 아이들과 함께 옛날의 우리네 삶을 상상하며 나무와 풀꽃의 이름들을 찾아봐야 겠다는 자극을 받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무릎 치며 반갑게 만난 이름의 정체들. 그 보물 보따리 중 몇 가지만 풀어보자.

 

* 개암나무 :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를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바로 그 개암이다. 개암의 가  조금 못하다는 그 일 줄이야. 생김새나 맛이 밤과 닮았으나 밤보다는 못하다는 뜻으로 개밤이라 하다가 개암이 되었다고 한다.

 

* 구상나무 : 크리스마스 트리의 원조 조상님. 성게를 제주 방언으로 쿠살이라고 하는데, 쿠살을 닮은 나무라는 뜻으로 쿠살낭이라고 부르다가 구상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다.

 

* 나도밤나무 vs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는 사실 밤나무와는 전혀 다른 나무인데, 잎이 밤나무와 무척 닮았다. 반면,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너도밤나무는 울릉도에 들어와 살던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육지의 나도밤나무와 구별하기 위하여 너도밤나무란 이름을 붙여준 것으로 짐작된다. 간단히 말해서, 나도밤나무 얘는 진짜 밤나무도 아닌 주제에 자기가 밤나무인척 하는 애. "나도밤나무라규!"  너도밤나무 얘는 도토리 열리는 참나무가 맞음. 밤나무랑 진짜 같은과인데 뭔가 인정을 못받으니, 사람들이 "그래, 너도밤나무야!" 우쭈쭈 인정해주는 격.

 

* 느티나무: 내가 마니마니 좋아하는 느티나무. 울 집앞 느티나무를 지날 때 마다 얘는 도대체 왜 느티나무일까.. 여름나무도 예쁘고, 가을나무는 더 예쁘고, 이름도 참 예쁘구나 했었다. 양반님들에게서 나온 이름인 것 같아서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가을 느티나무는 내게 세상최고로 예쁜 갈색이다.

나무속이 황갈색이라서 한자로는 황괴(黃槐)라고 한다. 누렇다는 뜻의 황()과 회화나무를 나타내는 괴()가 합쳐진 말이다. 방언유석(조선 정조 때 각 단어의 중국어, 만주어, 몽골어, 일본어를 모아 우리말로 풀이한 어휘집)에선 느티나무를 황괴수(黃槐樹)라 하고 한글로는 느틔나모라고 썼다. 황색을 뜻하는 순우리말 노랑은 눋()이 어원이라고 하며 괴()는 옥편에 보면 홰나무(회화나무)라 하였으니 황괴의 한글 이름은 ()왜나무가 된다. 마찬가지로 아언각비(정약용이 지은 어원 연구서)에서 눗회나무라고 했다. 이것이 누튀나무를 거쳐 느티나무가 되었다고 짐작된다. (느릅나무과)

 

* 목련: 연꽃처럼 크고 아름다운 꽃이 나무에 달린다고 목련(木蓮).

 

* 미선나무: 미선이라는 여자의 정체가 드디어 드러나는 건가 했더니 미선(尾扇)은 둥그스름한 모양의 부채의 종류.  열매 모양이 이 부채를 닮았다고 하여 미선나무였다.

 

* 버즘나무: 가로수 플라타너스의 공식적인 우리 이름은 버즘나무’라는 사실. 그 이유는 나무 껍질이 버짐 같아서.. 참고로 북한에서는 탁구공처럼 동그란 플라타너스 열매를 보고 방울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귀엽다 방울나무. 우린 버즘나무. 음..

 

* 아그배나무 : 가을이면 긴 자루를 가진 열매가 대여섯 개씩 대롱대롱 달려 빨갛게 익는 모습을 보고 작은 아기 배 같다고 아기배라 부르다가 아그배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생긴 건 미니 사과에 가까운데 왜 아그사과가 아니고 아그배일까 궁금했었다. 어렵던 시절 아이들이 이 열매를 따먹고 배탈이 나서 아이구 배야하다가 아그배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후자의 이야기에 귀가 더 솔깃하다.

 

* 자작나무: 자작나무의 나무껍질은 새하얀 층이 수십 겹으로 겹쳐 있다. 이것이 매끄럽고 잘 벗겨지므로 종이를 대신하여 불경을 새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 쓰였다. 또한 나무껍질엔 기름기가 많아 좀처럼 썩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을 붙이면 잘 붙고 오래간다. 불에 탈 때 자작자작소리가 나서 자작나무가 된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서 잠시 백석의 자작나무에 관한 시 한편 듣고 가실게요. 뭔가 흰 당나귀도 지나갈 것 같다..

 

백화 (白樺)

                                                                       백석

 

산골 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 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보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 진달래: 향약집성방(조선 세종대에 발간된 의학서)에 나오는 진월배(盡月背)란 이름을 진달래의 초기 형태로 보고 있다. 진달래의 중세어형은 진ᄃᆞᆯ외진ᄃᆞᆯ위라고 하며 진()+ᄃᆞᆯ외(들꽃)를 원형으로 보고 있다. 달래나 산달래의 연한 보랏빛 꽃보다 더 진한 꽃이 핀다는 뜻이라는 풀이도 있다. 진달래는 식품이나 약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참꽃’, 독이 있어 못먹는 철쭉은 개꽃이라고도 한다.

 

*철쭉: 원래 이름은 양척촉. 머뭇거릴 척()자에 머뭇거릴 촉() 자를 쓰는데 양이 철쭉을 먹으면 비틀거리다가 죽어버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척촉과 양척촉을 같이 사용하다가 차츰 척촉으로만 부르게 되었으며 이것이 변해 철쭉이 되었다.

 

* 헛개나무: 열매자루가 육질화되어 울퉁불퉁 이리저리 휜 모양이 벼훑이와 닮았다고 생각했다지방에 따라 호로깨 호깨, 홀깨, 홀태 등 수많은 이름이 있는데, ‘호로깨나무’, ‘호깨나무로 부르던 것이 변하여 헛개나무가 되었다고 짐작된다.

 

이 외에도 참나무 6종세트(떡갈,신갈,졸참,굴참,갈참,상수리나무)에 관한 귀에 쏙쏙 박히는 어원들, 열매에 관한 유래들-아름다운 작은 복숭아 같아서 앵도(앵두), 보라색 복숭아-자도(자두), 오랑캐나라에서 들어온 복숭아씨앗 모양인 호도(호두), 나무에 달리는 참외(모과), 살구 속의 은빛 씨앗(은행), 밤이 되는 밤나무/밤을 밝혀주는 밤나무, 고대 페르시아어로 부도우(budow)라고 부르던 과일을 한자로 음역한 포도, 돼지(돝)가 먹는 밤, 돝의 밤이 돝ᄋᆞㅣ밤-도ᄐᆞㅣ밤-도토밤으로 변하고 도톨밤을 거쳐 도톨에 접미사 '이'가 붙어 지금의 귀여운 도토리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지만. 서재에는 여기까지만.

 

단순한 나무 이름 공부가 아니다. 숲과 나무를 가까이 했던 백성들이 지었던 나무 이름들은 참 쉽고 꾸밈없이 직관적이고, 양반들에게서 나온 이름들은 중국에서 그대로 들여오거나 한자어로 또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느 이름 하나 허투로 지나칠 것이 없다. 나의 나무는 어떤 이름을 가질 수 있으려나. 나이테의 두께가 좀더 확장되는 느낌이다. 올 여름은 많이 덥다는데..

 

p.5 < 머리말 中 >
아직 공개적으로 내놓고 발표하기에는 망설여지는 부분이 많았다. 사실 나무 이름의 유래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이름을 붙였는지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무 이름의 유래에 대한 견해는 사람마다 너무나 다양하다. 다시 확인하고 검토해야 할 내용도 여기저기 보인다. 마침표를 찍으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궁금해하는 분들이 너무 많으니 일단 세상에 내놓고 모자란 점은 고쳐나가자고 마음먹었다. 따라서 내용에 미비한 점도 많고, 내 일방적인 주장도 있으며 오류도 있을 것이다. 겸허히 비판을 받아 다듬어나가고 싶다. 읽는 분들이 더 깊이 생각하고 보태서 나무 이름마다 붙은 물음표가 모두 풀리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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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20-06-14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옛한글자모가 다 깨져나온다. 아몰라.

반유행열반인 2020-06-14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통 자작나무네요. 나무 책 읽지도 않고 가진 거만 몇 개 있는데 또 이거도 막 눈독들이고 ㅋㅋㅋ

무식쟁이 2020-06-14 12:04   좋아요 1 | URL
식물에도 관심이 많으신 반반님. 나중에 도서관에서 함 훑어보세요~ ^^

반유행열반인 2020-06-14 12:15   좋아요 0 | URL
관심은 있는데 또 키우는 건 싫어해요. 모든 키움과 돌봄을 싫어함 ㅋㅋ직업 선택도 에미된 것도 다 에러인 듯 ㅋㅋㅋ도서관 얼른 열면 좋겠어요.
 

대학 동기 모임에서 20년도 더 지난 추억의 졸업식이 도마에 올랐다. 분명 같은 날인데 각자의 기억이 모두 다르다. 누구의 꽃돌이는 누구였다는 둥 정작 본인은.. 고뤠? 기억이 안나네. 졸업기념선물로 남자동기들이 우리(여자동기)들에게 18k 목걸이펜던트를 줬다는데 우리 중 아무도 기억을 못한다. 그 펜던트의 모양을 침 튀겨가며 설명하는 단 한명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그 펜던트를 본 적도 받은 적도 없다고 하니, 기억하는 유일한 한 명은 미치고 팔딱 뛰며 자기가 얼마나 고심해서 고른건데 아무도 기억을 못하냐며 분개했다고 한다. 받은 기억이 없는 여자 동기들은 의기소침 어리둥절하다가 아뉘! 우리 모두 기억이 없는데 도대체 그 펜던트는 20년 전에 어따 갖다 팔아 치운거냐고 이실직고하라며 유별나게 총기밝은 척하는 그 친구를 구박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여자 동기 한 명이 응? 글고보니 나 그때 펜던트 말고 팔찌 받은 것 같은뎅? 이라는 말로 결국 동기모임은 사분오열되었다. 20여년 전 펜던트의 행방은 기억 저 편 미지의 세계로..



p.168  안녕 주정뱅이 中 「역광」 

“이를테면 과거라는 건 말입니다.”

마침내 경련이 잦아들자 그가 말했다.

“무서운 타자이고 이방인입니다. 과거는 말입니다. 어떻게 해도 수정이 안되는 끔찍한 오탈자, 씻을 수 없는 얼룩,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거할 수 없는 요지부동의 이물질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기억이 그렇게 엄청난 융통성을 발휘하도록 진화했는지 모릅니다. 부동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유동적이게 만들 수 있도록, 육중한 과거를 흔들바위처럼 이리저리 기우뚱기우뚱 흔들 수 있도록, 이것과 저것을 뒤섞거나 숨기거나 심지어 무화시킬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의 기억은 정확성과는 어긋난 방향으로, 그렇다고 완전한 부정확성은 아닌 방향으로 기괴하게 진화해온 것일 수 있어요.

 

p.359  멀고도 가까운

가끔 멋진 일이 생기고 난 직후에 삶을 되돌아보면, 인생에서 운이 좋았던 일들이 산맥으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끔찍한 일이 생긴 후에 되돌아보면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현재가 과거를 재배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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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1-15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이 금값 엄청 많이 올랐는데...18k펜던트의 행방은... 기억력 엄청 좋다고 자부했는데 자만이었더라구요....시간이 다 이김

무식쟁이 2020-01-15 11:29   좋아요 1 | URL
노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시간앞에 겸손해진 것 같아요. (에구에구 삭신이야.)

2020-01-15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5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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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국어교사였던 알콜중독자 영경과 매일 자살을 생각하며 살던 류머티즘 중증환자 수환. 서로의 ‘없음‘을 알아보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관계. 현실에 이런 순수한 관계가 있을까. 문학이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상상의 관계 아닌가. 현실에서 우리는 ‘있음’으로 관계가 시작된다. 경제적 여유, 사회적 지위, 이상적인 외모, 배려심, 유머감각 등 좋은 성격, 섹시한 지성 등등. 뭐든 상대가 갖추고 ‘있음’으로 매력을 느낀다. 내게 ‘없는’ 것이 그에게 ‘있을’ 경우에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법. 일상에서 초추의 양광을 운운하는 박사과정 중인 예연이 헬스트레이너 인태에게 특별하게 느껴지고, 박사과정까지 아르바이트 한번 없이 곱게 자란 예연이 낮에는 헬스트레이터 밤에는 초밥집에서 일하는 성실하고 자상한 인태에게 끌리는 것.(「층」) 이렇게 우리는 ‘있음’을 서로에게서 알아보고 관계가 시작된다.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는 절대 아니라고 눈알을 번뜩이며 뭐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쥐뿔도 없고 무식한 울애인님을 오직 사랑하나만 보고 결혼했다규!! 워워.. 찬찬히 생각해 보시라. 그 쥐뿔도 없음을 순수하게 사랑했냐고. 그 무식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냐고. 쥐뿔도 없고 무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또 다른 ‘있음’의 영향으로 ‘없음’을 참아주거나 넘어 가주는 것 아니었는지. 그의 ‘있음’으로 그의 ‘없음’을 덮은 것이 아니었는지.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시라. 그리고 우리는 조만간 그 ‘있음’에 익숙해지면 신비한 매력은 사라질지니 이를 식물학적 전문용어로 '콩깍지가 벗겨졌다'라고 한다. 

 

없음을 함께 견디어내는 「봄밤」을 읽다보니 엄청엄청 오래전에 본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Leaving Lasvegas)가 떠올랐다. 와.. 그 버릴 곡 하나 없이 훌륭했던 그 OST..(또 옆길..) 술 먹다 죽기위해 라스베가스로 온 알콜중독자 벤과 그런 벤에게 술병을 선물해주는 매춘부 세라의 사랑. 이런 관계가 현실에서는 비극인지 사랑인지 모르겠다 난. 현실에서는 어차피 불가능한 사랑 같지만, 아무튼 봄밤에서 수환과 영경의 사랑은 슬프도록 아름답다.


‘있음’ 아닌 ‘없음’을 이해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의 관계라면 내 하찮은 수준으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겠네. 난 가진 게 너무 많아서 사랑도 못하겠어요. 난 상대의 ‘없음’ 까지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럴까. 상대도 그럴까. -_-+ 의심의 눈초리.. 이러니 내가 이 세상 사랑을 믿을 수가 있겠냐고. 역시 이번 생엔 사랑은 글렀다. 

 

p.53
영경은 컵라면과 소주 한 병을 더 샀다. 컵라면에 물을 부으며 그녀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서둘지 말자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영경은 작게 읊조렸다.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영경은 자신의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을 알지 못했다.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며 소주와 컵라면을 먹는 그녀를 사람들이 곁눈질했다.
영경은 컵라면과 소주 한 병을 비우고 과자 한 봉지와 페트 소주와 생수를 사가지고 편의점을 나왔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 같이! 영경은 큰 소리로 외치며 걸었다.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영경은 작은 모텔 입구에 멈춰 섰다.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갑자기 수환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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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1-15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봄밤은 단권으로 된 걸 봤어요. 너에겐 뭐가 없어도 (다른 게 있으니까) 사랑해. 괄호 안 조건문이 필수 요소겠네요. 무님 글에 끄덕끄덕 하다 가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