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꼭 크레마C여야만 했는가, 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고 답하련다.
영상보다 소설을 좋아하고 취미가 독서밖에 없는 방구석 집순이이자 이북리더기는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짠순이로서, 아직 잘 돌아가는 크레마 그랑데가 있는데 두대의 기계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 낭비가 아닐까, 라는 고민을 수십번 했다.
하지만 크레마 터치 이용자는 기억할 것이다. 기계가 구닥다리면 내가 산 전자책을 못읽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종이책이 대세이던 2012년, 최초의 e-ink 이북리더기인 크레마 터치가 나오자마자 질러버렸다. 프론트라이트도 없고 (2013년 샤인부터) TTS기능도 없으며 (2016년 사운드부터) 액정이 약하고 크기도 작은 (6인치) 터치는 까다로운 소비자들에겐 욕을 엄청 많이 먹었지만 전자책을 읽는데는 지장없고 조심해서 사용했기에 내겐 별문제 없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알뜰파에게 이북리더기는 하나면 충분하다. 그런데 외부적 문제로 새 리더기를 살 수밖에 없었던 게 얼마나 억울했던지!
그렇게 터치를 떠나보내고 2018년 6.8인치 그랑데를 골랐다. 후속모델인 카르타플러스가 판매되고 있었지만 6인치는 성에 안차고 리디 페이퍼는 범용성이 부족했다. 10.3인치인 엑스퍼트는 너무 컸다.
이후 수많은 크레마들을 구경하면서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기도 하고 그랑데 하나면 충분하다며 2025년을 맞이했다. 그러다 크레마C가 출시되었고 크레마 터치처럼 안드로이드 4.4인 그랑데가 갑작스럽게 고장이 나거나 책이 다운되지 않는다면 이번 이벤트 할인이 두고두고 아까울 것 같았다. 결국 새로운 기기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솔직히 구형에 대한 불안이 크레마C를 예비용으로 구매하게 만들었다.

1. 흑백에서 탈출하다 : 최초의 7인치 컬러 e-ink 이북리더기
만약 크레마C가 컬러라도 6인치였다면 사지 않았을 거다. 그랑데의 6.8인치 화면에 익숙해져 있는데 휴대성이 좋다고 6인치로 돌아갈순 없다. 크레마C와 함께 출시된 크레마A가 6인치가 아닌 7인치였더라도 그랑데와 크기가 비슷해서 흑백 이북리더기를 굳이 두개나 가질 필요없다며 안샀을 거다. 크레마C를 사용해보니 7년전에 나온 그랑데와 성능차이가 많이 나서 좋긴 하더라마는 그걸 모르는 상황에선 예전처럼 구경만 하고 넘어갔겠지.
▷'7인치' + '컬러' ← 이 두가지 요소가 다 중요했다.

크레마C와 크레마 그랑데의 비교샷이다. 아예 흑백만 지원하면 모를까 컬러 e-ink액정은 프론트라이트없이는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어둡다. 맨 위의 슬립 상태만 비교해봐도 크레마 C와 그랑데의 회색이 완전히 다른색이란 게 눈에 보인다. 그랑데로 책을 볼 땐 주변조명을 밝게 해서 프론트라이트를 거의 쓰지 않았는데 크레마C는 칼라든 흑백이든 필수조건이다.
이게 크레마C의 가장 큰 단점인데 한편으론 배터리 용량이 커져서 프론트라이트를 켜고도 그랑데만큼 독서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편할대로 사용하면 될 것 같다.
2. 번거로운 설치에서 벗어나다 : 구글플레이 탑재
안드로이드 4.4였던 그랑데는 PC와 연결하여 apk파일을 이동시켜 설치를 해야 열린서재 기능으로 다른 서점을 이용할 수 있었으나 안드로이드 11인 크레마C는 구글플레이로 최신 버전의 이북 전용앱을 바로 다운받을 수 있다. 알라딘, 예스24, 리디, 카카오페이지를 깔아서 사용해봤는데 터치감이나 속도는 그랑데와 비슷하다. 이북리더기를 처음 사용해본다면 스마트기기와 비교하면 절대 안된다. 책을 읽기 위해서 눈이 아프지 않게 설계된 기계라는 것만 확실히 인지한다면 느린 속도는 보상이 되기도 하니까 실망하진 말자.

크레마C 밝기를 28로 해놓고 아이패드와 비교샷을 찍었는데도 차이가 많이 난다. 하지만 스마트기기로 책을 오랜시간 읽으면 너무 밝아서 눈이 아프다. 크레마C의 화면이 사진으론 어두워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종이책 느낌이 나기 때문에 프론트라이트의 밝기를 조절해서 적당히 맞추면 된다.
3. SD카드가 없어도 된다 : 넉넉한 내부저장소
크레마 터치는 4GB, 그랑데는 8GB였기에 SD카드는 필수였고 내 서재엔 장르소설이 많아서 그동안 16GB SD카드로도 충분했다. 256GB의 내부저장 공간을 가진 크레마C에 3천5백여권을 다운받았는데 실공간 223GB 중 207GB가 남아 있다. (평생 사모아도 다 못채울 것 같다.)
내겐 이 정도로 충분하지만 대용량 파일인 전자 만화책을 사는 사람들에겐 모자랄 수도 있다. 이건 크레마C의 두번째 단점이므로 다음엔 크레마A처럼 외장메모리 1TB 확장이 지원되길 기대해본다.
4. 연재 웹소설을 읽을 수 있을까?

저사양의 그랑데에선 꿈도 못꿨던 카카오페이지의 연재 웹소설을 크레마C로 읽어보았다. 이리저리 실험했는데 와이파이 연결해서 다운받은 뒤 오프라인으로 보는 게 제일 편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느린 속도에 속 터지더라.)
글자만 있는 소설은 상관없는데 백덕수님의 괴담 웹소설을 비교해보면 색깔도 칙칙하고 움직이는 글자 이미지는 화면 새로고침을 한 듯 깜박거렸다. 이렇게 색깔이나 이미지가 있는 웹소설과 컬러로 된 웹툰을 보기엔 적당치 않지만 그래도 아예 볼 수 없는 것과 느려도 볼 수는 있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가능성이 있으면 어떻게든 도전해볼 수 있으니까.
모든 것엔 명암이 존재하듯이 크레마C도 그랑데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이북리더기라고 확신한다. 특히 나처럼 안드로이드11 이전의 구형 단말기를 가진 분들껜 강력추천한다. 별기대없던 이북리더기에서 신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과장도 섞였지만 진담도 반 이상이다.)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몇가지 장단점을 꼽아보자면 배터리 충전시간이 그랑데에 비해 2~3배 빠르다. (USB 3.0과 2.0의 차이 때문인 듯?) 중력센서로 화면이 전환되는 기능도 의외로 편리하다. 사방 전환, 세로만 전환, 한방향 고정 다 가능해서 오른손, 왼손 양쪽 사용이 다 가능하다.
이런 장점이 있는반면 전자사전이 없어진 건 아쉽다. 국어사전뿐 아니라 영어사전도 추가되길 바랬는데 왜 그랬을까.
22일에 도착해서 25일 오늘까지 책 다운받고 짬짬이 사용해보고 느낀 점이라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이 리뷰가 크레마C를 구매하려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