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수집가‘라는 기치 아래 별나고도 멋진 사람들이 모인다.
종이로 된 보물을 획득하고 그 보물 더미 위에 올라앉는 것에 집착한다는 공통점으로 뭉치는 이들이다.  - P38

이처럼 수집가의 기대와 욕구를 관리하는 일이 희귀 서적 비즈니스의 핵심이다. 또한 남들보다 조금 덜 사회적이고 제각각 내면의 햇볕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이상호 이익을 위해 공생하는 특별한 방식이기도 하다.
오래된 서점들이 수집가에게 의존해 영업을 유지해 나가는데는 단점도 있다. 부유한 고객 중에는 심야에 하필 정말 난감한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어서 괴로운 밤을 보낼 때가 적지 않다. 고객을 유지한다는 것(이 사람들을 경쟁 서점에 뺏기지 않는다는 것)은이들의 우선순위를 판매인의 우선순위로 받아들여야 함을 의미한다. 억만장자인 고객이 찾아와 금속제의, 온통 칼로 뒤덮인 의례용 미술품을 건네주면서 뉴질랜드의 작은 남쪽 섬에 있는 자기집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하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 P41

북러너는 멀리 떨어진 교구나 헌책방을 훑어 싼값의 책들을 찾아낸 다음 경쟁이 치열한도시로 가져와 이윤을 듬뿍 남겨 넘기는 일에 정통한 개인을 가리킨다. 고객 목록을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역별 오프라인에서 나름의 세력을 발휘하고 있는 서점들은 이들이 가져온 책을사들여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한 다음 판매 목록에 올린다. 그렇게 모두가 행복하게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 P43

그러나 이 두 표현은 맥락상 완전히 다르다. ‘좋다Fine‘
라는 표현은 최근 그 책이 천사 같은 사람의 품에서 안전히 보관되어 있었을 때만 쓸 수 있으며, ‘양호하다Good‘는 내심 ‘엉망진창‘으로 보이는 불쏘시개 신세나 될 법한 책에나 쓰는 표현이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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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님들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니, 모두 차가운 몸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의 비명과 울음소리에 마을 곳곳의 비티스디아가 얼어붙었습니다. 장로님들과 함께 떠났던 분재도 전부 박살이 나 말라 죽은 채로 돌아왔습니다.
철벽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 P35

깜깜한 슬픔이 저를 잠식했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심연과 다를 바 없는 삶이로구나... 당신만 곁에 있었더라면 조금 유보된 빛이라 생각했을텐데요. - P39

저도 그 후로 많은 일을 시도했습니다. 시간은 변함없이 저를 통과해 갔습니다. 얼굴과 손등에 비티스디아 잎맥처럼 깊은 주름이 새겨졌습니다.
그저 소박하고 행복하게 살기만을 꿈꿨는데, 삶은각오보다 훨씬 많은 일을 제게 짐 지웠습니다. 모두에게 그랬듯이요. - P44

그리움은 습관이 되나 봅니다. 사무치는 그리움은 잎맥처럼 몸에 새겨지나 봐요. 한밤 산책길에 별을 올려다보는 일처럼 누군가의안녕을 기원하는 일도 이제 습관이 되었습니다. - P48

벌써 쉰이 넘었지만 여전히 세상은 불가해하기만합니다. 얼음산국과 열도국이 오랜 전쟁을 벌인 이유가 정말로 두 나라의 종교가 다르기 때문이었을까요? 왜 우리 민족이 그 전쟁의 전리품이 되어야 했을까요? 납득할만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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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우리 과 학생들에게 꿈이란 반드시 좋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소유하거나 정복해야 하는 것도아니라고 말했어. 그건 양심처럼 가슴에 있는 가장 진실한 선율이지, 몸 밖에 있는 게 아니라고. - P162

진정한 꿈은 네가 가장 막막하고 방황할 때 너를다시 끌어 주는 힘이란다. 조지프가 세상을 떠난 뒤 그런 생각이 한층 강해졌어.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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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쌍은 오래된 피아노 같았다. 그 자신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로 린쌍에게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듯한지도 몰랐다. 아무도 연주하지 않는 피아노는린쌍이 인정하기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 P55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체면을 따지고 정말 외로움이 밀려들 때는 혼자 숨는 것밖에 못하는 존재였다. - P60

이미 세상을 뜬 어느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견문이 넓은 사람은 누구나 플롯을 자잘하게 쪼갤 수 있지만, 세상을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만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할 수있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 P63

네가 형용할 수 없는 뭔가란 시간이야. 하고 그가 말했다. 음악은 우리에게 시간을 들려주거든.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들려줘. - P68

사랑이라 부르는 것일 수도 있어. 신뢰라는 이름일 수도있고 우리는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기보다 흘러간 과거를듣는다고 하는 게 맞아. 각각의 건반이 토해 내는 것은 바로 그순간일 뿐이니까.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지.
가장 고독한 사람도, 가장 가난한 사람도, 심지어 죽어가는 사람까지 누구나 드뷔시나 바흐의 곡에서 똑같이 감동할 수 있어. 그게 우리가 온 곳이자 갈 곳이거든, 피아니스트가 말했다. - P69

리흐테르가 음과 음 사이의 짧은 정적을 어떻게 장악하는지 잘 들어 봐.
소리 없는 부분도 연주라는 걸 잊으면 안 돼.
장엄하고 격앙된 연주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아. 하지만 피아노 음 사이의 가벼움과 고요함을 완벽하게 해석해낸 사람은 리흐테르뿐이야. - P73

"게다가 그는 자기가 죽을 때 함께할 음악도 진작에 골라 두었어.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였지. 연주가가 되느냐 마느냐는 결국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것은 인생을 끝까지 살았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뭔가가 있는가이지." - P83

 방 안의 두 사람은 문틈 밖의 시선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금발 남자가 피아니스트를 꽉 끌어안았고두 사람 입술은 여름을 다 보낸 뒤 마침내 상대를 찾아 여름의 끝자락에서 어떻게든 짝짓기를 끝내려는 매미들처럼 포개졌다. - P93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는 여전히 아내를 잃은 쓸쓸함과자책감에 빠져 있었다. 그가 마음을 열 상대라고는 처가살아 있을 때 고용했던 조율사뿐이었다. 그의 아내와 가까워질 기회조차 얻지 못한 음악 천재, 협박으로 에밀리의 시선을 끌려 했던 괴짜, 누구한테도 관심받지 못하는상처 난 결함품... - P94

피아노의 두 건반이 똑같은 거리로 다른 음정 속에 있으면서 완전히 판이한 진동과 공명을 만들어 내는 것과같았다.
육십과 팔십의 공진이 쓸쓸함과 절망감을 자아낸다면 그건 오랫동안 조율하지 않은 탓일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간격 중 무엇이 피타고라스의 절대적 협화 음정에가까울까? - P97

삼십 년 전의 추 선생님이라면 절대 그런 말을 할리없었다. 하지만 나도 눈앞의 선생님한테 적합한 사람이어떤 사람이냐고, 적합이라는 말은 피아노와 연주자의 조합에도 쓰기 힘든데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한테 쓰면 누구나 당연시하는 기준으로 변하느냐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은 나밖에 없느냐고 따지고 싶지 않았다. - P126

해머와 현이 접촉할 때 경중이 다른 탄성을 만들어 윙윙, 챔챙 쓰쓰의 비중을 강화하거나 연장하는 것뿐이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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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사람은 생명이 살아남는 데 필요한 기운을 뿜어낸다는 말이 사실이었나 봐요. 제 뒤뜰의비티스디아가 날이 갈수록 무성해졌으니까요. - P28

"아니요 떠나는 것만 생각해 왔어요. 돌아오기 위한 여행은 상상해 본 적 없었어요. 이제부터 한번 상상해볼게요 누군가와 따로 또 함께 하는 여행을요."
저는 당신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돌아올 때 미리 연락을 주면 어때요? 나가서 기다릴 테니 같이 돌아와요. 그러면 그 길이 우리가 함께하는 여로가 되겠지요?"
당신은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모험가를 아내로맞이하려거든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 P30

장로님들을 배웅하며 저는 비티스디아에 담긴 메시지가 평화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언젠가 꼭 전하기 위해 우리가 시간을 들여 준비해 온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었습니다. 협박하는 말,
도발하는 말, 자극적인 거짓말 따위는 식물을 키우듯공들여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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