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외삼촌이 화로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더이상 흘릴 눈물이 없어 울지 못하는 사람들과 울 만큼의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 P214

나는 지금까지 강가에 서서 흘러내려오는강물과 이미 흘러내려간 강물만 바라보다가 내 앞에 흐르는 강물을 지나쳐버리는 삶을 살아온 건 아닐까. 강이 수많은 지류와 만나듯, 사람도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는다. 나는 나와 인연을 맺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오랫동안 세월의강물에서 느리게 흘러갈 수 있기를 바랐다. - P249

어머니의 위로에 왈칵 눈물이 솟아올랐다. 나는 고개 숙여 입을 틀어막고 끅끅 소리를 내며 울었다. 이미 많이 울어서 더 울지 못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눈물이 터져 나올 만큼, 내 속에 이토록 많은 눈물이 채워져 있는 줄은 몰랐다. 나는 겨우 울음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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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일기는 1978년 10월 초에 끊어졌다가 이듬해 6월말부터 다시 이어졌다. 그사이에 첫아이를 가진 어머니는 봉제공장 일을 그만뒀다. 서울에서 아버지는 딱히 돈벌이가 되는 일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시댁이 있는 대전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타향살이지만 함께 일하는 또래 직장동료들이 있었던 서울과 달리, 대전은 어머니와 아무런 연고가없는 곳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낯선 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 P105

1979년 6월 25일 월요일
혜진이에겐 돈이 너무너무 귀하다. 난 지금 돈이 너무 없어서아기를 유산하고 직장에 다닐 생각까지 하고 있다. 돈이 없으니까 더욱더 괴롭고 쓸쓸하다. 아기를 가지니 시원한 과일이먹고 싶다. 살구와 복숭아가 먹고 싶다. 소고기 불고기도 먹고싶다. 배가 고픈데 집 안에 먹을 것이 없다. 하지만 돈이 없다.
그 사람한테도 돈이 없다. 먹고 싶은 게 많은데 돈이 없어서 너무슬프다. - P107

어머니는 늘 불안했던 거다.
자식에게 언제 다시 간장 비빈 밥만 먹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게 말이다. 일기를 노트북으로 옮겨 적는 내 손이 어머니를 향한 연민으로 떨렸다. - P110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아버지는 기분파였다. 마음보다 행동이늘 앞섰다. 바깥에선 인심이 좋아 주위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호인이었지만, 집 안에선 독불장군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좀이쑤셨던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늘 사람들과 함께 산으로 강으로바다로 떠돌았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 P113

하지만 아기는 11월 11일 일요일, 병원에서 퇴원한 그날 저녁아홉 시에 세상을 떠났다. 내가 그렇게 죄가 많은 여자인가. 이런저런 생각에 눈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기는 지금 얼어붙은 땅속에서 얼마나 추울까. 가엾어라. 가엾어라. 아기야,
넌 지금 얼마나 춥겠니. 이 못난 엄마를 용서해줘. 엄마는 영원히 너를 기억하고 사랑할 거야. - P115

형을 임신했을 당시, 어머니는 불안한 미래와 생활고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다른 임신부들처럼 먹고 싶은 음식을제대로 먹지 못했고, 몸이 불편한 와중에도 시어머니의 병시중까지 들었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지못했다. 건강한 아이를 낳기에는 어머니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열악했다. 제왕절개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돈이 없어서 생명의위험을 무릅쓰고 자연분만을 해야 했고, 그렇게 낳은 아이를인큐베이터에 한번 넣어보지 못하고 집으로 데려와 숨이 끊어지는 모습을 봐야 했다. 당시 어머니의 참담한 심정은 일기에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 P116

나는 이십 년 만에야 그때 어머니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알게됐다. 어린 나이에 갑작스러운 사고처럼 한 남자를 만나 아무런 준비 없이 세 아이를 낳고 한 아이를 잃은 여자. 아무도 그녀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쳐야하는지 일러주지 않았다. 자식 양육에 필요한 인내심을 배우기에는 그 어떤 환경도 그녀를 받쳐주지 못했다.  - P136

어머니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삶에서 벗어나는 길을 선택했다.
어머니가 살면서 오직 자신만을 위해 결정한 처음이자 마지막선택이었다. 온몸으로 새장과 부딪쳤던 어린 새는 죽음으로써새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노트북으로 어머니의 일기를옮긴 뒤 경선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어머니를 AI로 되살려 자살의 이유를 묻겠다던 내 계획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음을깨달았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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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도전은 언제나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해,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다 - P19

자신이 원하는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지만,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 평등하지는 않았다. - P41

대장암치료 후기를 찾다가 자살 방법을 고민하더니 이제는 술을 사러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내 모습이 코미디처럼 느껴졌다. - P41

가족이 된 AI를 버리기는 어렵다는 경선의 말에 반발심이 일었다. 그렇다면 가족이나 다름없었던 유민은 왜 주저 없이 나를 버리고 떠났으며, 진짜 가족인 어머니는 왜 그토록 험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 오래도록 나를 괴롭힌다는 말인가.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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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땅콩버터와 바나나로 만든 토스트였다. 땅콩버터의 달콤한 향이 도시락에서 새어 나와, 완다는 코를 박고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셨다. - P40

수연이 은경 선배에게 들은 조언이었다. 네 안에 묻어 있는 편견이 얼룩이 되어전체 그림을 망치면 안 된다고....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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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성 PD는 소름이 자주 돋았다. 그는 이 프로그램이 징그러울 뿐만 아니라 무서웠다. 독자적인 생명력을 갖게된 이 쇼가 멈추는 법도 아파하는 법도 잊은 채 사방팔방에 피를 튀기고 내장을 흘리며 파국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정말로 끔찍했다고 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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