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엄마를 ‘나쁜 엄마‘나 ‘집착하는 엄마‘라고 에둘러표현하지 않는다. 딸이라서 차별받았던 성장환경, 모진 시집살이, 지긋지긋한 가난, 무심한 남편을 핑계 삼아 엄마의 행동을 정당화하며이해해주지 않는다. 엄마를 한 명의 여성으로써 바라보라든지, 더는엄마를 원망하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자며 섣부른 화해나 화합을 권유하며 마무리하지도 않는다.
나는 우리의 엄마들을 인격장애를 앓는 학대자(나르시시스트)라고 부른다. 이들은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며, 착취적인 학대자다. 자신의 자식조차 감정 쓰레기통이나 에너지 공급원으로 사용하며 끊임없이 남의 자존감을 도둑질해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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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된 것은 나를 편안하게 한다.
정적인 세계는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다.
어느 순간 나는 그런 생각을 도저히 멈출 수 없게 되었다. - P91

"유안씨는, 어딘가 불편하신가요?"
가이드가 생긋 웃으며 말을 걸었을 때 유안도떨리는 손으로 뒤늦게 술잔을 들었다.
"아뇨, 저는......."
레오가 유안을 빤히 보고 있었다. 레오가 작게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기이한..... 어떤 거부할수 없는 인력이 유안에게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대게 했고, 술을 한 모금 넘기게 했다. 마치 부드러운목소리가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곳을 떠나지 마.
술에서는 아주 달콤한 냄새가 났다. 므레모사를계속 떠돌고 있던 그 황홀한 냄새였다. - P142

그럴 때면 한나가 나의 아름다움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비참함마저도 사랑한다고 믿고 싶었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그랬다. 한나가 내게 바란 것은 완성된 형태의 아름다움이나 강인함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어떤 나아감의 방향, 지향점이었다.  - P171

움이나 강인함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어떤 나아감의 방향, 지향점이었다. 불안정한 지면 위를 위태롭게 한 발 한 발 내딛는, 넘어질 듯 아슬아슬한춤을 지속하는, 그 춤이 지속되기만 한다면, 한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 P171

흔들림도 뒤척임도 없는 부동의 장소. 움직임이 없는 몸. 모든 것이 멈춰 선몸,
그 몸 안에서 나는 고통도 괴로움도 없이 자유로웠다.
한나는 도약하는 나를 사랑했고 나는 도약을 멈추고 싶었으므로 우리의 끝은 정해져 있었다. 이제 더는 도저히 춤출 수 없다고, 더는 움직임을 원하지 않는다고, 모든 움직임이 매 순간마다 나를고통스럽게 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한나는 울면서나에게 말했다.
"제발, 죽지는 마 살아 있어. 어딘가에 살아 있으란 말야." - P172

그곳에서 나는놀랍고 끔찍한 것을 보았다. 움직이는 것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경배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해 복종했다. 이미 죽어버린 존재들을 위해. 그 관계가 어떻게 성립하는지, 왜 가능한지는 지금까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어떤 초자연적 현상이나 믿음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듯했다. 그것은 몹시 기이한 풍경이자 종교적인 풍경이었다.
므레모사에서는 삶의 권력을 고정된 것들이 쥐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끝내 설득할 수 없었다. - P175

그 의사의 회고를 읽고서야 나는 내가 무엇을바라왔는지 비로소 알았다.
내가 바라는 건 죽음이 아니었다. 나는 삶을 원했다. 누구보다도 삶을 갈망했다. 단지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할 뿐이었다. - P175

유안은 거기에서살아가는 귀환자들이 자신을 이해하리라 확신한다. 이 확신은 유안이 그 누구보다 삶을 원했기에비롯된 것이었다. 유안은 "누구보다도 삶을 갈망했다. 단지 다른 방식의 삶을 원할 뿐이었다."(175쪽)누군가에는 사건 이후의 종결일 테지만, 사건과 더불어 실재하는 삶. 그 삶은 누군가에게는 귀환자로불리고, 누군가에는 정상성에서 멀어진 기형일 것이다. 그러나 귀환자들은 ‘목격의 대상‘이라는 맥락 밖에서도 여전히 실재한다. 이들의 실재, ‘기형의 신체들은 그 자신으로 존재해왔다. 존재한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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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해하셨어요? 나는 닫힌 문이 더 좋습니다. 무대 뒤나 옆, 로프, 전깃줄, 커튼 사이가 내 자리입니다. 나는 기계의 한 부품입니다. 착각에 사로잡힐 수는 없어요. 나는 기계를 돌아가게 해야 해요. 나는 기계만을 생각합니다. 길에서 누가 욕하는 걸 들으면 늘 발음이 아쉽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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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초록의 불꽃 같은 나무들 사이로 구급차는 달리고, 깨어 있는 언니는 뚫어지게 창밖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이 소설 전체가 그렇게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기다리며. - P13

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 - P20

이 소설의 한국어 제목은 「소년이 온다』이다.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 P21

학살에서 살아남은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 P25

찰나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나와 어깨를 맞대고 선 사람들과 건너편의 저 모든 사람들이 ‘나‘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저 비를 보듯 저 사람들 하나하나가 비를 보고있다. 내가 얼굴에 느끼는 습기를 저들도 감각하고 있다. 그건 수많은 일인칭들을 경험한 경이의 순간이었습니다. - P34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소설. 절반 죽어 있던 사람들이 생명을 얻는 소설.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켜는소설. 어떻게 보면 좀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는데…… 항공기 조종사가 우울증을 앓다가 아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추락해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잖아요. 살아 있던 사람들을 아주 많이 살해하며 죽었어요. 그런데 절반 죽은 또 다른 사람이, 그 항공기 사건과는 정반대로, 삶으로 건너오면서 죽어 있던 많은사람들과 함께 살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 - P56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던 과정에서 내가 구해졌다면,
그건 목적이 아니라) 부수적인 결과였을 뿐이었다.
글쓰기가 나를 밀고 생명 쪽으로 갔을 뿐이다.
날마다 정심의 마음으로 눈을 뜨던 아침들이.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로 끓던 그의 하루하루가날개처럼, 불꽃처럼 펼쳐지던 순간들의 맥박이촛불을 넘겨주고 다시 넘겨받기를 반복하던 인선과 경하의 손들이 - P57

남쪽으로 비치는 햇빛을 주는 거예요. 거울로 반사시켜서.
그렇게 내 정원에는 빛이 있다.
그 빛을 먹고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
잎들이 투명하게 반짝이고 꽃들이 서서히 열린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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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기, 지켜보기, 듣기, 살면서 좋은 날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고 강물에 몸을담그지 않아도 되는 날이라고 여기는 누군가를 위해 구조대원이 되기. 사고를 기다리기, 극장이 세상의 일부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실수를 기다리기. 배우가 망각의 불안에 사로잡힐 때, 예기치 않게 기억이 꼬일 때, 현실에서 갈피를 못 잡을 때, 자신이 유한한 존재이고, 완벽한 인물이 아니라 잠시 빌려온 연약한 육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때, 그를 단어로 구하기, 그의 귀에 속삭이기
그를 소생시키기, 그에게 대본을 조용히 일러주기, 그에게생각과 의미와 몸짓을 되돌려주기. 이것이 오늘 우리가 말해야 할 이야기이자, 우리가 보여줘야 하는 것들입니다. 구조대원이 강물에 뛰어드는 순간 말입니다. 우리는 현실의강물에 빠졌고, 삶이 허구의 둑을 범람하기 때문입니다. 프롬프터, 당신을 말하고 싶어요. 프롬프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 진짜 프롬프터인 당신이 무대 위에서 배우들에게 대사를 알려주고 그들을 구조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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