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화는 서로 상충하는 동기들에 대한 반응으로,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에게 해를 입히고 싶지만 살인을 금하는 인간 본능에 의해 통제를 받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특정 대상을 인간 이하의 존재이자 인간이아닌 존재로 묘사하는 것이 허용되는 환경은 잠재적 가해자의 정서를 자극한다. 그러한 묘사에 담긴 이미지와 인상은 분노, 두려움, 혐오감을 부추기며 자기(self)를 둘러싼 정서적 경계를 점차 축소한 다음 굳어지게 만든다.
즉 ‘나‘라고 간주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인식이 편협해지는 바람에 같은 종족 구성원이라는 범위에서 특정 사람들이 제외되는 것이다.  - P63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와 동족인 인간을 고문하거나 살해하기를 주저할 것이다. 그러나 타인이 우리 같은 인간이 아니며 어떤 사악한 원칙을대변하는 자라는 말을 듣고 나면 그런 거리낌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모든 정치적·민족주의적 프로파간다의 목표는 하나이다. 어떤 집단으로 하여금 다른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이 진짜 인간이 아니라고 말게 만들고, 따라서 그들을 약탈하거나 속이거나 괴롭히거나 심지어는 살해해도 그것은 정당한 행위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 P65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인간이 동물을 자급자족을 위한 수단으로 사냥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타인을 먹잇감으로 대상화하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비인간화 과정 중 하나인 것처럼 보인다.  - P68

리는데, 이 과정은 대체로 피해자를 병에 걸렸거나 비정상적으로 더러운동물로...... 특히 돼지, 쥐, 구더기, 바퀴벌레, 각종 해충으로 지칭하는방식으로 진행된다. - P71

사회심리학자 닐 J. 크레셀(Neil J. Kressel)은 자신의 저서에서 "현대에 자행된 집단적인 잔혹 행위 중에서 비인간화의 형태를 띠지 않은 것은 없었다"라고 기술했다. 실제로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을 학살하도록 행하는작업에 성공한 사례들마다 선동적이면서 비인간화를 부추기는 이미지와메시지를 활용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는 다수 존재한다.  - P71

강제수용소-특히 폴란드에 위치한 강제수용소들에서 복무한 나치스 친위대원들은 전쟁 이전의 삶을 보냈던 익숙한 풍경과 집으로부터 멀리떨어져 있었다. 그들은 민간의 생활 풍경이 존재하지 않는 강제수용소라는곳에서 본래 일종의 규제로 작용했던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상태였다. 또한 그들은 이렇게 고립된 환경에서 전능감을 느꼈다. 수감자들은잠시나마 목숨을 부지할 수도 있었지만 경비원들은 마음만 먹으면 내키는대로 수감자들을 살해할 수 있었다.  - P72

상대방을 희생시킴으로써 자신의 권력에 대한 감각을 고양하고자 했던 감독관의 가학적인 태도는 극단적인 유도체화를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에해당한다. 감독관에 의해 희생당하는 피해자들은 주로 오락과 자기고양을위한 감독관의 욕망이 투영 또는 표현되는 수단으로 취급받는다. 피해자들은 갖가지 방식을 통해 감독관이라는 존재를 위한 부속물로 격하되며, 그들의 존재 혹은 주체성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도 부정당한다. - P75

생존자의 진술을 살펴보면 비인간화는 나치 친위대원들로 하여금 유대인과 다른 이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여기도록 세뇌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가해자들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살해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사실에 분명히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이 일화는 외모와 언어 같은 요소들에 의해 비인간화의 강도가 약해질수는 있지만, 나치 친위대원들이 결국 집시를 학살하고 말았기 때문에 극악무도한 잔혹 행위가 벌어지는 데 있어서 전적인 비인간화가 필요한 것은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대원들이 한 행동은 그야말로 감정을 의식 밖으로 밀어내버린 것이었다. 감정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존재하는 경우에는그 감정을 억압하는 능력이, 즉 ‘상황에 적응하고 둔감해지는 능력‘이 집단학살이라는 폭력을 가능하게 한다. - P78

가해자가 피해자의 인간성에 대한 자각을 어느 정도 유지한다고 할지라도 제노사이드적인 잔혹 행위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윤리적인측면에서 보면 비인간화라는 심리적 착각으로 인해 초래된 살인과 피해자의 인간성에 대한 자각은 유지하고 있으나 선천적인 도덕적 자원이 고갈됨에 따라 초래된 살인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나쁜지를 판단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 P80

 사실 비인간화는강제수용소를 지탱하는 구조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강제수용소는 삶을 고취하거나 연장,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병, 피로, 무기력, 쇠락, 죽음 등을 양산하기 위해 특수 설계된 곳이었다.  - P80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소장이었던 루돌프 회스에 따르면 ...... 바위 같은 존재가 됨으로써" "강철 같은 결단이 있어야만 히틀러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결단은 모든 감정을 억눌러야만 성취할 수 있다." 이렇게 학살이 일상의 업무가 된 사람들이 그러한 행위를 저지르게 된 데에는습관화가 둔감화를 초래하는 과정‘, 즉 다양한 증거를 통해 입증되었으며어디에나 편재하는 과정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경악, 불쾌, 공포와 같은 본능적인 감정들은 ‘일상화(routinization)‘ - 무언가에 끊임없이 노출된 결과평범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현상-를 통해 둔화될 수 있으며, 이때에는가해자가 피해자를 바라보는 관점에 전면적인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필요도 없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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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이 나았다. 뭐든 곱씹지 말거라. 오필리아의 어머니는 늘 그렇게말했다. 과거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이미 지난 일, 바람에 날아간 종잇장이다. 힘든 시기를 가리켜 한 말이었다. 또한 어머니는 좋은 것들을 빠짐없이 기억하는 일의 가치를 설파했다. - P71

오필리아가 전에도 들어본 적 있는 말투였다. 누구든 저 위의 안전하고 냉난방 되는 우주선의 탑승자는 다른 데서 사람들이 죽어가도 절대로 자기 일로 여기지 않는다. 오필리아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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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셔틀이 이륙하고 나면오필리아를 태울 셔틀이 올 때까지 자유 시간이었다…………. 거기에 탈 생각은 없지만 어쨌거나.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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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잔인하고 냉소적인 히틀러가 젊은 겔리 라우발에게 쏟은 열정은 그의 이상한 생애에서 두드러지는 수수께끼 중 하나다. 무릇 모든 수수께끼가 그렇듯이 이 수수께끼도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저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그 후로 거의 확실하게 아돌프 히틀러는 14년 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날까지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 P241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요즘처럼 의욕이 생기고 내식만족스러운 때는 일찍이 없었다. 힘겨운 현실 덕에 수백만의 독일인이우리 민족을 속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유례없는 협잡과 거짓말. 배신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그에게 독일 동포의 고통은 굳이 시간을 들여공감할 무언가가 아니라, 즉각적이고 냉혹하게 자신의 야망을 위한 정치적 지지로 바꾸어야 할 무언가였다. 1930년 늦여름, 그는 이 과제에 착수했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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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민주당원들 대다수는 독일의 다른 계급들과 마찬가지로 기성권위에 머리를 숙이는 습관이 몸에 밴 선량한 노동조합주의자였던 터라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근대 독일에서 시종일관 지배적세력이었던 군부에 권위를 양도하기 시작했다. 비록 전장에서 패하긴 했지만 군은 여전히 국내에서 조직을 유지하고 혁명을 물리칠 태세였다.
이 목적을 위해 군은 신속하고 대담하게 움직였다. - P105

옛 프로이센 전통을 따르는 육군을 용케 유지했을 뿐 아니라 신생 독일에서 정치세력의 실질적 중심이 되기까지 했다. 단명한 공화국의 마지막 날까지 군은 특정 정치세력에 자기네 운명을 거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10만 국가방위군의 창설자인 탁월한한스 폰 젝트 장군 휘하의 군은 비록 수는 적을지언정 국가 안의 국가가되어 독일의 외교와 내정에 점점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결국 공화국의 존립이 장교단의 의사에 좌우될 지경이 되었다.
국가 안의 국가로서 군은 중앙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유지했다. 다른서구 민주국가들의 군 조직처럼 바이마르 헌법 체제에서 독일군을 내각과 의회에 종속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군은 종속되지 않았다. 장교단의 군주제적이고 반공화제적인 사고방식도 불식되지 않았다. - P116

그들이 알았던 것이라곤은행 잔고가 아무리 많더라도 대충 묶은 당근 한 다발이나 감자 반근, 설탕수백 그림, 밀가루 1파운드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이 전부였다. 개인으•로서 자신들이 파산했음을 알았다. 그리고 날마다 굶주림의 고통을 몸으로 알았다. 궁핍과 절망 속에서 그들은 모든 사태의 책임을 공화국에 돌렸다.
이런 시절이 아돌프 히틀러에게는 하늘의 선물이었다. - P120

히틀러가 의도한 것은 폭동이지 내전이 아니었다. 몹시 흥분하긴 했으나 경찰과 군을 압도할 만한 힘이 자신에게는 없음을 알아차릴 분별력은 지니고 있었다. 그가 원한 것은 군대와 함께하는 혁명이었지 군대에맞서는 혁명이 아니었다. 최근 연설에서, 그리고 바이에른 삼두에게 권총을 겨눈 순간에는 피에 굶주린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공화국을 증오하는 사람들끼리 피를 보는 일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 P137

나치 시대에 <나의 투쟁>은 성서를 제외하면다른 어떤 책보다도 잘 팔렸다. 결혼하는 신랑신부에게 한 부를 선물하는 것이 거의 의무처럼 - 분명 현명한 처사였다- 여겨졌고, 어느 학교에서든 거의 모든 학생이 졸업하면서 한 부씩 받았다. 2차대전이 발•발하고 이듬해 1940년까지 이 나치 성서는 독일 국내에서 600만부가팔렸다 - P153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비난만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3제국의청사진, 더 나아가 1939년에서 1945년에 걸쳐 독일이 이기고 있던 기간에 히틀러가 유럽에 강요한 야만적 신질서의 청사진이 이 의미심장한 책에 시종일관 끔찍하리만치 조잡한 필치로 아주 장황하고도 상세하게 담겨 있다. - P153

"그저 또 하나의 과제가 아니라 국가의 중대 과제"
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이 무서운 질병과 싸우기 위해 국가의 모든 선전수단을 동원하도록 요구한다. "모든 것은 이 문제의 해결에 달려 있다‘는것이다. 또한 조흔을 장려해 매독과 매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결혼은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없고 더 높은 목적, 즉 종과 그 인종을 늘리고보존하는 목적에 이바지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결혼의 의미이자 과제다"라고 역설하며 제3제국의 우생학을 미리 내비친다. - P161

그렇다면 아리아인은 어떻게 그토록 많은 것을 성취하고 그토록 뛰어난 존재가 되었을까? 히틀러의 답변은 다른 인종들을 짓밟음으로써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19세기 독일의 많은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히틀러도 사디즘에, 독일 정신을 연구하는 외국 학자들이 이해하는 데 줄곧 애를 먹어온 사디즘에 탐닉했다 - P163

《혼혈과 그에 따른 인종 수준의 저하는 오랜 문화들이 사멸하는 유일한 원인이다. 사람들은 패전의 결과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혈통 속에서만 유지되는 저항력을 상실해 소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우수한 인종에 속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폐물이다.》 - P164

요컨대 독일 민족은 적나라한 무력에 의해 주조되고 적나라한 침략에 의해 결속되었던 것이다. - P172

앞에서 히틀러의 정신 속에서 소용돌이친 그런 이념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전쟁과 정복, 권위주의 국가의 절대권력에 대한 찬미, 아리아인즉 독일인이 지배인종이라는 맹신, 유대인과 슬라브인에 대한 증오, 민주주의와 인도주의에 대한 경멸 등이 히틀러의 이념을 이루고 있었다.
하나같이 독창적인 것이 아니었다-다만 이념을 현실에 적용하는 그의방법은 훗날 독창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 이념은 히틀러 이전 한 세기•동안 독일의 정신을 사로잡고 그리하여 훗날 독일인뿐 아니라 인류의 상•당수를 파멸로 몰아넣은, 박식하되 균형을 잃은 온갖 특이한 철학자들.
역사가들, 교사들로부터 생겨난 것이었다.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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