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브래드쇼의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라는 심리학책이다. 책에 따르면 어린 시절의 크고 작은 상처, 미해결 욕구 등의 문제를 가진 채 어른이 되면 몸만 어른일 뿐 마음은 어린이인 ‘성인 아이‘가 된다고한다.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자라지 않은 그내면아이, 현재의 나를 엉망으로 만든 그 아이를 만나야 한단다. 기껏해야 아주 조금 더 성장했을 뿐이지만, 그 아이를 달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서 오직 나뿐이다. 그 아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 P43

리키가 가진 희망이란 가장 늦고 더딘, 당장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성장이다. 지금은 없지만 악당의 손 틈에서 빛이 되는.
그리고 이건 피노키몬이 유일하게 이루지 못한 단 한가지였다. - P45

어쨌거나 누군가와 대화하다가도 한순간에 고립되는 느낌이 밀려들고 숨이 막히는 증상이 지속되었다. 산소가 모자랐다. 아파트와 차가 너무 많았고, 거리에 인간만 가득한 것도 이상했다. 분명 여기가 끝이 아닐 텐데, 이게 전부가 아닐 것 같은데, 이게 전부면 안 되는데... - P51

나는 이제 스스로를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 인간이라고, 다른 사람보다 적막과 우울, 외로움에 집중하도록 태어난 인간이라고 인정하지만 열다섯의나는 나 자신을 그렇게 정의할 만큼 성숙하지도, 강단 있지도 못했다.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은 남들보다 어딘가 부족하다는 초조함이 됐고, 이곳에서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다급한 희망에 목매달다 어느순간에는 이런 답답함이 지속될 바에야 이쯤에서 삶을 마감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 생각에 도달하기까지 모든 사고의 흐름이 유연하고 평화로웠다. 두려움이나 공포, 경각심, 슬픔도 없었다. 오히려 이 답답함을 해결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 P51

"아무맛이 안나."
"소주가 물처럼 느껴지면 인생이 힘든 거야. 네가 지금 힘들어서 그래. 그만큼 힘든 거야."
하지만 나는 답답했던 것이지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 차이를 모른다면 엄마와 대화를 더 나눌 수 없을 것 같았다. - P52

그럼, 조금만 더 믿어볼까. 나도 아직 디지털 세계로 갈 수 있다고. 내게도 선택받을 기회가 남아 있다고. 내게 주어진 문장이 아직 뭔지 모르니까, 살다보면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볼까....
십대의 끝자락에서, 나는 다시 한번 디지털 세계를꿈꿨다. - P54

우선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는 재능이란 단어를 덜 비범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사회에서는 재능에 천재성을 부여하지만 화려한 껍질을 벗긴 재능이란 어느 날 갑자기,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현듯 그것을 ‘계속하게 되는 힘‘에 다름아니다. 시킨 이가 없는데 내가 그 행위를 계속하고있다? 그렇다면 그것에 재능이 있다고 봐도 좋다.  - P60

끊임없이 상상하고, 끊임없이 쓰는 삶. 이 두 개만 지킬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견딜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 삶의 역경과 숙제란 오롯이 내 안에 존재하는 고독뿐이라 생각했다. 얼마나 오만한 다짐인가?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은데, 사람들이 의지가 없어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데. - P67

죽을 때까지 내가 가늠조차 하지 못할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엄마의 의식이 아득해진 순간 엄마가 느낀 감정이고, 또 하나는 연락도 되지 않는 하늘에 갇힌 아빠가 열여덟 시간 동안 어떤 생각을 했을지다. 착륙하자마자 핸드폰 비행기 모드를 풀며 혹시나 장례식장 주소가 와 있을까 두렵지는 않았을지. - P69

글쓰기 과외를 하며 아이들에게 상상하라고, 인물을사랑하고 마음껏 세계를 여행하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내 차원은 하나둘씩 닫혀갔다. 모두가 이렇게 사는 거라고, 누구나 힘든 거라고, 그러니 나만 특별히불행하다 여기지 말자고 매일 생각했다. 그때는 그방식이 냉철하고 어른스러운, 삶을 대하는 올바른자세라고 생각했으나 틀렸다. 그때 나는 어렸고, 그 생각은 자기 학대였다. - P72

그렇게 스물한 살에서 스물여섯 살이 되었다.
내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빛날 문장이 없었다. 세계는 평면적이고 무채색이었다. 많이 웃고, 많이 떠들었지만 우울증을 앓았다. 불면증이 심했고 가만있으면 이유 없이 눈물이 났으며 차에 뛰어들거나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상상을 했다. - P72

"건강히 잘 지내세요."
엄마는 지체장애를 앓고 있을 뿐 건강한 상태였다. 그러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써야지, 소설, 계속."
하지만 교수님, 제게는 그럴 여력이 없어요.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안에 든게 없어요. 텅 비어서뭘 써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데요. - P73

"너는 지금 네 인생의 바닥을 치고 있구나. 실컷쳐라, 지금 너는 네 안에 있는 이야기를 더 단단하게만들기 위해 바닥을 치는 시기인 거다. 그렇게 손바닥으로 자신의 바닥을 쳐봐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울릴 줄 아는거야. 그 마음으로 소설을 써라." - P74

비록 박 교수님의 말을 듣는 순간 닫혔던 차원의 문이 활짝 열리고 보라색 나무가 있는 다채로운 세상을 되찾았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순간 나의 문장이 빛났다. 여기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제는 없다고, 더는 되찾을 수 없다고 믿었던 그것이 사실 내 안에 있음을. 그건 비록 색이 바랬을지라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곳에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나는 지금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고 있구나, 소설을 쓰기 위해, 사람의 마음을 울리기 위해. 그런데도대체 어떻게 써야 할지, 소설을 써도 되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어서 그 말을 듣고도 한동안 쓰지 않았다.
그저 바닥만 쳤다. 치고, 치다가 손바닥이 다 터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내 안의 이야기를다지고 다져, 그 응어리를 터트려 『천 개의 파랑을썼다. 정말로 이 이야기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을까? - P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지몬의 진화는 결국 데이터를 응집시켜 몸집을 키우는 것인데, 이는 디지몬에게 육체적인 부담을 안긴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쌓아두고 있으면 트래픽이 초과하여 컴퓨터가 느려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디지몬은 대개 성장기의 모습을 유지하다가 힘이 필요할 때만, 유대감을 형성한 파트너의 디지바이스로부터 일시적으로 힘을 얻어 진화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디지몬과 파트너가 어떤 마음을 갖는지에 따라 진화의 방향도 달라진다. ‘바이러스‘ 타입이 될 수도, ‘백신‘ 타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P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을 아무리 크게 쉬어도 속이 후련해지지 않아 답답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마도 내가 아주 작은 저수지에 있는 모양이라고, 저 올챙이들처럼. 이 세계 밖에 다른 세상이 있는 거라고. 나는 거기서 왔기 때문에 여기가 답답한 거라고.
- P12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아. 나는 이행성에 발붙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 P13

‘유치하다. 사람들이 대체 어떤 대상에 이 말을쓰는지 한참 고민한 시기가 있었다. ‘유치하다‘는 단어는 감상을 너무나 단편적으로 설명하고 작품을 납작하게 눌러버린다. 열띤 토론을 준비 중이었던 나의전의를 깡그리 소멸시키는 마법의 단어. 요즘은 많이들 쓰기 경계하는 ‘오글거린다‘만큼 막강한 단어인데 인식하지 않아 문제 삼지도 않는, 더 무서운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 P16

작품이 성숙하지않다는 뜻으로 유치하다고 평가하는 걸까? 그렇다면세상에 성숙한 작품이 있다는 것인데, 나는 성숙한작품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작품은 시대에 따라, 읽는 이에 따라, 해석에 따라 천차만별로 평가되니까.
- P16

그러다 혼자 이런 결론을 내리기에 다다랐다.
사람들은 주인공이 감성 충만한 작품을 볼 때 ‘오글•거린다‘는 말을, 주인공이 완전한 선(善)일 때 ‘유치하다‘는 말을 쓴다.  - P16

혼자 그곳에 가고 싶었다. 아주 훌쩍, 창호지에 구멍을 뚫듯 폭, 세상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흔적도 없이.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외로움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 P25

바라보는 시각이 일찍 트였다. 내가 사는 이 동네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이 동네 밖의 무수히 많은 동네와 나라가 ‘지구‘라는 별을 이룬다는 사실을 일찍 알았다. 공룡시대나 자동차, 레고보다는 지구와 지구 밖을 좀 더 궁금해한 것에는 방랑자 같았던 아빠의 몫이 컸다. - P26

그런 것들에 비해 내가 서 있는 이 집은 너무 작게 느껴졌다. 숨도 조심히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하늘이 천장처럼 보였고, 그래서 뚜껑을 열고싶었다. 지구 바깥에 우주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달과 별이 선명하게 보이는 밤하늘을 볼 때에야 속이 트였다. - P29

지금 되돌아보면 아마도 공황 증상이었던 것같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아무래도 지구에, 이 차원에 잘못태어난 것 같다고, 빨리 탈출해야 할 것 같다고. - P29

고독을 타고난 아이였다(나는 사람마다 특정 감각을안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수학적 감각, 음악적 감각등의 재능뿐만 아니라 예민한 것도, 깔끔한 것도, 몰입을 잘하는 것도 전부 가지고 태어난 감각의 영역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의 고독은 사건으로 형성된 것이아니라 내가 가지고 태어난 기질이다. 그저 특정한 시기에 발현됐을 뿐이다. 내 유년의 고독이 아빠나 가족들 탓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때 일어난 일들과 나의 고독은 마치 순리처럼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건 확실히 밝혀두어야겠다).  - P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힐 하우스의 선과 공간은 불행한 우연으로 인해 집의 정면에 악마적 분위기를 드리웠다. 그 원인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으나 광기어린 배치와, 고약하게 비틀린 각도와 하늘을 등진 지붕을 보노라면 절망이 밀려들었다. 게다가 힐 하우스는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텅 빈 유리창은 노려보는 듯했고, 지붕의 눈썹 꼴 창문은 누군가의불행을 고소해하며 비웃는 듯해 섬뜩했다.  - P73

"그렇군요.‘
"밤에 비명을 질러도 듣지 못하죠."
"설마.......
"아무도 듣지 못하죠. 사람이 사는 가장 가까운 곳은 마을입니다. 하지만 마을에서 이쪽으로 가까이 오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지요."
"알아요."
엘리너는 지쳐서 대꾸했다.
"밤에는요. 밤에는 말이에요."
더들리 부인이 대놓고 웃으며 말하더니 문을 닫고 나갔다. - P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걸쭉한 종이 반죽은 감시하는 데 익숙한 공안부 경찰들이 바로 감시의 대상이었음을 입증했습니다. 설령 잠시나마 단둘이 있었다 해도,
그녀에게 나는 당신과 한편이라고 말해서 내 정체가 탄로 날 위험을무릅쓸 수는 없었을 겁니다. 나는 어떤 운명이 그녀를 기다리는지 잘알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공안부 심문실에서는 저도 모르게 비밀을 누설했고, 그녀도 엉겁결에 내 비밀을 털어놓을 터였습니다. 그녀는 나보다 어렸지만, 현명하게도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 P21

그들은 내 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전우였습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도시는 막 함락되려는 참이었지만, 내가 사랑하는 도시는 곧 해방될 터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의 종말이었지만 내게는 단지 세상의 변화일 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2분 동안 우리는 진심을 가득 담아 노래하면서 지난날을 안타까워하고 애써 시선을 돌려 미래를 외면했습니다.
배영을 하며 폭포 쪽으로 다가가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 P33

이쯤이면 그런 치사한 호칭에는 이골이 나 있어야 했지만, 웬일인지나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내 어머니는 베트남인이고 아버지는 외국인이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줄곧 낯선 사람들과 지인들은 내게 이 점을 즐겨 상기시켰고 침을 뱉은 다음 나를 잡종 새끼라고 불렀습니다.
가끔은 변화를 주려고 잡종 새끼라고 부른 다음에 침을 뱉기도 했지만말입니다. - P37

종이쪽지에는 한 번도 공산당에 가입한 적이 없고, 그렇기에 감시 당할 개연성도 없는 이 후원자의 이름과 파리13구의 주소가 있었습니다. 나는 네가 본국으로 편지를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 그래서 그분이 중개자가 될 거야. 그분은 샴 고양이 세 마리를키우는, 아이도 없고 의심스러운 경력도 없는 재봉사야. 그게 네가 편지를 보낼 곳이야. - P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