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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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갑작스럽게 자유시간이 주어질 때면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선생님들께 이 '지루하고 졸린' 시간을 잊을 수 있는

얘기를 해달라며 조르곤 했다.


같이 노는 무리가 아니어도

"무서운 얘기 할 건데, 같이 얘기할 사람?" 하면

서로 손을 번쩍 들며 순식간에 원형으로 둘러앉아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무서운 얘기를 하며,

아이들의 반응을 이끌어 냈는데

그런 괴담들은 대체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혹은 이야기의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과장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토요미스테리극장》, 《전설의 고향》 같은

괴담을 다룬 프로그램에 나왔던 이야기나,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은

귀에서 입으로 옮겨가며 때로는 더 날카롭게

때로는 더 매서운 이야기로 변하곤 했다.


이런 괴담을 나누며 아이들은 손을 꼭 잡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곤 했다.

마치 '함께 있다'는 확인을 하고 싶었던 것처럼,

그렇게 손을 꽉 잡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아이들과도

공통분모가 생긴 것만 같았다.



괴담이라도 믿기 힘든 초자연적인 존재의

무서운 이야기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괴담 속에도 나름 서사가 있고

전개를 거쳐 결말에 다다르며,

때로는 무서운 존재에게 숨겨진 이야기는

슬픔이나 아련함으로 동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웃음이라는 반전을 가진 이야기로 펼쳐지기도 한다.


한국을 이끌어갈 젊은 작가이자,

장르문학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조예은 작가의 <트로피컬 나이트>는

섬뜩하지만 이런 따스한 총천연색의 마음이 담긴

알록달록한 괴담집이다.


자신만의 문체를 바탕으로

조예은의 세계관을 착실히 쌓아가는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는 무언가 께름직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로 시작을 연다.

짧은 단편으로 이어지는 소설들은

괴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사실은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담긴

또 그 속에서 서로를 향해 애쓰는 따스하면서도

말랑한 마음이 잔뜩 담겨있는

너무 새콤해서 쓴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머리를 찌르게 달콤한 젤리처럼 다가온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존재함'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된다.

갑자기 발생한 누군가의 부재를 알아차린다던가 <할로우키즈>

떠난 가족을 뒤로하고 홀로 남은 이의 지극한 외로움이

짙게 배어 나오기도 한다. <고기와 석류>

내가 누구라는 기억조차 없이 어느 '틈'에서 떨어진 이는

그곳에서 존재했던 자신을 찾아 헤매고, <릴리의 손>

부모의 기대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의 의지로

존재하고자 하는 몸부림도 있다. <새해엔 쿠스쿠스>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않았던 이가 처음으로 타인에게

문을 열며 달라지는 변화는 사실은 외면하고 싶었지만

누구보다 어울리고 싶었던 본격적인 그리움이기도 하다. <가장 작은 신>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존재로 하룻밤 꿈처럼 잊히다

한 사람에게 인식되기 시작하자 본분을 잊기도 하고,

<나쁜 꿈과 함께>

사라진 고양이를 찾아 헤매다 새로운 차원으로 떠나는 

그의 역할과 존재를 인정하기도 한다. <유니버셜 캣숍의 비밀>

끝도 없이 문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평행세계에서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존재하는 이도 있다.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


이처럼 각 소설은 희미해진 존재를 가진 이들이

자신이 '존재함'을 인정해 주는 타인과 마주하며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면서 마주하는

어떤 사랑 같은 감정을 그려낸다.

그 과정은 때로는 괴기스럽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며, 의문투성이이기도 하지만

끝내 다다르는 결론은 각기 다른 색을 하고 있지만

따스한 마음이라는 한곳을 향한다.


작품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욕구 또한 이런 '존재함' 속에

담겨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되었다.


 괴기적 하지만 결코 혐오스럽지 않은,

최후에는 따스함에 이르고 마는 여름밤의 괴담들.

조예은은 그런 이야기들을 통해

결국 살아남은 따스함을 독자에게 전한다.

독자들은 이야기를 통해 잔뜩 움츠리다가도

이내 어깨를 펴고 그의 이야기 속에 빠지게 된다.

마치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며 체온을 공유했던

공통분모로 한껏 가까워졌던 친구들처럼 말이다.

이 작품들은 본격 조예은 월드의 시작이자 확장판으로,

앞으로 펼쳐질 그녀의 세계관을 열어주는

마중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한여름밤의 더위를 잊게 할, 그렇지만 너무 차갑지만 않은

결국은 따뜻한 이야기.

새콤달콤한 젤리 같은 맛의 괴담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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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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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샘터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요즘은 말 그대로 "풍요"의 시대이다.

결핍이 없다 보니 얻기 위한 간절함도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도 점점 줄어든다.

부족함 사이에서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며 얻는

물질적인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아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자고 일어나면 새롭게 충전되는 것처럼

주어지는 하루라는 시간을 감사하기보다는

그저 흘려보내곤 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각박하고 온기를 잃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사람과 사람 간의 온기,

그리고 문학이 주는 따스한 힘을 믿는 사람이 있다.

영미문학 교수이자 번역가로,

또 칼럼니스트이자 교과서 지필자로, 에세이스트로

많은 이들에게 "교수님"이자 "선생님"으로 존재한

장영희 교수의 글을 새롭게 다듬은 반가운 책을 만났다.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타고난 몸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말하고 바라보는 세상에는

늘 따뜻함이 함께 했다.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온기 어린 시선,

그리고 작은 일상을 감사하게 바라보는 그만의 기준은

성공이나 부를 추구하며 앞만 보고 달려가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전작인 〈삶은 작은 것들로〉를 통해서도

사랑과 희망이 가득한 보석 같은 문장들을 나눴었는데,

이번에 나온 책은 생전에 작가가 발표했던

마지막 산문집을 작가의 문장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편집하여 새 옷을 입힌 개정판이다.


2009년에 작고한 작가를 내가 알게 된 것은

그 뒤로 제법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낸 나에게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며 소리 없는 응원을 더해준

소중한 사람이 선물해 준 책을 통해서였다.


장영희 작가는 해마다 피어나는 봄꽃처럼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꺼낸다.

장영희가 사랑한 사람과 풍경,

그가 사랑한 영미문학 작품을 통해

작가가 추구하고 좋아하는, 또 작가가 기대하는

삶이라는 것에 대해서 엿볼 수 있게 해준다.


1장은 장영희가 사랑한 사람과 풍경이 담겨있다.

불편한 몸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이어져 왔던 차별,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않았던 문학에 대한 열정.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핸디캡들을 원망하기보다는

그래도 살아가며 만났던 다정한 사람들과

좋았던 일들에게 그녀는 시선을 보낸다.


익숙해져서 '당연함에 잊고 있던 소중함'을 일깨우며

매일 주어지는 순간들에서도 축복의 찰나를 발견한다.

그것은 마주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발견한

문학작품의 장면일 수도 있고,

험한 세상을 바라보는 염려 속에서도

이내 곧 찾은 희망이기도 하다.


영미문학을 지도하는 교수님답게

2장에서는 그가 사랑한 영미문학을 이야기한다.

작가의 책인 〈생일〉을 통해서도

사랑과 축복의 기쁨을 담은 작품들을 소개했었는데

이번 책에서도 그가 사랑한 다양한 작품들과 함께

문학을 통해 삶의 많은 부분을 채워왔다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임으로써

그가 그려내고 추구하고자 하는

문학적인 이해까지도 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어떤 부분에서는

"문학 속에 답이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문학을 통해 삶의 음영을 엿볼 수도 있고,

미처 몰랐던 나의 생각을 일깨워 주기도 하니 말이다.

작가가 소개한 작품들의 인용을 보면서

좀 더 깊이 있게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삶'

매일 눈을 뜨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무엇보다 큰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감사함과 소중함을 놓칠 수 있는 우리들에게

작가의 목소리로, 또 그가 사랑한 문학작품들의

목소리를 빌려 이 소중하고 축복 같은 아침을

반짝이게 마주하자고 그렇게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


잔잔한 일상 속에서 마주한

여전히 사랑하고 기억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작가 장영희의 글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처럼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파고를 남긴다.


"스스로 문학의 한 부분이 된 듯하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문학을 만나는 것 같다.

이 아름다운 문학을 내내 가슴에 새기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따스한 기분을 잔뜩 만끽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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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지 않아도 잘 지냅니다
김민지 지음 / 샘터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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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샘터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결혼을 하고 나면 사라지는 '나'라는 이름.

여자들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불리며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곤 한다.


물론 결혼 이후에도 이전과 동일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삶을 사는 이들도 있지만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육아와 양육, 살림에 있어서

여자들에게 바라는 몫이 많기에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을 지우고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높은 비율로 존재하는 것이다.

평범한 일반인들도 마찬가지고,

특히나 결혼한 상대가 너무나 잘 알려지고

엄청난 커리어를 가지고 있을 때는 더할 나위 없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박지성 선수는 단숨에 국민 영웅이 되었고,

그의 결혼 소식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와 결혼한 김민지 아나운서는

이후 '박지성의 아내'로 더 많이 불렸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누구의 아내나 엄마로서의 수식어가 아닌

김민지라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을 만났다.

〈반짝이지 않아도 잘 지냅니다〉이다.


자신보다는 가족의 유명세 아래, 이름 앞에

조심스러워서 어떤 이야기도 쉽게 꺼내지 않았던 그녀가

그 모든 수식어를 내려놓고

오롯이 자신으로 존재한 이야기를 담았다.


미술을 전공하고 아나운서의 일을 하게 된 과정,

많은 이들이 궁금했던 연애와 결혼,

영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느꼈던

'엄마'로서의 역할과 뿌듯한 '자부심'

그리고 비로소 아이를 키우며 느낀

엄마에 대한 이해와 그 희생에 대한 고마움까지


일기처럼 때로는 소개처럼,

성공, 실패에 관계없이 그 자체로 의미 있었던

자신의 시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인간 '김민지'를 보여준다.


나 역시 아나운서라는 직업 이외에는

'박지성의 아내'로만 알고 있던

김민지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고 있으며,

자신에게 소중하고 좋았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또 어떤 성과를 위해 달리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세상과 사람들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작고 사소한 기쁨들로 채운 하루의 만족,

부끄러웠던 순간들의 기록도 기꺼이 꺼내보며

그녀는 '이 또한 나'라고 인정하며

자기만의 속도로 단단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그녀처럼 세상의 리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화려하고 빛날 것 같은,

그저 편하게만 지낼 것 같은 편견을 가졌는데

아이를 키우며 고민하고 힘들어하며,

때로는 번아웃에 빠져 지쳤다가도

다시 자신의 리듬을 찾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평범한 우리들과 다르지 않았다.


사회가 판단하는 '이름을 잃고 역할만 남아'

초라한 아내나 엄마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기쁨과 행복으로

삶을 가득 채워 반짝거리는 '제법 괜찮은 나'로

존재하는 그녀의 모습은

자기를 잃고 사는 많은 아내이자 엄마들에게

'나를 찾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같았다.


이제는 박지성 전 선수나 김민지 전 아나운서 가족의

이야기가 들릴 때면 선수로서의 모습을 기억하고

'박지성 선수의 가족'이 아닌

영국에서 '만두들'과 함께 고군분투하며

하루치 행복을 채워갈 '김민지'의 모습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들을 꼭 끌어안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는

정답이 없다는 모범답안을 보는 것 같았다.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자신의 이야기로

김민지라는 이름 세 글자를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한 그녀.

빛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그녀처럼

나도 내 인생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나만의 리듬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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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 - 빨래골 여자아이가 동대문 옷가게 알바에서 뉴스룸 앵커가 되기까지
한민용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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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야기장수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뉴스의 꽃, 방송국의 얼굴.

메인 뉴스의 앵커 자리에는

늘 단정한 차림새의 여성 앵커들이 있다.

가장 발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이지만

어쩌면 가장 보수적인 게 뉴스인데

그동안 고정되었던 이미지의 여성 앵커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는 멋진 사람을 만났다.


JTBC 뉴스룸 최초의 여성 앵커이자

대한민국 뉴스 역사상 최연소 여성 메인 앵커를 맡은

기자 출신 한민용 아나운서가 쓴

〈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이다.




뉴스를 진행하는 여자 아나운서는 많았다.

이름만 대어도 다들 아는 여자 아나운서들은

지적인 모습으로 또박또박 뉴스를 전하면서도

시청자들에게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고 유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여자 아나운서를 다룬 드라마, 영화들도 많았지만

그런 픽션에서처럼 '전하고자 하는'

의식, 의지가 있는 캐릭터들은 현실에서 볼 수 없었고

'말하는' 스피커로서의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많은 직업군에서 유난히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여자' 아나운서 '여자' 운동선수 '여자' 작가.

직업에 있어서 성별로 구분된 역할이 있는 것이 아닌데,

'여성'이라는 수식어 앞에

마치 남성의 보조나 남성의 파트너 같은 느낌이

점점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민용 아나운서는 자신의 역할 앞에

덧붙여진 성별을 지우고

자신의 이야기를 단단하게 펼치는 사람이다.

기자 겸 앵커여서 였을까,

방송국에서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뉴스의 꽃' '방송국의 얼굴' 대신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하게 해내며,

같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또 그를 바라보는 또 다른 여성들에게

단단하게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인다.


아나운서, 그저 좋은 학교를 나오고

어려운 언론 고시를 통과해

고생 없이 탄탄대로를 밟아 온,

결국은 그러다가 결혼을 핑계로 방송을 떠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봐오며 스스로도 여자이지만

편견 아닌 편견을 가졌던 나에게

한민용 아나운서의 이야기를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보내온 시간을 통해,

얼마나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는지

또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는지,

자신이 만나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자신이 부딪쳐온 꿈을 향한 높은 벽과 여정,

그리고 결국은 돌고 돌아 스스로 쟁취한

땀의 시간을 통해

그렇고 그런 뻔한 성공 스토리가 아닌

스스로 만들어간 "나의 이야기"를 펼친다.


처음부터 앵커를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기자 생활을 거쳐 언론생활을 시작하며

주어지게 된 앵커라는 역할을

자신만의 색과 방식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

한 아나운서의 이야기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모두에게

그만의 응원으로 다가온다.


만들어진 기사를 그저 말하는 것이

앵커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뉴스는 앵커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 회의 뉴스 진행을 위해서

이른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때로는 밤을 새워서 방송을 하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하기 위해

더하고 있는 숨어있는 노력을

새삼스럽게 알아차리며,

그들의 역할을 쉽게 생각했던

나의 편견을 반성하게 되었다.


기자로서 가졌던 사명감,

기자 생활을 바탕으로 앵커가 된 뒤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꺼내 보였던 많은 이야기들,

말을 옮기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그녀의 모습은

왜 그녀가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증명해 주는 포인트였다.


세월호 참사, 국정 농단, 대통령 탄핵,

이태원 참사, 계엄령 등

많은 사건들 앞에서 언론인으로 한 명의 국민으로

시대와 역사를 마주한 그녀의 단단한 시선이

점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자신처럼 꿈을 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가장 작지만 단단한 응원!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불안하고 흔들리는 모두에게

'당신만은 당신의 편이 되어주라고,

인생에서 가장 좋은 이야기를 고르고 골라

스스로에게 들려주라'라고 말한다.


인생의 새로운 챕터에 접어들며,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한 한 아나운서의 앞길에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너무나 기대된다.


나 역시 나만의 이야기로 내 인생을 채우며,

나의 길을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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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사람들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와대를 받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강승지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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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페이지2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2022년 5월 10일, 청와대가 국민에게 개방되었다.

1179일 동안 852만 명이 그 공간을 거닐었고,

이제 다시 빗장을 걸고 원래의 역할로 돌아가려 한다.


지도에서도 자세히 볼 수 없던 그곳.

삼청동을 걷다 보면

어쩐지 삼엄한 기운이 느껴졌던 그곳.

뉴스로만 접하던 그 공간에,

매일 출근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청와대 사람들〉은

우리가 대통령의 공간으로만 여겼던 청와대를

‘회사’라는 일터의 시선으로 바라본 에세이다.

정권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킨 한 직원의 시선으로

청와대의 일상과 사람들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이따금씩 청와대에서 일했던

조리사분이나 대통령의 이발사 등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곳으로 매일 출퇴근을 하는

직원의 일상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개방되었다고는 하지만 공간이 열렸을 뿐,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했었는지

그들의 출근과 퇴근 사이, 사무실이라 불리는 공간은

우리처럼 여느 '회사'의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궁금한 포인트가 참 많았다.




책을 쓴 작가는 미술을 전공하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하다 청와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스물다섯 번의 계절을 그곳에서 보내며

정권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출근했고,

청와대가 대중에게 문을 열었을 때에도

그 자리를 지켰다.


이 책은 청와대로 출근하는 이가 바라본

‘나의 회사’이자 ‘사회생활’의 배경이 된 청와대와

그곳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정권에 따라 싹 물갈이될 것만 같은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세 번의 정권 교체를 지나며 자리를 지킨 사람들.

작가의 시선에 비친 청와대는

물음표 가득했던 공간에서

‘다 똑같은 회사’처럼 가볍게 다가왔다.




📘 책 속 이야기

각 장은 청와대라는 공간을 다양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1장에서는 청와대로 출근을 할 때면 거쳐야 하는

출입절차나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청와대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

그리고 업무용 핸드폰이나 카메라 사용 가능 여부,

대통령의 이름으로 된 선물을 고르는

직원들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


2장에서는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청와대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다.

국기를 관리하는 사람, 수목을 책임지는 사람,

벽에 걸 그림 액자를 거는 사람 등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청와대에서 일하는구나'

하고 새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3장에서는 금강산도 식후경!

청와대에서 마주하는 식사시간과

점심시간만큼은 자유롭고 싶은

직장인의 고충이 담겨 있었다.

제아무리 청와대라고 해도 결국은 사람이 일하는 곳!

'회사'에서 느끼는 고충은

어디든 똑같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4장에서는 청와대라는 공간으로 출퇴근을 하며

느꼈던 작가의 다양한 감정들이 담겨있다.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청와대'라는 공간이 주는

차별점을 이장에서 만날 수 있다.


5장에서는 정권 교체와 함께

대중에게 공개된 청와대의 변신과 더불어

청와대라는 공간에 스스로를 많이 투여했던

그래서 갑작스레 달라진 환경에 방황했던

작가의 마음앓이가 담겨 있다.


6장에서는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조용히 자리를 지켰던,

늘 도드라져 보이지 않지만

그곳을 지키고 만들었던

청와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청와대라는 공간 속에 숨겨진

무수한 많은 노력들에 대한

감사까지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 사람 냄새 나는 공간

대통령과의 만남이 있었던 직원식당 이야기,

청와대 내 과수나무에서 떨어진 과일로 만든 화채,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

딱딱하고 격식을 차릴 것만 같은 청와대가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차가운 공간이 아니었다.

사람 냄새가 가득한 따스하면서도 평범한

회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 다시 닫힌 청와대, 다시 시작될 이야기

이제 청와대는 다시 빗장을 걸고

원래의 역할로 돌아가려 한다.

‘공개되었던 기간 동안 한 번쯤 둘러볼 걸 그랬나?’

싶다가도, 어쩌면 그런 아쉬움이나 보지 못하는

적당한 거리감이 청와대라는 공간의 무게감이나

환상을 유지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대로 보지 못한 것도 썩 나쁘지 않다.


다시 그곳을 채우고 묵묵히 빛나게 해줄 사람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검은색 사이 나만의 변주를 더한 옷을 입고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쏟아져 내리며,

각자의 노곤한 샴푸 향을 풍기고 자리에 앉아

오늘을 살아가겠지.


다시 또 뉴스로 만나게 될 테지만,

그래도 그곳의 이야기를 전할

청와대 사람들의 새 등장을 기다리며

기분 좋은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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