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jcc3532님의 서재 (jcc3532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59714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16 Apr 2026 19:09:39 +0900</lastBuildDate><image><title>jcc3532</title><url>http://image.alad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259714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jcc3532</description></image><item><author>jcc3532</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평화와 자유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미국, 군국주의 시대 가운데 어떻게 살 것인가 -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597149/17181768</link><pubDate>Sun, 29 Mar 2026 20: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597149/171817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136921&TPaperId=171817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5/22/coveroff/k3221369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136921&TPaperId=171817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a><br/>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지음, 백우진 옮김 / 부키 / 2026년 02월<br/></td></tr></table><br/><br><br>*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 제공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br>오늘날 중동전쟁은 과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학살에 이어 여전히 국제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초유의 사건이다. 무엇보다 이 전쟁에서 시사하는 바는 세계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이 먼저 트럼프의 돈로주의에 의거한 자국민 우선주의를 내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어찌보면 지금의 중동전쟁을 이후로 지속적으로 다른 국가와도 전쟁을 벌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br><br>평화와 자유의 이름으로 불리는 미국이 왜 전쟁광이 된 국가가 되었을까?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것도 그 이유에서일지 모르겠다. <br><br>이 책은 우리가 미국에 대해 가져왔던 신화를 파괴하면서 군국주의가 얼마나 세계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br><br>이 책의 저자는 현재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세계 뿐아니라 미국 국민들의 경제와 생활마저 갉아먹고 있다고 지적한다.<br><br>"미국은 이미 전쟁 기계를 만들어냈고, 이 기계는 미국을 더 많은 분쟁, 더 많은 무기 거래, 더 많은 가자지구 같은 비극으로 끌고 간다. ... 이 잘못된 접근 방식의 가장 큰 비용은 돈으로 집계할 종류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참전 미군부터 전쟁 대상 국가의 민간인까지 전쟁에서 죽고 다친 사람들이다" (27쪽)<br><br>"전쟁기계는 로비스트들을 동원해 워싱턴 정계를 장악하고, 언론과 대외 정책 '전문가'들을 통제하고, 할리우드와 비디오 게임을 선전 도구로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미국인을 마치 매트릭스와 같은 세계 속에 가두어 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진실은 바로 전쟁 기계가 미국을 더 안전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덜 안전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36쪽)"<br><br>이 부분을 읽으면서 최근에 봤던 조지오웰의 1984가 생각나기도 했다. 모든 사상을 통제하고 군림하는 빅브라더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모습은 오늘날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미국인의 삶과 생활, 문화에 잠식한 모습을 정확히 비춰준다는 생각을 해보게 한다. 미국은 더 이상 평화와 자유의 나라가 아니다. 그들은 전쟁을 통해 특수를 누렸던 과거의 제국과 다를 바가 없다. <br><br>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과 미국의 전쟁 무기 지원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br>사실상 미국이 무기를 공급하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말은 <br>우리가 얼마나 미국의 신화에 속아왔는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지점을 만든다. <br><br>이 책은 앞으로 우리가 미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와 함께 더불어 이 군국주의 시대 가운데 우리는 진정 평화와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국가로 살 수 있는가, 전쟁기업으로 특수를 누리는 경제적인 원리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 상황을 다뤄야할지에 대해서 질문하게 한다. 폭력이 돈이 되고 무기가 돈이 되는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우리 또한 그런 전쟁기계의 야망을 품고 있지 않느냐고 보여주는 거울이 된다는 생각을 한다.<br><br>진정한 독립은 무기로서 이루는 것이 아닌 자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특수를 누릴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가며 모든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br><br>전쟁과 무기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자본주의를 우리는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미국의 폭력 옹호에 대한 것을 넘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로 읽을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5/22/cover150/k3221369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052261</link></image></item><item><author>jcc3532</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0260322 엉망인 삶의 조각을 다시 모으시는 분께 집중하기 - [물처럼 강하게 - 불안과 긴장을 넘어 부드럽고 단단한 내면을 갖추는 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597149/17166900</link><pubDate>Sun, 22 Mar 2026 23: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597149/171669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823936&TPaperId=171669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5/98/coveroff/89328239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823936&TPaperId=171669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물처럼 강하게 - 불안과 긴장을 넘어 부드럽고 단단한 내면을 갖추는 법</a><br/>아운디 콜버 지음, 정효진 옮김 / IVP / 2026년 02월<br/></td></tr></table><br/>책을 읽으면서 이전에 했던 생각을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강함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과거에는 잘 버티는 것이 강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서지고 싶지 않았고 남들보다 뒤쳐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뭔가 항상 긴장되고 경직되어 있고 굳어있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오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앙적으로 나 자신보다 타인을 더 챙기는 게 익숙했던 저는 '내가 건강해야 남도 건강할 수 있다'는 말을 신앙적으로 느끼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도 들었습니다. 그 명제 자체가 참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필요는 알았지만 어떻게 그래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고, 그 말이 참 어렵게 다가왔습니다. 애초에 부드러움과 강함을 같이 조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그것이 가능하며 우리는 그런 자원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물처럼 흐른다. 적응하고 구부러지기도 하면서 그 순간에 필요한 것들을 이용한다. 상황적 힘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은, 그저 우리 몸이 우리가 처한 안전함의 수준에 대해 알려주는 정보일 뿐이다. 우리 몸은 이 순환의 모든 지점에서 우리가 안전하게 살아있도록 보호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그리고 각 지점에서 사용되는 힘들은 그 자체로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 (34쪽)이후 지속적인 상담치료를 받으면서 하나 배우게 된 게 있습니다. 내가 살아온 방식은 비난받고 나의 예민함을 하찮게 여기기보다 인정하고 지지해줘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것이 아마 책에 나오는 상황적 힘이랑 연관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긍정적인 경험을 하고 관계들을 쌓으며 하나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전에 그랬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게 저는 버티기보다 모든 상황을 수용하고 승화할 수 있는 것이 강한 사람임을 생각해보게 되는듯 합니다.하나님은 저의 삶 가운데 어떨 때는 고난을 피할 방법을 알려주지 않으시고, 고난을 경험하게 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런 결핍과 아픔을 겪으면서 왜 그것을 겪지 않게 할 수 없냐고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서야 느끼는 것은 내가 그 아픔을 느낀다는 것은 내 감각이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 아픔을 하나님도 같이 겪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이런 찬양 가사의 한 부분과 같이 말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아픈 맘을 아시네 가까이서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시네"그런 지점에서 신앙이란 재구성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성적 힘과 회복탄력성이 고난을 맞이하더라도 긍정적인 경험을 쌓아가면서 자라가듯 말입니다. 이는 거센 파도를 치는 바다를 방향키를 잡고 힘겹게 나아가는 배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의 삶도 인생도 어찌보면 그런 고난과 아픔의 연속이지만, 하나님은 그 항해의 주인이 되신다고 저자는 말하는듯 합니다.우리의 삶이 힘들고 괴로웠다고 앞으로 그렇게 살아야 하는 당위는 없습니다. 엉망이었던 삶을 앞으로라도 짜맞출 수 있도록 그분의 사랑은 우리를 이끌어가고 만들어간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랜만에 읽은 이 책은 제 삶의 순간순간을 되새기고 또 앞으로 이완을 어떻게 해나갈지에 대한 길을 제시해준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저자의 마음과 같이 길을 찾고 방법을 시도해보면서 우리를 물처럼 강하게 빚어가시는 그분의 손길과 치유를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 우리의 삶은 조각조각 엉망일지라도 그분의 사랑은 완전하시니 우리를 살게 하고 다시 새로운 작품으로 빚어가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하며,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합니다. 그런 삶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 곧 이웃사랑과 연결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나에게, 서로에게, 좀 더 너그러움을 배워가고 부드러운 강함을 익혀가며 서로에게 그런 그늘을 내어주는 나무가 되어줄 수 있기를 소망하며 책을 읽으며 떠오른 노래 가사의 한 부분으로 글을 마칩니다.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아직 그대를 만나지 않아서야 그대 같은 사람이 태어난 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좋아하게 되었어그대 같은 사람이 살아갈 이 세상이 조금이나마 기대가 되곤 해"<br>#ivp #ivp독서단 #물처럼강하게 #아운디콜버<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5/98/cover150/89328239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059872</link></image></item><item><author>jcc3532</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자본식민주의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 [성서와 가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597149/17126287</link><pubDate>Mon, 02 Mar 2026 18: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597149/1712628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72030357&TPaperId=171262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13/98/coveroff/k77203035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72030357&TPaperId=1712628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성서와 가난</a><br/>월터 브루그만 지음, 박규태 옮김 / 복있는사람 / 2025년 09월<br/></td></tr></table><br/>&lt;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gt; "역사는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만들어진다. 이 책은 가난의 종식을 역사로 만드는 데 참여하라는 담대한 초대다." (12쪽)"허다한 사람들이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반면, 극소수의 사람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부를 독점하고 있다. 이런 불균형이 존재하는 한, 세상은 결코 안정될 수 없다. 우리는 모든 이가 넉넉히 가지고 어느 누구도 너무 많이 갖지 않는 세상을 바라셨던 하나님의 꿈에서 멀어져 버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구조적 불의'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만물을 바로잡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그리고 세상 안에 있는 부서진 것을 모두 구속하고 계신다." (14-15쪽)"개인 구원과 사회 변혁은 나란히 간다. 그 둘은 가위의 두 날 같아서 하나로 결합할 때 가장 잘 작동한다. 또는 노 젓는 배의 두 노와 같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은 개인의 하나님이시자 사회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죄로 가득한 개인들을 구원하고 계시지만, 동시에 죄가 넘치는 세상을 구속하고 계신다. 복음은 영혼 구원뿐 아니라 사회 체계와 관련된다." (17쪽)-&gt; 월터 브루그만의 유작이 나왔다고 해서 인상깊게 봤던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서문을 읽으면서 그가 어떠한 사람으로 살고자 했는지, 그리고 그가 주창한 '예언자적 상상력'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삶으로 학문으로 예언자적 외침을 다하며 교회의 메타노이아를 요구했고, 개혁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는 전복적 질서의 변혁이라는 것이 성경을 제대로 읽는 것에서부터 온다고 말합니다. 더불어 그는 교회를 무너뜨리려하기보다 도리어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서가기를 바라는 부분에서 가난 종식을 위해 교회가 나서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개인구원과 사회변혁이 동전과 같이 하나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의 복음이 편협해지고 납작해진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 책을 통해 그가 말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고자 합니다.1. 교회를 향한 사랑 - 사랑한다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고, 외치지 않을 수 없다."가난과 불평등을 향한 브루그만의 분노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피부색과 지위, 정체성에 상관없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생각하며 품은 것이었다. ... 브루그만이 소외된 이들을 품어 안을 때, 교회의 진보주의자들이 그를 품어 안았다." (24-25쪽)"브루그만은 성서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영원히 사랑하고 찾으시는 성서의 하나님에 기초하지 않은 채, 사회 정의를 추구하려고 노력하거나 그것을 옹호하는 데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고 내게 자주 말했다. 가난한 이를 위한 정의에 바친 브루그만의 헌신은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 브루그만은 아버지를 향한 교회의 대우에 씁쓸한 기억이 있지만, 여전히 교회를 사랑한다." (26쪽) "가난은 하나님의 백성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것은 교회가 자신의 사명을 다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다." (31쪽)-&gt; 그는 가난의 종식을 교회가 해결할 수 있을뿐 아니라 해결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외침을 보면서 예레미야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 '이제는 주님을 말하지 않겠다. 다시는 주의 이름으로 외치지 않겠다' 하고 결심하여 보지만, 그 때마다, 주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 (렘 20:9, 새번역) 어찌보면 브루그만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환영하기보다 적대하고 그에게서 거리를 뒀을지 모릅니다. 그가 하는 말이 지금의 교회 체계와 사회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주장으로 다가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분에서 오늘날 이념적이거나 혁명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비판은 성서의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외치는 하나님의 정의는 오늘날 현실을 관통합니다. 마치 성전을 둘러 엎으신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작금의 시대는 어찌보면 자본식민주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언자들이 고발했던 하층민들의 삶은 더 빈곤해지고, 빈부격차는 더 커졌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고 여전히 일하신다는 것을 브루그만의 외침을 통해 저는 느낍니다. 우리의 실천과 신앙이 예언자적 외침을 회복하고 개혁하는 신앙으로 거듭남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오늘날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여전히 교회의 기득권을 누리기를 원하는 오늘의 교회는 성서가 말하는 하나님은 종교의 자유가 아닌 약자와 고통받는 이들의 자유와 희년을 선포하시고, 여전히 시퍼렇게 길들여지기를 거부하실 뿐 아니라 비대해진 교회를 심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심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2. 성서 읽기를 새롭게 할 이유 - 성서의 다양한 목소리"여러분은 고대 텍스트와 현재의 상황을 배경으로 '집어삼킴'이라는 이미지를 곱씹어 보면서 이렇게 묻고 싶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교회에서 이런 성서 본문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까? 왜 이런 본문이 성서정과에서, 그리고 교회가 지닌 믿음의 지평에서 사라진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의 공동생활에서 복음이 주장하는 바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어느 정도 일러줄 것이다." (69쪽)"복음은 우리에게 확립된 이해관계라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정의와 의'에 이롭게 ('정의와 의'를 이루는 쪽으로) 성서를 읽으라고 권면한다(요구한다!). 우리가 성서를 그렇게 읽을 때, 진정으로 우리 자신의 시각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성서를 읽을 수 있게 된다." (86쪽)-&gt; 브루그만은 자신의 주장의 근거를 철저하게 성서에서 찾습니다. 특별히 구약성서의 외침은 여전히 성서가 다양한 목소리를 가져오면서 그 자체로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복음은 정의와 의에 이롭게 성서를 읽으라고 권면하고 그로써 우리가 행동하게 한다고 말입니다. 쉐인 클레어본이라는 유명한 활동가가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이유는 그의 말과 삶이 일치를 가져오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심각하게 제고해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삶만 그저 비대해져가고 약자들을 위한 자리는 더 비좁아져가기 때문에 말입니다. 부동산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오늘날의 현실 가운데서, 오히려 교회가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 모습을 가지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의 개혁은 그런 점에서 어찌보면 구약성서의 체다카 정신을 제대로 배우고 그로써 성경을 읽고 실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한정짓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일 것입니다. 3. 가난을 종식시키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환대, 관대함, 용서를 실천하려면 탐욕의 문화를 거스르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아울러 어떻게 일하는 것이 경제를 바꾸는 최선의 방책인지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치료하소서. 복종케 하소서, 부끄럽게 하소서'라고 끝없이 간구하는 교회를 상상해보라." (159쪽)"교회가 되풀이 해온 문제는 공적 참여를 거부한 게 아니라 그런 확신을 표명하지 못한 비겁함이었다. 나는 교회가 경제에 관하여 믿음이 제시하는 시각을 분명하게 밝히면,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새로운 순간에 이르렀다고 본다. 정말 사람다운 사람들이 공동체에서는 그런 주장이 실제로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힘든 임무를 수행하면서 고독과 상실감을 느꼈을 때, 타협하지 않은 '7천 명이 아직' 남아 있음을 발견했다 (왕상 19:18). 이렇듯 교회와 회당과 그 밖에 다른 공동체들에는 허다한 민중이, 이웃의 문제에 끊임없이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는 허다한 민중이 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런 무리를 모아, 변화를 일으키는 정치적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결론, 187쪽)-&gt; 브루그만은 현실을 새롭게 바꾸는 교회를 상상하도록 이끕니다. 이것이 어찌보면 그가 교회를 향해 품는 예언자적 상상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솔직히 이사야서에서 제시되는 하나님 나라는 굉장히 현실과 동떨어져보이고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브루그만은 명확히 말합니다. 그 성서의 꿈을 하나님은 오늘도 이루시고 변혁하고 계신다고 말입니다. 우리 또한 그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입니다. 교회사적으로 봤을 때 로마사회에서 소외된 이웃들을 돌보고 사랑할 뿐 아니라 안전망을 만든 것이 초대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사회복지개론서는 초대교회의 구제와 나눔을 사회복지의 효시로 제시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종교개혁가들은 칭의론으로 유럽의 선진복지를 이루어내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에게 오늘 필요한 것은 성서를 있는 그대로 읽고 용기를 가지는 것과 함께 우리의 교회가 그렇게 되도록 기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게 될 뿐 아니라 가진 것도 빼앗기고,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는 이러한 현실은 절대 하나님께서 심히 좋다고 하신 세상과 같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경제공부를 하는 것도, 희년을 실천하고 고민하는 교회에 다니는 것도, 계속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치열하게 읽고 묻고 기도하는 것도 결국 교회를 사랑하고 구약성서에서 여전히 선명하게 체다카와 미쉬파트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그렇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자본주의 종식은 어려울지 모릅니다. 빈부격차를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력을 품어봅니다. 일생동안 삶으로 학문으로 하나님의 정의를 가르쳤던 그의 존재를 본받아 교회와 사회를 새롭게 변혁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함으로, 오늘 가운데 이루실 희년과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며 걸어가는 삶이 되기를 소망해보며 책에 나온 기도문으로 글을 마쳐봅니다.“주님, 우리를 치료하소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돕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주님, 우리가 복종케 하소서우리는 목이 곧고 완고하기 때문입니다.주님, 우리를 부끄럽게 하소서우리의 방종과 우리의 자족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우리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오늘도 세상을 새롭게 하시고 변혁시키는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158-159쪽, 변형)”]]></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13/98/cover150/k77203035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1139875</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