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 내 방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법
김상권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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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는 자에겐 축복을 주시고 어려움이 없게 해 주셔야 한다는 우리의 방식을 뛰어넘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믿는 자녀들에게 아픔도 주고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상황도 주시고 질병과 각종 어려움도 주시면서 널 사랑한다고 하신다

내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독특한 사랑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이 책에는 아픔을 이기는 방법도 아픔을 겪지 않고 지나가는 방법도 없다

그냥 우리의 삶에서 아픔을 살아가라고 말한다

아픔속에서 살아 버티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증거이며

그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아픔이 만났때 비로소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이, 아픔들이 해결되고 사라지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도 얻고자 왔던 군중들이 결국은 예수님께 돌을 던졌고 침을 뱉었으며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향해서 구세주면 내려와보라라고 삿대질 까지 했다
지금의 많은 크리스챤들도 다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다고 해도 골고다의 그 군중들들의 틈바구니 속에 서게 될 것이다. 예수님 주위에 있지만 정작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장애물이 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된고 더는 주일 예배 한 번 드리는 것으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나를 통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라고 강조한다

그 아이 속에 있던 귀신을 쫓아내는 문제는 너희의 기도가 아니라 그 아이를 주님께 데려오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주님은 그 아이(문제)를 주님께 데리고 오는 것이 바로 기도라고 설명하신다. 감히 잡히는가? 기도란 마치 주문처럼 세게 하고 많이 하면 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문제와 아픔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을 살아 있게 하는 방법이다.

주님의 치유는 예배의 자리가 아니라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교제의 자리라고 해야 적절하다. 여기서 식탁 교제는 성찬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솔한 살의 나눔을 의미한다. 갖은 슬픔, 고통으로 인한 아픔, 심지어 자신이 죄까지 나누는 자리를 상징하는 것이 식탁 교제다.

내 속에 자기 높음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는가? 쉽다. 어떤 형제가(자매가) 술을 마신다, 담배를 핀다는 말을 듣을 때 나의 맘속에 정죄하는 마음이 들면 자기 높음이 있는 것이다. 내가 쌓은 경건으로 형제를 긍휼이 여기지 못하고 판단하는 것이 자기 높음의 증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주님은 높은 자리가 아니라 끝자리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대의 삶은 어떤가? 틀림없이 그대 속에 빛이신 예수님이 계신데 그대 친구들은 그대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가? 그저 가끔 교회 가는 기독교인으로만 알고 있다면 어쩌면 그대도 그대의 삶이라는 그릇으로 예수님을 덮고 사는 인생일지 모른다. 교회 안에서는 열심히 섬기고 저것도 봉사하지만, 직장과 학교에서는 일 년 동안 단 한 명도 그대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대는 이미 변명할 수 없는, 예수님을 덮어버린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도 얻고자 왔던 그들이 결국은 예수님께 돌을 던졌고 침을 뱉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향해서 구세주면 내려와보라라고 삿대질했던 자들이다
그대가 만약 지금 무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그대도 언젠가 골고다에서 그들의 틈바구니 속에 서게 될 것이다. 예수님 주위에 있지만 정작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장애물이 되는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제발, 더는 주일 예배 한 번 드리는 것으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그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 안에 들어온 가장 무서운 총체적 이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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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놀라는 때는 하나님이 문을 두드리실 때가 아니라 두드리던 노크 소리가 멈출 때이다. 사랑하는 주님이 더 이상 노크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충격과 함께 제정신이 든다. 주님의 노크 소리가 멈추는 즉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편안하고 게으른 삶의 방식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다.

다윗은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당신은 찬송을 부르고 삶의 열매로 예배할 때마다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또한 `땀`을 하나님의 나라에 드리는 또 다른 방법은 헌금이다. 이 땅에 `땀" 흘리고 수고하여 번 돈을 하나님의 나라에 자워낳여 드릴때, 당신은 자신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가치를 올려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예배는 뭔가를 얻어내기 위한 이기적인 섬김이 아니라 그분께 우리의 전부를 드리는 섬김이 될 것이다. 나를 축복해 달라는 간구는 주님을 송축하리라`는 고백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얻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열망하기 때문에 다 내어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단 한번의 만남은 사람고의 만남에 대한 식욕을 감퇴시킨다. 기름 부음 받은 예배인도자들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지 잘 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예배인도자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인도하려는 단 한 가지 목적으로 예배를 인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사람들을 모아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거룩한 기름 부음을 값싸게 전락시키는 실수를 저지르지 마라. 이렇게 기도하라. 나는 당신의 선물보다 당신의 임재를 더욱 원합니다. 나는 성장보다 영광을 갈망합니다. 이것은 이단이 아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하나님께서 교회의 규모에 대해 걱정해서 뭔가를 하셨다는 기록은 한 구절도 없다.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면 교회가 성장하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직 진실하게 그분을 사모하라, 기름 부음으로 당신 자신을 향기롭게 하고 주님을 향한 열정적인 예배 가운데로 들어가라. 누가 왔는지 안 왔는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그런 예배 가운데로 들어가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장벽이 없어지면, 당신은 하나님이 속삭이실 때 그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된다. 당신을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폭풍우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가슴에서 나오는 가장 고요한 바람, 가장 작은 미풍, 가장 부드러운 속삭임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회개와 깨어짐의 예배를 통해 그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오실 것이다. 다윗의 장막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이 된 것은 휘장이 없는 친밀함의 예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거주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을 세우는 것은 바로 이 친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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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 내 방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법
김상권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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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것이다. 그대가 낙망하고 낙심하는 이유는 문제가 너무 커서가 아니다. 그대 힘이 너무 나약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대가 낙심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내 아빠로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관계를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기도했는데 응답이 안 될 때, 믿음으로 살려는데 가슴 아픈 일이 생길 때, 그대가 낙심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내 아빠로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무 멀리 느껴지는 것이다.

신약에서 말하는 `눈에는 눈으로의 삶`은 형제가 나에게 행한 대로 나도 행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행하신 대로 나도 행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의 결론이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운심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내가 형제를 용서하는 것이 바로 `눈에는 눈으로의 삶`인 것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 눈의 들보를 빼는 것이다. 하나님의 용서를 보지 못하는 나의 눈에 들어간 들보를 빼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분의 용서를 헤아리는 순간순간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고, 어떻게 사랑하셨으며, 나를 용서하시기 위해 어떤 대가를 지불하셨는지를 다시 헤아리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바로 그 헤아림으로 나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적어도 외식하는 인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주님은 당신을 원하시고, 그래서 늘 함께 하실 것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대가 어떤 짓을 하던 주님의 사랑을 덜하게 할 수 없다. 그대가 어떤 헌신을 하던 주님의 사랑을 더하게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대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지금 그대로 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덜하거나 더할 재산이 없다. 기억하자, 그것밖에 안 되는 나를 주님은 그래도 원하셨다는 사실을.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무리 그대가 俗되어도 聖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아무리 아픔이 많고 상함이 많아도 그분의 유하시는 은혜로 인해 신기하게도 회복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는 세상을 더러운 곳이나 상종하지 못할 곳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세상과 함께하고 세상을 위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주님은 바로 이와 같은 목적으로 그대를 만나주시려는 것이다

백부장은 어떤 말씀이라도 괜찮다는 믿음이다. 내가 듣기 불편한 말씀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그런 믿음이 아니다. 나의 상황에 꼭 맞는 말씀을 듣고 전율하는 ㄱ런 믿음이 아니다. 예수께서 칭찬하신 `이만한 믿음`은 어떤 밀씀이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나는 살 것이라는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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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아저씨
네코마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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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남편, 아버지의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는 이 시대의 남자들이 모습을 시바견이라는 개의 모습을 빌어 오늘날 아버지들의 모습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세대차이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젊은 부하직원과 아들, 딸들과 소통이 안되는 아버지로서의 모습등 중년 남성들의 애환과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내는 남편을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무게를 부하직원들은 중간간부로서의 상사의 존재감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면서 아버지를 이해할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다




행복은 누군가와
나눌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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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배우다 - 사랑을 만나다. 하나님을 만나다
이요셉 지음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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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 제목처럼 서로다른 별에서 살아온 사람이 만나 함께 살아갈 때 알아야 할 가장 기초는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믿음은 누구의 것인가? 내 기준은 누구의 것인가? 내 자유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과연 내가 주님 앞에 온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예수님을 사랑하려면 혼자 살아가야 하지만,예수님을 닮아가려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남편이 된 이유로 나는 철저히 흔들려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결혼 후 1년 동안 주님이 주시는 감동에 온전히 순종하려고 몸부림쳤다. 순종하는 일이 엄청난 문제나 사건을 해결하는 일이었다면 순종하는 것이 수월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특별하거나 대단한 일이 아닌 평범한 일상을 사는 일이었기에 더욱 힘들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아내가 사랑받을 만한 모양을 가졌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기에 그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고 존중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순종이다. 비록 내 남편에게서 그리스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을 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실망이란 상대의 잘못 때문에 생기기보다는 내가 정해놓은 기대치에 상대가 도달하지 못할 경우에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시간이 둘 사이에는 관점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도리어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고민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민과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지 않는가
인생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기대하지 않아야 하지만 그 인생을 통해 일하실 주님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기대해야 한다. 믿음은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 저와 아내가 한 몸이라는데 저는 아프지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데 아내는 이렇게 아파하고 있습니다. 한 몸인데 저는 이렇게 멀쩡합니다.
주님, 아내의 아픔을 제게 주세요. 그리고 제가 가진 평강을 아내에게 주세요. 우리는 한 몸인데 아내 혼자서만 이렇게 아파하고 있습니다. 주님, 용서해 주세요. 제가 아플게요

주님,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실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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