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하나의 책.

여행은 세상을 읽는 독서

풍경은 활자

나도 그 활자가 되어갈 무렵, 여행은 끝나겠지

 

라오스를 여행할 기회가 있어 구입한 책이다

베트남이나 필리핀 태국은 많이 알려졌지만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나라 아직도 구 소련의 국기를 자기나라 국기와 같이 게양하는 나라

라오스......

 

아직은 때묻지 않고 아직은 너무 순수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너무 평화롭다

 

라오스의 향기를 읽고 여행하면서

사전에 그곳에 대한 책을 먼저 읽는것이 좋은지 아님 읽지 않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작가가 이야기한 카페나 장소, 그 나라에 대한 선입관이 생겨 나만의 라오스를 만들지 못한것이 아쉽다

여행은 그냥 하얀 백지에 나만의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다

 

 

마을을 조금 벗어나자 공동묘지가 나타났다. 첫눈에 평화로운 풍광이다. 사후의 집이 이렇게 평화롭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아는 대 부분의 공동묘지는 분위기가 썰렁하거나 무섭다.
이곳은 파란 하늘 아래 산을 배경으로 탑이 많이 서 있다. 온통 알록달록한 탑으로 무덤을 장식했다. 공동묘지 앞에서는 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사람은 죽어 저기 땅속에 묻힌 공동묘지 앞에 소가 살기 위해 먹이를 찾는 모습은 묘한 느낌을 준다.
언젠가는 나도 죽겠지.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것이 참 허무하기도 하다. 그저 이 세상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모든 이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지고,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뭐 하러 아등바등 사는 것일까? 차라리 저 소처럼 무덤덤하게 풀이나 뜯고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닐까?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굳이 알아야 할 경우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는 뒷모습을 보는 것이다. 앞모습은 쉽게 꾸밀 수 있지만 뒤는 그렇지 않다. 솔직한 자신의 모습이 뒤에 투영되어 나타난다. 가끔 제자들이 와서 연예나 결혼 상대자를 소개해주고는 어떠냐고 묻는 때가 있다. 그럴 때 해 주는 말 중 하나는 뒷모습을 보라는 것이다. 걷는 모습을 뒤에서 보자. 경쾌하고 리듬이 있으면 일단 심성이 밝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라. 그러나 걸음걸이가 무겁거나 질질 끈다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얘기도 들려준다.

혼자 하는 여행.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지만 떠나오면 늘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학생의 표정에 스스로의 대견함이 묻어 있다. 루앙프라방을 보고난 귀 태국으로 갈지 베트남으로 갈지를 망설이고 있었다. 하노니와 하롱베이의 여행담을 이야기해주면서 나는 베트남으로 가라고 추천했지만 태국으로 먼저 가겠다고 한다. 베트남보다 태국이 더 끌리는 모양이다. 끌리는 곳으로 가는 것이 여행이다. 억지로 가는 여행이 생긴다면 거부하라. 자신에게 죄 짓는 행위다.

심호흡을 한다. 라오스만의 독특한 공기 맛이 있다. 딱히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분명 루앙프라방의 냄새가 난다.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공기를 흡입한다. 공기도 여행의 일부다. 나는 어느 지역으로 갔을 때 그곳의 공기 맛을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공기 속에는 그곳의 역사는 물론 현재의 삶,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곳의 공기 맛은 특별하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맛이 잇다. 마치 오래된 도자기를 들고 냄새를 맡으면 나는 향기. 혹은 오래된 한옥 마루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거기서 뿜어 나오는 것 같은 내음.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달려왔을 때 맞아주던 어미의 가슴에서 나는 냄새. 조금은 다른점이 있다면 루앙프라방의 공기 중에는 달콤한 것이 있다. 그것이 무언지 나중에야 알았다.
참파트리였다

맛있다는 말은 말 그대로 맛이 있는 걸 나타내지만 우리는 맛이 좋은 것과 혼용하고 있다. 맛없다는 말이 맛이 나쁘다와 혼용되고 있는 것과 같이. 좋은 맛이든 나쁜 맛이든 맛이 있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 맛을 즐기는 것이 경험을 넓히는 것이다. 새로운 맛을 경험하는 것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여행지에서도 익숙한 음식을 찾고 다른 나라에서 굳이 한국 식당을 찾아가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입맛에 안 맞는다는 것은 새로운 입맛을 경험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는 것이다.

화려한 왓씨엥퉁도 라오스의 모습이고 시골길의 가난한 집도 라오스의 현재이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시골 풍경을 쉽게 만나게 된다. 삶은 팍팍해도 그들의 표정에서는 불안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습성일까 달관일까. 나그네의 섣부른 판단은 보류하자. 라오스의 시골길을 달리면서 마주하는 풍경은 나그네의 눈에는 조용하게 보일 수도 있다. 평화롭게 보일 수도 있다. 그저 잠시 마주하는 그들의 미소만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 없다

판단하지 말자. 언제부터인가 함부로 판단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을 주관으로 판단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판단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선입견으로 상대를 보게 된다. 지나고 보니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나를 판단하는 남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서 우리는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브랜드를 찾는 것이 아닐까. 남에게 잘못된 판단을 주기위한 행위를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 이미지를 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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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읽으면 웃으면서도 눈물이 나는 이야기

 

주인공은 초등학생 소녀 조지나

하루아침에 아빠가 사라지고, 엄마가 투잡으로 일하지만 집세가 없어 길거리로 쫓겨나 곧 멈춰버릴것 같은 자동차에서 엄마와 남동생과 생활하는 아이....

집다운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에 우연히 본 전단지를 보고 500달러를 줄수 있을것 같은 강아지를 훔칠 생각을 하고 동생과 같이 실행에 옮기는데......

 

결국은 15달러 밖에 줄 수 없는 카멜라 아줌마의 자식과도 같은 윌리를 움쳐 빈 집에 숨겨두고 아줌마에게 접근하는데....

 

어린 소녀가 친구들과 같이 지내고픈 마음, 엄마와 동생을 향한 애틋한 마음, 나쁜짓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양심과의 싸움에서 결국은 카밀라아줌마를 찾아가 이실직고를 한다....

 

결말에 넓은 집에 사는 카밀라아줌마가 조지나식구들과 함께 지내는것을 상상하며 읽었지만....

용서가 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은가보다....

 

결국 엄마 친구의 도움으로 자동차에서의 생활에서는 벗어나고....

 

집 나간 남편을 대신에 두 초등학생 아이들과 차에서 생활하며 생활비를 벌기위해 애
쓰는 엄마의 마음과 그 엄마를 도와주고픈 아이들의 마음이 느껴져 웃기면서도 눈물이 나오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다

 

 

담임선생님은 편지를 부모님에게 전했는냐고 나에게 백만 번쯤 물으셨고, 나 역시 백만 번쯤 거짓말을 했다. 네, 전해드리긴 했느네요, 엄마아빠가 진짜로 엄청 바쁘시거든요. 조만간 아빠가 선생님께 전화 드린다고 하셨어요. ‘그래 이거야.‘ 꽤 훌륭한 거짓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할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다. 화이트 선생님은 내 인생 최고의 선생님이다.

때로는 말이야, 휘저으면 휘저을수록 더 고약한 냄새가 나는 법이라고----.

‘때론 살아갈 일들보다 살아온 날들의 발자취가 더중요한 법이다‘

"내게 돈이 필요한 것보다 세상이 내 힘을 필요로 할 때가 더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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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당우리교회 이찬수목사님의 에베소서 1장에 대한 강론

 

모세가 유대이지만 바로의 공주 아들로 자라며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듯이 이 세상에서 크리스쳔으로 살면서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갈구하고 찾을때에 이 혼미한 세상에서도 흔들림 없는 중심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게된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이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전에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을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얼마나 많은 특권과 축복을 주셨는지를 에베소 교인들에게 가득담아 보내는 편지를 통해 지금 이 시대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다

 

감옥과 수도원의 공통점은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불평을 하느냐 감사를 하느냐 하는 것뿐이다.

불평은 인생 감옥을 만들고, 감사는 인생 감탄을 만는다

내 환경이 어떠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처한 자리에게 감사하고 기뻐하면 그 자리가 깊은 영성을 얻을 수 있는 수도원이 될 수도 있고, 내가 불평하고 원망하면 감옥디 될 수도 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이 이토록 스스로에 대해 자긍심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순응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도란 직분을 갖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결과요,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다 생각난 일이니 그 뜻을 신뢰하는 그로서는 마음에 갈등이 전혀 없더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확신을 가지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는데, 정작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러다 보니 확신을 가지고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는 못합니다. 나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못됩니다. 나는 초라한 인생입니다.라고밖에 반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세가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하자 하나님이 말 잘하는 아론을 붙여주시겠다고 하는 장면이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일하시는가? 그냥 말 잘하는 아론을 쓰시면 될 것 아닌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말 잘하는 아론을 어눌한 모세에게 붙여주시면서까지 자격 없는 모세를 붙잡으신다

분열과 분쟁이 사탄의 일이라는 것이다. 더 심각한것은 분열과 분쟁을 조장하는 일은 음행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똑같은 죄의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간음하지 않았다고, 술 안 마시고 담배 안 피운다고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지만, 그런 행위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 이상으로 나쁜 일인 것이다. 이것을 뼛속 깊이 인식해야 한다.

성경을 많이 읽는 것, 기도회에 나와 열심히 부르짖는 것은 힘쓰기 위해서 밥 먹는 행위이지 그것 자체가 칭찬 받을 일은 아니다. 성경 많이 읽으면 대박이라고 하는데, 성경 많이 읽어서 하나도 안 바뀌면 부끄러운 이야기인가? 안 읽어서 안 바뀌면 희망이라도 있다.
그 사람도 언젠가 성경을 읽으면 변화되겠지
그런데 읽어도 변화가 안 되면 그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을 찢어서 씹어 먹기라도 해야 하는가?
기도 많이 하는것, 성경 많이 읽는 것을 두고 자랑하지 말자. 오히려 그러고도 그렇게 사는 걸 부끄러워해야 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자랑해야 할 것은 성경 많이 읽는 것도 아니고, 기도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영적 양식을 많이 먹은 사람답게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며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 정말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서 모두 용서의 대가, 사랑의 대가가 되어 복음의 능력을 증거하는 크리스천들이 다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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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큰글자 2017.3 (개역개정판.새찬송가)
생명의삶 편집부 엮음 / 두란노(잡지)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 주변에 아픔이, 실패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확실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 구원계획을 이루시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실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말자

 

위선적인 신앙

-비 없는 구름

-말라 버린 개울

-마치 가난한 연극배우가 왕의 역할을 하다가 연극이 끝난 후에는 가난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 허무함을 느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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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병이 두려운가?

질병을 떠안은 그 몸을 하나님이 지으셨다

 

보이지 않는 미래가 두려운가?

그 미래를 살아나갈 호흡을 하나님이 주셨다.

 

인간관계가 두려운가?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이 지으셨다.

 

결혼을 못할까 봐 두려운가?

결혼 제도를 누가 만드셨는지 생각해보라

 

취직을 못할까 봐 두려운가?

                                       공중의 새, 땅의 꽃, 들의 풀 한 포기도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신다

 

                                       동물이나 곤충이 두려운가?

                                       창조주의 호흡이 들어 있는 생물들이다

 

                                       식물이나 땅이나 하늘이나 바다나 계곡이 두려운가?

                                        모두 하나님께서 직접 지으신 것들이다.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있는가?

                                        보이지 않고 증명되지 않은 존재들조차 하나님보다 작은 존재이다.

                                        창조주의 위엄 앞에 두려워 떠는 미물일 뿐이다

모든 세계가 주께 속했다.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그러면 두려움으로 가쁘던 호흡이 잦아들고, 울렁이던 가슴도 고요해진다. 가장 크게 보이던 두려움도 결국 별것 아님을 알게 된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들은 다른 어떤 것에 대해 가르쳐달라고 요구한 적인 없다. 예수님께 전도나 축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는 기록은 성경에 없다. 다만 그들이 뭔가를 가르쳐달라고 요구했다는 기록은 기도에 대해서만 나온다.
제자들이 볼 때 예수님은 늘 기도하셨고 그 모습은 기도의 전형이자 전문가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예수님의 우선순위는 기도였고, 바쁠 때일수록 더 기도하셨으며, 그분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습관을 가지고 계셨던 데다가, 사역 때문에 기도할 시간이 없을 때는 억지로라도 기도의 시간과 장소를 만드셨다.
또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밤새워 기도하는 모습도 보여주셨다.

땅 끝까지 복음 전하는 과제는 매일의 작은 숙제들로 쪼개졌다. 그 첫 번째는 6,3,10이었다. 매일 아침 6시, 오후 3시, 밤 10시에 기도하는 것, 또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또 읽는 것이었다.
"가르쳐 지키게"하려면 내가 먼저 알고 지켜야 하므로,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했다. 내일 증인이 되려면 오늘 증인으로 살고 있어야 했다.

성경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한다. 동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으로 가득하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보다 더 많이 두려워하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직접적인 언급이 들어 있는 구절들 중에 가장 대표적인 부분들만 추려도 엄청나다.

아내가 개척을 선택한 근거는 오롯이 하나님이었다. 하나의 선택은 다른 것들에 대한 거절이라는 대가지불을 요구했다. 아내는 개척을 결정한 대가를 이미 지불했고, 그 안에는 경력에 대한 포기도 들어 있었다. 그 상급은 그녀가 받게 될 것이었다. 유혹은 진실이 아니었다
거짓이 탄로나자 두려움이 물러갔고, 그 빈자리에는 말씀과 확신이 들어찼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남들이 가지 않는 길로 가는 소명을 주셨음이 다시 감사하고 기뻤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기준을 다시 말씀으로 세우고, 눈앞에 있는 아내와 형제들에게 위로와 도전을 줄 시간이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두려움의 현장에서 경험하는 순간순간 말과 행위로 선포하라. 노래하고, 칭송하라, 두려움의 바다 위에서 예수님을 찬양하라.
나는 베드로였다. 물에 빠졌던 그 경험은 이후에 내게 많은 용기를 주었다. 실패가 믿음을 키웠다. 얼마나 안전한 배를 만드는가, 얼마나 멋진 모습으로 그 배를 장식하고 꾸미는가 하는 것들은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물로 뛰어들 수 있는가?이다. 예수님이 "오라"고 하실 때, 안전한 배를 떠나 풍랑이 이는 물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것. 만약 내게 믿음이 부족해서 물 위를 걸을 수 없게 된다 하더라도 수영이라도 해서 그 "오라"를 내 몸으로 경험해보고 싶다
수용을 하든지, 물 위를 걷든지, 적어도 나는 배 안에서 "안전히 죽기"를 기다리고 싶지 않다. 배를 꾸미느라 정신이 팔려서 물로 뛰어들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어정쩡한 제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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