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다 - 치사해서 말하지 못한 사소한 것들을 향해 이단옆차기
김보라 지음, 스폰지 그림 / 돋을새김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 일상생활에서 사소한것에서 화가 나는 이유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피곤해서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으면서 문이 열릴때마다 눈치를 보는 상황도
결혼한 친구들이 모처럼 만나서 시댁과 신랑흉을 보고 살림하는것이 힘들다고 내내 투덜대면서도
미혼인 친구에게 왜 결혼하지 않냐고 다그치는 상황까지....

손가락이 부러지는 것도 아닌데 부모님에게 전화하지 못하고 이핑계저핑계를 만든다
평일엔 토요일, 일요일로 미루고 토요일엔 모처럼 쉬는 날인데 조금만 더 쉬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러다보면 토요일 낮에 자고 밤엔 깨어있고 일요일날은 또 늦잠자고....
결국 해야할일은 다음주 토요일로 미루고.....
많은 직장인들이 이런 패턴으로 살아간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겪어던 일들에 대해 정말 사소하다고 느끼지만 화가나는 것들에 대해 솔직담백하게 풀어논 이야기들이다

 

꼭 내 이야기이다....

 

 

 

물론 그런 메일이나 문자를 받는다고 해서 당장 그 일을 처리하느라 일에 매달려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문자 한 통으로 잠시 끊어두었던 회사와 업무의 연결고리가 한순간에 이어지고 결국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평화롭던 주말 아침은 그렇게 망가져버린다. 푸른 풀밭을 걷다가 갑자기 시커먼 구덩이에 쑥 빠져버리는 느낌처럼, 혹은 밝은 빛을 향해 걸어나가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머리채를 휙 낚아채는 것처럼.

사람들이 왁자지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순간에 물개박수까지쳐가며 같이웃고 또 함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실은 자세히 들어보면 모두 각자 자기 이야기만 떠들고 있다는 시중의 어느 이야기처럼 언제부터인가 내 할 말, 내 주장을 하는 데만 주력하는 건 아닌가싶다. 그러면서 헤어질 때는 이렇게 인사한다. 오늘 이야기 즐거웠어. 오랜만에 말이 통하니 실컷 떠들었네. 다음에 또 만나

중요한 건,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서비스의 질이 확실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다. 밝은 얼굴에 따뜻한 인사말을 들으며 가게를 나설 것인지,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찜찜한 마음으로 가게를 나서게 될 것인지는 결국 본인의 선택이다. 협박은 아니다. 그저 인지상정을 말하는 것일뿐

나인 투 식스 직장인들은 수많은 일들을 주말로 미뤄놓는다. 친구와의 약속, 옷장 정리, 철지난 세탁물 맡기기, 병원 가기, 괜한 욕심에 사재기하곤 쌓아만뒀던 책 읽기, 미장원 가기, 개인 블로그 정리 등등. 평일에도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그때그때 처리할 수 있는 일까지 전부 주말용으로 쌓아둔다. 마치 주말이면 시간이 무한정 리필이라도 되는 것처럼.

틱낫한 스님은 화라는 책에서 화가 날 땐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라 했다. 여기에 덧붙여 화를 삭이는 좋은 방법을 하나 더 알려주자면, 화가 날 땐 괜한 책상이나 벽을 괴롭히지 말고 당장 수첩이든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그 상황을 글로 적어보라는 거다. 그럼 정말 신기할 정도로 빨리 화가 사그라진다. 심지어 이게 그렇게 화낼 일이었나 싶어 머쓱해질 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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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프로 응답받는 기도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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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프로 응답받는 기도-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한권사서 읽고보고싶은 제목이다

 

제1장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기도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셨다
자녀는 부모에게 마음에 있는 모든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고 부모는 능력껏 들어줄 의무가 있다
우리는 그런 자녀로서 우리의 아버지되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제2장 진정한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와 찬양기도
-기도를 들어주셔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심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그 자체에 감사하고 기뻐해야 한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선물로 주신다

 

제3장-자복하며 드리는 회개기도
세상것을 두려워하면 기도할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여야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는 내가 잘하는것이 아니라 내가 기억하지도 못했던 나 자신의 모든 잘못과 욕심, 두려움을 자복할때 진정으로 하나님께 회개기도할수 있다

제4장-하나님나라의 영광을 위한 서원기도
서원이란 하나님이 뭔가를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가 먼저 자발적으로 뭘 하겠다는 약속이다
우리는 보통 무엇을 해 주시면 나도 무엇을 하겠다는 서원기도를 하고선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 지면 내 스스로 하나님께 하겠다던 서원기도는 잊어버린다
하나님은 내가 서원해서 내가 원하는것을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니 지키지 못한 서원기도는 하지 않는것이 좋다

 

제5장-고난의 때에 드리는 능력기도
고난이 없어도 자랑하지 말라. 하는 일마다 잘되고 고난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자랑할일이아니라 두려워할일이다
죄를 짓고 살면서 들키지도 않고 무사히 넘어간다면 다행중에 다행이 아니라 불행중의 불행이다
고난의 때에 드리는 기도야 말로 내 자신을 내려놓고 드리는 능력의 기도이다

제6장-영혼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
미운사람을 위해 중보기도를 해야 한다
아무리 미워했던 사람도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다보면 하나님께서 내 상한 마음을 위로해주시고 그 사람에 대해 측은한 마음으로 주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대할수 있게 된다 

 

제7장-내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우리가 자기 잘못을 회개하지 않고 욕심으로 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할때 침묵으로 응답주심은 너희가 떠들지만 말고 나에게 말하지 말고 내 뜻을 내 말을 기다리라는 뜻이다

제8장-100프로 응답받는 기도의 비밀
내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에게 축복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할때 그 기도는 100프로 응답된다
응답 받으려면 먼저 주님 안에서 살아야 한다. 말씀이 내 인격이 되어 그대로 행함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럴때 헛된 야망을 품지않고 그럴때 기도가 100프로 응답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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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살 미혼의 아가씨 수짱과 동갑내기 회사원 마이코의 이야기
어떤 모습이 내 모습이고 어떤 모습을 원하고 있는가를 고민하는 모습들이 마치 내 모습을 보고 있는것 같다
예쁘지 않아도 결혼하지 않아도 조금은 이기적이여도 그게 바로 나의 모습이고 곧 내 자신이니
어떤 모습이든지 당당하자는 이야기

 

변하고 싶다.
나는 지금의 내가 변했으면 좋겠다.
어떤 식으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지 않은면 안 될 것 같다.
지금보다 좋은 내가 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된 거라고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에 행복해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마음도 이해한다.
결혼....
나카다 매니저라면 당장 결혼하고 싶어!!!
내일 볼 수 있다는 즐거움

진짜의 나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살아가는 것은 좋은 걸까?
그건 옳은 게 아니라고 한다면,
지금 이대로의 자신은 싫다고 생각하는 나도
올바른 삶의 자세는 아니라는 건가?
모르겠다

아, 피곤해
이번주는 일요일도 못 쉬겠군
쉬지도 않고 일해서 내가 얻는 게 뭐지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고
여러 가지 모습을 동경하지만
어쩌면 다른 누군가가
나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물론 그런 일은 당연 없겠지만

젊은 사람에게 ‘젊음‘의 우월감을 안겨주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젊었을 때
그렇게 대해주면 기뻤으니까
누군가 젊음을 부러워해주는 건 기쁘다
자신에게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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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으로 유명한 선재 스님이 들려주는 자연과 음식,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음식은 삶이며 생명이다. 내가 아프거나 삶이 안 풀린땐 요즘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 질문하고 답해보라고 하신다.

 

생명을 위해 살면서도 우린 음식에 대해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 소홀하게 생각하며 귀찮아 한다

또한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 다니며 과식하는데 선재 스님은 몸에 좋은 음식을 먹기보다 몸에 나쁜 음식을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라고 하신다.

 

계절에 따라 먹으면 좋은 음식 재료와 만드는 방법까지 소개되어 있어

생각날때마다 다시 펼쳐보며 읽어보려고 한다

 

내 생명이 소중한 만큼 생명과 같은 음식을 만들어주는 재료들도 귀하게 여기고 그 재료를 키우는 자연도 내 생명만큼 귀하게 여기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한다고 하신다 

 

음식은 한마디로 바로 삶입니다.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거나 몸이 아파서, 일이 안 돼서 상담을 하러 온 이들에게 부처님을 먼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무엇을 먹고 살고 있는지만 살펴도 고민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음식은 우리의 삶과 사상, 몸과 마음의 근본입니다.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 그럼에도 몸이 아프고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늘어가는 지금, 음식에 대한 생각만 바로가진다면 그 많은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어떤 음식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먹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가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음식은 곧 삶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삶의 방식과 직결됨을 알야야 합니다.

정무 스님은 효도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효도에는 세가지가 있는데, 하품은 맛있는 음식과 옷을 부모에게 대접하는 것이요. 중품은 부모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 그리고 상품은 부모에게 불법을 전하여 집착과 윤회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이들은 보살이다. 보살은 다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구제‘라는 표현은 ‘나‘보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보살은 4가지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자 비 희 사, 사무량심이다. 내가 가진 것을 베푸는 마음, 다른 사람의 슬픔을 나누는 마음, 남이 잘되었을 때 함께 기뻐하는 마음, 이기심을 버리는 마음이다. 먹는 이를 생각하며 정성으로 만든 음식에는 사무량심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음식의 진정한 완성은 만드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 음식을 먹는 이들의 마음에도 달려있다. 음식에 깃든 정성을 알고 단지 혀로만 먹지 않고 마음으로 헤아려 고마운 마음으로 먹는 것, 그리고 그 음식을 먹고 ‘훌륭한‘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음식‘의 완성이다

사찰음식의 궁극적 목표는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자타불이‘의 진리를 스스로 깨우치도록 돕는 데 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나와 하나이다. 물도 공기도 나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물과 공기와 흙의 기운으로 만들어졌으니, 그것들이 병들면 나도 아픈 것이 있고 저것이 있다는 불교의 연기법을 깨닫게 되면서 차츰 건강한 마음을 갖기에 이른다. 이를 통해 자기 삶이 바뀌고 가족과 이웃, 주위 사람들마저 변하게 만든다. 한 사람의 자각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니, 이 또한 연기가 아니고 무엇이랴

나를 찾아온 병은 나와 인연이 있어서다. 인연은 인과다. 하나의 원인이 아니라 수많은 것들이 얽히고설켜 사건이 일어난다. 병도 한가지 이유가 아니라 수많은 요인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내 몸 안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변화이다. 그래서 병에 걸렸을 때 누구 탓을 한다거나 무엇 때문이라고 단정하며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세상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우주 만물은 서로 끝없이 영향을 주고 받는다. 오늘 나에게 일어난 행운이 꼭 내가 잘해서만도아니며 불행 역시 반드시 내가 잘못 산 결과가 아니다. 우리는 모든것이 여결되어 있는 인드라망의 그물 속에 있을 뿐이다. 그 속에서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삶의 태도를 만들어가는 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목적은 그것이다

발우공양에는 세상의 도가 모두 들어 있다. 올바른 수행자들이 하나의 발우에 담긴 것으로도 만족하고 충분함을 느끼듯, 우리도 하루하루 주어진 일상에 감사하는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욕심은 늘 모자라다 느끼는 마음이고, 행복은 이것으로도 충분하다는 마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발우공양의 의미를 오늘 나의 밥상에서 되새겨보자

우리 몸과 자연은 하나로 이어여 있다. 제철의 곡식과 채소들은 우리 몸을 끌어당긴다. 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ㅏㄷ. 그러나 더위가 누그러지고 바람이 선선해지면 그 음식을 멀리 하게 된다. 그토록 간절하던 콩국수가 어느 날 갑자기 먹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져버린다. 계절에 따른 음식을 먹어야 몸은 그 계절에 적응한다. 오이가 여름에는 약이지만, 냉한 성질이기 때문에 다른 계절에 먹으면 해로울 수도 있다. 오이를 제철이 지난 다음에 먹어야 한다면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버무려 먹어야 한다. 냉한 음식을그대로 먹기보다 고추장으로 보완한 음식으로 먹는 것이다

사찰음식은 오신채는 물론 인공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요즘 많은 이들이 건강을 생각해 유기농 채소를 구입해 먹지만, 정작 조미료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음식에 들어가는 양이 적어서도. 싱싱한 유기농 채소 위에 첨가제가 들어간 소스를 듬북 뿌려 먹기도 한다. 화학 조미료, 인공 첨가제나 조제 소스를 넣어 요리한다면 아무리 재로가 좋아도 소용 없다. 부처님 말씀에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는 말이 있다. 요리에 적용한다면 재료의 자연스러운 맛을 허물지 않고 돋워주는 조미료를 잘 쓰는 데 있지 않을까. 사찰에서는 조미료라 하지 않고 양념이라 한다. 조미료의 조미는 맛을 도와준다는 의미이지만, 양념은 약이 되는 맛을 더해준다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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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4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자굴에서 살아난 다니엘이 우상의 제국이였던 바벨론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왕과 백성들에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통해 바벨론같은 현 시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다니엘의 겸손과 존중은 이 세상을 누가 다스릴지 하나님이 결정하신다는 믿음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다니엘에게 느브갓네살은 하나님이 주권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잠시 사용하시는 종에 불과했고, 이 때 하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징계하고 심판하시는 것이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을 존중한 것은 그가 존중받아 마땅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것을 멍령하셨기 때문이었다.

 

세상과 자꾸만 더 놓은 담을 쌓고 살아가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겸손과 존중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영향력을 발휘하라고 한다.

 

다른 기독교 서적들과는 관점이 많이 달라 조금은 생소했지만 현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꼭 한번쯤은 읽어보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기를 바란다.

다니엘의 시각으로 볼 때 바벨론에게 승리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성전의 성물을 느부갓네살에게 넘기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그 성물을 이방 신의 보물 창고로 옮기도록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느부갓네살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열등한 신이요 패배한 신이라 조롱하고 무시했지만, 이것을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다니엘은 모든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봤다. 그리고 바로 이런 시각에서그의 소망과 겸손과 지혜가 나왔다

그리니 끝까지 버티라. 당장은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은 결코 당신을 잊으신 게 아니다. 하나님은 전체 계획을 세우셨으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계획대로 추진하신다. 지금 하나님은 바벨론과 같은 환경을 위해 당신을 준비시키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그 훈련의 목적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시는 것이다.

무엇이든 두렵거나 걱정되는 이링 있으면 바울은 기도했다. 단, 상황을 바꿔 달라고만 기도하지 않고 반드시 감사할 거리를 찾아 감사했다. 그러면서 그의 편지를 읽는 이들에게도 똑같이 할 것을 권했다.

음모론과 파국론에 빠져 살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일 때문에 걱정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편 23편을 잘 안다. 암송할 수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골짜기 아래서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을 모르는 교인은 별로 없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음모론과 파국론의 늪에 빠지면 이 모든 약속을 잊어버린 다. 우리가 어떤 하나님을 따르고 있는지 잊어버리고 두려워하는 일에만 시선을 고정한다.
나아가, 지금 우리에게 있는 영적 힘으로 두려움의 대상에 맞서야한다는 착각에 빠진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더라도 지금 우리에게 있는 영적 힘으로 맞설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하나님이 그날그날 공급하시는 힘으로 맞서면 되는 것을.

하나님은 언제나 정확한 배송 시스템을 자랑하신다. 단 하루도 늦는 법이 없다. 단 하루도 이른 법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해도 생각만큼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하나님이 필요한 때에 필요한 힘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평안하게 죽는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창고에 보관할 수는 없다

영적 근시안에 빠지면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다. 전체를 보는 눈을 잃어버린다. 눈앞의 현실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판단한다. 일이 잘 풀릴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그분을 의심한다. 영적 근시안은 위험한 영적 질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능력을 의심한다. 소망과 확신과 용기가 줄어들고, 두려움과 의심과 절망만 가득해진다.
육체적 근시안의 치료법은 교정 렌즈다. 반면, 영적 근시안의 치료제는 십자가와 빈 무덤이다

영적 근시안의 뒷면에는 영적 건망증이 있다. 영적 근시안은 현재에 시선을 고저한 것인 반면 영적 건망증은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심각한 영적 건망증을 앓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수세기에 걸친 애굽의 종살이에서 기적적으로 해방된 지 몇 주 만에 아주 유명한 사건이 하난 일어났다

성경적인 겸손은 낮은 자존감과 동의어가 아니다. 성경은 단순히 자신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라고 명령한다.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낫게 여겨서도 안 되지만 실제보다 더 못하게 여겨서도 안 된다.
우리는 자신의 재능과 능력, 장단점을 있는 그대로 파악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다니엘이 보여 준 겸손이었다. 다니엘은 정복자들과 사악한 주인들까지지극정성으로 섬겼고, 그 결과 끊임없이 승진했다. 그리고 그렇게 승진할수록 바벨론에서 다니엘의 영향력은 점점커졌다. 나중에는 느부갓네살 왕과 다리오 왕이 그의 하나님을 유일한 참신으로 고백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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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바벨론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다면 우리의 전술을 바꿔야만 한다. 이 시대의 불경건한 리더들을 피하거나 공격하기보다는 다니엘처럼 그들에게 서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려면 하나님이 잠시 누구를 권좌에 앉히시든 일단은 그들을 겸손히 섬기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만 그들이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접촉 없이는 영향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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