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자면, 폭스콘 공장노동은 감시, 비밀주의, 의미 없는 반복, 남 좋은 일, 대인관계 축소를, 보험 판매는 정확히 그 반대를 의미했다. 자유, 개방성, 유용한 지식, 기업가 정신, 대인관계 확장 등등 자원노동과 서비스노동을 비교할 때도 그와 나는 엇박자를 탔다. 내가 봤을때 무임노동인 자원노동이든, 임금노동인 보험 판매든 공공의 책임을 ‘윤리적‘ 시민과 수익성 사업 섹터에 각각 떠넘긴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통치와 무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쭤메이는 둘 간의 공통성을 ‘존엄‘과 ‘돌봄‘이란 단어로 집약했다.
당시 그의 위챗 앨범은 보험회사에서 직접 제작했거나 유통하는 각종 콘텐츠로 가득했다. 가족애, 사랑, 우정, 연애, 결혼, 건강 등 다양한 주제의 포스팅이 미묘하게 보험의 중요성을 환기했다. 오프라인에서 쭤메이는 내게 보험을 사기로 생각하는 대중의 편견을 우려했고, 온라인에는 보험의 ‘이타성‘을 환기하는 콘텐츠를 꾸준히 공유했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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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한국의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최저생활보장 제도를 1990년대 말 도시에서 처음 시행했을 때, 이들 다수가 노동자가 아닌 수급자로 재등장했지만 말이다. 질문거리가 많았다. 인민에서 ‘빈민‘으로 전락한 도시 노동자들은 자신의 빈곤을 어떻게 인식하고 경험할까? 사회주의 독트린을 고수하는 나라에서 국가는 사회주의 대표 계급의 빈곤화에 어떻게 개입할까? - P75

도시는 개인이 각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분투하고, 결혼----출산양육을 통해 노동력을 원활히 공급하고,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부강이 일체화되는 ‘대중유토피아‘ (벅모스 2008)의 공간이었다. 도시 질서를 위협하는 자격 없는 국민 인민에 대한 통제 역시 한국과 중국에서 비슷하게 등장했다. 사회적 빈곤은 유기적 사회질서구성을 위한 기술들을 고안해내기 위한 개발구역으로, 이 새로운사회질서는 지금까지 특정한 형태 없이 존재해온 사회적 삶의 영역들을 관리 아래 두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프로카치 2014 245-246)정부는 부랑인이나 소매치기, 성매매 여성을 사회문제로 보고, 이들의 문제를 습속 탓으로 돌리면서 대대적인 지도와 통제에 나섰다. - P85

 이들을 시설(한국)이나 수용소(중국)에 감금한 채 의식 개조와 노역을 강제하거나, 정착 이주 사업을 통해 국토를 개척할 임무를 맡겼다.(김아람 2021 박해남 2021 추지현 2021 디쾨터 2016) 군사정권 시기 도시하층민을 부랑인이란 이름으로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갖은 학대와 노역을 일삼은 일명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7년에야 공론화되면서 피해 생존자들의 진실 규명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이 ‘사회명랑화사업‘의 일환으로 대한청소년개척단을 조직하고, 이들의 강제노역, 강제집단 결혼, 성폭행 등 인권유린을 방조한 역사는 최근에야 서산개척단 사건‘으로 알려지며 진상 규명이 시작되었다. 서산개척단의 공식 명칭은 ‘서산자활정착사업‘이었고, 형제복지원은 자활의 기치 아래 모범 표창을 휩쓸며 운영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자활이 없는 노역"이 정부의 보조금과 민간 복지시설의 수익사업을 결합한 ‘자활사업‘을 가능케 했고, 이러한 구조적 폭력이 수용자들의 ‘사활‘을 불가능하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소준철 2021: 193) 의존할 대상을 곁에 두지 못한 사람들이 도시 밖으로 멀리 쫓겨나거나 안에 감금된 채 의존의 혐의를 받고 ‘자활‘을 강요받았던 셈이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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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동서고금의 현상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이를 ‘빈곤‘이란개념으로 문제화하고, 이에 개입하기 위한 대상으로서 ‘빈민the poor"
을 구성하게 된 것은 근대 이후다. 유럽에서는 중세 말엽부터 화폐경제가 발달하고 인클로저로 토지를 잃은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남루한 사람들의 무리와 그 집합적 삶의 양태를 ‘사회‘라는, 개인과 국가를 매개하는 영역으로 새롭게 포착하고, 빈곤과 빈민을 (종교적•개인적 문제가 아닌)‘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 P28

의존이 인간의 생존과 실존에 있어 고유한 양태임에도 우리는 어째서 이를 말하기 꺼리거나 특정한 상황에만 적용할까? 단도직입적으로, 빈곤은 어째서 ‘의존‘ 의존성‘ ‘의존적‘과 같은 표현들이가장 명시적인 부정성을 띤채 범람하는 현장이 되었을까?
역사적으로, 빈곤에 대한 경멸과 노동에 대한 찬양은 동전의 양면인 경우가 많았다. 가난한 사람들을 기독교적 동정의 대상으로 여겼던 중세 유럽에서도 흑사병으로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지자 이들의 노동 회피를 문제 삼는 정책이 등장했다. - P68

 노동을 기피하고 부랑 생활을 일삼는 경멸스러운 ‘걸인‘과 노동력을 상실하여 기독교 윤리에 따른 자선으로 구제받아야 할 ‘빈민pauvre‘이 14세기 중반 프랑스 국왕 칙령에서 분명히 구분되어 있었다는 점은 흥미롭다.(홍용진 2016 : 75-77) 오늘날까지도 공공부조 체계를 갖춘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능력의 유무에 따라 수급자를 관리하는 제도나, 노동 의지에 따라 자격 있는 빈민과 그렇지 않은 빈민을 구분하는 관행은 여전히 지배적이다. 살면서 ‘어떤 의존을 하는가‘를 묻기보다, 노동을 척도로 의존이나 자립이냐‘를 판별하는 흐름이 대세가 되었다. 이때 노동이 갖는 의미는 제한적이다. 직접 물건을 만들어 팔든 자신의 노동력을 팔든, 경제적인 생산관계에 편입된 노동
‘밥벌이‘가 가능한 노동이 의존과 자립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다.
노동 의지에 따라 다른 형태의 빈민 통치가 작동했다는 점은, 빈곤이 단순히 부에 대응하는 경제적 개념이 아니라 품행의 심사장이었음을 뜻한다. 조반나 프로카치는 이 점에 주목해 18-19 세기 유럽에서 사회적 빈곤에 관한 문제의식이 등장하는 과정을 살폈다. 당시 유럽에서 부의 증대에 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던 고전적 정치경제학은 빈곤을 풍요의 대응물로 취급하면서 ‘빈곤의 정치‘가 갖는 유용성에 별반 주목하지 않았다. 반면 주변화된 영역이던 사회경제학은 빈곤을 자본주의 메커니즘이나 소유권과 연결하기보다 사회유대의 붕괴, 제도의 미비, 개인의 도덕적 결함으로 문제화하면서, 문제의 진단과 처방을 둘러싼 일련의 지식과 통치 기술을 고안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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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나왔다. 나나만이 홀로 밝은 촛불 아래에서 고개를 위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송장이었고, 피와 고름 덩어리였고, 쿠션 위에 던져진 썩은 살덩어리였다. 작은 고름집들이 얼굴 전체를 뒤덮었고 뾰루지들이 엉켜 있었다. 퇴색하고 문드러져서 진흙덩이처럼 회색이 된 고름집들은 형체를 알 수 없는 반죽 같은 얼굴 위에 핀 곰팡이 같았다. 거기서 옛 모습이라고는 찾을 길이 없었다. 왼쪽 눈은 완전히 곪아 푹 꺼졌다. 반쯤 뜬 오른쪽 눈은 썩은 구멍처럼 시커떻게 파여 있었다. 코에서는 아직도 고름이 흘렀다. 뺨을 덮은 불그스름한 딱지가 입 언저리까지 떨어져나왔는데, 거기에는 기분 나쁜 미소가 새겨져 있었다. 그 무섭고 끔찍한 죽음의 얼굴 위로 머리칼이 그 아름다운 머리칼이 햇빛처럼 찬란한 불꽃을 지닌 채 황금의 개울처럼 흐르고 있었다. 비너스가 썩은 것이다. 시냇가에 버려진 내성 강한 시체에서 그녀에 의해 채집된 바이러스가 그녀가 민중을 망쳐놓은 그효소가 그녀 자신의 얼굴로 옮겨와 그녀를 썩게 만든 것 같았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절망적인 커다란 고함소리가 큰길에서 솟아올라 커튼을 부풀렸다.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 - P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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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네트워크의 생성을 통해 이해하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의 용어를 따르자면, 이 깔때기란 해당 네트워크에 있는 행위자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의무통과점 ObligatoryPassage Point‘이다. 다른 행위자들이 네트워크상에서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지점을 구성함으로써 행위자들을 중심 행위자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장치인 것이다. (홍성욱 2010:26) 사람도, 사물도, 제도도, 담론도 모두 가능하다. 의무통과점의 정당성이 강화되는 것도,
이 정당성에 도전하면서 다른 의무통과점을 만드는 것도 행위자들의 동맹에 따른 결과다. 수급이 빈곤 네트워크의 의무통과점이 되었다고 내가 생각하는 까닭은, 정부 정책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자기 서사, 그리고 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의 움직임 모두 수급(기초법)을 경유해 그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공공부조의 수급자로 구획되면서 가난은 특정한 양식과 문법 안에
‘고이고 말았다. 빈곤을 우리 시대의 정치적 핵심 의제로 삼는 일은 그렇게 점차 요원해졌다. 빈곤이 ‘우리의 삶‘에서 ‘저들의 문제‘로 고립되면서 취약계층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메시지가 빈곤을 끝장내자는 결의를 압도해버렸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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