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L.P. 하틀리는 그의 소설 『중재Go-Between』에서
‘과거는 곧 다른 나라‘라고 썼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다르게 행동한다." 우리의 세계는 고대의 세계와 다른 듯 닮아 있다. 때로 그들의 행위와 관습이 괴이하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귀를 기울인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것이다. - P22

라에톨리 발자국

1978년 탄자니아의 라에톨리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의 발자국 화석이다.
360만 년 전 우리의 먼 조상이 직립보행을 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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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남작이 자기를 들여다보는 눈으로, 남작의 요구를 깨달았다. 하고 겨우 중얼거렸다.
"부인이 아시면?"
‘아차!‘
그는 속으로 고함을 쳤다.
‘부인이 모르면 어찌한단 말인가?………… 모르면? ・・・・…… 이것이 허락의 의미가 아닐까? 그러면 너는 그것을 싫어하느냐? 물론 싫어하지. 무엇? 싫어해? 내 마음속에 허락하려는 생각이 조금도 없냐 아..... 허락하면 어쩌냐? 그래도……….‘
일순간에 그의 머리에 이와 같은 생각이 전광과 같이 지나갔다.
"조용히! 아까, 두 시에야 돌아오겠다고 하였으니깐 모르겠지요."
남작은 말했다.
이제야 엘리자베트는 아까 남작이 광고하듯이 지껄이던 소리를 해석하였다. 그리고, 두번째 거절을 해보았다.
"부인이 계시면서두…………?"
‘아차!‘
그는 또 속으로 고함을 안 칠 수가 없었다.


..약한 자의 슬픔 - P17

단조하고도 복잡한 엘리자베트의 생활은 여전히 연속하여 순환되고 있었다. 아침 깨어서는 학교에 가고 하학 후에는 아이들과 마주 놀고,자고---다만 전보다 변한 것은 평균 일 주 이 회의 남작의 방문을 받는 것이라.
대개는, 엘리자베트가 예기한 날 남작이 왔다. 남작이 오리라 생각한 날은, 엘리자베트는 열심으로 남작을 기다렸다. 그렇지만 그 방은 남작부인의 방과 그리 멀지 않은 고로 남작이 와도 그리 말은 사괴지 못하였다. 엘리자베트는 그것으로 남작이 와 있을 동안은 너무 갑갑하여 빨리 돌아가기 를 기다렸다.

...약한 자의 슬픔  - P21

‘남작이 고운가 미운가. 때릴까 안을까. 오랠까 쫓을까.
그는 한참이나 남작을 두고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탁 눈을 치뜨면서 주먹을 꼭 쥐었다. 이제야 겨우 그 원몸이 잡혔다.
"재판!"
그는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남작을 걸어서 재판하는 것은 엘리자베트에게는 큰 문제에 다름없었다. 


......약한 자의 슬픔  - P49

약함이 이 세상에 있을 동안 인류에게는 싸움이 안 그치고 죄악이 안 없어진다. 모든 죄악을 없이 하려면 먼저 약함을 없이하여야 하고, 지상 낙원을 세우려면 먼저 약함을 없이 하여야한다.
만일 약한 자는, 마지막에는 어찌 되노? ・・・・・・ 이 나! 여기 표본이 있다. 표본 생활 이십 년 그는 생각난 듯이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참 약했다. 일 하나라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어디있는가! 세상 사람이 이렇다 하니 나도 이렇다. 이 일을 하면 남들은 나를 어찌 볼까 이런 걱정으로 두룩거리면서 지냈으니 어찌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으리요! 하고 싶은 일은 자유로 해라. 힘써서 끝까지! 거기서 우리는 사랑을 발견하고 진리를 발견하리라!
‘그렇지만 강한 자가 되려면은・・・・・


....약한 자의 슬픔 - P85

그는 벌컥 성을 내어 내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뒤의 내 성도 그에게 지지를 않았다.
"여보! 시끄럽소. 노망했소? 당신은 당신이 죽겠다구 걱정하지만, 그래 당신만 사람이란 말이오? 이 방 사십여 인이 당신 하나 나가면 그만큼 자리가 넓어지는 건 생각지 않소? 아들 둘 다 총맞아 죽은 다음에 뒤상 하나 살아 있으면 무얼 해? 여보!"
나는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향하였다.
"여게 태형 언도를 공소한 사람이 있답니다."
나는 이상한 소리로 껄껄 웃었다.
다른 사람들도 영감을 용서치 않았다. 노망하였다. 바보로다.
제 몸만 생각한다. 내쫓아라 여러 가지의 펌이 일어났다.
영감은 대답이 없었다. 길게 쉬는 한숨만 우리의 귀에 들렸다.
우리들도 한참 비웃은 뒤에는 기진하여 잠잠하였다. 무겁고 괴로운 침묵만 흘렀다.
바깥은 어느덧 어두워졌다. 대동강 빛과 같은 하늘은 온 세상을 덮었다. 그 밑에서 더위와 목마름에 미칠 듯한 우리들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


...태형
- P131

나는 저절로 목이 늘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머리에는 어젯밤 그가 이 방에서 끌려 나갈 때의 꼴이 떠올랐다.
"칠십 줄에 든 늙은이가 태 맞구 살길 바라갔소? 난 아무캐 되든 노형들이나…………"
그는 이 말을 채 맺지 못하고 초연히 간수에게 끌려 나갔다. 그리고 그를 내쫓은 장본인은 이 나였다.
나의 머리는 더욱 숙여졌다. 멀거니 뜬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려하였다. 나는 그것을 막으려고 눈을 힘껏 감았다. 힘 있게 닫긴 눈은 떨렸다.

....태형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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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리는 보부아르 근처의 작은 수도원에서 머물렀다가 다음 날리브몽 수도원으로 갔다. 오귀스탱 신부는 그곳에 수도사 한 명을 잘알고 있었고, 그분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온 이유를 듣고 나자 신부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런! 딱하군요. 여기서는 당신들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 수도원장은 비열한 위선자여서 당신들이 누구인지 알면 당장 손발을 묶어 주교에게 보낼 것입니다. 내가 어쩔 수 없어 함께 생활하고 있는 수도사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타락 속에 빠져 있습니다. 여기서 반 리외쯤 되는 곳에 그들이 관리하는 수녀원이 있습니다만, 이곳은 그들의 방탕을 즐기기에 모자라 이 수도원에 속한 영지에 사는모든 농민들의 아내에게 초야권을 요구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 P95

시니 수도원 사람들은 리브 수도원 사람들보다 덜 문란했다. 그들은 기독교 교리를 설교하며 영주가 되기보다, 증여와 기부를 통해 서서히 재산을 늘리면서 성인으로 통하기를 바랐다. 그들의 식사는 거나했고, 그들의 방은 안락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복장은 어느 정도 엄격했고, 일반인들의 방문을 받는 장소에는 어떠한 세속적인 장식도 내걸지 않았다.
그들은 대놓고 초야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에 드는 유부녀와 처녀는 물론 그들의 관리를 받는 여신도와 은둔 수녀들을 상대로 능란하게 그 권리를 주장할 줄 알았다.
그들은 과부들과 힘없는 자들의 유산을 등쳐먹고, 늙은이들에게서 값비싼 증여를 뜯어내 그들 마음대로 사용하는 데에 탁월한 재간이있었다. 그들은 유언 속에 그들에 관한 언급을 잊은 망자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아서 상속자들이 그 소홀한 몫을 채워 주는 일도 허다하게 벌어졌다.
그들은 또한 돈 많은 독신자들을 성공적으로 그들의 수도원으로 끌어오고 이를 이용해서 상속을 받았다. 고해신부들은 무거운 죄의 고해를 위해 기독교를 위한 기금을 설립토록 했고, 이런 기금은 틀림없이 시니 수도원에 설치되기 마련이었다. - P100

오귀스탱 신부가 내게 말했다.
"귀족이 아닌 우리에게 인생은 단지 긴 고통의 연속일 뿐이지. 만약 우리가 가끔 행복을 만날 수 있다면, 서둘러 이 짧은 순간을 즐기도록 하세. 이 순간은 우리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 않고, 만약 영주들이 우리가 위로받을 수 있는 약간의 휴식을 맛본다는 의심을 품으면,
그들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지. 나를 짓누른 모든 고통을겪은 다음, 예상했던 것보다 나의 노후가 길어지고 있네.만약 너희가 항상 행복한 것을 본다면 나는 가장 달콤한 평화 속에서 죽을 수있을 걸세."
- P215

그런데 도량 넓은 샤를 되브쿠르는 자신의 두 영지에 영지 조세의 절반만 부과했다. 그는 피카르디 지방에서 거느린 백성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유일한 귀족이었다. 애석하다! 그가 추락한 것은 이 불행한 시대에는 선을 행하면 망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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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는 초야권(初夜權)을 누렸는데, 15세기 초까지 심지어 신부와사제, 그리고 주교도 마찬가지로 그 권리를 행사했다. 그들은 소녀들에 대한 권리를 가졌으며, 이를 이용해서 미혼모에게 벌금을 부과했다. 망나니권 (le droit de havée), 9 판매권, 측량권, 영지 매매권 등을행사해서 영지에서 거래되는 모든 것의 일부분을 그들이 취했다. 잔재권 (Le droit des Epaves) 으로 모든 유기 가축을 차지했고, 그들의 땅을지나는 통로와 강에 대한 통행세, 겨울에 불을 지피는 농민에게 부과하는 세금인 호별세 (le droit de fouage), 임의 몰수권, 사냥 및 어업세,
기타 잡세 및 인두세, 재미를 위한 농지 유린권을 행사했고, 무역을가로막는 외국인 재산 몰수권 및 파선권(破船權) 등을 가졌다. - P13

백성은 죽기 전에 사제의 재산을 늘려주려 하지 않으면 교회 축성지에 묻힐 수 없었다. 혼례를 치르지 않고, 사제에게 결혼 음식을 바치지 않으면 결혼할 수 없었다. 엄청난 특권을 가진 성직자는 십일조를 정확히 납부하지 않는 사람, 교구를 위해 유산을 남기지 않은 사람, 그리고 수도사가 자식을 출가시키라는 명령을 전할 때 따르지 않는 사람을 파문할 수 있는 권리도 행사했다.
가문의 장자가 아닌 사람들은 장자권(長子權) 때문에 어려움에 처했다. 성관(城館)은 종종 강도들의 소굴이었다. 루이 성왕 시대에,
행인을 더 이상 강탈하지 않고 위조화폐를 더 이상 발행하지 않기로했던 영주들은 모두 이전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토지 예속 농노들은 불행을 타고 태어난 초가집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법도, 치안도, 사법도, 풍습도 없어 프랑스에는 온통 강도짓과 미신, 광신,
특권 그리고 불행이 가득했다. - P14

평민들은 잔인한 형벌에 시달리는 데에 반해 특권을 가진 영주들과 성직자들은 이런 형벌과는 무관했다. 이들은 교회 규범에 정해진 처벌만 받고, 사제들에 의해서만 재판받았다.
이런 사실은 이 혐오스러운 시대의 실상을 잘 말해 준다. 재판받는 죄인은 이 세상에서는 화형에 처하고, 저세상에서는 영벌(罰)에처해졌다. 1397 년이 되어서야 이런 가혹한 일을 없애고, 죄수에게도 성례를 허락했다.
종교 축일에도 잔인한 풍습이 느껴진다. 성 요한 축일의 환희의 불은 40마리 정도의 고양이를 불태워 죽이지 않으면 꺼지지 않았다.
14세기 초에도 여전히 성직(聖職) 취득 헌납금(取得 獻納金)이 정착되고, 대사(50년 동안 성지순례로 로마의 성 베드로와 성 바울 성당을 15번 방문한 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가 제도화되었다. 이 세기가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사제의 동거를 진지하게 반대했다. 당시 여자들이 남자 수도원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고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 세기에 북쪽 지방에서 비밀재판이 전례 없이 많이 행해져, 생쥐와 벌레조차도 파문되었다. 이런 파문은 이후 세기 그리고 심지어 우리가 사는 세기(1820년)에도 반복되었다.
1314년 2월 2일 발루아 백작령 의회는 뿔질로 사람을 죽인 황소를 교수형에 처하는 재판관들의 판결을 확정했다. 1444년까지 여전히 광인(狂人) 축제 그리고 비슷한 수많은 광란의 축제가 열려 당나귀와 창녀들이 사제 제의를 입고 교회 안으로 들어와 찬양을 받았다. - P26

영주가 우리의 재판을 시작하려는 순간, 하인이 와서 이르기를 영주의 봉신으로서 그에게 복종하는 이웃 봉토의 후계자가 저택 대문에 와있으며, 주군인 그에게 예의를 갖추고자 한다고 알려왔다. 관례에 따라 그를 즉시 맞아들였다. 그리고 우리를 영주의 무장 사병들과 함께 안마당 구석에 서도록 하고, 저택의 모든 하인들도 불러모았다. 또한 부역에 가지 않은 모든 농노들을 동원했다. 영주로서는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예식을 치르는 것이 권위를 높이는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봉신으로서는 가능하다면 주군 혼자만 만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는데도 말이다.
모든 준비가 갖춰지자, 봉신이 입장했다. 그는 자기 영지에서 하던대로 붉고 흰 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같은 색의 모자를 쓰고 있어 오른쪽 절반은 흰색이고 왼쪽 절반은 붉은색이었다. 목에는 노루 뿔을 매단 새끼줄을 두르고 두 다리 사이에는 말 탄 듯 장대를 끼우고 있었다.
남자는 영주에게 다가가면서 양손으로 장대 두 끝을 잡고, 커다란호박을 머리에 인 채였는데, 호박은 만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의봉토 출신 여자 4명이 염소젖이 든 항아리를 갖고 그의 뒤를 따랐다. - P42

나는 이 행렬과 광경을 놀란 눈으로 보고 아버지와 형들에게 종종 이이야기를 꺼내었으며, 아직도 그 기억이 머릿속에 가득 남아 있다.
봉신은 영주 앞에 이르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떨어뜨리지 않고 머리에 이고 있던 호박을 장대 끝을 잡고 있던 손의 손가락으로 지탱할 수 있었다. 동시에 영주가 그에게 물었다.
봉신, 무엇을 바라는가?"
봉신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호박을 두 손으로 잡아 자기 앞에 놓고금으로 된 작은 십자가를 그 위에 놓으며 대답했다.
"전하, 전하의 어진 봉신이었던 제 부친의 별세로 비천하나마 소생이 전하의 봉신이 되고자 합니다. 여기 와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전하가 나의 주군 되심을 아뢰고, 내가 가진 모든 것과 갖게 될 모든 것은전하의 허락을 받아야만 나에게 속한다는 것을 고하며, 이 빛나는 황금 십자가와 하늘, 땅, 기품, 성(聖) 게오르기우스의 장검, 나의 생명 그리고 이 성스러운 채소의 이름으로 전하의 충직한 봉신이 될 것입니다. 또한 전하를 위하여 모든 정성과 거느린 사람들의 몸과 목숨그리고 재산을 사용할 것이며, 내게 할당된 전하의 따님 결혼 지참금을 지불할 것이며, 포로가 된 전하 아드님의 몸값을 갚는 데 기여할것이며, 필요할 경우 전하를 위한 인질이 될 것이며, 저에게 부과하는 과금과 세금 납부를 이행할 것을 맹세합니다. 상반된 생각을 갖는다면 나는 배반자요, 저속한 자이며 극형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함을 언명합니다."
영주가 크게 소리쳤다.
"배반자, 저속한 자, 극형!" - P43

그러자 모인 농노들도 큰 소리로 따라 했다.
"배반자, 저속한 자, 극형!"
이 말이 끝나자 봉신은 주먹으로 호박을 내리쳤고 호박이 깨지며그 속에서 자고새 1마리가 나왔다. 자고새는 날지 못하도록 날개 끝이 잘린 채였다. 영주가 양쪽에 거느리고 있던 개 2마리가 자고새에달려들었고, 그러는 사이 영주는 봉신의 장대를 낚아채고 역시 봉신에게 달려들었다.
잠시 후, 개 1마리가 자고새를 잡았으나, 영주는 봉신을 잡지 못하니 봉신이 멈추었다. 이제 영주도 멈춰 서서 개가 물고 있던 자고새를빼앗아 봉신에게 저녁 식사용으로 주었다. 만약 개가 먹이를 잡기 전에 영주가 봉신을 잡았다면, 자고새는 그의 몫이 되었을 것이다.
자고새를 받은 봉신은 영주에게 동전 3개를 바치고 물러났다. 그러자 영주는 처녀 4명이 가져온 항아리에 든 염소젖으로 얼굴과 손발을 씻었다.
비록 영주들에게는 신성한 것이지만 어리석은 이 의식, 법과 같은힘을 지닌 이 우습고 역겨운 관습을 눈으로 보고 있노라니 인간 정신의 보잘것없음에 한숨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인간이란 사방의 비천한 것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스스로 대단해진다고 생각하고, 그가 지배하는 모든 사람들을 비천하게 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비천해질 뿐이다.
봉신이 물러나자, 영주는 오른쪽에 재판관, 왼쪽에는 집행관을 거느리고 높은 자리에 앉았다. 그는 우리 모두를 자기 앞에 오도록 하고, 성전기사에게 그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자기 영지의 농노가 되는 데에 동의하는지 물었다. - P44

낯선 남자는 자신이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말할 수 없지만 로렌 지방에 있는 가족에게 간다고 대답하면서, 자신은 귀족 신분이기 때문에 자신을 종살이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영주가 되물었다.
"자네가 귀족이라는 것을 누가 내게 증명할 수 있을 텐가? 도대체언제부터 프랑스 귀족이 자신의 땅을 벗어나 홀몸으로 다니는가? 자네가 영주라면 거느리는 집행관과 무사, 사냥매와 개를 데리고 다닐것이다. 자네 가문의 기(旗) 나 기장(章)을 보여라."
"나의 모든 귀족 표시 가운데 남은 것은 내가 가진 장검뿐이오."
외삼촌의 주인이 대답했다.
"네 손에 가진 장검 하나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 농노가 되든지 아니면 네가 누군지 떳떳하게 신분을 밝혀라."
"내가 누군지 알 필요 없소.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을 것이오. 당신들이 감히 나를 붙잡을 수 있는지 두고 보시오!"
이 말과 함께 성전기사와 그의 좋은 손에 칼을 들고 밖으로 도망쳐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저택의 도개교가 올려지고, 그들뒤에 사나운 개 6마리와 무사들을 풀었다. 저항은 오래가지 않았다.
긴 미늘창으로 무장한 영주의 무사들은 두 남자의 장검을 상대했다.
장점은 미늘창을 휘두르는 사병들을 당할 재간이 없었다. 이런 싸움을 위해 훈련된 개들과 무사들은 힘을 모아 두 낯선 남자에게 여기저기상처를 입힌 다음 큰 어려움 없이 칼을 땅에 내려놓도록 만들었다.
무사들은 두 남자를 포승줄로 꽁꽁 묶어 재판대로 다시 데려갔다. - P45

"고문을 준비하도록, 이들을 반역자 취급해서 처단해야 해. 그러기전에,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야겠어."
영주가 말했다.
먼저 성전기사를 취조했다. 그는 불굴의 용기로 취조를 견디면서한마디도 실토하지 않았다.
영주의 하수인들은 그에게서 아무런 수확도 얻어내지 못해 실망한나머지, 불행한 내 외삼촌에게 같은 방법의 고문을 가했다. 외삼촌도이를 악물고 주인을 따라 했다. 하지만 초주검이 되어 힘이 바닥난 상태에서 파문당한 성전기사를 모시고 있다고 털어놓고 말았다.
"아! 맙소사!"
성전기사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숨을 거두었다.
"뭐라고! 성전기사였다고?"
영주가 말했다.
"그가 죽었다니 안타깝다. 저놈을 산 채로 프랑스 국왕 앞에 끌고 간다면, 왕의 환심을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저놈 시체를 소금에 절이도록. 궁정에 가져가도록 하지. 저 시체를 갖고도 챙길 몫이 있을것이다."
그러는 사이, 영주는 판결을 내려 나의 외삼촌은 파문당한 자를 모셨다는 죄로, 나의 어머니는 그를 집으로 맞아들였다는 죄로 교수대에 매달려 죽도록 했고, 이 날벼락 같은 명령은 당장 실행에 옮겨졌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와 우리 네 아들에게는 평생 발목에 쇠고랑을차고 다니며, 죽을 때까지 가장 고된 종살이를 하면서 고통 속에 죽어가도록 했다. - P46

앞에서 말했듯이 그 당시 나는 4살이었다. 사람들은 내 나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 아버지, 형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무거운 쇠고랑을 채웠고, 땅 파는 일을 시켰다.
3년의 세월이 끊임없는 고통과 땀 그리고 가난 속에서 지나갔다.
참으로 끔찍하게 죽음에 던져진 어머니를 밤낮으로 애도하던 나의 아버지는 헤어날 수 없는 절망 속에 빠졌다. 그나마 목숨을 부지했던 것은 우리를 지키려는 마음 때문이었으며, 자살하는 사람은 영원히 지옥 불에 떨어진다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했다.
마침내 어느 날, 우리가 쇠고랑을 차고 살도록 만든 영주는 가까운숲에 사냥놀이를 가고 그의 재판관은 십일조와 봉건세를 내지 못하는불쌍한 사람들에게 판결을 내려 처벌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와함께 무척 힘든 부역을 하는 중이었는데, 맏형인 가스파르가 우리를불렀다. 그에게 다가가니 더위와 피곤으로 기진맥진한 아버지는 흙먼지 위에 몸을 뻗어 누운 채였다. 형 가스파르는 그때 14살이었고총명한 소년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도망을 가자고 제안했다.
"저런! 얘들아, 우리가 어디로 간단 말이냐?"
아버지가 말을 가로챘다.
"어딜 가나 여기서와 같은 취급을 당할 거야. 세상 사람들은 온통주인과 종이야. 힘 약한 사람은 힘센 사람의 노예가 되기 마련이란다. 하느님도 그것을 원하신단다. 사제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말이다." - P47

폭군들이 멀어지자, 우리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나는 더 이상 몸을가눌 수 없었고, 아버지는 나를 등에 업었다. 여전히 걸어야만 했기때문이다. 통행세를 내면서 강을 건너고, 배를 타고 길을 걷고, 다리를 건넜다. 다음 날 저녁이 되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가진 돈이 없는상태였다. 하루하고 반나절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통행세를 11번이나바쳤다.
우리가 떠나온 영지에서 약 7~8리의 정도 떨어져 있는 외브쿠르(Heubecourt) 4 땅에 도착한 때였다. 우리는 입구를 통과하기 위해 우리의 폭군 영주의 기장을 보여 주어야 했는데, 그 문장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는 문장을 증거로 내밀며 교회 일을 위해 왔다는 핑계를 댔지만 소용없었다. 돈을 내야만 했다. 우리에게 더 이상 가진 돈이 없었기 때문에, 문을 지키던 사람들은 우리를 외브쿠르 영주의 농노라고 선언했다. 세금을 내지 않고 영지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과 물건의 소유권을 영주에게 허락하는 외지인 소유재산 몰수권을 내세운 것이다. - P50

내 아버지와 형들이 영주의 번영과 오귀스탱 신부의 행복을 환호하며 벌어 주는 것을 보니 돈 많은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행복해질수 있고 원하기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조그만 선행을 베풀기만 해도 사방에서 좋아하기 때문이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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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똑같이 얼굴을 찌푸리느라 입을 오므리는 발다사르를 보면서 알렉시스  자신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삼촌을 만나러 오면서 예상한 것, 그가 보고 싶었던 것은 바로 죽음을 앞두고 저속한 삶의 현실에서 영원히 떨어져 나온 사람이 영웅적 의지를 발휘해서 지어 보이는 미소, 슬프고도 다정한,
천상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초연한 미소였다. 하지만 이제 알렉시는 만일 장 갈레아스가 다시 놀린다면 삼촌이 예전처럼 화를 낼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고, 죽음을 앞두고도 저렇게 쾌활하고 여전히 극장에 가고 싶어 한다고 해서 무언가를 감추고 있거나 특별히 용기를 낸 것은 아님을, 저렇게 죽음 가까이 다가가도 삼촌은 오직 삶만을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알렉시는 자기에게도 언젠가 죽음이 닥치리라는 생각을 했고, 삼촌의 늙은 정원사와 삼촌의 사촌누이 알레리우브르 공작 부인은, 그나마 삼촌에 비해 살날이 많이 남은 자신과 달리, 설령 삼촌보다 오래 산다 한들 어차피 죽음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도 했다. 

--------‐실바니아 자작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중에서 - P20

그런데도 늙은 정원사 로코는 심지어 은퇴 생활을 누릴 수 있을 만큼 많은 돈을 모아 두고도 더 벌기 위해 여전히 일했고, 장미를 잘 키워서 상을 받으려고 애썼다. 공작 부인 역시 일흔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성껏 머리 염색을 했고, 여전히 젊고 건재한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기 집에서 열리는 연회들의 우아함을,
그 자리에 준비된 식탁과 스스로의 재치가 지닌 더없는 섬세함을 칭송하는 신문 기사들이 나오도록 돈을 썼다.
하지만 두 사람의 예를 떠올려 본 뒤에도 삼촌의 태도로 인한 놀라움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유사한 다른 두려움이 생겨나서 점차 커지더니, 마침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알렉시스  자신도 예외일 수 없을 하나의 진실로 이어졌다. 알렉시는를  아연실색하게 한 것은 바로, 누구나 얼굴은 여전히 삶을 향한 채 뒷걸음질로 죽음에 다가간다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실바니아 자작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중에서 - P21

이미 밤이 되었고, 그녀는 눈물 없는 몽롱한 눈으로 여전히 그의 방에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열정에 매료된 슬픔 속에서 그의 손에 키스를 한 뒤 말없이 방을 나섰다.
그는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어쩌다 살짝 잠이 들었다가도 이내 감미로운 제물이 절망적인 애원의 눈길로 올려다보는 듯한 느낌에 소스라치며 깨어났다. 그 순간 갑자기 자기와 똑같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외로워하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옷을 입고 조용히 그녀의 방까지 갔지만, 혹시라도 이더 잠든 사람을 깨울지 모른다는 걱정에 소리를 낼 수 없었고,
그렇다고 하늘과 땅과 스스로의 영혼에 짓눌리게 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매 순간 그는 이제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고,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 버리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렇게 계속 그 방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방 안에서 지금 그에게까지 들려오는 저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는 여인의 감미로운 망각을 깨뜨리게 되리라는, 잠시나마 누리는 휴식으로부터 여인을 끌어내서 잔인하게도 다시 회한과 절망 속으로 밀어 넣게 되리라는 생각에 겁이 난 그는 바닥에 앉았다가 무릎을 꿇었다가 누웠다가 하면서 문 앞을 지켰다. 아침이 밝았을때, 그는 추위에 떨리는 몸과 평온해진 마음으로 자기 방에 돌아갔고, 오랫동안 잠을 잔 뒤 충만한 행복 속에서 깨어났다.
그들은 상대가 양심의 가책을 피할 수 있도록 서로 안심시키고자 애썼다. 점차 익숙해지면서 회한이 줄어들고, 역시점차 익숙해지면서 쾌락도 덜 강렬해졌으므로, 발다사르가 실바니아로 돌아왔을 때쯤에는 불꽃처럼 타올랐던 잔인한 순간들은 그에게도 그녀에게도 그저 감미로운, 조금 차가운 추억으로 남았다.

‐--------실바니아 자작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중에서 - P25

그리고 그 이튿날 아침에 열이 내린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을 때, 발다사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리며 한참 동안 울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서서히 다가오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아 했었는데, 이렇듯 예고 없이 죽음과 마주해 버린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 가려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 그는 겁에 질려 애원했고, 결국 죽음의 뜻을 꺾었다.

---------실바니아 자작 발다사르 실방드의 죽음 - P33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에 기대지말고, 그런 갈대를 믿지 말라. 육신은 한 포기 풀과 같아서, 그 영화는 들에 피어난 꽃처럼 때가 되면 사라지니."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비올랑트 혹은 사교계의 삶 중에서 - P49

하지만 자기보다 못한 수많은 다른 여인들에게 마음을 주던 남자로부터 외면당하면서 상처입은 자존심은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비올랑트는 다른 여자들을 이기고자 그 여자들의 매력을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비올랑트 혹은 사교계의 삶 - P53

- 나 떠날 거야, 오귀스탱, 오스트리아 궁정 근처로 갈래.
-오, 그건 안 됩니다. 아가씨가 그 고약한 사람들한테 가 계시면 이곳의 가련한 이들은 어디서 위로받나요? 누가 숲속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놀아 주나요? 성당 오르간은 누가 치고요? 들에 나가서 그림을 그리시는 모습도 더 이상 볼 수 없을 테고, 이제 우리를 위해서 노래를 지어 주지도 못하겠죠.
- 걱정하지 마, 오귀스탱, 그동안 이곳 스티리아의 성과 농부들이 아름답고 충성스럽게 살아가도록 오귀스탱이 지켜줘. 나에게 사교계는 한 가지 방편일 뿐이야. 그곳에 가서, 속될지언정 그 무엇에든 맞설 수 있는 강한 무기를 얻을 거야.
언제고 사랑받으려면 그 무기를 손에 넣어야 하니까. 물론 호기심이 날 떠밀기도 하고, 이곳에서처럼 늘 명상하는 삶보다 좀 더 물질적인 삶을 살아 보고도 싶어. 내가 원하는 건 휴식이자 배움이야. 원하는 것을 다 배우고 나면, 휴식이 끝나면,
곧바로 궁정 사교계를 떠나서 돌아올게. 시골로, 순박한 농부들에게로, 그리고 내가 그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 그러니까 나의 노래로 돌아올 거야. 그리 멀지 않은 그때가 오면 내리막길 도중에라도 멈춰 서서 우리의 스티리아로, 오귀스탱 곁으로돌아올게.
· 정말 그러실 수 있을까요?
· 하려고만 하면 뭐든 할 수 있어.
- 하지만 그때 아가씨는 지금과 똑같은 것을 바라지 않을 겁니다.
- 어째서?
-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까요.

------비올랑트 혹은 사교계의 삶 - P51

비올랑트는 이제 선량함을 우아하기 때문에 좋아했다. 여전히 돈을 쓰고 가슴 아파하고 시간을 내서 자선을 베풀었지만 마음을 전부 내주지는 않았고, 따로 떼어 내어 준 마음 한 부분은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비올랑트 혹은 사교계의 삶 - P59

여전히 아침이면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고 몽상에 젖었지만 그것은 스스로를 밖으로부터 관조함으로써 깊어지지 않고 사물의 외관에 머무는, 마치 거울 앞에서처럼 관능적으로 교태를 부리며 자기 모습에 경탄하는 그런 망가진 정신으로 행한 일이었다. 그럴 때 손님이 찾아온다면 몽상과 독서를 방해받더라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마침내 자연마저도 타락한 감각으로 음미하기에 이르렀고, 이제 계절의 매력은 그녀의 우아함에 향기를 더하고 색조를 부여하기 위해서 존재할 뿐이었다. 겨울이 매력적인 이유는 추위를 맛보는 기쁨 때문이었고, 사냥의즐거움을 누리느라 가을의 슬픔을 더 이상 느끼지 못했다. 때때로 혼자서 숲속을 거닐며 진정한 기쁨의 자연적 근원을 되찾고자 했지만,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를 거닐 때조차 그녀는눈부시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걸치고 있었다. 우아하게 차려입는 즐거움이 홀로 있는, 몽상에 젖는 기쁨을 오염시킨 것이다.
- 내일 떠나면 어떻겠소?
공작이 물었다.
- 모레 떠나요.
비올랑트가 대답했다.
언제부턴가 공작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슬퍼하는 오귀스탱에게 비올랑트가 말했다. "조금 더 늙으면 갈게" 오귀스탱이 답했다. "아! 정말로 그곳 사람들에게 젊음을 바치려고 하시는군요. 아가씨는 절대 스티리아로 돌아오지 못하실 겁니다." 비올랑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젊을 적에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지니고 있던 우아함의 절대적 지위를 누리고자 사교계에 머물렀고, 늙어서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고 지켜내고자 사교계에 머물렀다. 전부 헛일이었다. 


-----비올랑트 혹은 사교계의 삶 - P60

그녀는 결국 그 지위를 잃었고, 죽는 순간까지도 되찾기 위해서 애썼다.
오귀스탱은 비올랑트가 사교계 생활에 염증을 느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한 가지 힘이 있었다. 처음엔 허영심이 그 힘을 키워 냈지만, 그 다음에는 바로 그 힘이 그녀의 염증, 경멸, 심지어 권태마저 무너트렸다. 그 힘이란 바로 습관이었다.


--------비올랑트 혹은 사교계의 삶 - P61

그는 천식이 심해져서 숨을 쉴 수 없었고, 가슴 전체를 고통스럽게 쥐어짜며 호흡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생명을 가리는 장막이, 우리 안의 죽음이 비켜나고 있음을 느꼈고, 숨을 쉰다는 것, 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오노레는 이어, 프랑수아즈가 연인을 잃은 슬픔에서 치유될 시점으로 옮겨 갔다. 그때는 누가 될 것인가? 장차 일어날 일이 분명하지 않다는, 하지만 필연적으로 일어나리라는 사실은 그를 미칠 듯한 질투로 몰아넣었다. 살아 있다면 그녀를 막을 수 있을 테지만, 살 수 없으니,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녀야 수녀원으로 들어간다고 말하겠지만, 그가 죽은 뒤에는 마음을 바꾸지 않겠는가. 안 된다! 두 번 속고 싶지 않았다.
꼭 알고 싶었다. 누구일까? - 구브르일까? 알레리우브르?
뷔브르? 브레브? 오노레는 모두를 떠올렸고, 그 순간 이를 악물면서, 자신의 얼굴을 분노로 일그러뜨리는 격렬한 저항을느꼈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니다. 그래선 안 된다. 그저 쾌락만을 위한 상대는 안 된다.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여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왜 쾌락만을 위한 상대는 용납하지 못할까? 아니,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한단 말인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아니다. 그렇지않다. 누군가 그녀의 감각을 흥분시키고, 내가 주던 것보다 더많은 쾌락을 주는 일이, 그녀에게 쾌락을 준다는 상황 자체가 무조건 싫어서다. 내가 원하는 바는 누구라도 그녀에게 행복을 사랑을 주어야지 쾌락은 아니다. 누구라도 그녀에게서 쾌락을 얻고, 그녀 또한 쾌락을 얻는다면, 나는 질투를 참을 수 없다.

--------질투의 끝 - P108

그 순간 시선을 든 오노레는 자기 침대 곁에 서서 기도하는 하인들, 의사, 그리고 친척 노부인 둘을 보았고, 그들 가운데 프랑수아즈도 있었다. 오노레는 비로소 깨달았다. 

--------질투의 끝 - P114

이기심과 권능을 버린 순수한 사랑, 스스로 너무도 온화하고 광대하고 신성하기를 바라던 그 사랑으로, 그는 프랑수아즈와 똑같이 늙은 친척들과 하인들과 의사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랑은 자신과 비슷한 영혼을 지닌 그렇게 하나로 이어진 모든 인간들을 향했다. 하지만 프랑수아즈에게만큼은 그사랑을 이미 주었으므로 더 이상 내어 줄 수 없었다. 마음이 아프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만을 향한 사랑, 그녀를 다른사람과 다르게 좋아한다는 생각까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프랑수아즈는 침대 발치에 서서 눈물 흘리며 연인과 함께사용하던 말들을 속삭였다. "나의 고향, 나의 형제." 오노레는그렇지 않다고 깨우쳐 줄 의지도 힘도 없었기에, 자신의 "고향은 그녀 안에 있지 않다고, 하늘과 온 땅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미소 지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나의 형제들"이라고 되풀이했고, 자기 눈동자가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프랑수아즈에게 향하는 까닭은 오로지 그녀의 뺨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에, 머지않아 닫히게 될 이미 더 이상 울지 않는 그녀의 눈에 연민이 일었기 때문이라고 되뇌었다. 그는 의사보다 늙은 친척들보다, 하인들보다 프랑수아즈를 더 많이 사랑하거나 다르게 사랑하지 않았다. 그렇게 질투가 끝났다.


--------질투의 끝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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