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nana35님의 서재 (nana35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좋은 책을 찾아서</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5 Apr 2026 12:39:33 +0900</lastBuildDate><image><title>nana35</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32108153243927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nana35</description></image><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저녁</category><title>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 일란 파페 -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 유대인 역사학자의 통렬한 이스라엘 비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233543</link><pubDate>Thu, 23 Apr 2026 07: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2335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352533623&TPaperId=172335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99/62/coveroff/e35253362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352533623&TPaperId=172335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 유대인 역사학자의 통렬한 이스라엘 비판서</a><br/>일란 파페 지음, 백선 옮김, 이희수 감수 / 틈새책방 / 2024년 07월<br/></td></tr></table><br/>서문<br>모든 분쟁의 중심에는 역사가 있다. 과거를 편견 없이 진실되게 이해하면 평화의 가능성과 마주하지만, 반대로 역사를 왜곡하거나 조작하면 재앙이 싹틀 뿐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허위 사실이 켜켜이 쌓인 탓에 우리는 그 갈등의 기원을 직시하기가 어렵다. 한편, 관련 사실이 지속적으로 조작되면 계속되는 유혈 사태와 폭력으로 다친 모든 피해자들에게 불리해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분쟁의 땅이 어떻게 이스라엘 국가가 됐는지에 대한 시온주의적 역사 서술은 일련의 신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신화들은 분쟁의 땅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도덕적 권리를 미묘하게 의심하게 만든다. 서방의 주류 미디어와 정치 엘리트들은 종종 이들 신화를 주어진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지난 60여 년 동안 이스라엘이 보여 준 행위를 정당화한다. 대개 암묵적으로 수용된 이러한 신화들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건국 이래 계속되는 갈등에 서방 정부가 의미 있는 개입을 꺼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19)<br>PART I. 잘못된 신화: 과거1. 팔레스타인은 빈 땅이었다<br>오스만제국 시대에 팔레스타인은 전체적으로 지중해 동쪽의 다른 나라들과 다르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둘러싸여 고립돼 있기보다는, 광범위한 오스만 제국의 일부로서 다른 문화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 둘째로, 변화와 근대화에 열려 있던 팔레스타인은 시온주의 운동이 도래하기 훨씬 이전에 국가로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자히르 알 우마르Daher al-Umar, 1690~1775 같은 강력한 지역 지도자의 지배 아래 하이파Haifa, 셰파므르Shefamr, 티베리아스Tiberias, 아크레Acre 등의 도시가 새로이 보수되고 활력을 되찾았다. 항구와 마을로 이어지는 해안 지역 네트워크는 유럽과 무역으로 연결되어 번성했으며, 내륙 평원은 인근 지역과 무역을 했다. 사막과는 정반대로, 팔레스타인은 번창한 빌라드 알샴Bilad al-Sham(북쪽 땅), 즉 당시 레반트Levant 지역이었다. 동시에 풍요로운 농업, 작은 마을들과 역사적인 도시들 덕분에 시온주의 도래할 즈음에는 인구가 50만 명에 달했다. 26)<br>중동 및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사회에도 19~20세기에 강력하게 정립된 ‘국가’라는 개념이 유입됐다. 중동에 민족주의 사상이 유입된 데에는 어느 정도 미국 선교사들의 역할이 있었다. 그들은 19세기 초, ‘선교’와 함께 ‘자결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전파하려는 열망을 갖고 이 지역에 발을 디뎠다. 당연하게도 주로 기독교도와 소수 집단들은 점유 영토shared territory, 언어, 역사,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세속적인 국가 정체성 개념을 반색하며 수용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민족주의에 동참한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교도 엘리트들 사이에서 열성적인 협력자를 찾았고, 그 결과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팔레스타인 전역에 이슬람교-기독교 단체가 급격히 증가했다. 아랍 세계에서 유대인들은 이렇게 서로 종교가 다른 활동가들 간의 동맹에 합류했다. 시온주의가 현지 유대인 공동체에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하지 않았다면 팔레스타인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27)<br>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는 없었지만 팔레스타인의 문화적 위치는 매우 분명했다. 하나라는 소속감이 있었다. 20세기 초에 창간된 신문인 〈필라스틴Filastin〉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지역을 부르는 이름에서 따왔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자기만의 방언을 사용했고, 자기만의 관습과 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세계 지도에는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에 거주한다고 표기했다. 그리하여 1918년까지 팔레스타인은 오스만 제국 시대보다 더 통합돼 있었지만, 그 후 더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23년 팔레스타인의 지위에 대한 최종적인 국제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영국 정부는 이 땅의 국경을 다시 협상했다. 그 결과 민족 운동이 투쟁할 수 있는 지리적 공간이 더욱 명확히 정의됐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더욱 분명한 소속감을 느끼게 됐다. 이제 팔레스타인이 무엇인지는 명확했다. 누구에게 속하는지가 분명하지 않았을 뿐이다. 팔레스타인 원주민인가, 아니면 새로운 유대 정착민인가? 28-9)<br>2. 유대 민족에게는 땅이 없었다<br>16세기 이후 종교 개혁에 따른 신학적·종교적 격변이 일어나면서, 특히 개신교도들 사이에서 천년 왕국의 끝과 유대인의 개종 및 이들의 팔레스타인으로의 귀환 사이에 명확한 연관성이 만들어졌다. 《만들어진 유대인》의 저자 슐로모 산드Shlomo Sand는 근대사의 특정한 시점에 기독교 세계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유대인은 언젠가 성지로 돌아가야 하는 ‘민족’이라는 생각을 지지했음을 보여 준다. 시온주의를 형성하는 사상과 이보다 더 오래 지속된 반유대주의 사이에는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 이렇듯 겉보기에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믿음이 실제 식민지화 프로그램과 강탈 계획으로 전환될 징조가 1820년대 초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이미 나타났다. 팔레스타인을 점령하여 기독교 사회로 편입시키려는 전략적 계획에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귀환을 그 핵심에 두는 강력한 신학적, 제국주의적 운동이 등장한 것이다. 19세기에 이러한 정서는 영국에서 더욱 퍼졌고 제국의 공식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30-1)<br>시온주의 사상은 1860년대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싹텄고, 계몽주의와 1848년의 ‘국민 국가들의 봄’, 이후에는 사회주의에서 영감을 받았다. 1870년대 말과 1880년대 초 러시아에서 특히 악랄했던 유대인 박해 물결과 서유럽의 반유대 민족주의의 부상에 대응한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의 비전을 통해 시온주의는 지적, 문화적 활동에서 정치적인 프로젝트로 변화했다.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귀환을 이용해 ‘성지聖地’에 더 깊이 관여하고자 했던 영국의 전략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충동은 시온주의의 새로운 문화적, 지적 비전과 일치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팔레스타인의 식민지화는 귀환과 구원의 행위로 여겨졌다. 이 두 충동이 일치했기에 반유대주의와 천년 왕국 사상 간에 강력한 동맹이 만들어졌고,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희생시켜 유대인을 유럽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시키는 실제 정착 프로젝트가 이행됐다. 1917년 11월 2일 밸푸어 선언이 선포되면서 이 동맹은 대중에게 알려졌다. 35-7)<br>수많은 민족 운동이 시작될 때 그랬듯이, 사람들은 스스로를 창조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창세기〉의 서술이 대량 학살, 종족 청소, 억압과 같은 정치적 계획으로 이어진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특히 19세기 시온주의의 주장에서 중요한 점은 그 주장의 역사적 정확성이 아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유대인이 로마 시대에 살았던 유대인의 진짜 후손인지 아닌지도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점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전 세계의 모든 유대인을 대표하고, 그들을 위해 모든 일을 하며, 그들을 대신한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명확한 연관성이 다른 유대인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미국에서도 도전을 받고 있다. 시온주의는 원래 유대인들 사이에서 소수 의견이었다.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속한 국민이고 따라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이들은 영국 관리들과 군사력에 의존해야 했다. 유대인과 세계 대부분은 유대인이 땅 없는 민족이라고 확신하지 않았던 것 같다. 38-9)<br>3. 시온주의와 유대교는 같다<br>유대인의 삶에서 《성경》의 역할은 유대주의와 시온주의 사이의 또 다른 분명한 차이점을 드러낸다. 시온주의 이전 유대 세계에서는 《성경》을 정치적이거나 민족적이기까지 한 의미를 담은 단일 텍스트로 가르치지 않았다. 유럽이나 아랍 세계의 다양한 유대 교육 기관 어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요 랍비들은 《성경》에 담긴 정치사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유대인의 주권 사상을 영적 학습에서 아주 사소한 주제로 취급했다.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전통적인 《성경》 해석에 근본적으로 도전했다. 예컨대, ‘시온의 연인들’은 《성경》을 팔레스타인 땅에서 태어나 가나안Canaanite 정권의 지배하에서 고통받은 유대인 국가의 이야기로 읽었다. 이들은 나중에 가나안에 의해 이집트(애굽)로 추방됐다가 다시 돌아와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그 땅을 해방시켰다. 그러나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을 국가와 조국보다는 유일신을 발견한 집단으로 본다. 46)<br>근래에 이 서사에 학문적이고 세속적인 주요 증거를 제공한 것은 소위 성서고고학이다(이는 그 자체가 모순적인 개념인데, 《성경》은 다양한 시기에 여러 민족이 쓴 위대한 문학 작품이지 역사서라고는 보기 어렵다). 이 서사에 따르면, 서기 70년 이후 시온주의자들이 돌아올 때까지 그 땅은 거의 비어 있었다. 그러나 주요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성경》의 권위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미 거주자가 있는 팔레스타인을 식민지화하려면 정착, 강탈, 심지어 종족 청소까지 체계적인 정책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 팔레스타인 강탈을 신성한 기독교 계획의 이행으로 묘사했고, 이는 시온주의를 뒷받침하는 전 세계 기독교인의 지지를 모으는 데 귀중한 수단이 됐다. 식민지 원주민들이 빠르게 알아차렸듯이, 정착민들이 들고 온 것이 《성경》이건, 마르크스의 저서이건, 유럽 계몽주의 소책자이건 관계없이 궁극적으로 그들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었다. 48)<br>시온주의 운동이 요구한 공간은 박해받는 유대인을 구출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결정됐다기보다, 가급적 소수의 주민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최대한 많이 차지하겠다는 의지로 정해졌다. 신중하고 세속적인 유대인 학자들은 ‘과학적’이고자 노력하면서, 고대의 흐릿한 약속을 현재의 사실로 바꾸었다. 이 작업은 팔레스타인 위임 통치 지역 유대인 공동체의 주요 역사학자인 벤지온 디나부르크(디누르)Ben-Zion Dinaburg(Dinur)에 의해 이미 시작됐고, 1948년 건국 후 집중적으로 계속됐다. 18세기 팔레스타인에 살던 유대인들이 19세기 말 정통 유대인들처럼 유대 국가 개념을 거부했다는 역사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와서 이 사실은 외면됐다. 역사적으로는 《성경》과 유럽 유대인들에게 일어난 일, 1948년 전쟁을 하나로 묶어 가르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념적으로는 이 세 가지 항목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오늘날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정당화하는 요소로 주입된다. 53-5)<br>4. 시온주의는 식민주의가 아니다<br>정착 식민주의를 연구하는 주요 학자 중 하나인 패트릭 울프Patrick Wolfe는 ‘제거 논리’가 정착 식민주의 프로젝트를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정착민들이 원주민을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도덕적 정당성과 실질적 수단을 개발했다는 뜻이다. 나는 여기에 또다른 논리가 침투해 있었다고 덧붙이고 싶다. 바로 인간성 말살의 논리다. 유럽에서는 박해의 희생자였던 유대인들로서는, 자신들이 당한 것과 동일하거나 그보다 더 악랄한 일들을 자행하기 전에 먼저 원주민 국가나 사회의 인간성을 박탈해야 했다. 누군가가 팔레스타인이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었고, 땅 없는 이스라엘 민족을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논거 자체를 빼앗기게 된다. 팔레스타인인이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 하는 모든 노력은 정당한 소유자에 대한 근거 없는 폭력 행위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시온주의를 식민주의로 논의하는 일과, 팔레스타인인을 식민지 원주민으로 논의하는 문제를 분리하기는 어렵다. 56-7)<br>19세기 말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에 도착했을 때 팔레스타인 공동체 내에서는 여전히 두 가지 욕구가 존재하고 있었다. 많은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아랍연합공화국United Arab Republic을 꿈꾸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대시리아Greater Syria 개념에 매료되어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국가에 팔레스타인을 편입시키고자 했다. 범아랍주의자이건, 자기 지역만을 사랑하는 애국자이건, 대시리아의 일부가 되기를 바라건, 유대 국가에 포함되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은 모든 팔레스타인인이 똑같았다.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정착민 공동체에 자그마한 영토 일부라도 넘겨주는 정치적 해결책에 반대했다. 1920년대 말 영국과의 협상에서 그들이 분명히 선언했듯이, 이미 도착한 정착민들과는 기꺼이 공유하겠지만 그 이상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집단적 목소리는 1919년부터 10년간 매년 개최된 팔레스타인민족회의Palestinian National Conference 집행부에서 구체화됐다. 58-9)<br>1928년,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나중에 만들어질 정부에서 유대 정착민이 팔레스타인인과 동등한 대표권을 갖도록 하는 데 동의했다. 시온주의 지도부는 팔레스타인인이 거부할 것으로 판단하고는 이를 지지했지만, 사실 공동 대표권은 시온주의가 추구하는 지향점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인이 동등한 대표권 제안을 수락하자, 시온주의자들은 이를 거부했다. 이는 1929년 폭동으로 이어졌다. 헤브론에서 유대인 학살이 일어나고, 팔레스타인 공동체에서는 훨씬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여기에 유대민족기금이 부재지주와 지역 유지의 토지를 매입하면서 팔레스타인 소작인들에게서 땅을 몰수하자 소작인들은 도시 빈민가로 쫓겨났다. 그런 빈민가 중 하나인 하이파 북동쪽에서 1930년대 초에 망명한 시리아 종교 지도자 이즈 앗딘 알카삼Izz ad-Din al-Qassam이 이슬람 성전聖戰 추종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후 하마스가 그의 이름을 딴 무장 조직으로 유산을 계승했다. 59-60)<br>5. 1948년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고향을 떠났다<br>1948년 전쟁에 대한 잘못된 가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자발적으로 떠났다는 생각만이 아니다. 그해에 일어난 사건들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는 세 가지 가설이 더 있다. 첫 번째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1947년 11월 유엔이 결의한 분리안을 거부했기 때문에 본인들에게 일어난 일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시온주의 운동의 식민주의적 성격을 무시하는 주장이다. 분명한 것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종족 청소가, 팔레스타인인과 아무런 협의없이 만들어진 유엔의 평화안을 거부한 데 대한 ‘처벌’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이다. 1948년에 관한 가설은 두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아랍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이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이 평화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팔레스타인인과 아랍 세계가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전자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은 전혀 군사력이 없었으며, 아랍 국가들도 상대적으로 적은 군대만 파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67-8)<br>이스라엘 국가가 분쟁 이후에 평화의 손길을 내밀었다는 세 번째 신화는 어떨까. 자료가 보여 주는 사실은 정반대다. 사실 이스라엘 지도부는 영국 위임 통치 이후 팔레스타인의 미래에 관한 협상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거나, 추방됐거나 도망쳤던 사람들의 귀환을 검토하지 않는 등 비협조적이었다. 아랍 정부와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비교적 합리적인 유엔의 새 평화 계획에 기꺼이 참여하려고 했던 반면, 이스라엘 지도부는 1948년 9월 유엔이 파견한 평화 중재자 베르나도테Bernadotte 백작을 유대인 테러리스트들이 암살했을 때 모른 척했다. 이스라엘 지도부는 또한 베르나도테 백작을 대신하여 협상을 시작한&nbsp; 유엔 팔레스타인조정기구PCC가 채택한 새로운 평화안도 모두 거부했다. 역사가 아비 쉬라임Avi Shlaim이 《철의 장벽The Iron Wall》에서 보여 주었듯이, 팔레스타인인들이 기회만 있으면 평화를 거부했다는 신화와는 반대로, 지속적으로 평화 제안을 거부한 쪽은 이스라엘이었다. 68)<br>정치적 함의는 이렇다.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발생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잘못이며, 이스라엘에게 책임이 있다. 법적 함의는 이러하다. 비인간적인 범죄에 비록 법적 소멸 시효가 있다고 해도, 그토록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여전히 아무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은 범죄라는 점이다. 도덕적 함의는 유대 국가가 죄악에서 탄생했고(물론 많은 국가가 그렇다), 그 죄, 범죄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 나쁜 점은 이스라엘의 특정 집단이 이를 인정했지만, 동시에 과거를 돌이켜 볼 때나 미래의 팔레스타인인 정책을 펼칠 때는 자신들의 범죄를 완전히 정당화한다는 사실이다. 그 범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저질러지고 있다. 이스라엘 정치 엘리트들은 이 모든 의미를 완전히 무시했다. 대신 1948년 사건에서 매우 다른 교훈을 얻었다. 국가가 인구의 절반을 추방하고, 마을을 파괴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한 교훈으로 인해 1948년 직후와 그 이후에도 다른 수단을 통한 종족 청소가 계속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74)<br>6. 1967년 6월 전쟁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전쟁이었다<br>1967년 전쟁을 재평가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1948년 전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스라엘의 정치, 군사 엘리트들은 1948년 전쟁을 날려버린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 전쟁은 이스라엘이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역사적 팔레스타인’ 전체를 차지할 수 있었고, 그래야 했던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 단 하나의 이유는 이웃 요르단과의 합의 때문이었다. 둘의 결탁은 영국의 위임 통치 기간이 끝나갈 무렵에 이뤄졌고, 합의에 따라 요르단군은 1948년 전쟁에서 아랍 전체 군사 작전에 제한적으로만 참여했다. 그 대가로 요르단은 팔레스타인의 일부 지역을 합병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 서안이 되는 지역이었다. 다비드 벤구리온은 요르단이 서안을 차지하도록 한 결정을 ‘베키야 레도로트bechiya ledorot’라고 불렀다.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미래 세대가 한탄할 결정’이라는 뜻이다. 보다 은유적으로 번역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실수’라고 할 수 있겠다. 78)<br>한쪽 팔레스타인 집단(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소수 민족)을 통치하던 군정 통치 기구가 다른 팔레스타인 집단(서안과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인)을 통치하러 옮겨갈 기회가 1967년에 찾아 왔다. 1966년 말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격이 임박했다고 굳게 믿고 있던 소련이 나세르에게 벼랑 끝 전술을 부추겼을 때였다. 그러나 전쟁에 돌입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당시 이스라엘 지도부 내부에 전쟁 도발을 막을 힘이 없었다는 점이다. 내부에서 어떤 형태로든 마찰이 있었으면 강경파의 갈등 유발을 지연시켜, 국제 사회가 평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이 주도하는 외교적 노력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던 1967년 6월 5일, 이스라엘이 이웃 아랍 국가 모두를 공격했다. 이스라엘 내각은 평화 중재자들에게 시간을 줄 생각이 없었다.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6월 11일까지 이스라엘은 골란 고원, 서안, 가자 지구, 시나이반도를 모두 장악하고 작은 제국이 됐다. 82-4)<br>이 역사적 분기점이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종전 직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42가 요구한 1967년에 점령한 모든 영토에서 철수하라는 강력한 국제적 압력에 이스라엘 정부가 어떻게 저항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고대 성서 유적지가 있는 서안의 점령이, 특히 1948년 이전에도 시온주의의 목표였으며, 이제야 전체적으로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논리에 들어맞는다고 말하고 싶다. 이 논리는 가능한 한 적은 수의 팔레스타인인만 남기고 가능한 한 많은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하려는 바람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들이 내린 첫 번째 결정은 이스라엘은 서안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결정은 서안과 가자 지구의 주민들을 이스라엘 국가의 시민으로 편입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시민권 부여를 거부하고 다른 한편으로 독립을 허용하지 않는 정책이 서안과 가자 지구 주민들을 기본적인 시민권과 인권이 없는 삶으로 내몰게 됨을 이스라엘 정부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85-6)<br>1967년 이후 이스라엘의 실제 의도가 무엇인지 판단하는 또 다른 방법은 이 정책들을 팔레스타인인 피해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점령 이후 새 통치자는 서안과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매우 불가능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가두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난민도 아니고, 시민도 아니었다. 시민권 없는 거주민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시민권과 인권이 없고 스스로의 미래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는 거대한 감옥에 갇힌 수감자이고, 여러 면에서 여전히 그렇다. 세계가 이런 상황을 용인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이 상황이 일시적이며, 적절한 팔레스타인 측 평화 협상 상대가 나타날 때까지만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 협상 파트너를 지금까지도 찾지 못한 건 놀랄 일도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에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팔레스타인인을 삼대째 감금하고 있으면서, 이 거대 감옥은 임시적이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오면 바뀔 거라고 설명한다. 88)<br>PART II. 잘못된 신화: 현재7.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유일한 민주 국가다<br>민주주의를 판별하는 기준은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소수자를 얼마나 포용하는가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은 진정한 민주주의에 훨씬 못 미친다. 이스라엘은 국민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기본권이나 시민권을 일체 부정한다. 그 사례가 있다. 이스라엘은 새로운 영토를 얻은 다음에 여러 법안을 통과시켰다. 시민권에 관한 법, 토지 소유권에 관한 법,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귀환법이 그것이다. 귀환법은 세계 어디에서 태어났더라도 모든 유대인에게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이다. 특히 이 법은 노골적으로 비민주적이다. 1948년 유엔 총회 결의안 194를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된 팔레스타인인의 귀환권을 전면 거부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시민은 직계 가족이나 1948년에 추방된 이들과 함께할 수 없다.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를 부정하고, 동시에 그 땅과 관련이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권리를 부여하는 일은 비민주적 관행의 전형이다. 92-3)&nbsp;<br>여기에 팔레스타인 민족의 권리를 더욱 부정하는 행위가 하나 더 추가됐다.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군 복무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들에 대한 거의 모든 차별을 정당화한다. 국방부의 전제는 이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군 복무를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은 잠재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내부의 적이다. 이 논리의 문제점은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가 벌인 모든 주요 전쟁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들의 예상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5열을 형성하지도 않았고, 정권에 맞서 반기를 들지도 않았다. 오늘날까지도 팔레스타인인들은 해결해야 할 ‘인구통계학적’ 문제로 여겨진다. 토지 문제를 살펴봐도 민주주의 국가라는 주장이 의심스럽다. 오늘날 이스라엘 토지의 90퍼센트 이상은 유대민족기금의 소유다. 토지 소유자는 비유대인과 거래할 수 없으며, 이 때문에 유대인 정착지는 새롭게 건설되는 반면, 팔레스타인 정착지는 거의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93-4)<br>이런 비난에 대해 이스라엘의 외교계와 학계는 이들 조치가 모두 일시적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어디에서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더 나은’ 행동을 보이면 바뀔 조치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정책 입안자들은 유대 국가가 유지되는 한 이 땅의 점령 상태를 계속 유지할 작정이다. 이스라엘 정치 체제는 이 점령 상태를 ‘현재 상태’로 간주하며, 언제나 현상 유지가 어떠한 변화보다 낫다고 본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계몽적 점령enlightened occupation’을 주장한다. 여기서 신화는, 이스라엘이 선한 의도로 자비롭게 점령하려고 했지만 팔레스타인인의 폭력 때문에 점점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1967년 이스라엘 정부는 서안과 가자 지구가 당연히 ‘에레츠 이스라엘Eretz Israel’, 즉 ‘이스라엘 땅’의 일부라고 여겼고, 이런 입장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 내 우파와 좌파 정당들이 의견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이 목표의 타당성이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서다. 95)<br>8. 오슬로 신화<br>오슬로 신화의 첫 번째는 그것이 진정한 평화를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야세르 아라파트가 2차 인티파다를 선동해 의도적으로 오슬로 협정 이행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1993년 협정에서 팔레스타인이 한 약속을 아라파트가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에는 꺼림칙한 점이 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이행할 수는 없었다. 예를 들면, 팔레스타인 당국은 점령지 내에서 이스라엘의 보안 하청 업체 역할을 하면서 저항 활동이 없게 해야 했다. 바라크는 비무장 팔레스타인 국가를 요구했고, 수도는 예루살렘 근처의 아부 디스Abu Dis에 두라고 했다. 그러고는 서안 중에서 요르단 계곡, 대형 유대인 정착촌 구역, 대예루살렘의 일부 지역은 제외하도록 했다. 그렇게 세워지는 국가는 독립적인 경제 및 외교 정책을 가지지 못하고, 국내 특정 영역에서만 자치권을 가지게 될 것이었다. 이 합의의 공식화는 이후 팔레스타인이 더 이상의 요구, 예를 들면 1948년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101)<br>영토 분할안은 오슬로에서 초기 논의를 이끈 핵심 논리였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결코 분할을 요구한 적이 없다. 영토 분할은 언제나 시온주의자, 나중에는 이스라엘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이스라엘의 힘이 커짐에 따라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영토 비율도 늘어났다. 따라서 분할안이 점차 세계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이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다른 방식의 공격 전략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측이 협상 조건으로 이 상황을 차악으로 받아들인 것은 단지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 파타는 영토 분할을 완전한 해방으로 가기 위한 필요 수단으로 받아들였지만, 그 자체를 최종 합의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사실 극단적인 압박이 있지 않고서야 원주민 집단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자기 땅을 정착민 집단과 나눌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슬로 협상이 공정하고 평등한 평화 추구의 과정이 아니라 패배하고 식민지화된 민족이 타협에 동의하는 과정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102-3)<br>오슬로 평화 프로세스가 실패한 것은 단순히 분할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이 아니다. 원래 협정에는 5년의 이행 기간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팔레스타인을 가장 괴롭히는 세 가지 문제, 즉 예루살렘, 난민, 유대인 정착촌 문제를 협상한다는 이스라엘의 약속이 있었다. 이 이행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보안 하청 업체로서 이스라엘과 그 군대, 정착민과 시민에 대한 게릴라전이나 테러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그러나 오슬로 DOP에서 약속한 바와는 달리, 5년, 즉 첫 단계가 끝났을 때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더 중요한 문제들을 논의해야 할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되지 않았다. 네타냐후 정부는 팔레스타인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두 번째 단계를 시작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 과정이 중단된 주 원인은 1995년 11월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이 암살됐기 때문이다. 평화 프로세스는 1999년 에후드 바라크가 이끄는 노동당이 집권할 때까지 매우 느리게 진전됐다. 103-4)<br>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을 의제에서 제외한 것은 오슬로 협정이 평화 프로세스와 관련이 없는 두 번째 이유다. 분할 원칙이 ‘팔레스타인’을 서안과 가자 지구로 축소시켰다면, 난민 문제와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소수 민족 문제를 배제하면서 인구학적으로 ‘팔레스타인 국민’이 팔레스타인 국가 인구의 절반 미만으로 축소됐다. 2000년 1월 바라크 정부는 미국 협상자들의 승인을 얻어 협상의 범위를 설명하는 문서를 제시했다. 최종 ‘협상’은 본질적으로 팔레스타인인이 이 문서를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동 노력이었는데, 여기에는 팔레스타인인의 귀환권을 절대적이고 명확하게 거부하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논의가 열려 있던 부분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관리하는 영토로 귀환이 가능한 난민 수였다. 하지만 관련자들 모두 이 밀집 지역에 더 이상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으며, 이에 반해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의 나머지 지역에 난민을 귀환시킬 공간이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04-6)<br>이것이 오슬로 협정에 관한 두 번째 신화로 이어진다. 아라파트의 완고함 때문에 2000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 회담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미 국무부 관리들의 증언에 따르면, 바라크는 유대인 식민지 정책이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일상적인 학대에 관련된 이스라엘의 정책을 바꾸기를 거부했다. 그는 아라파트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는 어려운 입장을 취했다. 현실에서 즉각적인 변화를 약속할 수 없다면 바라크가 최종 합의안으로 무엇을 제안하든 별 의미가 없었다. 예상대로 아라파트는 캠프 데이비드에서 돌아온 직후, 제2차 인티파다를 부추겼다는 이유로 이스라엘과 그 동맹국들에게 전쟁광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여기서 신화는 제2차 인티파다를 야세르 아라파트가 지원한, 심지어 계획적인 테러 공격이라는 것이다. 진실은 이렇다. 제2차 인티파다는 오슬로의 배신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 대규모 시위였고, 아리엘 샤론의 도발적인 행동이 더해져 악화됐다는 사실이다. 106-8)<br>9. 가자 신화<br>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에서 하마스가 인기 있었던 이유가 오슬로 협정의 성공이나 실패 때문만은 아니다. 이스라엘 점령하에서 살아가는 일상적 괴로움을 해결할 방법을 세속적 현대성을 통해 찾지 못했기 때문에 하마스가 (점령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많은 이슬람교도의 마음을 사로잡게 됐다. 아랍 세계의 다른 정치적 이슬람 단체와 마찬가지로, 세속 운동이 고용, 복지, 경제적 안정성을 제공하는 데 실패하자 많은 사람들이 다시 종교로 돌아갔다. 종교는 위안을 줄 뿐만 아니라 자선과 연대의 네트워크도 제공했다. 제2차 인티파다 중에 이스라엘이 도입한 새로운 탄압 방식―특히 장벽 건설, 바리케이드, 표적 암살―탓에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 대한 지지는 더욱 약화되고 하마스의 인기와 명성이 높아졌다. 그러므로 역대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인에게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고, 점령에 저항할 준비가 된 유일한 집단에 투표하도록 몰아갔다고 결론을 내려야 합당할 것이다. 114)<br>이스라엘 정부의 공식 서사에서 하마스는 가자 지구에서 철수한, 평화를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악랄한 행위를 저지르는 테러 조직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평화를 위해 철수했는가? 대답은 전혀 ‘아니오’이다. 오슬로 협정 이전에는 가자 지구 내 유대 정착민의 존재가 복잡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자, 유대 정착민은 이스라엘의 자산이 아닌 부채가 됐다. 샤론은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철수하고 하마스가 부상하면, 이스라엘 시민이 다칠 염려 없이 하마스에게 보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리쿠드당의 좌파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눈에 샤론의 움직임은 평화의 제스처이자 정착민을 상대로 용감하게 대치하는 것이었다. 샤론은 좌파와 중도 우파의 영웅이 됐다. 그때부터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의 반응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이스라엘 정책 비판은 평화를 논의할 분별 있고 믿을 만한 팔레스타인 파트너가 없다는 증거로 여겨졌다. 118-22)<br>샤론도, 그를 따르는 어느 누구도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략을 명확히 제시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인의 눈에 가자 지구는 서안과는 매우 다른 지정학적 실체다. 가자 지구에는 이스라엘이 탐내는 땅도 없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추방해서 보낼 요르단 같은 배후지도 없다. 종족 청소도 여기서는 효과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가자 지구 공격 작전은 모든 영역에서 악화되고 있다. 첫째, ‘민간인’과 ‘비민간인’ 표적 사이의 구분이 사라졌다. 분별없는 살인으로 인구 전체가 작전의 주요 표적이 됐다. 둘째, 이스라엘 군대가 보유한 모든 살상 무기를 확대하여 사용했다. 셋째, 사상자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마지막으로, 작전이 점차 전략으로 구체화됐다. 이스라엘이 향후 가자 지구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 즉 바로 계산된 대량 학살 정책을 드러낸 것이었다. 하지만 가자 지구 주민들은 계속해서 저항했다. 이스라엘은 더 많은 대량 학살 작전으로 응수했지만, 지금도 그 지역을 차지하지 못했다. 127-8)<br>PART III. 잘못된 신화: 미래10. ‘두 국가 해법’이 유일한 길이다<br>‘두 국가 해법’은 동그라미를 네모로 만들려는 이스라엘의 발명품이다. 서안에 사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서안을 이스라엘의 통치하에 둘 방법으로 찾아낸 것이다. 그래서 서안 일부를 자치 지역, 준準 국가로 만든다는 제안이 나왔다. 그 대가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귀환이나, 이스라엘 내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평등한 권리, 예루살렘의 운명, 고향에서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희망 모두를 포기해야 한다. ‘두 국가 해법’은 유대 국가가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즉, 유대인은 다른 곳이 아닌 팔레스타인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 개념은 반유대주의의 핵심에 가깝다. 간접적으로 말하자면, ‘두 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과 유대교가 같다는 가정에 기반해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유대교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라 고집하고, 그것이 세계 각국에서 거부당하면 이스라엘뿐 아니라 유대교를 향한 비판이라고 주장한다. 134)<br>‘두 국가 해법’은 가끔 영안실에서 시체를 꺼내어 잘 차려입히고 살아 있는 존재처럼 내세우는 것과 같다. 생명이 남아 있지 않다고 다시 한 번 입증되면 영안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을 역사적 실체의 10분의 1로 축소하여 그것을 평화의 지도로 내세웠던 지도 제작법은 영원히 사라지기 바란다. 대체 지도는 준비할 필요가 없다. 갈등의 지형은 자유주의적 시온주의 정치인, 언론인, 학자의 담론에서는 끊임없이 변해 왔지만, 실제로는 1967년 이후 전혀 변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은 항상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의 땅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운명의 변화를 결정한 것은 지형이 아니라 인구 변동이었다. 19세기 말에 이 지역에 도래한 정착 운동으로 인해 지금은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을 인종 차별 이데올로기와 인종 격리 정책으로 통제하고 있다. 평화는 인구통계학적 변화의 문제도, 지도를 다시 그리는 문제도 아니다. 이런 이데올로기와 정책을 제거하는 일이다. 135-6)<br>맺음말: 21세기의 ‘정착 식민지 국가’ 이스라엘<br>이스라엘, 그리고 그 이전에 시온주의 운동이 누렸던 예외주의는 아랍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 침해에 대한 서구의 비판을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팔레스타인 인권 침해에 대해 논의하려면, 시온주의 같은 정착 식민주의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를 이해해야 한다. 유대 정착민은 이제 이 땅의 유기적이고 필수적인 일부가 됐다. 그들은 제거할 수도 없고, 제거되지도 않을 것이다. 유대 정착민도 이 지역 미래의 일부가 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끊임없는 억압과 강탈을 기반으로 해서는 안 된다. 팔레스타인은 비어 있지 않았고, 유대 민족에게는 조국이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구원”받은 게 아니라 식민지화됐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48년에 자발적으로 떠난 게 아니라 강탈당했다. 심지어 유엔 헌장에서도 식민지화된 민족은 해방을 위해 군대까지 동원해 싸울 권리가 있고, 그 투쟁의 성공적인 결말은 모든 주민을 포함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건립에 있다. 139-40)]]></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99/62/cover150/e3525336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2996294</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저녁</category><title>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윌리엄 D. 하텅, 벤 프리먼 -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227437</link><pubDate>Mon, 20 Apr 2026 07: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2274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136921&TPaperId=172274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5/22/coveroff/k3221369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136921&TPaperId=172274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a><br/>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지음, 백우진 옮김 / 부키 / 2026년 02월<br/></td></tr></table><br/>프롤로그 : 군비합중국의 탄생<br>"미국 대외 정책을 둘러싼 싸움에서는 전쟁으로 이익을 누리는 집단이 거의 언제나 승리해왔다. 오늘날의 전쟁 기계는 아이젠하워 시대보다 훨씬 더 많은 사회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 더 많은 세금을 먹어치우고, 아이젠하워가 상상도 못 했을 규모의 초대형 기업들을 떠받치고, 싱크탱크와 대학, 스포츠, 할리우드, 게임산업, 주류 언론을 통해 광범위한 정치적·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전쟁 기계의 정치 권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반면에 이 전쟁 기계가 효과적인 국방력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제공할 역량을 지녔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해마다 미군에 더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데 왜 얻는 성과는 갈수록 줄어드는 걸까? 물가 상승을 고려해도 현재 미국은 냉전 시절 기록한 최고액보다 1000억 달러를 더 쓰고 있다. 그러나 당시와 비교하면 현역 병력도 절반, 해군 함정도 절반, 공군 전투기도 절반 수준이다. 미국은 거의 1조 달러짜리 전쟁 기계를 만들었지만, 이 기계는 고장 나 있다."(23-4)<br>1부 고장 난 전쟁 기계<br>1장 미국은 어떻게 세계 최고의 무기 딜러가 되었나<br>"미국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전 세계 무기 시장의 43% 이상을 장악했는데, 이는 러시아의 3배, 중국의 6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미국은 전 세계 107개국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이는 지구상 국가의 절반이 넘는 숫자다. 왜 미국은 그렇게 많은 무기를 판매할까? 국방부나 국무부 관리에게 묻는다면, 미국산 무기가 안정을 강화하고 동맹국이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미국산 무기는 불안정을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증폭한 경우가 많았다. 이를 뚜렷이 드러내는 증거가 미국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레바논 등에서 벌이는 전쟁과 미국의 아랍에미리트UAE에 대한 강력한 지원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예멘부터 수단, 리비아까지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극단주의 세력과 억압적인 반군 조직에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 미국산 무기는 세계 대부분의 분쟁에 불을 지필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병기창”이라는 주장과 달리 비민주적 정권에 너무나 자주 공급된다."(40-1)<br>"이 치명적인 무기 거래에서 명확한 승자는 무기회사들뿐이다. 전쟁과 전쟁 준비는 미국의 초대형 방위산업 기업들의 생명줄이다. 9·11 이후 지난 20년 동안 상위 5개 방산업체인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보잉, 제너럴 다이내믹스, 노스럽 그러먼은 국방부와 해외 바이어에 대한 판매 계약으로 2조 달러를 나누어 가졌다. 전체로 보면 이 기간에 미국 국방부가 지출한 14조 달러 중 절반이 민간 군수기업으로 흘러들어갔다. 이처럼 터무니없는 이익 하나만으로도 미국이 전 세계에 무기를 보내는 관행을 재고하도록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방위산업계가 전쟁을 핑계로 오랫동안 원해왔던 특혜를 압박해 얻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방위산업계는 가격 부풀리기에 대한 규제 완화와 해외 판매 승인 절차의 신속화를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대량 생산에 들어가기 전 주요 무기 체계에 대한 시험 같은 핵심 절차를 축소함으로써 국방부의 무기 조달 과정을 더 빠르게 만들 것을 주장하고 있다."(42-3)<br>2장 ‘민주주의의 병기창’에서 ‘끝없는 전쟁 공장’으로<br>"이미 1961년 아이젠하워가 유명한 연설을 했을 때조차 미국은 세계의 자유 수호자에서 세계의 전쟁을 생산하는 병영 국가garrison state로 변모할 위험에 놓여 있었다. 무엇보다 최악은 이런 배신의 결과 세상이 미국인 자신들에게 더 위험한 곳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 위험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영역은 다름 아닌 핵무기 경쟁이었다. 이는 아이젠하워 집권기에 본격 시작되었는데, 합리적인 방위 개념만큼이나 자금 추구 욕구에 따라 추동된 것이었다. 핵무기 예산의 더 큰 몫을 차지하려고 해군과 공군이 벌인 세력 다툼은 명확한 승자를 가린 뒤 끝나는 대신 값비싼 타협으로 마무리되었다. 바로 ‘3대 핵전력nuclear triad’(핵 3축, 핵 3원) 체계였다. 이는 미국이 육상, 공중, 해상 세 축을 기반으로 핵탄두를 발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이런 3축 접근법이 군사적으로 꼭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에 앞서 펼쳐진 온갖 전략적 수사 아래 감추어진 실상은 단지 홍보 경쟁에 불과했다."(63-5)<br>"3대 핵전력 체계의 공식 근거는 적이 선제공격으로 미국의 전체 핵무기 보유고를 한꺼번에 파괴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근거는 해당 프로그램들이 상당히 진행된 이후에야 마련되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3대 핵전력 체계 개념은 미국 핵 정책 논의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어서 워싱턴의 국가 안보 기구 내에서는 사실상 비판이 통하지 않는다. 미국의 무기회사들은 해군과 공군이 다투는 내내 바짝 달라붙어 관여했다. 이들이 핵무기 예산 확대를 위해 가장 노골적으로 압박한 것은, 소련과 미국 사이에 위험한 ‘미사일 격차missile gap’가 존재한다는 점을 대중에게 납득시키려는 캠페인이었다. 그들의 주장은 미국이 선제공격 위험에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이 '격차'라는 개념은 주로 군복을 입은 군 고위층과 미국 정보 기관, 군수산업 관계자들의 압력으로 언론과 의회를 통해 널리 퍼졌다. 핵무장 신형 폭격기 제조 캠페인과 더불어 미사일 격차 논란은 군산복합체가 작동한 초기 사례였다."(67-8)<br>"다음에 이어진 것은 베트남전쟁이었다. 케네디가 깊게 개입한 이 전쟁을 후임인 린든 존슨과 리처드 닉슨이 관장했다. 케네디는 매파로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당시 부통령으로 출마한 닉슨을 능숙하게 제치며 승리했다. 집권 후 케네디는 국방부 지출 확대를 추진했는데, 여기에는 다수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예산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케네디가 베트남에서 미국 개입 확대의 씨앗을 뿌렸다는 점이다. 그는 베트남 주둔 미군 군사 고문단을 700명에서 1만 6000명 이상으로 늘렸다. 미군의 개입은 1960년대 내내 꾸준히 확대되었고, 그 결과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을 물리치는 데는 거의 성과를 보지 못했다. 곧 미국은 이 전쟁터에서 병력을 철수해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서 50년 뒤 바이든이 그랬듯이 닉슨은 미군 사망을 줄이고 미국 이익을 저비용으로 보존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기 판매라고 결론 내렸다."(70-1)<br>"닉슨은 앞으로 미국은 대규모 병력을 해외에 파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신 미국은 이란의 샤 같은 ‘대리인’에게 무기를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대리인에게 해당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켜주는 대가로 미국산 무기에 대한 사실상 무제한 접근을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 닉슨은 예컨대 앞으로 아시아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미국의 목표는 “아시아 병사들이 아시아 병사들과 싸우게 하는 것”이지 미군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닉슨의 새로운 정책은 훗날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지미 카터는 1976년 대선 후보로서 인권을 지지하고 무기 판매를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후 카터 역시 결국 대외 정책에서 군사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다. 마지막 국정 연설에서 카터는 미국이 필요하다면 군사력을 사용해 페르시아만에서 미국 이익을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했다. 이 입장은 ‘카터 독트린Carter Doctrine’으로 알려지게 되었다."(71-2)<br>"베를린 장벽 붕괴와 소련 해체 이후 ‘지상군 투입’ 방식의 분쟁 개입에 반대한다고 선언했던 빌 클린턴은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 정권을 상대로 대규모 폭격 작전을 벌였고, 냉전 종식 후 몇 년 동안 감소했던 국방부 예산을 다시 끌어올리는 과정을 시작했다. 그는 1995년 국정 연설에서 국방부 예산은 건드리지 않은 채 다른 모든 연방 재량 지출 프로그램을 20% 삭감하자고 제안했다. 클린턴은 1994년 말 국방부 예산을 수년에 걸쳐 250억 달러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임기 말에는 6년 동안 1120억 달러 증액을 제안했는데, 이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의 더 큰 예산 증액을 위한 발판이 되었다. 클린턴의 국방 정책 가운데 가장 오래 지속된 것은 방위산업에서 합병을 장려하고 보조하는 정책이었다. 덕분에 록히드 마틴과 레이시온(현 RTX) 같은 거대 기업이 탄생하는 길이 열렸다. 방위산업의 통합은 결과적으로 군수업체들에 더 큰 협상력을 안겨주었다. 주요 방산업체의 수는 51개에서 단 5개로 줄어들었다."(74-5)<br>"군사주의적인 성향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널리 알려진 대로 클린턴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끝없는 전쟁을 시작해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부시는 이 분쟁들을 주도한 유일한 인물은 아니었다. 오바마는 이라크 개입 같은 〈어리석은 전쟁〉에 반대하며 선거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집권 후 그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병력을 증강했고, 드론 공격을 확대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두 차례에 걸쳐 가장 높은 국방부 예산을 기록했다. 그 결과 수천 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고 수만 명이 부상당했지만 그 전쟁들을 끝내지도 못했고,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도 못했다. 대선 유세에서 했던 공약과 반대로 국방부 예산을 증액하는 행태는 도널드 트럼프 시기에도 이어졌다. 2016년 대선 기간과 당선 후 취임하기까지 기간에, 트럼프는 무기 계약업체들이 납세자들을 등쳐먹고 있다며 그들을 단속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취임 몇 달 만에 그는 바로 그 업체들을 따스하게 감싸안았다."(75)<br>3장 아마겟돈 속 폭리 취득자들<br>"핵 시대 초기부터 미국 핵무기 보유량의 규모는 최선의 방어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에 관한 고려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크게 예산 영역 다툼과 계약 확보 경쟁에 의해 좌우되었다. 잠재적으로 세계를 끝장낼 수 있는 무기들을 만드는 데 얽힌 예산과 이윤, 일자리는 거대한 사업이다. 핵무기 생산에 관여하는 업체들을 비롯한 군수기업들은 2024년 한 해 동안 로비 활동에 1억 4800만 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이들 덕분에 군수기업들은 미국인이 필요로 하지도 않고 가격도 감당할 수 없는 자신들의 무기 체계에 들이는 세금을 쓸어 담기가 대단히 유리해진다.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지를 보유한 지역 사회의 지도자들은 기지의 존재와 향후 대륙간탄도미사일 예산 및 배치가 지역 수입과 고용에 필수적이라고 본다. 노스럽 그러먼 같은 기업들은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지가 위치한 주의 기업들 및 지역 사회 단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왔다. 이런 관계는 무기회사들이 워싱턴 내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기반이 된다."(86-90)<br>"그러나 1950년대에는 중요했을지라도 오늘날의 경제 환경에서는 군사 지출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군사 지출이 지역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하는 것은 그 혜택이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집중되었거나, 오히려 건전하고 다변화된 경제 기반을 구축하는 데 방해물이 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게다가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 사업이 이루어진다고 주장되는 32개 주 중 대부분은 극히 적은 일자리만 얻게 될 것이다. 노스럽 그러먼이 주장하는 일자리 1만개가 고르게 분배된다면 주당 약 310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주가 그보다 적을 텐데, 이는 해당 프로젝트 관련 고용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할 새로운 생산 시설이 유타주에 있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은 투입되는 수십억 달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일자리만 만들어낼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같은 돈을 다른 어느 곳에 쓰더라도 훨씬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93-6)<br>4장 죽음을 파는 상인들<br>"‘통합 타격 전투기Joint Strike Fighter, JSF’ 프로젝트는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는데, 이 프로젝트에서 개발하기로 한 F-35 전투기는 초기에 군수 조달의 미래로 떠받들어졌다. 그러나 초기부터 F-35는 예산 초과와 성능 문제에 시달렸다. 복잡하고 상충하는 요구 사항들이 애초에 이 프로그램에 욱여넣어졌기 때문이다. F-35는 모든 이들에게 모든 것이 되기를 요구받았다. 즉 공군에는 전투기/폭격기, 해군에는 항공모함 이착륙 전투기, 해병대에는 단거리 이륙 및 수직 착륙기가 되어야 했다. 배경이 된 발상은 공통 기종 하나를 각 군의 필요에 맞게 개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F-35는 요구된 임무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지상군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에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많은 폭탄을 탑재하기에는 기체가 너무 가볍다. 공중전에서는 이전 세대 전투기들보다 열세이다. 게다가 유지·보수가 너무 어려워 거의 절반의 시간을 격납고에서 정비받으며 보낸다."(110-1)<br>"지금까지 록히드 마틴은 자사의 실패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록히드 마틴과 동업자들은 정부의 감시와 규제를 완화하는 한편 펜타곤 자금을 더 빨리 받아내려고 한다. 이는 업계의 숙원이었는데, 이들은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상황을 빌미로 이를 되살리고 있다. 방산업계의 요구 목록은 펜타곤 핵심 관리들의 목표와 대체로 일치한다. 여기에는 펜타곤 보조금을 받아 더 많은 무기 공장 짓기, 복잡한 무기 구매 규정을 단순화해 서류 절차를 줄이고 군에 납품되는 무기 체계가 광고한 대로 작동하는지 독립적으로 평가하는 과정 축소하기, 성과와 무관하게 특정 공급업체를 이용하도록 펜타곤을 묶어두는 다년 계약 시행하기, 기업이 정부에 제출해야 하는 가격 정보의 양을 줄여 기본 품목에 과도한 비용을 청구하기 쉽게 만들기, 그리고 미국산 무기를 수입하는 국가들의 인권 기록 심사 기간 단축 등 해외 고객에게 무기를 신속히 공급하는 데서 걸림돌 제거하기 등이 포함된다."(112-3)<br>2부 전쟁 기계의 비용<br>5장 해외에서는 끝없는 전쟁, 국내에서는 끝없는 비용<br>"미국의 군사 예산은 2024년에 거의 9000억 달러에 달했고, 이는 사회보장제도나 메디케이드Medicaid 같은 권리성 지출을 제외한, 연방 정부가 집행하는 모든 활동을 포함하는 재량 예산의 절반을 훨씬 웃도는 비중을 차지했다. 즉 연방 세금 중 교육, 환경 보호, 직업 훈련, 과학 연구, 법 집행 등 다른 주요 정부 활동 전체보다 더 많은 금액이 펜타곤으로 흘러들어간다는 뜻이다. 게다가 9000억 달러는 전쟁 기계의 총예산 비용을 보수적으로 잡은 금액이다. 이 수치에는 펜타곤 예산과 더불어 에너지부의 핵탄두 관련 사업 예산이 포함된다. 그러나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많은 예산 항목들도 존재한다. 여기에는 국토안보부와 보훈부의 예산, 국무부 예산에 포함된 군사 원조와 과거 군사 지출로 인한 국가 부채 이자 부담분이 포함된다. 이렇게 군사 지출을 더 빠짐없이 집계한 연간 총액은 거의 1조 5000억 달러에 이른다. 현재처럼 폭주하는 지출 추세가 이어진다면 머지않아 2조 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140-1)<br>"단지 재정 비용만 걸린 사안이 아니다. 21세기 내내 이어진 미국의 끊임없는 분쟁 개입이 초래한 가장 충격적인 결과 중 하나는 바로 이 전쟁들을 수행한 군인이 입은 피해였다. 최소 190만 명의 참전 용사가 9·11 이후 미국이 치른 전쟁을 겪었고, 7000명이 넘는 미군 병사가 목숨을 잃었으며, 수십만 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외상성 뇌손상, 심각한 신체 부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한정된 자원을 전쟁 기계에 쏟아붓는 선택은 공중 보건과 영양, 의료, 환경 보호 등 다른 우선 과제들을 고사시킨다. 이러한 분야에 대한 지출 부족은 또 다른 팬데믹 발생 위험, 수천만 미국인의 굶주림, 치료받지 못하는 질병, 더 오염된 공기와 물로 이어진다. 이는 단순히 예산 편성의 불균형 문제가 아니다. 총성이 울리는 전쟁터의 위태로운 목숨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다. 이 모든 결과로 1억 4000만 명의 미국인이 빈곤 속에서 살거나 작은 위기 하나만으로도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다."(142-3, 146)<br>6장 해외 군사기지와 군사 과잉 확장의 비용<br>"수천 명의 병력이 주둔하는 완전한 요새든, 무장 드론의 발진 기지 역할을 하는 소규모 시설이든, 위기 상황에서 미군이 접근해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비축해두는 ‘전진 배치 거점’이든, 해외 군사기지는 미국의 대외 정책이 실행되는 가장 눈에 띄는 상징이다. 미국의 군사기지는 전 세계 80개국에 걸쳐 750곳이 존재한다. 이 방대한 해외 주둔망을 기반으로 미국은 2021년부터 2023년 사이에 78개국에서 대테러 작전을 수행했다. 게다가 17만 명이 넘는 미군이 상시 해외에 주둔하고 있다. 이 해외 기지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데 드는 연간 비용은 무려 550억 달러에 달한다. 천문학적인 국방부 예산을 밀어 올리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이처럼 ‘전 세계를 포괄하는’ 미국의 군사 전략이다. 이 전략의 목표는 언제, 어디서든, 짧은 준비 기간만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해외에서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은 전 세계에 걸쳐 있는 기지 네트워크에 단단히 뿌리를 두고 있다."(157-8)<br>"미국이 전투 병력 파병에는 점점 더 주저하게 되었음에도 군사기지에는 더욱 집착해왔다.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무기인 드론을 운용하려면 여러 주요 기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직접 개입한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그 결과 오바마 행정부 시절 핵심 정책결정자들은 미국의 대외 정책과 군사 정책을 ‘정치적으로 지속 가능한 전쟁politically sustainable warfare’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이는 전투 지역에 투입되는 미군 병력을 줄이고 미군의 사상자를 최소화함으로써 본국 내에서 본격적인 반대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낮은 형태의 군사 개입을 뜻한다. 바이든 임기 동안 미국의 가장 눈에 띄는 군사 행위는 동맹국에 대한 무기 지원 확대였는데, 특히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에 수백억 달러 규모의 군사 원조를 제공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판매의 결과는 참혹했다. 무차별 폭격을 부추겨 지금까지 4만 6000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그중 많은 수가 여성과 아동이었다."(172-5)<br>3부 전쟁 기계의 판매<br>7장 전쟁 기계의 로비스트들은 어떻게 워싱턴을 설득하는가<br>"로비스트의 연봉이 아무리 화려하다 해도 그 돈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국방부 계약으로 이어질 수만 있다면 군수업체들에는 한 푼도 아깝지 않은 투자다. 군산복합체가 가진 영향력의 무기는 실로 다양하지만, 다른 어떤 것도 로비만큼 직접 미국 정책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국방부 계약업체들은 영향력 게임에서 거의 비용을 아끼지 않으며, 미국 정책을 자기들 뜻대로 비틀기 위해 소규모 ‘로비스트 군대’를 구축해왔다. 2024년 한 해에만 국방부 계약업체들은 로비에 1억 4800만 달러 이상을 썼고, 로비스트 945명을 고용했다. 이를 모두 합치면 오늘날의 전쟁 기계는 의원 1명당 거의 2명의 로비스트를 고용하고 있으며, 의원 1명당 27만 5000달러 이상을 로비 자금으로 쓰고 있는 셈이다. 하원 의원과 상원 의원 대부분 연봉이 20만 달러 이하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방부 계약업체들이 의회 의원들이 버는 돈보다 더 많은 자금을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쓰고 있다는 뜻이다."(196-7)<br>"개별 의원실에서 일하는 보좌진은, 의회 위원회 소속이 아닌 경우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폭넓은 분야를 맡고 있기 때문에 매일 모든 업무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기란 불가능하다. 보좌진은 이렇게 경험이 부족하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업무가 많은 가운데, 방대한 법안을 제한된 시간 안에 분석하고 자신이 보좌하는 의원에게 권고안을 제공해야 하는 상황에 종종 처한다. 예를 들어 2024년 국방수권법NDAA(일명 국방정책법안)은 거의 1000쪽에 달했다. 이 수많은 페이지 중 어느 한 문구의 뉘앙스 차이가 상관의 지역구에서 일자리를 늘리거나 잃게 만드는 차이가 될 수 있고, 따라서 재선 여부를 좌우할 수도 있다. 바로 여기서 국방부 계약업체의 로비스트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인터뷰한 모든 로비스트들은 자신들의 일이 개별 의원실, 심지어는 개별 직원에게 맞게 모든 것을 맞춤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 현직 로비스트는 말했다."(199)<br>"이러한 정보는 대단히 귀중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공정하지는 않다. 로비스트들은 국가에, 심지어 미군에 최선이 무엇인지를 위해 활동하는 객관적 정보 중개인이 아니다. 그들의 1차 목표는 고객의 이익 증진이다. 어떤 로비스트가 고객의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미국의 국가 안보를 옹호한다면, 그는 곧 업무 경비 계정을 잃게 될 것이다. 만약 국방부 계약업체를 대신해 이루어지는 로비 활동이 미국 국가 안보에 이득을 주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다만 운 좋은 우연일 뿐이다. 이것이 전쟁 기계가 실제로 우리를 더 안전하게 만들지 못하는 핵심 이유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납세자의 돈이 국방 부문으로 더 많이 흘러 들어가게 하고, 이 흐름과 연결되어 있다면 록히드 마틴의 CEO든 워싱턴 K스트리트(로비회사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의 로비스트든 누구나 부유해지게끔 고안되었다. 이 시스템은 군에 가장 훌륭한 서비스나 제품을 제공하는 회사를 보상하는 능력주의 체제가 아니다."(200-1)<br>"국방부 계약업체의 로비스트들은 왜 선거 자금 기부가 선출직 정치인들에게 중요한지,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는 의회 의원들과 행정부 관료들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안다. 왜일까? 대체로 이 로비스트들 자신이 과거에는 의원이었거나 최소한 의회나 행정부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거기서 얻은 지식은 이 전직 관료들을 국방부 계약업체가 탐내는 인재로 만들었고, 업체들은 그들의 정부 시절 급여를 단번에 2~3배로 올려줄 의향이 있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국방부 계약업체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활용하는 가장 값진 일자리들은 의원 지역구의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 바로 의원들 자신에게 돌아간다. 의원들은 공직 경력을 내려놓고 이러한 특수 이익을 위해 봉사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군산복합체에 내재된 완전히 합법적인 부패 시스템으로, 민간인과 현역 군인에게 국방부 계약업체와 잘 지내도록 하는 강력한 유인을 만들어낸다. 바로 ‘회전문’이라고 불리는 시스템이다."(203-5)<br>8장 조작된 합의 : 매수될 준비가 되어 있는 싱크탱크<br>"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년 뒤인 2024년 2월. 우크라이나는 미국산 신형 M1 에이브럼스 탱크를 처음으로 전선에 배치했고, 이 탱크는 러시아 진지를 향해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은 이 신형 탱크를 투입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철수시켰다. 왜 그랬을까? 거대한 과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 탱크는 러시아 드론의 자폭 공격에 무참히 파괴되고 있었다. 이런 탱크를 또 다른 미국의 ‘탱크’가 열렬히 선전했는데, 바로 싱크탱크였다. 이 비영리 단체들은 미국의 공공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 하며, 우리가 TV, 라디오, 신문에서 보고, 듣고, 읽는 많은 전문가를 고용하고 있다. 그리고 M1 에이브럼스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전문가 가운데 상당수는 탱크 제조사인 제너럴 다이내믹스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은 싱크탱크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는 전쟁 기계가 단지 무기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인위적인 합의까지 만들어내는 또 다른 사례다."(219-20)<br>"싱크탱크는 흔히 ‘저장 탱크holding tank’ 역할을 하며, 전현직 정부 관리들에게 일종의 경력 보관소 같은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행정부가 교체되면, 특히 백악관을 장악한 정당이 달라지면 정치적으로 임명된 관료들 대부분은 기존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 이런 전직 관료들은 새로운 생계를 찾아야 하고, 그중 대부분은 싱크탱크 부문(또는 앞서 논의했듯 로비 부문)에서 자리를 얻는다. 회전문 반대편에서는 집권한 새로운 행정부가 임명직 자리 수천 개를 채워야 한다. 외교 정책 관련 직위의 경우, 새 행정부는 흔히 국방부 계약업체의 자금을 받는 싱크탱크를 찾게 되며, 이곳에는 공직에 들어가거나 재진입하려는 지식인이 다수 대기하고 있다. 싱크탱크 인사들은 행정부의 요직을 채울 뿐 아니라, 앞 장의 로비스트들처럼 입법부도 채운다. 다만 여기서는 사람 대신 정보로 채운다. 국방부 계약업체의 자금을 받는 싱크탱크 소속 학자들은 외교 정책을 다루는 의회 청문회에 단골 증인으로 불려 간다."(239-40)&nbsp;<br>9장 미국 과학의 군사화 : 상아탑 매수하기<br>"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군사 연구가 주요 공공 쟁점으로 떠올랐던 마지막 시기는 베트남전쟁 때였다. 당시 진보 성향 학생들은 캠퍼스가 국방부 자금 수주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일부 대학들은 국방부와의 관계를 바꾸었다. 어떤 경우에는 MIT의 일부였던 드레이퍼연구소Draper Labs처럼 독립 기관으로 분리되기도 했다. 다만 독립한 기관은 여전히 모교와 비공식 연계를 유지했다. 가장 중요한 움직임 중 하나는 국방부가 베트남에서 대량으로 사용하던 네이팜을 단독으로 공급한 다우 케미컬에 맞선 학생들의 항의였다. 컬럼비아대학교는 1968년 건물 점거와 학생 700명이 부상당한 경찰 진압, 한 학기 전체 수업 중단 끝에 기밀 군사 연구와 캠퍼스 내 군대 모집을 종료하기로 합의했다. 반전 시위는 미국 전역의 캠퍼스로 확산되었다. 학생들과 경찰, 주 방위군 간 충돌은 비극적 결과를 낳았는데, 1970년 5월 켄트주립대학교와 잭슨주립대학교에서 시위 학생들이 사망한 사건이 대표적이다."(250-1)<br>"그 이후 오랫동안 군사 연구에서 대학이 맡는 역할은 대다수 미국 캠퍼스에서 별로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파괴적 공격에 대한 반발로 대학과 군 사이 유대 관계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이스라엘의 잔혹한 학살 작전에 반대하는 시위가 미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동안, MIT에서는 ‘집단 학살 반대 과학자들SAGE’ 같은 단체들이 이스라엘로부터 군사 연구 자금을 더 이상 받지 말 것을 요구했다. MIT 지도부는 이를 거부했는데, 그러한 요구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학문의 자유에 민간인 집단 학살에 사용될 수 있는 도구를 만들 자유까지 포함된다고 가정하지 않는 한, 이 논리는 학문의 자유라는 개념을 새롭게 해석한 셈이었다. 완전한 수치가 공개된 가장 최근 회계 연도인 2022년에만 국방부는 미국 대학들에 80억 달러 이상을 군사 연구개발 자금으로 투입했으며, 그중 13개 대학은 각각 1억 달러 이상을 수주했다."(251-2)<br>"대학에 대한 국방부의 영향력은 흔히 무기 관련 연구와 연결되지만, 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자금 지원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국방부가 지원하는 사회과학 연구는 특히 잠재적 적의 행동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연구 의제에는 원래 해외 적대 세력을 상대로 쓰이던 기법을 국내 대중에게 적용하도록 정교화하는 작업도 포함되어 있었다. 심리학자들은 또 다른 논쟁적인 방식으로 동원되었는데, 바로 쿠바 관타나모만수용소, 이라크 아부그라이브교도소 등지에서 CIA의 고문 프로그램에 조언자로 참여한 것이다. 현재로서는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사회과학 프로그램 가운데 심리학자들을 동원해 CIA의 고문 체제를 개발, 실행하게 한 것만큼 파렴치한 사례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국방부가 AI로 구동되는 자동화 전쟁을 현재 방식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효과적인 개선책이라고 대중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새로운 국방부 지원 연구는 장차 심각한 인명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269, 273-4)<br>10장 미디어 포섭 : 프로파간다로 전쟁 기계에 힘 실어주기<br>"1991년 1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베트남전쟁 이후 미국이 수행한 첫 번째 대규모 해외 전쟁이었다. 잔혹하고 파괴적인 베트남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 대중은 해외 개입에 염증을 갖게 되었고, 이 현상은 ‘베트남증후군’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국방부와 군 수뇌부, 동맹은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내는 군사 목표 외에 선전 목표 또한 이루고자 했다. 바로 베트남증후군을 종식시키고 군사 개입에 다시금 긍정적인 이미지를 씌우는 일이었다. 화려한 언변과 강경한 발언이 미국중부사령부 사령관인 노먼 슈워츠코프와 합참의장 콜린 파월의 브리핑을 가득 채웠다. 여기에 더해 미군의 폭탄이 항상 목표를 정확히 명중하는 장면만 보여주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참혹한 현실은 결코 비추지 않는 영상 클립들이 능숙하게 활용되었다. 전쟁을 피 한 방울 보이지 않게 전하는 이런 세련된 첨단 영상은 군사 개입과 정부의 무력 사용 명분 모두에 깊은 회의를 품었던 대중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280-1)<br>"그러나 군사 분석가 앤드루 바세비치가 지적했듯이 1991년 걸프전쟁은 30년 넘게 이어진 분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1990년대에는 군사 개입에서 제재와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그리고 2003년 이후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개입과 사담 후세인 축출로 이어졌다. 가장 최근의 중동 장기전 단계에서 미국 정부 관리들이 예측했던 ‘손쉬운 승리’(전직 국방부 관리 케네스 애덜먼의 표현대로라면 〈식은 죽 먹기〉)는 실현되지 않았다. 또한 전쟁이 장기화되자 2003년 침공 이전 부시 행정부 관리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값싸게〉 끝나지도 않았다. 브라운대학교 ‘전쟁 비용 프로젝트’의 분석에 따르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20년 넘게 지속된 전쟁의 비용은 무려 2조 9000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이라크 개입 직전 부시 행정부의 수석 경제 고문 로런스 린지가 당시 추산한 1000억~2000억 달러를 거의 15배나 초과한 규모였다. 1991년 걸프전쟁(페르시아만전쟁)은 뒤따른 장기전을 무시했을 때만 〈빠른 승리〉였다."(282-3)<br>"주류 언론이 더 잘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든, 독립 언론의 청중을 키우고 확산시키는 것이든, 군산복합체를 통제하거나 미국이 직면한 시급한 국내외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든 노력에서 필요한 변화는 군산복합체의 영향력 축소를 넘어선다. 근본 문제는 미국 예외주의라는 개념에 대한 대중의 잘못된 중독이다. 즉 미국의 의도는 언제나 선하고, 미국은 거의 항상 옳으며, 미국은 전 세계에 평화와 민주주의를 확산시킬 특별한 사명을 지녔다는 발상이다. 전쟁과 전쟁 준비보다 외교, 경제, 문화 교류를 중시하는 균형 잡힌 대외 정책이 가져올 다면적인 이점을 대중에게 교육함으로써 그런 환상적 세계관을 상쇄할 필요가 있다. 더 나은 언론 보도는 덜 군사화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성공적 노력 중 하나일 뿐이지만 또한 필수 요소다. 거대한 전쟁 기계와 군사 우선 대외 정책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과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전쟁 기계를 통제하는 데 필요한 민주적 대항 세력을 결집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298-9)<br>11장 마음과 정신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 : 할리우드와 전쟁 세탁<br>"만약 당신이 어떤 스포츠 경기든 관람해봤다면, 가장 오래된 군사 오락 중 하나인 공중 분열식flyover(행사용 편대 비행, 저공 비행)을 바로 눈앞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2024년 슈퍼볼 경기장 상공에서 F-16 전투기 6대가 정렬 대형을 이루며 하늘을 가르듯 날아 내려오면서 창문을 흔들자 관중석에서는 탄성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대중의 시선은 하늘을 나는 6대의 전투기에 쏠려 있지만, 실제로 선더버즈는 130명 규모의 대규모 비행대이며, 그들 중 상당수의 임무는 명확히 홍보다. 그리고 그들의 일정은 떠돌이 세일즈맨조차 지칠 정도로 빡빡하다. 이 프로그램에 연관된 모든 이들(선더버즈 조종사, 항공기 정비사, 홍보 전문가, 사진가 등)은 시간 중 대부분을 한 공연에서 다음 공연으로 이동하며 보낸다. 2024년 한 해만 해도 슈퍼볼과 자동차 경주 데이토나 500, 인디애나폴리스 500에서 선보인 공중 분열식 등 전국 각지에서 34차례 공개 행사에 참여했고, 그중에는 20번이 넘는 에어쇼 공연도 포함되어 있었다."(300-1)<br>"냉전 시기, 아니 그 이후까지도 군의 위상 선전에 영화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은 단연 〈탑건Top Gun〉이었다. 이 영화는 미군에 매우 중요한 시점에서 등장했다. 극심한 반발을 일으킨 베트남전쟁 후유증에서 벗어나려고 여전히 애쓰는 한편, 소련을 군비 경쟁에 지치게 해 항복시키려는 레이건 행정부의 군비 확장 정책이 한창일 때였다. 실제로 〈탑건〉이 개봉하기 1년 전인 1985년 미국 정부의 국방비 지출은 냉전 기간 전체를 통틀어(물가를 고려하더라도) 최고 수준이었다. 레이건은 소련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펜타곤에는 〈탑건〉이야말로 그 엄청난 군비 지출을 정당화해주는 최고의 선전물이었던 셈이다. 더구나 〈탑건〉은 모병률을 8%나 끌어올렸다. 이는 놀라운 수치였다. 제작진이 사용한 모든 군 장비의 총가치는 수십억 달러에 달했지만, 전체 제작 예산은 약 1500만 달러에 불과했다. 해군은 장비 사용료보다 훨씬 더 값진 대가를 원했다. 바로 시나리오 통제권이었다."(314-6)<br>"《밀리테인먼트 주식회사》(2009)의 저자인 로저 스탈의 연구는 미군이 할리우드에 얼마나 깊이 개입해왔는지를 이해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요컨대 영화 제작자가 군사 장비나 군의 전문 지식을 활용하고 싶다면 군의 규칙에 따라야 한다. 보통 이 과정에서 엔터테인먼트연락실이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대사를 수정하며, 심지어 영화나 TV 프로그램의 줄거리 자체를 바꾼다. 제작자가 이런 변경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군의 지원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엔터테인먼트연락실이 이렇게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들의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그들의 ‘장난감(군 장비)’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인터뷰한 여러 엔터테인먼트업계 인사들에 따르면, 오늘날 군과 협력해 영화를 제작할 때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은 절대 해선 안 되는지’는 업계에 잘 알려져 있다. 아예 처음부터 엔터테인먼트연락실이나 각 군의 할리우드 담당 부서가 불쾌해할 만한 내용은 제안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319-20)<br>12장 군대를 더 ‘디즈니스럽게’ 만들기 : 펜타곤과 게임산업<br>"2000년대가 시작될 무렵 많은 사람들은 화면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고 그에 따라 신체 활동이 줄어드는 현상을 위기로 보았다. 그러나 미군은 이를 자동화된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인재를 찾을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2001년 미국 육군과학위원회는 〈현대 청소년들의 기술과 태도는 그들의 윗세대와 다르고, 이는 미국의 새로운 ‘무국가형 적stateless enemies’과 싸우는 전쟁 수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연구는 특히 청소년들이 여러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예컨대 음악을 들으면서 휴대폰으로 통화하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능력이다. 이에 따라 미군은 2001년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군은 더 이상 포신砲身의 물리학을 가르치는 데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근접 시가전에서 매우 빠르게 상황을 식별하고 판단하는 인지적 의사결정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훈련의 상당 부분은 신병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상업용 비디오게임을 본뜬 시뮬레이터를 통해 이루어질 참이었다."(329-30)<br>"게임 기술은 냉전 이후 규모가 축소된 군 조직에 잘 맞았다. 군이 예비군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는 가운데, 예비군은 시뮬레이션 덕분에 어디에서든 훈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비용이 절감되었고 예비군 훈련의 부담이 줄었다. 또한 군사 훈련에서 시뮬레이션의 활용이 늘어난 시점에 실제 군사 작전 자체도 점점 게임과 닮아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드론 조종사들인데, 이들은 외국의 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원격 조종으로 공격을 수행했다. 오늘날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로보틱스 및 무인 시스템 통합 과정RUSIC’이다. 이 과정은 6주간의 드론 전쟁 훈련 프로그램으로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리버티에 위치한 미국 육군 존F.케네디특수전학교에서 진행된다. 이 과정과 다른 훈련 부대를 총괄하는 스티브 슈어맨 소령은 〈처음에 드론을 한 번도 조종해보지 않았던 수련생들은 6주 과정을 거치면 1인칭 시점 공격을 지능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다〉라고 말한다."(333-4)<br>4부 전쟁 기계의 미래<br>13장 멋지고 새로운 전쟁 기계 : 빅테크와 군수산업의 미래<br>"전쟁 기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이 변화를 주도하는 벤처캐피털 펀드들과 방위기술기업들은 조종사 없는 무기 체계와 극초음속 무기, AI가 통합된 통신·통제 시스템 등 많은 기술 변화를 이끌 차세대 첨단 무기를 공급하고자 한다. ‘기적의 무기’ 개발을 통해 군사력 중심의 대외 정책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낯설지 않은 접근 방식이다. 그것은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미국이 치른 주요 전쟁에서 반복적으로 실패해온 방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산업계와 금융권, 국방부 내의 신세대 전쟁론자들은 지난 60년간 전쟁이 남긴 핵심 교훈을 무시하고 있다. 기술만으로는 승리를 보장할 수 없으며, 특히 사회적·정치적·민족주의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힌 전쟁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교훈을 말이다. 신기술 전사들은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국방부가 록히드 마틴과 RTX, 보잉 같은 거대 방산기업들을 제쳐두고 자신들을 무기 개발의 최전선에 세우기만 하면 된다고 본다."(340, 343)<br>"팔머 러키는 서른두 살의 억만장자이자 군수산업의 새로운 핵심 주자인 안두릴의 창립자다. 그는 2012년 처음 출시되자마자 큰 인기를 끈 가상현실 헤드셋 개발사 오큘러스 VROculus VR을 매각하면서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는 스물두 살 때인 2014년 오큘러스를 마크 저커버그의 메타Meta에 20억 달러 이상을 받고 팔았다. 차세대 살상 무기를 생산하는 회사를 이끌고 있으면서도 러키는 여전히 게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게임이라는 환상의 세계를 넘어 현실로 돌아와, 러키는 군사 기술기업을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유명한 검 ‘안두릴’을 회사 명칭으로 정했다. 러키는 실리콘밸리의 논란 많은 군사 계약업자 피터 틸로부터 재정적·도덕적 지원을 받아 안두릴을 설립했다. 틸 역시 공동 창업한 회사 이름 ‘팔란티어’를 《반지의 제왕》에서 가져왔다. 이 소설에서 팔란티어는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파괴 불가능한 돌이다."(349-52)<br>"안두릴은 공중용과 수중용 드론뿐 아니라 첨단 통신 시스템과 감시 시스템도 제작한다. 그중 가장 야심 찬 제품은 래티스Lattice로, 모든 사용 가능한 정보원을 통합해 군 지휘관의 손에 신속하게 전달하는 정보 수집 시스템이다. 또는 회사 웹사이트에서 말하는 것처럼 〈래티스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규모와 속도로 기계 간 작업을 조율해 복잡한 킬 체인kill chain을 가속화한다.〉 우리가 신중하게 다루지 않을 경우 신세대 군사 기술기업이 생산하는 제품들은 인간의 통제가 거의 또는 전혀 없는 로봇 전쟁을 현실로 만들고, 이는 많은 인명 피해를 초래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로 이어질 수 있다. 러키는 기술군사주의techno-militarism를 홍보하는 데 거침이 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는 언제나 선한 목표를 위해 다른 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에 열정과 흥분을 느끼는 전사 계층이 필요합니다. … 자유를 지키기 위해 폭력의 도구를 만드는 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352-3)<br>"다음은 팔란티어의 창립자 피터 틸이다. 그는 실리콘밸리 군사 기술 혁명의 사실상 대부로 불릴 만하다. 팔머 러키, 피터 틸, 일론 머스크와 이들의 동료들은 반정부 정서가 강하고 현실 인식이 왜곡되어 있다. 그렇기에 세계정세가 불확실하고 위험한 이 순간에 미국의 군사 정책을 설계하기에 가장 부적합한 인물들이다. 주요 무기 제조업체들이 선호하는 접근법과 달리, 실리콘밸리의 많은 군사 신기술 옹호자들은 당파성이 철저하고, 도널드 트럼프나 J. D. 밴스 같은 주요 공화당 후보들에게 돈과 영향력을 쏟아붓는다. 이에 비해 록히드 마틴이나 RTX와 같은 기업들은 양쪽 정당의 관계자들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이는 정치적 우위가 언제 바뀌더라도 여전히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더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틸과 같은 극단적 자유지상주의자libertarian들은 탐탁지 않게 여긴다. 이들은 기술기업이 사실상 어떤 업무에서든 정부를 능가할 수 있다고 믿는다."(355-6)<br>14장 전쟁 기계에서 평화 기계로<br>"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평화 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는 군사주의를 직간접으로 다루는 다양한 단체와 운동이 결집한 형태여야 한다. 다시 말해 새로운 평화 네트워크는 국경의 군사화와 경찰의 군사화, 예산 우선순위의 군사화, 할리우드의 군사화, 대학의 군사화,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 주범이자 석유 국가들의 수호자로 기능하는 펜타곤으로 인해 악화된 기후위기의 군사화까지 망라하는 군사주의의 모든 형태를 변혁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nbsp; 이처럼 더 큰 규모의 평화 네트워크가 필요한 것은, 미국 사회의 군사화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국민적 압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워싱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고 있으며 중국과 관계에서 점점 더 군사화된 접근을 하고 있는데, 이는 국방부 예산에서 민생을 위한 지출로 방향을 전환하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전쟁 기계는 사실상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있으며, 이를 되돌리려면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375, 378)<br>"중국의 경우 미국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은 군사 분야가 아니라 정치와 경제 분야다. 핵무장을 한 대국과 그 나라 앞마당에서 벌이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무장을 강화하는 것은 위험하며, 심각한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미중 간 충돌은 핵 대결로 비화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모든 당사자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더 나은 길은 대만의 지위, 핵무기 정책과 배치, AI가 통제하는 로봇 무기 같은 신기술의 규제 방안 등에 대해 두 나라가 진지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또한 기후변화 억제와 미래 팬데믹 방지, 세계 경제 안정이라는 과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려면 미중 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미래를 위한 구상과 그것을 정책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지금 가장 결여된 핵심 요소가 힘이다. 군산복합체가 지닌 막대한 권력과 영향력을 상쇄할 만큼의 정치적 힘 말이다. 이 힘은 놀랍게도 우리 각자에게서 시작된다. 이웃인 우리, 노동자인 우리, 안전하고 번영하는 국가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의 동반자인 우리에게서 나온다."(380-2)<br>에필로그 : 머스크 · 트럼프 시대의 전쟁 기계<br>"트럼프의 과거 행적(예컨대 북한과 핵 감축 대화를 하다가도 〈화염과 분노〉로 위협하던 행태)을 보면,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한 복잡한 핵 협상에서 일관된 노선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2기 취임 한 달도 안 되어 국제무대에서 핵 평화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것은 그런 이미지를 취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음을 보여준다. 핵심 질문은 이렇다. 트럼프 지지층 중 반전 성향의 인사들이 전통적인 군축 단체나 진보 진영과 연대해 국방비 지출과 핵 정책 문제에서 정부를 압박할 수 있을까? 미국 사회의 깊은 분열을 고려하면 이런 좌우 연대는 실현 가능성이 낮을지 모른다. 하지만 서로 다른 정치 진영의 여러 단체가 독립적으로라도 군산복합체의 확장을 제한하라고 요구한다면 실제로 변화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바로 ‘지금 당장의 긴박함’이다. 앞으로 몇 년 사이에 우리가 이 과업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없을지가 판가름 날 것이다."(388-9)]]></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05/22/cover150/k3221369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052261</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저녁</category><title>보수 본능 / 최정균 - [보수 본능 - 자본주의, 기독교, 음모론, 민족주의, 반페미니즘을 추앙하는 사피엔스의 본성에 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219877</link><pubDate>Thu, 16 Apr 2026 07: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21987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382636370&TPaperId=172198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05/79/coveroff/e3826363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382636370&TPaperId=1721987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보수 본능 - 자본주의, 기독교, 음모론, 민족주의, 반페미니즘을 추앙하는 사피엔스의 본성에 대하여</a><br/>최정균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07월<br/></td></tr></table><br/>들어가며: 도대체 보수란 무엇인가<br>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극우가 아니라 보수 전체다. 극우는 단지 보수의 극단적인 형태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 더 강한 보수적 성향을 타고났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둘은 정도의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생물학을 따른다. 또한 같은 사람일지라도 그가 처한 환경이나 사회적 상황에 따라 보수에서 극우로 발전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바로 이러한 마땅한 의심으로 보수 전반을 평가하고자 한다. 중도적인 보수주의자들은 스스로가 ‘합리적’이라며 극우와 선을 긋는다. 그러나 우리가 보수의 이념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중도 보수나 극우나 똑같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다만 그 신념에 얼마나 매달리는가 또는 그 신념을 어떻게 실현하려 하는가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보수의 이념이 합리적이지 않다면, 애당초 합리적인 보수란 존재할 수 없다. 온건하기는 하지만 합리적이지 않은 보수와 비합리적인 데다가 과격하기까지 한 보수만 있는 것이다. 7)<br>1장　보수의 심리: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따로 있다<br>정치 성향과 관련해 오랜 기간 체계적으로 연구된 대표적인 세 가지 심리학적 기제는 체제 정당화system justification , 사회 지배 지향성social dominance orientation , 그리고 우익 권위주의right-wing authoritarianism다. 흥미로운 것은 주어진 체제를 정당하게 여기는 것, 사회의 지배 구조를 옹호하는 것,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성향은 모두 보수의 특성이다. 이 세 가지 가운데 보수의 사전적 의미, 즉 전통을 지킴으로써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과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은 체제 정당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보통 기득권층이 체제를 정당화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회적 약자나 체제에 피해를 입는 이들도 체제를 정당화할 수 있다. 바로 이 문제가 체제 정당화 이론의 핵심이며, 존 조스트John Jost가 처음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정당화, 즉 어떤 생각 또는 행동 유형에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지지하는 태도는 여러 사회심리학 이론들의 기반이 되어왔다. 14-5)<br>이러한 심리는 크게 세 가지 형태, 즉 자기 정당화, 집단 정당화, 그리고 체제 정당화로 구분할 수 있다. 자기 정당화는 기득권자들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고정관념을 활용하는 경우에 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사회적 혹은 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고 그 결과로서 가난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는 고정관념을 가질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집단 정당화는 자기 정당화를 확장된 자아, 즉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 확대한 개념으로, 자신과 사회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 구성원들의 행동을 방어하는 상황에서 주로 나타난다. 집단 정당화 과정에서는 직접 대면해 본 적 없는 다른 집단에 대해, 자기 집단 속 다른 이들의 고정관념을 공유하는 일도 일어난다. 이와 달리 체제 정당화는 비주류 집단이나 소외 계급이 스스로에게 이득이 되지 않거나 해를 입는 상황에서도 기존 체제를 수용하거나 심지어 옹호하는 현상을 다룬다. 체제 정당화는 자기 정당화나 집단 정당화보다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15-6)<br>우리가 경험해 아는 보수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어떤 내재적인 가치관, 신념, 심리적 기조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적극적이거나 능동적인, 때로는 과격한 행동까지 동원함으로써 사회나 체제의 변화를 주도하거나 급진적으로 뒤바꾸기도 한다. 반대로 현실의 진보 역시, 사전적인 의미와 달리, 특정 가치관과 신념을 가지고 체제의 변화에 격렬하게 저항하기도 한다. 따라서 체제 정당화가 사전적인 보수와 일치할지는 몰라도 실제 보수와는 일치하지는 않는다. 보수를 사전적 정의나 체제 정당화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보수적인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편견, 혐오가 그들의 본성과 같이 너무나 확고하며 때로는 비이성적일 만큼 과격하고 위험한 행태로까지 나타난다는 것을 우리가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를 쓰고 고수하는 것은 단지 그들의 뿌리 깊은 본능일 뿐, 무슨 고상한 인식론적, 실존적, 관계적 동기를 가지고 체제를 지키려 한다는 고차원적인 설명은 그저 잘 포장된 핑계로 들릴 뿐이다. 17-9)<br>사회 지배 지향성과 우익 권위주의 이론에서는 진화의 결과로 나타난 인간 본성을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한다. 사회 지배 지향성은 특정 개인이나 계층이 다른 이들을 지배하는 것을 옹호하는 성향을 말한다. 즉, 힘과 능력에 기반한 위계를 지지하는 폭넓은 지향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지배 지향성이 높은 사람들은 사회적 불평등을 정당한 것으로 여기며 계층적 질서를 선호한다. 한편 우익 권위주의는 사회적으로 부여된 권위를 인정하고 그에 복종하며, 권위에 반하는 이들을 배척하고, 기존의 규범과 전통을 따르는 성향을 말한다. 이는 크게 세 가지 요소로 나뉜다. 첫째는 권위에 대한 순응이다. 정치적, 종교적, 군사적 권위 등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경향을 말한다. 둘째는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성이다. 체제에 반하는 개인이나 집단을 강하게 배척하며, 강력한 법과 질서를 통한 체제의 유지를 원한다. 셋째는 전통적 가치관과 사회적 관습을 고수하려는 태도다. 19-20)<br>사회 지배 지향성은 세상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정글로 인식하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힘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믿음으로서, 이들은 타인을 지배하고 우위에 서려는 동기를 지속적으로 갖는다. 이러한 세계관을 가진 이들은 사회적 불평등과 권력의 차이를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며, 부자나 기업에 대한 세금 인상, 복지 확대, 무상 또는 평준화 교육과 같은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반면 우익 권위주의는 세상을 위험하고 위협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곳으로 인식하며, 질서와 안정, 기존 규범을 중시한다. 따라서 새로운 것을 경계하고 규칙을 중시하는 성격적 특성과도 연결된다. 사회 지배 지향성이 주로 경제적 측면을 중심으로 형성된다면, 우익 권위주의는 전통적 가치, 국가 안보, 사회 규범 등에 대한 태도를 설명한다. 과학에 대한 보수의 부정적인 태도도 우익 권위주의로 설명할 수 있다. 우익 권위주의는 주로 사회적 위협을 인식했을 때 촉발된다. 20-1)<br>사회 지배 지향성과 우익 권위주의는 인간의 진화적 본성을 비중 있게 다룬다. 이것이 체제에 대한 유연한 심리적 반응에 더 큰 무게를 둔 체제 정당화 이론과의 차별점이다. 그러나 집단 수준에서 유리한 어떤 형질이 진화적으로 선호된다는 가정은 생물학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기존 체제를 합리화하거나 우월성과 능력에 따른 위계와 차등적인 분배를 옹호하며 사회적 관습, 규범,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심리의 기저에 진화적 압력이 작동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체 수준에서 일어났어야 한다. 이렇게 개체 수준의 진화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종교성이다. 우리 선조들은 적과 포식자를 탐지하거나, 자연 현상과 사건들의 원인을 추론하거나, 싸울 것인지 협력할 것인지를 두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인지 능력이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행위자 탐지agent detection, 인과관계 추론causal reasoning,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 초자연적 존재인 신에게 투영된 것이 종교의 기원일 수 있다. 24-5)<br># 보수의 심리&nbsp;1. 그저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축된 것이 우리의 사회 체제다. 혁명은 예외적이며 일시적이다. 이것이 보수가 기성 체제를 옹호하는 이유다.&nbsp;2. 보수가 지키려 하는 것은 체제가 아니라 본능이다. 체제를 정당화하는 동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을 정당화하는 체제가 존재하는 것이다.&nbsp;3.&nbsp; 사회 지배 지향성은 돈과 권력, 우익 권위주의는 권위와 관습에 대한 노예근성이다. 권위와 비교해 권력은 더 동물적이다. 고로 권력의 논리에 사로잡힌 현대판 노예들이야말로 야만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nbsp;<br>2장　보수의 뇌: 참을 수 없는 불확실성의 두려움<br>내재성 휴리스틱inherence heuristic은 사람들이 어떤 현상의 원인을 내재적인 속성 때문이라고 간단히 추론해 버리는 인지 전략으로, ‘원래 그렇다’ 혹은 ‘그럴 수밖에 없다’라는 식의 본질주의적 사고방식을 말한다. 많은 현상은 다양한 외적 요인들이 작용해 발생하지만 그러한 정보 수집과 해석에 노력을 들이는 대신, 상대적으로 쉽게 얻을 수 있는 내적 요인으로 설명함으로써 인지적 종결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내재성 휴리스틱과 유사한 개념으로 가격-품질 휴리스틱price-quality heuristic이 있다. 한마디로 어떤 상품이 값비쌀 때 곧바로 그것이 우수한 품질이나 성능을 지녔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것이다. 상품의 품질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은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기에, 제품이 질적으로 우수하기 때문에 높은 가격이 매겨져 있다고 간단히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심피언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내재성 휴리스틱은 우리의 본능과 같아서 매우 어린 시기부터 작동하기 시작한다. 29-30)<br>그런데 휴리스틱에 대해 심리학에서 그다지 주목되지 않은 것이 그것의 적응적 측면이다. 여러 사람에게 어떤 인지적 성향 혹은 선호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그에 대한 진화적 기원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윈의 성선택sexual selection&nbsp; 이론과 행동생태학자 아모츠 자하비Amotz Zahavi의 핸디캡 이론handicap theory 을 알아야 한다.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들을 살펴보면 크고 화려하며 노래하거나 춤추는 것은 거의 예외 없이 수컷이다. 여기서 다윈은 생존에 불리해 보이는 수컷의 형질과 행동이 암컷에게 짝짓기 상대로 선택되는 면에서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다윈의 이론에서는 생존에서의 불리함과 번식에서의 유리함을 연결하는 메커니즘이 확실하지 않았다. 이 빠진 퍼즐 조각을 맞춘 것이 바로 핸디캡 이론이다. 자하비는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핸디캡 그 자체가 암컷이 수컷을 선택하게끔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값비싼 신호costly signal’라고 불렀다. 32)<br>미국의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Geoffrey Miller는 이러한 성선택과 신호 이론의 관점으로 인간 고유의 자질들을 설명하고자 했다. 밀러는 그의 저서 『연애』에서 인간의 복잡한 특성들을 짝짓기 경쟁의 부산물로 보면서, 인간이 생존 기계가 아닌 연애 기계라고 주장한다. 지능, 창의성, 예술적 감성, 유머 감각 등은 모두 생식 성공을 위한 신호로 작동하며, 따라서 진화적인 적합도 지표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밀러는 더 나아가 『스펜트』에서 비싼 차나 미술 작품 등을 구매하는 현대인의 과시적 소비 행동도 이러한 신호 전략의 일부라고 설명한다.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 은 일찍이 그의 명저 『유한계급론』에서 이러한 과시적 소비를 비판한 바 있다. 이처럼 동물로서 우리 인간은 다른 개체가 과시하는 속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도록 진화해 왔다. 이것이 바로 내재성 휴리스틱이 타인을 대상으로 작동할 때 우리 안에서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33-4)<br>뇌의 정보 처리와 추론 방법을 설명할 때 휴리스틱 이론이 직관에 기반한다면, 베이지언 뇌Bayesian brain 이론은 확률에 기반한다. 베이지언 뇌에서 확률은 사람들이 특정 사건이나 명제에 대해 가지는 신념도 혹은 불확실성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뜻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내일 비가 올 확률이 80퍼센트라고 말할 때, 주관적 베이즈주의자는 그 사람이 내일 비가 올 것을 80퍼센트 확신한다고 해석한다. 뇌는 세상에 대한 선험적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베이지언 통계에서 사전 확률prior probability에 대응한다. 그리고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뇌는 믿음을 조정하는데, 이는 이론에서 사후 확률posterior probability에 대응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이 똑같이 0.5라고 생각한다. 반면 편향을 가진 사람은 동전이 조작되어 앞면이 나올 확률이 0.8이고 뒷면이 나올 확률이 0.2라고 믿는다. 이렇게 사전 확률에 차이가 있으면 같은 결과를 가지고도 사후 확률이 다르게 계산된다. 35-6)<br>보수적 베이지언 뇌가 지닌 선험적 믿음의 방향성은 혐오, 행동면역계, 교감신경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생존에 필수적인 능력들 중 하나는 위험한 대상을 재빨리 인식하고 그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복잡하고 정교한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보다 단순하고 즉각적인 감정적 반응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위험한 것을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것보다는 안전한 대상을 위험하다고 착각해 과잉 대응 하는 편이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불확실한 대상에 대한 유전자의 두려움이 진화 과정에서 혐오의 감정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렇게 진화한 심리적, 행동적 기제를 ‘행동면역계 be-havioral immune system’라고 한다. 즉, 행동면역계는 병원균의 가능성을 알리는 지각 신호에 반응해, 혐오와 같은 심리 반응이나 회피와 같은 행동 방식을 유도한다. 최근에는 행동면역계가 분자와 세포 수준에서 작동하는 생리학적 면역 반응과 연결된다는 보고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37)<br>여러 뇌 영상 연구들에서 발견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과 뇌섬엽insula cortex이라는 뇌 부위의 역할이다. 먼저 강한 보수 성향이 더 큰 편도체amygdala로 나타났다면, 더 강한 진보 성향은 더 큰 전대상피질의 부피로 나타났다. 또한 보수에게서 편도체가 활성화되는 행동실험 상황에서 진보 성향의 사람들은 뇌섬엽이 더 많이 활성화되었다. 전대상피질과 뇌섬엽의 기능은 경제적 의사 결정, 예컨대 자원을 분배하는 상황에서도 나타난다. 이에 관한 대표적인 실험이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다. 여기서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제안이 불공정하다고 느낄 경우 그 제안을 거절한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본인에게 금전적으로 더 이득일지라도 말이다. 이렇게 불공정한 제안을 받을 때 전대상피질과 뇌섬엽이 활성화된다. 이는 공정성에 대한 의식이 단순히 손익 계산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경생물학적 기반을 가진 정서적 반응임을 시사한다. 41-2)<br>쉽게 말해, 이 뇌 기관들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감지하고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상충하는 정보, 기대를 저버리는 불공정, 사회적 부조리와 고통 등을 모두 오류로 인지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종교적 신념이 갈등 탐지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종교적 개념에 노출된 신앙인들의 뇌에서는 전대상피질에서 발생하는 오류 반응이 약화된다. 즉, 종교적 신념이 오류에 대한 불안 반응을 완충시킴으로써 갈등을 회피하거나 외면하게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종교의 성인들을 우러러보는 이유는 인간 세상의 부조리와 고통을 깨닫고 그것을 초월하는 해탈의 길을 제시하거나, 심지어는 죽음을 감수하고 그에 맞서 투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현대 종교의 교리는 신앙인들의 종교성만을 자극하며 세상의 아픔을 회피하거나 정당화하게 하는 심리적 방어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종교가 점점 사회적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42)<br># 보수의 뇌1. 보수의 뇌에서 휴리스틱이 많이 사용되는 이유는 불확실한 상태를 견디지 못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빨리 결론에 도달하고자 하는 인지적 ‘종결 욕구’ 때문이다.&nbsp;2. 의식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인간의 휴리스틱 본능은 왜곡된 능력 과시마저 정직한 신호로 착각해 받아들이게 한다. 이처럼 값비싼 신호가 교란된 상태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기득권층이다.&nbsp;3. 기존 신념을 고수하는 보수적 베이지언 뇌는 불확실한 대상을 무조건 과잉 경계 하는 진화적 습성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편향성이 끼치는 폐해는 인공지능의 문제보다 더 시급하게 다루어야 할 ‘자연 지능’의 현실적인 위험이다.&nbsp;<br>3장　보수의 유전자: 대대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들<br>인간의 행동과 같은 어떤 형질들이 복잡해 보이는 이유는 유전자로부터 그 형질까지의 경로가 길고 복잡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생명체가 유전자의 조절하에 제대로 작동할 수 없고,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도 작동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험실에서 특정한 유전자형을 도입해 형질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것처럼, 자연적으로 생기는 유전자형도 형질에 곧바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오히려 형질의 복잡성은 여러 유전자들이 병렬적으로 함께 작용하기에 나타난다. 복잡한 형질일수록, 혹은 더 많은 유전자가 관여할수록 개별 유전자의 영향력은 작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 개별적인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환원주의적 접근이 가능한 이유다. 모든 자연 현상은 개별 요소들로 환원할 수 있기에 자연과학은 환원주의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환원되지 않는 창발 현상에서도 개별 요소들의 영향력이 존재한다. 다른 유전자형을 지닌 사람들이 같은 환경 조건에서도 분명한 표현형의 차이를 보이는 이유다. 47-8)<br>인간의 공격성과 지배적 행동 중 일부는 성적인 행위의 일환으로 추정된다. 또한 편도체와 교감신경이 주도하는 불안 및 공포 반응도 출산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환경적 불안정성이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건강 기대수명이 짧고 평균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이 첫 출산 연령이 더 낮고 자식의 수가 더 많다. 그런데 주관적인 불안감도 출산 욕구에 영향을 준다. 예컨대 자연재해나 지역사회에 대한 테러를 경험한 경우, 거주지 인근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경우와 같이 불안 및 공포 반응이 유도되는 환경에서는 임신 욕구가 증가하고 실제 출산율이 늘어난다. 또한 단순한 심리적 조작으로 사망 위험성을 인지하게 하는 것만으로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자식의 수가 많아지고 첫 출산 연령이 낮아진다. 자신의 생존이 불확실하다고 느낄수록 번식을 통해 빨리 유전자를 남기고자 하는 욕구가 발생하는 것인데, 우익 권위주의 성향의 사람들이 그러한 경향을 더 강하게 드러낼 것이다. 52)<br>한편, 기존 연구들에서 정치성과 관련하여 직접 다루지 않았으나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인자 중 하나가 옥시토신 oxytocin 이다. 흔히 ‘사랑 호르몬’ 혹은 ‘모성애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옥시토신은 사회적 심리와의 연관성이 많이 알려져 있으며, 보수 성향을 대표하는 뇌 구조인 편도체와 관련해서도 다수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옥시토신은 우익 권위주의가 추구하는 내집단 중심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익 권위주의는 외집단을 위협으로 간주하며 그에 맞서 내집단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고취하고 협응을 강화하려는 속성을 가진다. 실제로 우익 권위주의와 내집단을 우선시하는 태도에는 같은 유전학적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옥시토신 회로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유전자들이 여기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향을 다른 말로 ‘지역적 이타주의parochial altruism’라고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은 물리적인 의미의 지역만이 아니라 특정한 공동체, 집단, 계층, 문화권 등을 포함한다. 53)<br>한편 사우스웨스턴대학교 연구진의 조사에서 진보 성향을 설명하는 도파민 수용체는 균형 선택의 흔적을 보였다. 여기서 ‘균형 선택balancing selection’이란 어떤 유전자형이 유리한 상황에서는 점점 많아지다가 상황이 바뀌면 반대로 다시 줄어들기도 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지능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져왔다는 맥락에서 진보 성향을 대표하는 뇌 부위인 전대상피질과 뇌섬엽이 지능과 관련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이들은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사고 능력인 유동성 지능fluid intelligence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동성 지능은 선천적 요인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어린 나이에 활발하게 작동하는 반면, 반대 개념인 결정성 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은 후천적 경험을 바탕으로 나이가 들수록 발달한다. 그러므로 문화의 발전으로 생겨난 새로운 생존 기술을 어릴 때부터 효과적으로 습득하기 위해 주로 요구된 것은 유동성 지능이었을 것이다. 56-8)<br>요컨대 보수적 본능이 인간 역사에서 대체로 우세하게 작용한 것과 비교해, 진보 성향을 설명하는 유전자들은 지금으로부터 머지않은 아주 가까운 시기에 이르러서야 활성화된 것으로 보인다. 문명의 발전은 생존과 번식에 대한 자연선택의 압력을 완화했고, 그 결과 보수적 본능이 약한 이들도 점차 더 많이 살아남게 되었을 것이다. 예컨대 편도체가 주관하는 교감신경, 싸움-도주 혹은 돌봄-방어 반응, 행동면역계 등의 작동이 약한 이들도 살인과 전쟁이 줄어든 사회에서, 그리고 감염 질환을 치료하는 의학이 발전한 상황에서 더 높은 수준의 생존 가능성을 확보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전대상피질과 뇌섬엽 등이 매개하는 유동성 지능 역시 문명화된 환경에서 생존과 적응에 더욱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의 생존을 수동적인 결과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인간의 자부심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조건을 뛰어넘는 데서 비롯한다. 인간의 문명은 자연을 넘어서기 위한 창조적 몸부림의 산물이다. 58)<br># 보수의 유전자1. 세로토닌, 옥시토신, 리포칼린 등을 둘러싼 유전자들의 생물학적 기능과 진화적 양상, 출산율 통계 등은 보수의 유전자형이 생존과 번식에 기여했음을 보여준다.&nbsp;2. 성공적으로 진화한 ‘다정한’ 자들의 사회성이란 편협한 이타주의, 집단 이기주의, 권력과 위계에 대한 복종에 불과하며, 그들이 잃어버린 공격성은 불의에 맞서는 데 필요한 투쟁심이다.&nbsp;3.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자부심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조건을 뛰어넘는 데 있다. 반면 진화에서의 ‘적응’이란 인간 조건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몸부림 없이 자연에 수동적으로 굴복하는 ‘순응’을 말한다.&nbsp;<br>4장　보수의 환경: 젊어서나 늙어서나, 부유해도 가난해도<br>같은 유전자형이라도 다른 환경 조건에서는 다른 표현형으로 나타날 수 있다. 유전자-환경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에서 세로토닌이 주관하는 위계적 행동과 우울증 간의 연관성은 진화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데이비드 린든David Linden 교수가 『우연한 마음』에서 설명했듯이, 학자들은 우울증과 같이 생존과 번식에 불리해 보이는 감정이 왜 지금까지 남아 있는지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사회적 지위가 낮은 경우에는 활력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생존에 유리하다는 가설이다. 이러한 상태가 자신의 공격성을 줄이는 한편, 지위가 높은 개체로부터 공격당할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가 낮아질수록 그에 따라 세로토닌 수치가 낮아지므로, 세로토닌 부족이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은 그러한 적응상의 이점 때문일 수 있다. 세로토닌 회로 체계가 발달시켰다고 하는 소위 ‘친사회성’과 공격성 감소라는 이면에는 우울증이라는 비극이 있는 것이다. 62-3)<br>반대로 세로토닌의 활성이 너무 높은 경우도 문제가 된다. 5-HTT에는 두 가지 유전자형이 있는데, 유전자형에 따라 세로토닌 재흡수 기능이 달라 세로토닌의 활성 정도도 다르다. 그런데 세로토닌 활성을 강화하는 유전자형을 지닌 이들에게서 편도체의 공포 반응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스트레스에 더 과민 반응 하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현대사회에서는 일상적인 갖가지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편도체의 교감신경이 싸움-도주 반응을 유발하기에, 5-HTT 유전자형에는 ‘예민한 유전자grouchy gene’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예상대로 예민한 유전자를 지닌 이들이 여러 우울증 척도에서 높은 수치를 보였다. 그러나 삶에서 경험한 스트레스 사건의 수가 많은 경우에만 그러했다. 최근에 이루어진 또 다른 메타분석에서는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기간, 최근에 겪은 스트레스 사건이 언제였는지와 같은 시간적 요소도 작용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요컨대 우울증이 유전자, 환경, 시간의 삼중 상호작용에 따른 결과라는 것이었다. 63-4)<br>남성들이 보이는 보수 성향이 주로 경제와 관련해 드러난다는 점은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성별에 따른 정치 성향 차이의 상당 부분은 경제적 보수주의인 사회 지배 지향성으로 설명되는 반면, 사회적 보수주의를 나타내는 우익 권위주의에서는 남녀 간에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우익 권위주의는 연령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위험’이라는 관점에서 형성되는 우익 권위주의의 근간에는 보수적 베이지언 뇌의 작용, 교감신경의 싸움-도주 반응, 옥시토신의 돌봄-방어 반응 등으로 매개되는 생존 본능이 있다. 위협에 대한 신체적 대응이 점차 둔화되는 고령층의 보수성이 사회적 보수주의로 이어지는 이유라고 하겠다. 한편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형성되는 사회 지배 지향성에는 내재성 휴리스틱과 신호 체계, 세로토닌, 페로몬 등이 주관하는 번식 본능이 있다. 이는 성공과 쟁취의 욕망으로 발현된다. 따라서 남성들, 특히 젊은 남성층의 보수성은 능력주의 기반의 경제적 보수주의로 나타난다. 71-2)<br>젊은 남성들의 보수화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남성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들의 번식 경쟁력에 대한 전망이 어두운 가정은 딸을 선호하게 되는데, 전 세계적으로 자유경쟁이 심화되어 감에 따라 이런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부모가 아들을 원한다는 이유로 태어나지 못하는 여아의 수가 무려 8분의 1로 줄어들 만큼 남아 선호도는 확연한 감소 추세다. 사실 보수를 자칭하는 젊은 남성들의 대표적인 특징이 바로 자신들을 사회적 약자 내지는 피해자로 여긴다는 점이다. 가정, 또래 관계, 학교, 직장, 혼인 시장 내에서 능력에 따라 남자들을 평가하는 인간 본성이 여전한 가운데, 신자유주의의 경제 이데올로기는 이제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자 생활 양식으로 곳곳에 스며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의 학업 성취와 사회적 성공이 일부 남성들의 부진을 더욱 부각시키면서 그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압박감이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 72)<br>이는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적 성향을 띠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대역폭 세금 bandwidth tax’이라는 개념은 인지적 자원에 부과되는 보이지 않는 세금을 의미한다. 즉, 빈곤한 상황이 정신적 여유 혹은 에너지를 고갈시켜 인지 기능을 저해하는 상황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렇게 인지 자원이 고갈되면, 기존의 믿음을 고수하는 보수적 베이지언 사고가 지배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깊이 있는 분석적 사고보다는 직관이나 간단하고 빠른 판단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작업 기억을 기반으로 하는 체계적 사고가 약해지면서 휴리스틱이 더 쉽게 작동한다. 특히 내재성 휴리스틱으로 인한 능력주의적 사고방식에 매몰되어 버리면, 성공은 타고난 이들의 것이며 그들이 누리는 혜택은 정당한 것이라는 세계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또한 사회 지배 지향성이 강화되어 여성에 비해 남성이, 이민자들에 비해 내국인들이 경제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72-3)<br># 보수의 환경1. 인간 정치성의 표현형을 만드는 공격적인 유전자, 예민한 유전자, 탐색 유전자 등은 경제를 비롯한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nbsp;2. 노화에 따른 보수성이 생존을 위협하는 개인의 생물학적 변화에 기인한다면, 젊은 남성들의 보수성은 번식을 향한 생물학적 본능이 경쟁적인 사회 환경에 반응해 나타나는 결과다.&nbsp;3. 오늘날 젊은 남성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권력에 종속시키는 신자유주의를 마치 절대적인 진리처럼 신봉한다. 결국 자신도 모르게 ‘자발적 노예’가 되어버린 이들은 스스로를 ‘비자발적 독신자’라 부르는 처지가 되었다.&nbsp;<br>5장　보수의 문화: 경쟁과 맹신과 배척의 본능들이 만든 세상<br>서문에서 지적했듯이, 겉보기에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광범위한 여러 사안들에 대해 보수는 일관된 입장을 보인다. 이는 그들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먼 과거 자연 속에서 생존과 번식에 성공하며 구축된 진화적 심리가 현대사회의 문화적 요소들에 반응해 발현되는 것을 보수라고 규정하면, 이 모든 현상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휴리스틱과 보수적 베이지언, 신호 체계에 기반한 번식 전략과 같은 인지심리학적 요소들과, 편도체, 교감신경, 행동면역계, 싸움-도주 혹은 돌봄-방어 반응, 페로몬 시스템, 전대상피질, 뇌섬엽과 같은 신경생리학적 요인들, 그리고 옥시토신, 세로토닌,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들은 현대사회의 다양한 사안들에 반응해 사회 지배 지향성이나 우익 권위주의와 같은 심리 기제로 나타난다. 이러한 자연적 본능에 따르는 가치관을 지닌 자연인들이 만들어 낸 문화,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보수주의다. 86)<br># 보수의 문화1. 보편적인 보수의 특징은 평등을 부정하고 자본주의적 경쟁을 옹호하는 사회 지배 지향성이다. 공산주의 정권을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하는 우익 권위주의는 강한 반공 정서를 형성한다.&nbsp;2. 성서의 내용을 왜곡해 교리로 고착시킨 기독교는 인간의 진화적 종교성을 충실하게 충족함으로써 보수의 핵심 사상으로 군림했다. 한편 과학에 대한 불신은 음모론 맹신으로 이어진다.&nbsp;3. 배타적 민족주의는 도덕적 범주가 협소해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 한정되기에 나타난다. 이민자,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배척은 전 세계 우파 정권과 근본주의적 종교의 공통점이다.&nbsp;<br>나가며: 그러면 진보란 무엇인가<br>정치적 동물로서의 인간은 기본적으로 호모 컨서버티버스Homo conservativus, 즉 보수적 사피엔스sapiens 다.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거나 비합리적이라고 보는 이들은 호모 리버럴리스Homo liberalis, 즉 진보적 사피엔스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다시 새로운 분기점 앞에 서 있다. 컨서버티버스가 지니고 있는 특성이 '조상형ancestral allele'이라면, '파생형derived allele'의 비율이 늘어날수록 사피엔스는 리버럴리스에 가까워질 것이다. 리버럴리스가 지닌 파생형은 주로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학습하고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자질들을 설명한다. 이들은 자연 상태에서는 생존에 불리하거나 눈에 띄지 않았을 특성들이지만, 문명의 보호 속에서 살아남고, 나아가 문명의 발전과 함께 더욱 번창해 왔다. 그러므로 호모 사피엔스의 분기를 촉진하는 것은 자연선택이 아닌 문명의 발전이다. 문명은 리버럴리스를 낳고, 리버럴리스는 문명을 더욱 발전시키며, 더 고도화된 문명은 더 많은 리버럴리스를 탄생시킨다. 89-90)<br>호모 리버럴리스의 도덕적 합리성은 ‘공정’이라는 이상으로 수렴한다. 만약 현재의 체제가 뒤바뀌어 능력 경쟁보다 평등이 중시되고, 남성보다 여성이, 백인보다 흑인이, 이성애자보다 동성애자가 주류인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진보주의자들의 태도는 어떻게 바뀔까? 그렇게 뒤바뀐 체제가 오랜 시간 유지된다면, 현 체제에 반항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이들이 다시 옛 체제를 바라게 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체제 아래에서도 이들이 지향하는 것은 공정성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능력, 성별, 인종, 성적 지향 등의 이유로 누군가가 다른 이들보다 우위에 서거나 차별을 받는 사회 구조는 공정성에 위배된다. 따라서 진보는 그저 기득권의 교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특권 없는 구조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공정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어쩌면 유일한 도덕률인지도 모른다. 합의에 도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모든 이해 당사자에게 공정한 결과가 주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90-2)<br>기독교가 존엄하게 창조된 인간을 말할 때, 성서는 공정하게 창조되어야 할 인간을 말한다. 우리가 도덕적 명제처럼 받아들이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은 사실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공정한 생존의 보장을 위한 합의에서 비롯된 윤리적 수단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들 사이의 공정한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며, 그 신념 위에 우리의 모든 윤리 체계가 구축되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인권, 즉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권리들 역시 존 로크John Locke 가 주장한 자연권이 아니라, 도덕적 합의를 통해 도출한 사회적 구성물로 받아들여야 한다. 존엄성은 우리 안에 생물학적으로 내재하지 않고, 따라서 자연적으로 규정될 수 없다. 인간에게 존엄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혹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는 철학적으로는 난제이겠지만, 생물학의 관점에서 보면 논란의 여지조차 없다. 인권은 인간이 합의해 도출한 사회적 개념이다. 역사가 이를 분명히 말해준다. 92-3)]]></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05/79/cover150/e3826363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8057966</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저녁</category><title>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 / 멀린 셸드레이크 - [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213567</link><pubDate>Mon, 13 Apr 2026 07: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2135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932532156&TPaperId=172135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27/12/coveroff/e93253215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932532156&TPaperId=172135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작은 것들이 만든 거대한 세계</a><br/>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글담 / 2021년 04월<br/></td></tr></table><br/>서문: 내가 만약 곰팡이라면<br>곰팡이는 우리와 우리가 생존을 위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유지해준다. 화산섬이 생성되거나 빙하가 후퇴해 맨 암석이 드러나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지의류地衣類, lichen ― 곰팡이와 조류藻類, algae 또는 박테리아의 연합 ― 이고, 이어서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진다. 잘 발달된 생태계에서도 흙을 붙들어주는 곰팡이 조직이 빽빽한 그물망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흙이 빗물에 금방 쓸려 내려가 버린다. 깊은 바다 밑 충적층에서부터 사막의 모래밭, 남극의 꽁꽁 언 얼음계곡, 심지어는 우리 몸의 내장이나 모든 구멍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서 곰팡이를 발견할 수 없는 곳은 거의 없다. 한 그루 나무의 줄기와 잎에만도 수천 종의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 이 곰팡이들은 스스로 식물세포 사이의 빈틈으로 들어가 촘촘한 비단을 짜고 그 식물이 질병을 막아내는 데 도움을 준다. 자연 상태에서 자란 식물치고 이런 곰팡이가 없는 식물은 없다. 곰팡이는 잎이나 뿌리처럼 식물 세상의 일부다. 30-1)<br>곰팡이 중에서 일부는 당분을 발효시켜 알코올을 만들거나 빵을 부풀게 만드는 효모처럼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발아發芽를 통해 두 개의 세포로 증식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곰팡이는 많은 세포가 연결된 네트워크인 균사hypae를 형성한다. 미세한 관 구조인 균사는 갈라지고, 합해지고, 서로 얽히면서 무질서하지만 매우 섬세한 균사체를 만든다. 균사체 만들기는 거의 모든 곰팡이의 공통적인 습관인데, 균사체는 물체라기보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합당하다. 균사체는 탐험적이고 불규칙적인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균사체 네트워크 안의 생태계를 통해 물과 영양분이 흘러 다닌다. 일부 곰팡이종의 균사체는 전기적으로 들뜨기도 해서 균사를 따라 전기파가 전도된다. 대사상의 특이성 덕분에 곰팡이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관계 맺기에 능하다. 뿌리에서든 줄기에서든 식물은 생겨난 순간부터 양분 흡수와 방어에 있어 곰팡이에 의존한다. 동물도 곰팡이에 의존하기는 마찬가지다. 32-3)<br>한 개체는 어디서 끝나고 다른 개체는 어디서 시작하는가. 우리는 대개 우리 몸이 시작하는 곳에서 우리가 시작되고 우리 몸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가 끝난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미생물의 생태로 이루어진, 그리고 분해되는 생태계이며, 그 의미는 최근 들어서야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우리의 몸 안과 표면에 사는 4조 개 이상의 미생물 덕분에 우리는 음식을 소화시키고 우리 몸에 자양분이 되는 필수 미네랄을 생성할 수 있다. 식물의 내부에 사는 곰팡이처럼, 미생물은 우리를 질병으로부터 보호해주기도 한다. 미생물은 우리 몸의 발육과 면역 시스템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우리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심히 관찰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질병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우리를 죽이기도 한다. 인간에게만 있는 특수한 경우도 아니다. 박테리아도 몸 안에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 바이러스도 자기보다 더 작은 바이러스를 몸 안에 갖고 있다. 공생은 생명이 있는 곳 어디에나 있다. 40-1)<br>유혹하는 곰팡이: 버섯과 곰팡이가 퍼져나가는 방법<br>트러플은 몇 종류의 균근 곰팡이가 땅속에서 키워내는 자실체다. 트러플은 토양에서 흡수한 영양분과 식물의 뿌리에서 흡수한 당분으로 생명을 유지하면서 연중 대부분을 균사 네트워크로 존재한다. 그러나 땅속이라는 서식 환경이 트러플에게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된다. 식물이 씨앗을 만들어내듯이 트러플은 포자를 만들어내는 유기체다. 땅속에서는 포자가 바람에 실려 갈 수도 동물의 눈에 뜨일 수도 없다. 트러플이 내놓은 해결책은 냄새다. 그러나 숲속에서 풍겨나는 온갖 냄새를 누르고 더 멀리까지, 더 강하게 냄새를 풍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트러플의 냄새는 토양층을 뚫고 퍼져나갈 수 있을 만큼 자극적이어야 하고, 다양한 냄새의 스펙트럼 안에서 땅을 파내고 찾아먹을 수 있을 만큼 입맛 도는 냄새여야 한다. 이처럼 시각적으로 불리하다는 단점 ― 땅속에 파묻혀 있는 데다 땅을 파헤쳐도 쉽게 찾아낼 수 없고, 찾아냈다고 해도 그다지 먹음직스럽게 생기지 않은 ― 을 트러플은 냄새로 역전시켰다. 49)<br>유혹은 곰팡이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교배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트러플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한쪽의 균사 네트워크에서 나온 균사가 성적화합성이 맞는 다른 균사 네트워크와 융합하여 유전물질의 풀pool을 만들어야 한다. 균사 네트워크로서 한살이의 대부분을, 트러플은 곰팡이의 기준으로 ‘-’ 또는 ‘+’ 의 교배형 중 하나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들의 교배 형태는 아주 솔직담백하다. - 균사가 + 균사를 유인해 융합하면 접합이 일어난다. 이 두 파트너 중 부계의 역할을 하는 쪽은 유전물질만 제공한다. 다른 쪽은 모계의 역할을 맡아, 유전물질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트러플과 포자로 성장하는 과육flesh을 기른다. 트러플의 성별은 인간과 달라서 + 교배형이나 - 교배형 모두 부계가 될 수도 있고 모계가 될 수도 있다. 인간으로 비유하자면 모든 사람이 남자가 될 수도 있고 여자가 될 수도 있으며, 따라서 반대 성을 가진 개체와 관계를 맺는다면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아버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59)<br>그러나 트러플과 나무 사이의 관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며, 이들 사이의 화학적 상호작용도 섬세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어린 트러플 균사는 파트너로 삼을 나무를 찾지 못하면 금방 죽어버린다. 식물은 질병을 일으킬 수도 있는 곰팡이를 피해, 서로 이득이 되는 관계를 형성할 곰팡이를 자신의 뿌리에 받아들여야 한다. 이 과정도 또 다른 형태의 유혹, 화학적인 ‘밀고 당기기’라고 할 수 있다. 트러플이 숲속에서 동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러는 것처럼, 식물과 곰팡이도 서로를 끌어당기기 위해 휘발성 화학물질을 이용한다. 나무뿌리는 흙 속에 풍부한 휘발성 화합물을 발산함으로써 곰팡이가 포자를 퍼트리고 균사의 가지를 더 빨리, 더 왕성하게 자라게 한다. 곰팡이는 뿌리를 조종하는 식물 성장 호르몬을 분비해 식물이 솜털 같은 잔뿌리를 많이 뻗어내도록 만든다. 잔뿌리가 많이 나올수록 뿌리의 표면적이 넓어지고, 따라서 뿌리 끝과 곰팡이의 균사가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59-60)<br>곰팡이가 식물과 결합하기 위해서는 뿌리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서로의 독특한 화학적 조성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신호물질은 식물세포와 곰팡이의 세포를 관통해 직렬로 흐르면서 유전자를 활성화시킨다. 식물 뿌리와 곰팡이의 균사 모두가 각자의 신진대사 과정과 성장 프로그램을 새롭게 구성한다. 곰팡이는 나무의 면역반응을 정지시키는 화학물질을 내놓는다. 그러지 않으면 공생구조를 밀접하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공생구조가 확립되면, 균근 파트너십은 지속적으로 발달한다. 균사와 뿌리의 관계는 매우 다이내믹해서, 뿌리 끝과 곰팡이의 균사가 늙어 죽으면 관계를 새롭게 형성한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리모델링하는 관계인 것이다. 트러플을 재배하려면, 곰팡이의 특이한 생식 체계를 비롯하여 공생하는 나무, 박테리아의 기벽과 요구를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토양, 계절, 기후 등 곰팡이를 둘러싼 환경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의 중요성까지도 파악해야 한다. 60)<br>살아 있는 미로: 곰팡이가 길을 찾는 방법<br>균사체 네트워크라고 하면 균사의 정단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마치 벌 떼나 개미 떼가 바글거리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체구가 아주 작은 개체들이 수없이 모여서 마치 거대한 개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떼를 이루어 움직이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이러한 군집행동swarm은 집단행동의 패턴이다. 그러나 균사체는 개미 떼나 정어리 떼를 훌쩍 뛰어넘는다. 한 네트워크 안의 균사 정단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흰개미 둥지는 여러 단위의 흰개미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다. 군집 속의 개체를 하나씩 분리하듯 균사체 네트워크에서 균사를 한 올 한 올 분리해낼 수는 없지만, 균사체 네트워크와 동물 또는 곤충의 군집을 나란히 놓고 비유하자면 균사 정단은 군집 속의 개체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균사체는 그 개념이 매우 모호하다.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보면 균사체는 상호연관된 하나의 존재다. 하지만 균사 정단의 관점에서 보면 균사체는 복수의 개체다. 69-70)<br># 균사 정단(Hyphal apex)은 균사의 가장 끝부분을 말하며, 이곳에서 세포 성분과 융합이 일어나 균사가 성장하고 분지하며, 기질로 침입하는 등 생장 활동이 집중된다.<br>균사체를 내는 곰팡이는 미로 거주자이며, 곰팡이가 공간적, 기하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면 곰팡이가 어떤 유기체로 진화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곰팡이는 매 순간 자신의 몸을 최적의 상태로 분포시킬 방법을 찾는다. 균사체는 탐험 모드로 출발해 모든 방향으로 확산되어 나간다. 사막에서 물을 찾고자 할 때면 우리는 보통 한 방향을 정해서 찾아 나선다. 곰팡이는 동시에 모든 경로로 찾아 나서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그와 연결된 네트워크 부분을 강화하고 소득이 없는 부분은 정리한다. 이런 현상을 자연선택으로 볼 수도 있다. 균사체는 연결점을 과잉생산한다. 그러다 보면 어딘가는 다른 부분에 비해 경쟁력이 더 높은 것이 드러난다. 그러면 그 부분은 두터워지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분은 차츰 약화되어 마치 도시의 간선도로처럼 몇 가닥의 균사만 남게 된다. 한쪽의 네트워크는 거두어들이고, 다른 쪽으로는 생장을 거듭함으로써 균사체 네트워크는 새로운 환경으로 이주한다. 70-1)<br>머리카락곰팡이 자실체는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수 밀리미터 안에 있는 다른 물체를 피해서 자란다. 그 물체가 투명하든 불투명하든, 부드럽든 거칠든 상관없이 머리카락곰팡이는 약 2분 정도 후면 우회하기 시작한다. 머리카락곰팡이는 곰팡이 중에서도 통상적인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민감한 종이지만, 대부분의 곰팡이가 빛(방향, 강도 또는 색깔), 온도, 습도, 영양분, 독성물질, 전기장을 감지하고 반응할 수 있다. 식물처럼 곰팡이도 청색광과 적색광에 민감한 수용체를 이용해 빛의 스펙트럼에서 색을 ‘볼’ 수 있다. 식물과는 달리, 곰팡이는 동물 안구의 간상체와 추상체에 있는 시각색소인 옵신opsin도 가지고 있다. 균사는 평면의 질감도 감지할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콩녹병균bean rust fungus의 어린 균사는 CD의 레이저 트랙 사이에 패인 홈보다 세 배나 얕은 0.5마이크로미터 깊이의 홈을 감지할 수 있다. 균사들이 모여 자실체를 만들기 시작하면 중력을 매우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게 된다. 78)<br>낯선 자의 친밀함: 함께 뒤엉켜 진화한 미생물<br>수평적 유전자 교환이 발견되기 전에는 다른 모든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박테리아도 생물학적인 섬이라고 여겨졌다. 한 개체가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기간에서 어느 한 중간에 새로운 DNA를 획득하는 것,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진화한 유전자를 획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수평적 유전자 교환은 이런 사고를 바꿔놓았으며 박테리아 게놈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범존적汎存的 존재, 수백만 년 동안 따로 떨어져서 진화해온 유전자들로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주었다. 박테리아의 경우, 수평적 유전자 교환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어떤 개체든 박테리아 개체 하나가 가진 유전자의 대부분은 진화의 역사를 공유하지 않으며, 마치 우리가 집에 물건을 쌓아두듯이 한 조각씩 획득해서 쌓인 것들이다. 이런 방식으로 박테리아는 ‘기성품’ 특질을 획득함으로써 진화의 속도를 몇 배나 빠르게 가속해왔다. 비록 박테리아가 가장 민첩하고 적극적이기는 하지만, 유전물질은 생명의 모든 영역에서 수평적으로 교환되어왔다. 96)<br>1967년 미국의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는 생명체의 초기 진화에서 공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이론이 불러온 논쟁에서 이 이론을 강력히 지지했다. 마굴리스는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은 서로 다른 유기체들이 합쳐지면서 ― 그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진핵생물은 단세포 유기체에 삼켜진 박테리아가 그 유기체 안에서 공생을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미토콘드리아가 바로 그런 박테리아의 후손이다. 엽록체는 초기 진핵세포가 삼킨 광합성 박테리아의 후예다. 사실 이런 표현이 상황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식물의 조상은 광합성 능력을 가진 박테리아를 획득한 것이 아니라, 광합성을 할 수 없는 유기체와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유기체의 결합으로부터 발생했다. 진핵세포 안에서, 생명의 나무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던 가지들이 함께 얽혀서 분리 불가능한 새로운 계통으로 녹아들었다. 곰팡이 균사가 그렇듯이 융합 또는 접합된 것이다. 98-9)<br>지의류는 보편적인 실체이며 생명이 만나는 장소다. 곰팡이는 스스로 광합성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조류 또는 광합성 박테리아와 짝을 이룸으로써 광합성 능력을 수평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조류 또는 광합성 박테리아는 질긴 보호 조직을 뚫거나 바위를 소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곰팡이와 짝을 이룸으로써 그런 능력을 갖게 된다, 갑자기! 분류학적으로 거리가 먼 유기체들이 함께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혼성 생명체를 구성한다. 엽록체와 떨어질 수 없는 식물 세포와 비교하면, 지의류의 관계는 개방적이다. 지의류는 이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도 번식한다. 공생 파트너를 온전히 품고 있는 지의류 조각이 새로운 장소로 이동해 새로운 지의류로 자라날 수 있는 것이다. 지의류는 곰팡이와도, 광합성공생자와도 비슷하지 않다.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여 성분 원소와는 전혀 다른 화합물인 물이 되듯이, 지의류도 창발 현상, 즉 부분의 합 이상의 것이 된다. 99-100)<br>균사의 마음: 곰팡이가 우리의 마음을 조종한다면<br>오피오코르디셉스 곰팡이Ophiocordyceps unilateralis는 목수개미carpenter ant 주변에서 살아간다. 이 곰팡이에 감염된 개미는 자기 둥지를 떠나 가까운 식물을 타고 기어 올라간다. 좀비 곰팡이는 가장 능수능란하고 창의적으로 동물의 행동을 조종하는 하는 것이 바로 곤충의 몸 안에 사는 곰팡이 집단이다. 이 ‘좀비 곰팡이’는 숙주의 행동을 자신에게 확실히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조종한다. 곤충의 몸을 가로챔으로써 그 곰팡이는 자신의 포자를 퍼뜨리고 한살이의 주기를 완성하는 것이다. 숙주 곤충의 행동을 대단히 정밀하게 제어한다. 오피오코르디셉스는 자실체를 생성하기 좋은 온도와 습도를 갖춘 곳에서 개미가 식물을 물고 버티게 만든다. 대개 숲의 바닥으로부터 25센티미터 정도 높이다. 이 곰팡이는 개미가 태양의 방향에 맞추어 행동하게 만드는데, 이 곰팡이에 감염된 개미는 정오에 맞춰서 식물을 문다. 나뭇잎 아랫면은 물지 않고, 감염된 개미의 98퍼센트가 주요 잎맥을 문다. 112-3)<br>2018년, 캘리포니아대학교 연구진은 엔토모프토라Entomophthora의 놀라운 기술을 상세히 밝힌 논문을 발표했다. 엔토모프토라는 파리에 기생하며 파리의 정신을 조종하는 곰팡이다. 연구진은 엔토모프토라 곰팡이가 다른 곰팡이를 감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곤충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논문의 제1저자는 이 발견을 과학계에서 ‘가장 기이한 발견 중의 하나’라고 보고했다. 이 발견이 ‘기이하다’는 의미는, 이 곰팡이가 바이러스를 이용해서 동물의 마음을 조종한다는 데 있다. 아직 가설 단계지만 상당히 개연성이 있는 논리다. 엔토모프토라가 기생하고 있는 말벌에 의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무당벌레는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꼼짝도 하지 못하고 말벌의 알을 지키는 경비병 신세가 된다. 마음을 조종하는 바이러스를 이용함으로써, 이 곰팡이는 자신이 깃들고 있는 곤충 숙주의 마음을 조종하는 능력을 굳이 스스로 진화시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118)<br>존스홉킨스대학교의 정신의학자 매슈 존슨Matthew Johnson의 말을 빌리자면, 실로시빈 같은 환각제는 “사람들로 하여금 약에 취하게 함으로써 불만족스러운 상태로부터 빠져나오게 만든다. 말 그대로 시스템 리부팅이다. (…) 환각제는 우리가 현실을 체계화하는 데 이용하던 정신적인 모델을 놓아버릴 수 있도록 정신적인 유연성의 창을 열어준다.” 약물중독처럼 굳어버린 습관 또는 우울증으로부터 생긴 ‘질긴 비관주의’도 부드러워진다. 인간의 경험을 체계화하는 범주를 유연하게 함으로써, 실로시빈 같은 환각제는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 인간의 가장 강건한 심리 모델 중 하나가 자아감이다. 실로시빈을 비롯한 환각 성분이 바로 이 자아감을 교란한다. 인간이 그토록 의존해왔던, 잘 방어된 ‘자아’가 완전히 사라질 수 있으며 오락가락 흔들리거나 타자 속으로 차츰 녹아들 수도 있다. 그 결과는? 더 큰 어떤 것과의 합일, 그리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계감이다. 124)<br>뿌리가 생기기 전: 식물보다 앞서 길을 낸 개척자<br>최초의 식물은 뿌리도 없고 특별한 구조도 갖추지 못한 초록색 조직 덩어리에 불과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초록색 덩어리가 응축되어 기관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조직이 곰팡이 동지를 수용했으며, 곰팡이는 흙 속에서 영양분과 물을 끌어다 주었다. 진화의 결과 첫 뿌리가 나타났을 즈음, 균근은 조류와 곰팡이가 지상으로 올라온 후에 생겨난 모든 생명의 뿌리를 이루었다. 균근mycorrhiza이라는 이름이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균mykes에 이어 뿌리rhiza가 생겨났다.” 그로부터 수억 년이 흐른 오늘날, 식물은 더 가늘어지고 더 빨리 성장하며 식물이라기보다 곰팡이처럼 행동하는 기회주의적인 뿌리를 갖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그렇게 진화한 뿌리도 땅속을 탐색하는 데에는 곰팡이를 넘어설 수 없다. 균근 균사mycorrhizal hyphae는 가장 가느다란 뿌리보다도 50배나 가늘고 그 길이도 식물 뿌리의 100배까지 더 길어질 수 있다. 균사는 뿌리보다 먼저 생겼고, 뿌리보다 더 멀리 나아간다. 138-9)<br>식물과 곰팡이 모두가 이 관계에서 이득을 얻어가지만, 어떤 종류의 식물과 곰팡이냐에 따라 공생의 방식이 달라진다. 키어스의 연구팀은 한 종류의 균근 곰팡이를 인이 불평등하게 공급되는 상황에 노출시켜 보았다. 그러자 인이 부족한 균사 네트워크에서는 식물이 더 비싼 ‘값’을 치렀다. 다시 말해 식물이 받는 인 한 단위당 더 많은 단위의 탄소를 공급했던 것이다. 인을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쪽에서는 곰팡이가 더 낮은 ‘교환 비율’로 탄소를 받아갔다. 가장 놀라운 것은 곰팡이가 네트워크 전체에서 거래 행동을 조율하는 방식이었다. 키어스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전략을 알아볼 수 있었다. 곰팡이는 힘차게 움직이는 미세소관 ‘모터’를 이용해서, 인이 풍부해 싼 값으로 식물과 거래해야 하는 영역으로부터 인이 귀해 수요가 높고 비싼 값으로 거래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인을 힘차게 운반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곰팡이는 인을 더 유리한 교환 비율로 더 많이 거래할 수 있었고, 그 보상으로 더 많은 탄소를 얻을 수 있었다. 146-7)<br>식물의 잎이나 새싹에서 사는 곰팡이 ― 식물공생균이라고 알려진 ― 도 식물이 새로운 장소에 적응하는 능력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염분이 있는 해변의 흙에서 풀을 뽑아 원래의 식물공생균 없이 기르다가 다시 염분이 있는 땅에 옮겨 심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지열이 뜨거운 토양에서 서식하는 풀도 마찬가지다. 연구자들이 이 두 가지 풀의 식물공생균을 바꿔치기해서 해변에 서식하는 풀은 지열이 뜨거운 토양에서, 지열 뜨거운 토양에서 자라던 풀은 해변에서 길렀다. 그러자 각각 서식지에서 생존하는 습성이 바뀌었다. 원래 해변에서 자라던 풀은 염분이 들어 있는 토양에서는 더 이상 살지 못한 대신 지열이 뜨거운 토양에서는 잘 자랐다. 원래 뜨거운 토양에서 자라던 풀은 더 이상 뜨거운 지열을 버티지 못하는 대신 해변의 염분 섞인 토양에서 잘 자랐다. 어떤 식물이 어디서 잘 자랄지는 곰팡이가 정한다. 곰팡이는 식물 집단을 서로 격리시킴으로써 새로운 종의 진화를 촉진할 수도 있다. 150)<br>균근 곰팡이는 식물에게 자양분을 공급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한다. 어떤 이들은 균근 곰팡이를 ‘생태계 엔지니어’라고 부른다. 균근 균사체Mycorrhizal mycelium는 흙이 흩어지지 않고 서로 뭉쳐 있도록 붙들어주는, 살아 있는 접착제다. 만약 흙에서 곰팡이를 제거한다면 흙은 바스스 부서져서 흩어져버린다. 균근 곰팡이는 토양이 흡수할 수 있는 물의 양을 증가시키고, 빗물에 씻겨 흘러가버리는 영양분의 양을 50퍼센트까지 감소시킨다. 토양에서 발견되는 탄소 ― 놀랍게도 식물과 대기 중에서 발견되는 탄소를 모두 합친 양의 두 배에 가깝다 ― 중에서 상당한 비율이 균근 곰팡이에 의해 생산되는 단단한 유기화합물 속에 갇혀 있다. 균근의 통로를 통해 토양 안에서 흐르는 탄소는 복잡하고 섬세한 먹이그물을 지탱한다. 건강한 흙 한 찻숟가락 속에는 수십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균사 외에도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살았던 사람의 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수의 박테리아, 원생생물, 곤충, 절지동물이 있다. 153)<br>우드와이드웹: 땅속에서 그물처럼 얽혀 있는 식물<br>‘정상적인’ 녹색식물은 곰팡이에게 에너지가 풍부한 탄소화합물을 당이나 지질의 형태로 내주고 그 대신 곰팡이를 통해 토양 속의 무기영양소를 얻어간다. 수정란풀은 균근 곰팡이로부터 탄소와 무기영양소를 모두 받아간다. 그리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수정란풀이 가져가는 탄소는 어디서 난 것일까? 균근 곰팡이는 모든 탄소를 녹색식물로부터 얻어간다. 즉 수정란풀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탄소는 결국 균근 네트워크를 공유하고 있는 다른 식물로부터 온 것일 수밖에 없다. 수정란풀은 식물학자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1980년대 이후 수정란풀은 비정상적인 식물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대부분의 식물은 여러 종의 균근 파트너와 문란하게 관계를 맺는다. 균근 곰팡이 역시 여러 식물과 관계를 맺는다. 각각 별개의 곰팡이 네트워크가 서로 합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 결과는? 광대하고 복잡하며 협력적인 균근 네트워크의 공유 시스템이 탄생하는 것이다. 158-9)<br>캐나다의 숲에서 자작나무와 더글러스 전나무를 연구한 또 다른 사례에서, 식물의 성장이 멈추는 겨울을 제외하고 봄부터 가을 사이에 탄소 이동의 방향이 두 번이나 바뀌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상록수인 전나무는 광합성을 하고 잎이 없는 자작나무는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봄이면 자작나무는 흡수원이 되어 탄소가 전나무에서 자작나무로 흘렀다. 자작나무 잎이 무성해지고 전나무는 그늘에 가려지는 여름이면 탄소가 자작나무에서 전나무로 흘렀다. 자작나무 잎이 떨어지는 가을이면, 탄소는 다시 전나무에서 자작나무로 흘렀다. 양분은 풍족한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흘렀다. 수수께끼 같은 행동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이런 것이다. 왜 식물이 양분을 곰팡이에게 주어서 이웃 식물, 즉 잠재적인 경쟁자에게 흘러가도록 두는가? 처음에는 이타주의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진화론은 이타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타주의적 행동은 공여자의 희생을 담보로 수혜자가 이득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165)<br>이 수수께끼를 푸는 가장 빠른 방법은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유 균근 네트워크에 대한 모든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식물이었다. 곰팡이는 식물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에만 이야기에 등장했고, 식물과 식물 사이를 이어주는 파이프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식물과 식물 사이에서 물질을 옮겨주는 배관 시스템 정도의 역할로만 설명되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을 식물중심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곰팡이는 수동적인 케이블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균사 네트워크는 복잡한 공간 감각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자기 주변으로 물질을 운반하는 능력을 아주 섬세하게 발달시켜왔다. 물질이 곰팡이 네트워크를 통해 위에서 아래로, 영양원에서 흡수원으로 흐르는 경향은 분명하지만, 그 운반이 수동적인 확산의 형태로만 일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nbsp; 자기 네트워크 안에서의 흐름을 제어하는 능력이 없다면, 버섯의 생장이라는 섬세한 군무를 포함해 곰팡이의 한살이 대부분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166-7)<br>우드와이드웹이 단 한 가지 종류로만 존재한다는 생각은 오해다. 곰팡이는 식물과 연결되어 있든 아니든 간에 서로 얽히고설킨 그물망을 만들어낸다. 공유 균근 네트워크는 식물이 함께 얽힌 곰팡이 네트워크라는 특별한 케이스일 뿐이다. 생태계는 유기체들을 꿰매주는 비균근 균사체의 그물망으로 얽혀 있다. 린 보디가 연구한 부패균은, 수 킬로미터를 뻗어가며 놀라운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뽕나무버섯이 그러하듯이, 생태계 전반의 매우 넓은 영역에서 썩어가는 나뭇잎과 떨어진 나뭇가지를 연결하고 썩어가는 나무 밑동과 썩어가는 뿌리를 연결한다. 이 균은 다른 종류의 우드와이드웹을 만든다. 이 웹은 나무를 살리는 웹이 아니라 죽은 나무를 먹어치우는 웹이다. 우드와이드웹의 모든 링크는 제 나름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곰팡이다.&nbsp; 이러한 사실은 우드와이드웹을 식물이 영양분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경직된 위계 구조로부터 자유로운, 보살핌과 나눔 그리고 상호 협조의 공간으로 보는 시각을 뒷받침한다. 167-8)<br>풀뿌리 균학: 세상을 구하는 곰팡이<br>목질 식물이든 아니든 모든 식물 세포에 들어있는 특징적인 물질인 섬유소, 즉 셀룰로스cellulose는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 중의 하나이면서 가장 풍부한 중합체이다. 또 하나의 물질인 목질소, 즉 리그닌lignin은 두 번째로 풍부하다. 리그닌은 나무를 나무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물질이다. 리그닌은 셀룰로스보다 질기고 구조가 복잡하다. 셀룰로스는 질서정연하게 연결된 포도당 분자의 사슬로 이루어진 반면, 리그닌은 분자 고리가 아무렇게나 뭉쳐 있는 형태다. 오늘날까지도 리그닌을 제대로 분해할 수 있는 유기체는 소수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리그닌 분해에 가장 성공한 유기체는 백색부후균white rot fungi이다. 리그닌의 화학적 구조는 너무나 불규칙하다. 백색부휴균은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비정형성효소를 써서 이 난제를 극복했다. 이 ‘과산화효소’는 ‘자유 라디칼free radical’이라는 고반응성 분자를 폭포수처럼 방출해서 리그닌의 단단한 구조를 깨뜨리고 ‘효소 연소enzymatic combustion’ 과정을 진행시킨다. 182)<br>버섯을 키워내는 대부분의 곰팡이는 인간이 만든 폐기물에서 잘 자란다. 쓰레기에서 환금성 작물을 기르는 것은 현대판 연금술과 같다. 곰팡이는 마이너스 자산으로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낸다.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에게도 이익, 곰팡이를 기르는 사람에게도 이익, 곰팡이 자체에도 이익이다. 인간이 만든 쓰레기가 곰팡이의 관점에서는 기회일 수 있다는 사실은 크게 놀랍지도 않다. 곰팡이는 생물종 전체의 75퍼센트에서 많게는 95퍼센트까지 사라진 대멸종을 다섯 번이나 견디고 살아남았다. 어떤 곰팡이는 그런 재앙의 시기에 오히려 더 무성했다. 공룡이 멸종되고 숲이 대량으로 파괴되었던 백악기 제3기 대멸종 이후, 분해해야 할 죽은 나무가 풍부한 환경 속에서 곰팡이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방사능 입자가 방출한 에너지를 제거하는 방사능 제거 곰팡이Radiotrophic fungi는 체르노빌의 폐허에 무성할 뿐만 아니라 곰팡이의 긴 역사와 인간의 짧은 핵기술의 역사에 최근에 진입한 새로운 참여자이기도 하다. 185-6)<br>곰팡이는 불필요한 효소는 생산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곰팡이종이 무엇을 대사 작용으로 분해할 수 있는지 예측하는 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맥코이는 제초제 글리포세이트를 몇 방울 떨어뜨린 배양접시에서 여러 계통의 느타리버섯 균사체를 길러보았다. 그중 일부 균사체는 제초제를 피해서 뻗어갔지만, 일부는 제초제를 그대로 통과했다. 또 다른 일부는 제초제 가장자리까지 자라다가 더 이상의 생장을 멈추었다. “그렇게 생장을 멈추었던 균사체는 일주일쯤 지나자 그 제초제를 분해하는 방법을 터득했어요.” 맥코이의 회상이다. 그는 곰팡이를 화학결합을 풀 수 있는 효소 열쇠꾸러미를 가진 교도소 간수에 비유했다. 곧바로 쓸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는 곰팡이도 있다. 그렇지 않은 곰팡이는 그 열쇠가 자신의 게놈 안 어딘가에 있기는 하지만, 일단 새로운 물질을 피해보려고 한다. 또 다른 곰팡이는 열쇠꾸러미를 뒤져 이 열쇠 저 열쇠를 꽂아보면서 맞는 열쇠를 찾느라 일주일을 보낸다. 186-7)<br>곰팡이가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오염된 생태계의 복원을 돕는 것이다. 그 과정을 균류정화mycoremediation라고 한다. 근본적으로, 곰팡이는 환경을 복원하는 데 최고의 능력을 가진 유기체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균류정화는 쉽게 접목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 어떤 곰팡이종이 배양접시 안에서 보여주는 행동이 오염된 생태계의 격렬한 환경에서도 그대로 재연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산소나 추가적인 영양원처럼 곰팡이에게도 필요한 것이 있고, 우리는 그런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분해는 여러 단계를 거쳐 진행되고, 곰팡이와 박테리아가 연달아가며 배턴을 이어받아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곰팡이가 할 일을 하고 떠난 자리를 박테리아가 이어받아 과정을 마무리하거나 그 반대의 순서로 진행되기도 한다. 실험실에서 훈련된 곰팡이종이 새로운 환경에서도 능숙하게 문제를 처리하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는 상상은 순진한 발상이다. 188-9)<br>곰팡이를 이해한다면: 술을 빚는 효모의 신비<br>인간과 가장 친밀한 역사를 가진 곰팡이는 효모다. 효모는 우리 피부에서도, 우리 폐에서도, 그리고 우리 식도와 우리 몸의 모든 구멍에서도 산다. 우리 몸은 이 효모 집단을 통제하도록 진화해왔으며 긴긴 진화의 역사를 통틀어 항상 그렇게 그들을 통제해왔다. 인류의 문화 역시 수천 년 동안 우리 몸 밖에서, 술통과 항아리 안에 효모를 가두고 통제하는 복잡한 방법을 발전시켜왔다. 오늘날 효모는 세포생물학과 유전학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표본 유기체 중 하나다. 빵이든 술이든, 효모는 초기 농경 사회의 주요한 수혜자였다. 빵이나 술을 만들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의 배를 채우기 전에 효모의 배를 먼저 채워주어야 했다. 생활 영역이 농경지에서 도시로 발전하고 부를 축적하며, 곡물상이 등장하고 또 새로운 질병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농경과 연관된 문화의 발달은 효모와 인간이 공유한 문화의 일부를 형성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효모를 길들인 것이 아니라, 효모가 우리를 길들였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205-6)<br>19세기 후반 진화론의 등장 이후 미국과 서유럽을 지배하던 서사는 갈등과 경쟁의 서사였으며 그러한 분위기가 조성된 배경에는 산업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인류의 사회적 발전관이 투영되어 있었다. 샙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기체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도록 협력하는 사례는 “예의 바른 생물학적 사회의 가장 후미진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 지의류 또는 균근 곰팡이에서 볼 수 있는 서로 돕는 관계는 우리에게 알려진 규칙의 의문스러운 예외였고, 그런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마지못해 인정했을 뿐이었다. 진화에서 상호협력과 협조의 아이디어는 서유럽의 진화론자들보다 러시아에서 더 두드러졌다. ‘피 묻은 이빨과 발톱’으로 상징되는, 치열하고 인정사정없는 경쟁이 지배하는 자연의 모습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박은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표트르 크로포트킨이 1902년에 쓴 책 《만물은 서로 돕는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생존을 위한 투쟁 못지않게 ‘사교성’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강조한다. 211)<br>오늘날 모든 곰팡이를 ‘질병의 원인’ 또는 ‘기생물’의 범주로 한꺼번에 묶는 것은 부조리하다. 알베르트 프랑크가 ‘공생’이라는 용어를 고안하기 전까지는 서로 다른 유형의 유기체들 사이에 형성된 관계를 설명할 방법조차 없었다. 최근 들어 공생 관계를 둘러싼 서사가 더욱 미묘해졌다. 지의류가 둘 이상의 참여자로 구성된 유기체임을 처음으로 발견한 토비 스프리빌은 지의류를 시스템의 한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식물과 균근 곰팡이는 더 이상 상호협력적으로 또는 기생의 형태로 행동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 단 한 종의 균근 곰팡이와 단 한 그루의 나무 사이에 만들어진 관계라 할지라도 그들 사이의 ‘상호 거래give and take’는 유동적이다. 연구자들은 획일적인 이분법이 아니라 상리공생과 기생이라는 양극단 사이의 연속체로 설명한다. 공유 균근 네트워크는 협력과 동시에 경쟁도 촉진할 수 있다. 우리는 관점을 바꾸어서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거나 적어도 감내해야 한다. 213)<br>공생적 상호관계는 종의 경계를 초월한다. 나는 곰팡이를 연구할 때보다 더 곰팡이처럼 행동했던 적이 없었고, 그래서 호의와 데이터를 서로 주고받는 학계의 상리공생의 세계에 빠른 속도로 녹아들어 갔다. 스웨덴과 독일에서 나와 협업했던 과학자들은 나를 통해서 더 많은 양의 흙을 연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직접 열대지역으로 가볼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들의 손과 발 역할을 했다. 반대로, 곰팡이가 그러하듯이 나 역시 혼자서는 접근할 수 없었던 자금과 기술을 이용할 수 있었다. 파나마에서 나와 협업한 과학자들은 잉글랜드에 있는 내 동료들의 기술적 지원과 연구기금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잉글랜드의 내 동료들은 파나마의 내 협업 과학자들을 통해 똑같은 혜택을 누렸다.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네트워크를 연구하기 위해, 나 역시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했다. 어떻게 보면 그건 일종의 순환구조였다. 내가 네트워크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네트워크도 나를 들여다본다. 215)]]></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27/12/cover150/e93253215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6271213</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간식</category><title>삼위일체론 / 유해무 - [삼위일체론 - 살림지식총서 384]</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205950</link><pubDate>Thu, 09 Apr 2026 10: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20595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5221415&TPaperId=172059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98/58/coveroff/e89522141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5221415&TPaperId=1720595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삼위일체론 - 살림지식총서 384</a><br/>유해무 지음 / 살림 / 2011년 11월<br/></td></tr></table><br/>들어가며: 기독교의 정체성인 삼위일체론<br>아리스토텔레스는 세 가지 행복관을 제시한다. 첫째, 바깥에 있는 물질적 대상을 조작한 결과와 업적으로 얻는 행복이 있다. 두 번째로, 도시 공동체 안에서 지혜로써 정의, 용기, 절제 등의 미덕을 추구하여 공동체의 인정을 받는 삶, 곧 ‘실천적 삶’이 주는 행복이다. 세 번째로, 철학자는 외적 대상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 하지 않고, 도시 공동체를 통한 일시적 쾌락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정신적 대상을 관찰하고 바라보는 ‘관조적 삶’의 양식을 찾아 은거함으로 신적 자족에서 행복을 실현한다. 이 책에서는 관조적 삶과 활동적 삶, 또는 이론적 삶과 실천적 삶의 양 구도를 기독교적으로 원용하고 통합하는 방식으로 삼위일체론을 전개하려고 한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관조하는 삶이 믿음이며 동시에 기독교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원초적인 삶인데, 그리스적 배경에서와는 달리, 이 삶은 세상에서 물질적 대상을 잘 다루고 공동체에서 미덕을 추구하여 인정받음으로써 기독교회의 독특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3-4)<br>관조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다. 외적 대상이나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분의 이름을 불러 찬양하고 즐기는 것이다. 이런 관조는 예전(禮典)적 예배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기독교적으로 원용하여 사용하려는 관조는 ‘관상’과는 다르다. 관상은 물질이나 육체 등 외적인 모든 것을 경시하는 이원론을 전제로 삼는다. 그러면 실천적 삶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관조하는 예배로 이루어지는 교회 공동체는 동시에 실천의 장이 된다. 즉, 하나님과 대면하고 교제하는 예배자는 이차적으로 예배 중에 다른 예배자와 교제한다. 이렇게 교회 공동체는 일차적인 ‘실천적 삶’의 현장으로 거듭난다. 그렇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 공동체가 삼위 하나님을 드러내고 대리하는 실천의 현장은 세상이다. 관조적 삶은 관조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으며, 성도는 관조한 삼위일체 하나님을 세상이라는 실천의 현장에서 보여 주어야 한다. 믿음은 세상에서 행하는 실천이며, 실천의 현장은 동시에 지속적인 관조의 현장이다. 4)<br>삼위일체 하나님 신앙의 기초: 성경<br>예수께서는 자신을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했다. 예수는 자신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을 자신의 친아버지라 하고서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셨다(요 5:18). 성부는 성자를 고난과 십자가로 내몰았다. 그것은 곧 자기 아버지를 증거하는 일의 절정이다. 십자가는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일이다(요 17:4).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을 다시 살리심으로 영화롭게 한다(요 17:24). 그런데 성령으로가 아니면 예수를 주님이라 할 수 없다(고전 12:3).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성자를 성육하게 하신 이가 성령이다. “성령으로 잉태하사.”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낳았다(눅 1:35). 이처럼 성령은 성자를 세상에 임하게 하고 예수를 다시 살리신 능력의 영이시면서도, 부활한 예수께서 보내시는 영이시기도 하다. 이처럼 예수 사건이 중심에 있다. 성부께서는 아드님을 나사렛 예수로 보내셨고, 아드님은 아버지께 성령을 받아 성도에게 부어 주셨고(행 2:33), 성령은 아드님을 증거한다(행 5:32). 6-7)<br>구약은 그리스도의 전(前)역사이며, 그리스도는 구약의 모든 계시의 목표점이고 성취이다. 따라서 계시의 시작조차도 완성된 계시의 관점에서만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신약은 (구약의) 기존 의미가 아니라 성취 사실에서 시작하며, 그런 다음에 필요한 내용을 구약에서 찾는다. 구약은 신약에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성취의 빛 아래서 신약 저자들은 구약의 진술에서 예언을 찾아낸다. 구약은 창세기 3장 15절부터 오실 메시아를 대망하고 있다. 이 본문은 전통적으로 ‘원시 복음’ 또는 ‘어머니 약속’으로 지칭되었다. 야웨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씨에 대한 약속(창 12:1~3), 다윗에게 주신 왕위에 관한 약속(삼하 7:11~16, 23:1~7), 여러 시편들(2편, 16편, 110편 등)과 여러 예언서의 약속들(사 7:14, 9:6, 11:1~10, 52:13~53:12 등)은 모두 오실 메시아와 그의 사역을 예언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이 관점에서 구약을 읽어야 구약을 구약 그대로 읽을 수 있다. 9)<br>삼위일체론의 내적 현장: 예배<br>세례는 신비적 연합이다. 즉,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지는 일이며 그분의 몸인 교회에 가입하는 일이다. 이전의 삶을 등지고 이제부터는 거룩한 삶을 살겠다는 서약이다. 이 연합과 더불어 수세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소유가 되며, 그분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다. 세례의식에는 이른바 종교적 요소뿐만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삶에 대한 관심도 컸다. 곧, 교회 안과 밖에 있는 이웃을 향한 봉사의 임무도 동반한다. 이제부터 수세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신 성전(고전 3:16)이다. 세례는 완전한 교인됨을 인정하고 선언하는 의식이다. 세례 받기 전에 학습자는 오직 설교 말씀만 들을 수 있었다. 학습자는 세례교인만이 참석할 수 있는 성찬이 시작되기 전에 교회당을 떠나야 했다. 고대 교회에서 예배는 두 부분, 즉 말씀과 성찬으로 구성되었고, 성찬이 예배의 중요한 핵심이었다. 비록 세례는 예배의 일부가 아니었지만, 성찬에 참석할 수 있는 완전한 예배자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의식이기 때문에 연계적으로 중요시되었다. 14-5)<br>성찬에서는 그리스도와의 현재적 교제와 그분의 과거 사역에 대한 기억과 재림의 미래에 대한 대망이 중심을 이룬다. 성찬에 참여하는 교인은 떡과 포도주로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제한다. 이 교제가 기초가 되어 함께 참여한 교인들과도 교제한다. 성찬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억한다. 나아가 그분의 부활을 고백하고 우리의 부활을 소망한다. 성찬에는 예수께서 행한 모든 사역, 곧 성육신과 3년의 지상 사역, 고난과 십자가, 부활과 승천을 기억하고,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그분을 기다리는 일이 포함된다. 성찬은 과거의 사건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떡과 포도주 가운데 현재 임재하신 그분을 만나 교제하고, 나아가 다시 오실 그분을 기다리는 것, 곧 종말론적 신앙의 고백이기도 하다.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성령과 함께 성자 예수를 통하여 성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린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기초를 둔 성찬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현장이다. 16)<br>삼위일체론의 형성과 발전: 교회사<br>삼위일체론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있다. 첫째로, 인간이 고안한 사변이라는 오해가 있다. 니케아공의회(325)와 콘스탄티노플공의회(381)에서 삼위일체론을 확립했는데, 인간들이 주재하고 토론했던 회의가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신성을 결정한 것은 신뢰할 만한 권위가 없으며, 삼위일체론은 사변일 따름이라는 오해이다. 둘째로, 이단 논쟁의 결과로 발생했다는 오해이다. 아리우스와 같이 그 당시 그리스 교양에 익숙했던 자들이 성자와 성령의 신성을 부인한 것이 계기였기 때문이다. 즉, 이단의 도전이 없었다면 삼위일체론도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오해이다. 셋째로, 삼위일체론은 내용과 표현 용어에서 복음의 그리스화라는 오해이다. 하르낙(1851~1930)은, 삼위일체론으로 대표되는 교의는 그리스 정신이 복음의 토양에서 얻은 결실이라고 폄하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단지 오해일 따름이다. 교회는 애초부터 삼위 하나님을 믿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성부의 사랑을 성령의 교제 중에 고백했다. 21)<br>초대교회 교인들이 예수를 주(主)로 고백할 때, 구약의 하나님의 단일성(일체성)과 예수와의 관계가 논의의 중심에 있었고, 이 단일성을 유지하려고 예수를 성부에게 종속시키는 종속설이 당시의 일반적 경향이었다. 유대인 개종자들 중에는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자신들이 알고 지냈던 예수가 하나님의 양자로 입양되었다는 입장을 표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는 반대로 영지주의자들은 구약의 하나님은 열등한 하나님이요, 예수 안에서 자신을 계시했던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요 선신(善神)이라는 주장을 폈다(마르키온). 초기 변증가들 중에는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한 영이요 선재하던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인성과 결합했다는 성령 기독론을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교회가 확장되어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동방교회가 정착되자 그리스 철학이 교회의 언어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면서, 특히 요한복음에 나오는 말씀(Logos)을 그리스 사상의 로고스론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21-2)<br>하나님과 함께 선재(先在)하던 로고스는 세계 ‘이성’이나 우주 원리이며, 작은 씨앗으로서 만인에게 임재하다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또는 하나님의 전능한 본질에는 속성인 ‘이성적 능력’이 세상 창조의 중보자가 되어 하나님에게서 나와 독자적 존재가 된다. 두 입장 다 로고스는 하나님보다 열등하다고 보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에 대한 반발로 양태설이 등장한다. 하나님은 구속역사에서 성부, 성자, 성령으로 등장하나 한 본질의 세 외현(양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단일한 하나님만이 아니라 로고스론을 이용하여 하나님 안에 있는 다원성을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런 식의 다원론은 다시 단원성을 강조하는 단원론의 반격을 촉발했다. 단원론(군주론 또는 주권론은 합당한 번역어가 아님)은 성부의 단원성, 곧 성부를 신성의 단일한 원인으로 고수하기 위하여 성자의 신성을 성부의 신성에서 파생되었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성부의 외현(外現) 방식이라고 보았다. 22)<br>라틴어를 사용한 서방교회의 테르툴리아누스(160~220년경)도 역시 성부 하나님의 일체성에서 출발했다. 성부는 말씀과 성령을 가지고 계시다가 창조를 위하여 발출하셨다. 이처럼 그는 신성의 일체성과 동시에 세 위격(personae)에 대해서도 말하면서, 세 위격에 공유된 ‘본질’을 도입했다. 세 위격이 ‘한 본질(substantia)’ 안에 동거하니, 신성은 삼위(trinitas)이시다. 구원역사를 위하여 일체성이 세 위격의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세 위격은 동질이지만, 동일하지는 않다. 동방의 오리게네스(185~254)도 하나님의 일체성을 강조했지만, 동시에 위격의 구별성을 더 강조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그에겐 성부만이 하나님이다. 로고스와 성령의 신성은 파생적이다. 그는 ‘위격(hypostasis)’이라는 용어를 도입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구별된다는 사실을 표현했다. 그리고 ‘본질동등(homoousios)’으로는 성자와 성령이 성부와 연합되어 있는 일체성을 표현했다. 즉, 로고스를 성부의 피조물로 본 것이다. 22-3)<br>아리우스(256~336년경)는 오리게네스의 영향을 받았으나, 아리우스의 관심은 하나님의 독특성과 초월성이었다. 그는 한 하나님 곧 성부만을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신성의 일체성과 성자의 종속성을 철저하게 고수했다. 성부의 본질은 초월적이고 불변하므로, 타자에게 수여될 수가 없다. 성부 이외의 모든 타자들은 피조물이요, 무(無)에서 창조되었다. 게다가 성자가 성부에게서 출생했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물리적 범주를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무지 불가능하다. 아리우스에 의하면,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말씀과 지혜를 가지고 계셨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독립적인 위격들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이 된 말씀은 하나님의 피조물인데, 다만 완전한 피조물일 뿐이다. 그러므로 성부와 성자의 본질적 동등성이란 있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주 간교한 이단에 불과하다. 성자에게 신성이 이야기될 수 있다면 이는 비유적 의미이며, 본질적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전가된 것일 뿐이다. 23)<br>3대 카파도키아 신학자들은 오리게네스 전통을 따라 신성의 일체성이 아니라 구별되는 세 위격들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통적인 본성과 상호 구별되는 위격들을 구분하기 위하여 ‘본질’과 ‘고유성’(비공유적 속성)을 각각 사용했다. 안카라의 감독 대(大)바실리우스(329~379)는 고유성으로서 성부의 부성(父性), 성자의 자성(子性), 성령의 성력(聖力) 또는 성화(聖化)를 말했다. 그의 동생인 니사의 그레고리우스(330~395)는 태어나지 않음, 태어나심을 각각 성부와 성자의 고유성으로 보았고, 성령의 발출은 ‘성자를 통하여’라고 제안했으며, 성부는 성자나 성령과 무관하게 사역하시지 않기 때문에, 신성은 하나라고 했다. 두 사람의 친구인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329~390)는 삼위 안에서 일체가 경배를 받으며, 일체 안에서 삼위가 경배를 받는다고 했다. 나아가 그들은 ‘본질동등성’을 ‘본질유사성’으로 해석하는 것도 정통적이라 선언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신성의 일체성과 위격의 구별성을 확보했다. 25)<br>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본질의 일체성과 위격의 구별성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는 세 명의 카파도키아 신학자들이 제시한 하나님의 본질과 위격들의 구별 또한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알았다. 즉, 그들은 본질을 인간이라는 유개념(類槪念)으로, 각 위격은 구체적 인간 곧 베드로, 요한과 야고보 등으로 비교하는 식으로 설명했다. 이 비교는 일체성보다는 구별을 부각시킨다. 이를 빌미로 삼아 아리우스파들은 카파도키아 신학자들의 삼위일체론이 다신론이라고 공격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란 삼신(三神)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이 삼위로 계시지만 일체성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속성들은 본질에 부가적이지 않고, 본질과 속성들 간에는 아무런 거리가 없으며 본질은 곧 속성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절대적 속성과 절대적 존재는 한 분에게만 해당된다. 세 위격들이 아니라 한 하나님께 한 본성, 한 신성과 영광이 돌려지며, 뜻과 사역도 마찬가지이다. 26)<br>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하나님의 본질이나 존재를 직접 알 수 없다는 입장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안셀무스 등의 입장을 비판한다. 그는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원형인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입장을 거부한다. 인식은 경험계에서 나오기 때문에 인간은 본성적 신 인식을 신 체험에서 출발시켜서 그 원인자를 찾아 나선다. 최초의 원인자인 하나님은 완전한 존재 자체이다. 그래서 신 인식과 신 언설은 유비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 유비론은 신과 세상의 관계를 원인성과 완전성의 관점에서 표현한다. 세계의 피조성에서 나오는 인식은 하나님이 제1 원인자임과 그분의 본질의 일체성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성육신이나 삼위일체론은 본성적 이성으로는 알 수 없다. 다만 창조는 자연적 필연이 아니라 자유와 사랑의 산물이다. 즉, 창조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가 있어야 성육한 성자와 성령의 선물로 완성되는 구원을 올바르게 사유할 수 있다. 29)<br>종교개혁은 삼위일체론을 이해하고 변호하는 데서도 다시 성경으로 돌아갔다. 그 의미는 그리스도의 역사적 계시를 출발점으로 삼아 하나님을 말하고 경외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삼위일체론을 학당이 아니라 교회의 소관사로 삼았다. 루터(1483~1546)는 삼위일체론에서 정착된 용어들을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삼위일체론’도 용어로서는 만족하지 않았다. ‘관계’는 신성이 우연성을 지니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했고, ‘본질동등성’도 원래 성경 바깥에서 온 용어로서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다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용어들, 이를테면 삼위일체론이라는 용어도 이단을 경계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칼뱅(1509~1564)도 같은 입장이었다. 그는 성부, 성자와 성령께서 한 하나님이시고, 성자가 성부가 아니며, 성령도 성자가 아니라 비공유적 속성으로 구별된다는 사실만을 공유한다면, 모든 용어들은 사라져도 좋다고 말한다. 30)<br>삼위일체론의 외적 현장: 교회와 세상<br>삼위일체론의 외적 현장인 교회는 공동체이다. 교회는 예배로 이루어지며, 예배는 일차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누리는 교제를 이룩한다. 이 하나님은 내적으로는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으로서 서로 관계하고 교제하시며, 외적으로는 예배자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이 교제로 예배자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사귀며 참여한다. 예배자는 이 원초적 교제에 기초하여 형제자매로 결합하고 서로서로 교제한다. 예배자가 나누는 인간적인 교제는 이 신적인 교제 위에서야 가능하다. 구원의 경륜과 배포(配布)는 하나님의 본질에 속했다. 구원을 삼위 하나님의 협의와 사역에 근거한 하나님의 삶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구원이 오로지 구원론적으로만 제한되고 급기야는 인간론적인 개인주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교제와 참여는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통하여 그의 본질에 참여함에 있다(벧후 1:4). 그리고 이것은 근본적으로 성도의 교제도 포함한다. 35-6)<br>나오며: 예배와 삶의 세계의 통합<br>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삶이다. 삼위일체론은 이론적이며 동시에 실천적이다. 예배에서만 삼위일체 하나님을 뵐 수 있고, 그분과 누리는 교제에서 그분을 받는다. 예배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예배자의 위격을 주고받는 교제이다. 예배자는 이 예배에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형상이 된다. 엄밀히 말해서 예배자는 예배에서 받을 뿐이다. 물론 기도와 찬송으로 예배자 자신을 드린다. 그렇지만 예배자가 자신을 드리는 곳은 교회와 세상이다. 예배자는 예배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받아 교회와 세상에서 그분들을 드러내고 높이고 영광을 돌린다. 예배가 이론(관조)에 해당한다면, 교회와 세상은 실천에 해당한다. 예배가 튼튼하지 못하면,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면, 세상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로 만들 수가 없다. 교회가 예배가 아닌 일에 열중하거나, 무신론, 다신론과 유일신론의 종교형태와 구별될 수 없다면, 그것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것(딤후 3:5)과 다를 바가 없다. 45)]]></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98/58/cover150/e89522141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985878</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저녁</category><title>다정한 물리학 / 해리 클리프 - [다정한 물리학 - 거대한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고 싶을 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99390</link><pubDate>Mon, 06 Apr 2026 07: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993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122530820&TPaperId=171993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109/29/coveroff/e1225308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122530820&TPaperId=171993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다정한 물리학 - 거대한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고 싶을 때</a><br/>해리 클리프 지음, 박병철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2년 09월<br/></td></tr></table><br/>1장 · 기본 조리법<br>18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화학자들은 목탄 같은 가연성 물체에 불을 붙이면 ‘플로지스톤phlogiston’이라는 물질이 방출되면서 타들어 간다고 생각했다. 즉, 목탄에는 다량의 플로지스톤이 함유되어 있어서 한번 불을 붙이면 오랫동안 탈 수 있으며, 플로지스톤이 완전히 고갈되거나 주변의 공기가 플로지스톤을 더 이상 흡수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연소가 끝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물체가 탈 때 플로지스톤이 방출된다면 연소가 끝난 후에는 무게가 가벼워져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금속이 불에 타면 타기 전보다 무거워진다. 라부아지에는 정반대의 설명을 제시했다. 연소과정에서 플로지스톤이 방출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공기가 물체에 흡수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불에 탄 물체가 무거워지는 것은 연소 과정 중에 공기와 결합하기 때문이다. 그는 프리스틀리가 발견한 것이 탈플로지스톤 공기가 아니라 ‘연료와 결합하여 연소를 일으키는 기체’임을 깨닫고, 이것을 “산소oxygen”로 명명했다. 21-3)<br>2장 · 가장 작은 조각<br>돌턴은 이슬비가 내리는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잉글랜드 북서부의 호수가 많은 지역: 옮긴이)로 종종 산책하러 나갔는데, 습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이런 의문을 떠올리곤 했다 ―“이 축축한 공기 속에 습기가 더 흡수될 여지가 남아 있을까?” 그렇다. 돌턴을 원자론으로 이끈 것은 바로 이 질문이었다. 돌턴의 실험은 이상한 결과를 낳았다. 용기 안에 욱여넣은 공기의 양에 상관없이, 흡수되는 수증기의 양이 항상 일정했던 것이다. 마치 공기와 수증기가 서로의 존재를 무시한 채(즉, 아무런 상호작용도 하지 않으면서) 항상 동일한 공간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두 개의 공기 원자나 두 개의 수증기 원자는 서로 상호작용을 교환하지만, 공기 원자와 수증기 원자는 상대방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는 원자가 물에 녹는 정도를 좌우하는 요인이 “원자의 무게”라고 주장했다. 즉, 무거운 원자가 가벼운 원자보다 물에 잘 녹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가설을 증명하려면 원자들 사이의 상대적인 무게를 알아야 한다. 29-30)<br>19세기 초에는 탄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두 종류의 기체가 알려져 있었는데, 하나는 탄화산소carbonic oxide(무색의 독성기체)이고 다른 하나는 탄산carbonic acid(조지프 블랙이 발견한 ‘고정공기.’ 실험실에서 수많은 쥐들이 과학실험이라는 명목하에 이 기체를 마시고 질식했음)이었다. 돌턴은 고정된 양의 탄소와 결합하여 위의 두 기체를 만드는 산소의 양을 측정함으로써, 탄산에 함유된 산소가 탄화산소에 함유된 산소보다 두 배 많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여기에 그의 원자 이론을 적용하면 탄화산소는 탄소 원자 한 개와 산소 원자 한 개가 결합한 가장 단순한 화합물이며(현대식 용어로는 일산화탄소이다), 탄산은 탄소 원자 한 개와 산소 원자 두 개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화합물이다(현대식 용어로는 이산화탄소이다). 이로써 돌턴은 탄소 원자와 산소 원자의 상대적 질량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가 얻은 탄소와 산소의 질량 비율은 약 1.30:1이었는데, 이것은 오늘날 알려진 1.33:1과 거의 비슷하다. 31)<br>3장 · 원자의 구성성분<br>당시 과학계는 음극선의 정체를 놓고 두 가지 주장이 대립하고 있었는데, 한쪽 진영은 음극선이 라디오파나 빛, 또는 X-선 같은 전자기파의 일종이라고 주장했고, 다른 진영은 이온ion처럼 음전하를 띤 입자의 흐름이라고 주장했다. 톰슨은 실험데이터에 기초하여 일련의 계산을 수행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음극선의 질량을 전하로 나눈 값이 수소이온을 전하로 나눈 값보다 약 1,000배쯤 작게 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음극선의 전하량이 수소이온의 전하량보다 훨씬 크거나 (2) 음극선의 질량이 수소이온의 질량보다 훨씬(아마도 수천 배 이상) 작다는 뜻이다. 1897년 10월 톰슨은 새로운 논문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그는 “양전하의 바닷속에 동심원을 따라 미립자가 배열되어 있는” 원자모형atomic model을 최초로 제시했다. “음극선의 구성 입자이자, 음전하를 띠고 있으면서 모든 원자에 들어 있는 엄청나게 가벼운 입자”는 오늘날 ‘전자electron’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44-6)<br>지난 10년 동안 방사선에 대하여 많은 사실이 새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일부 원자는 왜 방사선을 방출하면서 다른 원자로 변신하는가? 그리고 방사선에 담긴 에너지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러더퍼드의 계산에 의하면 방사성 붕괴가 일어날 때 방출되는 에너지는 가장 격렬한 화학반응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보다 무려 수백만 배나 강력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다. 원자의 내부 어딘가에 방대한 양의 에너지가 저장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1911년 러더퍼드는 원자핵의 발견을 훨씬 뛰어넘어 아원자세계의 그림을 최초로 보여주었다. 원자핵은 원자보다 수만 배 작으면서 원자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주변을 가벼운 전자구름이 선회하고 있다. 원자를 축구장 크기만큼 확대하면 원자핵은 센터서클 중앙에 놓인 작은 구슬쯤 되고, 전자는 관중석 어딘가에서 열심히 돌고 있을 것이다. 48, 51)<br>그러나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은 태생적으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맥스웰의 고전 전자기학에 의하면 가속운동을 하는 하전입자(전하를 띤 입자)는 전자기파(빛)를 방출한다. 원운동(궤도운동)도 엄연한 가속운동이므로, 원자핵 주변을 도는 전자는 전자기파를 방출하면서 에너지를 잃을 것이고, 에너지가 작아지면 궤도반지름도 작아진다. 그러므로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 전자는 나선을 그리면서 서서히 원자핵에 가까워지다가 결국은 원자핵 속으로 빨려 들어가야 한다. 다시 말해서, 원자의 내부 구조가 붕괴되는 것이다. 이 역설적인 문제는 닐스 보어Niels Bohr가 “양자quantum”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면서 극적으로 해결되었다. 보어는 전자가 특정한 궤도만 돌 수 있으며,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점프할 때마다 광양자를 방출한다고 주장했다. 보어의 원자모형에 의하면 전자는 원형 철로를 달리는 기차처럼 자신에게 할당된 궤도만 돌 수 있기 때문에, 원자핵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51-2)<br>4장 · 원자핵 분해하기<br>당구 게임에서는 한 공이 다른 공을 때리면 그 공이 또 다른 공을 때리고, 그 공이 또 다른 공을 때리고…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폴로늄에서 자연적으로 방출된 알파입자가 베릴륨의 핵을 때리면 투과력이 높은 방사선이 방출되는데, 이것이 바로 이렌과 프레데리크가 관측했던 감마선이다. 이 감마선이 다량의 수소 원자를 포함한 파라핀 왁스를 때리면 수소 원자의 핵, 즉 양성자가 빠른 속도로 방출된다. 놀라운 것은 파라핀 속의 양성자(수소 원자핵)가 감마선과 충돌했을 때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를 갖고 튀어나온다는 점이다.&nbsp; 양성자가 이렌 퀴리의 실험에서 측정된 값만큼 빠르게 가속되려면 양성자를 때린 감마선은 약 5,000만 eV(또는 50MeV)의 에너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폴로늄에서 방출된 감마선의 에너지는 아무리 커도 5.3MeV를 넘지 않는다. 어떻게 자신이 흡수한 에너지보다 10배나 큰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말인가? 모르긴 몰라도, 베릴륨 원자핵 안에서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63)<br>채드윅은 베릴륨에서 방출된 방사선을 중성자로 간주하면 에너지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감마선은 질량이 없기 때문에, 파라핀 왁스에서 무거운 양성자가 튀어나오도록 만들려면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 상황은 탁구공을 던져서 볼링공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nbsp; 그러나 중성자는 양성자와 질량이 비슷하기 때문에, 양성자를 중성자로 때리는 것은 볼링공을 또 다른 볼링공으로 때리는 것과 비슷하다. 양성자를 방출시키는 데 필요한 감마선의 에너지는 50MeV나 되지만, 중성자라면 4.5MeV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 값은 베릴륨 핵에 흡수된 알파입자의 에너지 5.3MeV보다 작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의 집합이었다. 원자핵 안에서 베타붕괴beta decay로 알려진 붕괴 현상이 일어나면 중성자가 양전하를 띤 양성자로 변하면서 음전하를 띤 전자를 외부로 방출한다. 이로써 중성자는 양성자, 전자와 함께 원자핵을 이루는 구성성분으로 자리 잡게 된다. 64-5)<br>5장 · 열핵 오븐<br>수소 원자핵(양성자)에 알파입자를 발사하면 대부분이 튕겨 나오지만, 알파입자와 수소 원자핵 사이의 거리가 1천×1조분의 1m 이내로 가까워지면 갑자기 두 입자 사이에 인력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강한 핵력strong nuclear force(강력)이라는 새로운 힘이 발견된 첫 번째 사례였다. “강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이 힘이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서 전기력을 이길 정도로 강하기 때문이다. 원자핵을 에워싸고 있는 “밀어내는 전기장”은 성을 에워싼 가파른 성벽과 비슷하다. 양성자가 이런 성에 침투하려면 성벽을 뛰어넘을 정도로 빠르게 점프해야 한다. 일단 벽을 넘기만 하면 강력이 작용하여 외부에서 침투한 양성자를 원자핵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일은 양성자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경우에만 일어날 수 있으며, 속도가 그 정도로 빨라지려면 온도가 수천만 도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나 우주에는 자연적으로 초고온 상태를 유지하는 곳이 있다. 그것도 한두 곳이 아니라 무수히 많다. 69-70)<br>가모프는 우라늄핵에서 방출되는 알파입자에 파동역학을 적용하면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아도 원자핵에서 탈출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가모프는 알파입자가 핵을 탈출하기 전에 성벽 안에서 이리저리 튕기는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고전물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작은 공처럼 생긴 알파입자는 누군가가 별도의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는 한 절대로 성벽을 탈출할 수 없다. 그러나 알파입자를 파동으로 간주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물통의 갈라진 틈으로 물이 새어 나오듯이, 알파입자의 파동이 성벽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이다! 그 결과 알파입자는 성벽 밖에서 발견될 수도 있다. 물론 확률이 아주 작지만 분명히 0은 아니다. 그러므로 파동함수가 붕괴되었을 때, 알파입자는 마치 장애물을 뛰어넘은 것처럼 우라늄 원자핵의 바깥에서 발견될 수도 있다(이것을 양자터널효과quantum tunneling effect라 한다: 옮긴이). 가모프의 양자핵이론은 알파입자가 우라늄핵에서 탈출하는 비결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했다. 74-5)<br>후테르만스와 엣킨슨 두 사람의 논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입자가 장벽을 통과하여 원자핵 밖으로 탈출할 수 있다면, 밖에 있던 입자가 원자핵 안으로 침투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가모프의 이론을 태양 중심부와 비슷한 온도에 적용해 보니, 정말로 핵융합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양 중심부에서 양성자가 양자터널을 통해 ‘전기적 척력’이라는 벽을 뚫고 원자핵 안으로 진입한다면, 낮은 온도에서도 핵융합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에딩턴의 계산에 따르면 태양에 있는 양성자는 성벽 꼭대기를 뛰어넘을 정도로 충분한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핵 주변을 에워싼 장벽은 높을수록 얇아지기 때문에, 태양 중심부의 양성자들이 장벽의 얇은 부분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빠르게 움직이면, 굳이 장벽 꼭대기에 도달하지 않아도 양자터널효과에 의해 원자핵의 내부로 침입할 수 있다. 마침내 태양의 핵융합 반응은 에딩턴이 계산했던 중심부의 온도(약 4,000만 ℃)에서도 일어날 수 있었다. 75-6)<br>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에딩턴은 태양 중심부의 온도를 4,000만 ℃로 추정했는데, 이 온도에서는 양성자-양성자 연쇄반응이 아주 빠른 속도로 일어나기 때문에 태양이 지금보다 훨씬 밝아야 한다. 에딩턴이 계산한 4,000만 ℃는 태양의 성분이 지구와 거의 같다는 가정하에 얻은 값이었다. 그러나 1925년에 영국의 여성 천문학자 세실리아 페인Cecilia Payne은 태양과 별의 주성분이 수소와 헬륨이며, 무거운 원소는 소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태양의 73%가 수소이고 25%가 헬륨이라는 가정하에 에딩턴의 계산을 다시 해보면, 태양 중심부의 온도는 1,900만 ℃까지 떨어진다. 베테가 이 온도에서 양성자 -양성자 연쇄반응이 일어날 때 방출되는 에너지를 계산해 보니, 실제 관측된 태양에너지와 거의 비슷한 값이 얻어졌다. 이로써 태양이 열을 방출하는 이유가 완벽하게 설명되었다. 태양은 지난 수십억 년 동안 이런 식으로 수소를 원료로 삼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헬륨을 만들어왔다. 79)<br>6장 · 별<br>초신성이 폭발하면 은하에 있는 모든 별(수천억 개)을 합한 것보다 훨씬 강렬한 에너지가 방출된다(초신성은 적색거성赤色巨星, red giant이나 백색왜성白色矮星, white dwarf처럼 특정한 상태로 유지되는 별이 아니라, “마지막 진화단계를 거친 후 최종적으로 폭발하는 별”을 의미한다. 지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별은 폭발해야 비로소 별처럼 보이기 때문에 ‘∼성星’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옮긴이). 별의 에너지원은 수소이므로, 세월이 흘러 중심부가 모두 헬륨으로 바뀌면 같은 방법으로는 더 이상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게 된다. 별이 이 단계에 이르면 팽창력의 근원인 열이 공급되지 않아서 자체 중력에 의해 안으로 붕괴되기 시작하고, 엄청난 중력에너지에 의해 중심부가 대책 없이 뜨거워지다가 결국 상상을 초월하는 폭발을 일으킨다 ― 이것이 바로 초신성이다. 이 사실을 알아낸 호일은 관련 계산을 수행한 끝에 “자체 중력으로 붕괴되는 별의 내부 온도는 원리적으로 40억 ℃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91-2)<br>별의 온도와 밀도가 적절하면 헬륨끼리 충돌하는 횟수가 엄청나게 많아서, 탄소-12로 자랄 수 있는 베릴륨-8의 개수가 일정 수준으로 유지될 수도 있다. 즉, 베릴륨-8의 생성과 붕괴가 적정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면, (개개의 핵의 수명이 엄청나게 짧다 해도)매 순간 일정한 개수의 베릴륨-8 핵이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단 별의 내부에서 탄소-12가 생성되기만 하면, 곧바로 다른 헬륨핵과 충돌하여 산소-16이 만들어진다. 이것 자체로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지만(산소는 우주의 중요한 구성성분이다), 반응이 너무 빠르게 일어나서 생명체의 형성에 반드시 필요한 탄소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쨌거나 우주에는 호일 같은 탄소기반 생명체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므로, 탄소가 모두 소모되는 것을 막아주는 다른 과정이 존재해야 한다. 이 순간만을 학수고대해 왔던 호일은 기발하면서도 환상적인 답을 떠올렸다. “탄소-12가 별의 내부에서 생성되려면 아주 특별한 성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가정한 것이다. 92-3)<br>호일의 아이디어는 다음과 . 호일은 실험결과를 같다 ―“탄소-12 원자핵이 놓일 수 있는 들뜬상태 중에 베릴륨-8과 헬륨핵이 충돌할 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에너지와 같은 에너지준위가 존재한다면 탄소-12의 생성 속도가 아주 빨라져서, 이들 중 상당수가 산소-16으로 바뀌어도 우주에는 충분히 많는 탄소-12가 남을 수 있다.” 분석하다가 자칫하면 우주에 생명체가 탄생하지 못할 수도 있었음을 깨닫고 깊은 경외감에 빠졌다. 생명의 기반인 탄소-12 외에 산소-16에도 이와 비슷한 에너지준위(7.19MeV)가 존재한다면, 별의 내부에서 어렵게 만들어진 탄소-12는 순식간에 산소로 변했을 것이다.[ 5 ] 그런데 산소-16 핵의 특성을 분석해 보니, 천만다행으로 그 값은 7.19MeV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7.12MeV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베릴륨-8이 두 개의 헬륨핵으로 분해되지 않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다면, 별이 헬륨을 너무 빠르게 소모하여 탄소를 비롯한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지기 전에 폭발했을 것이다. 93-5)<br># 원자핵 속의 양성자와 중성자는 핵 주변을 선회하는 전자처럼 몇 개의 특정한 에너지를 갖는 상태에만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을 ‘에너지준위energy level’라 한다.&nbsp;<br>7장 · 궁극의 우주요리사<br>현재 우리의 우주는 물질(기체, 먼지, 별, 암흑물질 등)이 지배하고 있지만, 탄생 직후 몇 분 동안 우주를 지배한 것은 물질이 아닌 빛이었다. 이 시기의 우주는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우리 주변의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물질입자(양성자, 중성자, 전자)는 격동하는 광자의 바다에서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거품에 불과했다. 이 “태초의 빛”은 처음 몇 분 동안 광자 한 개가 원자핵을 산산이 분해할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에, 원자핵이 형성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어쩌다가 운 좋게 양성자와 중성자가 결합하여 중수소핵이 되었다 해도, 순식간에 고에너지 광자에게 얻어맞아 분해되었다. 그러나 처음 몇 분 동안 우주는 엄청난 속도로 팽창했고, 부피가 증가함에 따라 온도는 빠르게 식어갔다. 약 3분이 지난 후에는 우주 오븐의 온도가 수십억 도까지 내려가서 광자는 더 이상 중수소핵을 분해할 수 없게 되었으며, 바로 이때부터 중수소의 양이 급증하면서 우주 조리실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117-8)<br>빅뱅 후 처음 1초 동안 원시 불덩이 속 입자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었으며, 양성자와 중성자는 고에너지 입자와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서로 상대방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양성자가 중성자로 바뀌는 사건과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는 사건이 거의 같은 빈도로 일어났다. 즉, 초창기의 우주는 평등한 세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우주가 식어가면서 양성자와 중성자의 미세한 질량 차이 때문에(중성자 › 양성자)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벼운 양성자가 무거운 중성자로 변하려면 그 반대의 경우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양성자 → 중성자 변환은 중성자 → 양성자 변환보다 드물게 일어났고, 이로 인해 우주에는 양성자가 중성자보다 많아졌다. 처음 1초가 지났을 무렵, 양성자가 중성자로 바뀌기에는 우주의 온도가 너무 낮았기 때문에 중성자의 수가 동결되었는데, 이때 양성자와 중성자의 비율은 약 6:1이었다. 이제 핵융합이 일어날 정도로 온도가 내려가려면 몇 분 더 기다려야 한다. 118)<br>그러나 이 시간 동안 홀로 고립된 중성자는 안정한 입자가 아니어서 평균 15분 만에 양성자와 전자, 그리고 반뉴트리노로 붕괴된다. 그 결과 빅뱅 후 2분이 지났을 때 중성자의 일부가 스스로 양성자로 변환되어 양성자와 중성자의 비율이 7:1까지 벌어졌고, 바로 이런 상태에서 핵융합 용광로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 후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모든 중성자는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로 이루어진 헬륨-4로 융합되었다. 그렇다면 양성자는 얼마나 남았을까? 처음에 양성자와 중성자의 비율이 7: 1이었으므로, 만일 양성자 14개와 중성자 2개에서 출발했다면 헬륨 1개가 만들어지고 양성자 12개가 남을 것이다. 즉, 헬륨핵과 양성자의 비율은 1: 12이다. 그런데 헬륨은 양성자보다 4배 무거우므로, 질량 비율로 따지면 헬륨 : 양성자 = 4 : 12가 된다. 다시 말해서, 빅뱅이론에 의하면 우주는 25%의 헬륨과 75%의 수소(융합에 참여하지 않은 양성자)로 출발했다는 뜻이다. 이것은 현재 관측된 원소의 양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118-9)<br>8장 · 양성자 조리법<br>1960년대에 자신의 이론에 ‘팔정도八正道, Eightfold Way(열반에 이르는 8가지 수행법)’라는 이름을 붙인 겔만은 몇 년 전부터 영감 어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겉모습이 완전히 다른 생물을 과科와 종種 등으로 분류하는 생물학자처럼, 겔만은 이미 알려진 강입자를 스핀 = 0인 중간자와 스핀 = 1/2인 바리온으로 나누고, 더 깊은 곳에서 각 입자들 사이의 연관성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질량이 같으면서 전하가 다른 ‘쌍’처럼 보였고, 둘 다 스핀이 1/2이므로 바리온에 속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다음으로 전하가 +, 0, -인 파이온(π- 중간자)이 있고, 스핀 = 0이면서 두 가지 전하(+, -)로 존재하는 중간자 케이온이 있다. 겔만은 입자분류게임을 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목록의 깊은 저변에 심오한 대칭이 존재한다는 것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다. 겔만은 몇 년 전부터 “강입자가 더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하면, 내가 발견한 대칭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왔다. 130, 132)<br>겔만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소설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를 읽다가 “머스터 마크에게 세 개의 쿼크를!Three quarks for Muster Mark!”이라는 문장에 눈길이 꽂혀, 그 감지되지 않은 입자를 '쿼크quark'라고 명명했다. 겔만은 쿼크가 ‘위up’와 ‘아래down’, 그리고 ‘야릇한strange’이라는 세 종류로 존재하면 강입자의 대칭을 설명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단, 위쿼크up quark의 전하는 +2/3이고, 아래쿼크down quark와 야릇한 쿼크strange quark의 전하는 –1/3이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쿼크(그리고 이들의 반입자)를 잘 조합하면, 실험실에서 발견된 모든 강입자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다. 파이온이나 케이온 같은 중간자는 쿼크와 반쿼크antiquark가 결합한 입자이고, 바리온은 세 개의 쿼크로 되어 있다. 물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양성자와 중성자이다. 양성자는 2개의 위쿼크와 1개의 아래쿼크로 이루어져 있고(uud), 중성자는 두 개의 아래쿼크와 한 개의 위쿼크로 이루어져 있다(udd). 133)<br>1973년, CERN의 초대형 거품상자 가가멜Gargamelle이 드디어 결정적인 증거를 잡았다. 양성자 안에 있는 “점 같은 물체”에 튕겨서 빠르게 날아가는 뉴트리노가 포착된 것이다. 게다가 이 입자는 겔만과 츠바이크의 예측대로 분수전하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었다. 쿼크를 직접 봤다는 사람이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입자가속기를 동원해도 강입자 감옥에서 쿼크를 해방시키기 못했으며, 쿼크가 존재한다는 증거라곤 강입자와 부딪힌 후 튕겨 나온 입자들뿐이었다. 아무래도 쿼크는 강입자 내부에 영원히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그 이유는 강입자 안에서 쿼크를 결합시키는 힘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졌다. 흔히 강력强力, strong force으로 알려진 이 힘은 항상 인력引力으로 작용하며, 지금까지 발견된 힘 중에서 가장 강하다. 원자핵 안에서 양성자와 중성자를 단단히 묶어 놓는 강한 핵력은 그보다 훨씬 강한 강력의 메아리였다(사실 '강력'과 '강한 핵력'은 같은 뜻이다). 136)<br># 지금까지 알려진 쿼크는 모두 6가지이다. 위쿼크up quark와 맵시쿼크charm quark, 그리고 꼭대기쿼크top quark의 전하는 (전자의 전하를 –1이라고 했을 때) +2/3이고, 아래쿼크down quark와 야릇한 쿼크strange quark, 바닥쿼크bottom quark의 전하는 –1/3이다.<br>1973년에 이론물리학자 데이비드 그로스David Gross와 프랭크 윌첵Frank Wilczek, 그리고 데이비드 폴리처David Politzer는 강력과 관련하여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강입자가 아주 강한 에너지로 충돌하면, 강력의 바이스vise(죔쇠) 역할을 하는 부분이 느슨해진다는 사실을 수학적인 계산만으로 알아낸 것이다. 이는 곧 에너지가 아주 크면 강력의 세기가 약해져서 강입자가 “자유쿼크와 글루온으로 이루어진 과열된 기체 상태”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쿼크-글루온 플라즈마quark-gluon plasma’라 한다. 과열된 쿼크-글루온 플라즈마 속에서는 초고온, 초고밀도 상태에서 쿼크와 글루온이 강입자의 경계를 벗어나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 사실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 쿼크-글루온 플라즈마가 존재할 정도로 극단적 환경이 조성되었던 시기는 “빅뱅 후 100만분의 1초 이내” 뿐이었다. 약 100만분의 1초가 지난 후에는 우주가 충분히 식어서 쿼크와 글루온이 결합하여 양성자와 중성자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141)<br>9장 · 입자란 진정 무엇인가?<br>디랙은 패러데이의 전자기장과 아인슈타인의 광자를 교묘하게 조합하여 “양자장quantum field”이라는 새로운 물리적 객체를 만들어냈다. 여러 면에서 양자장은 패러데이의 고전 전자기장과 매우 비슷하다. 둘 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전기력과 자기력을 전달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흔들면 빛의 형태로 장을 가로지르는 파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디랙의 양자장과 고전 전자기장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고전 전자기장에서는 파동을 임의의 크기로 만들 수 있지만, 양자장에서는 파동의 최소 크기가 정해져 있어서, 이보다 작은 파동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에너지는 작은 ‘덩어리’의 단위로 존재한다. 전자기장에서는 0개나 1개, 2개, 또는 1,000조 개의 광자가 잔물결을 일으킬 수 있지만, ‘1/2개의 광자’나 ‘10/3개의 광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에너지가 항상 광자의 정수배로 존재하는 것이다. 좀 더 유식하게 표현하면 “전자기장은 양자화되어 있다quantized.” 151-2)<br>그러나 디랙의 이론은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했다. 광자가 전자기장에 생긴 잔물결이라면, 다른 물질입자는 어떻게 되는가? 전자와 양성자는 광자와 근본부터 다른 입자인가? 물론 이들도 파동-입자 이중성을 갖고 있지만 만들어낼 수도, 파괴할 수도 없다. 수시로 탄생했다가 소멸되는 광자와 달리, 전자와 양성자는 영원히 존재하는 것 같았다. 1920년대의 양자역학은 특수상대성이론에 부합되지 않았다. 상대방에 대해 움직이고 있는 두 관측자가 얻은 양자역학의 법칙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양자역학이 아직 불완전했다는 뜻이다. 마침내 디랙은 매우 그럴듯해 보이는 후보를 찾아냈다. 이 방정식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모두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전자가 팽이처럼 자전하면서 갖게 된 특성까지 자연스럽게 설명해 주었다(이 특성을 스핀spin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또한 이 방정식은 “스핀이 위를 향하는 전자”와 “스핀이 아래로 향하는 전자”라는 두 개의 해를 갖고 있었다. 152-3)<br># 전자를 포함한 모든 물질입자는 1/2의 스핀을 갖고 있으며 위( +1/2)와 아래(–1/2), 두 가지 값을 가질 수 있다.<br>그러나 디랙의 머릿속에는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었다. 자신이 유도한 방정식에 무언가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방정식에는 총 4개의 해가 존재했는데, 처음 2개는 스핀이 업up(↑)인 전자와 다운down(↓)인 전자에 해당하여 별문제가 없었지만, 남은 두 개는 “음의 에너지negative energy를 가진 전자”라는 듣도 보도 못한 입자에 대응되어 디랙의 심기를 괴롭히고 있었다. 어렵게 유도한 방정식을 포기할 수 없었던 디랙은 모든 가능성을 철저하게 타진한 후, 물리학의 역사를 바꿀 과감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음에너지 상태로 떨어지는 전자가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음에너지 상태가 이미 다른 전자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단, 이 전자는 전하의 부호가 일상적인 전자와 반대여야 한다. “양전하를 띤 전자”라는 뜻이다. 음에너지 상태를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디랙은 1931년에 다음과 같은 폭탄선언을 날렸다 ―“자연에는 양전하를 띤 전자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154-5)<br>디랙은 순수한 사고思考만으로 한 번도 발견된 적 없는 새로운 물질의 존재를 예견했다. 그리고 1932년 실제로 “양전하를 띤 전자”가 발견됐다.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일상적인 물질의 거울에 비친 상象인 ‘반물질antimatter’의 세계로 가는 길이 활짝 열린 것이다. 지금 우리는 모든 물질입자마다 “모든 물리적 특성이 같으면서 전하의 부호만 반대인” 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디랙이 예견했던 “양전하를 띤 전자”는 오늘날 ‘양전자positron’, 또는 ‘반전자antielectron’라고 불린다(임의의 입자와 모든 것이 같으면서 전하의 부호만 반대인 입자를 반입자antiparticle라 한다: 옮긴이). 반물질이 발견되면서 “물질은 영원하다”는 믿음도 허물어졌다. 입자-반입자 쌍이 생성될 정도의 강한 에너지로 두 입자를 충돌시키면 새로운 물질입자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 입자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운수 사납게 자신의 반입자 짝을 만나면, 강렬한 섬광(복사)을 방출하면서 무無로 사라진다. 156)<br>지금까지 언급된 모든 입자들은 각기 자신만의 양자장에 대응된다. 광자는 전자기장electromagnetic field에 생긴 잔물결이고, 전자와 양전자는 ‘전자장electron field’에 생긴 잔물결이며, 위쿼크는 ‘위쿼크장up quark field’라는 양자장에 생긴 잔물결이다. 강입자충돌기LHC에서 두 개의 양성자가 정면으로 충돌하면 일련의 양자장에 ‘자연의 종’이 울리면서 잔물결의 홍수가 양자 교향곡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실험자는 감지기에 도달한 잔물결로부터 교향곡의 악보를 재구성하여 악기의 종류를 알아내는 식이다. 우리는 이 잔물결을 입자로 해석하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본 것은 순간적으로 일어난 양자장의 동요이다. 우리가 아는 한, 우주의 진정한 구성요소는 입자가 아닌 양자장이다. 보이지 않고, 맛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유체 같은 물질이 가장 작은 원자에서 가장 먼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물질의 진정한 구성요소는 화학원소도, 원자도, 전자도, 쿼크도 아닌 양자장이다. 156-7)<br>10장 · 최후의 구성성분<br>이 세상 모든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는 음전하를 띤 전자와 양전하를 띤 원자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자핵은 양전하를 띤 양성자와 전하가 없는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다(양성자와 중성자를 합쳐서 핵자nucleon라 한다: 옮긴이). 그리고 양성자와 중성자는 위쿼크와 아래쿼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모든 물질의 구성성분은 전자와 위쿼크, 그리고 아래쿼크라는 세 가지 입자로 귀결된다. 물론 구성성분을 모아놓는다고 해서 물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원자의 구조는 구성요소와 함께 이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에 의해 결정되는데, 그중 전자와 원자핵을 결합시키는 전자기력과 원자핵 안에서 양성자와 중성자를 결합시키는 강력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두 힘은 양자장(전자기장과 글루온장)을 통해 매개되며, 이 양자장에 불연속의 에너지 덩어리를 투입하면 양자화된 작은 파문(또는 입자라고도 함)이 생기는데, 전자기력의 경우에는 이것을 광자라 하고, 강력의 경우에는 글루온이라 한다. 168)<br>그러나 미시세계에는 아직 논하지 않는 또 하나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힘들 중에서 가장 희한한 힘―그것은 바로 약력weak force이다. 약력이 특별한 이유는 한 종류의 입자를 다른 종류의 입자로 변환시키는 유일한 힘이기 때문이다. 하전입자와 전자기장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양자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 QED은 과학사를 통틀어 가장 정확한 이론으로, 이론과 실험의 오차가 100억분의 1을 넘지 않는다. 이 놀라운 이론의 핵심에는 “국소게이지대칭local gauge symmetry”이라는 아름다운 원리가 자리 잡고 있다. 줄리언 슈윙거에 의해 처음으로 도입된 이 원리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 “전자기력, 강력, 약력 등 근본적인 힘은 자연의 깊은 곳에 존재하는 대칭으로부터 나타난 결과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칭이란, 주어진 물리계(기체 상자, 또는 태양계, 혹은 우주 전체)에 어떤 조작을 가했는데 그 후에도 물리계가 변하지 않을 때, 그 물리계에는 대칭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168-70)<br>뇌터의 정리에 의하면 대칭이 존재하는 곳에 그에 해당하는 보존량(변하지 않는 양)이 존재한다. 회전대칭이 존재하는 경우, 그에 대응하는 보존량은 각운동량(계가 갖고 있는 회전능력)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동안 수많은 실험이 실행되었는데, 운동량이 보존되지 않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계의 운동량은 증가하지도 감소하지도 않으며, 계의 각 요소에 재분포되는 것만 가능하다. 에너지와 운동량이 보존되는 이유도 대칭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에너지가 보존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 시간변환에 대하여 대칭이기 때문이고(즉, 시간이 과거나 미래로 흘러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시간변환대칭이라 한다), 운동량이 보존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 공간의 모든 지점에서 똑같기 때문이다(즉, 공간 전체를 임의의 방향으로 이동시켜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병진대칭이라 한다). 그러나 대칭이 낳은 결과 중에는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 자연에 존재하는 힘 자체가 바로 대칭이 낳은 결과라는 것이다. 170)<br>여기서 물리학자들은 역설적 상황에 직면했다. 약력입자(약력을 매개하는 입자. W입자와 Z입자)는 큰 질량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약력은 매우 강하면서 먼 곳까지 작용하는 장거리힘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입자가 무거우면 이론에서 무한대가 속출하고, 약력의 형태를 결정해 준 보석 같은 대칭까지 붕괴된다. 약력의 양자장 이론이 폐기될 위험에 처했다. 잠깐… 혹시 대칭이 붕괴된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버린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서 약력을 매개하는 입자는 기본적으로 질량이 없지만, 무언가로부터 질량을 획득하게 된 것은 아닐까? 바로 여기서 ‘힉스장Higgs field’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nbsp; 힉스장은 지금까지 우리가 접했던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양자장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장은 스핀 = 1/2인 전자에 대응되는 물질장物質場, matter field이거나, 스핀 = 1인 광자에 대응되는 역장이었다. 그러나 힉스장에 대응되는 입자의 스핀은 0이라는 특이한 값을 갖고 있다. 175)<br>이뿐만이 아니다. 힉스장은 공간의 모든 지점에서 0이 아닌 값을 가져야 한다. 전자기장과는 완전히 다른 특성이다. 광자가 알뜰하게 제거된 공간에서는 전자기장에 잔주름이 전혀 생기지 않으므로, 양자적 불확정성에 의해 나타나는 약간의 요동을 제외하면 전자기장의 값은 모든 곳에서 0이다. 그러나 힉스장에서 모든 입자를 제거해도 장의 값은 0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즉, 모든 우주공간은 균일한 힉스장의 수프로 가득 차 있다. 우주가 처음 탄생하던 순간에 힉스장의 값은 0이었고 세 개의 약력입자 W+, W-, Z0는 질량을 갖고 있었으며, 이들 사이에는 SU(2)라는 대칭이 존재했다. 그러나 우주 탄생 후 1조분의 1초가 지났을 때 힉스장의 “스위치가 켜지면서” 0이 아닌 값을 갖게 되었고, 모든 공간은 힉스장의 수프로 가득 차게 되었으며, 약력입자는 갑자기 질량을 갖게 되었다. 초기에 존재했던 완벽한 대칭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으면서 “강한 장거리힘”이었던 약력이 “약한 단거리힘”으로 바뀐 것이다. 175)<br>우주 탄생 직후에는(탄생의 순간부터 1조분의 1초까지. 이토록 짧은 시간에는 ‘직후’라는 표현이 다소 부적절하게 느껴지지만, 더 좋은 단어가 없다: 옮긴이) 전자와 쿼크를 비롯하여 모든 물질입자들이 빛의 속도로 날아다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걸쭉해진” 힉스장 때문에 입자의 속도가 느려졌고, 이들이 힉스장과 상호작용을 교환하면서 없던 질량을 획득하게 되었다. 힉스장이 전자나 쿼크에 끈끈한 액체처럼 들러붙어서 속도를 늦추고 질량을 주입하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에 광자나 글루온 같은 입자는 힉스장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힉스장 속에서도 질량이 없는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므로 힉스장은 약력입자뿐만 아니라 물질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입자에게도 질량을 부여한다. 힉스장이 없으면 전자 같은 입자가 광속으로 날아다니기 때문에 원자가 형성될 수 없고, 자연에 존재하는 기본 힘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용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힉스장이 없으면 이 세상도 존재할 수 없다. 175)<br># 힉스장은 전자와 쿼크 같은 기본 물질입자에만 질량을 부여한다. 그러나 양성자와 중성자가 갖고 있는 질량의 대부분은 쿼크의 질량이 아니라 쿼크를 결합시키는 글루온장의 에너지이다. 즉, 원자 질량의 대부분은 힉스장이 아닌 강력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br>11장 · 만물의 조리법<br>만물의 창조 작업은 빅뱅 후 100만분의 1초가 지났을 때 거의 마무리되었다. 처음 100만분의 1초 동안 우주는 엄청나게 뜨거워서 입자와 반입자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파괴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우주는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면서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졌고, 100만분의 1초가 지난 시점에는 플라즈마에서 양성자와 반양성자 쌍이 만들어질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워지면서 대량 멸종이 시작되었다. 입자와 반입자가 만나 무無로 소멸되고, 이 과정에서 생성된 무지막지한 복사에너지가 모든 물질을 쓸어버린 것이다. 모든 것이 우리 예상대로 진행되었다면 물질과 반물질은 완전히 사라지고, 우주에는 텅 빈 공간과 그 안을 외롭게 날아다니는 몇 개의 광자만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량 멸종의 와중에 입자의 100억분의 1이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그 이유는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어쨌거나 입자가 반입자보다 100억분의 1쯤 많았기에, 이 자투리 입자들이 진화하여 지금의 은하와 별, 행성, 인간, 그리고 사과파이가 되었다. 187)<br># ‘사하로프 조건Sakharov conditions’(우주 초기에 물질이 생성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1. 쿼크가 반쿼크보다 많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존재해야 한다.2. 물질과 반물질을 연결하는 대칭은 불완전해야 한다.3. 물질 생성 과정이 진행될 때, 우주는 열적평형상태thermal equilibrium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br>자연의 법칙이 좌우대칭이라는 것은 너무나 기본적인 가정이어서 아무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계 미국인 실험물리학자 우젠슝吳健雄의 놀라운 실험결과가 알려지면서 오래된 믿음은 산산이 부서지게 된다. 1956년 미국 연방표준국의 지원을 받아 실행된 우젠슝의 실험은 문자 그대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자연의 기본 힘 중 하나인 약력이 “오른손잡이 입자right-handed particle”보다 “왼손잡이 입자left-handed particle”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입자에 두 손이 달려 있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손잡이”는 입자의 자전효과와 유사한 양자적 스핀과 관련되어 있다. 약력은 분명히 거울 대칭을 위반하고 있었다. 그 후로 이 현상은 “반전성위배parity violation”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여기서 말하는 반전성parity은 ‘좌우대칭성’과 같은 뜻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옮긴이). 반전성이 위배된 궁극적 이유는 약력이 왼손잡이 전자에게 더 강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189-90)<br>스팔레론은 전자기력과 약력, 그리고 힉스장의 기원을 설명하는 약전자기이론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이다. 분명히 스팔레론은 입자가 아니다. 전자나 힉스보손 같은 입자는 기타 줄을 퉁길 때 생성되는 단일 음처럼 평균값 주변을 오락가락하는 단일 양자장의 진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에 스팔레론은 이보다 훨씬 미묘한 개념으로, 하나의 양자장이 아니라 W장과 Z장, 그리고 힉스장이 바로크양식처럼 섞여서 한꺼번에 움직이는 “양자장의 오케스트라”에 해당한다. W장과 Z장, 그리고 힉스장이 집합적으로 움직이면 스팔레론이 생성되고, 스팔레론은 입자를 반입자로 바꾸거나 반입자를 입자로 바꾸는 기적 같은 능력을 발휘한다. 스팔레론은 물질을 만드는 기계로서, 여기에 약간의 반물질을 투입하면 일상적인 물질입자가 생성된다. 이 기적 같은 능력 덕분에 스팔레론은 표준모형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들 중 입자 -반입자의 균형을 깰 수 있는 유일한 후보이자, 물질의 근원을 설명하는 핵심 요소로 부각되었다. 192)<br>일본 기후현岐阜縣 히다시飛騨市 근처의 이케노산池野山 지하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물 중 하나인 슈퍼 카미오칸데Super-Kamiokande, 슈퍼- K가 열심히 가동 중이다. 슈퍼- K는 세계 최대 규모의 뉴트리노 감지장치로서, 물질의 기원을 밝혀줄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2020년 4월, 슈퍼-K에서 작업 중인 150명의 연구원들은 물질-반물질과 관련된 대칭을 뉴트리노가 깨뜨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앞으로 더욱 정밀한 측정을 통해 사실로 판명된다면 물리학계에는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물리학자들은 전하 -패리티 대칭이 오직 쿼크의 약한 상호작용(약력)을 통해서만 깨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뉴트리노도 대칭을 깰 수 있다면 빅뱅 직후 물질이 생성되는 두 번째 길이 열리는 셈이다. 우주에서 가장 흔한 물질입자인 뉴트리노가 물질-반물질과 관련된 대칭을 깨뜨릴 수도 있다는 것은(슈퍼-K에서 발견된 사실임) 곧 뉴트리노에 질량이 있음을 의미한다. 197-9)<br>뉴트리노는 분명히 질량을 갖고 있었다. 질량이 너무 작아서 관측이 안 되었던 것뿐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뉴트리노의 질량은 0.5eV 이하로서, 전자의 100만분의 1도 안 된다. 왜 그럴까? 뉴트리노는 왜 그토록 작은 질량을 갖게 되었을까? 현재 제일 널리 수용된 답은 “시소 메커니즘see-saw mechanism”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질량이 매우 큰 뉴트리노 3종이 추가로 존재한다고 가정하여, 기존의 가벼운 뉴트리노 3종(각각 전자뉴트리노, 뮤온뉴트리노, 타우 뉴트리노)과 균형을 되찾는 식이다. 초경량급 뉴트리노가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새로 도입한 슈퍼헤비급 뉴트리노는 질량이 정말로 커야 한다. 예상되는 질량은 양성자의 10억∼1,000조 배 사이로서(109∼1015GeV)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입자보다 무거울 뿐만 아니라, LHC의 최대 출력보다 10만 배 이상 크다. 그러나 초기우주에는 온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기 때문에, 이런 입자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199)<br>12장 · 누락된 구성요소<br>표준모형을 가장 크게 위협한 도전장은 입자물리학이 아닌 천문학 분야에서 날아왔다. 1930년대에 스위스의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Fritz Zwicky는 1,000개가 넘는 은하들로 구성된 코마은하단Coma Cluster의 운동속도를 계산하다가 깜짝 놀랐다. 중력으로 은하단의 형태를 유지하기에는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츠비키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성단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것을 “암흑물질dunkle Materie, dark matter(영)”이라 불렀다. 암흑물질보다 더욱 신비한 것은 “밀어내는 중력”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암흑에너지이다.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팽창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이유를 암흑에너지에서 찾고 있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물론 질량도 포함된다)의 95%를 차지한다. 인간을 포함하여 밤하늘에 떠 있는 별과 은하를 모두 더해봐야 전체의 5%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방대한 미지의 바다를 표류하는 작은 거품일 뿐이다. 209-10)<br>모든 기본 입자의 질량은 힉스입자의 ‘246GeV’라는 질량으로부터 결정되었다. 집안에서 보일러의 온도를 조절하는 다이얼처럼, 우주의 온도를 조절하는 다이얼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다이얼을 왼쪽으로 돌리면 표준모형에 등장하는 모든 입자의 질량이 작아지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커진다. 여기서 질문 하나 ― 우주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하여 훗날 지구에 생명체가 번성하려면 다이얼을 얼마나 정확하게 고정해야 할까? 답: 말도 안 되게, 어마무시하게,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게, 정말 환상적으로 정확해야 한다. 이 모든 문제의 배후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물리학자들을 괴롭혀온 유령이 숨어 있다. 찬반양론으로 갈려 숱한 논쟁을 야기했던 그 유령의 정체는 다름 아닌 “다중우주”이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 우주가 “각기 다른 법칙이 적용되는 여러 개(또는 무한개)의 우주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 황당한 가설을 받아들이면 힉스장이 기적 같은 값을 갖게 된 것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라 필연적인 결과가 된다. 212, 214)<br>초대칭supersymmetry은 물리학이 직면한 여러 개의 심오하고 근본적인 문제들을 한 방에 해결해 주는 아주 유별난 개념이다. 기존의 이론에 이 개념을 도입하면 빅뱅 무렵에 물질이 반물질보다 많았던 이유와 암흑물질의 특성을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주초기에 모든 힘들(전자기력, 약력, 강력, 중력)이 단 하나의 통일된 힘으로 존재했다는 엄청난 가설까지 가능해진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초대칭의 가장 큰 매력은 난폭한 진공에너지로부터 힉스장을 안전하게 보호하여, 힉스장이 지금처럼 적절한 값(원자가 생성될 수 있는 값)을 갖게 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대칭은 자연의 기본 구성요소에 부과된 또 하나의 새로운 대칭으로, 물질과 반물질을 연결하는 대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 초대칭을 통해 연결되는 두 부류는 입자와 반입자가 아니라 페르미온과 보손이다. 즉, 초대칭은 전자와 쿼크, 뉴트리노 같은 물질입자를 광자, 글루온, 힉스입자 같은 힘입자와 연결시키는 대칭이다. 216)<br># 초대칭짝에 해당하는 입자를 통틀어서 스파티클sparticle(초대칭입자)이라 한다.&nbsp;<br>13장 · 우주 만들기<br>현대물리학은 두 개의 거대한 주춧돌 위에 구축되었다. 미시세계(원자의 입자의 세계)를 서술하는 양자장이론과 거시적 규모에서 우주(은하, 별, 행성 등)의 거동을 서술하는 중력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두 이론은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지만(지금까지 실행된 그 어떤 실험도 두 이론에 반하는 결과를 내놓은 적이 없다), 빅뱅의 순간으로 다가가면 오작동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양자장이론은 중력을 고려하지 않았고, 중력이론은 양자역학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빅뱅의 순간에는 우주 전체가 아원자규모로 존재했다. 우주 만물(에너지와 장, 시간과 공간)이 원자보다 훨씬 작은 점 안에 밀집되어 있었으므로, 이 극단적인 환경에서는 중력과 양자역학의 영향을 동시에 받았을 것이다. 따라서 우주 탄생의 순간을 물리학으로 서술하려면 입자물리학과 우주론, 양자장이론, 그리고 일반상대성이론을 하나로 합친 “양자중력이론quantum theory of gravity”이 필요하다. 231)<br>끈이론은 1970년대에 쿼크를 묶어두는 강력을 서술하기 위해 도입되었다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여 거의 사장된 후 ‘양자중력’이라는 더욱 야심 찬 목표를 내걸고 화려하게 부활한 이론이다. 끈이론은 1984년에 그린과 슈바르츠가 “끈이론에는 수학적 변칙anomaly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증명하면서 하루아침에 이론물리학의 총아로 떠오르게 된다. 끈이론의 핵심은 전자를 비롯한 기본 입자들이 야구공 같은 입자가 아니라 “진동하는 끈”이라는 것이다. 만물의 기본 구성요소는 끈이며, 끈이 진동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입자로 나타난다. 이것은 기타 줄의 진동수에 따라 각기 다른 음이 생성되는 것과 비슷하다. 특정 모드로 진동하면 전자가 되고, 다른 진동모드에서는 쿼크가 되고, 또 다른 진동모드에서는 중력자가 되는 식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끈이론은 우주에 초대칭이 존재해야 의미를 갖기 때문에 초대칭 버전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이다. 234-5)<br>인플레이션은 대표적인 우주 이론으로 입지를 굳혔지만, 실제로 일어났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태이다. 물론 광학망원경으로 빅뱅 후 1조×1조×1 조분의 1초까지 들여다보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탐색 수단을 빛에서 중력파로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플레이션이 정말로 일어났다면 시공간이 휘둘리면서 거친 파동이 생성되었을 것이고, 그 여파는 지금도 우주 곳곳에 메아리처럼 퍼져나가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이들은 파장이 엄청나게 길어지고 강도도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지만, 미래형 관측소가 계획대로 완성된다면 우주창조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험실에서 장비를 다루건, 노트에 방정식을 끄적이건, 또는 우주에서 날아온 신호를 분석하건 간에, 모든 과학의 기본은 ‘탐험’이다. 그리고 일단 탐험 길에 올라 새로운 현상과 미스터리를 쫓아가다 보면 출발점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이 여행은 영원히 계속될 것인가?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끝날 것인가? 244-5)<br>14장 · 이것으로 끝인가?<br>과연 우리는 무無에서 사과파이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을까? 양자역학과 중력이론에 의하면,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우주가 탄생한 순간(중력, 시간, 공간, 양자장 등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던 순간)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다. 실망스러운가? 그럴 필요 없다. 사실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질과 우주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꽤 먼 길을 걸어왔지만, 플랑크 규모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고도 멀었다. 궁극의 이론을 논할 때가 아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사방에 널려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자연은 인간을 놀라게 하는 데 거의 무한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해왔다. 지금보다 더 먼 곳을 관측하고 더 작은 영역을 들여다보았을 때 무엇이 나타나서 우리를 놀라게 할지, 그 누가 짐작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꽤 먼 길을 걸어왔지만, 이야기는 지금도 만들어지는 중이다.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탐험을 계속한다면, 우주의 조리법을 발견하는 날이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225-6)]]></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109/29/cover150/e1225308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1092986</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간식</category><title>미국의 배신과 흔들리는 세계 / 김준형 - [미국의 배신과 흔들리는 세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91767</link><pubDate>Thu, 02 Apr 2026 08: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917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652637523&TPaperId=171917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40/72/coveroff/e65263752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652637523&TPaperId=171917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국의 배신과 흔들리는 세계</a><br/>김준형 지음 / 창비 / 2025년 06월<br/></td></tr></table><br/>바야흐로 격변의 시대<br>탈냉전과 팍스 아메리카나<br>두번의 위기와 슈퍼맨의 약점<br>미국 패권은 자신의 장점을 과시하기도 했지만, 주로 ‘나쁜 쪽, 나쁜 국가’들의 존재를 통해 반사적 정당성을 얻었습니다. 2001년 발생한 9·11 테러는 미국의 대외 정책 결정자들에게 다시금 세계를 아군과 적군으로 나눌 수 있는 빌미를 주었습니다. 문제는 막강한 미국의 상대로 몇십명의 테러리스트가 빌런이라는 구도는 모양도 빠질 뿐만 아니라 정당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대상이 바로 배후국가들입니다. 테러리스트들의 배후를 색출하면서 만들어낸 적이 바로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이란, 이라크, 그리고 북한 세 국가입니다. 거기에 시리아, 리비아, 쿠바, 아프가니스탄을 합쳐서 일곱개의 ‘불량국가 또는 깡패국가’(Rogue states)를 국제사회의 적으로 규정합니다. 미국은 이 깡패국가들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독재자들이 사라지고 진정한 세계평화가 온다는 전제하에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일어난 전쟁이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이었던 것입니다. 13-4)<br>균열을 보이던 미국 패권체제를 거세게 흔드는 중요한 사건이 또 하나 일어납니다.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입니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일어나면서 월스트리트가 폭삭 내려앉습니다. 첫번째 전환점이었던 9·11 테러가 미국에 심리적인 타격을 입히고 대외 정책을 변화시켰다면, 2008년의 금융위기는 소련을 붕괴시킨 자본주의가 드디어 그 모순의 폐해를 실제로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때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을 모색하며 만들어진 것이 지금 우리나라도 참여하고 있는 G20(미국 중국 등 19개의 주요 국가와 2개의 국가연합을 더한 20개의 국가 및 지역 모임)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했던 바탕에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비약적인 성장이 있었습니다. 사실상 중국이 세계 금융위기의 충격을 흡수해준 덕분에 자본주의가 다시 살아난 셈입니다. 이를 통해 미국은 다시 냉전 직후의 질서를 어느정도 회복합니다. 그럼 미국은 중국에 고마워할 법도 한데, 그보다는 중국이 이렇게 강해졌다는 데 큰 충격을 받습니다. 14-5)<br>신냉전이 아니다, 파편화다<br>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8년이 지난 2016년에는 우리가 말하는 서구, 선진국이었던 유럽과 미국에서 사건이 하나씩 발생합니다. 유럽에서는 브렉시트(Brexit), 즉 영국이 EU(유럽연합)에서 떨어져나가는 일이 벌어졌고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이 두가지 사건은 본질적으로 똑같습니다. 실제로 구호도 ‘미국/영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같았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각종 국제기구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미국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만든 기구와 질서로 인해 오히려 불리해졌으니 거기서 빠져나오거나 무력화시켜버리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셈입니다. 미국 경제에 손해만 끼친다며 WTO(세계무역기구)에 기금도 내지 않고 자유무역체제를 부정하고, 멋대로 관세를 부과하는 상황이 대표적입니다. 트럼프 1기에서는 중국 같은 특정 국가와 상품에 선별적으로 관세를 부과했지만, 2기에 와서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관세 부과에 나섬으로써 보호무역주의를 한층 강화합니다. 16)<br>지금까지 미국에 이익을 줬던 국제 협력체제 혹은 세계화 구조가 더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미국은 이제 자의적으로 규칙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변화의 엔진인 동시에 결과물이 트럼프이고, 트럼피즘입니다. 트럼피즘은 세가지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번째는 앞에서 말한 미국 우선주의로 국제협력을 지향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무너뜨리고 미국의 이익을 중시하는 차원입니다. 두번째는 백인 우선주의를 포함합니다. 세번째는 트럼프 개인 차원의 우선주의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트럼프의 선거 구호)의 실천 방식이 매우 권위주의적이고, 심지어 독재적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를 무시하고 트럼프라는 한 권력자가 대내외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트럼프는 의회를 통하지 않고 행정명령을 남발합니다. 대통령에 취임하고 하루 동안은 독재자가 되고 싶다고도 말했습니다. 헌법적으로 불가능한 3선도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17)<br>‘신냉전’은 미중 패권 경쟁을 일컫는 자극적인 용어이긴 하지만, 오히려 지금 세계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용어는 이것일 겁니다. ‘파편화’(fragmentation). 이 말의 기원은 정치철학자 홉스(T. Hobbes)로 홉스가 당시의 영국 정치를 설명했던 단어가 ‘적자생존’입니다. 협력이 아닌 공포의 세계 속에서 가장 힘센 자가 가장 많이 갖게 되는 적자생존, 즉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오늘날 일국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에서도 작동하고 있습니다. 시장 자본주의의 폐해로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이를 제어하는 제도들이 다 무너지면서, 사람들의 불안과 불만이 높아지기 시작하자 생겨난 현상들 중 하나가 안보 포퓰리즘입니다. 이런 불안을 이용하는 자들이 나타나는데, 그런 사람들을 ‘(극우적) 스트롱맨’이라고 합니다. 내부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이민자나 난민, 소수자들에게 덮어씌우고, 대외적으로는 불안을 조장하고 민족주의 감정을 호소하면서 외부 세력을 혐오하게끔 만듭니다. 18-9)<br>분열된 나라: 똑 닮은 미국과 한국<br>트럼프의 외교 전략: 각개격파와 삥 뜯기<br>트럼프의 세계관에서 한국과 일본, 유럽 등 미국의 기존 우방국들은 미국에 이른바 ‘빨대를 꽂아’ 피를 빠는 존재들입니다. 실제로 트럼프는 이들 국가를 ‘거머리’라고 표현한 적도 있습니다. 과거 소련, 현재는 중국의 위협과 대응으로부터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을 공짜로 이용하고, 경제적으로는 불공정한 무역으로 막대한 이득을 챙긴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적자를 보고 있는 상위 10개국 중, 중국은 1위, 우리나라는 8위입니다. 그래서 트럼프가 외치는 것이 ‘페이백 타임’(Payback time), 지금까지 미국을 상대로 이득을 보았던 것을 다 정산할 때라는 겁니다. 이 정산을 위한 수단이 바로 관세 부과입니다. 자유무역(free trade)이 아니라 공정무역(fair trade)을 하자면서요. 물론 그 공정 여부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동의할 수 없죠. 그러나 트럼프는 상황을 아주 단순화해서 미국이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당했고, 특히 우방국한테 당한 것을 참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24)<br>미국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또 하나의 관점은 네오콘(Neo Conservatives, 신보수주의자)의 세계관입니다. 조지 W. 부시(George W. Bush)로 대표되는 네오콘은 철저하게 선악의 세계관으로 무장해 있습니다. 미국이 공공선이라는 예외주의(exceptionalism)에 입각해서 전쟁을 불사하고서라도 악을 소멸시켜야 평화의 세계가 도래한다고 주장합니다. 네오콘에게 중국은 악이자 굴복시켜야 할 상대인 거지요. 존 볼턴(John Bolton)이나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등 네오콘 인사들이 트럼프 1기 정부의 외교와 안보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들 네오콘과도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1기 때 대외정책이 네오콘의 방해를 받았다며 이들 없이 재선에 성공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트럼프는 이익이 되면 하고, 손해가 되면 빠진다는 철저한 거래주의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트럼프와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트럼프에게는 평화에 대한 강박 비슷한 게 있습니다. 26)<br>그렇다면 트럼프는 미중 경쟁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가 궁금해집니다. 트럼프에게도 중국은 미국의 위상에 도전하기에 꺾어야 할 대상이며, 미국이 만든 질서에서 불공정한 반칙행위를 통해 이익을 챙기며 미국에 손해를 끼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는, 트럼프는 중국을 미국의 자원을 총 투입해 사생결단의 승부를 내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압박할 수도 타협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미국에 이득만 된다면 유럽은 러시아가, 아시아는 중국이 관장해도 된다는 생각에까지 이릅니다. 이미 러우 전쟁에서 러시아 편에 서고 ‘유럽의 방위는 유럽이 알아서 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세계를 미중러의 세 영향권으로 나누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 전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新) 얄타체제’로 이름 붙이기도 하는데요.&nbsp; 그런 질서가 실현 가능할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지만, 트럼프의 MAGA가 품고 있는 실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26-7)<br>한국의 트럼프 대망론이 가리키는 것<br>케네스 왈츠(Kenneth Waltz)나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 같은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핵을 많이 보급할수록 평화가 온다는 역설적인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반대합니다. 핵 때문에 오히려 전쟁을 못할 거라는 논리인데, 핵무기로 인해 전면전이 일어날 것 같지 않으니까 인도와 파키스탄처럼 오히려 국지적인 전쟁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게 현실입니다. 지속가능한 평화를 이루려면 군사력 강화를 통해 적이 공격하지 못하게 막는 억제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적과의 외교를 통해 적대감을 해소시키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물론 전쟁을 막을 완벽한 제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제동장치와 평화를 향한 가속페달은 다양하게 있습니다. 가능한 많은 도구를 확보해야 하지요. 그것이 UN일 수도 있고, 자유무역 질서일 수도 있습니다. 전쟁은 더 일어나기 쉬워졌고 전쟁이 났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은 사라진 상황입니다. 하루빨리 재건해야 합니다. 29-30)<br>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한미동맹과 평화체제<br>논리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동맹은 전쟁 상태에서 가장 강합니다. 즉 공동의 적대국이 확실할 때 동맹관계는 굳건해집니다. 한미동맹에 적용하면, 남북관계가 악화할수록 한미동맹의 역할과 중요성은 커지죠. 그러니 우리가 계속 분단된 상태에서 북한과 적대관계로 남아 있으면 한미동맹이 더 안정적이 될 겁니다. 반대로 우리가 평화체제로 넘어가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한미동맹은 약화되는 게 자연스럽지요. 심하게 얘기하면 분단이 계속되고 남북한과 북미 간에 긴장이 고조될수록 한미동맹은 강해지고, 교류와 협력이 높아지면 역설적으로 동맹은 약해지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한미동맹이 평화의 상징으로 너무나도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남북관계의 개선이 이뤄질 때마다 오히려 동맹 약화를 걱정하는 역설이 벌어집니다. 역대 진보 정부들이 남북협력을 이루려고 하면 어김없이 한미동맹을 흔든다는 비판이 나오고 이는 국민에게 강한 소구력을 가져왔습니다. 31)<br>남북한의 미래, 평화와 통일 등에 있어서 남북이 같은 민족이냐 아니면 구별된 두 국가냐 하는 문제는 우리 내부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지요. 사실 분단구조에서는 둘 다 맞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이 두개를 억지로 합치려고 합니다. ‘두 국가’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니 필연적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열심히 주장한다고 해서 엄연한 분단현실과 두 국가체제를 부정할 수 없지요. 한 민족과 두 국가라는 이 두 정체성은 매우 불편하지만 같이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하나를 외면하거나, 또는 억지로 둘을 통합하려는 시도 모두 무리수입니다. 두 국가이기 때문에 그만큼 통일이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되,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사실도 놓치지 않아야겠죠. 두개의 정체성이 갖는 모순은, 먼 미래에 통일이라든지 분단체제가 해소되어야 해결되기 때문에 지금의 분단구조 안에서는 두 정체성 중 어느 하나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32)<br>트럼프 태풍에 맞서는 일은 가능할까<br>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제적으로 연대가 필요합니다. 특히 트럼프에게 당한 피해국들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트럼프는 지금 ‘일 대 일’로 상대하려 합니다. 많은 국가가 안보와 경제를 미국에 기대고 있기에 쉽사리 반트럼프 연대에 나서지 못할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국제질서가 현재 훨씬 더 다극화되고 평등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다극화 흐름이 러시아가 추구하는 것처럼 나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지만, 가령 한국과 일본, 그리고 EU 등이 주도해서 새로운 형태의 자유무역 질서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독자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한중일 3국의 역내 협력도 주목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3국이 전세계 제조업에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도 중요하지만, 합치면 절대적입니다. 3국이 함께 적극적으로 개방된 공급망과 자유무역을 지탱해준다면 트럼프의 보호주의 태풍을 견뎌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33)<br>바로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라는 가능성<br>사실 한국은 역사적으로 계급사회가 뒤집힌 적이 없습니다. 조선시대 양반 사회의 기득권이 뒤집힌 적도 없지요. 동학농민운동을 비롯해 다수의 혁명이 있었지만, 신분제를 타파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또한 일제강점기가 끝난 이후에도 친일파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그리고 분단의 대결구조에서 군대의 힘이 막강해졌습니다. 연속적 독재정권의 등장으로 경찰과 검찰도 강해졌습니다. 게다가 유교적인 집단주의 문화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국가라면 사실 시장이나 시민사회가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동학농민운동부터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1987년 민주화항쟁, 2024년 남태령대첩까지, 국가가 선을 넘을 때마다 시민이 봉기했지요. 저는 이것이 대한민국이 가진 엄청난 저력이고 진정한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이 잘못되고 불평등이 생길 때는 공적 국가를 키워서 고쳐내고, 국가가 반민주·반헌법을 자행할 때는 시민과 시장이 제어하는 겁니다. 36)]]></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40/72/cover150/e6526375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407215</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저녁</category><title>물리학은 처음인데요 / 마쓰바라 다카히코 - [물리학은 처음인데요 : 수식과 도표 없이 들여다보는 물리학의 세계 - 수식과 도표 없이 들여다보는 물리학의 세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83096</link><pubDate>Mon, 30 Mar 2026 07: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8309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K09253279&TPaperId=171830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351/71/coveroff/ek09253279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K09253279&TPaperId=1718309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물리학은 처음인데요 : 수식과 도표 없이 들여다보는 물리학의 세계 - 수식과 도표 없이 들여다보는 물리학의 세계</a><br/>마쓰바라 다카히코 지음, 이인호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8년 01월<br/></td></tr></table><br/>제1장 물리학은 아름답다<br>물리학은 이 세계가 어떤 규칙으로 돌아가는지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를 위해 물리학 연구에서는 되도록 단순한 상황을 가정하고, 이 상황을 정확히 표현할 방법을 찾아낸다. 물리학에서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의 복잡한 현상을 단순한 요소로 분해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현상을 단순한 요소로 분해하고 관찰한 다음에 그 현상의 배후에 있는 질서를 밝혀낸다. 과학은 이런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가령 공기저항을 무시하고 중력만 작용하는 상황을 연구하면 중력의 성질을 알아낼 수 있다. 한편으로 중력을 무시하고 공기저항만 작용하는 상황을 연구하면 공기저항의 성질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두 가지 힘의 성질을 각각 알아낸 다음 이를 합치면 중력과 공기저항이 둘 다 작용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상적인 상태에서 각 요소를 개별적으로 알아낸 다음 이를 조합함으로써 현실적인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11-2)<br>제2장 천상 세계와 지상 세계는 똑같다<br>천동설에서 벗어나 지동설로 넘어가려면 먼저 원운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선입관을 버려야만 했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스승인 튀코 브라헤가 남긴 방대한 관측 자료에 태양 중심설을 적용함으로써 행성 궤도가 타원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케플러의 발견은 단순히 원을 타원으로 교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타원 운동을 하는 행성의 속도도 알아냈다. 비교적 태양과 거리가 가까운 행성은 속도가 빠르고, 반대로 거리가 먼 행성은 속도가 느리다. 또한, 행성 하나의 속도를 봐도 태양과 가까워질수록 빨라지고 멀어질수록 느려진다. 케플러는 이를 수치상으로 명확하게 밝혀냈다. 겉보기에 아름다운 원운동의 조합에서 벗어난 일은 근대 물리학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천동설은 완전함의 상징인 원에 집착한 결과 진실에 다가가지 못한 것이다. 이 일은 자연계의 올바른 법칙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이 완전한 아름다움을 지닐 것이다’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힌 결과 잘못된 결론에 이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27)<br>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당시에 발명된 지 얼마 안 된 망원경을 직접 개량하여 천체를 관측하다가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 4개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목성 근처에 있는 별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목성 주위를 도는 천체였다. 천동설에서는 기본적으로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 하지만 갈릴레오의 발견은 지구가 아닌 천체가 운동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보인 것이었다. 즉 지구를 모든 것의 중심으로 설명하는 천동설에 반하는 사실이었다. 또한, 갈릴레오는 금성이 차고 이지러지는 동시에 크기가 변하는 것을 관찰했다. 금성도 지구와 마찬가지로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이며, 지구보다 안쪽 궤도를 돌고 있다. 그래서 지구와 거리가 가까워지면 크게 보임과 동시에 그늘 부분이 커져서 초승달 모양이 된다. 반대로 지구와 멀어지면 크기가 작아지고 그늘 부분도 줄어서 보름달처럼 전체가 빛나 보인다. 천동설로는 무척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지동설에서는 당연한 현상일 뿐이다. 29)<br>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함으로써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천상과 지상의 구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천상 세계와 지상 세계는 서로 다른 법칙이 지배하는 개별적인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천상과 지상이 모두 우주라는 커다란 공간 속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뉴턴 역학의 등장과 함께 몇 가지 기본 법칙으로 세계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물리학의 기본 방침이 정착했다. 그러나 물체 사이에는 만유인력뿐만 아니라 다른 다양한 힘도 작용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힘이 만유인력뿐이면 정말 큰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물체는 다른 물체를 지탱할 수 있을까? 우리 눈에 보이는 물체는 모두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물체가 한 덩어리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이웃한 원자끼리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중력을 거스르며 의자 위에 앉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원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 덕분이라는 소리다. 왜냐하면 모든 물체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31, 34-5)<br>원자 사이에서 작용해 물체의 형태를 유지하는 힘의 정체는 만유인력이 아니다. 만유인력은 서로 끌어당기기만 하는 힘인데, 실제로는 물체를 이용해 다른 물체를 밀어낼 수도 있고 끌어당길 수도 있다. 즉 끌어당기는 힘인 인력뿐만 아니라 밀어내는 힘인 척력도 작용한다는 뜻이다. 인력과 척력을 둘 다 지니는 힘이라고 하면 즉시 떠오르는 것이 있을 것이다. 바로 전기력이다. 양전하와 음전하 사이에서는 인력이 작용하며, 양전하끼리와 음전하끼리는 척력이 작용한다. 원자는 양전하를 띤 원자핵과 음전하를 띤 전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기의 힘으로 제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원자와 원자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도 전기력이며, 원자가 모여서 분자를 이루는 것도 전기력에 의한 현상이다. 전기력과 유사한 힘으로 자기력이 있다. 실은 전기와 자기는 본질적으로 하나이며, 이 두 가지를 합쳐서 전자기력이라고 부른다. 중력을 제외하면 우리 주변에서 보이는 힘은 모두 전자기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 36-7)<br>제3장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br>빛이란 파동의 한 종류다. 우리는 평소에 빛이 파동이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데, 이는 빛의 파장이 극단적으로 짧기 때문이다. 파동이란 어떤 규칙적인 변화가 퍼져 나가는 현상이다. 그 규칙적인 변화에는 기본 길이가 있으며, 이를 파장이라고 한다. 가령 바다에 이는 물결인 파도를 보면 물의 높이가 가장 높은 마루와 가장 낮은 골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된다. 이때 마루와 마루 사이의 거리, 혹은 골과 골 사이의 거리가 바로 파장이다. 빛의 파장은 극단적으로 짧다. 눈에 보이는 빛을 가시광선이라고 하는데, 가시광선의 파장은 거의 400nm에서 700nm 정도다(1nm는 0.000001mm이다). 파장이 길수록 빨갛게 보이고, 파장이 짧을수록 파랗게 보인다. 원자의 크기는 1nm보다 작은데, 이는 가시광선의 파장보다 훨씬 짧다. 따라서 광학 현미경의 배율이 아무리 높다 해도 원자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그 어떤 작은 물체라도 확대하면 잘 보일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경험을 확대 해석한 잘못된 추측일 뿐이다. 45-6)<br>화학 반응식을 배운 사람이라면 물질이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화학 반응식을 보면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수소 분자 H2와 산소 분자 O2가 결합하면 물 분자 H2O가 생기는데, 이때 수소 분자와 산소 분자와 물 분자의 개수비는 반드시 2:1:2가 된다. 그래야만 수소 원자 H와 산소 원자 O의 개수가 반응 전후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근대적인 원자론은 19세기 초에 제창되었다. 영국의 교사였던 존 돌턴은 화학 반응을 비교적 간단한 정수비로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원자가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돌턴은 원자의 상대적인 무게인 원자량을 밝혀냈다. 돌턴은 수소와 산소 등의 기체가 원자가 아닌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그의 이론은 정확하지 않았다. 돌턴의 이론을 수정해 수소와 산소 등은 원자가 2개씩 결합한 분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면 기체의 반응을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다. 47, 50)<br>기체 성질에 관한 연구에서도 간접적으로 원자의 존재를 암시하는 단서가 나타났다. 기체 분자운동론이란 기체가 미세한 입자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입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운동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기체의 기본 성질을 유도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기체의 압력은 기체가 들어 있는 용기 내벽에 입자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힘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기체에는 압력이 일정할 때 온도가 높을수록 부피가 커진다는 성질이 있는데, 이는 ‘샤를의 법칙’이라고 불린다. 예를 들어 열기구는 이 성질을 이용해서 하늘을 난다. 공기를 데워서 팽창시키면 열기구 안에 든 공기의 양이 줄어서 바깥 공기보다 가벼워지므로, 그 부력을 이용해 위로 뜨는 것이다. 이 샤를의 법칙은 기체 입자가 날아다니는 평균 속도에 따라 온도가 결정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설명할 수 있다. 입자의 속도가 빠를수록 기체가 담긴 용기 내부의 압력이 커진다. 이때 용기 외부의 압력이 일정하다면 내부 기체가 용기를 밀어내며 부피가 팽창하는 것이다. 51)<br>제4장 미시 세계로 들어가다<br>플랑크가 해명하려 한 열역학 문제는 물체가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복사 현상이었다. 물체는 온도에 따라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성질이 있다. 뉴턴 역학에서는 에너지를 1개, 2개로 셀 수 없는 연속적인 값으로 본다. 하지만 플랑크의 이론에 따르면 미시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물질에 의한 복사가 작은 입자(오늘날 말하는 원자)의 진동 때문에 발생한다고 했을 때, 그 진동을 통해 방출되는 에너지에는 진동수에 따른 최소 단위가 있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진동을 통해 방출되는 에너지에 최소 단위가 있다고 가정하면 플랑크의 수식이 유도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플랑크의 수식은 모든 파장 영역에 걸친 실험 결과에 들어맞았다. 그러한 에너지의 최소 단위를 ‘양자’라고 부른다. 뉴턴 역학에 따르면 진동의 에너지는 연속적이므로, 진동을 통해 방출되는 에너지는 어떤 값이든 지닐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진동 에너지에는 최소 단위가 있다. 다시 말해 진동 에너지는 반드시 그 최소 단위의 정수배가 되어야 한다. 63-4)<br>플랑크의 발견은 미시 세계에서 뭔가 기묘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했다. 플랑크의 수식은 실험 결과를 잘 나타내는 유용한 공식이었지만, 수많은 물리학자가 ‘진동 에너지에 최소 단위가 있다’는 엉뚱한 가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플랑크 자신도 이를 임시로 도입한 기술적인 가정일 뿐이라 여겼으며, 그곳에 물리학의 근본에 관한 중대한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플랑크의 이론을 발전시킨 사람은 바로 천재 물리학자로 유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플랑크는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가 진동하면서 방출하는 에너지에 최솟값이 있다고 가정했는데, 아인슈타인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은 방출되는 전자기파 그 자체의 에너지에 최솟값이 있다고 보았다. 아인슈타인은 전자기파 자체가 양자화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광양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광양자 이론에 따라 물체에서 방출되는 전자기파를 계산해도 플랑크의 수식이 유도됨을 보였다. 65)<br>아인슈타인은 이 가설을 다른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도 응용해 성공을 거두었다. 바로 광전효과라 불리는 금속에 빛을 비추었을 때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이다. 빛을 파동으로 본다면 이 현상은 파동의 에너지가 전자를 금속에서 떼어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빛의 세기가 셀수록 튀어나오는 전자의 에너지도 커질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리 센 빛을 비춰도 튀어나오는 전자의 개수가 늘어날 뿐이었다. 한편으로 빛의 파장이 짧을수록 튀어나오는 전자의 에너지가 커졌다. 광전효과의 이러한 현상은, ‘빛의 에너지는 연속적이지 않으며 광양자로 되어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가설로 설명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광양자라고 부른 것은 오늘날 ‘광자’라고 불린다. 파장이 짧아질수록 광자의 에너지가 커지므로 튀어나오는 전자의 에너지도 커진다. 한편으로 파장은 똑같은데 빛의 세기만 강하게 하면, 광자의 수가 늘어나서 튀어나오는 전자 수가 늘어나기는 하지만 전자 하나하나의 에너지는 커지지 않는다. 65-6)<br>고전물리학에 따라 원자 모형을 설명하면 전자는 금세 원자핵과 만나고 만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자의 운동 에너지가 줄다가 결국 0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자 가설에 따르면 원자 안에 있는 전자의 운동 에너지값은 연속적이지 않고 띄엄띄엄 떨어진 값이다. 또 전자의 운동 에너지에는 최솟값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자가 원자핵과 만나지 않는다는 말은 그 최솟값이 0이 아닐 것이며, 최소 에너지 상태에서 원자가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보어는 이러한 가설에 따라 원자 모형을 고안했다. 원자는 종류에 따라 정해진 파장의 빛을 방출한다. 양자 가설에 따르면 빛의 파장은 광자 하나의 에너지와 대응하므로, 바꿔 말해 원자가 일정한 에너지를 지닌 광자를 방출한다고 할 수 있다. 원자의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띄엄띄엄 떨어진 값밖에 지닐 수 없다면, 그 띄엄띄엄 떨어진 차이만큼의 에너지가 바로 방출되는 광자의 에너지일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 계단을 결정하는 원리는 무엇일까? 69)<br>드 브로이는 전자가 입자의 성질과 파동의 성질을 모두 지닌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광양자 가설의 반대 버전이다. 파동인 줄로만 알았던 빛이 사실은 입자의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면, 반대로 입자인 줄 알았던 전자도 파동의 성질을 지니고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입자가 지니는 파동의 성질을 ‘드 브로이파(물질파)’라고 한다. 드 브로이파의 파장은 매우 짧다. 그래서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원자 내부처럼 매우 작은 세계에서는 전자가 지니는 파동의 성질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 보어의 양자조건은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돌면서 드 브로이파에 따라 안정하게 진동하는 조건과 똑같다. 그 조건이란 전자 궤도 한 바퀴의 길이가 드 브로이파 파장의 정수배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전자가 궤도를 한 바퀴 돌았을 때 드 브로이파의 진동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어의 양자조건을 만족했을 때 전자의 드 브로이파는 원자 안에서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70)<br>제5장 기묘한 양자의 세계<br>하이젠베르크는 원자 속에서 전자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아내려 해 봤자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전자가 원자 속에서 어떤 궤도로 운동하느냐는 오직 머릿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며, 실제로 관측해서 확인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이젠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더는 관측할 수 없는 일에 관해 고민하지 말자.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관측 가능한 값에만 의미가 있다. 그리고 관측 가능한 값이 어떤 수치가 될지 이론적으로 예언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처럼 하이젠베르크는 전자 궤도 등 관측할 방법이 없는 문제는 이론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실천에 옮기기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하이젠베르크는 실제로 그러한 이론을 구축해 물리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은 직관적인 상상을 완전히 배제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이론이 되었다. 오직 관측할 수 있는 값에 주목해 그 사이에서 성립하는 수학적 관계를 알아내려 했다. 72)<br>하이젠베르크의 이론이 성립하려면 곱셈의 순서를 바꿨을 때 결과가 달라진다는 기묘한 규칙이 필요했다. 2×3이나 3×2나 둘 다 6이 되는 것처럼, 보통 곱셈을 할 때는 순서를 바꿔도 결과가 똑같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에서는 순서를 바꾸면 결과가 달라지는 이상한 곱셈을 사용해야 했다. 당시 물리학자는 대부분 그런 이상한 곱셈에 관해 알지 못했다. 이는 하이젠베르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상한 곱셈을 써야만 하는 자신의 이론에 의미가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전해진다. 하이젠베르크는 새 이론에 관한 논문을 완성한 다음 자신의 스승이자 물리학자인 막스 보른에게 의견을 구했다. 얼마 후 보른은 그 이상한 곱셈이 수학자 사이에서 알려져 있던 행렬연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행렬이란 말 그대로 숫자를 행과 열로 나열한 것이다. 두 행렬을 곱하면 새로운 행렬이 나온다. 이 행렬끼리의 곱셈은 순서를 바꾸면 결과가 전혀 달라진다는 성질이 있다. 73)<br>당시 물리학자가 행렬역학을 보고 당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행렬역학이 발견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전혀 다른 형태의 양자역학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양자역학은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발견했다. 슈뢰딩거는 하이젠베르크와 달리 더 직관적인 방법으로 원자 내부를 이해하려 했는데,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드 브로이파를 이용했다. 슈뢰딩거는 처음으로 드 브로이파의 파동 방정식을 찾아냈다. 이를 ‘슈뢰딩거 방정식’이라고 한다. 즉 슈뢰딩거는 행렬역학과 다른 새로운 양자역학을 발견한 것이다. 슈뢰딩거의 양자역학을 ‘파동역학’이라고 한다. 행렬역학은 직관적인 이해를 배제한 채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하지만, 파동역학은 시각적인 이해가 가능한 데다 물리학자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계산할 수 있다. 둘 다 똑같은 결론에 이르는 이론이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자연히 행렬역학을 버리고 파동역학을 이용하게 되었다. 75)<br>슈뢰딩거는 파동역학의 파동이 실재한다고 보았으며, 전자 등의 입자를 그 파동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전자 등은 사실 입자가 아니며, 오직 겉으로만 입자처럼 보일 뿐이다. 파동의 파장이 너무나 짧아서 마치 파동이 아닌 입자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슈뢰딩거의 해석에는 문제가 많았다. 아무리 파동을 작은 영역에 가두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넓게 퍼져 나가 버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면에서 파문이 시간에 따라 넓게 퍼져 나갈 수밖에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벽으로 가로막히지 않은 수면에서는 물결을 좁은 공간에 가두어 둘 수 없다. 이래서는 전자가 언제나 입자처럼 관측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면 파동함수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그 해답을 내놓은 사람은 이론물리학자 막스 보른이었다. 보른이 내놓은 해석은 참으로 놀라운 내용이었다. 파동함수가 나타내는 파동은 물결이나 음파처럼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가 존재할 확률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78)<br>어떤 위치에 대한 파동함수가 크면 클수록 그곳에서 입자를 발견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확률 해석이다. 파동함수는 시간과 공간으로 결정되는 함수이니, 바꿔 말하면 시간과 공간에 따라 입자를 발견할 확률을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언제 어디서 입자가 발견되기 쉬운지 알려주는 셈이다. 이론의 근본 부분에 확률이 존재한다는 것은 전통적인 물리학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왜냐면 뉴턴 역학 이후의 물리학에서는 한 시점의 물리적인 상황을 완전히 알고 있다면, 그 후에 일어날 일을 완전히 예언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볼츠만의 통계역학에서 확률이 쓰이기는 했지만, 이는 단지 입자 개수가 너무 많아서 물리적인 상황을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는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확률은 더 근원적인 것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설사 물리적인 상황을 완전히 알고 있다 해도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확률적으로밖에 예언할 수 없다. 80)<br>가령 전자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에너지값 중 하나를 지니고 있다고 해보자. 전자의 에너지값은 지금보다 더 작은 다른 값으로 바뀔 수 있는데, 이때 원래 값과 나중 값의 차이만큼의 에너지를 지닌 광자를 방출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 작은 값’의 후보가 여러 개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전자의 에너지는 다양한 값으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최초의 물리적인 상황을 완전히 알고 있다 해도, 다음에 전자의 에너지값이 어떤 값으로 바뀔지는 확률적으로만 예상할 수 있다. 이 에너지값으로 변할 확률은 얼마이며, 저 에너지값으로 변할 확률은 얼마라는 식이다. 따라서 방출되는 광자의 에너지도 확률적으로만 예언할 수 있다. 게다가 광자가 어느 방향으로 방출될지도 확률적으로만 알 수 있다. 에너지 단계가 높은 원자가 하나 있을 때, 그 원자에서 어느 방향으로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지닌 광자가 방출될지 정확하게 예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직 가능성과 확률만을 예언할 수 있을 뿐이다. 81)<br>제6장 시간과 공간의 물리학<br>맥스웰 방정식은 전기장과 자기장에 관한 방정식이다. 맥스웰은 이 방정식을 통해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생겼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하는 파동의 형태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게다가 이 파동은 물질이 전혀 없는 진공 속에서도 전달될 수 있다.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얽힌 채로 진행하는 이 파동을 ‘전자기파’라고 한다. 맥스웰 방정식을 이용하면 전자기파의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 맥스웰이 그 속도를 계산한 결과 빛의 속도와 거의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엄청난 발견이었다. 그동안 아무도 몰랐던 빛의 정체가 바로 전자기파였음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전자기파가 진공 속을 나아간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참으로 기묘하다. 일반적으로 파동은 물질을 흔들면서 나아간다. 즉 파동을 매개하는 물질이 필요하다. 그런데 전자기파는 물질이 없는 진공 속에서도 전파된다. 전자기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존재인 전기장과 자기장을 흔들면서 나아간다. 110)<br>진공 속에서 전달되는 파동이 기묘한 이유는 파동의 속도가 대체 무엇에 대한 속도냐는 점이다. 물결의 속도는 물에 대한 속도이며, 음파의 속도는 공기에 대한 속도이다. 즉, 파동의 속도란 파동을 전달하는 물질에 대한 속도인 셈이다. 그런데 진공 속에서 퍼져 나가는 파동에는 이를 매개할 물질이 없다. 그렇다면 전자기파, 즉 빛의 속도는 대체 무엇에 대한 속도일까? 기준이 없다면 속도는 상대적으로만 정할 수 있다. 즉 누가 측정하느냐에 따라 속도가 달라진다.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초속 30m로 움직이는 물체일지라도, 이를 초속 10m로 쫓아가고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초속 20m로 보일 것이다. 기준으로 삼을 만한 물체가 없다면, 속도는 결국 측정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맥스웰 방정식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라면, 빛이 진공 속을 나아가는 속도는 누가 측정해도 똑같아야 한다. 즉, 서로 움직이고 있는 관찰자 두 사람이 한 빛의 속도를 각각 측정했을 때 똑같은 속도가 나와야 한다. 110-2)<br>아인슈타인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애초에 속도(이동 거리를 걸린 시간으로 나눈 결과값)란 어떤 개념인지를 되짚어봤다. 빛이라면 1초에 30만km를 이동하므로 초속 30만km가 된다. 이때 빛을 초속 10만km로 쫓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멈춰 있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이 사람은 1초 후에 10만km 앞에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빛은 1초 후에 30만km 앞에 있을 것이므로, 움직이고 있는 사람과 빛의 거리 차이는 1초 후에 20만km가 될 것이다. 즉 빛과 이를 쫓아가는 사람의 거리가 1초 만에 20만km 벌어졌다. 속도가 거리를 시간으로 나눈 값인 이상,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때 빛을 쫓아가는 사람이 측정한 빛의 속도는 초속 20만km라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이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어떤 사실이 있다. 바로 움직이는 사람과 멈춰 있는 사람이 똑같은 시간과 똑같은 거리를 측정하고 있다는 가정, 다시 말해 시간과 공간은 멈춰있는 사람에게도 움직이는 사람에게도 똑같다는 전제다. 115-6)<br>이렇게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관찰자에 따라 서로 다르게 보인다는 비상식적인 이론을 펼쳤다. 이것이 바로 ‘특수상대성이론’이다. 시간과 공간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것이 아니며, 측정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즉 상대적인 것이라는 점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그래서 이 이론이 상대성이론이라 불린다. 특수란 말이 붙은 이유는 훗날 아인슈타인이 중력까지 포함하여 일반화한 일반상대성이론과 구분하기 위해서다. 초속 30만km로 멀어지는 빛을 초속 10만km로 쫓아가는 사람은 멈춰 있는 사람과 다른 시간과 공간을 경험한다. 그래서 멈춰 있는 사람 눈에는 움직이는 사람이 빛과 초속 20만km로 멀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도, 움직이는 사람은 그와 다른 시간과 거리를 경험하므로 빛의 속도가 똑같이 초속 30만km로 측정되는 것이다. 그 결과 발견된 수식은 비교적 단순했으며 ‘로런츠 변환’이라 불린다. 로런츠 변환에 따르면 서로 움직이고 있는 관측자의 시간과 공간은 서로 뒤섞여 있다. 116)<br>요점은 멈춰 있는 사람과 움직이는 사람 사이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서로 얽혀 있고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이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어느 쪽 시간이 느린지 분명하지 않으므로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쪽이 느리고 어느 쪽이 빠르다는 생각 자체가 절대적인 시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삼을 만한 시간의 흐름이 있다면 이에 비해 빠른지 느린지를 논할 수 있겠지만, 그런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상대의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또한, 내가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서 자기 자신의 시간이 느려졌다는 자각은 할 수 없다. 상대가 보기에는 내 뇌를 포함한 내 주변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시간 감각에는 변화가 없다. 즉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보인다는 것뿐이지, 내가 느끼기에는 달라지는 것이 없다. 다른 사람이 없어도 내 시간은 잘 흐르므로 다른 사람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느냐로 내 시간이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118)<br>제7장 시공간이 낳는 중력<br>일반상대성이론의 중요한 특징은 중력이라는 힘을 시간과 공간의 성질로 설명해 냈다는 점이다. 전철에 탔을 때를 떠올려 보자. 멈춰 있는 상태에서 전철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이렇게 가속할 때는 진행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밀리는 느낌이 든다. 특히 서 있을 때는 손잡이를 잡지 않으면 넘어질 수도 있다. 이 힘은 ‘관성력’으로 알려져 있다. 전철이 움직이기 시작해도 나 자신은 계속 멈춰 있으려고 한다. 즉 전철만 먼저 앞으로 나가 버리다 보니, 전철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뒤로 미는 것처럼 보인다. 그 힘을 상쇄하기 위해 뒤에서 힘을 가하면 자신도 전철과 함께 움직이게 된다. 이처럼 관성력이란 가속하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힘이 작용하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이다. 이 힘은 무게를 지닌 모든 물체에 작용한다. 그리고 무거울수록 관성력도 커진다. 이처럼 관성력과 중력은 성질이 비슷한데, 실제로 이 두 가지 힘은 구별할 수 없다. 122-3)<br>중력과 관성력이 똑같다면 중력은 이제 물체끼리 서로 직접 끌어당기는 힘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가속하고 있는 관측자가 똑바로 움직이는 물체를 보면 물체가 똑바로 움직이지 않고 휘어져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달리던 전철이 멈추려고 감속할 때는 모든 물체가 앞으로 힘을 받는다. 따라서 진행 방향과 수직으로 공을 굴리면 앞으로 휘어지는데, 이것이 관성력이다. 하지만 전철 밖에서 관찰하면 공은 똑바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관성력은 관측자의 가속 때문에 생긴다. 가속이란 속도의 변화를 시간으로 나눈 것이므로 시간 · 공간과 관련되어 있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속도가 서로 다른 관측자들 사이에서는 시간과 공간도 달라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속하는 관측자의 시간과 공간은 가속하지 않는 관측자의 시간과 공간과는 다르다. 따라서 가속하고 있는 관측자에게는 시공간이 휘어져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중력은 무언가에 끌리는 힘이 아니라 시공간이 휘어져서 생기는 힘이라는 것이다. 124-5)<br># 등가 원리 : 관성력과 중력은 등가, 즉 똑같은 것이라는 개념<br>뉴턴이 제시한 만유인력의 법칙에서는 무게가 있는 물체에 직접 중력이 작용한다고 한다. 무게가 0인 물체에는 힘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러한 물체는 중력 때문에 진로가 휘어지지 않을 것이다. 가령 멀리서 날아온 입자가 별 근처를 스쳐 지나간다고 생각해 보자. 이 입자의 무게가 0이라면 별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냥 똑바로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별 주변에 있는 시공간이 휘어져 있으므로 무게가 0이라 해도 똑바로 나아갈 수는 없으며, 진로가 다소 별 쪽으로 휘어진다. 이를 관측할 방법이 있다. 태양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다른 별빛을 관찰하는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별빛은 태양 주변에서 약간 진로가 휘어진 다음 지구에 도착한다. 즉 태양 근처에서 빛이 굴절하므로, 별이 원래 보여야 할 위치보다 태양에서 약간 벗어난 위치에 보일 것이다.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태양 때문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아야 할 별빛도 태양 표면 아슬아슬한 곳에서 보일 수 있다. 128)<br>제8장 물리학이 나아갈 길<br>현대 물리학에 있는 수많은 이론은 양자론과 상대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초 물리학 분야에서는 양자론과 특수상대성이론을 기반으로 ‘양자장론’이 발전했다. 원래 양자장론은 전자기력을 양자론과 융합시키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양자역학은 본디 입자의 운동을 양자적으로 다루는 학문인데, 이를 전기장과 자기장 등 공간에 퍼져 있는 현상에도 적용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하여 양자론과 전자기학을 융합시킨 ‘양자 전기역학’이라는 이론이 만들어졌다. 이 이론은 특수상대성이론도 포함하며 실험 결과와도 매우 잘 맞아떨어지는 성공적인 이론으로 볼 수 있다. 양자 전기역학은 ‘양자장론’이라 불리는 이론 형식의 한 가지 사례다. 또한, 양자장론을 통해 원자핵 안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정체를 밝혀내기에 이르렀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각각 세 가지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 쿼크가 어떠한 물리 법칙을 따르는지도 알려져 있다. 이에 관한 물리 법칙도 양자장론의 형태로 정리되어 있다. 137)<br>우리가 양자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동시에 다뤄야 할 상황에 맞닥뜨릴 일은 없다. 양자론의 효과는 미시 세계에서 현저해지는 한편, 일반상대성이론의 효과는 거시 세계에서 현저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리적으로는 미시 세계에서도 일반상대성이론의 효과가 현저하게 나타날 때가 있다. 바로 매우 큰 에너지가 집중되어 있을 때다. 에너지는 질량과 같은 것이라서 그 자체가 시공간을 휘어지게 만든다. 미시 세계에서 막대한 에너지가 집중되면 시공간이 심하게 휘어지므로 기본 입자의 세계에서도 일반상대성이론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내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매우 작은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 이는 우주가 태어난 직후의 상태이며, 그 상태를 이해하려면 우주 자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즉, 우주의 기원을 밝혀내려면 양자론이나 일반상대성이론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함께 기술할 수 있는 이론이 필요하지만, 그런 이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140-1)<br>모든 것의 이론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처럼 보이지만, 이는 모순을 품고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정말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라면, 자기 자신이 옳은 이유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옳음을 스스로 증명할 수는 없다. 외부에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빗대면 알기 쉬울 것이다. 한 사람이 자기가 옳다고 주장한다 해도, 증거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처럼 어떤 이론이 옳다는 사실을 그 이론 내에서 증명할 수는 없다. 이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라고 하는 수학적 사실이다. 모든 것의 이론이라 불릴 만한 것이 있더라도, 그 이론 안에는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한 가지 기본 법칙이 있을 것이다. 정말 그런 이론이 있다면 모든 것의 이론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 기본 법칙이 왜 성립하느냐는 의문은 남는다. 즉 모든 근본적인 의문이 풀리고 더는 탐구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이론은 존재할 수 없다. 151-2)]]></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351/71/cover150/ek09253279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3517100</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간식</category><title>출출할 땐, 주기율표 / 곽재식 - [출출할 땐, 주기율표 - 먹고사는 일에 닿아 있는 금속 열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74209</link><pubDate>Thu, 26 Mar 2026 07: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7420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932534437&TPaperId=171742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437/78/coveroff/e93253443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932534437&TPaperId=1717420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출출할 땐, 주기율표 - 먹고사는 일에 닿아 있는 금속 열전</a><br/>곽재식 지음 / 초사흘달 / 2024년 12월<br/></td></tr></table><br/>21 스칸듐: 야구장 간식을 고르며 Sc<br>합금을 만들면 왜 성능이 좋아질까? 세상의 모든 물체처럼 금속 덩어리도 크게 확대해 보면 원자라는 아주 작은 알갱이들이 모여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그 원자들은 왜 낱낱이 흩어지지 않고 그렇게 덩어리지어 붙어 있을까? 간단히 이야기하면 원자 속에 있는 전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자 속에 있는 전자는 ⊖전기를 띤다. 바로 그 전자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두 원자가 달라붙게 해 준다. 전자 하나가 두 원자를 휘감아 돌고 있으면 두 원자는 그 전자의 움직임 때문에 서로 붙어 있으려고 할 것이다. 원자의 중심부 핵에는 ⊕전기가 있으니 ⊖전기를 띤 전자에 잘 이끌릴 수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와 반대로 원래 붙어 있던 원자들이 전자의 움직임 때문에 떨어질 수도 있다. 대체로 원자들이 잘 붙어 있느냐, 떨어지기도 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자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원자가 어떻게 붙어 있느냐에 따라 물질의 성질이 바뀌는데, 화학은 바로 그런 변화를 연구하는 일이다. 9-10)<br>원자의 종류가 무엇이냐에 따라 하나의 원자 속에 있는 전자의 개수가 다르고, 전자가 들어 있는 모양도 다르다. 수소에는 원자 하나당 전자가 1개 있고, 헬륨에는 원자 하나당 전자가 2개 있고, 알루미늄에는 원자 하나당 전자가 13개 있으며, 스칸듐에는 원자 하나당 전자 21개가 있다. 또한, 그 전자들이 주로 원자의 겉면 쪽을 돌아다니는지, 아니면 원자의 중심부 쪽을 돌아다니는지도 원자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서로 잘 맞는 성질을 가진 원자들을 적절히 섞어 놓으면 원자 사이를 밀고 당기며 돌아다니는 전자들이 원자들을 최대한 잘 묶어 놓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튼튼한 합금이 만들어진다. 필요하다면 원자들이 잘 들러붙지 않는 조합으로 합금을 만들어서 쉽게 녹이고 가공하기 편리한 재료를 얻을 수도 있다. 학자들은 알루미늄에 스칸듐을 약간 더해서 잘 섞어 주면 그냥 알루미늄 덩어리보다 더 성능이 뛰어난 재질이 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야구 방망이가 바로 스칸듐 합금 방망이다. 10)<br>22 타이타늄: 외계인 초코볼을 집어 들며 Ti<br>색소를 사용하는 분야에서 타이타늄이라고 하면 보통 흰색을 띠는 이산화타이타늄을 일컫는 경우가 많듯이, 금속 재료를 사용하는 분야에서 타이타늄이라고 하면 타이타늄 합금을 줄여서 말한 것일 때가 많다. 골프채 같은 운동기구에서 군사용 무기까지 타이타늄 합금 재료의 용도는 상상외로 넓다. 가볍고 튼튼하며 녹이 잘 슬지 않는 타이타늄은 사람 몸과 관련된 부품을 만드는 데도 많이 사용된다. 수술로 사람 몸에 장치하는 부품이 쉽게 상한다면 수리나 교체를 하느라 거듭 수술을 해야 할 것이므로 그런 일이 없도록 처음부터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너무 무거우면 사람이 움직이는 데 힘이 들므로 가벼울 필요도 있다. 아울러 사람 몸은 60% 이상이 수분으로 되어 있으니 물과 산소가 닿더라도 쉽게 녹슬지 않아야 한다. 다행히 타이타늄을 잘 이용하면 그런 소재를 만들 수 있다. 치아 임플란트에서도 가짜 이를 잇몸에 고정하는 뿌리 부분을 타이타늄을 이용해서 만들곤 한다. 19-21)<br>타이타늄은 땅에 있는 웬만한 금속 중에서도 양이 무척 풍부한 편이다. 우주 전체로 보면 세상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는 수소인데, 지구의 땅에는 수소보다도 타이타늄이 더 풍부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학 분야에서 대단히 유명한 치글러-나타Ziegler-Natta 촉매가 타이타늄을 가공해서 만든 물질이라는 사실도 기억해 둘 만하다. 치글러-나타 촉매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바로 플라스틱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석유를 가공해서 뽑아내는 에틸렌이라는 기체에 치글러-나타 촉매를 조금만 떨어뜨려 주면 에틸렌 기체가 마법처럼 서로 엮여 굳으면서 플라스틱으로 변한다. 이렇게 해서 만드는 물질이 비닐봉지부터 볼펜까지 흔하게 쓰이는 대표적인 플라스틱 폴리에틸렌polyethylene이다. 타이타늄의 가장 큰 단점은 가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타이타늄을 철처럼 다루면 깨지고 부서지기 쉽다. 어찌 보면 너무 튼튼하고 강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22-3)<br>23 바나듐: 생수 맛을 음미하며 V<br>원래 바나듐은 금속 제품의 재료를 만들 때 조금씩 섞어 넣는 물질로 유명했다. 금속 공업이 발달한 한국에서는 매년 8,000t 이상의 바나듐을 수입한다. 특히 널리 사용되는 금속인 철 제품을 만들 때 바나듐을 조금 섞으면 철이 더 튼튼해지고 충격을 잘 흡수하며 열에도 강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보통 강철에 바나듐을 1% 정도만 섞어도 성질이 확 좋아진다고 하는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이현복 선생이 쓴 글에 따르면 고속도공구강high speed steel이라는 재료는 “바나듐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바나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고속도공구강은 다른 금속을 깎고 자르는 도구를 만들기 위한 강철 재료를 말한다. 즉, 바나듐을 섞은 강철 덕분에 좋은 공구를 만들 수 있고, 그런 공구로 금속 재료를 세밀하고 정교하게 가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바나듐이 있어야만 세밀하고 정교한 금속 부품을 만들 수 있고, 나아가 그런 부품이 들어가는 정교한 기계도 만들 수 있다. 26)<br>화학물질이 서로 반응을 하고 안 하고는 물질에 들어 있는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바나듐은 금속인 만큼 잘 움직이는 전자를 꽤 많이 품고 있어서 잘만 사용하면 독특한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게다가 희귀한 물질도 아니어서 다방면에 활용할 수 있다. 자동차 매연이나 굴뚝 연기 성분 중에 이산화황이라는 해로운 물질이 있다. 이산화황은 몸에 좋지 않은 스모그의 원인이자 산성비의 주원인으로도 지목되는 물질이다. 공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시도했던 많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굴뚝을 통과하는 연기를 공기 중에 바로 내뿜지 않고 물에 한 번 적셔서 그 속의 오염 물질인 이산화황을 잡아채는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 많은 이산화황을 어쩌면 좋을까? 이럴 때, 모아 놓은 이산화황에 오산화바나듐을 넣어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황산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만든 황산 또는 이산화황 계통의 성분을 빼내고 남은 물질은 그 물질이 필요한 곳에 돈을 받고 팔 수 있다. 29)<br>24 크로뮴: 쌀밥을 한술 뜨며 Cr<br>오랫동안 철로 만든 숟가락이 널리 쓰이지 않은 것은 바로 녹이 잘 슨다는 문제 때문이다. 다른 용도로 사용할 때는 최대한 물에 닿지 않도록 하거나 기름칠을 해서 녹스는 것을 피해 볼 수 있겠지만, 항상 음식물에 닿고 입에 넣고 빨아야 하는 숟가락, 젓가락은 그런 방법을 쓸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철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데도 식기를 만드는 데는 잘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20세기 초쯤에 유럽의 과학기술인들이 철에 크로뮴chromium이라는 금속을 조금 섞어 철과 굉장히 비슷하면서 녹이 슬지 않는 합금을 만들었다. 그 기본 원리는 철에 녹이 슬기 직전에 크로뮴 성분이 먼저 녹슨 상태로 변하면서 미세하게 철을 뒤덮는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주 얇은 크로뮴 막이 철을 감싸서 철이 공기나 물과 닿아 녹스는 것을 막아 버린다. 녹이 스는 문제만 해결되면 철은 숟가락, 젓가락에도 얼마든지 쓰일 수 있다. 그 덕택에, 한국의 금속 식기는 놋쇠에서 스테인리스강으로 빠르게 바뀌어 갔다. 34-5)<br>주변 원자와 달라붙는 데 특히 요긴하게 활용되어서 그 원자의 성질을 따질 때 잘 살펴봐야 하는 전자들을 원자가전자valence electron라고 부른다. 크로뮴 원자 하나가 다른 원자와 연결되어 덩어리를 이룰 때는 크로뮴 원자 속에 있는 전자 3개가 쓰이기도 하고, 6개가 쓰이기도 한다. 다시 말해 크로뮴은 원자가전자가 3개일 때도 있고, 6개일 때도 있다. 전자 3개를 이용해서 주변의 다른 원자와 연결된 크로뮴을 “3가 크로뮴”이라고 하고, 전자 6개를 이용해서 연결된 크로뮴은 “6가 크로뮴”이라고 표현한다. Cr3+, Cr6+라고 쓰기도 한다. 여기서 Cr6+라는 말은 크로뮴 원자 하나가 ⊖전기를 띤 전자 6개를 소모해서 주변의 원자들과 달라붙었기 때문에, 원래 상태보다 ⊖전기가 6만큼 부족해졌고, 이에 따라 ⊕전기를 6만큼 띠게 되었다는 뜻이다. 간단히 말해 Cr3+는 3가 크로뮴이라는 뜻이고, Cr6+는 6가 크로뮴이다. 둘 중에 몸에 병을 일으킬 수 있어서 나쁜 중금속 물질로 손꼽히는 것은 6가 크로뮴이다. 39-4)<br>25 망가니즈: 깻잎나물을 무치며 Mn<br>과거에 망간이라고 불렸던 망가니즈는 금속인 만큼, 철 덩어리를 만드는 제철소에서 가장 중요하게 활용한다. 철의 성분을 조절한다는 말은 철의 성질을 원하는 정도로 맞추고, 철이 균일하게 나오도록 한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제일 기본으로 따져야 할 문제는 철에 탄소가 얼마나 들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탄소가 많을수록 철이 단단해지는데, 그렇다고 너무 많으면 너무 딱딱해서 오히려 부서지기 쉽다. 그래서 탄소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탄소가 많이 들어 있어서 아주 딱딱한 철을 무쇠라고 하고, 탄소가 적당히 들어 있어서 튼튼하고 질긴 철을 강철이라고 한다. 그런데 무쇠는 강철과 비교하면 너무 잘 부서진다. 그러니까 무쇠 팔, 무쇠 다리보다는 강철 팔이 더 튼튼한 셈이다. 고로에서 녹아 나온 쇳물을 이용해 보통 철을 강철로 만드는 과정에 망가니즈를 사용한다. 망가니즈는 녹은 쇳물이 굳을 때 공기 거품을 제거해 주는 데도 도움이 되며, 철을 부서지게 하는 불순물인 황을 없애는 데도 도움을 준다. 44)<br>망가니즈가 많은 곳으로 유명한 곳은 바다 밑이다. 왜 바다 밑에 망가니즈 덩어리가 있을까? 바닷속에 사는 고래나 상어 같은 생물 또는 다른 몇몇 작은 생물들이 죽으면 그 뼈와 이빨, 껍질이 물속에 가라앉는다. 마침 그곳이 충분히 깊은 바다라면 그 이빨 조각, 껍질 조각이 바다 밑에 가라앉을 때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바닷물에 드러난 이빨의 겉면 성분과 바닷물 속에 녹아 있는 아주 약간의 여러 금속 성분이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수가 있다. 운이 좋으면 그중 일부는 바닷물에 들어 있는 아주 적은 양의 망가니즈 계통 성분을 서서히 끌어당기는 물질로 변하기도 한다. 이렇게 변한 상어 이빨 따위가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으면, 그 상태로 아주 천천히 바닷물 속에 들어 있는 망가니즈를 겉면에 붙이고 또 붙이게 된다. 이렇게 망가니즈 성분을 많이 품고서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 덩어리를 망간단괴라고 한다. 망간단괴 속에는 망가니즈뿐 아니라 니켈, 구리 등 다른 금속 원소도 포함되어 있다. 48)<br>26 철: 도다리쑥국을 기다리며 Fe<br>철은 핏속에서 붉은색을 내는 물질인 헤모글로빈hemoglobin에 들어 있다. 사람의 몸 구석구석에 꼭 필요한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헤모글로빈이 맡고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 숨을 쉬면 허파 속에 퍼져 있는 혈관 속을 흐르는 핏속의 헤모글로빈에 산소가 달라붙는다. 그리고 그 피가 온몸 구석구석에 퍼진다. 따라서 헤모글로빈이 산소를 붙여 왔다가 떼어 주는 일은 쉼 없이 일어나야 한다. 만약 헤모글로빈에 산소가 붙고 떨어지는 일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리 숨을 헐떡이더라도 들이마신 산소가 정작 필요한 부위로 퍼져 나가지 못할 것이다. 만약 몸속에서 헤모글로빈 대신에 다른 물질을 이용해 산소를 운반하는 생물이라면 사정이 좀 다를지도 모른다. 문어나 오징어의 경우, 철이 들어 있는 헤모글로빈 대신에 구리가 들어 있는 헤모시아닌hemocyanin이라는 물질을 활용해서 살아간다. 따라서 문어나 오징어의 피는 붉은 색이 아니다. 헤모시아닌 계통의 물질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경우가 많다. 51-2)<br>핵융합은 한 번 일어나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다. 별 속에서는 이런 일이 수억 년, 수십억 년 동안 이어진다. 그러면서 한 원소가 다른 원소와 합쳐지면서 새로운 원소들이 계속 만들어진다. 그런데 여기에 단 한 가지 이상한 걸림돌 같은 현상이 있다. 그게 바로 철이다. 원소들이 뭉쳐서 새로운 원소들이 생겨나다가 철이 만들어지면, 그때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철은 거기에 무슨 다른 원소를 억지로 갖다 붙여 핵융합을 일으키려 해도, 다른 원소들의 핵융합이 일어날 때만큼 열을 내뿜지 않는다. 도리어 주변을 더 차갑게 식힌다. 따라서 일단 철이 생겨나면, 핵융합으로 발생한 열이 연달아 핵융합을 일으키는 현상이 더는 이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철은 별이 핵융합으로 빛을 내면서 여러 원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만들어지며 열의 연결 고리를 끊는 물질이다. 그러니 우주에서 저렇게 많은 별이 빛나는 만큼, 별이 빛을 내고 남기는 잿더미인 철도 자연히 우주 곳곳에 많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53)<br>27 코발트: 김밥을 말며 Co<br>비타민은 몸에 많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전혀 섭취하지 않으면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병이 들므로 항상 조금씩은 챙겨 먹어야 한다. 그런데 비타민B12는 곡식이나 채소에서는 좀체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대개 고기에 들어 있는 영양소로 간주한다. 원소로 따져 보면 우리 몸의 성분은 대체로 산소, 수소, 탄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질소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다른 생물도 대개 비슷하다. 비타민 중에서도 비타민A, 비타민C 등은 산소, 수소,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다들 흔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비타민B12는 너무나 독특하게도 코발트cobalt라는 금속 성분을 품고 있다. 그나마 한국인들은 고기를 별로 먹지 않아도 비타민B12 부족 증상을 덜 겪을 것으로 추정된다. 답은 해조류에 있었다.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김,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를 많이 먹는 편이다. 맛도 독특하고 비타민B12처럼 고기가 아니고서는 찾기 힘든 귀한 영양소도 들어 있는 김은 한국의 개성 있는 식재료다. 59-61)<br>코발트60은 자연 상태에서는 찾기 어려운 물질로, 보통 원자력을 이용해서 만들어 낸다. 코발트60은 보통 자연에서 캐내는 코발트보다 무게가 약간 더 나가는데, 59:60 정도로 무겁다. 이름이 코발트60인 것 역시 그런 성질 차이 때문이다. 코발트60의 가장 주목할 만한 성질은 방사선을 꽤 긴 시간 동안 강하게 내뿜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사선을 쏘아 파괴해야 하는 물질이 있을 때 코발트60을 그 곁에 갖다 놓으면 없앨 수 있다. 이 때문에 196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방사선 치료 방법을 이용해서 암을 치료하려고 할 때, 바로 코발트60을 활용했다. 코발트60을 최대한 암세포 가까이 두면 코발트60에서 나오는 방사선이 암세포를 파괴하도록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파괴하는 소독 작업을 철저히 해야 할 때도 소독하고 싶은 물건을 코발트60 근처에 놓아두면 거기서 나오는 방사선이 미생물을 파괴해 버린다. 코발트60은 이렇듯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물질이다. 65)<br>28 니켈: 초콜릿을 조심하길 Ni<br>과거에 니켈은 철을 만들 때 성질을 좋게 하려고 조금 섞어 넣는 용도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철에 크로뮴을 섞으면 녹슬지 않는 강철이라는 뜻의 스테인리스강이 되는데, 스테인리스강을 만들 때 니켈도 약간 넣어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요즘 들어 니켈의 새로운 용도가 생기면서 산업계에 니켈이 한층 더 많이 필요해졌다. 바로 배터리를 만들기 위한 용도다. 특히 한국의 배터리 회사들은 리튬과 니켈, 코발트, 망가니즈를 함께 이용하면 가벼우면서도 오래가는 전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바로 NCM(Nickel-Cobalt-Manganese) 배터리다. NCM배터리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본래 코발트였다. 코발트를 많이 넣어 주면 성능을 끌어 올리기에 유리했다. 그런데 코발트는 가격이 너무 비싸서 고민거리였다. 그래서 한국 회사들은 배터리를 만들 때 코발트를 줄이고, 그보다 구하기 쉬운 니켈을 많이 넣는 방법을 다양하게 연구해 왔다. 이렇게 니켈 성분을 많이 넣은 배터리를 흔히 하이니켈배터리라고 부른다. 73)<br>니켈과 철을 적절히 섞어 만든 재료 중에는 열을 받아도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있는 것도 있다. 모든 물체는 온도가 높아지면 크기가 좀 불어나고 온도가 낮아지면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밀 가공을 해야 할 때 온도에 따라 크기가 자꾸 변하면 정확하게 작업하기가 어려워진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온도에 따른 변화가 크지 않은 니켈계 재료가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인바invar라고 하는 재료인데, 보통 철 64%에 니켈 36%를 섞어 만들기 때문에, 니켈 함량 36%를 강조하여 FeNi36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니크롬선nichrome wire을 만드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니켈의 소중한 용도다. 니켈과 크로뮴을 섞어서 가느다란 선을 만들면 전기가 계속해서 쭉쭉 흐르기는 하는데, 어느 정도는 저항 때문에 전기가 잘 안 흘러서 열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 이 선에 전기를 흘려 주면 주변을 뜨겁게 데울 수 있는 장치가 된다. 이것을 니켈과 크로뮴을 섞어 만든 선이라고 해서 니크롬선이라고 부른다. 74-5)<br>29 구리: 꽃게를 손질하며 Cu<br>구리는 문명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사용하기 시작한 금속이다. 철은 녹는 온도가 1,500℃가 넘는 데 비해, 구리는 1,080℃ 정도만 되면 녹아내린다. 그만큼 녹여서 가공하기가 쉽다는 뜻이다. 그러니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옛사람들에게는 구리가 사용하기 좋은 재료였을 것이다. 구리가 철보다 덜 녹슨다는 장점은 현대에도 요긴하게 활용될 때가 많다. 건물을 지을 때 물이 통과하는 파이프로는 구리로 만든 관, 즉 동파이프를 사용하면 좋다. 동파이프를 난방용으로 바닥에 묻어 두면 뜨거운 물이 돌 때마다 금속인 구리가 열을 잘 전달해서 바닥이 금방 따뜻해진다. 게다가 구리가 철보다 약하기 때문에 철로 된 공구로 자르거나 두들기면 쉽게 가공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 외에도 조선 시대에 금속활자를 사용해 책을 인쇄할 때가 있었는데, 이때도 구리로 금속활자를 만들곤 했다. 여기에 청동을 비롯해 구리와 다른 금속을 섞어 만드는 오동, 백동 등의 재료까지 합치면 용도는 더욱 많아진다. 79-80)<br>주기율표에서 아래위로 같은 줄에 적혀 있는 원소들끼리는 성질이 비슷하다. 같은 줄에 적혀 있는 원소들은 같은 족group에 속한다는 말도 자주 쓴다. 그런데 주기율표를 보면 구리 아래에 은이 있고 은 아래에 금이 있다. 구리와 금의 닮은 점으로 녹이 잘 슬지 않는 성질을 꼽는다면, 구리와 은의 닮은 점으로는 전기가 잘 통하는 성질을 꼽을 수 있다. 구리는 은보다는 조금 부족하지만, 전기를 아주 잘 전달하는 재료다. 그러면서 가격은 구리가 은보다 훨씬 더 싸기 때문에 예부터 구리로 만든 가느다란 선이 전기를 전달하는 재료로 자주 쓰였다. 그 때문에 구리선이라고 하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전선의 대표로 꼽힐 정도였다. 철이나 석유도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유용한 자원이기는 하지만, 철은 가격이 흔들리기에는 너무 흔하게 구할 수 있고, 석유는 반대로 너무 귀해서 몇몇 나라를 중심으로 가격을 조절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구리만큼 세계 경제를 잘 보여 주는 물질도 없다는 이야기가 생겼다. 80-1)<br>30 아연: 굴전을 부치며 Zn<br>아연은 전기적으로 다채롭고 특이한 성질을 내는 금속 원소다. 사람 몸속에서도 복잡하고 특이한 물질을 만드는 데 조금씩 활용된다. 특히 몇 가지 호르몬을 만드는 화학반응에 아연이 필요한 때가 있다고 한다. 사람의 몸은 음식으로 먹은 재료를 소화해서 분해하여 다양한 원자들을 얻고, 그 원자들을 재조립해서 몸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질을 만들어 낸다. 호르몬도 이런 방식으로 생겨난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해내려면 여러 가지 재료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역할을 하는 기계 장치 내지는 도구에 해당하는 물질도 몸속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바로 그 준비 작업에 아연이 아주 약간 필요하다. 반대로 말하면 아연이 부족하면 몸에서 호르몬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도구를 제대로 만들 수 없게 되고, 결국 호르몬도 필요한 만큼 만들어지지 않는다. 음식 중에서도 고기나 조개류에 아연이 많다고 하며, 곡식 중에서는 통곡물에 아연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한다. 아연 성분이 많은 음식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굴일 것이다. 85)<br>현대에는 구리와 아연을 주성분으로 한 합금 소재를 황동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조선 시대에 쓰던 놋쇠 중에는 황동이 아닌 것도 있지만 황동도 그 일종으로 포함된다고 보는 게 맞다. 황동을 영어로는 brass라고 하는데, 트럼펫이나 트롬본 같은 금관 악기를 많이 사용하는 악단을 브라스 밴드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악기를 흔히 황동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황동은 구릿빛을 띤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 때 순수한 구리 못지않게 자주 쓰인다. 아연의 양을 잘 조절하면 구리만 사용할 때보다 훨씬 딱딱하고 튼튼한 재질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발견하는 금속 재질 물건 중에 반짝이는 구릿빛이나 황금색 비슷한데 순수한 구리나 금은 아닌 것 같을 때, 구리와 아연이 섞인 황동이라고 생각하면 대체로 맞다. 총알은 튼튼하면서도 녹슬지 않고 오래가야 하며, 열과 압력을 잘 견뎌야 한다. 그런데 총알의 겉면인 탄피 부분은 황색을 띤다. 이것은 탄피를 황동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87-8)<br>31 갈륨: 쌈 채소를 씻으며 Ga<br>LED는 반도체의 일종으로, 전기를 받으면 빛을 내는 성질이 있는 특별한 물질을 이용해 만든다. LED라는 부품이 개발된 초창기부터 빨간색 빛을 뿜는 제품은 만들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빨간색 빛을 내는 전자 제품이 그렇게 흔했던 것이다. 이와 달리 LED로 흰색 빛을 내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그런데 흰 빛은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빛이 섞인 결과가 사람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파란색 빛을 내는 재료를 만들기가 몹시 어려웠다. 이 문제는 1990년대에 들어와 주로 일본 과학자들의 활약으로 해결되었다. 당시 갈륨gallium이라는 금속 물질과 질소의 원자를 규칙적으로 잘 엮어 만든 물질을 이용하면 파란색 LED의 재료로 쓸 수 있다는 사실까지는 알려져 있었다. 문제는 갈륨과 질소를 잘 엮는 작업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었다. 일본의 화학 회사 연구원이었던 나카무라 슈지なかむらしゅうじ와 동료들이 질화갈륨 결정을 만드는 절묘한 기술을 개발한 덕분에 LED 시대가 열렸다. 92-4)<br>갈륨은 석탄이나 금처럼 덩어리로 뭉쳐 있는 것을 캐낼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갈륨은 다른 원소들과 반응한 상태로 이곳저곳에 조금씩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보통 다른 금속을 돌 속에서 뽑아내고 점점 순수하게 정제하는 과정에서 불순물로 걸러낸 물질을 분리해 갈륨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광산에서 캔 돌에서 무엇인가를 뽑아내는 공장이 많은 곳에서 갈륨도 많이 생산된다. 사실 순수한 갈륨 덩어리는 좀 웃기고 재미난 물질이다. 갈륨은 금속치고는 매우 쉽게 녹아내리는 물질이어서 차가울 때는 꼭 철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30℃ 정도의 온도만 되어도 은색 페인트처럼 흐물흐물하게 변해 버린다. 그래서 갈륨 덩어리로 칼이나 바늘을 만들어서 누구에게 써 보라고 건네주면, 그것을 받은 사람이 막상 사용하려고 할 때 체온 때문에 녹아 버려서 깜짝 놀라게 된다. 그러고 나서도 다시 모양을 잡아 준 뒤에 찬 바람만 좀 쐬어 주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튼튼한 강철 덩어리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96-8)<br>32 저마늄: 도라지무침을 먹으며 Ge<br>게르마늄이라고도 부르는 저마늄은 최초로 개발된 트랜지스터의 주원료 물질이었다. 저마늄 덩어리는 전기가 통할 듯한 특성을 많이 갖춘 금속이기는 한데, 막상 전기를 흘려 보면 그다지 잘 통하지는 않아서 부도체에 가깝기도 한 애매한 물질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바로 이 어중간한 성질을 잘만 이용하면 훌륭한 전자 부품을 개발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1947년에 미국의 과학자들이 진공관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더 좋은 부품을 개발했다. 전기가 잘 흐르지 않던 저마늄에 불순물을 조금 섞어 넣으면 평소에는 전기가 흐르지 않다가 조건이 맞을 때만 전기가 흐르게 할 수 있었다. 이것을 잘 활용하면 릴레이를 대신할 수 있고, 진공관을 대신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트랜지스터라는 부품이다. 다시 말해 트랜지스터도 “스위칭”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진공관보다 크기도 훨씬 작고, 고장도 잘 나지 않고, 전기도 훨씬 덜 들었다. 이렇게 개발된 저마늄 트랜지스터를 일반적으로 반도체 산업의 시작으로 본다. 102-4)<br># 릴레이 : 전기신호가 약해지는 지점에 기계 장치를 설치해 본래의 전기 신호를 계속 연결하는 방식, 스위칭도 비슷한 개념이다.&nbsp;<br>요즘은 트랜지스터 대신 저마늄이 사용되는 다른 분야가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저마늄으로 만든 유리는 규소로 만든 보통 유리보다 적외선을 잘 통과시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적외선을 잘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카메라를 만들 때 저마늄 유리 렌즈를 자주 사용한다. 적외선을 감지하는 기능은 어두운 밤에도 물체를 볼 수 있게 해 주는 장비나, 열을 내뿜는 물체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관찰하는 열화상 카메라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저마늄으로 만든 유리가 활용되는 또 다른 분야도 있다. 요즘 인터넷 통신을 이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장비로 광케이블이 있는데, 광케이블은 광섬유라는 재료로 만든다. 그러니까 인터넷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때 그 정보는 광섬유를 따라 흘러간다. 전선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전기를 전달해 준다면, 광섬유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빛을 전달해 준다고 보면 된다. 과학자들은 광섬유를 만들 때 약간의 저마늄을 같이 조합하면 성능이 더 뛰어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04-5)<br>33 비소: 곶감 사건을 생각하며 As<br>비상이 사람에게 독이 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비소砒素라는 원소 때문이다. 비소는 꼭 산소와 연결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사람 몸에 독이 될 가능성이 큰 물질이다. 이것은 꽤 특이한 성질이다. 탄소의 경우, 탄소와 산소 원자가 하나씩 연결된 물질은 일산화탄소이며, 이것은 연탄가스 중독의 원인이 되는 대표적인 위험 물질이다. 하지만 탄소와 산소, 수소 원자가 다른 형태로 일정하게 연결된 탄수화물은 달콤한 음식이 된다. 염소 역시 염소끼리만 모여서 염소 기체를 이루면 대표적인 독가스 무기가 되지만, 염소와 소듐이 1:1로 붙어 있으면 음식 맛을 내는 데 빠져서는 안 되는 소금이 된다. 그런데 비소는 다른 원소를 어떻게 활용해서 무슨 물질을 만들든 대부분 사람 몸에 해를 끼치는 위험한 물질이 된다. 더군다나 중금속 물질은 주로 사람 몸에 어느 정도 쌓였을 때 피해가 나타나지만, 비소는 적은 양으로도 사람 목숨을 빠르게 빼앗는 위험한 물질이 되는 경우가 많다. 109-10)<br>지금은 비소의 위험성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는 시대다. 그러나 현대에도 우연한 비소 중독 피해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이미 비석이나 웅황을 구해서 사용했고 비상을 제조하기도 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비소 성분은 돌과 흙 속에서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그렇기에 유독 비소가 많은 지역에서 지하수를 개발해 물을 마시거나 그런 땅에서 농작물을 길러 먹는다면, 물이나 작물에 녹아든 비소를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먹게 될 수 있다. 개중에 몇몇 농산물은 특히 비소가 잘 쌓이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하필 이런 농산물을 비소가 있는 땅에 심어 기르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가끔은 수입하는 농산물 중에 검사 결과 비소가 나온 것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우물을 파고 지하수를 개발해서 쓸 때, 그 물속에 비소가 있는 것을 모르고 사용하다 피해를 보는 곳이 많다. 방글라데시,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 등이 자주 언급되는 곳들이다. 113-4)<br>34 셀레늄: 조기를 구우며 Se<br>양자이론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물체가 가진 에너지를 변화시키려고 할 때 일정한 단계별로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시속 20km로 달리고 있는 자동차가 있다고 해 보자. 이 차를 운전하면서 가속 페달을 잘 밟으면 시속 22km로 달리게 할 수도 있고, 시속 25km로 달리게 할 수도 있으며, 시속 31km로 달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양자이론을 적용하면 그렇지 않다. 주변 조건에 따라 자동차의 속도를 바꿀 수 있는 단계가 정해져 있다. 시속 20km에서 더 빠르게 달리게 하면 그다음 단계인 시속 30km가 되어야만 한다. 그 사이의 단계는 없다. 반대로 더 느리게 달리게 하면 그 전 단계인 시속 10km가 되어야만 한다는 식이다. 양자점은 국내에서는 흔히 약자로 QD(quantum dot)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학자들이 양자점의 첫 번째 유용한 특성으로 꼽는 것은 에너지가 단계별로 정확히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이 특징을 잘 활용하면 정확하게 정해진 색깔의 빛만 내뿜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119)<br>양자점을 만들려면 고작 수십 나노미터, 그러니까 10만분의 1mm 정도밖에 안 되는 극히 고운 가루를 일단 만들어야 한다. 그런 물질을 대량 생산해서 사용하려면 그것을 끝도 없이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게 곱고 고운 가루를 오차 없이 항상 같은 크기로 만든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양자점을 어떤 부품이나 장치에 넣어 활용하려면 양자점을 보호하기 위해 주위에 다른 물질을 살짝 발라서 씌워야 한다. 이런 작업을 핵core 주위에 껍질shell을 씌운다고 말한다. 이때 그 작디작은 가루 알갱이 하나하나마다 보호용 껍질이 제대로 씌워지지 않으면 실패다. 껍질을 씌운 뒤에는 이 알갱이들을 다른 물체에 고정하고 연결해서 쓰기 위한 일종의 갈고리나 접착제 역할을 하는 배위자ligand라고 하는 물질들을 껍질 위에 붙여 줘야 한다. 제대로 된 배위자를 만들어 고르게 붙이지 못하면 역시 실패다. 이렇게 빛을 내는 용도로 사용하는 양자점의 핵을 만드는 재료로 널리 사용되던 물질이 바로 셀레늄이다. 119-20)<br>35 브로민: 어묵탕을 끓이며 Br<br>다시마를 우린 국물이 맛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다시마 속에 들어 있는 글루타메이트glutamate 성분이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할 때 조금만 넣어도 감칠맛이 확 도는 화학조미료 중에 글루탐산나트륨monosodium glutamate이라는 것이 있다.&nbsp; 다시마 같은 해조류는 바닷속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몇 가지 특이한 물질이 끼어 있는 경우가 많다. 코발트나 아이오딘iodine, 요오드 같은 물질이 대표적인데, 과거에 브롬이라고 했던 브로민bromine도 해조류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물질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완도금일수협의 특산물 안내 자료를 보면 다시마에는 브로민이 0.02~0.09% 정도 들어 있다고 한다. 매우 작은 수치인 것 같지만, 대다수 동물이나 지상 식물 몸속에서는 이보다 훨씬 적은 양의 브로민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 고추의 매운맛이 캡사이신 덕분에 나는 것이라면, 다시마는 대략 그 정도만큼은 브로민 맛이 나는 음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124)<br>만약 브로민만 모은 덩어리가 담긴 병을 보게 된다면 꽤 신기할 것이다. 찰랑거리는 액체가 되어서 마치 핏방울 비슷하게 불그스름한 색깔을 띠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가지 원소만 모아 놓았을 때 저절로 액체 상태가 되는 물질은 매우 드물다. 금속으로 분류되지 않는 원소 중에서는 오직 브로민밖에 없고, 금속 중에서는 수은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모든 원소 중에서 그것 한 가지만 모아 놓았을 때 저절로 액체가 되기 쉬운 물질은 브로민과 수은, 단 두 가지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특이함은 지구의 평범한 환경에서만 그렇게 여겨진다. 철이나 구리 같은 쇳덩이도 아주 높은 온도로 달구면 결국 흐물흐물 녹아서 액체가 되기 마련이고, 헬륨 같은 물질도 아주 낮은 온도 속에 집어넣으면 굳어서 액체가 될 수 있다. 즉, 어떤 물질이 액체냐, 고체냐, 기체냐 하는 것은 주변 조건에 달린 문제일 뿐이다. 하필이면 액체 상태가 된 순수한 수은 덩어리와 순수한 브로민 덩어리는 둘 다 몸에 해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129)<br>36 크립톤: 포장마차 앞에 서서 Kr<br>빛은 전기의 힘과 자기의 힘이 서로 얽혀서 공간을 날아가고 있다.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빛을 전자기파라고도 부른다. 빛이 가진 전기의 힘은 빛이 날아가는 동안 빛을 따라가며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이 변화는 아주 규칙적이다. 즉, 빛이 날아가는 동안 전기의 힘은 똑같은 정도로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이렇게 빛이 날아갈 때 전기의 힘이 한 번 커졌다가 작아지는 동안 빛이 날아간 거리를 파장이라고 한다. 크립톤에서 나오는 빛도 날아가는 동안에 전기의 힘이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규칙적으로 반복한다. 그리고 이 현상이 일어나는 정도, 그러니까 파장은 빛의 성질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이 현상이 규칙적으로 반복된다. 따라서 크립톤 원자에서 나온 그 빛이 날아갈 때 전기의 힘이 커졌다가 작아지는 반복이 한 번 일어나는 거리, 즉 파장이 얼마인지를 측정해서, 거기에 1,650,763.73을 곱하면 그게 바로 1m라는 길이가 된다. 133)<br>주기율표를 살펴보면 크립톤은 헬륨, 네온, 아르곤 같은 원소와 아래위로 같은 줄에 적혀 있다. 따라서 크립톤 역시 화학반응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런 원소를 비활성기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사람 주위에 있다고 해서 냄새가 나지도 않고 몸에 악영향을 미칠 일도 없다. 어떤 원소 하나만의 성질을 정확히 측정하는 실험을 할 때 순수한 크립톤을 구해 실험하면 편리하다. 특정 원자가 내뿜는 빛을 관찰하려면, 그 원자가 빛을 내뿜도록 전기를 걸거나 온도를 올려 주어야 한다. 만약 이런 실험에 화학반응을 잘 일으키는 수소 기체나 염소 기체를 이용한다면 원자가 전기나 열을 받아 빛을 내뿜기도 전에 화학반응을 일으켜 다른 물질에 들러붙으면서 엉뚱한 상태로 바뀌어 버릴 것이다. 이것이 1m를 정할 때 하필이면 크립톤이라는 낯선 물질로 실험하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크립톤은 빛이 선명하게 잘 보이고 정확하게 잘 나오는 특징까지 있다. 그래서 1m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처럼 정밀한 실험을 하기에 좋다. 134)<br># 지금은 빛이 날아가는 속력을 기준으로 1m의 길이를 정하고 있다.<br>37 루비듐: 곰취나물과 밥을 비비며 Rb<br>루비듐 중에는 방사성을 띠는 루비듐82라는 물질이 있다. 루비듐82는 보통 루비듐과는 다르게 반물질antimatter을 뿜어내는 놀라운 특성이 있다. 루비듐82가 뿜어내는 반물질은 양전자positron라는 것이다. 이 물질은 전자 제품 속을 돌아다니는 평범한 전자와 거의 모든 점에서 똑같아 보이지만, 전자가 ⊖전기를 가진 것과 반대로 ⊕전기를 가진다.&nbsp; 루비듐82가 뿜어내는 양전자와 정반대 전기를 띤 전자와 부딪혀 반응하게 만든다. 그러면 양전자와 전자가 서로 소멸하며 강력한 빛을 내뿜는다. 이 빛은 맨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지간한 물질을 다 뚫고 나온다. 그리고 정확히 반대인 방향으로 두 줄기 빛이 동시에 나오기 때문에 어느 위치에서 빛이 나오는지 관찰하기가 좋다. 그래서 양전자가 소멸하면서 나오는 강력한 빛을 관찰하면 그 양전자가 몸속 어디에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양전자를 내뿜는 물질을 몸에 주입하면 그 물질이 몸속에서 돌아다니는 위치를 정밀하게 알 수 있다는 뜻이다. 140)<br>루비듐은 과학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밝히는 데도 큰 도움을 준 물질이다. 루비듐이 금속이면서도 쉽게 녹고 잘 끓어오르기 때문이다. 금속은 수천억 개의 원자들, 수천조 개의 원자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엄청나게 많은 원자의 덩어리이다. 이런 상태라면 원자 하나하나에 각각 영향을 주어야 하는 정밀한 조작을 하기가 어렵다. 원자를 하나하나 조작하려면 덩어리가 아니라 원자를 하나하나 떼어 놓은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물질을 기체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어지간한 금속을 녹여서 액체로 만들려고만 해도 쇠가 녹을 정도로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하물며 그렇게 쇳물이 된 금속을 끓여서 기체로 만들기는 더욱더 어렵다. 그런데 루비듐은 쉽게 녹고 쉽게 끓는다. 그러니 어떤 작업을 금속으로 해야 하는데, 원자 하나하나를 움직여야 한다면 루비듐이 좋은 재료가 된다. 그런 이유로 레이저를 이용해 원자 하나하나를 각기 붙잡고 따로 움직이는 실험을 할 때 루비듐은 단골 실험 대상이다. 144-5)<br>38 스트론튬: 솜사탕을 건네주며 Sr<br>옛날식 텔레비전의 기본 원리는 전자가 부딪히면 빛을 내는 물질을 유리판에 발라 놓고, 전자를 원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발사하는 전자총을 이용해서, 유리판을 향해 전자를 이리저리 발사하는 것이다. 그 유리판을 멀리 떨어져서 보면 전자가 유리판에 부딪혀 생긴 빛이 그림을 이루게 된다. 전자는 ⊖전기, 즉 음전기를 띠고 있다. 그래서 이런 장치를 음극관cathode ray tube, CRT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옛날 텔레비전은 전자총으로 전자를 발사해서 CRT에 원하는 모양으로 빛이 나오게 하는 방식으로 영상을 만들어 내는 장치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전자가 유리판에 부딪혀 영상을 만들어 낸 후에 문제가 생긴다. 이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전자가 충돌해서 갑자기 속력을 잃다 보면 엑스선 등의 방사선이 나온다. 그래서 텔레비전에서 생기는 엑스선을 흡수하거나 엑스선이 튀어나오지 못하게 방해하는 물질을 일종의 방어막처럼 텔레비전 화면에 얇게 발라야 했다. 여기에 적합한 물질이 바로 스트론튬이었다. 149)<br>스트론튬은 여러 방사성 물질 중에서도 특히 골칫거리로 자주 언급되는 물질이다. 정확히 말하면 보통 스트론튬보다 약간 더 무거운 스트론튬90이 문제다. 보통 스트론튬과 무게를 비교하면 88:90 정도로 약간 무겁다. 스트론튬90은 방사선을 오랫동안 꾸준히 내뿜는 점도 문제지만, 사람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점에서도 걱정스러운 물질이다. 주기율표에서 스트론튬 바로 위에는 칼슘이 적혀 있다. 방사성 물질이라고 해도 몸속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금방 몸 밖으로 나온다면 별 피해가 없을 수도 있다. 실제로 방사성 물질 중에는 그런 것도 여럿 있다. 그런데 스트론튬은 하필 칼슘과 성질이 비슷하고, 칼슘은 뼈에 많이 들어 있다. 그렇기에 스트론튬이 몸속에 들어오면 우리 몸은 스트론튬을 칼슘으로 착각해서 뼈를 만드는 데 칼슘 대신 스트론튬을 사용할 수 있다. 만약 그것이 보통 스트론튬이 아니라 방사성을 띤 스트론튬90이라면, 뼛속에 스트론튬90이 끼어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151)<br>39 이트륨: 양배추를 썰며 Y<br>스웨덴에서 광산 개발과 관련된 산업과 기술이 발전했던 역사는 주기율표에도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트륨yttrium이다. 스웨덴의 이테르뷔Ytterby라는 마을에서 발견된 돌에서 나온 원소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현대에 희토류로 분류되는 광물들은 이테르뷔에서 발견된 이트륨과 비슷한 물질이라고 생각하면 대체로 들어맞는다. 주기율표에서 이트륨 바로 위에 적혀 있는 스칸듐과 이트륨 바로 아래 칸 근처에 있는 란타넘lanthanum이 대표적인 희토류이기 때문이다. 란타넘의 경우에는 주기율표 모양이 그 근처에서 확장되는 형태로 바뀌기 때문에 정확히 이트륨 바로 아래 칸에 적혀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트륨과 같이 엮기에 큰 무리는 없다. 그리고 란타넘과 비슷한 점이 있어서 란타넘족 원소라고 분류하는 네오디뮴neodymium, 디스프로슘dysprosium 등 여러 원소까지 모두 합쳐 희토류라고 부른다. 그러니 화학 발전의 역사에서는 이트륨이 희토류의 대표라고 할 만하다. 155-6)<br>흔히 야그 레이저라고도 하는 YAG 레이저는 Y, A, G 세 가지 물질을 주성분으로 하는 레이저 발생 장치를 말한다. 여기서 Y, A, G는 각각 이트륨, 알루미늄, 가닛garnet을 가리킨다. 레이저는 빛과 물질 속의 전자가 서로 독특한 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을 이용해 특수한 빛을 내뿜는 것을 말한다. 자연 상태의 빛은 여러 성질이 섞여 있고, 진행하는 동안 사방팔방으로 퍼져 버린다. 이와 달리 레이저는 빛의 성질이 잘 가다듬어져 있으며, 잘 퍼지지 않고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 나간다. 이런 빛을 만들려면 물질 속에 들어 있는 전자를 잘 조정해야 한다. 원하는 색깔의 빛이 생기도록 전자가 특정한 속력으로 움직이고 적절한 힘을 받으며 돌아다니게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과학자들은 온갖 물질을 조합해 보다가 이트륨, 알루미늄, 가닛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놓으면 그 물질 속을 돌아다니는 전자들이 레이저로 쓰기에 좋은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게 해서 YAG 레이저가 실용화되면서 다양한 용도로 쓰이게 되었다. 156-7)<br>40 지르코늄: 과자 봉지를 뜯으며 Zr<br>촉매 연구는 화학에서 가장 마법 같은 분야다. 원래는 안 일어날 화학반응을 촉매를 써서 일어나게 만들면 그야말로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예를 들어 사람이 설탕물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화학의 눈으로 살펴보면 이것은 대단히 신비롭고 놀라운 일이다. 설탕이라는 별것 아닌 재료가 어떻게 사람의 살이라는 귀중하고 복잡한 물질로 변하는 것일까? 설탕물 1kg을 주면서 그것으로 사람 살 1kg을 만들어 보라고 하면 말도 안 되는 기적을 일으키라는 요구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몸에서는 그런 일이 너무나 당연하게 일어난다. 촉매라고 볼 수는 없지만, 과학자들은 지르코늄이 물에서 수소를 뽑아내는 화학반응을 어느 정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단, 주변을 뜨겁게 만들어야만 이런 반응이 일어난다. 이 말은 연료를 사용해 불길로 주변을 뜨겁게 덥혀 주어야 수소가 생긴다는 뜻이다. 지르코늄의 이 반응 때문에 후쿠시마에서 커다란 사고가 발생했다. 163-4)<br>지르코늄은 중성자와 반응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 때문에 중성자가 많이 돌아다니기 마련인 원자로 내부에 들어갈 재료로 지르코늄을 사용하는 일이 많다. 평상시라면 이것은 매우 좋은 생각이다. 원자로에서는 중성자를 잘 조절하여 원하는 만큼 핵반응을 일으켜야 하는데, 여기에 지르코늄 재료를 이용하면 중성자 조절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으므로 안전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후 온도가 1,200℃에 가까워지자 지르코늄이 물과 반응해 수소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지금은 물에서 수소를 뽑아내는 반응을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인데, 높은 온도라는 조건이 갖춰지자 지르코늄은 아무도 바라지 않는 수소 생성 반응을 시작한 것이다. 평상시 안전을 위한 방어 판 같은 용도로 넣어 두었던 지르코늄이 이런 비상 상황에서 오히려 수소라는 불쏘시개를 잔뜩 만들어 낸 셈이다. 수소가 좋은 연료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불이 잘 붙는 물질이라는 뜻이다. 결국, 수소는 불이 붙어 폭발을 일으켰다. 165)]]></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437/78/cover150/e93253443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4377826</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저녁</category><title>모든 것의 기원 / 데이비드 버코비치 - [모든 것의 기원 : 예일대 최고의 과학 강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67249</link><pubDate>Mon, 23 Mar 2026 07: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6724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K44253184&TPaperId=171672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311/62/coveroff/ek4425318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K44253184&TPaperId=1716724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든 것의 기원 : 예일대 최고의 과학 강의</a><br/>데이비드 버코비치 지음, 박병철 옮김 / 책세상 / 2020년 02월<br/></td></tr></table><br/>1장 우주와 은하 … 13<br>빅뱅이 일어나기 전에는 현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원자보다 훨씬 작은 영역에 똘똘 뭉쳐 있었으므로, 온도와 압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을 것이다. 이 상태는 10^-43초 동안 계속되었는데(참고로 10^-2는 0.01이며, 10^-43은 소수점 아래로 0이 42개 붙은 후 비로소 1이 등장한다), ‘시대’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아무튼 이 시간대를 ‘플랑크 시대Planck epoch’라 한다. 그후 우주는 10^-35초 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빠르게 팽창했다. 이 시간대를 인플레이션 시대Inflation epoch라 한다. 우주는 이 짧은 시간 동안 10^70배 가까이 커졌는데, 그래봐야 크기는 직경 몇 m에 불과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인플레이션 시대의 팽창 속도가 빛보다 훨씬 빨랐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은 하나의 역장力場, force field에 저장되어 있던 에너지가 방출되면서 일어났으며, 이 에너지는 훗날 우주에 존재하게 될 모든 물질과 에너지의 원천이 되었다. 17-8)<br>인플레이션론이 우주배경복사CMB의 분포를 설명함으로써, 빅뱅이론은 우주 탄생의 정설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우주배경복사는 우주 전체에 걸쳐 온도가 거의 같다. 빅뱅이 일어나고 거의 140억 년이 지났는데 우주 반대편에 있는 두 지점의 온도가 아직도 같다는 것은 태초에 이 지점들이 꽤 긴 시간 동안 접촉 상태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만일 두 지점이 접촉 상태에 있지 않았다면 아무런 정보도 교환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오늘날 온도가 같은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과거의 빅뱅이론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한동안 위기에 처했다가 인플레이션이론 덕분에 극적으로 살아났다. 하나의 점에 가까웠던 우주가 급속도로 팽창하여 유한한 크기에 도달하면 모든 영역이 동일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후에도 우주는 이전보다 느린 속도로 계속 팽창했지만 공간의 모든 지점이 이미 정보를 교환했기 때문에 균일한 온도 분포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다. 18)&nbsp;<br>인플레이션이 끝난 후 10^-5초 사이에 물질과 반물질이 거의 비슷한 양만큼 형성되었다. 모든 입자는 자신과 질량이 같고 전하의 부호가 반대인 파트너를 갖고 있는데, 이들을 반입자antiparticle라 한다. 예를 들어 전자의 반입자는 양전자positron이고, 뉴트리노의 반입자는 반뉴트리노anti-neutrino이다. 일반적인 입자로 이루어진 물질을 그냥 ‘물질’이라 하고, 반입자로 이루어진 물질을 ‘반물질antimatter’이라 한다. 물질과 반물질이 따로 존재할 때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만, 둘이 접촉하면 복사에너지를 방출하면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 과정을 쌍소멸pair-annihilation이라 하는데, 이때 방출된 복사에너지의 양은 E=mc2을 통해 결정된다(여기서 m은 물질과 반물질의 질량의 합이다). 빅뱅 후 10^-5초가 지났을 때 이들은 짧은 시간 동안 공존하다가 서로 만나면서 다량의 복사에너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물질이 반물질보다 조금 많았기 때문에 별과 은하, 행성 등 다양한 천체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 18-9)<br>빅뱅 후 1초~10만 년 동안은 우주 전체가 광자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복사 시대Radiation epoch’라고 한다. 이 시대가 끝날 무렵에 질량과 광자의 밀도가 낮아져서 드디어 빛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즉 우주가 투명해진 것이다. 그리고 빅뱅 후 약 38만 년이 지났을 무렵에 온도가 충분히 낮아져서 드디어 완벽한 원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시작된 물질 시대Matter epoch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우주배경복사는 이 시기에 마지막으로 방출된 에너지의 흔적이다. 암흑기가 끝날 무렵, 수소-헬륨 기체의 밀도에 약간의 요동이 일어났고 여기에 중력이 작용하여 밀도가 높은 지역으로 질량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특정 지역에 질량이 집중되면 그곳의 중력이 주변보다 강해져서 더욱 많은 질량이 모여든다. 그리고 중력의 세기는 거리에 관계하기 때문에(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기체가 집중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구형을 띠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별’이었다. 20)<br># 암흑기 : 복사 시대가 끝난 후 3억 년 동안 온도가 충분히 내려가고 물질이 넓은 영역으로 충분히 퍼져 나갔기 때문에 광원光源, light source이 사라진 기간<br>2장 별과 원소 … 41<br>질량이 태양의 15배 이상인 별들은 중심 온도가 1,500만°C에 도달해도 계속 수축되면서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온도가 1억°C에 도달하면 헬륨이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탄소와 산소가 생성되고, 이보다 큰 초거성超巨星, supergiant들은 핵융합을 여러 번 반복하여 철까지 만들 수 있다. 무거운 원소를 생산하는 핵융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헬륨 원자핵인 알파 입자(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로 이루어져 있다)의 융합이다. 그중에서도 3개의 알파 입자가 두 차례의 반응을 거쳐 탄소로 변환되는 ‘3중 알파 입자 반응triple-alpha process’은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이어서, 탄소보다 무거운 원소가 생성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과정이자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단 탄소가 생성되기만 하면 알파 입자 연쇄 반응alpha chain process이 뒤를 이어받아 한 번에 알파 입자 한 개씩을 추가하여 탄소C→산소O→네온Ne→마그네슘Mg→실리콘Si→……→철Fe까지 연이어 만들어낸다. 29)<br>1869년,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Dmitri Mendeleev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원소를 특정 규칙에 따라 나열한 주기율표periodic table를 만들었다. 이 표에서 철의 원자번호는 26번이고 가장 무거운 천연 원소인 우라늄U은 92번이므로, 철을 기준으로 가벼운 원소는 25종이고 무거운 원소는 66종이다. 그러나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생성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극히 소량만 존재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별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느린 중성자 포획slow neutron capture’을 거쳐 생성되며, 이 과정은 철이 다른 융합 반응에서 생성된 중성자를 포획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철의 무거운 동위원소는 상태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생성되는 즉시 전자를 방출하면서 중성자 한 개가 양성자로 변하여 코발트Co(원자번호 27)가 되고, 그후에도 이와 비슷한 과정이 계속되면서 점점 더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진다. 반면에 모든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는 ‘빠른 중성자 포획rapid neutron capture’은 거성이 최후를 맞이할 때 일어난다. 31)<br>거성이 수명을 다하여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면 대부분의 질량은 외부로 흩어지지만, 중심부는 계속 수축하여 초고밀도 상태로 남는다. 이 잔해의 질량이 태양의 2~3배 정도라면, 모든 원자의 부피를 유지시켜주는 전자구름이 잔해의 내부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원자핵이 있는 곳까지 압축되어 양성자를 중성자로 변환시킨다. 별이 폭발하고 남은 잔해의 질량이 태양의 3배가 넘으면 중성자들끼리 더욱 강하게 밀착되어 중성자별보다 밀도가 높아진다. 이런 천체에서는 중성자가 쿼크 단위로 분해되기 때문에 ‘쿼크별quark star’이라 부르는데, 아직 발견된 사례는 없다. 잔해의 질량이 태양의 5배가 넘으면 쿼크조차도 압력을 이기지 못하여 아주 작은 부피로 수축된다. 바로 이것이 그 유명한 블랙홀이다. 블랙홀에서는 중력이 하도 강해서 중심으로부터 유한한 거리에서 방출된 빛까지도 아래로 떨어진다. 이런 천체에서 가운데를 중심으로 빛의 탈출을 허용하지 않는 가장 큰 구면을 ‘사건지평선event horizon’이라 한다. 32)<br>3장 태양계와 행성 … 63<br>우리의 태양계는 거의 50억 년 전에 거대한 먼지구름이 수축되면서 탄생했다(이 구름을 ‘모태구름’이라고 하자). 아마도 이 무렵에 근처에서 초신성이 폭발하여 구름의 수축을 유발했을 것이다. 이런 추측이 가능한 이유는 지구로 떨어진 운석에 초신성이 폭발할 때에만 생성될 수 있는 철의 무거운 동위원소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구름이 수축되어 태양과 비슷한 별이 되려면 그 규모가 최소 1~3광년은 되어야 하며, 거성이 되려면 무려 10광년에 걸쳐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은하수의 크기(약 10만 광년)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모태구름에서 중심부에 있는 일부만이 태양계가 되는데, 이 부분을 구름핵cloud core이라 한다. 수축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구름핵의 99.9%는 태양이 되고 남은 0.1%가 행성계를 이룬다. 태양계가 형성될 때 행성에 할당된 질량의 대부분은 목성에 돌아갔고, 목성은 태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태양계가 보유한 각운동량의 대부분은 목성이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38-9)<br>현재 태양계에는 8개의 행성과 160여 개의 위성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행성으로 자라지 못했으면서 태양에 흡수되지 않고 외계로 날아가지도 않은 채 태양계 주변을 떠도는 물체들도 많다. 해왕성과 명왕성 너머에는 오르트구름(Oort cloud, 20세기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얀 오르트Jan Oort가 발견했다)라는 거대한 구형球形 구름이 태양계를 에워싸고 있는데, 이 구름과 태양 사이의 거리는 지구와 태양 사이 거리의 5만 배, 태양과 해왕성 사이 거리의 2,000배에 달한다. 이 정도면 거의 1광년에 가까운 거리다. 오르트구름보다 가까운 곳에는 또 다른 얼음 혜성의 집합인 카이퍼 벨트(Kuiper belt, 20세기에 미국의 천문학자 제라드 카이퍼Gerard Kuiper가 발견했다)가 자리 잡고 있는데, 태양과의 거리는 약 30~50AU이다. 카이퍼 벨트는 핼리혜성Halley’s Comet(주기=76년)과 같은 단주기 혜성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오르트구름과 카이퍼 벨트는 행성이나 위성에 편입되지 못한 잔해들의 집합일 것으로 추정된다. 45-6)<br>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 벨트도 행성에 편입되지 못한 잔해들의 집합이다. 이곳에는 TV나 자동차만 한 크기에서 베스타처럼 직경 500km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소행성들이 궤도운동을 하고 있으며, 개중에는 직경 950km짜리 세레스처럼 왜소행성으로 분류된 것도 있다. 소행성 벨트는 목성에 아주 가깝기 때문에, 작은 소행성들이 뭉쳐서 큰 덩어리가 되면 목성의 강력한 조력潮力이 작용하여 덩어리를 산산이 흩어놓는다. 마지막으로, 내태양계의 금성과 화성 사이에는 아모르Amor와 아폴로Apollo, 그리고 아텐Aten이라는 세 개의 소행성 집단이 존재한다. 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 벨트보다는 밀도가 훨씬 낮지만 아폴로와 아텐에 속한 소행성 중에는 지구의 공전궤도와 교차하는 것들이 꽤 많아서 시도 때도 없이 지구로 떨어지고 있다. 6,500만 년 전에 유카탄반도에 떨어져서 공룡을 멸종시킨 주범도 바로 이곳에서 날아온 소행성이었다(이 소행성의 직경은 약 10km로, 웬만한 소도시 크기였다). 46-7)<br>4장 지구의 대륙과 내부 … 95<br>지구 내부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는 지진학적 분석을 통해 얻어진다. 지구의 내부는 크게 3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깥 표면은 가벼운 바위로 이루어진 얇은 지각地殼, crust(육지가 자라나면서 점차 두꺼워졌다)으로 덮여 있고, 그 밑으로 지구 반지름의 절반에 해당하는 부분은 무거운 바위로 이루어진 맨틀mantle로 채워져 있으며, 가장 깊은 중심부에는 맨틀보다 무거운 철 코어iron core(중심핵이라고도 한다)가 자리 잡고 있다. 맨틀과 핵의 두께는 거의 같지만 맨틀이 핵을 에워싸고 있기 때문에 부피는 맨틀이 압도적으로 크다. 지구 전체에서 맨틀이 차지하는 비율은 80%가 넘는다. 지진학자들은 다양한 파동을 분석한 끝에, 지구의 핵이 액체 상태이며 평균 밀도는 철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진 때 발생하여 지구 내부를 가로지르는 굽힘파bending wave가 중심부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코어는 액체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액체 코어의 가장 깊은 중심부는 고체 상태의 철로 이루어져 있다. 51-2)<br>맨틀은 워낙 부피가 크고 움직임이 굼뜨기 때문에 불에 달궈진 커다란 돌멩이와 달리 식을 때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맨틀의 상부는 차갑고 무거워서 아래로 가라앉았고, 중심핵에 가까운 하부는 뜨겁게 달궈지면서 위로 떠올랐다. 뜨거운 것은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것은 아래로 내려가는 현상을 열대류熱對流, thermal convection, 또는 자유대류free convection라 하는데, 맨틀은 물론이고 바다와 대기, 행성과 별, 그리고 당신의 책상 위에 놓인 커피 잔에서도 항상 일어나는 범우주적 현상이다. 지구에서 대류는 태풍과 뇌우, 해류를 일으키고 태양의 대류는 흑점을 만든다. 단, 대류가 일어나려면 물질의 유동성이 높아야 한다. 그래야 뜨겁고 가벼운 물질과 차갑고 무거운 물질이 쉽게 자리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맨틀은 고체 상태였지만 긴 시간규모에서 볼 때 (압력, 즉 압착력이나 장력을 받으면) 유체처럼 행동했다. 빙하가 녹거나 흔들리지 않고 갈라지지도 않으면서 서서히 이동하는 것과 비슷하다. 53)<br>맨틀의 대류는 지각판을 움직이게 하고, 지진과 화산활동을 일으켜 대형 산맥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맨틀의 대류는 지구를 서서히 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구 자체가 식는 속도는 맨틀이 식는 속도보다 빠를 수 없기 때문이다. 대류는 유체의 열을 식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지표면 근처의 차가운 물질이 대류를 타고 가라앉아서 내부의 뜨거운 물질과 섞이면 전체적인 온도는 내려간다(뜨거운 물에 얼음을 담갔을 때 온도가 내려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중심부의 뜨거운 물질이 대류를 타고 위로 올라가서 표면의 차가운 물질과 섞일 때도 빠른 속도로 열이 손실된다. 그러므로 지구는 자신과 크기가 같은 거대한 돌덩어리보다 식는 속도가 빠르다. 그래도 맨틀의 대류 자체가 워낙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거의 정체 상태나 다름없다. 이런 식으로 맨틀은 지난 수십억 년 동안 지각판을 서서히 이동시켜왔고, 그 덕분에 지구는 안정적인 기후를 유지하면서 생명체를 잉태할 수 있다. 54-5)<br>우리는 대륙의 기원을 추적하면서 지구의 내부 구조와 이동 패턴을 살펴보다가 두 가지 신기한 현상에 직면했다. 첫째, 맨틀의 대류는 모든 행성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오직 지구만이 지질구조판을 갖고 있으며, 지구의 맨틀대류는 지진 및 화산활동과 함께 마그마를 표면으로 밀어 올렸고 물과 이산화탄소를 맨틀에 유입시켰다. 우리가 아는 한 다른 행성에서는 마그마를 표면으로 밀어 올려 화산활동을 촉발했을 뿐, 물과 이산화탄소가 맨틀에 유입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둘째, 지구는 강한 자기장을 갖고 있는 유일한 행성이다. 지자기장은 대기권 밖까지 뻗어 있는데, 놀랍게도 자기장의 에너지원은 지구의 중심부에 있는 액체 상태의 철이다. 지구의 깊은 내부와 전체적인 크기는 금성과 거의 비슷하지만, 환경 차이(태양과의 거리와 달)가 두 행성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다행히도 지구에는 자기장과 지질구조판, 그리고 물이 존재했고 이들 덕분에 생명체가 번성하는 유일한 행성이 될 수 있었다. 62)*<br>5장 바다와 대기 … 147<br>‘내생기원설Endogenous Origin’은 바다와 대기가 외계에서 온 것이 아니라 지구 내부에 숨어 있었다는 가설이다. 물은 바위의 표면에서 수화된 미네랄의 형태로 존재할 수 있으며, 이산화탄소는 바위의 내부에서 탄산염(석회암, 백악白堊 등)으로 존재할 수 있다. 맨틀을 구성하는 바위에도 물과 이산화탄소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지만, 양은 그리 많지 않다(전체 무게의 몇 %밖에 안 된다). 그러나 지구에 바다가 생성되기 위해 맨틀이 다량의 수분을 보유할 필요는 없다. 현재 바닷물의 총무게는 맨틀 무게의 0.03%에 불과하기 때문에, 맨틀이 축축하게 젖지 않아도 바닷물을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에 의하면 지구의 대기는 내부의 바위에 숨어 있다가 마그마 바다가 응고되면서, 또는 화산활동을 통해 밖으로 분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최초의 대기는 지금과 완전 딴판이었을 것이다. 특히 화산을 통해 분출되었다면 대기의 주성분은 이산화탄소와 수증기였을 것이다. 80-2)<br>원래 지구와 금성의 대기는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로 가득 차 있었고 표면 온도와 압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다. 다행히도 지구는 태양과의 거리가 금성보다 멀었고 기압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었다. 대기의 압력이 1기압(1atm)일 때 물은 100°C에서 끓지만, 기압이 높으면 더 높은 온도에서 끓는다(부엌에서 쓰는 압력솥은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지구의 대기압이 60기압이었던 시절, 물은 200~300°C에서도 액체 상태로 존재했고(정확한 비등점은 270°C이다) 대기중 이산화탄소가 물과 바위에 스며들면서 기온이 서서히 내려갔다(온실효과가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기온이 내려가니 물의 양도 자연히 많아지고, 물이 많아지면 이산화탄소가 더 많이 녹아서 기온은 더 내려가고…… 마치 피드백 회로처럼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지각판의 운동이 활발해졌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함유량은 꾸준히 감소하여 아주 소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바위 속으로 흡수되었다. 83)<br>흔히 말하는 ‘날씨’란 대기의 가장 낮은 층인 대류권troposphere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대류권의 고도는 지표면에서 약 10km까지이며, 바로 이 영역에서 빠르고 변화무쌍한 열역학적 대류가 일어나고 있다. 대류권 위의 공기층을 성층권stratosphere이라 한다. 대류권과 달리 성층권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온도가 높아진다. 성층권의 꼭대기에 있는 공기는 따뜻하면서 안정하기 때문에 스프레이로 뿌린 연무제aerosol나 화산 먼지가 이 영역에 도달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갇히게 된다. 성층권은 고도 50km까지 계속되고, 성층권 위로 고도 100km까지를 중간권mesosphere이라 한다. 중간권에서는 열복사가 훨씬 효율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성층권보다 온도가 낮다. 중간권 위로는 온도가 훨씬 높으면서 밀도가 희박한 열권thermosphere(고도 600km 이하)이 있고, 열권 위로 1만km까지를 외기권exosphere이라 한다. 외기권 밖으로 나가야 비로소 우주(행성 간 공간)라 할 수 있다. 84-5)<br># 연무제aerosol : 기체 속에 고체나 액체가 섞여 있는 상태<br>6장 기후와 서식 가능성 … 171<br>뭐니뭐니해도 지구의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태양 빛이다. 지표면에 도달한 햇빛은 표면의 특성에 따라 흡수되기도 하고 반사되기도 한다. 어두운 해수면은 다량의 빛을 흡수하고, 밝은 대륙은 빛의 일부를 반사하여 우주로 돌려보낸다. 또한 그린란드와 남극대륙을 덮고 있는 얼음은 대부분의 빛을 반사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지면의 평균 흡수율은 약 70%이며(반사된 30%는 달빛moonshine과 비슷한 지구광earthshine을 만든다), 어느 정도 데워진 후에는 열(또는 적외선)의 형태로 복사에너지가 방출된다. 지구에 대기가 없다면 복사에너지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우주로 날아가서 표면 온도는 -20°C까지 내려갈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대기에 섞여 있는 수증기와 이산화탄소가 지면에서 복사된 적외선을 흡수하여 열이 우주로 달아나는 것을 막아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지구의 기후는 ‘지면의 햇빛흡수율’과 ‘대기 중 온실가스함유량’이라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94-5)<br>지질학적 탄소순환(신선한 광물의 침식과 풍화에 의해 양이 줄었다가 화산활동을 통해 보충되는 순환)은 아직 확증되지 않은 가설이지만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핵심은 단연 음성 피드백이다. 광물질의 풍화와 침식은 몇 가지 경로를 통해 온도의 영향을 받는다. 첫째, 온도가 높으면 물의 증발량이 많아져서 비가 자주 내리고, 그 결과 침식이 더 빠르게 진행된다. 둘째, 신선한 광물을 탄소와 결합시키는 탄화나 풍화 과정은 온도가 높을수록 빠르게 진행된다. 따라서 화산이 폭발하여 여분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유입되면 숲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거나 화석연료를 태우고, 온실효과로 기온이 높아져서 비가 내리면 광물의 침식과 풍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되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다시 낮아진다(수백만 년이 소요된다!). 간단히 말해서 지질구조판은 주기적 변화를 겪으면서 수억 년 동안 기후를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왔다. 여기서 ‘안정적’이라 함은 평균 기온이 수십 ℃ 이상 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97-8)<br>지질구조판 위에 놓인 바다와 대기, 그리고 얼음은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양성 피드백을 낳는다.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나는 밀란코비치 주기Milankovitch cycle는 세 가지 주기운동을 결합한 결과인데, 그중 가장 짧은 주기는 지구 자전축의 세차운동歲差運動, precession이다. 지구의 자전축은 회전하는 팽이의 회전축처럼 가느다란 원뿔을 그리면서 26,000년을 주기로 서서히 돌고 있다. 두 번째 주기는 지구의 자전축이 공전면에 대하여 기울어진 정도가 변하는 주기이다. 현재 지구의 자전축은 공전면에 대하여 23.5°쯤 기울어져 있는데, 이 값이 40,000년을 주기로 변하고 있다(변화 폭은 22.5°~24.5°이다). 마지막으로 공전궤도의 이심률(원에서 벗어난 정도)도 약 10만 년을 주기로 변하고 있다. 이심률이 변하면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가 변하기 때문에 당연히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 밀란코비치 주기는 해양 퇴적물에 남아 있는 과거의 기후변화 패턴을 통해 거의 맞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98)<br># 음성 피드백은 효과를 반감시키는 일련의 과정이고, 양성 피드백은 효과를 증폭시키는 일련의 과정이다.<br>7장 생명 … 207<br>생명이란 화학반응을 이용해서 주변 환경으로부터 물질과 에너지를 취하여 성장하고 번식하는 생물학적 개체를 의미한다.&nbsp; 생명체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결과물이 반응 자체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자가촉매적autocatalytic이다. 예를 들어 식물은 물과 이산화탄소, 그리고 태양에너지를 이용하여 길다란 사슬 구조의 포도당 분자를 만들어내는데, 이것은 식물의 몸체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이다(세포벽의 주성분인 셀룰로스cellulose의 형태로 존재한다). 즉 광합성의 결과물이 더 많은 광합성을 촉진하는 것이다. 반면에 동물과 같은 호기성 생물好氣性은 음식과 태양에너지를 취하여 더 많은 세포를 만들어내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음식을 취한다. 생명은 자원을 소모할 뿐만 아니라, 복잡한 분자를 만들어서 기존에 있는 분자의 생명 활동을 촉진하고 자신과 닮은 개체를 재생산한다. 또한 생명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통해 진화한다. 이 과정은 ‘생명체의 의지’가 아닌 ‘불완전한 복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106-7)<br># 호기성 생물好氣性~, aerobic~ : 산소를 이용하여 신진대사를 하는 생물<br>대기 중 산소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은 생명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유기물(포도당, 지방, 메탄가스 등)이 산소와 반응하여 이산화탄소와 물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화학에서는 이런 경우를 정상상태定常~, steady state라 한다. 즉 광합성에서 생성된 산소가 역반응을 통해 소진되는 소모량과 균형을 이루었다는 뜻이다. 오늘날 대기에 섞여 있는 산소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백분율로는 약 20%이고, 무게로는 거의 10억×10억kg이나 된다. 그렇다면 이 많은 산소와 균형을 이루는 거대한 유기물 저장소(광합성의 산물인 포도당 저장소)가 지구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이 유기물의 대부분은 대기와 닿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다양한 방법으로 산소와 반응하여 이산화탄소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유기물 저장소는 깊은 바다 속 해저면이나 산이 침식되면서 형성된 퇴적층 밑에 있다. 사실 생태계는 아주 작은 시스템으로, 산소의 생산량과 소비량이 거의 균형을 이룬 상태이다. 113)<br>진핵세포는 원핵세포와 달리 세포골격으로 지탱되는 막膜, membrane 안에 세포핵과 DNA가 갇혀 있고, 세포의 가능을 수행하는 다양한 세포기관을 갖고 있다. 진핵세포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그럴듯한 이론은 ‘세포내공생설細胞內共生說, endosymbiosis’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2개의 원핵세포가 한 몸이 되어 진핵세포로 진화했다(하나가 다른 하나를 잡아먹었을 수도 있고, 약한 상대를 침범했을 수도 있지만 굳이 구별할 필요는 없다). 아마도 이 과정은 고세균古細菌이 박테리아를 흡수하거나 그 반대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두 생명체 사이에 공생이 시작된 것이다. 예를 들어 산소로 포도당을 만들어서 에너지를 얻는 호기성 세균은 산소를 싫어하는 고세균에게 최상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또는 광합성 세균이 큰 세포 안에서 포도당을 생산하면 세균과 숙주에게 모두 이득이 된다. 이와 같은 공생 조합은 진핵생물에게 커다란 이점으로 작용하여 생태계에서 더욱 확고한 입지를 굳히게 된다. 114)<br>8장 인류와 문명 … 239<br>메소포타미아와 서부 및 중앙유라시아 문명의 태동에는 7,000년 전에 일어났던 흑해의 범람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홍적세 말기에 유라시아를 덮고 있던 얼음이 녹아 지중해로 흘러들었고, 흑해는 더운 날씨 때문에 서서히 증발하여 지중해와 흑해의 수위 차가 140m까지 벌어졌다. 중력이 작용하는 한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에 지중해의 짠물은 보스포루스해협Bosporus Strait을 타고 흑해로 유입되었고, 담수淡水였던 흑해는 지금과 같은 염수鹽水로 변했다. 물론 이 과정은 서서히 진행되었지만 흑해의 가장자리가 살짝 경사져 있기 때문에 수위가 비교적 빠르게 상승하여 결국 해안의 농경지로 범람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농경민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중앙아시아와 서유럽으로 진출했는데, 특히 흑해 연안에 거주해왔던 인도-유럽어족과 셈족Semitic tribes, 우바이드족Ubaid 등 다양한 인종들이 메소포타미아로 모여들어 최초의 문명 도시인 수메르를 건설하게 된다. 125-6)<br>지질구조판 중 유라시아판은 지질학적으로 유리한 점이 많았다. 대륙의 축이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어서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으며, 다양한 농경민들이 모여들어 다양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반면에 다른 대륙들은 대부분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기 때문에 기후가 비슷한 동-서 방향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어려웠고, 남-북으로 진출하면 곡물과 가축들이 서식 가능 지역을 벗어나 큰 피해를 입었다(이들이 사냥에 의존했다면 남-북 방향 진출이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유라시아 문명권이 확장됨에 따라 다양한 종의 가축들도 함께 퍼져나갔고, 점령지의 토착민들은 새로운 병원균에 노출되어 혹독한 대가를 치르면서 면역력을 키워나갔다. 유리시아는 다른 대륙으로 진출할 때 수천 가지 군사 기술과 함께 토착민들이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병균도 가져갔다.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소규모의 원정대만으로 잉카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병균 덕분이었다. 126-7)<br>화석에너지는 환경을 파괴하고 기후를 변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 누리는 편리함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생활습관을 바꾸려면 꽤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문명의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기술과 의학으로 무장한 인간은 지난 수십 억 년 동안 적용되어왔던 자연선택의 섭리를 교묘하게 피해왔다. 그러나 자원이 고갈되어 자연선택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되면, 가장 하찮게 여겼던 미생물의 먹이로 전락할 것이다. 사실 이것은 탐욕이나 나태함의 문제가 아니다. 주어진 자원을 무분별하게 낭비하는 것은 경쟁자가 없는 생명체에게 흔히 나타나는 성향이다. 그러나 인간은 언어와 역사, 그리고 과학을 이용하여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이므로, 위기가 닥치기 전에 대비책을 세울 능력이 충분히 있다. 우리가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그것은 생명의 역사, 아니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업적이 될 것이다. 127-8)]]></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311/62/cover150/ek4425318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3116236</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간식</category><title>휴가 갈 땐, 주기율표 / 곽재식 - [휴가 갈 땐, 주기율표 - 일상과 주기율표의 찰떡 케미스트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59121</link><pubDate>Thu, 19 Mar 2026 07: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5912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502539103&TPaperId=171591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528/56/coveroff/e50253910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502539103&TPaperId=1715912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휴가 갈 땐, 주기율표 - 일상과 주기율표의 찰떡 케미스트리</a><br/>곽재식 지음 / 초사흘달 / 2021년 12월<br/></td></tr></table><br/>1. 수소와 매실주 H<br>수소 원자는 ⊕전기를 띠기 쉽다. 그런데 수소 원자는 그냥 깔끔하게 ⊕전기를 띠는 상태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살짝 ⊕전기를 띠는 듯 마는 듯한 느낌으로 ⊖전기를 띠기 쉬운 다른 물질을 약간만 끌어당기는 묘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상태로 수소 원자가 ⊖전기를 띠기 쉬운 다른 물질을 슬쩍 잡아당기는 현상을 수소결합hydrogen bond이라고 한다. 수소결합은 그다지 힘이 세지 않다. 그러다 보니 수소결합으로 연결된 부분은 어떨 때는 살짝 붙어 있다가, 어떨 때는 다른 힘을 못 이겨 떨어지기도 한다. 즉, 여러 가지 다양한 경우가 생긴다. 이 같은 성질 덕분에 수소는 갖가지 복잡하고 이상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온갖 물질이 별별 복잡한 형태로 다채로운 화학반응을 일으켜야 하는 생명체의 몸속에서 수소결합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말하자면 생명체가 복잡한 이유의 근원은 수소결합의 힘이 애매한 정도라서 조건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갖고 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0-1)<br>수소결합, 즉 수소 원자가 ⊖전기를 띠기 쉬운 물질을 적당한 힘으로 끌어당기는 이 이상한 특징은 생명체가 유전 받은 대로 자기 몸을 키워 나가는 과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유전자가 들어 있는 DNA는 자기와 똑같은 DNA를 복사해서 한 벌 더 만들어 내거나, 짝이 맞는 RNA를 만들어 내는 등의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이 화학반응에서 DNA가 서로 끌어당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수소결합이다. 이런 화학반응은 생명체가 선대로부터 유전된 그대로 자신의 몸을 만드는 현상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체에서 수소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수소가 흔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단, 지구를 기준으로 보면 오직 수소 원자만 모여서 생긴 수소 기체는 그리 흔치 않다. 수소 기체는 지구에 드물지만 다른 원자 옆에 붙어 있는 수소 원자는 흔한 편이다. 물에는 산소 원자와 함께 수소 원자가 들어 있다. 그러므로 바다는 수소 원자를 가득 품은 거대한 저장고다. 11-2)<br>2. 헬륨과 놀이공원 He<br>사실 태양은 전체 무게의 70% 이상을 수소가 차지하고 있으므로 거대한 수소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수소 원자들은 엄청나게 높은 온도와 압력에서 몇 단계에 걸쳐 서로 합쳐져 헬륨 원자로 변하는 수가 있다. 이런 현상을 원자의 핵끼리 서로 붙는다고 해서 핵융합nuclear fusion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 때문에 태양이 강한 빛과 열을 사방으로 내뿜는 것이고, 그 덕분에 우리는 환하고 따뜻한 세상에서 살 수 있다. 헬륨이 쓸모가 많은 까닭은 특이한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 아니다. 정반대로 헬륨은 아무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아서 유용하다. 헬륨은 불을 댕겨도 타오르지 않고, 금속을 헬륨 속에 놓아두어도 녹슬지 않는다. 한마디로 헬륨은 아무 성질이 없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성질인 물질이다. 주기율표에서 헬륨과 같은 열에 있는 네온, 아르곤 같은 물질들은 다들 이렇게 화학반응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런 물질들을 묶어서 비활성기체noble gas라고 부른다. 20-2)<br>매우 정밀한 가공작업을 하거나 높은 열을 가해야 하는 작업장을 생각해 보자. 세밀하게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데 화학반응을 잘하는 물질이 주변에 나돌고 있으면 불필요한 화학반응이 일어나 재료가 손상될 수 있다. 바로 이럴 때, 제조 시설에 헬륨을 불어 넣어 주면 주위가 헬륨으로 가득 차 불필요한 화학반응을 일으킬 대상이 아예 없는 깨끗한 환경이 마련된다. 당연히 불이 붙지도 않는다. 헬륨은 워낙에 아무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성질을 띤 까닭에 자기들끼리도 잘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액체로 만들기가 어렵다. 평범한 1기압에서 날아다니던 헬륨 원자들이 서로 들러붙어 액체가 되게 하려면 온도를 영하 269℃까지 낮추어야만 한다. 액체로 만들기 위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온도를 낮춰야 하는 물질이다 보니, 일단 액체로 만든 헬륨을 뿌리면 주변 온도 역시 아주 낮게 만들 수 있다. 게다가 헬륨은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재료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지 않고 냉각 작업에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23-5)<br>3. 리튬과 옛날 노래 Li<br>리튬 원자는 전자를 잃고 ⊕전기를 띠는 상태로 쉽게 변하는 성질이 있다. 리튬 배터리는 간단히 말해 리튬 원자가 ⊕전기를 잘 띤다는 점을 이용해서 그 전기를 뽑아 쓰는 장치라고 보면 된다. 리튬은 세상 모든 원자 중에 수소, 헬륨 다음으로 평균 무게가 적게 나가는 원자다. 가볍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수소, 헬륨, 리튬은 모두 성질이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원자들의 차이는 원자핵에 양성자가 몇 개 있느냐 하는 것밖에 없다. 양성자가 한 개만 있으면 수소 원자가 되어 불에 잘 타는 물질이 되기 쉽지만, 똑같은 양성자인데도 두 개가 꼭 붙어 있으면 헬륨 원자가 되어 아무런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성질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로 수소 원자를 이루고 있는 것과 똑같은 양성자가 한 개가 아니라 세 개가 달라붙어 있으면 리튬 원자가 되는데, 이번에는 금속 덩어리가 되기 쉽다.&nbsp; 100종이 넘는 세상 모든 원소 간의 차이는 원자의 핵에 양성자가 몇 개 들어 있는지 그 개수의 차이밖에 없다. 29-31)<br>주기율표에서 리튬은 소듐의 바로 위 칸에, 포타슘은 소듐의 바로 아래 칸에 써넣는 원소다. 즉, 세 가지 원소는 주기율표의 같은 열에 주르륵 적혀 있다. 이는 현대의 화학자들이 리튬, 소듐, 포타슘을 성질이 비슷해 하나로 묶을 만하다고 본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원소들은 다들 원자가 ⊕전기를 잘 띠고, 화학반응을 잘하며, 한데 뭉쳐 있을 때는 쇳덩어리 비슷한 모양을 이룬다. 주기율표에서는 이들 모두 맨 첫 번째 열에 나열돼 있어서 1족 원소group 1 family라고 부르기도 한다. 리튬을 주원료로 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물질들의 화학반응이 잘 일어나도록 돕느라 리튬을 쓰는 일도 있다. 가만히 두면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물질들에 적당한 촉매catalyst를 섞어 주면 그때부터 화학반응을 일으킬 때가 있다. 이 과정에서 촉매 자신은 거의 변하지 않으면서 다른 물질은 계속 빠르게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변화하도록 도와준다. 이 때문에 많은 화학 회사에서는 적합한 촉매를 개발하는 일을 핵심 기술로 여긴다. 34-6)<br>4. 베릴륨과 보물찾기 Be<br>우라늄은 중성자neutron와 충돌하면 원자핵이 둘로 나뉘어 다른 원자로 변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원자핵이 쪼개지는 현상을 핵분열nuclear fission이라고 하며, 핵분열 현상이 일어날 때는 강한 열이 나온다. 그런데 이 과정을 유지하려면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성자들이 원자로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고 계속 우라늄 사이를 돌아다니도록 무엇인가로 막아 주어야 한다. 중성자는 이름 그대로 전기를 띠지 않는 중성 상태의 입자다. 그래서 딱히 다른 물질과 화학반응을 일으키지도 않고, 서로 밀고 당기는 일도 거의 없다. 유령 같은 중성자를 원자로 안에 가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히 중성자는 다른 원자의 중심부인 핵 근처에서 그 핵을 이루는 양성자 또는 중성자에 이끌릴 수 있다. 그러니까 중성자는 대체로 다른 물질들을 그냥 통과하는 편이지만, 가끔 다른 원자의 정중앙 근처를 지나게 될 때는 그 원자핵에 들어 있는 양성자나 중성자에 이끌려 붙잡히거나 진행 방향이 바뀔 수 있다. 42-3)<br>베릴륨은 세상의 모든 원자 중에 평균 무게가 네 번째로 가볍고, 그만큼 원자 자체의 크기도 작은 편이다. 베릴륨의 원자핵은 대개 양성자 네 개와 중성자 다섯 개로 이루어져 있다. 주기율표에서 수소, 헬륨, 리튬에 이어서 네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까닭이 바로 양성자가 네 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성자가 베릴륨의 원자핵 근처를 지나갈 때면 강하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은 오묘한 수준의 힘에 이끌린다. 그리고 이 힘 때문에 중성자의 진행 방향이 꺾여서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런 현상이 연달아서 일어나면 마치 중성자가 베릴륨에 부딪혀 튕겨 나가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즉, 베릴륨이 중성자를 튕겨내는 반사재reflector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원자로 안에 베릴륨을 넣어 그릇처럼 만들고, 그 안에 중성자와 우라늄을 넣어 반응을 일으킨다. 이렇게 하면 제아무리 유령 같은 중성자라도 베릴륨에 가로막혀 계속해서 튕겨 나가고, 원자로 안에서는 연쇄반응이 꾸준히 일어난다. 43)<br>5. 붕소와 애플파이 B<br>유리는 규소와 산소 원자들이 서로 붙어 있는 물질을 주재료로 만든다. 특별한 공정을 거치지 않으면 여기에 소듐과 칼슘 원자도 약간 섞여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유리는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약하다. 특히 유리를 뜨겁게 하면 유리를 이루고 있는 원자들이 떨린다. 사실 어떤 물체가 ‘뜨겁다’거나 ‘온도가 높다’는 말 자체가 그 물체를 이루고 있는 원자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유리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모든 원자가 빠르게 떨리다 보면 규소 원자와 산소 원자 사이에 끼어든 소듐 원자 근처에 틈이 생길 수 있다. 원자들 사이에 틈이 생기면 유리의 강도가 약해진다. 다행히 요즘 주방에서 사용하는 유리 제품들은 제법 높은 열에도 잘 견디는 것들이 있다. 유리를 만들 때 붕소 성분을 약간 넣기 때문이다. 규소 원자와 산소 원자 사이에 섞여 있는 소듐 원자 때문에 틈이 생길 만한 자리마다 붕소 원자가 끼어들게 해서 그 틈을 메워 버리는 것이다. 붕소 원자의 크기는 그런 역할을 하기에 꼭 맞다. 49-50)<br>붕산boric acid은 황산이나 염산, 질산처럼 다른 물질을 무시무시하게 녹이지는 않는다. 그런 대표적인 산성 물질에 비하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정도도 훨씬 덜하다. 붕산은 이처럼 어중간한 산성을 띠는 덕분에 살충제로 요긴하게 쓰인다. 붕소는 반도체를 만드는 핵심 재료다. 반도체의 주재료는 규소인데, 순수한 규소에는 전기가 잘 흐르지 않는다. 여기에 규소와 성질이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붕소를 불순물처럼 아주 조금 넣어 주면 훌륭한 반도체가 된다. 규소에 붕소를 살짝 뿌려 주는 이 작업을 도핑dopping이라고 한다. 도핑 작업을 거치면 규소와 붕소의 비슷한 듯 다른 듯한 미묘한 성질 차이 때문에 어떤 때는 전기가 흐르고 어떤 때는 흐르지 않는 반도체의 특징이 생겨난다. 베릴륨이 중성자를 잘 튕겨 내서 핵분열을 부채질하는 것과 반대로 붕소는 중성자를 잘 흡수하는 성질을 지녔다. 그래서 핵분열이 과도하게 일어나서 원자력이 지나치게 강해질 것 같으면 붕소를 넣어 핵분열을 줄인다. 52-3)<br>6. 탄소와 스포츠 C<br>탄소를 이용하면 다양한 물질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들어 내기가 무척 편리하다. 아주 단순한 것부터 별 희한한 성질을 띠는 복잡한 물질까지, 탄소 원자를 이리저리 조합하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탄소가 이렇게나 다양한 물질의 재료가 될 수 있는 까닭은 탄소 원자 한 개가 다른 원자 네 개와 결합하려는 성질을 띠기 때문이다. 탄소 원자 하나에 다른 원자를 붙잡을 수 있는 갈고리가 네 개 달렸다고 상상하면 적당하겠다. 갈고리가 네 개나 있는 탄소를 이리저리 붙여 가면서 뭔가를 만든다면 다른 원소를 재료로 삼는 것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한 모양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탄소 원자가 다른 원자와 달라붙는 힘은 너무 강하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다. 어떤 조건이 갖추어지느냐에 따라 아주 튼튼하게 달라붙을 수도 있고, 조건이 바뀌면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쉽게 떨어지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같은 탄소로 이루어진 물질이라도 원자끼리 어떻게 붙어 있느냐에 따라 성질이 달라진다. 56)<br>지구에 사는 모든 유기체, 즉 생명체의 몸에는 탄소가 많이 들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탄소는 모두 어디서 왔을까? 공기 속의 이산화탄소가 식물의 몸이 되었다가, 다시 그 식물을 먹은 동물의 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지구의 공기 중에는 이산화탄소가 별로 없다. 지구의 공기는 질소가 78%, 산소가 21%를 차지하고, 생명체를 이루는 재료인 이산화탄소는 고작 0.04%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금방 바닥나는 일은 없다. 생명체가 죽으면 곰팡이와 세균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유해를 썩게 하는데, 이 과정에서 생명체의 몸은 다시 이산화탄소로 변해서 공기 중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지상의 수많은 생물이 살아가는 모습을 요약하면 공기 중에 0.04%밖에 없는 이산화탄소 중 일부가 화학반응을 거치며 탄수화물이 되고, 단백질과 지방의 재료로도 활용되어, 마침내 생물의 몸이 되었다가, 생명 활동을 마친 뒤 분해되어 다시 이산화탄소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58-60)<br>7. 질소와 목욕 N<br>사람 몸은 단백질로 이루어졌는데, 단백질은 아미노산amino acid이라는 물질이 수없이 붙어 있는 덩어리다. 그런데 여기서 아미노amino라는 말은 질소가 들어 있는 대표적인 물질 암모니아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공기를 들이마셔도 그 속에 있는 질소를 아미노산과 단백질의 재료로 활용할 수가 없다. 생명체가 질소 기체를 몸속에서 단백질 재료로 바꾸지 못하는 것은 질소 원자 특유의 성질 때문이다. 질소 원자 자체는 화약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다른 원자들에 달라붙으며 화학반응을 잘한다. 그런데 같은 질소 원자 둘이 달라붙을 때는 갈고리 역할을 하는 세 전자가 모두 한꺼번에 서로서로를 이끌어 붙이는 갈고리 역할을 해서 질소 원자 둘이 아주 야무지게 붙어 있게 한다. 이런 모습을 가리켜 질소가 삼중결합을 했다고 표현한다. 이 때문에 생명체가 질소 기체를 아무리 들이마셔 봤자 어지간해서는 질소 원자 두 개를 서로 떼어 낼 수가 없고, 당연히 질소 원자를 재료 삼아 다른 물질을 만들 수도 없다. 66-8)<br>그렇다면 동식물이 몸속에서 질소 원자를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소 기체가 아닌 화학반응을 잘하는 다른 물질 속에 들어 있는 질소 원자를 흡수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질소 기체의 삼중결합을 끊어서 화학반응을 잘하는 다른 물질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동식물이 그 물질 속에 있는 질소 원자로 몸에 꼭 필요한 아미노산과 단백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다행히도 지구에는 오랜 옛날부터 이런 일을 해 온 특별한 생물이 있다. 다름 아닌 세균들이다. 수많은 세균 중 몇몇 종류가 공기 중의 질소 기체를 흡수해서 화학반응을 잘하는 다른 형태의 물질로 바꾼다. 식물은 땅속 세균들이 바꿔 놓은 물질을 뿌리로 빨아들여 그 속에 든 질소 원자를 이용해 단백질 등 여러 가지 필요한 물질을 만든다. 그리고 동물들은 바로 그 식물을 먹는다. 질소 기체의 삼중결합을 끊어 생명체가 활용하기 좋은 질소 원자로 바꿔 주는 이 세균들이 없다면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동물도 살아갈 수 없다. 68)<br>8. 산소와 일광욕 O<br>지구 상공에는 자외선을 흡수하는 보호막이 있다. 바로 지구를 감싸고 있는 오존층ozone layer이다. 오존층은 오존ozone이 많이 모여 있는 공기층을 일컫는 말로, 지상에서 대략 20~25km 높이에 해당한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지상의 생명체들을 위해 오존층을 선물로 준 것이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다. 바로 세균, 그중에서도 남세균 종류다. 수십억 년 전에 전 세계 바다에 나타난 남세균들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광합성을 하면서 산소oxygen 원자가 두 개씩 붙은 산소 기체를 공기 중에 내뿜었다. 이 세균들이 수억 년 동안 줄기차게 산소 기체를 내뿜자, 지구는 산소 기체가 풍부한 행성으로 변했다. 지구 대기에 산소 기체가 풍부하다 보니, 자외선이 쏟아지는 저기 하늘 높은 곳에서는 산소 기체가 자외선을 맞고 오존으로 변한다. 산소 원자가 두 개씩 서로 짝지어 있는 것이 보통 산소 기체의 모습인데, 그러다 자외선을 맞으면 원자들이 떨어지고, 이내 세 개씩 다시 들러붙어 새로운 물질로 바뀐다. 이것이 바로 오존이다. 75-6)<br>남세균이 지구에 산소 기체를 이만큼이나 공급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산소는 화학반응을 무척 잘하는 원소다. 어쩌다 산소 원자 두 개가 달라붙어 산소 기체가 되더라도 그 상태로 가만히 있기보다는 뭔가 화학반응을 일으켜 다른 물질로 변해 버릴 가능성이 크다. 즉, 산소 기체가 자꾸 다른 물질로 변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공기 중 산소 기체의 양을 넉넉하게 유지하려면 다른 물질로 변해서 없어지는 것을 보충하고도 남을 정도로 남세균들이 계속해서 산소 기체를 내뿜어야 한다. 그러니 남세균은 그 수도 어마어마하게 많았을 것이고, 대단히 긴 시간 동안 꾸준히 광합성을 했을 것이다. 산소를 이용하는 다른 생물들은 남세균이 만든 산소 기체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호흡으로 산소 기체를 들이마시는 수많은 동물 역시 산소 기체가 화학반응을 잘한다는 점을 활용해 살아간다. 사람 역시 호흡으로 산소 기체를 들이마시고 있으니, 산소 기체의 화학반응 능력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76)<br>9. 플루오린과 아이스크림 F<br>물 같은 액체 상태의 물질이 마르면서 기체 상태로 변할 때, 주변의 열을 가져가면서 시원해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렇게 액체가 기체로 변하면서 가져가는 열을 기화열heat of vaporiza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냉장고 정도의 냉각 효과를 내려면 아주 쉽게 기체로 변하는 물질이 유리하고, 기왕이면 재활용하기 위해 기체로 변한 뒤에 액체로 되돌리기 편리한 것이 좋다. 이런 용도로 이용하는 물질을 냉매refrigerant라고 한다. 염소chlorine, 플루오린fluorine, 탄소carbon 원자를 조합해 만든 냉매 물질을 각 원소 이름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서 CFC라고 부르는데, 이 물질의 상품명인 프레온Freon이 유명해져서 흔히 프레온가스라고 한다. 그런데 CFC가 공기 중으로 빠져나오면 하늘 높이 올라가서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때문에 CFC 대신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HFC라는 물질을 쓰기도 한다. HFC는 수소, 플루오린, 탄소 원자 등을 성분으로 만드는 물질이므로, 여기에도 플루오린은 들어간다. 82-4)<br>플루오린은 예전에 플루오르fluor 또는 불소라고도 불렀던 물질이다. 플루오린은 화학반응을 극히 잘 일으키는 물질이어서 도저히 화학반응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물질을 건드려 끝내 화학반응을 일으키곤 한다. 수소와 플루오린이 연결된 물질을 플루오린산fluoric acid, 혹은 불산불화수소산이라고 하는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불산은 산성을 띤다. 아주 강한 산성은 아니지만, 다른 물질과 쉽게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자꾸 스며들고 파고드는 경향이 있어서 사람 피부나 다른 생물에 닿으면 위험하다.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작은 칩 위에 수없이 많은 부품이 연결된 회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반도체 부품은 크기가 1만 분의 1mm, 10만 분의 1mm 정도로 매우 작다. 이렇게 작은 부품을 아주 정밀하게 만들려면 재료를 세밀하게 깎아야 한다. 그 작은 부품을 조각칼 같은 도구로 깎을 수는 없으므로, 적절한 화학물질을 이용해서 불필요한 부분이 삭게 한다. 바로 이 공정에 불산을 쓴다. 85, 88-9)<br>10. 네온과 밤거리 Ne<br>가이슬러관에 기체를 넣고 강한 전기를 걸면, 기체 원자 속에 있던 전자가 전기의 힘 때문에 튀어나온다. 전자는 ⊖전기를 띠므로 전자를 잃은 기체 원자는 ⊕전기를 띠게 된다. 이렇게 전기를 띤 상태로 돌아다니는 기체 원자를 요즘에는 플라스마plasma라고 부른다. 플라스마, 그러니까 ⊕전기를 띤 기체 원자는 자연히 ⊖전기 쪽으로 이끌려 날아간다. 플라스마가 유리관 안에서 다른 기체 원자들과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전기가 있는 쪽으로 날아가다 보면 다른 원자 안에 들어 있는 전자들과 부딪히거나 서로 이끌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전자들은 힘을 받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전자가 갑자기 속도를 잃을 때는 전자파를 내뿜는다.&nbsp; 따라서 가이슬러관에 넣은 기체의 종류와 양, 압력을 잘 조절하면 전자파를 끊임없이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전자파의 주파수도 조절할 수 있다. 만약 플라스마가 내뿜는 전자파의 주파수를 4억~8억 MHz 정도로 유지할 수 있으면, 그 전자파는 사람 눈에 감지되어 빛으로 보인다. 94-5)<br>주기율표에서 네온은 헬륨 바로 아래 칸에 적혀 있다. 같은 열에 배치된 것에서 알 수 있듯 네온은 헬륨과 성질이 비슷하다. 화학반응을 잘 일으키지 않는 비활성기체이며, 헬륨처럼 우주 전체로 보면 비교적 흔하지만, 지구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물질이다. 1871년 드미트리 멘델레예프Dmitry Mendeleev가 대체로 가벼운 것부터 무거운 것 순서로 원소 이름을 써넣으면서, 성질이 비슷한 것들은 세로로 같은 줄에 오도록 배치한 것이 주기율표다. 그런데 이 원칙대로 정리했더니 어떤 칸에는 써넣을 것이 없었다. 빈칸이 생겼으니 주기율표를 만드는 원리가 틀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주기율표가 틀린 것이 아니라 빈칸에 들어갈 원소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 새로운 물질이 발견되어 그 자리를 채울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1898년에 네온이라는 새로운 물질이 공기 중에 0.002% 정도 섞여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 물질이 주기율표의 빈칸을 채우게 됐다. 99)<br>11. 소듐과 냉면 Na<br>소듐은 ⊕전기를 띠려는 성질이 강하다. 소듐의 전기적인 특성을 이용하면 독특한 노란색 빛을 내는 전등을 만들 수도 있다. 나트륨등은 유리관에 소듐을 넣고 전기를 걸어 아주 높은 온도에서 녹아내리고 끓어오르게 해서 기체 상태로 유리관 안을 떠다니며 빛을 내뿜게 만든 것이다. 순수한 소듐 덩어리를 물에 던지면 빠르게 폭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소듐이 그만큼 격렬하게 화학반응을 일으킨다는 증거다.&nbsp; 가성소다는 가혹한 성질을 지닌 소듐 물질이라는 뜻으로, 가성소다가 동물의 살갗에 닿으면 피부에 해를 입는다. 하지만 다른 물질을 잘 녹이는 성질을 적당히 이용하면 가성소다로 세탁물의 찌든 때를 녹여 없앨 수 있다.&nbsp; 양잿물이 바로 가성소다, 즉 수산화소듐을 말한다. 가성소다가 다른 물질을 잘 녹이는 까닭은 이 물질이 대표적인 염기base이기 때문이다. 소금은 소듐과 염소 원자가 규칙적으로 붙어 있는 덩어리다. 그래서 염화소듐sodium chloride 또는 염화나트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03-5)<br>우리 몸에서 소듐이 꼭 필요한 곳은 신경이다. 사람과 동물은 온몸에 신경이 퍼져 있다. 거대한 신경 덩어리라고도 할 수 있는 뇌에서 몸을 어떻게 움직이라고 보내는 신호가 신경을 통해 해당 부위에 전달돼야만 몸이 제대로 움직이고 여러 가지 감각도 느낄 수 있다. 이때 사용되는 신호는 전기신호다. 그리고 신경을 통해 전달할 전기신호를 만들기 위해 인체가 사용하는 물질이 바로 ⊕전기를 잘 띠는 소듐과 포타슘이다. 사람의 신경에는 가까이 있는 물질 중에서 ⊕전기를 띤 소듐만 골라서 한쪽으로 흘러가게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부위가 있다. 소듐통로sodium channel와 소듐-포타슘 펌프Na+ K+ pump라고 부르는 부위인데, 소듐통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전기를 띤 소듐이 한곳으로 모이는 바람에 상당한 전기가 걸린다. 그러니 몸속에 소듐이 전혀 없다면 신경에서 전기를 일으킬 수가 없고, 신경을 통해 신호가 전달되지 않으면 온몸이 한마음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소듐이 없으면 몸은 뇌와 연결되지 못한다. 106)<br>12. 마그네슘과 숲 Mg<br>식물에서 초록색을 내는 화학물질을 엽록소chlorophyll라고 한다. 엽록소를 커다랗게 확대해서 보면 핵심이 되는 부분에서도 가장 눈에 잘 띄는 위치에 금속으로 분류되는 마그네슘 원자가 자리 잡고 있다. 즉, 엽록소라는 물질을 정확히 설명하자면, 마그네슘계 유기화학물질을 이용한 광화학반응 목적의 색소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싱그러운 숲의 초록빛을 정확하게 일컫는 말이다. 곡식이나 과일을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 관점에서 보면, 광합성은 식물이 햇빛 속의 힘을 흡수해서 영양분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그런데 엽록소의 중심에 있는 마그네슘 관점에서 보면, 마그네슘 원자와 다른 원자들이 이어진 아주 작은 회로가 햇빛의 힘을 받아 작동하면서 전자로 만든 광선 검 같은 장치가 가동되어 물 분자를 조각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각난 물 분자의 파편인 수소가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화학반응을 일으킨 결과로 다른 동물들이 원하는 당분 같은 물질이 생겨난다고 볼 수 있다. 111-3)<br>⊕전기를 잘 띠는 마그네슘의 특징을 이용하면 다른 금속이 녹슬지 않게 보호할 수 있다. 금속의 전자가 떨어져 나가는 현상, 즉 녹스는 현상은 주위에 있는 무엇인가가 금속에서 전자를 떼어 내 가져가려고 하니까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금속의 전자를 가져가려고 하는 물질이 나타날 때마다 금속보다 먼저 나서서 전자를 던져 주는 장치가 있다면 보호하고자 하는 금속 안에 있는 전자는 뜯겨 나가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하면 마그네슘으로 금속이 녹슬지 않게 보호할 수 있다. 장치는 간단하다. 보호하고 싶은 금속과 마그네슘 덩어리를 전선으로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보호하려는 금속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려 할 때마다 마그네슘이 재빨리 자기 전자를 떼어서 전선을 통해 전달해 준다. 이렇게 해서 마그네슘은 하나둘 전자를 잃어 ⊕전기를 띠는 상태로 변한 뒤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삭아 가고, 반대로 보호하고자 했던 금속은 마그네슘 덕분에 전자를 잃지 않아서 녹슬지 않고 그대로 남는다. 116-7)<br>13. 알루미늄과 콜라 Al<br>지표면의 돌과 모래를 이루는 원자를 분석하면 산소와 규소 원자가 매우 많은 편이고, 바로 그다음 순위를 차지하는 것이 알루미늄이다. 사람들은 흔히 쇳덩어리라고 하면 철을 떠올리는데, 이는 철이 지구에 흔한 금속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루미늄은 철보다 더욱 흔하다. 지표면을 이루는 원자의 8% 정도가 알루미늄이라는 통계도 있다. 그렇지만 돌이나 흙에서 알루미늄 원자만을 골라내서 금속 덩어리로 만들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초로 전환점을 마련한 인물은 (베릴륨을 발견하고 요소를 합성한) 독일의 위대한 화학자 프리드리히 뵐러였다. 뵐러는 화학반응을 아주 잘 일으키는 물질인 포타슘을 염화알루미늄aluminium chloride과 반응시키는 과정을 이용해서 상당히 순수한 알루미늄 가루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알루미늄을 뽑아내는 방법이 점점 더 발전해서, 힘들긴 해도 알루미늄 원자가 들어 있는 돌에서 알루미늄을 뽑아내 조금씩 덩어리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124-5)<br>그래도 초창기에는 알루미늄 덩어리를 만들기가 힘들었다. 연-알루미늄-술에 결국 성공한 인물로는 보통 프랑스의 폴 에루Paul Héroult와 미국의 찰스 마틴 홀Charles Martin Hall이 손꼽힌다. 1880년대 후반, 두 사람이 각자 발견한 기술은 알루미늄을 뽑아낼 수 있는 재료에 전기를 걸어 주는 독특한 화학반응을 통해 알루미늄을 녹여낸 뒤에 다시 훑어 내는 방법이었다. 요즘에는 주로 보크사이트bauxite라는 돌에서 알루미늄을 뽑아내며, 예전보다 훨씬 더 발전된 기술을 이용한다. 하지만 여전히 알루미늄을 생산하는 데는 전기가 많이 든다. 다행히 요즘은 돌에서 뽑아내지 않아도 알루미늄을 얻을 방법이 있다. 바로 재활용이다. 게다가 알루미늄을 재활용하면 돌에서 직접 알루미늄을 뽑아낼 때보다 전기를 훨씬 절약할 수 있다. 재생 작업에 소모하는 전기는 돌에서 직접 뽑아낼 때 소모하는 전기의 2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오늘날 알루미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널리 쓰이고 있다. 126, 128, 130)<br>14. 규소와 선글라스 Si<br>유리와 수정의 재료가 되는 물질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둘 다 규소silicon 원자에 산소 원자가 둘씩 달라붙은 이산화규소silicon dioxide에서 출발하는 물질이다. 이산화규소를 이루는 산소와 규소는 둘 다 지구에 흔한 원소다. 지표면을 이루는 원자 중에 산소와 규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75% 가까이나 된다. 한반도에서는 또 다른 물질이 유리를 능가하는 인기를 끌었다. 이산화규소 덩어리였던 유리와 달리 그 새로운 물질은 규소를 중심으로 알루미늄이나 철 등 여러 원자가 다양하게 섞인 것이었다. 그 물질은 다름 아닌 도자기다. 여기에 현대의 기술을 더해 규소 원자가 이루는 모양을 적절히 조절하면 더 튼튼하고 더욱 쓰기 좋은 재료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원리로 만들어 낸 도자기 계통의 재료를 흔히 세라믹ceramic이라고 한다. 고대의 유리구슬부터 중세의 도자기에 이어 현대의 세라믹까지, 이 모든 것에는 규소가 있고, 규소를 어떻게 녹이고 굳히느냐에 따라 제품의 품질이 달라진다. 134, 137-8)<br>1950년대의 학자들은 전기가 잘 흐르는 도체와 그렇지 않은 부도체의 중간 성격을 띠는 어중간한 물질을 잘만 이용하면 원하는 경우에만 전기가 흐르게 조절할 수 있는 전자부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바로 이런 물질을 반도체semiconductor라고 한다. 이런 생각을 공유하고 있던 강대원과 아탈라는 규소를 주재료로 삼고 다른 화학물질들을 조금씩 이용해 정말로 이렇게 동작하는 전자부품을 만들어 냈다. 이 부품을 금속산화물 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metal oxide semiconductor field effect transistor라고 한다. 보통은 줄여서 MOSFET로 쓰고, ‘모스펫’이라고 읽는다. 1979년에 나온 모스펫 2만 9,000개짜리 장치가 바로 최초의 IBM PC 핵심 부품이었던 8088 CPU였다. 전기를 받으면 빛을 내뿜도록 반도체를 만들면 LED가 된다. 반대로 빛을 받으면 전기를 내뿜는 반도체를 만들 수도 있는데, 이렇게 만든 장치는 태양광발전소가 된다. 태양광발전 장치를 만들 때도 역시 규소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140-1)<br>15. 인과 기차 여행 P<br>화재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가루가 바로 난연제flame retardant라는 물질이다. 그리고 그 난연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인phosphorus 원자가 들어 있는 성분이다. 난연제는 플라스틱 같은 재료에 섞어 넣어 불이 잘 붙지 않게 하는 약품을 말한다. 보통은 불이 잠깐 붙었다가도 번져 나가지 않고 그냥 사그라들게 하는 효과를 주는 것들이 많다. 만약 불에 잘 타지 않으면서 푹신한 가죽 소파 같은 느낌이 나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면 가죽과 같은 질감의 플라스틱에 난연제를 섞어 소파를 만들면 되고, 불에 안 타는 벽지가 필요하다면 종이와 같은 질감의 플라스틱을 벽지 모양으로 가공한 다음 난연제를 섞어 두면 된다. 난연제는 화재 위험을 낮추고 싶은 그 어디에나 활용할 수 있다. 예컨대 전자제품이 전기 합선으로 불이 날까 봐 걱정된다면, 난연제를 첨가한 플라스틱으로 제품을 만들면 된다. 난연제 덕택에 플라스틱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불에 잘 타지 않으면서 값도 싼 환상적인 재료가 되었다. 146-7)<br>꼭 난연제가 아니어도 인 원자를 이용한 화학물질은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과 수소, 산소가 붙어 있는 물질인 인산phosphoric acid이다. 인이 들어 있는 물질을 이렇게나 많이 만들어 내는 이유는 이 물질이 비료로 쓰이기 때문이다. 인 원자가 들어 있는 비료를 뿌려 줘야만 농작물이 잘 자란다. 인이 있어야 잘 자라는 것은 농작물이나 식물만이 아니다. 사실은 세상 모든 생물이 자라는 데 인이 꼭 필요하다. 사람이 사는 데도 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인 원자가 들어 있는 물질인 아데노신삼인산adenosine triphosphate이 모든 생물의 몸이 움직이는 데 사용되는 핵심 연료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데노신삼인산이 아데노신이인산adenosine diphosphate으로 바뀌는 화학반응을 일으켜 몸 곳곳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에 활용한다. 몸속에서는 워낙에 별별 곳에 다 사용되는 물질이라 아데노신삼인산이라는 긴 이름 대신 ATP라고 줄여서 표기하는 일이 많다. 147-8)&nbsp;<br>16. 황과 긴 산책 S<br>생명체에서 뽑아낸 다른 많은 물질처럼 고무나무에서 뽑아낸 고무에도 탄소 원자가 주로 많이 들어 있다. 고무 속의 이 많은 탄소 원자는 대개 서로서로 줄줄이 연결되어 기다란 끈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황 원자는 다른 원자 두 개와 잘 결합하려는 성질이 있다. 갈고리가 두 개 달린 원자라고 생각해도 된다. 그래서 고무에 황을 넣어 주면 이쪽과 저쪽 탄소 가닥 사이에 황이 끼어들어 양쪽으로 갈고리를 걸고 붙어 버린다. 탄소가 많이 들어 있는 실 가닥 같은 물질들 사이사이에 황 원자가 들어가서는 접착제처럼 탄소 실 가닥 곳곳을 붙여 버린다고 상상해도 비슷하겠다.&nbsp; 바로 이 때문에 고무에 황을 적당히 넣어 주면 탄소 가닥들이 서로 엉겨 붙으면서 고무가 더 탱탱해진다. 생물의 몸속에 있는 단백질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황은 수소결합보다 더 강한 접착제 역할을 한다. 황 덕택에 단백질의 모양이 더 다양해질 수 있고, 생명체는 더욱 다양한 단백질을 이용하며 더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158)<br>술파제sulfa drug는 세균의 몸 속에 들어가면 엽산folacin을 만들 때 쓰이는 원료처럼 반응한다. 지구의 생명체들은 모두 DNA와 단백질로 몸을 만들어 가는데, 몸속에서 각종 영양분을 활용해 DNA와 단백질을 만들 때 조금이지만 엽산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균은 몸속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스스로 엽산을 만든다. 그런데 세균 몸에 술파제가 들어가면 세균은 술파제를 이용해 엽산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면 오류가 발생해 엉뚱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아마도 술파제에 붙어 있는 황과 다른 원자들의 모양과 성질이 원래 세균에게 필요했던 물질과 묘하게도 비슷해서 혼동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싶다. 엽산이 없으면 DNA와 단백질도 제대로 만들 수 없으므로 결국 세균은 몸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죽는다. 이와 달리 사람 몸에는 애초에 엽산을 만드는 능력이 없다 보니 술파제의 방해를 받을 일도 없다. 술파제가 등장한 뒤로 인류는 드디어 몸속에 감염된 세균을 제대로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 164)<br>17. 염소와 수영장 Cl<br>염소는 바닷물 속에 ⊖전기를 띤 상태로 넉넉히 녹아 있다. 바닷물에서 얻는 소금이 바로 소듐 원자와 염소 원자가 한 개씩 쌍쌍이 붙어 있는 물질이다. 수영장 냄새는 염소chlorine로 물을 소독해서 나는 냄새다. 염소 원자 둘이 붙어 있는 물질인 염소 기체를 직접 물에 섞어 소독하는 방법도 있고, 염소 원자를 다른 원자들과 함께 이용해 만든 소독약을 쓰는 방법도 있다. 염소는 주기율표에서 플루오린 바로 아래에 적혀 있는 만큼 플루오린과 성질이 비슷하다. 염소도 플루오린처럼 화학반응을 잘 일으키는 편이고, ⊖전기를 띠는 상태로 쉽게 변한다. 염소 기체를 이용해 소독할 수 있는 까닭도 염소 원자가 화학반응을 잘 일으키기 때문이다.&nbsp; 특히 염소 기체는 아주 조금만 물에 넣어도 세균을 비롯해 물속에 사는 여러 미생물의 세포와 화학반응을 일으켜 미생물의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을 다른 물질로 바꿔 버려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몸의 각 부분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미생물은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다. 167-9)<br>염소 원자가 들어 있는 위험한 물질을 꼽자면 염산hydrochloric acid을 빼놓을 수 없다. 쇳덩이를 녹일 만큼 강한 산성 물질로 잘 알려진 염산은 염소 기체를 물에 뿌리기만 해도 물과 화학반응을 해서 저절로 생겨날 수 있다. 독가스로 퍼트린 염소 기체를 병사들이 들이마셨을 때 해를 입는 이유 중 하나도 염소 기체가 몸속의 수분과 반응해서 염산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강한 산성을 자랑하는 염산은 알고 보면 우리 몸속에도 있다. 위에서 음식을 소화하기 위해 분비하는 위액의 중요한 성분이 다름 아닌 염산이다. 특히 위액 중에서 단백질을 분해하는 펩신pepsin이라는 물질은 산성 환경에서 화학반응을 가장 잘 일으키는데, 산성 물질인 염산은 펩신이 활발하게 단백질을 분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그뿐 아니라 염산은 위 속에서 산성에 버티지 못하는 세균들을 녹여서 없애는 역할도 맡고 있다. 사람 위액 속에 염산이 없었다면 입으로 세균이 조금만 들어와도 그것에 감염될 가능성이 지금보다 더 높았을 것이다. 171)<br>18. 아르곤과 제주도 Ar<br>아르곤은 헬륨과 마찬가지로 다른 원자와 화학반응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물질이다. 어찌나 반응을 안 일으키는지 그저 낱낱이 흩어져 기체 상태로 날아다니기만 한다. 헬륨은 지구에서 구하기 쉽지 않은 물질이지만, 아르곤은 공기 중에 1% 가까이 들어 있다. 공기 성분 중 질소 기체, 산소 기체 다음으로 많은 것이 아르곤이다. 그렇다면 아르곤은 어떤 일에 쓰일까? 헬륨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않으면서 재료를 보호하거나 작업장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할 때 아르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아르곤 용접을 들 수 있다. 쇠를 녹여 붙이는 용접 작업을 할 때는 높은 온도로 쇠붙이 주위를 녹이는데, 주변의 잡다한 물질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끼어들어 용접 부위를 더럽힐 수 있다. 공기 중의 산소만 해도 화학반응을 일으켜 쇠를 녹슬게 할 수 있고, 먼지가 타서 재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럴 때 아르곤을 넣어 주면 불필요한 반응을 일으킬 만한 것을 모두 날려 버리고 깨끗하게 용접할 수 있다. 179-81)<br>그렇다면 결코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하는 아르곤과 무엇이든 화학반응을 일으키려고 하는 염소나 플루오린을 서로 섞어 두면 어떻게 될까? 아르곤과 플루오린이 서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상태 중에 전기적으로 특수한 상황이 되는 것을 아르곤-플루오린 엑시머 또는 Ar-F 엑시머라고 한다. 세상에는 에너지를 가하면 빛을 내는 물질이 여러 가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물질은 전기를 걸면 빛을 내고, 어떤 물질은 높은 열을 가하면 빛을 낸다. 그런데 만약 빛을 쐬어 주면 그 결과로 똑같은 빛을 내는 물질이 세상에 있다면 어떨까? 이런 물질은 쐬어 준 빛을 받아서 빛을 내는데, 자기가 내뿜는 그 빛 때문에 다시 더 빛을 내게 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생겨난 특이하고 강한 빛을 레이저laser라고 한다. 아르곤-플루오린 엑시머 역시 이런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 중 하나다. 아르곤-플루오린 엑시머로 만든 레이저는 일상적인 물질을 깔끔하고 정교하게 깎아 내기에 유리해서 그런 작업에 많이 쓰인다. 182-3)<br>19. 포타슘과 바나나 K<br>아랍어로 알칼리al qalīy는 원래 식물 따위를 태운 재를 뜻하는 말인데, 실제로 식물을 태운 재를 잘 골라 물에 녹이면 염기성, 즉 알칼리성 용액이 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이전 우리 조상들도 식물의 재를 녹인 물을 잿물이라 부르고 세탁에 이용했다. 염기성을 띠는 잿물에는 단백질 등의 얼룩이나 때를 이루는 성분을 파괴하는 성질이 있어서 이를 빨래하는 데 이용한 것이다. 식물의 몸을 이루는 수많은 원자 중에 탄소, 산소, 수소 같은 원자들은 태우면 화학반응을 일으켜 낱낱이 떨어져 나왔다가 다시 서로 적당히 붙어서 이산화탄소와 수증기가 된다. 공교롭게도 이 물질들은 기체여서 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간다. 따라서 식물이 타고 남은 재에는 기체가 되어 날아가지 않는 원자들만 남게 된다. 마침 칼륨 원자는 재로 남는 쪽에 속한다. 지금처럼 정밀한 화학반응 기술이 없었던 시절에 식물을 태워서 얻은 재로 알칼리성 물질을 만들었던 옛사람들의 기술은 상당히 실용적이었던 셈이다. 187-8)<br>사람의 신경은 전기신호를 전달하면서 제 역할을 한다. 몸의 특정 부위에서 감지한 것을 뇌에 전달하고, 정보를 받은 뇌가 다시 신체 각 부위로 명령을 전달함으로써 몸이 움직이는데, 이때 전기신호를 전달하는 통로가 바로 신경이다. 그러므로 전자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배터리를 충전하듯이 사람 몸에서도 충전과 비슷한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사람의 몸은 생명체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항상 연료로 활용하는 ATP라는 물질을 반응시켜서 충전한다. 이때, 충전 과정에서 핵심이 되는 물질이 세포의 겉면에 있는데, 이름하여 소듐-포타슘(칼륨) 펌프Na+ K+ pump다. 우리가 골똘히 생각해야 할 때나 무엇인가를 느끼고 행동해야 할 때, 우리 몸은 평소에 소듐-포타슘 펌프를 가동해 모아 둔 전기를 이용해서 신체 각 부분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결국 우리가 삶을 사는 수고의 10분의 1쯤은 소듐과 포타슘을 몸속 세포 이쪽 편에서 저쪽 편으로 보내는 데 소모하는 셈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191-2)<br>20. 칼슘과 전망대 Ca<br>요즘 사용하는 콘크리트란 시멘트에 모래와 자갈 그리고 물을 섞어 사용하는 건설 재료를 말한다. 시공할 때는 묽은 반죽 같은 상태지만 시간이 지나면 굳어서 아주 튼튼해진다. 콘크리트의 재료 중 모래와 자갈은 흙 바닥에서 흔히 볼 수 있으니 그보다 핵심 재료처럼 보이는 것은 역시 시멘트다. 시멘트는 접착제 역할을 해서 다른 재료들을 돌처럼 단단하게 붙잡아 준다. 현대 시멘트의 성분을 살펴보면 칼슘, 탄소, 산소, 알루미늄 같은 다양한 원소들이 보인다. 알루미늄이야 흙 속에 워낙 많이 있는 물질이니 이 중에 눈에 띄는 주성분이라고 할 만한 것은 칼슘과 탄소다. 특히 시멘트의 재료라고 하면 칼슘 원자 하나에 탄소 원자 하나, 산소 원자 세 개씩의 비율로 붙어 있는 탄산칼슘calcium carbonate 같은 것을 꼽을 만하다. 칼슘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몸속에 있는 뼈의 성분을 떠올릴 텐데, 우리 몸속에 있는 칼슘을 제외하고 살면서 가장 많이 마주치는 칼슘이 아마 시멘트 속에 있는 칼슘이 아닐까 싶다. 197-8)<br>사람은 스스로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몸속에서 칼슘 성분을 다양한 화학반응에 활용하곤 한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사람의 뼈를 이루는 물질의 상당량은 칼슘이다. 우리가 멸치나 우유 같은 음식을 먹으면 그 속에 있던 칼슘이 물에 녹아서 흘러 다니다가 적당한 곳에서 다른 물질과 결합하면서 단단하게 굳어 뼈를 이룬다. 사람의 뼈는 화학의 황제인 탄소와 인 등의 물질이 칼슘과 튼튼하게 붙어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서 가벼우면서도 아주 튼튼하다. 몸속에서 칼슘이 수시로 사용되는 현상은 뼈에 역으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동물은 칼슘이 필요하면 뼈에 잔뜩 들어 있는 칼슘을 녹여서 사용한다. 사실 몸의 활동에 꼭 필요한 인 성분도 뼈에 저장되어 있던 것을 녹여서 사용할 때가 많다. 그러니까 뼈가 몸 여러 기관에 필요한 칼슘과 인의 저장고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 외에도 사람이 살다 보면 뼈가 낡고 상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뼈는 항상 조금씩 없어지기도 하고 생겨나기도 하면서 유지되어야 한다. 201-2)]]></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528/56/cover150/e50253910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5285655</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저녁</category><title>모든 것이 양자 이론 / 곽재식 - [모든 것이 양자 이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53146</link><pubDate>Mon, 16 Mar 2026 07: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531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142635424&TPaperId=171531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07/56/coveroff/e1426354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142635424&TPaperId=171531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든 것이 양자 이론</a><br/>곽재식 지음 / 지식의숲 / 2025년 05월<br/></td></tr></table><br/>• 전자 electron│물체의 성질 대부분을 정해 주는 물질<br>우리가 흔히 전자 제품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기계는 전자를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조절하여 복잡한 동작을 하는 기구를 말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 역시 전자를 조작해서 특수한 기능을 하게 만든 부품이다. 나아가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기계도 따지고 보면 전자 덕택에 움직인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전기를 사용한다고 할 때 그 전기는 다들 전선을 따라서 수많은 전자가 움직이도록 하면서 그 전자의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전기의 힘을 이용하는 장치다. 나는 어릴 때 전기가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선 속을 흘러 다니는 전자가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전기가 빛의 속도로 전달된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전자가 빛의 속도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전기 기구 속의 전자는 의외로 느리게 움직인다. 단지 그 전자가 내뿜는 (-)전기의 힘, 음의 전기의 힘 곧 음전기의 힘이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속도가 빛의 속도일 뿐이다. 11)<br>왜 어떤 물질에는 공기 중의 산소 기체가 그렇게 빠르게 달라붙으며 빠른 변질(산화(oxidation) 반응)을 일으킬까? 답은 전자 때문이다. 공기 속의 산소 기체는 전자를 약간 빨아들이고 싶어 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산소 기체는 물체에 닿으면 전자를 끌어당긴다. 산소 기체가 물체에 달라붙어 그 속의 전자를 아예 뜯어내 버리기도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 물체는 원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한다. 물질의 모습도 바뀌고 성질도 바뀐다. 이런 현상이 물체가 불타면서 재로 변하는 현상이다. 이렇게 보면 불탄다는 것은 산소 기체가 땔감 속에 들어 있는 전자를 빠르게 뜯어 가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전자가 잘 떨어져 나가는 물질은 쉽게 불타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반대로 전자가 쉽게 뜯겨 나가지 않는 물질은 불에 잘 타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그런 구조를 가진 물질이 바로 물이다. 산소와 관련된 것 말고도 세상의 온갖 화학 반응이 일어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 대부분은 전자에 달려 있다. 14)<br>이렇게 전자만큼 작은 크기의 알갱이들을 흔히 과학에서는 입자(particle)라고 부른다. 그리고 얼마 후 세상 온갖 일을 다 일으키는 전자같이 아주 작은 입자의 움직임을 입자 하나하나에 대해 각기 정밀하게 따져 보기 위해서는 양자 이론(quantum theory)이라고 하는 아주 독특하고 특이한 계산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도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 두뇌 속의 전자 움직임을 누군가 조종하여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고 싶다면 두뇌 속의 전자를 어떻게 하면 얼마나 바뀌게 되는지를 계산하기 위해 양자 이론이라는 계산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전자라는 입자에 대해 알게 되면서 우리는 세상에서 우리가 음전기를 활용할 때는 대부분 전자 때문에 그 음전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각하는 사람의 뇌세포 속에 있는 미세한 전기든, 발전기에서 고압선으로 보내는 막강한 전기든 음전기라면 어느 것이든 그 속의 전자가 내뿜고 있는 전기다. 18-9)<br>• 위 쿼크 upquark│우리 주변 물체 속에 양전기를 만들어 주는 물질<br>우리가 흔히 산성 물질이라고 부르는 물질은 물에 섞어 놓았을 때 양전기를 띤 수소가 많이 생긴다. 이렇게 양전기를 띠고 있는 수소를 수소 이온 또는 수소 양이온(anion)이라고 부른다. 흔히 산성 물질이란 곧 수소 이온이 많이 들어 있는 물질, 수소 이온 농도가 높은 물질을 말한다. 그 양전기는 음전기를 끌어당길 수 있고 음전기를 띤 전자를 끌어당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양전기를 띤 수소는 다른 물질 속으로 파고들어서 전자를 끌어당겨서 원래 있던 위치에서 어긋나게 할 수 있다. 혹은 아예 전자를 자기 쪽으로 당기다가 원래 있던 곳에서 떼어내는 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아주 많이 빨리 일어나면 전자를 빼앗긴 물질도 급박하게 성질이 바뀔 것이다. 그러므로 산성 물질을 만난 여러 가지 물질은 견디지 못하고 망가지고 결국 녹아내린다. 이렇게 보면 산성 물질이 갖고 있는 녹이는 힘은 결국 양전기를 띤 수소가 갖고 있는 전기의 힘이다. 양전기를 띤 수소를 다른 말로 양성자(proton)라고 부른다. 21-2)<br># pH : 수소 이온이 물속에 얼마나 많이 들어있는지 표시하는 기호. 수치가 낮을수록 수소 이온이 더 많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br>얼핏 생각하면 전자가 많이 붙어 있는 원자는 전자가 넘쳐나니까 전자가 잘 떨어지는 물질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원자일수록 그 전자를 끌어당기는 양성자도 많다.&nbsp; 많은 양성자와 많은 전자 사이에 생기는 양전기와 음전기의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오히려 전자가 훨씬 안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힘도 있다. 전자 개수가 많은 원자는 그 원자 속의 같은 전자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힘이 크다. 전자들은 모두 음전기를 띠고 있으므로 음전기와 음전기 사이의 밀어내는 힘 때문에 서로를 튕겨 내려고 한다. 이런 서로 다른 밀고 당기는 힘의 묘한 균형 때문에 원자들의 종류마다 어떨 때 전자가 잘 떨어져 나오고 어떨 때 전자가 잘 붙는가 하는 성질이 특별하게 달라진다.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힘을 받으면 전자가 얼마나 움직이게 되는 지는 역시 양자 이론을 이용해 계산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힘과 움직임의 정도 차이 덕분에 물질의 성질 차이가 나타난다. 26)<br>과학이 더욱 발전하면서, 과학자들은 양성자 역시 하나의 작은 알갱이가 아니라 다른 더 작은 물질이 모여서 만들어진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현대의 과학자들은 하나의 양성자가 위 쿼크라는 알갱이 두 개와 아래 쿼크라는 알갱이 하나가 합쳐진 물질이라고 보고 있다. 위 쿼크와 아래 쿼크 중에 양전기를 띠고 있는 것은 위 쿼크다. 사실 양성자가 지닌 가장 선명한 특징인 그 양전기의 힘은 본래 위 쿼크에서 나오는 힘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전자나 쿼크처럼 더 작은 물질로 분해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장 작고 가장 기본이 되는 아주 작은 크기의 알갱이를 기본 입자(elementary particle)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기본 입자라는 말 대신 같은 뜻을 갖고 있는 소립자(素粒子)라는 말도 많이 썼다. 그런데 소립자라고 하니 사람들이 작을 소(小)자를 써서 크기가 작은 입자라는 뜻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예 혼란이 없도록 소립자 대신 기본 입자라는 말을 더 많이 쓰는 추세다. 27-8)<br>• 아래 쿼크 downquark│우리 주변 물체 속에 중성을 만들어 주는 물질<br>20세기 중반, 과학자들은 탄소 중 아주 일부가 좀 이상해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이상한 새로 발견한 탄소 역시 탄소라고 부를 수 있는 물질이기는 하다. 그 말은 둘 다 똑같이 각기 6개의 전자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새로 발견한 이 이상한 탄소는 보통 탄소보다 살짝 무거웠다. 보통 탄소 원자 하나의 무게가 12 정도라면, 새로 발견한 특이한 탄소 원자 하나의 무게는 14 정도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무게만 무거운 탄소가 있다면 탄소의 원자핵 속에 양성자 말고 또 다른 물질이 뭔가 더 붙어 있어서 무게를 더해 주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추가로 더 붙어 있는 물질은 전기를 띠고 있으면 절대 안 된다고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추가로 더 붙어 있으면서 무게만 더 늘려 줄 뿐, 전기는 띠지 않는 물질을 중성의 작은 알갱이라고 해서 중성자(neutron)라고 부르게 되었다. 중성자는 가끔 그중 일부가 방사선을 내뿜고 양성자로 변화하는 현상을 일으킨다. 31-2)<br>탄소 원자는 여섯 개의 전자를 갖고 있다. 전자들이 원자 속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과 다르게 양성자 여섯 개는 대단히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달라붙어 모여 있다. 그런데 양성자들은 다들 양전기를 갖고 있으니 양전기끼리 밀어내려는 힘으로 강하게 서로를 밀쳐 낸다. 그러므로 이렇게 여섯 개나 되는 양성자가 한 군데 모여 있기가 쉽지 않다. 금방 밀려나 흩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대체 무슨 힘으로 양성자들이 서로 붙어 있을까? 과학자들은 거기에 같이 붙어 있는 중성자라는 물질이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중성자와 양성자, 중성자와 중성자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과학자들은 핵력(nuclear force)이라고 이름 붙였다. 핵력은 양성자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붙여 주는 접착력이다. 만약 양전기로 밀어내며 튕겨 나가려고 하는 전기의 힘보다도 접착력인 핵력이 충분히 더 강력하다면 양성자들과 중성자들은 좁은 공간에 붙어 있을 수 있다. 36)<br>한참 나중의 일이지만, 이후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쳐 그 중성자조차도 더 확대해서 보면 그 내부는 위 쿼크와 아래 쿼크라는 더 작은 물질이 모여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위 쿼크는 양전기를 띠고 있다. 그러므로 중성자가 전기를 띠지 않기 위해서는 음전기를 띤 쿼크도 같이 모여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음전기를 띤 아래 쿼크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양성자와 중성자는 각기 세 개의 쿼크가 모여서 만들어지는 물질이다. 양성자는 위 쿼크 두 개, 아래 쿼크 하나의 조합으로 되어 있다. 그에 비해 중성자는 아래 쿼크 두 개, 위 쿼크 하나의 조합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양성자는 위 쿼크가 많이 있는 물질이고 중성자는 아래 쿼크가 많이 있는 물질이다. 마침 위 쿼크의 양전기 세기는 아래 쿼크의 음전기 세기의 딱 두 배다. 그렇기 때문에, 중성자는 양전기와 음전기가 정확히 같아져서 전기를 띠지 않는다. 그리고 양성자는 양전기가 남아돌아 전체적으로도 양전기를 띤다. 38)<br>• 기묘 쿼크 strangequark│특이한 우주 방사선의 재료<br>우리가 방사선이라고 부르는 현상 중 다수는 물질과 반응하면 그 물질이 전기를 띄게 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물질 속의 전자는 작고 가볍기에 방사선을 맞으면 종종 그 힘에 뜯겨 날아가 버린다. 그러면 그 전자가 물질 속에서 하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고, 전자가 부족해진 물질이 엉뚱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방사선을 너무 많이 맞으면 몸에 해롭다는 것도 이런 일일 때가 많다. 그런 만큼 우주 방사선이 잘못해서 컴퓨터에 사용하는 반도체에 우연히도 교묘하게 명중하게 되면, 반도체를 흘러 다니던 전자를 날려 보낼 수 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전자가 반도체를 이용해 어떤 판단을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그 반도체를 사용하는 컴퓨터의 결과에도 오류가 생길 것이다. 보통 이렇게 생긴 오류는 기계를 한번 껐다가 켜면 다시 새로운 전자가 새로 흘러가면서 저절로 문제가 회복되곤 한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부드러운 오류라는 뜻으로 소프트 에러(soft error)라고 부른다. 43)<br>우주 방사선의 성분인 작은 알갱이들을 살펴보면, 그중에는 무게가 전자와 양성자 사이의 어중간한 중간쯤 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런 입자는 양성자 무게보다 작으므로 양성자나 중성자가 여러 개 모여서 생길 수는 없는 물질이었다. 그러나 전자보다는 무거우므로 분명 전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전자 여러 개가 뭉쳐 있다고 보기에는 음전기를 띤 전자 여러 개를 뭉쳐줄 만한 방법이 따로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니 이런 관찰 결과는 저 높은 하늘 위에서 전자도 양성자도 중성자도 아닌 무엇인가 다른 물질이 내려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음을 상징하는 것도 아니고, 양을 상징하는 것도 아니고, 영도 아닌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다. 그나마 그런 입자가 한두 가지였으면 전자, 양성자, 중성자 말고, 무엇인가가 하나쯤 더 있다고 치고 적당히 넘어갔을 텐데, 그렇게 이상해 보이는 입자들이 너무 많았다. 전자, 양성자, 중성자 세 가지만으로 세상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다는 우아한 꿈은 완전히 깨어지고 말았다. 46)<br>그러던 중에 1960년대 중반 무렵이 되자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해 나가면서 명성을 얻은 인물이 등장했다. 그는 미국의 머리 겔만(Murray Gell-mann)이었다. 겔만은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켜, 양성자, 중성자, 파이온, 델타 입자, 시그마 입자, 오메가 입자 등등의 다양한 입자들은 사실은 세 가지 서로 다른 쿼크의 조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양성자는 위 쿼크 두 개와 아래 쿼크 하나를 합쳐서 만든 것이고, 중성자는 위 쿼크 하나와 아래 쿼크 하나를 합쳐서 만든 것이다. 파이온은 위 쿼크 또는 아래 쿼크와 함께 거기에 더해 그 둘이 아닌 또 다른 세 번째 쿼크를 합치면 만들 수 있다. 그 세 번째 쿼크의 이름은 기묘 쿼크(strange quark)로 정해졌다. 이런 식으로 겔만의 입자 분류 기준 속에서 진정한 모든 물질을 이루고 있는 가장 작은 기본 재료가 되는 물질로 쿼크가 있다는 생각이 탄생했다. 지금까지도 전자나 쿼크보다 더 단순하고 작은 것은 없다고 보고 있다. 47)<br>• 광자 photon│빛의 재료이자 전자기력의 운반자<br>제임스 맥스웰(James Maxwell)에 따르면, 빛이란 전기의 힘과 자기의 힘이 엮여서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물결치듯 퍼져 나가는 현상이다. 맥스웰의 이론을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해 보자면 빛은 전기장(electric field)과 자기장(magnetic field)이 서로 엮여서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허공을 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현상이다. 그렇기에 빛을 다른 말로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라고도 하고, 줄여서 전자파라고도 한다. 일상생활에서는 눈으로 보이는 전자기파만을 빛이라고 부를 때도 있다. 그런데 빛 중에는 자외선이나 적외선처럼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빛도 많으며 그렇게 보면 전자기파나 전자파나 빛은 다 같은 뜻을 지닌 말이다. 그리고 빛을 이루고 있는 전기와 자기의 힘이 세졌다가 작아졌다가 하는 정도가 얼마인지를 따지는 말이 바로 주파수다. 만일 어떤 빛이 80헤르츠의 주파수를 갖고 있다고 하면, 그 빛은 1초에 80번 전기의 힘과 자기의 힘이 세졌다가 작아졌다가 하는 현상을 일으키는 빛이라는 뜻이다. 50-1)<br>흑체 복사(black body radiation) 문제란 성질이 아주 단순하다고 가정한 물체를 대상으로 온도와 빛의 관계를 풀이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흑체 복사에서 온도에 따라 빛이 나오는 정도를 계산해 보면 온도가 올라갈수록 높은 주파수를 띤 빛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는 결론이 나왔다. 온도를 조금만 올려도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주파수의 빛인 자외선이 막대한 양으로 쏟아지는 것이 그 시대 과학자들의 계산 결과였다. 만약 현실이 그대로 벌어졌다면, 사람이 높은 온도로 철을 달굴 때마다 거기서 강력한 자외선이나 X선이 마구 쏟아져서 그 빛을 맞고 모두 피부가 상하고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 구식 전등 역시 온도를 높여 가며 빛을 내는 구조로 되어 있었으므로 옛 과학자들의 계산대로라면 전등불의 전등만 켜도 거기서 엄청난 양의 자외선과 X선이 쏟아져 주변을 파괴했을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오류를 자외선 파탄(ultraviolet catastrophe)이라고들 불렀다. 52)<br>하지만 1900년, 플랑크는 놀라운 방법으로 자외선 파탄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빛이 세지고 약해지는 정도에 일정한 단계가 있다는 아주 이상한 생각을 계산 방법에 끼워 넣었다. 그 말은 빛의 양을 따질 때 어떤 최소의 단위가 있어서 빛 한 개, 빛 두 개라고 빛을 셀 수가 있다고 치고 계산을 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치고 계산해야만 뜨거운 물체가 빛을 내뿜을 때 어떤 색깔의 빛이 나오는지를 더 정확히 예상할 수 있었다. 플랑크는 이 이론의 특징이 어떤 양(quantity)을 작은 단위의 조각으로 단계별로 주고받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 양의 작은 단위를 퀀텀(quantum) 곧 양자라고 불렀다. 그 덕택에 이 이론의 이름은 양자 이론(quantum theory)이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양자 이론에 등장한 빛을 이루고 있는 가장 작은 빛 한 조각을 광자(photon)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러니까 빛과 빛을 이루고 있는 작은 조각인 광자가 과학자들이 생각한 첫 번째 양자 물질이고 퍼스트 퀀텀이다. 52-3)<br>플랑크는 정작 자신이 양자 이론을 개발해 놓고도 정말로 빛이 광자라는 작은 조각으로 되어 있다는 생각을 쉽사리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빛이 정말로 광자로 되어 있다는 듯한 증거는 계속해서 등장했다. 결국, 1920년대 중반이 되자 과학자들은 빛의 움직임과 빛이 지닌 힘을 계산하기 위해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계산 방법을 개발해야 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작은 알갱이의 움직임을 나타내면서도 그 알갱이의 속력이나 위치를 계산할 때는 부드러운 물결의 움직임이나 소리의 높낮이 또는 물체의 떨림을 계산할 때 쓰던 방식을 가져 와서 활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 방법은 아주 특이한 계산 방법이었다. 이런 계산 방법을 파동 함수(wave function)를 다루는 파동 방정식(wave equation)이라고 한다. 파동 함수로 양자 이론을 풀이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인물로는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에어빈 슈뢰딩거(Erwin Shrodinger)를 자주 꼽는다. 53-4)<br>• 글루온 gluon│원자력의 뿌리가 되는 강력의 운반자<br>우라늄이 강한 방사선을 내뿜는 원인을 살펴보면, 그 근본적인 원인은 강력(strong force)이라는 힘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강력의 간접 영향 때문이다. 가장 흔한 우라늄 원자 하나 속에는 그 중심의 핵 부분에 92개의 양성자와 146개의 중성자가 엉겨 붙어 있다. 그런데 아무리 핵력이 세다고 해도, 238개 중에 총 92개나 되는 양성자들이 계속 같은 양전기끼리 서로 밀어내려는 전기의 힘을 내뿜는다면, 가끔은 그 힘을 이겨 내지 못하고 쪼개져 떨어져 나올 수 있다. 이런 일이 정말로 생기면, 238개의 덩어리 중에서 일부가 떨어져 튕겨 나간다. 보통은 양성자 두 개와 중성자 두 개가 붙은 조그마한 조각이 튕겨 나온다. 그런 식으로 튀어나온 조각을 알파선(alpha ray)이라고 부르고 그것을 방사선의 일종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이렇게 알파선이 튀어나오는 현상을 알파 붕괴(alpha decay)라고 부른다. 이런 방사선은 C-14 같은 물질 속에서 중성자가 양성자로 바뀌며 내뿜는 방사선과는 성질이 매우 다르다. 61)<br>전기의 힘과 강력을 비교해 보면 그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전기에는 양전기와 음전기 두 가지가 있다. 그래서 양전기와 음전기는 서로 끌어당긴다. 반대로 같은 양전기끼리 또는 음전기끼리는 서로 밀어낸다. 이런 전기의 힘 덕택에 수많은 전기 현상이 일어나고 전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여러 물질의 서로 다른 성질을 만들어 낸다. 한무영은 전기처럼 무엇인가 두 가지 다른 것이 힘을 만드는 현상뿐 아니라 무엇인가 세 가지 특성이 어울려 힘을 만들 수가 있다면 그런 힘은 강력과 같이 아주 복잡하고 특이한 힘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냈다. 쿼크를 개발한 머리 겔만은 이 생각을 받아들여 그 세 가지 특성에 빨강(red), 초록(green), 파랑(blu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실제로 쿼크가 어떤 색깔로 보이느냐 하는 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색깔 이름을 딴 이런 쿼크의 성질을 그냥 색깔이라고 부르면 눈에 보이는 색깔과 헷갈릴 수도 있으므로 보통은 색전하(color charge)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65)<br>강력은 세 물체가 빨강, 초록, 파랑 세 가지 색전하를 각기 한 가지씩 갖고 있을 때 그 세 물체를 서로 연결해서 붙이는 힘이라는 것이 한무영의 이론이었다. 이런 독특한 성질이 있다고 치고 계산 방법을 만들면 강력이 일으키는 여러 특이한 현상을 훨씬 잘 풀이할 수 있었다. 강력이 쿼크를 잡아당기는 힘은 해괴하게도 가까울 때는 힘이 약해지고 멀리 떨어질수록 힘이 더 세질 때가 있다. 이런 성질을 점근적 자유도(asymptotic freedom)라고 부른다. 또 쿼크는 항상 둘씩, 셋씩, 여러 개가 붙어 있는 덩어리로만 발견될 뿐, 그 덩어리에서 쿼크 하나만을 따로 떼어내서 관찰하기는 어렵다. 이런 현상을 쿼크 속박(quark confinement)이라고 한다. 이런 것은 아주 특이한 현상이다. 전자나 광자는 그렇지 않다. 전자는 하나하나 분리되어 있는 상태가 기본이다. 광자 역시 광자 하나만 떨어져서 돌아다니는 일이 쉽게 발견된다. 그리고 이런 복잡한 강력의 영향 때문에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서로 당기는 힘인 핵력도 탄생한다. 66)<br>머리 겔만은 한무영의 연구를 받아들여 쿼크와 강력을 계산하는 방법을 다시 정리했다. 그리고 그 계산 방법에 직접 이름을 붙였다. 그는 강력 계산법은 색전하를 따지는 연구라고 해서 양자색역학(quantum chromodynamics, QCD)이라고 불렀다. 양자색역학이라는 계산 방법의 전체적인 방식을 살펴보면 그 전체적인 흐름은 전기의 힘을 계산할 때 쓰는 양자전기역학과 비슷하다. 즉 두 물체 사이에 힘이 있을 때 힘의 운반자가 그 두 물체 사이를 오고 간다고 치고 그 때문에 힘이 나타난다고 보면서 그 힘에 대한 계산을 해보는 방식이다. 전기의 힘을 따질 때 물체 사이를 오고 가면서 전기의 힘의 운반자가 된 것은 광자였다. 마찬가지로 양자색역학에서는 쿼크끼리 서로 글루온(gluon)이라는 운반자를 주고받는다고 치고 계산하면서 어디에 어떻게 강력이라는 힘이 얼마나 걸리는지를 알아낸다. 이때에도 물결치는 듯한 현상을 따지는 방법인 양자 이론을 적용한 방법을 사용한다. 67)<br>• 맵시 쿼크 charmquark│지금의 과학을 완성해 준 물질<br>양자장 이론은 모든 물체에 대해 그 물체를 나타내는 양자장이라고 하는 어떤 장(field)이 온 세상에 퍼져 있다고 생각하고 그 장의 움직임이 곧 물체에 일어나는 변화를 나타낸다고 보고 계산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양자장 이론에 따라 물결의 움직임을 막상 계산해 보려고 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때가 많다. 제대로 숫자를 계산할 수 없는 무한대가 자꾸 계산 과정에서 나오는 것은 양자장 이론의 고질적인 문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도저히 계산되지 않는 무한대 문제가 나올 때는, 대충 안 풀리는 부분은 적당히 제쳐 놓고 넘어간 뒤에 나중에 몇 가지 숫자들을 끼워 맞춰서 “아마 이럴 것이다”라고 계산할 수 없는 부분을 숫자 몇 개로 바꿔치기하는 요령까지 개발해야 했다. 일종의 편법이다. 이 편법 계산 요령을 재규격화(renormalization)라고 부른다. 전자와 광자의 움직임과 힘에 대해 계산을 할 때 재규격화 방법을 개발해서 어쨌든, 무엇인가 답이 나올 수 있게 한 것은 리처드 파인먼 최대의 공적이었다. 72-4)<br>약력(weak force)은 물질의 근본을 바꿔 주는 역할을 하는 아주 기이한 힘이다. 그래서 약력은 강력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방사능의 원인이 된다. 그런데 1970년대의 과학자들은 케이온이라는 물질이 약력 때문에 방사선을 내뿜는 현상을 연구하다가 무엇인가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렇게 연구한 결과를 흔히 김(GIM) 기작(mechanism)이라고 부른다. 김 기작을 연구하던 셸던 글래쇼(Sheldon Lee Glashow)는 김 기작을 좀 더 쉽고 간편하고 깨끗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머리 겔만과 한무영 등의 과학자들이 만든 쿼크에 대한 이론이 맞다고 해야 설명이 쉬워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추가로 그때까지는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쿼크가 하나 더 있으면 말이 정말 더 잘 맞아 들 거라고 보았다. 이때 글래쇼는 그 새로운 쿼크를 맵시(charm) 쿼크라고 불렀다. 글래쇼는 그때까지 아무도 정말로 그런 게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 새로운 쿼크인 맵시 쿼크가 발견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75)<br>게일러드, 이휘소, 그리고 연구에 도움을 준 또 다른 과학자 조너선 로스너(Jonathan Rosner)가 함께 쓴 논문이 바로 제목도 기가 막힌 &lt;Search for Charm&gt;이다. 1974년 상반기에 이 논문의 원고가 나오고 불과 몇 달이 지난 1974년 11월에 정말로 맵시 쿼크를 품고 있는 물질이 발견되어 버렸다. 팅(Ting)과 릭터(Richter)라는 과학자가 각기 따로 발견했는데, 팅은 그 물질에 제이(J)라는 이름을 붙였고, 릭터는 그 물질에 사이(psi)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과학계에서 말하는 11월 혁명이다. 혁명이라는 말은 너무 과장인 것 같기는 하지만 확실히 큰 사건이기는 하다. 단지 맵시 쿼크라는 새로운 물질이 나타났다는 그것보다 훨씬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것은 쿼크라는 것들로 세상의 보통 물체들 대부분이 이루어져 있다는 이론 전체가 맞다는 아주 기막힌 증거를 발견한 사건이었다. 덕택에 지금까지도 양자장 이론은 모든 물질과 힘을 설명하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기초 이론 역할을 하고 있다. 77-8)<br>• 뮤온 muon│하늘에서 떨어지는 방사선의 대표인 전자의 무거운 친척<br>뮤온은 1936년에 발견되었다. 그때는 과학자들이 온 세상은 모두 음전기를 띤 전자, 양전기를 띤 양성자, 전기가 없는 중성자라는 세 가지의 작디작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어서 음, 양, 중성의 조화가 있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전자도 아니고 양성자도 아니고 중성자도 아닌 뮤온이 난데없이 발견되어 그 순박한 믿음을 깨뜨려 주었다. 뮤온의 무게는 대략 180론토그램 정도인데, 전자의 무게는 약 0.9론토그램이고, 양성자나 중성자의 무게는 1700론토그램 정도다. 그러니 뮤온의 무게는 전자와 양성자 둘 사이의 애매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전자가 뭉쳐서 뮤온이 된다는 식으로 상상을 해 보자니 너무나 이상하게도 뮤온이 갖고 있는 음전기의 세기는 전자가 갖고 있는 음전기의 세기와 정확히 같았다. 전자와 음전기의 정도가 비슷한 것도 아니고 딱 맞춰 놓은 것처럼 전자의 음전기 세기보다 뮤온의 음전기 세기는 1%라도 더 세지도 더 약하지도 않게 똑같은 정도의 세기였다. 83-4)<br>뮤온은 보통 지구 하늘 높은 곳 즈음에서 생겨난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대부분의 뮤온은 우주 방사선 중에서도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온 우주 방사선의 영향을 받아 지구의 하늘에서 새로 생겨난 2차 우주 방사선 또는 3차 우주 방사선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늘에서 생겨나 떨어지는 뮤온의 속력은 무척 빠르다. 그렇게 빠른 속력으로 날아가는 물체를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뮤온은 빠르게 바닥으로 내려꽂힌다. 빠른 것은 시속 수천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속력으로 지상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나 빠르게 날아가기 때문에 뮤온은 다른 물체를 쉽게 꿰뚫고 통과한다. 뮤온은 같은 속력의 전자보다도 훨씬 더 물체를 잘 통과할 수 있다. 그리고 뮤온은 꼭 전자처럼 음전기를 띠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물체 속에 들어갔다가 그 물질 속에 있는 전기를 띤 성분 때문에 이끌리거나 밀리다 보면 날아가는 방향이 휘거나 속력이 늦춰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85)<br>어떻게 보면 뮤온은 방사능을 띤 전자 같은 물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뮤온은 항상 뮤온 상태로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뮤온은 방사선을 내뿜고 흔한 전자로 변해 버린다. 그렇기에 과학자들은 전자와 뮤온을 한 묶음으로 묶고, 그 둘이 양성자와 중성자보다 가벼운 물질이라는 뜻으로 가볍다는 뜻의 그리스어를 변형한 말인 렙톤(lepton)이라는 부류로 분류하고 있다. 한자어로 번역해 경입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도 전자와 뮤온은 경입자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기본 입자다. 그에 비해 양성자, 중성자 같은 물질은 무겁다는 뜻의 그리스어를 변형하여 바리온(baryon)이라는 이름을 붙여 부른다. 역시 한자어로 반영해 중입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중에 중입자로 분류했던 양성자, 중성자가 진정한 기본 입자가 아니고 쿼크 세 개의 조합으로 된 물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요즘에는 쿼크 세 개가 조합된 물질을 중입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88)<br>• 타우온 tauon│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전자의 더욱 무거운 친척<br>1975년 연말 무렵 마틴 펄(Marin Perl) 연구팀이 찾아낸 물질은 대단히 짧은 시간이 지나면 바로 방사선을 내뿜고 다른 물질로 변해 버리는 성질을 갖고 있었다. 마틴 펄이 찾아낸 물질의 수명은 300펨토초가 되지 않았다. 1펨토초는 1000조 분의 1초를 말한다. 그러니까 그가 찾아낸 물질은 태어난 뒤 30조 분의 1초가 지나면 그 사이에 삶을 다 살고 썩어서(decay) 사라져 버리며 다른 물질로 변하는 그런 물질이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세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물질에 대한 무엇인가 연구하고 살펴보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그런데 상대성 이론을 활용하면 한 가지 묘수가 생긴다. 만약 펄이 찾아낸 물질을 시간이 지연되는 세상에서 만들고 바깥 세상에서 이 물질을 관찰한다면 어떻게 보일까? 이 물질 입장에서는 여전히 30조 분의 1초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 흘러갔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바깥세상은 시간이 훨씬 빨리 흐른다. 반대로 말해 보면 그 물질의 세상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94)<br>다시 말해 관찰하려는 물질을 우주로 날아가는 우주선처럼 빠르게, 더 빠르게, 아주 빠르게 움직여서 시간 지연을 많이 일으키면 그 물질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은 더 늘어난다. 그리고 기본 입자들에 대해 실험하는 곳에서도 바로 이런 원리를 이용해서 굉장히 빠르게 물질이 움직이면서 벌어지는 현상을 조금 더 오래 세심히 살필 수 있다. 자주 벌어지는 현상 중에는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뮤온을 맞게 되는 이유도 사실은 상대성 이론과 시간 지연 효과 때문이다. 뮤온의 수명도 길지는 않다. 고작 2마이크로초, 그러니까 50만 분의 1초 정도다. 이 정도면 하늘 높은 곳에서 생긴 뮤온이 땅에 닿기도 전에 그 수명은 끝나버린다. 그런데 뮤온이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래서 실제로는 상대성 이론에 따라 뮤온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뮤온은 땅에 떨어질 때까지도 수명이 남아 있다. 그 때문에 우리 머리 위로 뮤온이 떨어져 닿게 된다. 95)<br>상세한 분석을 거쳐 펄이 발견한 것은 결국 새로운 기본 입자로 판명되었다. 그 이름은 타우온(tauon)이다. 뮤온, 그리고 전자를 뜻하는 일렉트론(electron)과 같은 운율이 되도록 타우(tau)라는 말을 변형해 만든 말이다. 그래서 타우온 대신 그냥 짧게 타우(tau)라고만 부를 때도 있다. 타우 경입자 또는 타우 렙톤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성질을 조사해 보니 타우온은 뮤온보다 무게는 훨씬 더 무거웠지만, 나머지 성질은 뮤온과 매우 비슷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뮤온과 성질이 비슷한 전자와 타우온의 성질도 비슷하다는 뜻이다. 뮤온이 그랬던 것처럼 타우온도 음전기를 띠고 있고, 그 음전기의 세기는 전자의 음전기 세기, 뮤온의 음전기 세기와 정확히 같다. 즉 전자, 뮤온, 타우온이 하나의 가문을 이루고 있는 느낌이다. 마침 방사능을 따질 때에서는 어머니(mother)와 딸(daughter)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타우온이 방사선을 내뿜고 뮤온으로 변했다면, 흔히 타우온을 어머니 입자, 뮤온을 딸 입자라고 부른다. 95)<br>• W 보손 wboson│베타 붕괴 방사능 물질의 원인인 약력의 운반자<br>돌 속의 K-40, 유물 속의 C-14가 뿜어내는 방사선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방사선의 성분이 전부 빠르게 튀어나오는 전자라는 것이다. 보통 방사능을 따질 때는 이렇게 나온 방사선을 베타선(β-Ray)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리고 물질이 베타선 즉 전자를 내뿜으며 변화하는 현상을 베타 붕괴(beta decay)라고 부른다. 원자핵 속에 있는 중성자는 위 쿼크 하나와 아래 쿼크 두 개로 되어 있다. 양성자는 위 쿼크 두 개와 아래 쿼크 하나로 되어 있다. 그러니 만약 중성자 속의 아래 쿼크 하나가 위 쿼크 하나로 바뀐다면 중성자는 양성자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생길 때 전자가 튀어나오는 것이 베타 붕괴다. 즉 무엇인가가 아래 쿼크 하나를 건드려서 위 쿼크로 바꿔 주는 현상이 일어나면 그 물질은 베타선이라는 방사선을 내뿜는다. 그렇게 아래 쿼크를 건드려 주는 힘이 무엇일까? 바로 그 힘을 우리는 약력(weak force)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약력이 원자 속을 건드리면 베타선이라는 방사선이 튀어나온다. 105-6)<br>보통 과학에서 말하는 가장 근원에 있는 힘들은 뭔가를 밀어내거나 끌어당기는 힘이 많다. 그러나 약력은 다르다. 약력은 뭘 밀거나 당기는 힘으로 우리 눈에 그 위력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약력은 그 대신 물질을 바꾸어 주는 일을 하면서 여러 현상을 일으킨다. 그것도 물질을 이루는 가장 밑바탕 재료라고 할 수 있는 작디작은 그 알갱이를 바꾼다. 이렇게 보면 약력은 기본 입자를 다른 기본 입자로 변신시키는 힘이다. 핵융합 자체는 강력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러나 핵융합이 일어나려면 그 전에 우선 양성자들이 아주 가깝게 달라붙어야 한다. 그때 약력이 필요하다. 약력이 양성자를 중성자로 바꾸어 준다면 전기가 없는 중성자는 그저 강력만 받아서 철썩 달라붙을 것이다. 중성자의 접착제 같은 역할을 잘 해내게 될 것이다. 약력의 활약 덕택에 양성자가 중성자로 바뀌어서 접착제 같은 중성자가 많이 생기면 훨씬 쉽게 원자들이 달라붙고 핵융합을 잘 일으킬 수 있다. 106-7)<br>양자장 이론에서는 힘이 있으면 항상 그 힘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는 운반자가 있다. 약력도 마찬가지다. 특이하게도 약력의 운반자는 두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베타 붕괴 등의 현상을 일으키는 운반자를 W 보손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약력 때문에 베타 붕괴나 다른 방사능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지 계산할 때에는 물질 사이에 W 보손이 오고 가며 힘을 전달한다고 치고 양자장 이론이라는 방법을 사용해서 계산하면 된다. 기본 입자 중에 보스 통계 방법으로 따져야 하는 물질을 보손(Boson)이라고 하고, 페르미 통계 방법으로 따져야 하는 물질을 페르미온(Fermion)이라고 부른다. 세상의 모든 기본 입자 중에 우리가 물체를 이루는 재료로 보고 있는 기본 입자들은 다들 페르미온이고, 물체 사이의 힘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는 운반자들은 보손이다. 그러므로 전자, 뮤온, 타우온, 각종 쿼크들이 페르미온이고 전기의 힘을 전달해 주는 광자, 강력의 힘을 전달해 주는 글루온 등이 보손이다. 107-8)<br>• Z 보손 zboson│전기를 띠지 않는 덜 눈에 뜨이는 약력의 운반자<br>원자는 크기가 작고 전자는 그 원자보다 더욱 작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원자나 전자도 마치 팽이처럼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듯한 성질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원자, 전자 따위의 작은 물체가 뱅뱅 돌아가는 듯한 현상을 스핀(spin)이라고 부른다. 전자 말고도 뮤온, 쿼크, 타우온, 글루온, 광자 모두 이런 현상을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관찰 결과 우젠슝의 연구팀은 Co-60이라는 코발트 원자에서 방사능 때문에 나오는 전자는 하나 같이 전부 왼쪽으로 도는 듯이 튀어 나온다는 기가 막힌 사실을 발견했다. 전기 장치를 이용해서 이런저런 실험을 해 보면 보통 전자들은 힘을 어디서 어떻게 받았느냐에 따라서 오른손잡이(right handed) 입자가 되기도 하고 왼손잡이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너무나 이상하게도 약력이 방사능 물질 속에서 베타 붕괴를 일으키며 전자를 튕겨 내서 날려 보낼 때는 마치 누가 일부러 왼쪽으로 전자를 돌리기라도 하는 듯이 왼손잡이 전자만 나온다. 113)<br>약력이 이 정도로 상식을 초월하는 괴이한 힘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그 힘이 언제, 어느 정도로 생기는지, 그 계산하는 방법을 개발해 내려고 노력했다. 연구 결과로 얻은 결론은 힘을 전달하는 운반자가 실제로 혼자서 나타나게 된다면 무척 무거운 무게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약력을 전달하는 운반자를 발견한다면 그 무게는 매우 무거울 것이다. 결코 풀리지 않을 복잡한 문제의 마지막 고비를 넘도록 해 준 것은 한참 나중에 다시 한번 큰 화제가 되었던 물질인 힉스(Higgs) 입자(particle)였다. 그러니까 일단 약력 이론도 원래는 전자기력이나 강력처럼 무게가 없는 운반자가 힘을 전달해 주는 그런대로 평범한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힉스 입자라는 또 다른 새로운 물질이 한번 추가로 더 관여하는 덕택에 약력을 나타내는 양자장이 그 영향을 받는다. 그 힉스 입자가 미치는 영향 덕분에 약력을 전달하는 운반자는 무거워진다. 이런 복합적인 이론이 마지막 결과물이었다. 114-5)<br>이렇게 개발된 약력 이론에는 또 다른 놀라운 특징도 있었다. 이들이 만든 이 복잡한 이론이 약력과 전자기력은 사실 하나로 연결되어 통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돌아볼수록 더욱 놀라운 결과다.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많이 다루어 보았고 가장 자주 일상생활 문제와 연관되는 힘인 전자기력이 반대로 힘 중에서 가장 이상하고 가장 특이해 보이는 약력과 알고 보면 같은 힘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통합된 전약력 이론에 따르면, 전약력과 관련이 있는 힘을 전달하는 입자는 결국 총 네 가지로 나타나게 된다. 그 네 가지는 양전기를 띤 W 보손, 음전기를 띤 W 보손, Z 보손, 광자다. 이 중에서 친숙한 광자는 전자기력을 전달하는 운반자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남은 W 보손 두 가지와 Z 보손이 우리가 보통 약력이라고 부르는 힘의 운반자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그 중에서도 W 보손들은 베타 붕괴 등과 같이 그 전부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약력을 전달하는 입자다. 117)<br>1970년대 유럽 과학자들이 만든 가가멜(Gargamelle)은 자동차쯤 되는 크기의 쇠로 된 단단한 통처럼 생겼다. 거기에 기체를 가득 채워 놓는데 아주 높은 압력으로 꾹꾹 눌러 담아 그 기체가 액체로 변할 정도로 꽉 채워 두되 아주 살짝만 건드리면 바로 다시 끓어 올라 기체가 될 정도로 눌러 담아 둔다. 만약 가가멜 속에 아주 작은 알갱이로 된 물질이 하나라도 날아들어 온다면 그것이 그 속의 액체를 살짝 건드릴 것이다. 그러면 그 충격으로 그 주변이 조금 끓어 오른다. 그러면 그 끓어 오른 자국이 아주 미세한 거품 비슷하게 변할 것이다. 그 거품은 사진으로 촬영하면 찍혀 나올 정도로 보인다.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장치를 거품 상자(bubble chamber)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가가멜은 거대한 거품 상자였다. 1970년대 초가 되어 가가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후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과학자들은 이곳에서 약력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W 보손이 일으키는 현상과는 다른 특이한 반응을 찾아내려고 했다. 118-9)<br>그 당시에는 Z 보손이 전기를 띠고 있지 않은 중성이라고 하여 중성류(neutral current) 현상이라고 불렀다. 결국, 1973년 가가멜에서 세계 최초로 중성류 현상이 발견되었다. 그 말은 Z 보손이 정말로 세상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였다. 만화 속 가가멜은 작은 스머프를 못 잡았지만 가가멜 실험 장치는 그 작은 Z 보손의 흔적을 찾아냈다. 그렇다면 그것은 Z 보손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그 많은 과학자들이 겹겹이 이론을 쌓아 만든 그 복합적인 약력 계산 방법 역시 정말로 사실과 부합한다는 뜻이었다. 1983년에는 아예 Z 보손이라는 운반자가 그 자체로 따로 튀어나와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명확히 찾아내기까지 했다. 역시 W 보손을 발견한 유럽 과학자들이 해낸 일이었다. 중성류 현상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유령 같은 물질이라고 부르던 흐느끼듯이 우리 주위를 스쳐 지나다니는 물질의 움직임을&nbsp; 추적해서 찾아내야만 했다. 그러니까 과학자들은 유령 입자(ghost particle)를 사냥해야 했다. 119)<br>• 중성미자 neutrino│가까이 있지만 너무나 느끼기 힘든 아주 흐릿한 물질<br>반물질(antimatter)은 단순히 희귀할 뿐만 아니라 쓸모도 많고 찾는 사람도 많은 물질이다. 어림짐작으로 계산해 보면, 단 0.1그램의 반물질만 있어도 거기서 나오는 빛을 전기로 다 바꾸면 대한민국의 모든 건물, 가게, 공장 등등에서 온종일 사용하는 양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하다. 우주 전체에서 같은 무게의 재료를 사용해 그보다 더 강한 빛을 내뿜을 방법은 이론상 없다. 어떤 원료를 쓰든 간에 가장 강한 빛을 만들 방법은 반물질을 쓰는 것이다. 반물질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반물질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빛은 더욱더 많아진다. 그렇게 빛을 뿜어내고 나면 반물질은 완전하고도 깨끗하게 사라진다. 그래서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불타고 나서 잿더미가 남는 것 같은 현상조차 없다. 연기나 냄새가 남는 일도 없다. 그저 빛 이외에 모든 것이 완벽히 없어져 버린다. 이렇게 반물질이 그 짝이 되는 보통 물질과 닿으면 빛을 내뿜으면서 완벽하게 사라지는 현상을 쌍소멸(pair annihilation)이라고 부른다. 121)<br>1930년대 과학자들은 베타 붕괴에서 발생하는 방사선인 전자가 튀어나올 때 과연 어느 정도로 맹렬히 튀어나오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베타 붕괴 때 전자가 튀어나오는 속력은 이상하게도 그때그때 달랐다. 아무 이유 없이 전자의 속력이 달라진다는 것은 에너지 보존 법칙(law of energy conservation) 위반이다. 결국 파울리는 이 정체불명의 물질이 뭔지는 모르지만 베타 붕괴 때 같이 튀어나오고 그 물질이 오류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이상한 설명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 정체불명의 물질이 뭔지 모르는 이유는 그 물질이 전기를 전혀 띠고 있지 않아 전자 장비로 발견하기가 어렵고 무게도 너무나 가볍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나중에 엔리코 페르미는 그런 특징을 강조해서 그 물질에 이름을 붙이려고 했고, 그래서 중성을 띤 입자를 뜻하는 말 뉴트론(neutron)을 이탈리아식으로 변형해 뉴트리노(neutrino)라는 말을 만들었다. 이것을 한자어로 번역해서 부르는 말이 중성미자다. 123-4)<br>중성미자는 너무나 가볍고 전기도 전혀 띠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에도 걸릴 것 없이 아무 물질이나 휙휙 통과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한번 튀어나온 중성미자는 벽을 통과해 그냥 바깥으로 쭉쭉 날아가고 그러다 산에 부딪히면 산도 그냥 통과해 날아간다. 벽이나 사람을 스르륵 통과하는 영화 속의 유령보다도 중성미자는 훨씬 더 물체를 잘 통과하는 유령 입자다. 중성미자가 어찌나 물체를 잘 통과하는지, 중성미자가 바닥 방향으로 날아가면 땅을 통과해 지구를 통째로 지나친 뒤 지구 반대편 땅 밖으로 튀어나와 다시 하늘로, 더 나아가 우주로 날아가는 일도 너무나 흔하다. 중성미자는 전기의 힘과도 상관이 없고 강력과도 상관없다. 그나마 중성미자는 약력과 반응한다. 그런데 약력은 오른쪽과 왼쪽을 따지는 이상한 성질이 있어서 왼손잡이 물질에만 힘을 준다. 그렇다면 보통 베타 붕괴에서 생겨 나는 중성미자는 그냥 중성미자가 아니라 중성미자의 반대인, 반물질 중성미자, 곧 반중성미자(antineutrino)일 것이다. 125)<br>• 뮤온 중성미자 muonneutrino│블랙홀 쪽에서 날아온 중성미자<br>중성미자는 아무 물질이나 잘 통과하면서 무게도 너무나 가벼워 굉장한 속력으로 우주를 얼마든지 날아다닐 수 있다. 그렇기에 중성미자는 별들 사이의 광막한 공간조차 건너다닐 수 있다. 중성미자 외에 이런 물질은 드물다. 별에서 나온 중성미자는 심지어 별빛보다도 더 쉽게 우주를 건너올 수 있다. 빛은 물체에 가로막히기도 하고 반사되거나 휘어지며 방향이 바뀌는 일도 흔히 겪는다. 그러나 중성미자는 그런 일을 거의 겪지 않고 그냥 어지간한 물체면 다 통과해서 계속 날아간다. 태양에서 오는 중성미자를 측정한 과학자들은 측정이 거듭될수록 생각보다 적은 숫자의 중성미자가 감지된다는 결과를 얻어 이상하게 생각했다. 면밀한 검토 끝에 그저 기술 부족으로 단순히 중성미자를 놓친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엇인가 중성미자를 사라지게 하는 원인이 있었다. 그 답은 중성미자가 한 가지가 아니며 여러 가지이고 서로 간에 변화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이었다. 134-5)<br>그래서 전자와 비슷하지만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물질로 뮤온, 타우온이 있듯이, 중성미자도 비슷하게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결론이었다. 중성미자가 날아다니면서 이런 식으로 전자 중성미자, 뮤온 중성미자, 타우온 중성미자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자꾸 바뀌는 모습은 언뜻 진자가 왔다 갔다 변화하는 것 같다고 해서 이 현상을 학계에서는 중성미자 진동(neutrino oscillation)이라고 부른다. 지금까지도 중성미자 진동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모르는 내용이 많고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꺼림칙한 대목이 많다. 왜, 무엇 때문에, 어떻게 중성미자가 자꾸 변신하느냐에 대해서도 모두가 즐겁게 공감할 수 있는 산뜻한 설명은 지금도 없다. 예를 들어, 중성미자가 세 가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면 그때마다 그 무게가 달라질 거라는 생각을 쉽게 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아직 전자 중성미자, 뮤온 중성미자, 타우온 중성미자 각각의 무게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136-7)&nbsp;<br>• 타우온 중성미자 tauonneutrino│예전 한때 암흑물질의 후보<br>루빈과 루빈의 동료인 켄트 포드(Kent Ford)가 정리한 결과에 따르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은하의 가장자리 부분이 돌아가는 속력이 이상하게 너무 빨라 보였다. 꼭 무슨 알 수 없는 무게가 더 실려 있는 듯한 모습으로 은하가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1970년대 후반부터 사람들은 세상에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물질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암흑물질은 단지 색깔이 없는 물질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적외선, 전파, 레이더를 이용한 관찰 등등 모든 빛, 전기, 자기의 힘과 관련된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 말은 암흑물질은 만질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암흑물질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기란 더욱 어렵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암흑물질의 양을 추산해 보니 그 양이 오히려 보통 물질보다도 더 많다는 사실이었다. 우주의 물질 중 85%는 정체불명의 암흑물질이다. 그게 무엇인지, 어디에서 와서,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141-2)<br>중성미자는 모든 물체를 아주 잘 통과해 지나간다. 그리고 빛, 전기와는 반응하지 않고 약력에 반응한다. 그러므로 중성미자는 눈에 보이지 않고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으며 감지하기가 어렵다. 그 말은 중성미자의 양이 굉장히 많고 무게도 무거워서 우주 곳곳에 가득 차 있어도 잘 감지는 안 될 거라는 뜻이다. 그러니 중성미자의 양이 많으면 암흑물질의 묵직한 무게를 충분히 나타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침 타우온은 전자에 비해 3,500배나 무거운 물질이다. 그렇다면 타우온 중성미자가 의외로 좀 무게가 많이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까지는 타우온 중성미자 역시 무게가 별로 무겁지는 않다는 것이 대부분의 연구에서 나온 결론이다. 지금도 중성미자를 연구해서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히려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여전히 있다. 예를 들어 (심지어 약력에도 반응하지 않는) 비활성 중성미자(sterile neutrino)라고 하는 새로운 중성미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있다. 144-5)<br>• 꼭대기 쿼크 topquark│가장 무겁고 불안해서 관찰해볼 만한 물질<br>양자 이론에서는 결과가 처음부터 과거에 결정된 것이 아니라 내가 확인하는 순간 결정된다고 봐야 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그리고 그 문제가 가장 이상하게 느껴지는 상황이 바로 ‘양자 얽힘’이라는 상황이다. 두 개의 경우의 수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과학에서는 얽힘(entanglement) 상태라고 한다. 1론토그램도 안 되는 아주 작은 크기의 패를 나눠 가진 두 명의 도박꾼이 그 패를 들춰보지도 않고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도 않고 그대로 자기 집으로 온다고 생각해보자. 양자 이론에서는 이런 경우, 그 패를 어느 한 사람이 들춰보기 전까지는 누가 승리인지 패배인지는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아무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결정된 일은 없다는 것이 양자 이론의 계산 방식이다. 이것을 양자 이론에서는 중첩(superposition)이 있었다가 중첩이 없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즉 승리 패와 패배 패, 한쪽이라고 말할 수 없는 중첩된 상태에 있다가 확인해 보는 순간 중첩이 사라지고 승리 패로 붕괴되었다고 말한다. 150-1)<br>그런데 여기서 가장 결정적인 기묘함은 따로 있다. 만약 패를 들춰 보는 순간에 승리와 패배가 결정된다면 내가 승리 패를 뽑은 순간, 상대방 패는 패배 패가 되도록 무엇인가가 상대방 패를 동시에 같이 결정해 주어야 한다. 내가 승리 패인 것을 확인했는데, 상대방도 패를 들춰 봤더니 역시 승리 패라고 나와서는 안 된다. 내가 승리 패인 것을 확인한 순간, 상대방 패는 패배 패가 나와야만 한다. 그렇다고 미리부터 나는 승리 패, 상대방은 패배 패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확인하는 순간이 되기 전까지는 승리와 패배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양자 이론의 원칙에 어긋난다. 그런 것은 중첩 상태가 아니다. 내 패가 승리냐 패배냐 하는 문제는 내가 관측하기 전까지는 정해져 있지 않고 관측할 때 정해진다고 보는 것이 양자 이론의 중첩이다. 이 문제를 논문으로 써서 지적한 과학자들의 이름 약자를 따서 이것을 흔히 EPR 역설(EPR Paradox)라고 부른다. 151-2)<br>EPR 역설에서는 빛보다 빠른 무엇인가가 있을 수 없다는 상대성 이론의 위반부터가 당장 큰 문제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큰 문제는 도대체 뭐가 있길래 어떻게 이런 일을 일으키느냐 하는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상대방의 패를 정해 준단 말인가? 그것도 빛보다 조금 더 빠른 정도가 아니라 무한히 빠른 속도로 즉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이 예로부터 수많은 과학자가 뼈저린 껄끄러움을 느꼈다는 양자 얽힘 문제다. 명확히 관찰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양자 얽힘은 여러 물질이 다양한 반응을 일으킬 때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마치 내가 승리 패를 잡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패를 나누어 가지는 때에 영향을 미치는 듯한 현상이라고 볼 만도 하다. 이런 일은 시간 여행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일이라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고 원인이 결과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결과가 원인을 바꾸는 것 같기도 하다. 152)<br>꼭대기 쿼크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기본 입자 중에서 가장 무겁고 덩치가 큰 물질이다. 꼭대기 쿼크의 무게는 하나에 30만 론토그램 정도다. 전자 하나 무게와 비교해 보면 꼭대기 쿼크는 35만 배나 무겁다. 쿼크들 대부분은 1970년대에 발견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꼭대기 쿼크는 너무나 무겁고 찾기 어려워서 1995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발견된 거대한 꼭대기 쿼크에서도 양자 얽힘 현상은 어김없이 잘 관찰되었다. 꼭대기 쿼크가 갖고 있는 또 다른 특징은 나타나자마자 대단히 짧은 시간이 지나면 바로 방사선을 내뿜으며 다른 물질로 변화해버리는 물질이라는 점이다. 꼭대기 쿼크의 수명은 대략 1조 분의 1초를 다시 2조 등분한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그래서 꼭대기 쿼크는 다른 물질들과 잡다하게 들러붙거나 반응하는 일이 거의 생기지 않는다. 그 덕택에 꼭대기 쿼크를 잘 관찰하면, 쿼크가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어떤 성질을 가졌는지도 좀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156-7)<br>• 바닥 쿼크 bottomquark│대형 입자 가속기를 만들어 자주 살펴보던 물질<br>LHC는 대형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의 약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그리고 이 장치가 하는 일은 지상에서 우리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아주 작은 물질을 이런 우주 방사선 같이 빠르게 날아가도록 쏘는 것이다. 대형 강입자 충돌기라는 말에서 강입자는 하드론(hadron)을 번역한 단어로, 쿼크 여러 개가 붙어 있는 물질을 말한다. 우주 방사선 중에 흔히 잘 감지되는 것도 양성자이고 양성자는 쿼크 세 개가 붙어 있는 것이므로 역시 강입자라고 할 수 있다. 보통 LHC 같은 장비를 입자 가속기(particle accelerator)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입자 가속기는 전기를 띤 아주 작은 물질 알갱이를 전기의 힘과 자력을 이용해 빠르게 날려 주는 장치다. 사상 최대의 입자 가속기인 CERN의 LHC 역시 바로 이런 원리로 동작한다. 그래서 LHC에서는 양전기를 띠고 있는 양성자를 실험 대상으로 사용하고 그 양성자가 날아가도록 가능한 한 강한 힘을 실어 주기 위해 그렇게나 많은 전기를 사용한다. 160, 162)&nbsp;<br>바닥 쿼크의 발견은 1970년대 중반 스탠퍼드 선형 가속기 센터(SLAC, Stanford Linear Accelerator Center)에서 타우온이 발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얻은 성과였다. 그러니까 전자와 거의 같은 물질로 전자보다 좀 더 무거운 뮤온이 있고 그보다 더 무거운 타우온이 있어서 전자-뮤온-타우온 세 가지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마침 쿼크들 중에서도 아래 쿼크가 있고 그것과 거의 비슷하지만 그보다 좀 더 무거운 기묘 쿼크가 있고 그보다 더 무거운 바닥 쿼크가 발견되어, 아래 쿼크-기묘 쿼크-바닥 쿼크 세 가지가 있다는 결과였다. 딱딱 짝이 맞았다. 박자가 들어맞는 것 같은 3단계 구성이 두 벌&nbsp; 관찰 되었다. 타우온에 이어 바닥 쿼크가 발견된 것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들이 대체로 세 벌씩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아주 좋은 정황 증거였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두고 3개의 세대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런 결과가 나중에 추가로 관찰되기도 했다. 그래서 아귀가 딱 들어맞게 되었다. 166)<br>• 힉스 입자 higgs│기본 입자들이 무게를 갖게 해 주는 것<br># 현재까지 밝혀낸 우주의 재료1. 4가지 물질 재료 : 음전기 쿼크, 양전기 쿼크, 음전기 경입자, 전기를 띠지 않는 경입자2. 4가지 물질재료를 구성하는 3가지 기본입자 : 음전기 쿼크(아래 쿼크, 기묘 쿼크, 바닥 쿼크), 양전기 쿼크(위 쿼크, 맵시 쿼크, 꼭대기 쿼크), 음전기 경입자(전자, 뮤온, 타우온), 전기를 띠지 않는 경입자(중성미자, 뮤온 중성미자, 타우온 중성미자)3. 힘의 운반자 역할을 하는 4가지 기본입자 : 광자, 글루온, W 보손, Z 보손<br>바로 이 12가지 물질 재료 기본 입자들과 4가지 힘 운반자 기본 입자들이 어떻게 서로 반응하는지를 따져서 우주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을 현대 과학의 표준 모형(standard model)이라고 부른다. 과학에서는 우주의 모든 일을 일으키는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 네 가지 힘밖에 없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중력은 지금의 표준 모형이 다루지 못하고 있는 대상이다. 이래서야 표준 모형이 우주 모든 물질을 다루는 표준 이론이라고 말하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일이 이렇게 된 이유는 중력을 계산할 때 쓰는 일반 상대성 이론이라는 방법에 양자 이론을 적용해서 풀이하기 위한 좋은 방법을 아직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자기력, 강력, 약력, 나머지 세 가지 힘은 모두 양자 이론에 바탕을 두고 계산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양자 이론으로 풀이해 보려는 시도는 도전이 시작된 지 거의 100년이 다 되어 가고 있는데 아직도 깨끗한 답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171-2)<br>전자기력의 운반자가 광자이고 강력의 운반자가 글루온이듯이 중력을 전달하는 운반자 역할을 하는 기본 입자에 중력자 혹은 그래비톤(graviton)라는 이름을 붙여 놓기는 했다. 중력자가 중력의 운반자라고 보고 양자장 이론을 개발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도 많다. 그렇지만 중력자를 발견한 사람도 없고 중력자에 대해 명확히 확인된 사실도 없다. 그렇기에 다른 힘과는 달리 중력이 얼마나 센지, 약한지를 계산해 보고 싶을 때에는 양자 이론으로 만든 양자장 이론이라는 방식을 쓸 수가 없다. 중력의 운반자가 오고 가는 모습을 물결과 떨림, 소리를 나타내는 기술을 이용하여 계산하는 그 우아하고도 절묘한 방식을 쓸 수가 없다는 뜻이다. 상대성 이론의 내용 중에서 특수 상대성 이론만 하더라도 양자 이론과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자재로 결합되어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도 중력을 계산할 때 쓰는 일반 상대성 이론은 양자 이론으로 풀이가 되지 않는다. 172)<br>힉스 입자는 표준 모형에 나오는 다른 물질들이 무게를 갖도록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힉스 입자가 없다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물질의 재료들이 무게를 갖지 못하여 빛과 비슷한 상태가 될 것이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힉스 입자를 나타낼 수 있는 힉스장(Higgs field)이라고 하는 억겁의 바다를 채운 바닷물 비슷한 것이 온 우주에 가득 차 이리저리 일렁이고 있다. 양자장 이론에서 말하는 다른 기본 입자들의 양자장과도 비슷하다. 만약 힉스장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물질이 있다면 그럴수록 그 물질은 무거운 무게를 갖게 된다. 반대로 힉스장의 영향을 약하게 받는 물질이 있다면 그 물질은 가벼워진다. 즉 질량이 작게 나타난다. 만약 힉스장이 저 혼자 소용돌이치고 휘몰아치면서 어느 위치에 특히 강한 모습을 나타낸다면 그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물질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런 현상이 일어나 그 물질이 관찰되면 그것이 바로 힉스 입자다. 175)&nbsp;<br>2012년 7월 4일 드디어 CERN에서 공식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CERN의 과학자들은 125기가 일렉트론볼트 정도의 에너지를 갖는 새로운 입자가 있다는 증거를 찾았다면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새로 나타난 낯선 입자의 무게가 22만 5천 론토그램 정도 된다는 뜻이었다. 유럽 CERN의 LEP 실험에서 힉스 입자를 못 찾고 미국 페르미 연구소에서 힉스 입자를 못 찾았던 딱 그 사이의 무게였다. 여길 봐도 없고 저길 봐도 없었던 힉스 입자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후 수년간 이어진 후속 연구를 통해 세상 모든 물질의 재료인 열두 가지 기본 입자들은 그 움직임을 억겁의 바다에 일어나는 물결이나 소용돌이를 표현하는 것과 비슷한 양자장 이론이라는 방법으로 계산할 수 있고 그 물질들을 움직이는 힘은 4가지 운반자를 주고받는다고 치고 계산할 수 있다는 우리의 생각은 적어도 아직은 틀린 점이 없고 잘 들어맞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것이 대체로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 178-9)<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07/56/cover150/e14263542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4075681</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간식</category><title>급진의 20대 / 김내훈 - [급진의 20대 - K-포퓰리즘, 가장 위태로운 세대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45289</link><pubDate>Thu, 12 Mar 2026 07: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452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342539820&TPaperId=171452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852/10/coveroff/e34253982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342539820&TPaperId=171452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급진의 20대 - K-포퓰리즘, 가장 위태로운 세대의</a><br/>김내훈 지음 / 서해문집 / 2022년 02월<br/></td></tr></table><br/>프롤로그: 20대 현상, 렌즈를 바꾸자<br>이 책은 ‘20대 현상’이란 무엇이며 이것을 어떻게 사고할 것인지, 그 해답을 찾는 것을 일차 목표로 한다. 기존의 담론은 공론장에 새롭게 등장한 의제들 — 페미니즘 및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 — 에 20대 남성들이 보이는 일련의 반동을 ‘이대남 현상’으로 규정한다. 미디어와 정치권은 20대 남성의 돌출된 경향을 뚜렷한 근거 없이 20대 전반의 것으로 일반화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젠더갈등에 편승하는 모순적인 행보를 보인다. 특별히 상기해야 할 것이 있다. 페미니즘을 제외한 정부·여당발 의제에서, 20대 여성들의 입장과 태도가 남성들과 크게 다르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20대 현상’에서 젠더갈등-차이를 사고하려 할 때 발생하는 혼란은 ‘이대남 현상’의 렌즈로 20대의 보편적 여론을 검토하는 한 피할 수 없다. ‘20대 현상’을 먼저 경유해 ‘이대남 현상’을 사고해야 한다. 그렇다면 ‘20대 현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렌즈는 무엇일까? 바로 포퓰리즘Populism이다. 12)<br>1. 만들어진 세대 ？ 20년간의 롤러코스터<br>뇌는 인간이 보는 것을 능동적 추론으로 다시 구성해낸다. 요컨대 우리의 시각 경험은 눈이 아니라 뇌에서 일어난다. 촉각, 청각, 후각도 마찬가지다. 뇌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David Eagleman은 이렇게 설명한다. “당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광경, 소리, 냄새)은 직접 경험이 아니라 캄캄한 극장 안에서 펼쳐지는 전기화학적 연극이다. (…) 다양한 감각기관에서 들어오는 신호들을 비교하고 패턴을 감지함으로써 뇌는 ‘바깥세상’에 무엇이 있는지 최선의 추측을 한다.” 여기서 ‘최선의 추측’ 메커니즘이 바로 가추법적abduction 추론이다.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무엇을 지각하는 간단한 행위에도 다분히 능동적인 주관이 개입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결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사물을 구성하는 원자핵과 전자 사이는 텅 빈 공간이지만 우리는 눈에 비치는 사물이 딱딱하고 고정된 물체라고 믿는다. 요컨대 우리가 사물을 사물로 보는 것은 착시나 환각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늘 이러한 환각 속에 산다. 17)<br>공정을 지선至善으로 삼는 것도 아닌데 90년대생들이 그토록 공정을 문제 삼는 까닭은 무엇일까? 임명묵은 90년대생들이 말하는 공정을 정서적인 것, 느낌의 문제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90년대생들이 말하는 공정이란 ‘공정하다는 감각’이다. 이 감각은 일종의 해열제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불안감을 경감해주는 것이다. 현재는 노력하면 보상이 따라오고, 잘살 수 있다는 신화가 깨진 상태다. 남은 것은 덜 노력한 이에 대한 응징이다. 점수가 낮은 사람에게,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에게 응분의 푸대접이 가해지는 것만큼은 확실해야 한다는 게 90년대생 사이의 암묵적 합의다. 이들이 보기에 고용에서의 각종 할당제,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정규직화는 주관적 개입으로 시스템을 교란하는 것이며, 합의와 신뢰를 깨트리는 행위다. 90년대생들이 탈-가치화함으로써, 정작 90년대생들의 지향점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결집은 반反, 안티anti의 네트워크로만 이루어진다. 24-5)<br>〈KBS 세대인식 집중조사〉(2021)에서 중요하게 검토할 지점은 청년층은 상위 계층을 자임할수록 보수성이 뚜렷해진다는 사실이다. 덧붙여 스스로를 가장 낮은 계층으로 인식한 청년 남성에서 다른 집단들보다 ‘기회가 되면 내 것을 나눠 타인을 도울’ 경향이 가장 높다는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그들이 특별히 ‘착해서’ 그렇다기보다 서로 도울수록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상위 계층일수록 내 것을 나눠 타인을 돕는 행위, 혹은 그러한 의향을 밝히는 것을 위선으로 간주한다. 그들의 생각에,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은 노력을 덜한 사람들이다. 그에 합당한 응징을 받는 것이며, 이에 온정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시스템의 교란이자 위선이다. 조사에 응한 청년 남성들은 일말의 공동체적 가치도 부정한다는 눈총을 받을지언정 위선에만큼은 명확하게 거부 표시를 한 것이다. ‘안티의 네트워크’로 결집한 청년 남성 집단이 반-위선의 네트워크도 견고하게 형성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7)<br>2. 혐오 ？ 우울과 불안의 그릇된 방어기제<br>우리가 감정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뇌의 해석이자 추론 결과다. 코나투스conatus(자기보존 능력)가 계속해서 감소하는 상태를, 뇌는 으레 우울감이라고 추론한다(질병으로서 우울증을 말하는 게 아니다). 불안감은 자신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코나투스를 감소시키는) 존재가 명확하지 않은 채로 그 상태가 지속될 때 생성된다. 이런 우울과 불안에 대한 신체적 반응이 경멸이다. 자신보다 형편이 나쁜 사람을 깎아내리면서 위안하는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발현된 경멸은 깎아내릴 대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또는 나의 코나투스를 감소시키는 외부 존재를 자의적으로 점찍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혐오다. 그런데 (방어기제로써의) 경멸은 대개 사회적 약자·소수자를 겨냥한다. 문제를 의인화하는 대상 역시 마찬가지다. 그편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내부 모델에 견고히 자리 잡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 뒤부터는 깨지기 힘든 고정관념과 편견이 타인을 대하는 판단 근거가 된다. 33)<br>혐오의 견고한 내부 모델을 구축한 사람은 편견을 반증하는 새로운 지각정보가 입력되어도 좀처럼 오류를 수정하지 않는다. 반례를 한 트럭으로 접해도 예외적 경우로 치부하지, 편견을 반성하는 이는 드물다.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고, 다양성 교육을 진행하는 데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성혐오에 빠진 사람에게 그 불합리함을 증명하는 온갖 데이터는 부질없는 처방이다. 난민이나 이주민을 혐오하는 사람에게, 그들이 주장하는 범죄 통계가 거짓이라고 설득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어떻게든 혐오할 이유를 다시 찾고 만들게 되어 있다. 교육의 가치와 효용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훈계와 계몽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혐오는 일종의 방어기제다. 신경증 환자에게 곧이곧대로 ‘당신의 행동은 그릇된 방어기제에 불과하다. 현실을 직시하고 언행을 고쳐야 한다’고 이야기해주는 것만으로 증세가 나아지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34)<br>3. 포퓰리즘 ？ ‘그들’과 ‘우리’의 항시적 투쟁<br>포퓰리즘은 어떤 사상 체계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며, 정치운동이나 정치체제가 아니다. “보통 이들을 포괄하지만, 동시에 이들을 단순히 합쳐놓은 것도 아니다.” 정치학자 폴 태가트Paul Taggart는 포퓰리즘의 근본적 특징으로 유동성을 꼽는다. 실체라고 부를 내용이 결여되어 있기에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회주의 등에 붙어서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포퓰리즘은 일반적으로 인민주의, 대중주의, 민중주의 등으로 번역된다. 풀이하면 인민을 중심으로, 인민을 위하고 인민에게 소구하는 사상·체제·어젠다·메시지를 망라하는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포퓰리스트는 단 하나의 가치를 정해두고 그에 걸맞지 않은 이는 인민이 아닌 존재로 밀어낸다. 인민이 아닌 존재는 부패한 엘리트 집단일 수도, 하층민일 수도, 이주민일 수도 있다. 단 하나의 공동선이 존재하고 그걸 표방하는 자신들만이 인민의 유일한 대표라고 주장하는 포퓰리스트들은 자연히 다른 세력을 악마화한다. 자신의 당내에서조차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다. 40-1)<br>포퓰리즘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그러나 포퓰리즘이 민주주의 혹은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적대하는 것은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포퓰리즘’이라는 명제는 포퓰리즘이 항상 민주주의와 함께 있다는 논의에서 출발한다. 정치학자 벤저민 아르디티Benjamin Arditi는 프로이트의 증상symptom 개념을 빌려와 포퓰리즘-민주주의 관계를 증상-자아 관계와 같다고 주장한다. 자아가 완전하지 않은 채 무언가를 결여하고, 무언가에 억압되어 있는 한, 증상은 자아에 내속해 있으면서 이따금 불안과 소요를 일으킨다. 마찬가지로 포퓰리즘도 민주주의에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내재하면서 이따금 증상으로 나타난다. 현대 민주주의는 일상적으로는 정치인과 관료 등에 위임되어 있다. 그런데 인민은 대표를 직접 뽑는 선거를 통해 주기적으로 이에 개입한다. 이렇듯 오늘날의 대의민주주의는 비전문가·대중의 개입이 일으키는 소요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에 항상 내재한다고 할 수 있다. 42-3)<br>4. 낡은 것은 가고, 새로운 것은 오지 않은 ？ 포퓰리즘의 정치경제적 계기<br>자본주의가 발전한 20세기 이후 프티 부르주아는 신·구-중간계급(각각 경영관리직·전문기술직 등과 자영농)으로 나뉜다. 노동자라 할지라도 관리직이나 전문기술직에 종사할 경우 신-중간계급으로 분류된다. 정치철학자 니코스 풀란차스Nicos Poulantzas는 비생산적 노동자와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모두 중간계급으로 묶은 바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구-중간계급이 크게 감소하고 노동계급이 증가했다. 문제는 노동계급의 숫자보다는 신-중간계급의 가파른 증가에 있다. 풀란차스의 계급 범주에 따르면 후기산업사회에서 노동계급으로 분류되는 상당수 노동자들은 실은 신-중간계급일 수 있다. 계급정치에서 이들의 위상은 논쟁의 대상이다. 이념적으로 이들은 모순되는 위치에 있으며, 따라서 단일 대오로의 결집이 쉽지 않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는 계급 정체성을 사회적 적대의 기본 단위로 상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오늘날 한국의 계급구조는 이런 입장의 현실적 근거가 된다. 55-7)<br>5. 기만과 위선의 정치 ？ 포퓰리즘의 문화정치적 계기<br>서구 선진국의 기득권 엘리트와 리버럴 세력은 진보적 신자유주의의 일환으로 PC와 정체성 정치, 페미니즘 등 자유주의적 가치를 아전인수 격으로 활용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이를 ‘깨어 있는 자본주의’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휘두르며 희화화한다. 자연스럽게, 자유주의적 가치에 대한 환멸이 뿌려진다. 한국의 상황은 조금 다르다. 한국의 청년들이 PC와 정체성 정치에 강한 반감을 갖게 된 것은 서구 선진국에서 벌어지는 리버럴의 위선과 자가당착이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소개되기 때문이다. 주요 창구 중 하나는 도를 넘는 ‘관종’ 행각을 벌이고 있는 ‘사이버 렉카’다. 이들의 목적은 불미스러운 사건을 알리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과거에 내놓은 자유주의적 메시지와 그에 어긋나는 행실을 가져다 놓고 ‘내로남불’이라며 조롱하는 것이다. 사이버 렉카 콘텐츠의 소비자들은 PC와 정체성 정치 등 자유주의적 의제와 메시지에 막연한 반감을 가지며, 점차 ‘진보=위선’이라는 공식을 머릿속에 각인하게 된다. 66-7)<br>6. 20대의 탈-정치적 정치 ？ 응징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br>오늘날 20대의 정치 무관심은 10여 년 전과는 다른 양태를 보인다. 이른바 ‘적극적 무관심’인데, 바꿔 말하면 정치에 대한 강한 환멸과 불신이다. 과거 20대의 정치 무관심이 시큰둥하고 별생각 없는, 말 그대로의 무관심이었다면 현재의 그것은 한층 공격적인 정치혐오에 가깝다. 정치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아도 제도권 정치(인)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들의 태도가 합리적이며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연구참여자 중 한 사람은 대학교 신입생 시절 이후로 정치에 관심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제는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경제 정책과 공약을 제시하느냐에만 관심을 둔다고 말했다. 이 말은 단순히 정치 문제와 개인의 경제적 이해를 분리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공동체의 의사결정체로서 정치에 대한 환멸의 적극적 표현으로 보는 게 옳다. ‘함께 잘사는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하는 과정으로서 정치라는 관념에 대한 회의는 공공성의 붕괴와 각자도생의 문제로 이어진다. 73)<br>7. 정치 불균형과 협소한 정치적 상상력 ？ 자유주의에서 극우까지의 세계<br>한국의 청년들 대다수는 한국의 양대 정당을 크게 다를 바 없는 집단이라고 본다. 동시에 현재 정부·여당이 극단적 좌편향 정치를 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야가 ‘거기서 거기’라면서도 한쪽은 지나친 좌편향이라니,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이러한 비일관성은 협소해진 사회·정치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무엇보다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된 진보정치의 우경화가 가져온 착시다. 말하자면 청년세대에게는 보수가 중도다.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정치 지형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보통 한국인’의 정치적 상상력은 자유주의-권위적 보수주의의 박스권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익 포퓰리즘 물결이 일어나고 있는 유럽과 미국에서도 목격된다. 특히 현재 20대, 청년세대는 신자유주의가 보편화된 시기에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정치적 상상력을 넓힐 기회가 없었다. 여기에 북한 문제와 레드 콤플렉스라는 한반도의 특수성이 겹치며 자유주의에서 조금이라도 왼쪽으로 나아가는 발상은 극단적이고 위험한 것으로 간주된다. 79-80)<br>뚜렷한 지지 정당이 없는, 즉 당장이라면 어느 당에 투표하겠지만 인물과 공약을 보고 선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이들의 선택은 결국 싫어하는 정당의 후보를 떨어뜨리는 투표로 귀결된다. 이렇듯 특정 세력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 ‘부정적 투표’ 혹은 ‘응징 투표’를 하는 사람들을 부동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중도층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추정컨대 여론조사에서 특정 정당지지자임을 밝힌 20대의 상당수는 ‘응징 투표’의 일환으로 지지 정당을 그때그때 바꿀 가능성이 크다. 증가하는 부동층은 정치 무관심의 산물이며, 정치에 대한 환멸과 불신, 혐오의 적극적 표현이기도 하다. 정치 현안을 인터넷으로만 접하는 부동층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극적 기사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헤드라인이 말해주지 않는 맥락과 사정을 능동적으로 살피는 경우는 드물며, 그러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따라서 정치 무관심은 손쉽게 응징 투표로 이어지고, 그렇게 교체된 정권에서 또다시 실망과 응징이 반복된다. 82-3)<br>8. 진짜 분노를 가리는 학습된 분노 ？ 사유의 외주화<br>디지털 큐레이션이란 그때그때 화제가 되는 이슈들을 흥미로운 것 위주로 선별하고 단숨에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혹은 이해했다는 인상을 남겨주는 콘텐츠의 모음을 일컫는다. 청년들이 시사·정치 뉴스 창구로 이용하는 소셜미디어는 디지털 큐레이션 콘텐츠의 유통에 더없이 적합한 플랫폼이다. 디지털 큐레이션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중요한 문제와 중요하지 않은 문제, 본인에게 흥미로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판단을 디지털 큐레이션 제작자에게 위탁하고 외주화한다. 이들은 (특히)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정치 일반에 대한 피상적 인상을 쌓는다. 이 지점에서 그 어떤 ‘어그로’를 끌어서라도 클릭을 유도하는 콘텐츠와 그 제작자가 바로 사이버 렉카다. 연구참여자들을 비롯한 청년들은 그거라도 보면서 ‘소셜미디어로 시사를 접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디지털 큐레이션과 사이버 렉카의 손에서 연성화·단순화·예능화한 (더 나쁘게는) 왜곡·날조된 이슈의 편린을 접한다고 함이 더 정확할 것이다. 89-90)<br>분노와 경멸, 혐오는 정치와 무관하고 사이버 렉카 콘텐츠도 아닌 평범한 게시물을 통해서도 전이된다. 경로는 이렇다. 예컨대 유튜브에서 비디오 게임 콘텐츠를 찾아본 사람에게 해당 영상의 시청자들이 많이 본 또 다른 영상이 추천된다. 그런데 20대 남성 게이머들은 대개 정치적 올바름PC에 적대적이다. PC와 페미니즘의 영향에 따른 게임 캐릭터 재현과 서사 구조 변화를 자신들만의 문화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게임 관련 유튜브 영상을 몇 차례 접한 이는 의도치 않게 반-PC, 반-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로 유인되기 쉽다. 인터넷 여론이 청년세대의 보편적 생각이 아님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반만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일단 생산된 비하·혐오 콘텐츠는 특정 커뮤니티에만 고여 있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다. 렉카 계정들이 퍼뜨리는 이러한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분노 어린 댓글을 마주할수록, 천천히 그 분노를 자신의 것으로 학습하게 된다. 94)<br>9. 외부인의 생성 ？ 공정한 차별주의자들<br>연구참여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전반을 공정성의 문제와 결부한다. 즉 대북 지원에 대한 이들의 반감은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 및 정규직화에 대해 갖는 반감과 같은 논리를 공유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진 신자유주의 경찰국가 체제에서 더 가혹해진 공안정치와 수탈은 한국사회의 공공성을 붕괴시켰다. 이제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생존 문제가 되었다. 공공성이 실종된 사회에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스펙을 쌓고,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깜깜한 미래를 대비해 일상의 소박한 즐거움은 물론 연애와 결혼, 출산까지 미루거나 포기하며 노력했다. 그렇게 확보한 한줌의 상대적 우위는 어떤 식으로라도 보상받아 마땅하다. 이들에겐 그것이 ‘공정’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연구참여자들은 여건이 못 되어 그런 노력조차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임금과 처우와 시선에서 응분의 푸대접을 받는 것에 만족한다. 그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까지가 본인들에게 주어진 ‘공정한 보상’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98-9)<br>20대에게 ‘공정’은 정체성 정치를 평가할 때도 중요한 잣대가 된다. 남성 연구참여자 대다수는 양성 할당제 등의 정책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들은 기업이 지금까지 성별을 불문하고 능력에 따라 직원을 뽑아왔다고 믿고 있다. 설사 특정 성별을 선호하고 석연치 않은 가산점을 부여하는 식의 행태가 있더라도 그것은 입맛에 맞는 노동자를 채용하는 기업·고용주의 권한으로, 자연스러운 시장의 논리일 뿐 정치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할당제 때문에 더 자격 있는 남성 대신 여성 지원자가 뽑힌다고 상상하며 탈락한 남성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남성 연구참여자들이 보기에 ‘남성 특권’은 최소한 자신들이 사는 한국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역차별’론으로 나아간다. 자신들을 “선행 차별에 대한 일종의 차별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어떤 과도기에 놓인 피해자 혹은 희생자로 인식한다. “이미 피해자인데 또 피해를 감수하는 (…) 가중차별을 당한다는 정서인 것이다.” 99)<br>10. 미래는 중단되었다 ？ 부모보다 ‘가난할’ 세대로 산다는 것<br>연구참여자들은 자동화와 경제인구 감소의 상관관계가 자본주의 경제의 순환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우리 모두가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가 왔음을 이미 인지하고 있다. 기본소득 의제에 거부감을 보이던 일부 연구참여자들도, 보수우파 진영의 기본소득 프레임에는 반감이 훨씬 덜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파 버전의 기본소득은 국가 규모를 줄임으로써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한다. 즉 기본소득을 분배하되 국가의 사회복지 재정을 대폭 축소하고 나머지 사회보장을 개인에게 일임하는 것이다. 좌파 버전의 기본소득은 불로소득·투기소득에 대한 엄격한 과세로 재원을 마련해 양극화를 극복하는 것이다. 우파 프레임을 먼저 소개한 다음 좌파 프레임을 설명하자 연구참여자들은 후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마음을 여는 듯했다. 인간 노동력의 투입 없이 가치의 생산이 가능한 상황을 맞이하면서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자본의 정언명령의 유효기간이 임박했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107-8)<br>11. 헤게모니 전쟁 ？ 2016 촛불시위와 20대 현상<br>2016년 촛불시위의 지상목표는 ‘박근혜 퇴진’이었다. 거창한 사회변혁이나 혁명이 아니었다. 박근혜 정권이 시민들에 의해 전복되는 것은 당장 눈에 보이는 그림이었고 실현 가능한 약속이었다. 그랬기에 제각기 다른 정치 성향을 띤, 그토록 많은 사람이 그토록 오랫동안, 지치지도 반목하지도 않고 양보를 거듭하면서 한 공간에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반면 사회변혁은 추상적이다. 추상적 의제는 정치적·사회적 상상력이 빈약한 대중을 결집하기가 매우 어렵다. 만약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하며, 어떤 모습일지 머릿속에 그려지는 프로그램을 내세웠더라면 촛불의 에너지를 사회변혁의 동력으로 전환시키는 게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보좌파 진영에게는 그것을 가능케 할 헤게모니 전략이 없었다. 일부에서는 민주당 등 자유주의 세력이 촛불의 소명을 박근혜 퇴진으로 국한시켰고, 집권 이후 이른바 ‘촛불정신’을 배반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촛불은 처음부터 진보좌파의 것이 아니었다. 115)<br>20대 안에서 남녀는 물론이고 같은 성별끼리도 서로 다른 요구를 갖고 있지만 특정 국면마다 이들을 거대한 반-정권의 전선에 서게 만드는 헤게모니적 기표가 ‘공정하지 않다’라는 명제다. ‘공정하지 않다’라는 명제에서 ‘공정’이란 과연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공정은 속이 빈 기표다. 따라서 ‘공정하지 않다’라는 명제도 공허하다. 커뮤니케이션 학자 김정희원이 날카롭게 지적하듯, 오늘날 공정이라는 말은 일종의 ‘무기가 되어weaponization’ 모든 사안에 관련한 건전한 토론과 숙의를 차단하고 ‘그들’의 배제와 ‘우리’의 투쟁을 성역화하는 데만 쓰인다. 알맹이가 없는 기표로서 공정은 그 자체로 말해주는 바가 없고 해석에 열려 있으며, 따라서 특정 정치 세력에게 전유되기 쉽다. 현재 이 기표는 냉전보수 세력이 전유한 상태로, 그들의 해석에 청년들이 스스로를 동기화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진보좌파 역시 이 기표를 전유할 수 있다. 결국 어떻게 전유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바로 헤게모니 전략의 구상일 테다. 117)<br>에필로그: 과격화냐 급진화냐<br>아주 미세한 빗겨남, 이탈은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사소하다. 그러나 그로 인한 마주침들은 상호 축적-연결되며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역사의 전 궤적에 걸쳐 변화를 불러온다. 나비효과다.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개개인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최소한의 일탈이 사회를 근간부터 뒤흔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급진적 마주침과 대중의 자연발생적 조직화의 조건은 일상의 사소한 데서부터 행하는 일탈, 즉 ‘일상의 변용’이다. 이것은 문화적 표피를 띠지만 사실은 금융화된 오늘날의 일상생활에서 등장할 수 있는 급진적 문화정치의 한 형태다. “그람시의 ‘헤게모니’가 형성되는 삶의 구조가 바로 이러한 일상의 구조이며, 동시에 전체주의와 파시즘이 공존하는 공간이 바로 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여태껏 익숙하게 적용해온 사고방식으로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의 해결이 불가능한 때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고민하고 시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며 어쩌면 유일한 저항의 방법일 수 있다. 120)<br>지금 이대로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20대들은 그러나 정치적 상상력이 협소한 탓에,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어떠한 변화를 지향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새로운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20대들이 지금 정치와 사회를 대하는 멘털리티는 브레히트의 잠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올바르지만 오래된 것보다 나쁘더라도 새로운 것이 낫다. 그들의 상상력으로 그 새로움이란 정권교체에 머무른다. 그럼에도 그 이상의 열망은 항상 남아 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변화의 방향은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다. 이 ‘과격화’를 긍정적인 ‘급진화’로 전환시킬 수는 없을까? 여러 번 강조했듯이 20대 현상의 표피는 헤게모니적 기표에 근간한 헤게모니적 접합의 산물이다. 헤게모니적 기표는 자연스럽게 발생하기도 하고, 언론과 정치의 손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지금 한국에서 20대를 동원하는 기표는 보수 세력이 완전하게 전유하고 있다. 127)<br>20대 현상에 대한 헤게모니 전략의 구상은 20대들을 무엇으로 호명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부르주아지, 기득권 엘리트층을 제외한 나머지 보통 사람으로서 20대들이 공동으로 맞이하고 있고 곧 맞이할 문제, 공동으로 답해야 할 질문을 찾아야 한다. 개인적 차원의 노력, 경제 행위를 압도하는 불가항력의 사회적 조건들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야 한다. 나는 지속되는 일자리 감소 및 그것을 가속화하는 자동화, 불가피한 계층 하강, 기후 변화, 자원 고갈 등 혼돈 속에서의 실존적 위협에 놓여 풍전등화와 같은 상태에 있는 이들을 호명하는 기표로 ‘위태로운 자들’을 제안한다. 이것을 단지 제도권 정치 차원에서 표심 공략으로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제도 정치 바깥으로부터 내부를 재구조화할 압력으로 작용케 해야 한다. 협소한 정치적 상상력을 벗어나 맹점에 위치한 저 몸부림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새로운 급진 정치로의 전환은 충분히 가능한, 지금 여기의 시나리오다. 128)]]></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852/10/cover150/e3425398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8521054</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점심</category><title>내전, 대중, 혐오, 법치 / 피에르 다르도 외 - [내전, 대중 혐오, 법치 -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39303</link><pubDate>Mon, 09 Mar 2026 07: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393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522532659&TPaperId=171393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84/76/coveroff/e52253265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522532659&TPaperId=171393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전, 대중 혐오, 법치 -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a><br/>피에르 다르도.크리스티앙 라발.피에르 소베트르 지음, 정기헌 옮김, 장석준 해제 / 원더박스 / 2024년 04월<br/></td></tr></table><br/>서론 신자유주의 내전의 전략들<br>신자유주의 내전의 특징은 첫째, 이 전쟁은 과두 정치 세력이 앞장서 벌이는 ‘총력전’이다. 이 전쟁은 사회적 권리 축소를 노린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며, 외국인에게서 모든 종류의 시민권을 박탈하고자 하고 망명권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민족적이며, 모든 저항과 비판을 억압하고 범죄화하기 위해 법적 수단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고 법적이다.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강성 보수주의가 도덕 질서 수호를 내세우며 개인의 권리를 공격할 때, 이 전쟁은 문화적이고 도덕적이다. 둘째, 이 전쟁에서 각각의 전략은 서로를 지지하고 상호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각 국가나 지역의 특수한 전략들이 범세계적인 단일 전략으로 수렴하지는 않는다. 셋째, 이 전쟁은 패권주의 강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적 ‘글로벌 질서’와 블록화한 국가들 사이의 직접적인 대립이 아니다. 두 정치체제 간, 두 경제 시스템 간의 대립도 아니다. 이 전쟁은 연합한 과두지배자들이 국민 일부의 적극적 지지에 힘입어 다른 국민 일부를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다. 13)<br>글로벌 자본의 기치 아래 자본의 이익을 방어하고자 나선 각 국가들은 온갖 수단과 정동을 동원하여 평등과 사회 정의에 대한 요구와 기대를 외부 또는 내부의 적, 성가신 소수자들, 지배적인 정체성이나 전통적인 위계질서를 위협하는 집단들에 대한 적대로 유도한다. 이런 방식으로 글로벌 질서에 대한 반대는 그 질서의 주요 수혜자들에게 포획된다. 이 주장은 가족, 전통, 종교라는 보수적 가치의 장려와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 글로벌화한 엘리트에 대한 고발은 문화적 정체성의 해체라는 환상의 거대 서사에 덮여버린다. 이 ‘경제적 국민주의’의 목적은 자유 교역을 피하는 데 있을 뿐 아니라, 자국에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국제 경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국민국가 주권에 힘을 실어주는 데 있다. 트럼프 개인을 넘어선 트럼프주의가 너무도 잘 보여주듯이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글로벌 시장 질서 수호, 반민주주의 체제, 경영과 소비에만 국한된 ‘자유’ 개념, 서구의 문화적 가치 지배에 대한 긍정 등을 공유한다. 14)<br>신자유주의는 모든 형태의 사회주의, 더 나아가 모든 종류의 평등 요구를 무력화하려는 기획으로, 애초부터 정치적 기획자(Entrepreneurs politiques)인 이론가와 저술가들에 의해 수립된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명료한 법과 원칙의 틀 속에서 경쟁에 기초한 자유 사회, 사법(私法)의 사회를 수립하려는 공동의 정치적 의지에서 발현했다. 또한, 이는 도덕, 전통, 종교에 기초하여 사회의 전면적인 개조 전략에 복무하는 주권국가에 의해 보호된다. 달리 말해 신자유주의는 사회주의와 파시즘과 같은 대체로 ‘집산주의적(collectiviste)’이라고 간주된 정치적 기획들에 대항한 전략적 투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의 목표는 사회에 일련의 표준적인 기능을 부과하는 데 있다. 그중 모든 신자유주의자가 첫째로 꼽는 것은 개인-소비자의 주권 보장을 전제로 한 경쟁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전략적, 갈등적 특성을 통해서만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출현 조건과 지속성, 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 17)<br>1장 칠레, 최초의 신자유주의 반혁명<br>칠레 헌법은 1818년에 제정된 이래 쿠데타 전까지 1833년과 1925년, 고작 두 차례 개정되었다. 마지막 개정 이후 반세기가 지난 뒤인 1980년 9월 11일(쿠데타가 일어난 지 7년째 되는 날), 국민투표로 1925년 헌법을 대신할 새 헌법이 제정되었고 현재까지 유효하다. 하이메 구스만이 독재 정권에서 임명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제헌 위원회와 함께 새로운 헌법안을 작성했다. 군사정권의 권력 찬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구스만은 카를 슈미트가 고안한 ‘제헌 권력(pouvoir constituant)’ 개념을 동원했다. 슈미트에 따르면, 실존적으로 주어진 의지에 의해 정초되고 국가의 존재 의의가 명시된 헌법만이 유효하다. 이를 1973년 칠레에 적용하면, 법률(loi)에 구속되지 않는 권력(legibus solutus)일 뿐만 아니라 법(droit)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권력(jure solutus)으로서 구성된 군사평의회는 신헌법을 제정할 자격을 얻는다. 시행령 제128호에 의해 인민의 제헌 권력이 군사정권으로 이양됐다. 25)<br>#&nbsp; 프랑스어의 loi가 공공기관에서 제정한 규칙과 표준, 즉 법률을 의미한다면, droit는 모든 규칙과 규범을 포괄한다. 따라서 맥락에 따라 권리로 번역되기도 한다.<br>이 체계의 핵심을 이루는 근본 원칙이 있으니, 바로 보충성의 원칙(principle of subsidiarity)이다. 이 원칙은 19세기에 고안되고 20세기 코포라티즘(corporatisme)에 의해 전용된 가톨릭교회의 사회 교리에서 유래되었다. 이 교리는 개인들을 통합하여 사회집단을 구성하는 자연적 공동체들 사이의 위계를 강조한다. 자연적인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현대 정치에 대항하여, 개인의 의지에서 시작해 사회 내 자연스러운 집단으로 여겨지는 가족, 동업조합, 지역, 교회, 군대, 나아가 국가와 같은 일련의 조직들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칠레 독재정권의 이데올로그들은 보충성의 원칙을 사회를 마비시키는 국가주의를 끝장내고 경제적 자유, 사적 소유, 시장을 지탱하는 근본인 개인의 자유를 방어하는 원칙으로 재해석한다. 이런 논리에 의해 기본 서비스가 민영화되고, 기본권(보건, 교육, 주택, 연금 등)이 사적 영역으로 이양되며,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책임으로부터 면제된다. 27)<br>칠레 신자유주의의 특성 중 신자유주의의 근본 논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적 사회의 구축은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재구성한다. 국가를 약화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시장의 규율 권력을 창조하고 보강하는 국가기관들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국가는 결코 ‘약한 국가’가 아니라 ‘행동주의적이고 유능한 국가’이다. 둘째,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냉혹한 시장 법칙에 의해 모든 사회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셋째, 경제의 ‘탈정치화’와 사법(私法)의 헌법화가 함께 진행된다. 이러한 결합은 칠레의 신자유주의 실험에 대한 하이에크의 영향을 재평가할 것을 요구한다. 호세 피녜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호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정치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여기에서 “정치를 폐위시키자”라는 하이에크의 슬로건이 곧바로 연상된다. 30)<br>2장 신자유주의의 대중 혐오<br>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항상 ‘대중 민주주의’를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간주하고 그것의 정당성을 박탈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정치적 실천으로서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는 다양한 수단들에 대한 테스트와도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의 민주주의 혐오를 이론과 통치의 차원에서 면밀히 들여다보면, 경제 질서 수호를 위해 공공연하게 정당화되는 신자유주의의 폭력성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독트린은 인민주권 논리가 통제되지 않을 때 ‘총체적 국가’의 위험이 도사린다고 보고 이에 대한 제도적 제한의 이론을 자처한다. 신자유주의자들에 따르면, 총체적 국가는 자신이 의존하는 이익집단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모든 영역으로 개입의 범위를 확대한다. 이처럼 현대 민주주의에는 총체적 국가로 나아갈 위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선거 결과나 인민들의 결집이 시장의 법칙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여겨지면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실질적인 전쟁 이데올로기로서 제시된다. 35)<br>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 개념을 단지 최상의 지도자 선출 과정으로 보며, 인민주권의 도그마와 그것에서 비롯되는 ‘해로운 의회 주권’ 실현을 배제한다. 지금까지 계속 언급한 인민주권은 실제로는 다수파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행사하게 되는데, 이들은 다수파를 유지하기 위해 일반 품행 규칙을 무시하고 특정 집단의 이익에 복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 주권은 법의 주권을 희생하고 수립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하이에크가 선호한 엄격히 절차적인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기초라고 주장되는 가치들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그 실제적 성과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한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독단을 막고, 지도자 선택에 참여한다는 의미에서의 ‘정치적 자유’보다 더 우선시해야 할 ‘개인적 자유’의 보호를 가능하게 해준다. 하이에크에게 ‘인민이 자유롭다’는 말은 ‘개인의 자유 개념을 하나의 인간 집단 전체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매우 심각한 혼동을 초래할 수 있다. 36-7)<br>3장 강한 국가 예찬<br>강한 국가의 일반적인 목표는 무엇보다 정치가 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우선 부정(negative)의 임무들이 도출된다. 사회국가를 해체하고, 사회적 이익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 것이며, 필요에 따라서는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시장의 효과적인 기능을 방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억제해야 한다. 국가와 경제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는 긍정(positive)의 임무도 있다. 시장의 올바른 기능을 보장하고 일탈을 제재하는 국가의 기능으로, 뤼스토프가 말한 ‘시장 경찰’의 임무이다. 이러한 개입주의는 특히 시장의 법적 규범화를 의미한다. 하이에크는 “효과적인 시장은 오점 없는 작동을 위해 적절한 규범적 틀을 필요로 한다”라고 역설했다. ‘강한 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자들의 견해 차이는 카를 슈미트의 표현에 따르면 ‘강도’의 차이다. 강한 국가의 한계는 인위적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 시장에 대한 적의 위협에 따라 비례적으로 결정된다. 44)<br>이렇게 현실 민주주의가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하이에크는 ‘디마키(Demarchy)’라는 말로 정치 시스템을 정의하고자 했다. 하이에크는 공적 행동의 제한 원칙에 기초한 이 개념이 ‘지속적인 남용으로 오염된’ 민주주의 개념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디마키’는 원칙적으로 오로지 일반 규칙만을 따르며 일시적인 다수파의 독단에 휘둘리지 않는다. 디마키는 특정 집단에 ‘특혜’를 주거나 특정 집단을 차별하는 모든 조처를 금지한다. 이소노미아(isonomia)는 단순히 ‘법 앞의 평등’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본래 의미는 ‘법에 의한 평등’이다. 즉, 모든 시민의 정치적 권리의 평등, 특히 평의회나 의회에서의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런데 이를 ‘법 앞의 평등’으로 재해석하는 건 자발적으로 소득과 재산의 분배를 바로잡으려는 모든 시도를 저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하이에크는 인민의 요구에 굴복한 정부로부터 시장의 자유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는 수단을 박탈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한다. 48-9)<br>4장 정치 헌법과 시장의 입헌주의<br>신자유주의자들은 종종 주권이라는 개념 자체에 강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주권자를 법 위에 두는 고전 전통과 달리 하이에크는 인민 다수 혹은 그들이 선출한 대표자들에게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시장의 근본법'에 손을 댈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이에크가 사용한 표현은 ‘의회 주권’에 명백하게 맞서는 ‘법 주권’이다. 이 표현은 ‘지배(règne)’의 의미가 ‘절대적 지배권(empire)’ 혹은 ‘주권(souvenraineté)’으로 미끄러지면서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동일시되었다. 헌법은 만들어지지만 법(droit)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 법은 상법과 형법을 포함하는 사법(私法)이다. 개인이 타인의 목표와의 비교나 결합 없이도 자신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사회에서 이 법은 집단적 의지보다 우위에 있다. 경제 영역에서의 개인의 권리는 더 이상 추상적인 참조 대상으로만 여겨져서는 안 되며 법의 영역 밖으로 배제되어서도 안 된다. 이 권리들은 실정법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헌법화'되어야 한다. 57)<br>이 헌법은 실질적인 법률로 기능하기 위해 법률이 갖추어야 할 것을 형식적으로 정의하지만, ‘법의 내용을 고안하는 임무’는 입법자와 사법관 들에게 맡긴다. 핵심은 사법 규범으로서의 법률이 헌법에 선재(先在)한다는 것이다. 이 헌법은 “품행 규칙 체계의 선재를 전제로 하며, 그 체계에 지속적으로 집행력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를 제공”할 뿐이다. 또한 헌법은 제헌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법률은 입법자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법률은 ‘수용된 정의 개념’에서 비롯되어 ‘장기간 사용된’ 규범들로서 입법자에 의해 인정받고 승인되는 것이다. 여기서 권력 분립은 오직 입법자만이 법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와 반대로 입법자는 법률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걸 의미한다. 적어도 ‘법률(loi)’이 입법 당국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법(droit)을 뜻한다면 말이다. 이러한 모든 이론적 구축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헌법적 법률은 헌법에 속하지 않는다. 61)<br>5장 신자유주의와 그 적들<br>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리프먼의 주장을 전용하여 사회주의와 파시즘 두 체제의 유사성을 자유주의 옹호 주장의 핵심으로 삼았다. ‘모든 당파의 사회주의자들’에게 ‘사회주의는 자유의 반대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하이에크는 ‘파시즘과 나치즘의 부상은 이전 시대 사회주의적 경향에 대한 반발이 아니라 바로 그 경향에서 비롯된 결과였다’라고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사회주의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자유주의의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사회 조직 원칙으로서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 한 측면이라면, 그 과정에서 국가가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게 다른 한 측면이다. 하이에크는 계획과 경쟁이 양립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계획’이라는 개념이 ‘더 나은 운명을 가질 수 있었던 훌륭한 개념’이라면서 그것이 사회주의자 적들에게 넘어가버린 것을 한탄한다. 하이에크는 새로운 자유주의를, 사회주의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경쟁의 계획’으로 정의한다. 71)<br>신자유주의의 전략은 사회적 정책의 발전을 무력화하는 제도적 질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노동자 조직의 힘을 약화하고, 사회보험과 관련된 국가의 독점을 최대한 축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 정당의 지도자들이 자본가들의 소유권을 박탈하려는 혁명적 목표를 포기한 후, 그보다는 덜 야심 차지만 자유경제에 여전히 위험한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소득의 평등을 목적으로 한 ‘소득 재분배’가 그것이다. 초기 사회보험의 목적은 극빈층 혹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이들’의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었지만, 최초의 의도가 점차 변질되어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평등 정책을 은폐하는 도구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불신이야말로 신자유주의가 거둔 가장 큰 승리 중 하나다. 이는 복지국가를 해체하고, “경쟁적 기업들이 제안하는 서비스를 개인이 구입하는 보험 시스템”으로 대체하게 할 주관적 조건을 만들어낸다. 76-8)<br>6장 사회 진화의 신자유주의적 전략<br>바르바라 스티글러는 1937년 신자유주의 역사상 기념비적인 저서 『좋은 사회』를 집필한 미국의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먼을 신자유주의 이념의 모태로 본다. 리프먼의 진화주의는 자유로운 경쟁에서 자발하는 과정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법적, 정치적 개입주의를 채택한다. 그가 보기에 ‘문화적 지체’는 정신 구조나 사고방식이 기술과 생산 조직에 비해 훨씬 느리게 변화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새로움 앞에서 개인은 과거의 사고방식에 따라 반응한다. 이로 인해 폐쇄적인 공동체가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다양한 형태의 집산주의가 바로 그 결과다. 그렇다면 인구의 상당수가 겪는 이 부적응을 어떻게 할 것이며, 새로운 틀에 어떻게 인류를 재적응시킬 것인가? 리프먼에 따르면 대혁명에 걸맞게 사회질서를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재적응을 위한 매우 폭넓은 차원의 개입이 요구되는데, 그것을 정의하고 실현하는 것은 전문가의 몫이다. 대중에겐 이를 수행할 지적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82-3)<br>신자유주의는 리프먼이 주장한 사회적, 경제적 현대화에 대한 명령으로 요약될 수 없으며, '복고주의적 유토피아'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 가운데 빌헬름 뢰프케가 내세운 전통적 가치의 복원은 질서자유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현재 ‘정신적, 종교적 위기’를 겪고 있으며, 이 위기는 사회 재통합이라는 분명한 의미를 지닌 ‘사회정책’과 병행되지 않는 한 어떤 ‘경제정책’으로도 해소가 불가능하다. 현재의 위기가 근본적으로 ‘사회학적’이기 때문에 사회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저서들을 관통하는 고민은 ‘자연적’ 공동체(가족, 이웃, 마을)를 복구하고 개인들에게 안정적인 도덕적 기준을 보장해주는 정치를 통해 사회 해체의 영향을 치유하는 것이었다. 뢰프케에게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현대성과 세계적 경쟁에 대한 적응이라는 리프먼식 신자유주의와 반대로, 집산주의에 대한 효과적 방벽으로서 유기적 공동체에 개인을 재통합시키는 전략적 대안이었다. 83-4)<br>뢰프케와 달리, 하이에크에게 과거의 작은 공동체들로 회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전통의 기초 위에서’ 규범 체계가 진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모든 활동과 마찬가지로 전체 질서 형성에 기여할 때, 즉 규범 체계를 강화할 때만 혁신은 허락된다는 것이다. 하이에크에게 전통과 종교를 위해 정치적으로 싸우는 것은 자유주의에 대한 배신이 아니며, 사회의 조용한 진화를 보호하는 일이다. 그가 보기에 복지국가의 필연적 결과인 사회적 평등주의와 도덕적 방임을 도입하고자 하는 합리주의적, 구성주의적 위협을 가장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패는 종교다. 하이에크가 이념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리고 그는 그 전쟁에서 이기려면 문명의 진화를 찬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유토피아를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영혼에서 사회주의라는 악마를 몰아낼 만큼 충분히 강력하기만 하다면, 그 유토피아의 본질이 종교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89-91)<br>7장 글로벌리즘과 내셔널리즘의 가짜 대안<br>신자유주의자들이 세우고자 한 국제 경제 질서는 특수 이익을 추구하는 다양한 사회 집단들이 마치 ‘전리품’처럼 약탈을 자행하는, ‘총체적 국가’에 의한 경제의 정치화를 종식하는 것이었다. 뢰프케는 ‘경제적 국민주의’가 정치적 지배(imperium)와 경제적 경영(dominium)을 혼동한다고 비판하면서 이상적인 ‘자유주의 세계’에서는 이 두 영역, 즉 국경으로 둘러싸인 국가와 국경 없는 경제가 엄격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카를 슈미트는 1950년 출판한 『대지의 노모스』에서 19세기에 세계가 도미니움(dominium)의 영역과 일치하는 국경 없는 글로벌 경제와, 임페리움(imperium)의 영역에 한정된 국민국가의 주권, 둘로 분리되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강대국에 의해 지배되는 여러 지역에서 주권의 ‘실체가 비워졌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슈미트의 열광적인 독자 뢰프케는 이러한 공공 영역과 사적 영역의 엄격한 분리야말로 세계 자유주의 경제 질서 실현의 목표라고 설명한다. 96)<br>신자유주의적 국제 경제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싸움에서 유럽 문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주제를 둘러싸고 신자유주의자들은 금세 의견이 갈렸으며, 두 편으로 나뉘었다. (뢰프케 같은) ‘보편주의적 신자유주의자’들은 유럽 통합에 반대했으며, ‘입헌주의적 신자유주의자’들은 반대로 유럽 통합을 ‘경제 헌법’을 제정할 기회로 보았다. 1963년 하이에크는 도르트문트 상공회의소에서 한 연설에서 처음으로 일반 입법을 담당하는 의회(télothètes)와 사법의 공동 규칙을 담당하는 의회(nomothètes)로 구성된 양원제 구상을 제안한다. 이 계획에서 영감을 받은 폰 데어 그뢰벤은 유럽 조약이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고 각국 정부의 보호주의적 혹은 분배주의적 정책을 금지하는 초국적 헌법이 될 수 있음을 이해했다. 그 결과, 민주주의 정부의 행위와 국가의 공법(公法)을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사법(私法)이라는 일반 규칙에 종속시키기를 꿈꿨던 하이에크의 ‘법치주의’는 ‘유럽의 조약들’ 속에서 실현되었다. 98-9)<br>대처는 자유무역 보편주의를 유럽의 약탈적 관료주의가 이끄는 ‘인공적인 거대 국가’에 대립시킴으로써 전략적 차원에서 급진적 단절을 시도하였다. 그가 원한 건 대대적인 전환이었다. 그에 따르면 국가는 민주주의적 논리에 의해 언제라도 위험에 빠질 수 있으며, 더 이상 관세장벽, 경제계획, 조세를 통한 재분배를 이뤄내는 곳이 아니다. 국가는 새로운 규제 위주의 글로벌리즘과 사회주의화하는 관료주의적 유럽에 대항하는 방벽이 되어야 한다. 또한, 국가는 경제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을 수행하는 전투부대로, 다자간 의무나 ‘브뤼셀’이 강요하는 유사 국가적 규칙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대처의 표현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국민주의는 수많은 국제기구와 조약들을 따르는 모든 규범에 대항하는 급진적인 신자유주의적 보편주의를 역설적인 방식으로 재정의한다. 이런 식으로 대처는 새로운 경쟁주의적 국민주의의 길을 열었으며, 오늘날 많은 정부가 이를 계승하여 유럽연합을 '뒤흔들었다.' 102)<br>8장 가치 전쟁과 ‘인민’의 분열<br>전 세계 보수주의 우파들은 '60년대'의 유산을 쓸어버리기 위해 반-문화혁명을 전개했다. 이를 가장 명료한 형태로 구현한 ‘대안 우파(alt-right)’들은 차별에 대항하는 담론을 전유하여 뒤집음으로써 무슬림, 흑인, 페미니스트 등 ‘침입자들’이 다수의 사람들과 전통적 정체성에 가하는 ‘억압’을 고발한다. ‘자연에 대한 반항’과 다름없는 평등 이념에 의해 백인 문명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식의 종말론적 서사가 그 배경을 이룬다. 젠더와 인종의 사회적 구성 이론에 대항하여 이 우파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성별 및 인종 간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 기초한 ‘성 현실주의’와 ‘인종 현실주의’를 옹호하며 ‘새로운 반문화’를 주장한다. 웬디 브라운이 말했듯이 “이러한 분노는 인종차별 및 성차별과 동성애 혐오 및 이슬람 혐오를 할 ‘자유’, 그것을 금지하려고 하는 좌파의 ‘독재’를 거부할 ‘자유’의 형태를 취한다.” ‘자유’와 ‘권리’로 재정의된 그들의 혐오적 정체성은 권위주의적 국가의 합법적 폭력 혹은 정당방위에 호소한다. 107-8)<br>가족을 중시하는 모습은 평등에 대한 요구에 그들이 보인 일반적인 반응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1960년대 시카고학파의 게리 베커가 발전시킨 인적 자본 이론에서는 훨씬 세속적인 경향을 띠었다. 이미 미셸 푸코가 지적했듯이 이 이론은 아이의 교육에 대한 사적이고 가족 중심적인 투자를 공공투자에 대한 대안으로 간주한다. 결과적으로 은행 대출이 세금과 공공서비스를 통한 소득 재분배 논리의 대체물로서 나타나게 된다. 1981년 베커가 『가족경제학』에서 전개한 가족에 대한 인적 자본 이론의 적용은 복지국가 해체를 정당화할 뿐 아니라 반문화 좌파의 고유한 성 해방 요구를 비롯한 여러 요구를 무력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제 가족은 소외와 억압의 장소로 묘사되기는커녕 합리적인 부모가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인적 자본 축적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 하나의 ‘기업’으로 간주된다. 특히 자본축적의 논리에 따른 여성의 무상 재생산 노동이 이 논리의 핵심을 이룬다. 108-9)<br>9장 노동 일선에서<br>신경영(New management)이라 불리는 새로운 관리 방식은 ‘목표와 자기통제에 의한 매니지먼트’를 통해 개인들에게 총체적인 참여를 강요함으로써 경제적 성과를 최대화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다. 이 관리 방식은 하이에크와 미제스뿐 아니라 슘페터에게도 영향을 받은 피터 드러커가 1954년 처음으로 제안한 것이다. 노동을 과학적으로 조직하여 관리자가 정한 규칙을 노동자에게 최대한 세심히 적용하는 게 테일러 모델이라면, 신경영은 노동자의 지성, 창조성, 자율성, 책임감에 호소한다. 그러나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자기실현’에 대한 약속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 방식의 유일한 목표는 이윤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의 연장선에서, 이처럼 진화한 관리 방식의 목표는 연대의 시스템(협력, 신뢰 등)을 파괴하는 것이다. 또한 이 관리 방식은 개인이 서로를 싸워서 이겨야 할 상대로 간주하도록 하고, 이른바 ‘전사 되기’의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여 불안정한 환경에 적응하도록 강제한다. 120-1)<br>인적 자본 이론은 기업가 정신의 규범적 모델을 떠받치는, 오로지 경제적인 관점에서 인간 행동을 바라본 것이다. 투자하거나 투자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이 각 개인에게 있다면, 즉 성공과 실패에 대한 책임이 개개인에게 있다면, 그 개인은 자기 스스로 구축한 ‘자본’으로 정의된다. 그에 따라 교육, 건강, 결혼 등도 투자의 일환이며, 개인은 좋은 투자를 위한 좋은 선택을 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이 이론이 정립된 시점과 주요 국제기구(IMF,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의해 이 이론이 적용된 현재 사이, 표적이 되는 대상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주요 표적은 1960년대와 달리 교육과 보건 분야에서 기능하던 복지국가 일반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제 임금제도와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법적 보호 체제가 표적이 된다. 더 넓게는 노동 자체가 지닌 ‘민주주의적 잠재력’이 위협받는다. 노동이 토론과 협력을 통해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발명하는 중심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122)<br>이러한 노동의 집단적 차원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으로 노동자의 내면적 통일성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오로지 개인적인 실패만이 존재하고 고통의 사회적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면, 성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구속해야만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은 개인이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과 불가분한 것으로 드러난다. 마치 경제 전쟁의 동기가 개인 내면의 차원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작동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개인은 그 전쟁에서 전사의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자신의 적 노릇까지 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 경영자는 자신을 적으로 삼도록 강제된다. 이 프로세스는 ‘플래너(planneurs)’가 원거리에서 지시하는 사항들을 이행하기 위해 임금노동자 각 개인이 스스로 행동하고, 조직의 갈등과 딜레마와 역설(더 적은 수단으로 더 많이 잘할 것, 더 창조적이고 순발력 있게 대응할 것, 경쟁하면서 동시에 협력적일 것 등)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신경영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123)<br>10장 반민중적 통치<br>피통치자에 대한 국가의 폭력은 물론 새로운 일이 아니다. 국가 폭력은 국가의 역사 그 자체다. 그러나 국가 폭력은 매번 같은 논리를 따르지는 않는다. 신자유주의가 벌이는 내부 전쟁의 새로운 합리성은 역설적이다. 조직되지 않은 적, 무력 투쟁 등을 통해 권력을 잡으려고 하지도 않는 적, 설사 원한다고 하더라도 임금노동자의 집단적 힘이 약화된 터라 그럴 능력도 없는 적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전쟁의 논리와, 반대자를 사회의 적으로 만들기 위한 논리가 점차 법으로 제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공동체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의심받는 구성원, 국가의 잠재력을 파괴하려고 하는 이들, 국가 경쟁력을 약화하는 이들 등 피통치자의 일부를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내부 전쟁은 다분히 수행적이다. 행위가 적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강화된 감시와 지속적인 통제의 대상이 되고, 갈수록 군사화하는 경찰의 표적이 됨으로써 점점 ‘적으로 간주’된다. 128)<br>대게릴라전 모델은 이제 국내 질서 유지를 위한 정치 형식 자체가 되었다. 사목, 규율, 경쟁을 기초로 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을 모두 결합해도 이러한 권력 형태를 파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폭력적인 주권주의다. 이 폭력은 국가가 전쟁 상대인 정치적 적에게 부여한 실제적인 혹은 상상적인 폭력성에 비례한다. 그 적의 범위는 질서와 그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동원된 수단과 ‘한편’임을 선언하지 않은 모든 이들을 포괄할 정도로 탄력적이다. 활동가, 언론인, 대학교수, 노동조합원 혹은 좌파 정당 들을 적의 공모자로 만들어내는 글과 말이 넘쳐난다. 프랑스의 예에서 보듯이, 이민자 출신 인구에 적대적인 사회 전쟁을 조금만 비판하기라도 하면 ‘이슬람 좌파주의’라는 만능 딱지를 붙이는 식이다. 물론 테러리즘은 통째로 꾸며낸 핑곗거리가 아니며, 불행히도 실재한다. 하지만 모든 사회적, 정치적 관계에 테러리즘이 전쟁의 합리성을 강요하는 구실을 제공하고 있다. 133-4)<br>11장 신자유주의 전쟁 기계로서의 법<br>역사적으로 법치국가는 국가 행정부가 법을 오로지 도구적으로만 사용하는 경찰국가에 반대하여 성립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해 법치국가는 행정부를 그보다 상위의 규범(그중에서도 헌법적 법률) 아래 두는 원칙 위에 세워졌다. 따라서 법치국가와 경찰국가를 구별 짓는 것은 정치적 체제의 차이라기보다 국가와 법 사이 관계의 차이이다. 다시 말해 국가가 그것의 권력, 특히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력보다 상위의 법에 제한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이러한 법치국가의 구성 원칙에 반하여 입법자들이 헌법적 법률과의 양립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제정한 현재의 법률들은 ‘위험’이 질서 관리의 첫째 기준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낸다. 이런 사회를 미레유 델마-마르티는 ‘혐의의 사회’라고 부른다. 이제 '형법'은 예방적, 예언적이 되고, 본래 예방적 성격의 행정법은 처벌과 탄압에 이용된다. 그리하여 행정권이 법에 의해 보장되어야 할 권리보다 우선시되는 권력의 혼동이 야기된다.” 137-8)<br>“법률의 헌법화,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법적 시스템과 상고 절차가 도입된 최고재판소의 설치” 등으로 대변되는 사법권의 확대는, 안정적이고 견고한 헌법적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지역에서 ‘민주화’ 과정의 정수로 소개되었다. 이 모델은 두 얼굴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채권과 재산권의 보호를 보장하는 반면, 사회적 권리와 경제적 권리를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의 인권에 대해서는 어떤 실질적인 자리도 마련해 놓지 않는다. 이 새로운 입헌주의는 사실상 대의제도를 무시한 채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 향상을 가로막는 방벽으로 기능한다. 허실이 지적했듯이 이는 (최소한 형식적으로라도 올바름의 규칙을 따르기로 한) 정치, 경제 엘리트와 (행동반경, 합법성, 사회적 권력이 현저히 확대될) 법조인 간의 동맹이 이룬 결실이다. 국가기관 공무원을 순수한 기술자로 표상하는 사법 영역의 자율성은 결국 정치의 탈정치화를 초래하고, 사회적 지위 상승으로 더욱 강화된 법조인들의 계급적 편견을 은폐한다. 140-1)<br>푸코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신자유주의적 통치 기술을 기업 형태의 증가와 일반화로 특징지었다. 그는 또한 이 일반화가 사법기관의 역할 증대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기업의 형태가 확산할수록 기업 간 마찰과 분쟁이 잦아질 것이고 법적 중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업 사회와 사법(司法) 사회는 ‘동일한 현상의 두 얼굴’로 나타날 것이다. 푸코의 지적을 통해 정당 간의 경쟁을 분석하면 이 논리가 어디까지 확장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 정당들의 경합은 기업 형태로서의 정당 간 경쟁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바로 이 ‘기업-정당’ 간의 경쟁 논리가 법적 중재의 필요성을 높인다. 사법권의 정치적 도구화는 경쟁적 이해관계나 악의적 의도에 따른 정치적 전략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기업 형태가 확대된 사회에서 사법부의 전례 없는 우위가 초래한 결과일 뿐이다. 사법(私法)국가는 사회 전체의 사법화(司法化)를 요구한다. 144)<br>12장 신자유주의와 권위주의<br>현재의 일부 신자유주의적 지배 형태가 네오파시스트적 통치 행위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가령 헨리 지루는 파시즘 역사 연구자 로버트 팩스턴의 ‘결집된 열정’ 개념을 ‘신자유주의 파시즘’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지도자에 대한 사랑, 하이퍼내셔널리즘, 인종주의적 환상, ‘약한’ 것과 ‘열등한’ 것과 ‘이방의’ 것에 대한 경멸,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 무시, 반대파에 대한 폭력, 과학과 이성에 대한 적대감 등이 그 열정의 특징이다. 그렇지만 팩스턴은 ‘트럼프가 파시즘의 몇몇 전형적인 요소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에게서 보이는 ‘금권 독재’ 요소에 더욱 주목한다. 그는 이어 트럼프주의가 파시즘과 큰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가령 트럼프 체제는 유일 정당 체제가 아니며, 반대파를 철저하게 금지하지도 않고, 대중을 위계 조직에 의무로 가입시키거나 그것을 위해 동원하지도 않는다. 직능별 동업조합도 없고, 세속 종교적 의식도, 총체적 국가에 헌신하는 ‘시민 전사’의 이상도 없다. 146-7)<br>파시즘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의미론적 과잉은 현재 요구되는 정치적 투쟁과 관련하여 비판적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 복잡하면서 특수한 현상들을 부정확한 일반화 속에 ‘매몰’시켜버림으로써 정치적 무장해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1932년 『파시즘의 교리(La Dottrina Del Fascismo)』에서 조반니 젠틸레와 베니토 무솔리니는 국가야말로 파시즘의 진정한 초석을 놓을 터전이라고 선언했다. “파시즘에서 국가는 ‘절대’다. 그 앞에서 개인과 집단 들은 상대적인 자리만을 차지한다.” 이어서 그들은 파시스트 국가를 자유주의에 대립시킨다. “자유주의는 국가를 개인에 복무하게 만드는 반면, 파시스트 국가는 개인적 삶의 진정한 현실이 된다.” 파시스트는 “모든 것은 국가에 있다”라고 생각하며, 정확히 이런 의미에서 “파시즘은 전체주의적”이라고 이야기된다. 따라서 모든 시민사회를 흡수하려고 한 파시즘의 ‘총체적 국가’와, 시장 및 기업 모델이 사회 전반에 일반화된 것을 동일시하는 건 피상적인 유비일 뿐이다. 147-8)<br>나치즘과 신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사회진화론’이라고 부르는 것을 공유한다. 이 용어는 자연에서 생물종이 그러하듯이, 사회를 민족과 인종이 죽음을 무릅쓰고 일반적이고 영속적인 경쟁을 벌이는 곳으로 정의하는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가장 약한 자를 제거하는 것이 항상 하나의 선택지가 되는 나치즘은 원칙적으로 ‘사회진화론’이다. 이에 따르면 우월한 인종은 생물학적 법칙에 따라 스스로 방어할 권리가 있으며, 심지어 열등한 인종을 지배하거나 제거할 의무가 있다. 반면, 신자유주의의 사회진화론은 군사 전쟁이나 영토 복속을 추구하지도 않고 열등한 종의 제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파시즘의 그것과 구별된다. 신자유주의의 사회적 진화는 시장을 수단으로 한 경제적 영역의 경쟁을 통해 작동한다. 여기서 국가는 경쟁이라는 목적을 위해 모든 제도를 조직하고 인민을 준비시킬 책임이 있다. 그러나 모든 개인을 하나로 녹여내어 ‘인민 공동체’로 집결시킬 필요는 없다. 이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149)<br>헤르만 헬러는 ‘권위주의적 자유주의’의 특징을 “권위주의적 국가의 사회정책으로부터의 철수(Rückzug aus), 경제의 탈국가화(Entstaatlichung), 정치적-정신적 기능에 대한 독재적 국가화(Staatlichung)” 세 가지로 요약한다. 여기서 특기할 점은 헬러가 사용한 표현들(‘철수’, ‘철폐’, ‘탈국가화’ 등)이 정치적-정신적 기능과 관련된 마지막 표현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이 박탈과 부정의 어휘들이 헬러가 선택한 ‘자유주의’라는 말에 모든 의미를 부여해주는 동시에 정치적 권위주의를 정당화한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 국가의 개입주의는 적극적인 개입주의로서 그 대상에 경제적 분야도 포함된다. 여기서 우리의 연구는 적극적인 법적 개입주의라는 개념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경제와 법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이며, 신자유주의 내전이 그렇듯 총체적이다. 경쟁 사회의 도래를 꿈꾸는 신자유주의는 사회 전체에 관여한다. 151, 155-6)<br>여기서 근본적인 지점을 건드릴 필요가 있다. 정치체제에 국한한 접근법의 문제점은 신자유주의를 하나의 특정 정치체제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치의 권위주의적 차원의 핵심은, 국가의 구조와 정치를 행하는 인물 및 방식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통치자가 사법(私法)의 헌법화를 추진하고 협의의 영역을 제한하기 위해 충분히 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위주의를 선택하는 것’(권위주의 체제를 선택한다는 의미에서)이 신자유주의의 여러 전략 중 하나에 불과하며, 여타의 전략 가운데 국가 주권의 탈중앙집중화가 포함된다고 해서 (클린턴과 블레어의) ‘제3의 길’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경험이 권위주의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실제로 신자유주의는 목표 달성을 위해 권위주의적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없을지라도 그 자체로 권위주의적이다. 신자유주의의 근본적 통일성은 그것의 교리가 아니라 그것이 추동하고 수행하는 ‘내전 전략’에 의해 확립된다. 158-9)<br>결론 내전에서 혁명으로<br>그렇다면 신자유주의는 내전과의 관계를 스스로 어떻게 문제화하는가? 이는 이중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한편으로 신자유주의는 개별 이해당사자들의 내전을 종식시키는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권이라는 고전적 담론을 취한다. 미제스는 “자유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집단을 희생시키면서 소수자 집단에 부여된 특혜는 장기적으로 분쟁(내전) 없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자유주의는 내전을 배제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내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내전은 서로 다른 사회적 이해 당사자들 간의 경쟁, 특히 계급투쟁을 가리킨다. 사실 신자유주의 국가를 특수한 이해들보다 상위에 놓기 위해 계급투쟁을 ‘내전’으로 재약호화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주요 주제 중 하나다. 신자유주의 국가가 ‘시장’이라는 유일한 정의의 수호자로 제시되는 사고방식 속에서 계급투쟁은 사회 내에서 벌어지는 내전이 되어버리며, 국가의 기능은 그 내전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것이다. 161-2)<br>신자유주의가 적으로 간주한 것들은 ‘계획경제’, ‘집산주의’, ‘노동조합운동’, ‘인민주권’, ‘민주화’ 등으로 불리며, 모두 사회적 필요에 따른 경제 규제와 민주주의적 표현의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 이에 맞서 현대 신자유주의는 두 분파로 양분된다. 차이를 존중하고 자아실현을 약속하는 다소 진보적인 ‘글로벌리즘 신자유주의’와, ‘국민 정체성’과 혼동되는 자유를 내세우며 소수자들의 요구 및 법적 성취를 억압하는 반동적인 ‘내셔널리즘 신자유주의’가 그것이다. 이러한 두 신자유주의 분파의 가치 전쟁 속에서 인민은 자기 자신에 대항하게 된다. 이 전쟁 속에서 매우 다른 두 개념의 자유가 마치 무한한 거울 반사처럼 서로에게 시대적 악의 책임을 돌린다. 현대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방식으로 공론장 전체를 포화 상태로 만듦으로써 모든 진정한 인민적 대안을 막는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의 전략은 ‘통치하려면 분할하라(divide ut regnes)’라는 카트린 드 메디치의 유명한 격언보다 더 멀리까지 나아간다. 162-3)<br>스스로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하는 전략은 서로 다른 다양한 ‘민주주의적 요구들’의 평등을 실현하면서 ‘대중을 구축’하고자 한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가 이론화한 이 전략은 국가의 주권을 박탈한 세계화한 엘리트들에 대항하여 ‘대중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생각은 대처가 실현했던 우파 포퓰리즘에 대한 미러링으로서 고안되었다. 우파에서 그토록 성공을 거두었던 민족공동체와 주권 국가의 상상계를 자본주의의 지구화와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에 맞서기 위해 ‘재활성화’하자는 것이다. 매우 다른 맥락 속에서, 특히 유럽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포퓰리즘, 그중에서도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를 재현하는 이 ‘좌파 포퓰리즘’은 곧바로 정치와 노조의 구조적 분열, 사회적 운동의 자율적 힘, 결집을 위한 대의의 다양성 등과 충돌했다. 신자유주의 엘리트들에 맞서기 위해 인민, 국가, 공화국 등의 위대한 레토릭을 전용했지만, 사람들을 하나로 결집하는 마법이 되지 못했다. 168)<br>가치 전쟁에 의한 인민 집단 간의 분열을 막기 위해, 우리가 바라는 새로운 좌파는 경제적, 사회적 평등을 위한 투쟁과 여성, 민족, 인종, 성적 소수자, 세대 등을 중심으로 한, 구체적인 투쟁을 분리하거나 대립시키지 않아야 한다. 또한 평등이라는 일반적 요구를 중심으로 이 모든 경제적·문화적 투쟁을 접합해내는 것을 임무로 삼아야 한다. 이는 차이와 특수성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다양한 형태에 대항하기 위해 요구되는 통일성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체성 물신주의는 배격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른바 ‘진보주의적’ 신자유주의자들이 ‘유권자’로서 확보하려 한 ‘소수자’ 정체성이든, 반동적 신자유주의자들이 전통적 가치를 내세우며 이용하는 ‘다수’의 정체성이든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서는 오직 하나의 전략이 있을 뿐이다. 한편에 경제적 투쟁이 있고 다른 한편에 문화적 투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평등을 위한 사회적 투쟁이 있는 것이다. 169-70)]]></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84/76/cover150/e52253265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6847600</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저녁</category><title>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 바버라 F. 월터 -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33689</link><pubDate>Fri, 06 Mar 2026 12: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336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102534652&TPaperId=171336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650/66/coveroff/e10253465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102534652&TPaperId=171336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a><br/>바버라 F. 월터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01월<br/></td></tr></table><br/>머리말<br>2020년 미시간주에서 한 무리의 백인 극우 극단주의자 그룹이 꾸민 납치 시도가 내전이 임박했다는 징후라고 말한다면, 독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현대의 내전은 바로 이런 자경단원들에서 시작된다. 무장한 전투원들이 사람들에게 직접 폭력을 행사하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민병대는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충돌을 규정하는 특징이다. 시리아에서 반정부 반란자들은 반군들과 풀려난 수감자들이 뒤죽박죽된 세력으로, 극단주의 단체 이슬람 국가(IS)와 나란히 싸우고 있다. 시리아 최대의 초기 반란 세력 ─ 자유 시리아군Free Syrian Army ─ 도 중앙에서 지휘하는 조직이라기보다는 느슨하게 연결된 소규모 그룹 수백 개가 뒤섞인 집단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되고 있는 내전에서는 산적, 군벌, 민간 군사 기업, 외국 용병, 정규 반군 등이 싸우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예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공식 군복을 입은 단일한 전투 부대가 전통적인 무기를 들고 싸우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10)<br>1 아노크라시의 위협<br>이라크는 종족, 종교에 따라 정치적 경쟁이 극심한 나라였다. 북부에 사는 대규모 소수 종족인 쿠르드족은 오랫동안 후세인에 맞서 자치권을 얻기 위해 싸웠다. 이라크 인구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시아파는 수니파인 후세인과 역시 수니파가 주류인 바트당의 통치를 받는 것에 분노했다. 수십 년간 후세인은 종교나 종파에 상관없이 공직을 맡으려면 바트당에 가입할 것을 요구하는 식으로 수니파로 정부 직책을 채우고 또한 나머지 국민들은 잔인한 보안군을 앞세워 탄압함으로써, 소수 종파의 권력을 굳힐 수 있었다. 고작 침공 두 달 반 만에 이라크인들은 경쟁하는 몇몇 종파적 파벌로 뭉쳤다. 미국의 이라크 임시 정부 수반 폴 브리머Paul Bremer는 이라크에 신속하게 민주주의를 도입하기 위해 바트당을 불법화하고 후세인 정부에서 일한 모든 관리 ─ 거의 전부 수니파 ─ 는 영원히 권력에서 배제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고는 이라크군을 해체함으로써 수니파 수십만 명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16-7)<br>하지만 후세인 치하에서 권력에서 배제되었던 사람들은 기회를 포착했다. 망명을 끝내고 돌아온 시아파 반정부 인사 누리 알말리키Nouri al-Maliki나 이라크를 이슬람 체제로 변신시키려는 급진 시아파 성직자 무끄타다 알사드르Muqtada al-Sadr 같은 인물들 사이에서 곧바로 정치적 이전투구가 벌어졌다. 원래 미국은 수니파, 시아파, 쿠르드족 간의 권력 분점 합의를 중재하고 싶어 했지만, 이내 인구 구성에 따라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정부를 원하는 알말리키의 요구를 묵인했다. 권력 장악에 뒤이은 혼돈 상태였다. 수니파 반군은 처음에는 미군 병력을 추격하지 않았다(미군 또한 무장이 철저했다). 대신에 반군은 손쉬운 표적에 공격을 집중했다. 미국인들을 돕는 개인들과 단체들이었다. 반군의 목표는 미국 점령에 대한 지지를 줄이거나 근절하고 미군을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에야 반군은 미군 병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후세인이 생포되는 2003년 12월 무렵이면 이미 게릴라전이 발발한 상태였다. 17-8)<br>어떤 나라가 내전을 겪게 될지 여부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지표는 그 나라가 민주주의를 향해, 또는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움직이고 있는지 여부다. 한 나라가 험난한 이행 과정을 거치지 않고 완전한 독재에서 완전한 민주주의로 옮겨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가 지도자의 민주화 시도에는 종종 중대한 퇴보나 유사 독재적인 중간 구간의 정체가 포함된다. 그리고 시민들이 완전한 민주주의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 할지라도 정부가 언제나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독재자 지망자가 권리와 자유를 조금씩 갉아먹고 권력을 집중하면서 민주주의가 쇠퇴할 수 있다. 헝가리는 1990년에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오르반 빅토르Orbán Viktor 총리가 서서히 체계적으로 민주주의를 독재로 몰아갔다. 대개 바로 이런 중간 구간에서 내전이 일어난다. 전문가들은 이런 중간 구간을 통과하는 나라를 〈아노크라시anocracy〉라고 부른다. 완전한 독재autocracy도, 민주주의democracy도 아닌 중간 상태를 가리킨다. 20)<br>민주화를 진행 중인 정부는 앞선 체제에 비해 ─ 정치적, 제도적, 군사적으로 ─ 허약하다. 독재자와 달리, 아노크라시 지도자는 대개 반정부 세력을 진압하고 충성을 보장할 만큼 충분히 권력이 많거나 무자비하지 못하다. 정부는 또한 종종 지리멸렬하고 내부 분열에 시달리면서 기본적 서비스나 심지어 안전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다. 야당 지도자들이나 심지어 여당 내부 인사들도 개혁 속도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저항하는 한편, 새로운 지도자들은 신속하게 시민과 동료 정치인, 군 장성 들의 신임을 얻어야 한다. 이행의 혼돈 속에서 이 지도자들은 종종 실패한다. 아노크라시에서 패자들 ─ 예전 엘리트층, 야당 지도자, 한때 이득을 누렸던 시민 ─ 은 정부가 공정할지, 또는 자신들이 보호받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미래에 대한 진정한 불안이 조성될 수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경쟁자들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를 기다리느니 아직 상대적으로 자신들이 힘이 강할 때 싸움을 벌이는 편이 나았다. 23-4)<br>2 고조되는 파벌 싸움<br>정치 불안정 연구단은 오래전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던 중에 인상적인 양상을 발견했다. 각국의 한 가지 독특한 특징이 정치 불안정 및 폭력과 강한 관계가 있었다. 그것은 〈파벌주의〉라고 명명한 극단적 형태의 정치적 양극화였다. 파벌주의로 분열되는 나라들에는 이데올로기보다는 종족이나 종교, 인종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정당들이 존재하는데, 이 정당들은 타자를 배제하고 희생시키면서 통치하려고 한다. 〈파벌화되었다〉고 간주되는 나라들에 존재하는, 정체성에 기반을 둔 정당들은 대개 비타협적이고 유연하지 않다. 정당들 사이의 경계가 엄격해서 치열한 경쟁과 심지어 전투로까지 이어진다. 경쟁하는 집단들은 종종 규모가 비슷하다. 실제로 두 집단 사이에 힘의 균형이 존재할 때 이처럼 치열한 경쟁이 발생한다. 승리나 패배의 결과가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이 당들은 또한 성격상 종족적, 종교적 민족주의에 호소해서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지배적 인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35-6)<br>전문가들이 발견한 것처럼, 파벌주의는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특정 집단의 엘리트층과 지지자들이 기회를 감지한다. 아마 정권이 약해지는 순간이나 인구 변동 때문에 불만이나 취약성의 느낌이 고조되는 순간일 것이다. 그 순간 그들은 사람들을 정책의 쟁점을 중심으로 집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과 관련된 단어나 상징 ─ 종교 문구, 역사적 슬로건, 시각적 이미지 ─ 을 활용함으로써 충성을 부추긴다. 밀로셰비치가 코소보에서 오스만 전투의 기억을 환기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언어 구사는 점차 집단의 독자적 성격을 강화하면서 사회에서 긴장을 조성하며, 만약 이 파벌이 집권하면 흔히 지위를 이용해서 경쟁 파벌을 탄압한다. 정당한 법 절차를 잠식하고 공공연한 전투성을 부추긴다. 그리하여 경쟁 집단들 사이에 공포와 불신이 커지면서 긴장이 한층 높아지고, 각 집단이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무력행사를 고려하게 된다. 이윽고 이런 분열이 정치의 장에서도 나타난다. 37)<br>종족적 민족주의, 그리고 파벌을 통한 표출은 한 나라에서 스스로 강화되지 않는다. 한 사회가 정체성 구분선을 따라 분열되려면 대변자가 필요하다. 특정 집단의 이름으로 기꺼이 차별을 호소하고 차별 정책을 추구하려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대개 공직에 오르거나 그런 자리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 쟁탈전을 지지할 유권자 집단을 가두려는 방편으로 공포감을 자극하고 부추긴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종족 사업가ethnic entrepreneur〉가 그것이다. 이 용어는 1990년대에 밀로셰비치나 투지만 같은 인물들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사용되었지만, 그 후에 그런 현상은 세계 모든 지역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되고 있다. 이 전쟁 선동가들은 대개 권력을 잃을 위험이 아주 높거나 최근에 잃은 경우가 많다. 그들은 정체성에 기반한 민족주의를 부추겨 폭력과 혼돈의 씨앗을 뿌리면서 연구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부활을 위한 도박〉 전략을 활용한다. 41-2)<br>흥미롭게도, 보통 시민들은 대개 종족 사업가들에 대해 분명히 안다. 이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의제를 갖고 있고 전부 진실만 말하지 않는다는 점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자기 삶에 위협이 고조된다고 느끼면 기꺼이 지지를 보낸다. 시민들은 만약 아무리 희박할지언정 반대파가 자신들을 말살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게 되면, 아무리 악랄한 사람이더라도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지도자에게 의지하게 마련이다. 투지만이 크로아티아 문장을 채택하고 크로아티아 정부에서 세르비아인들을 숙청하자, 크라이나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이 갑작스러운 사태를 밀로셰비치의 경고가 사실임을 입증하는 증거로 해석했다. 마찬가지로, 밀로셰비치가 세르비아계 사람들이 지배하는 유고슬라비아군에 크로아티아로 이동하라고 명령했을 때, 크로아티아인들은 투지만이 주창한 바와 같이 자신들의 생활 방식이 공격을 받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양 파벌 모두 결국 자신들을 구하려면 폭력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43-4)<br>3 지위 상실이 가져온 암울한 결과<br>파벌화된 아노크라시에 불만을 품은 채 살아가는 종족 집단은 어디에나 많으며, 대부분은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에는 80개가 넘는 종족 집단이 있고 주요 종교만 최소 5개에 이른다. 하지만 오직 소수만이 조직을 이루어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역시 세계에서 종족적으로 가장 다양한 나라로 손꼽힌다. 360개가 넘는 부족과 종족-언어 집단이 있지만, 지금까지 4개 집단 ─ 암본인, 동티모르인, 아체인, 파푸아인 ─ 만이 무기를 들었다. 학자들이 처음 발견한 한 가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사실인데, 폭력적으로 바뀐 집단들이 대체로 정치 과정에서 배제되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집단은 투표권이 제한되고 정부 공직에 거의 전혀 들어가지 못한다. 정치권력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된다. 하지만 학자들이 발견한 폭력의 가장 유력한 결정 요인은 한 집단의 정치적 지위의 궤적이다. 일단 권력을 잡았다가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이 특히 싸움에 나설 가능성이 높았다. 54)<br>정치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지위 격하downgrading〉라고 지칭한다. 지위 격하는 정치적, 인구학적 사실인 만큼이나 심리적 현실이기도 하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기독교도든 무슬림이든, 백인이든 흑인이든 지위가 격하된 파벌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집단의 성원들이 자신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지위가 상실됨을 느끼고 그 결과 원한을 품는다는 사실이다. 지위 격하는 단순한 정치적 패배가 아니라 지위가 역전된 상황인 것이다. 지배적인 집단이 어느 순간 누구의 언어를 사용하고, 누구의 법을 집행하며, 누구의 문화를 존중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옮겨 간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의 가난이나 실업, 차별을 참을 수 있다. 조잡한 학교나 열악한 병원, 방치된 기반 시설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참지 못한다. 원래 자기 것이라고 믿는 장소에서 지위를 상실하는 것은 못 참는다. 21세기에 가장 위험한 파벌은 한때 지배적이었으나 쇠퇴에 직면한 집단이다. 54-6)<br>전문가들은 전쟁을 벌이는, 지위가 격하된 많은 종족 집단이 〈토박이sons of the soil〉 유형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토박이〉는 한 지역의 원주민이거나 그 역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태어난 땅의 정당한 상속자로서 특별한 혜택과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집단이 지배적인 것은 그들이 다수 지위를 차지하거나 처음에 그 영토에 거주하거나 정복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토착민〉이라고 여기며, 나중에 그 땅에 정착하거나 지역의 주요 언어를 모어로 사용하지 않는 이들은 모두 〈외부자〉라고 규정한다. 1800년 이래 벌어진 내전을 다룬 한 연구에 따르면, 〈토박이〉 범주에 해당하는 종족 집단이 반란을 일으키는 비율은 약 60퍼센트로, 다른 범주 ─ 28퍼센트 ─ 에 비해 두 배 정도 높았다. 이런 집단이 위험한 이유는 저항 운동을 조직하는 역량이 강하고 불만을 느끼는 정도가 압도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둘 다 내전을 촉발하는 주체를 결정하는 데 주요한 요인이다. 56-7)<br>4 희망이 사라질 때<br>1922년 당시 북부에 살던 아일랜드 가톨릭교인들은 나머지 아일랜드 지역과 더불어 독립을 얻지 못했다. 영국은 아일랜드 자유국을 만들었지만, 북부의 6개 주는 영국의 통제하에 남겨 두었다. 설상가상으로 웨스트민스터 당국은 북아일랜드의 경계선을 수정해서 개신교인들 ─ 스스로 영국인이라고 생각한 이들 ─ 이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게 보장했다. 결국 가톨릭교인이 아니라 개신교인이 새로 구성된 반자치 정부를 지배하면서 교육과 법률, 공공사업, 산업, 농업 등을 통제하게 되었다. 웨스트민스터 당국은 개신교인들이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한 그들 마음대로 통치하도록 허용했다. 북부의 가톨릭교인들은 아일랜드의 나머지 지역과 차단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 자기네 땅에서 소수자가 되었다. 세기 중반에 이르러 북아일랜드에는 내전의 밑바탕이 되는 조건이 두루 존재하게 되었다. 부분적 민주주의,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경쟁하는 파벌,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정치에서 배제된 토착 주민 등이 그것이다. 64-5)<br>가톨릭교인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북아일랜드에서 공정한 정치적 대표권과 평등한 대우를 얻기 위해 수십 년간 평화롭게 시위를 벌인 바 있었다. 편지를 쓰고, 시민권 협회를 결성하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야외 집회와 연좌시위를 하고, 1968년에는 벨파스트에 있는 북아일랜드 의회를 점거하기도 했다. 1969년 1월에는 미국의 셀마-몽고메리 행진을 본보기로 삼아 벨파스트에서 데리까지 〈대행진〉을 조직했다. 하지만 개신교인들은 내내 타협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영국 군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가톨릭교인들은 민주적인 런던 정부가 북아일랜드 개신교인들의 최악의 경향을 제어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지역 개신교인들이 완강하게 자신들을 권력에서 배제하는 것은 알았지만, 영국 지도자들은 지나치게 파벌적이고 유사 민주적인 북아일랜드 지도자들보다는 그래도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영국 군인들이 반란 진압 전술을 구사하자 진실이 드러났다. 바로 이 시점에서 가톨릭교인들은 희망을 잃었다. 67)<br>시위 자체는 내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사실 시위는 기본적으로 희망에서 우러나는 행동이다. 일반 시민이 집을 나와 종이와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가서 구호를 외치기 시작하는 것은 정부가 자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들의 삶이 개선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들이 정부가 자신들에게 총을 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거나 ─ 너무 무서워서 행동에 나서지 못하거나 ─ 결의를 불태우며 나가게 마련이다. 휴대 전화 하나만 달랑 들고서 거리로 나가는 것은 낙관적인 행동이다. 체제가 스스로 교정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시위가 실패로 돌아가면 희망이 사라지고 폭력의 구실이 생긴다. 대개 오랫동안 평화 시위가 벌어지고 난 뒤 내전이 일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위자들 스스로가 병사로 변신하는 것은 아니다. 불만을 품은 집단의 호전적인 성원들이 이제 다른 선택지가 전혀 없다고 느끼면서 무력 저항을 조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71)<br>5 촉매<br>2010년 이래 해마다 세계는 민주주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나라보다 내려가는 나라가 더 많은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새롭게 민주화된 나라들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신성불가침의 민주주의를 자랑하던 부유한 자유주의 국가들에서도 이런 퇴보가 나타난다. 적어도 한동안 아프리카는 이런 추세에서 두드러진 예외였다. 지난 10년의 대부분 동안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는 지구상에서 민주주의가 축소되지 않고 계속 확대된 유일한 지역이었다. 같은 시기에 아프리카 나라들은 인터넷 사용률이 매우 낮았다. 아프리카에서 인터넷 접속이 늘어난 때는 2014년인데, 당시 소셜 미디어가 주요한 소통 수단이었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는 2015년부터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 진출했으며, 이 과정에서 충돌 수준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2018년 이후 새롭게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충돌은 계속 고조되었다. 한 분석가에 따르면, 이는 〈페이스북이 지배하는 인터넷 접속이 급증하는 시기〉와 일치했다. 82-3)<br>문제는 소셜 미디어가 추구하는 사업 모델이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구글, 트위터 같은 정보 기술 기업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을 최대한 오랫동안 자사 플랫폼에 잡아 두어야 ─ 또는 그들의 표현대로 〈관여하게engaged〉 만들어야 ─ 한다. 설상가상으로 이런 행동 알고리즘은 스스로 강화하면서 이용자들을 위험한 경로로 인도하는 기이한 정보 창고를 만들어 냈다. 음모론과 반쪽 진실half-truth,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극단주의자들로 나아가는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무서운 이유는 바론 이런 〈관여〉라는 사업 모델 때문이다. 현재의 모델은 자신이 퍼뜨리는 정보가 많은 관심을 끌기만 하면 진실인지 아닌지 신경 쓰지 않는다. 오늘날 뉴스와 정보의 새로운 게이트 키퍼 노릇을 담당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누가 자사의 플랫폼을 사용하는지, 또는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제한할 이유가 전혀 없다. 실제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정보를 최대한 널리 퍼뜨리는 것이 빅테크 주주들에게는 이익이 된다. 84-6)<br>현대사에서 반민주적 성향의 포퓰리스트가 집권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가 퇴보를 겪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전에는 군 장성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독재가 생겨났다. 하지만 지금은 유권자들 스스로가 독재를 탄생시킨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주된 이유는 소셜 미디어 덕분에 후보자들이 하나의 정부 형태로서 민주주의에 관해 시민들이 가질 법한 의심을 키우거나 편승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짜 정보 캠페인을 활용해서 제도를 공격하면서 대의 정부와 자유 언론, 독립적 사법부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훼손하고, 관용과 다원주의에 대한 지지를 갉아먹을 수 있다. 또한 가짜 정보를 활용해서 공포를 부추김으로써 법질서를 강조하는 극우파 후보가 당선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가짜 정보를 활용해서 부정 선거를 주장하고 최소한 일부 유권자들에게 선거 결과가 뒤집어졌다고 설득하면서 시민들이 선거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 수 있다. 89)<br>6 우리는 얼마나 가까운가?<br>『페더럴리스트 페이퍼The Federalist Papers』의 저자들에 따르면, 공화국을 위협하는 가장 큰 세력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통제를 하고 싶어 안달인 국내의 집단이었다. 이런 파벌의 지도자들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다른 시민들의 권리나 공동체의 항구적이고 종합적인 이익을 거스르면서35 권력을 굳히고 공공선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드높일 것이었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장 커다란 위협이라고 본 파벌 유형은 계급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들은 재산 소유자들이 자신들의 부를 지키고 부의 재분배를 막기 위해 정치권력을 집중시킬 것을 우려했다. 매디슨의 삼권 분립 ─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 모델은 이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의 18세기 지도자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그들이 우려한 〈파벌화〉가 계급이 아니라 종족 정체성에 뿌리를 두고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1789년에는 적어도 연방 차원에서는 미국의 유권자가 전부 백인 ─ 그리고 전부 남성 ─ 이었기 때문이다. 106)<br>정체성 기반 정치로의 변화가 대거 시작된 때는 1960년대 중반으로, 당시 린든 존슨Lyndon Johnson은 민권 법안을 지지함으로써 남부 백인들을 배신했다. 1964년 존슨이 민권 법안을 내놓자 일대 격변이 일어났다. 민주당은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지만, 존슨과 대결한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그는 민권 법안에 반대했다)는 남북 전쟁 재건기 이래 최남부에서 선거인단 표를 싹쓸이한 첫 번째 공화당 후보였다. 이후 수십 년간 다른 정체성의 표지들이 정치화되었다. 종교가 그다음이었다. 공화당 엘리트들은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점점 결집하는 신자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점점 더 낙태 반대pro-life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기독교 우파와 관련된 정치 단체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의 지도자인 제리 폴웰 시니어Jerry Falwell Sr. 같은 사람들이 점차 득세하게 되었다. 21세기 초에 이르면, 기독교인이나 복음주의자라면 공화당에 투표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06-7)<br>한 나라의 파벌주의 수준은 5점 기준으로 평가하는데, 5점이 가장 파벌주의가 약하고 1점이 가장 강하며, 3점은 확실히 위험 구간이 된다. 2016년 미국은 3점 ─ 파벌화됨 ─ 으로 떨어졌고, 지금도 우크라이나, 이라크와 나란히 그 점수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 또한 2016년에 3점으로 떨어졌다. 이 정도 수준의 파벌주의는 과거에 두 차례뿐이었다. 남부 민주당이 비타협으로 일관하면서 비백인을 법의 동등한 보호에서 배제한 남북 전쟁이 일어나기 전, 그리고 민권 시위와 베트남 전쟁, 반체제 운동을 진압하는 데 몰두한 부패한 정부로 나라 전체가 요동치던 1960년대 중반에 그러했다. 두 시기 모두 미국의 정당들은 나라의 미래에 관해 근본적으로 다른 전망을 갖고 있었다. 나라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나라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과거와 마찬가지로, 한 집단이 점점 더 과격해지고, 초법적 조치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며, 자신의 전망을 폭력적으로 추구한다. 오늘날 공화당은 약탈적 파벌처럼 행동하고 있다. 109-10)<br>오늘날 미국은 어디쯤 와 있을까? 미국은 아노크라시의 문턱에 선 파벌화된 나라로, 빠른 속도로 공공연한 반란 단계로 접근하는 중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내전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의사당 습격 사건을 계기로 이제 정부는 극우파 단체들이 미국과 민주주의에 제기하는 위협을 간단히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공격에 가담한 많은 투사 중 일부는 실전 경험이 있었다. 우리는 아직 의사당 습격이 재연되거나 어떤 양상의 일부가 될지를 알지 못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미국인들은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불안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누구의 책임인지 의문을 던질 것이다. 어떤 이들은 혼돈을 틈타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얻지 못한 것을 폭력을 통해 획득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공공연한 반란 단계에 정말로 진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지금 당장 한 가지는 분명하다. 미국의 극단주의자들이 점점 더 조직화되고 위험해지고 완강해지며,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118)<br>7 전쟁은 어떤 모습일까?<br>테러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는 그 공격 대상 ─ 시민들 ─ 이 정치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테러 공격을 막지 못하는 정치인들에게 반대표를 던질 수 있다. 아일랜드 공화군, 하마스, 타밀 호랑이 등은 모두 일반 시민에게 더 많은 고통을 안길수록 정부가 평화를 대가로 테러리스트들에게 더 많은 양보를 할 것이라고 믿었다. 어느 쪽이든 간에 극단주의자들이 이득을 얻는다. 국가 지도자로 하여금 극단주의자들에게 유리한 정책 ─ 총기 규제 폐지, 엄격한 이민 정책 추진 ─ 을 추구하도록 설득하거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신들과 가까운 극단적 지도자를 선출하게끔 유권자들을 설득한다. 테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성공을 거두기가 굉장히 쉽다.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고 감시가 적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단체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것을 가로막는 헌법적 제약이 많기 때문에 외국 테러리스트들보다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그들은 미국인들에게 편을 선택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123-4)<br>극단주의자들은 대개 몇 가지 고전적 문서에서 자신들의 신념을 떠받치는 영감을 발견해 낸다. 미국에는 연방 수사국이 〈인종주의 우파의 바이블〉이라고 지칭한 『터너의 일기The Turner Diaries』가 있다. 아리아인 혁명이 일어나 미국 정부를 전복한다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1978년에 네오나치 단체 민족 동맹을 이끈 윌리엄 피어스William Pierce가 쓴 이 이야기는 인종적 원한을 인종 전쟁으로 끌어올리는 각본을 제공하면서 어떻게 비주류 활동가 무리가 연방 정부를 무너뜨리고 다른 백인들을 〈각성시켜〉 자신들의 대의로 이끄는지 ─ 테러 공격, 대량 살상 폭탄 ─ 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터너의 일기』는 극우 테러리즘을 직접적으로 고무한 바 있다. 이 책에는 연방 수사국 본부 폭탄 공격과 의사당 건물 습격, 그리고 〈인종 배반자들〉 ─ 정치인, 변호사, TV 뉴스 진행자, 판사, 교사, 목사 등 ─ 을 교수대에 목매달아 죽이는 〈밧줄의 날〉 제정 등에 관한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124-5)<br>오늘날 미국의 극단주의자들은 이른바 가속주의accelerationism를 신봉한다. 현대 사회는 구제할 길이 없으며 그 종말을 한시바삐 앞당겨야만 새로운 질서를 세울 수 있다는 묵시록적 믿음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미국을 반란 단계에서 위로 끌어올리고 또한 어쩌면 종족 청소로 이끌기 위해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다. 가속주의 신봉자들은 일반적인 수단 ─ 집회, 우파 정치인 선출 ─ 으로는 충분한 진전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폭력을 통해 변화를 재촉해야 한다고 믿는다. 테러리즘 전문가 맥냅이 설명한 것처럼, 그들은 충돌을 유발하기 위해 코로나 록다운부터 인종 정의를 위한 시위에 이르기까지 온갖 구실을 찾는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이런 행동을 계기로 폭력의 연쇄 반응이 시작되어 온건한 시민들 ─ 정부의 억압과 사회적 불의를 눈뜨고 지켜보는 시민들 ─ 도 그들의 대의에 동참하게 된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에는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대규모 충돌이 필요하다고 믿는 극우 단체가 수백 개 존재한다. 128-9, 132)<br>반란자들이 강력한 민주주의에 대항해서 사용하는 전략은 무수히 많다. 한 가지는 본질적으로 소모전으로, 사람과 공공 기반 시설을 겨냥한 공격을 꾸준히 이어 가는 방식이다. 또 다른 전략은 협박이다. 중앙 정부를 무너뜨릴 수 없다면, 폭력을 행사해서 사람들을 직접 굴종으로 몰아갈 수 있다. 또 다른 테러 전략은 〈더 세게 지르기outbidding〉이다. 한 전투적 집단이 지배권을 공고히 굳히기 위해 다른 집단들과 경쟁할 때 이 전술을 구사한다. 극단적 이데올로기와 활동 방식은 더 헌신적인 전투 부대와 단호한 지지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으며, 대의에 헌신하지 않는 이들을 솎아 내면서 빈약한 성과, 편 바꾸기, 배신 등의 문제를 줄인다. 마지막 테러 전략은 〈망치기spoiling〉다. 온건한 집단들이 새로운 종족 국가를 세우려는 원대한 목표를 위태롭게 만들고 뒤엎으려 할 때, 테러리스트들이 구사하는 전술이다. 온건한 반군 집단과 정부의 관계가 개선되어 평화 협정이 임박한 듯 보일 때 보통 이 전략이 작동한다. 133-5)<br># 그레고리 스탠턴Gregory Stanton이 쓴 문서 「제노사이드의 10단계The Ten Stages of Genocide」1. 분류 : 권력을 쥔 한 정체성 집단이 시민들 사이의 차이를 부각시킨다.2. 상징화 : 그들 자신이나 다른 집단을 가리키는 일정한 표식을 도입한다.3. 차별 : 법률이나 관습을 동원해서 다른 이들의 권리를 부정하거나 억압한다.4. 비인간화 : 표적이 된 소수자를 범죄자나 인간 이하로 폄하한다.5. 조직화 : 군대나 민병대를 모아서 다른 집단을 근절하려는 계획을 세운다.6. 양극화 : 선전을 확대하면서 표적 집단을 더욱 악마화하고 분리한다.7. 준비 : 군대를 조직하고, 사람들에게 피해자가 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주입한다.8. 박해 : 본격적이고 집단적으로 표적 집단을 탄압한다.9. 절멸 : 군대와 법집행 기관의 도움을 받아 표적 집단을 완전히 말살한다.10. 부정 : 가해자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부정한다.<br>흔히들 종족 청소가 증오에 의해 추동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증오는 존재하지만 종족 청소를 부추기는 진짜 요인은 공포다. 자신이 위협받고 취약하다는 공포 말이다. 폭력 사업가들은 이런 불안을 활용하면서 적이 자기를 해치기 전에 먼저 적을 해치라는 신호를 보내는 생존 본능에 편승한다. 이런 실존적 공포가 국내의 군비 경쟁으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 집단이 불안을 느끼게 되면 안전을 확보하고자 민병대를 결성하고 무기를 사들인다. 그러면 경쟁 집단도 불안을 느끼면서 똑같이 민병대를 결성하고 무기를 사들인다. 또다시 앞의 집단은 훨씬 더 많은 무장을 갖출 수밖에 없다. 양쪽 모두 자신들이 방어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믿지만, 그 결과 한층 더 불안감이 조성되어 언제든 전쟁으로 이어지는 나선 운동이 촉발될 수 있다. 사람들이 무장을 갖추면 이런 식의 안전 딜레마가 생겨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의 총기 판매는 2020년에 역대 최고를 기록해서 1월에서 10월 사이에 1천7백만 정이 팔렸다. 137-8)<br>8 내전을 예방하기<br>1986년 아파르트헤이트 정부가 억압을 확대하자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들 ─ 미국, 유럽 공동체, 일본 ─ 이 경제 제재를 부과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이미 경제 불황을 겪고 있었는데, 1989년 비타협적인 P. W. 보타P. W. Botha의 후임으로 대통령이 된 F. W. 데클레르크F. W. de Klerk는 중요한 계산을 했다. 국가의 생존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것이다. 집권당인 국민당 소속이긴 했지만 데클레르크는 실용주의자이기도 했다. 경제가 붕괴하면 백인이 쌓아 둔 부도 붕괴할 터였다. 공화국 인구의 4분의 3은 흑인이었다. 백인 통치를 계속 고집하면 내전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는데, 백인이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데클레르크는 내전 대신 아프리카 민족 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를 비롯한 흑인 해방 정당에 대해 29년간 이어진 금지를 철폐하고, 언론 자유를 복원했으며, 아프리카 민족 회의의 지도자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를 포함한 정치범을 석방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내전 직전에 멈춰설 수 있었다. 141)<br>1989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오늘날의 미국보다 내전에 더 가까운 상태였다. 백인이 흑인을 억누르기 위해 만든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는 1965년까지 미국에 존재한 유사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보다 훨씬 더 억압적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흑인이 백인과 결혼하거나, 백인 구역에 사업체를 설립하거나, 〈백인 전용〉 표기가 된 해변이나 병원, 공원에 가는 행위는 불법이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노크라시 역사도 현대 미국보다 훨씬 길어서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 미국은 중간 구간에 잠깐 머물렀을 뿐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또한 스스로 〈토박이〉라고 생각하는 주요 집단이 두 개 있었다. 흑인과 백인 모두 이 땅에 대한 역사적 권리를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한 집단만이 그런 주장을 한다(주변으로 밀려나고 상대적으로 인구도 적은 원주민은 예외다). 1980년대 후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유혈 충돌이 벌어질 위협에 비하면 오늘날 미국의 위험성은 크지 않은데, 그래도 어쨌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전쟁을 피했다. 142)<br>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례를 보면 지도자 ─ 기업 지도자, 정치 지도자, 반대파 지도자 ─ 의 힘이 떠오른다. 지도자는 위험에 직면해서 타협을 할 수 있고, 또는 싸움을 선택할 수 있다. 데클레르크와 만델라는 협력하는 쪽을 택했다. 만델라를 비롯한 흑인 지도자들은 백인들이 상당한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계속 유지하게 해주는 조건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데클레르크는 흑인에게 완전한 시민권과 과반수의 정부 장악을 부여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었다. 보타는 데클레르크처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원래 무력 저항에 찬성했던 만델라는 종족적 폭력을 옹호할 수 있었다. 또는 종족 사업가가 되어 내전을 통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흑인 동포들의 분노와 원한을 활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대신 치유와 통합, 평화를 설파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더 많은 충돌과 유혈 사태를 겪지 않게 만든 것은 책임을 맡은 지도자들이었다. 1993년 데클레르크와 만델라는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142)<br>한 나라의 거버넌스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경제 개선보다 더욱 중요하다. 부유한 나라가 경제 번영에 걸맞는 수준에 비해 정부가 좋지 않으면, 〈이후 시기에 내전이 발발할 위험성이 크게 증가했다〉. 따라서 미국 같은 부유한 나라의 정부가 무능하고 부패하게 되면 설령 1인당 소득이 바뀌지 않더라도 내전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달리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어떤 특징이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할까? 피어런은 〈좋은 일은 대개 동반하는 경향이 있지만〉 세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8 법치(법적 절차의 평등하고 공정한 적용), 발언권과 책임성(시민들이 정부를 선택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정도, 그리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유능한 정부(공공 서비스의 질과 행정 조직의 질과 독립성)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특징은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도와 정치 제도가 탄탄하고 정당성과 책임성이 있는 정도를 반영한다. 거버넌스가 개선되면 이후에 전쟁이 벌어질 위험성이 줄어든다. 144-5)<br>정치적 양극화 때문에 내전 발발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내전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파벌화다. 시민들이 종족이나 종교, 지리적 구분을 바탕으로 집단을 형성하고, 정당들이 약탈적으로 바뀌어 경쟁자를 배제하고 주로 자신과 지지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실행할 때 파벌화가 완성된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만큼 파벌화를 부추기고 가속화하는 것은 없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본보기이자 자유의 횃불이지만, 우리는 돈과 극단주의가 우리 정치에 침투하게 방치했다. 우리는 우리의 민주적 제도와 사회를 강화할 수 있다. 우리는 뉴딜을 통해 이런 일을 해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사람들을 다시 일하게 하고, 많은 미국인을 빈곤에서 구했으며, 경제 체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을 회복시키면서 희망을 되살렸다. 이제 다시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자기 차별적이고 약탈적인 파벌주의의 경로에서 벗어나 우리 나라의 장기적인 건전성에 대한 희망을 회복시키기 위해 공적 담론을 되찾고 중재해야 한다. 154, 156-7)]]></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650/66/cover150/e10253465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6506622</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저녁</category><title>왜 아프리카 원조는 작동하지 않는가 / 로버트 칼데리시 - [왜 아프리카 원조는 작동하지 않는가 - 아프리카 개발협력의 혁신적 전략 10가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27194</link><pubDate>Tue, 03 Mar 2026 07: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271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532532396&TPaperId=171271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805/86/coveroff/e5325323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532532396&TPaperId=171271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왜 아프리카 원조는 작동하지 않는가 - 아프리카 개발협력의 혁신적 전략 10가지</a><br/>로버트 칼데리시 지음, 이현정 옮김, 허성용 해제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11월<br/></td></tr></table><br/>1부_ 아프리카는 무엇이 다른가<br>1장. 변명거리 찾기<br>아프리카 문제의 ‘원인’으로 가장 많이 지목되는 것이 ‘국제경제가 아프리카에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소규모 농업 생산자들이 국제시장에서 불리하고 자국 농민들을 보호하는 서구 국가들의 정책이 아프리카의 잠재적 수출을 제한하거나 (특히 목화의 경우) 국제가격을 떨어뜨린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부유한 국가들의 경쟁자로 인해 입지를 잃은 것이 아니라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공급자들에게 시장을 내주어왔다.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은 자신들의 가장 큰 자산인 농업 분야가 과도한 과세 및 여타 잘못된 정책의 도입 탓에 꾸준히 쇠퇴하는 상황을 방관해왔다. 세계경제에서 후발주자이긴 하지만 아프리카 각 정부들은 경제에 스테로이드를 투여하는 대신 생산자에게 족쇄를 채워버린 것이다. 사실 국제경제는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갖기는커녕 오히려 아프리카에 우대 조치를 취해왔다. 부국富國들은 수십 년 동안 농산물을 포함한 많은 아프리카 제품에 시장을 개방했다. 23)<br>부유한 나라들이 농산물 시장을 더욱 개방해야 한다는 국제적 압력은 결국 열대 지방 농부들의 새로운 기회로 이어지겠지만, 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아프리카 국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생산 효율성을 높이려면 상당한 개혁과 투자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효율성’은 아프리카의 많은 곳에서 금기어로 여겨져왔다. (악당들로 간주되는) 세계은행과 IMF로부터 20년 넘게 받은 조언과 강압적인 정책을 상기시키는 탓이다. 이 두 기구는 아프리카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표적이다. 아프리카인들처럼 세계화를 비판하는 이들 대부분은 여전히 세계은행을 비난하고 있으며 몇몇은 극단적 용어를 사용했다. 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정적政敵들을 살해했으며, 야당 우세 지역의 사람들을 굶주리게 한 잔인한 독재자다. 그러나 IMF와 세계은행에 비하자면 그가 아프리카에 끼친 피해는 경미하다.” 24)<br>아프리카 정부들은 왜 정부가 국제기구와 협상하고 있는지를 국민에게 ‘절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정부들과 일부 민간기업들은 개혁에 믿음이 없거나, 대충 동의했거나, 혹은 원조 관계자들이 방심할 경우 개혁을 깎아내렸다. 그 결과 ‘위기’는 그들 자신이 아닌 타인 탓에 초래된 것으로 보였다. 전체 개혁 과정이 틀어진 것도 대개는 아프리카 정부들이 국민에게 상황을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가 세계시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 국가예산이 필수 자재와 물자 확보는커녕 공무원들의 급여 지급도 간신히 감당하는 수준임을 아는 아프리카인은 거의 없었다. 아프리카인들이 목격한 것은 사회기반시설과 공공 서비스의 붕괴뿐이었다. 그들은 자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고, 빈곤을 줄이겠다고 말하지만 매번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듯한 외부 기구들은 더욱 신뢰하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생산 및 유통 비용이 높고 투자 환경이 열악하다는 근본적 문제는 아프리카를 지원하려는 서구의 서툰 노력에 가려졌다. 26)<br>노예무역이 아프리카인의 사고방식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해도 그 상처가 아프리카 대륙의 물질적 발전을 방해하는 원인인지는 의문이다. 노예제도는 영국에서는 1833년에, 프랑스 영토에서는 1858년에 폐지되었다. 그보다 최근인 제2차 세계대전 때는 600만 명의 유대인이 다른 나라로 보내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말살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의 상처가 생존자들을 덜 기업가적이고 자신감도 낮아지게 했다는 견해는 찾아보기 어렵다. 민감한 주제이긴 하지만 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총리이자 현대 아프리카에 대한 계몽적 도서를 여러 권 저술한 장 폴 응구판데Jean-Paul Ngoupandé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예무역은 실제로 존재했고, 많은 이가 우리의 어려움이 노예무역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나는 완전 독립을 실현하면서 양호하게 출범한 코트디부아르 같은 나라에서의 쿠데타, 즉 정치적 혼란이 노예무역 탓이라 여기지 않는다. 이는 현 아프리카 사람들의 책임이다.” 27-8)<br>아프리카의 부채 부담은 어떠할까? 부채는 더딘 아프리카 발전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그 증상이다. 아프리카가 다른 대륙보다 덜 현명한 방법으로 돈을 빌렸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대신 아프리카의 부채를 견딜 수 없게 만든 것은 연간 700억 달러의 수출 소득 손실이다. 게다가 세계 사회는 25년 이상 아프리카의 빚을 탕감해왔다. 부채 탕감이야 새로울 바 없지만 순수 탕감의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1998년 서방 국가들은 아프리카가 가진 500억 달러의 부채를 탕감해주기로 합의했다. 전 세계의 후한 인심의 덕을 보는 것은 국민이 아닌 정부다. 부채 탕감에도 비용이 든다. 일부 국제운동가들은 채무면제가 비교적 힘든 일이 아니며 아프리카 정부들이 부채를 상환하려는 의도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서방 정부들 또한 과거의 차관을 회수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부채감소에 충당되는 돈은 신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데 사용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33)<br>2장. 다양한 시각에서 본 아프리카<br>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24개국의 경제 정책을 조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기구다. 내 업무는 회원국들의 대외원조 절차를 단순화하고 상호조화시킴으로써 개발도상국의 행정 부담을 완화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원조국들인 미국, 일본, 독일은 절차의 단순화에 무관심했다. 이들 국가는 자신들의 관대한 원조에도 지켜야 할 ‘조건들’이 있다는 점을 국회나 여론에 보여주고 싶어 했고, 저마다 자신의 양식과 규정을 빈틈없이 지키려 했다. 공동원조의 표준과 절차를 정하고 지켰다면 아프리카 및 아시아에서의 서류 업무는 상당히 줄어들었겠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로 남아 있다. 복잡하고 번거로운 규칙은 원조 예산을 늘리지 않아도 되는 좋은 핑계이기도 했다. 나는 곧 현장에서 마주했던 구체적인 문제들을 놓치기 시작했고, 그래서 12개월이 채 지나기 전에 워싱턴 D.C.에 있는 세계은행에 탄자니아 차관 담당자로 합류했다. 43)<br>혹독한 열대우림 기후, 토양, 질병 등 아프리카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동일하게 갖고 있는데도 인도네시아는 경이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기적’의 선두에 있지 않던 이 나라는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정부기관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외국의 기술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발전은 국제개발의 성공 사례를 이야기할 때 언급되지 않는 나라 중 하나이다. 그 발전이 권위주의적인 정권에 의해 성취되었기 때문이고, 인도네시아 경제의 바탕을 이루는 부정부패와 연고주의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도네시아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다. 정책 입안자들은 정부 적자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현명하게 자금을 빌렸다가 제때 상환하며, 새로운 도전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등 ‘좋은 살림살이’를 했다. 그러나 그들 전략의 핵심은 석유 수입의 대부분을 지역개발 및 소득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에 현명하게 투자했다는 것이다. 43-4)<br>3장. 권력을 가진 악당들<br>아프리카의 문제를 한 문장으로 간단히 설명하자면 좋은 정부가 한 번도 수립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파트너’ 또는 ‘후원국’이 된 과거 아프리카 식민통치국들은 아프리카 독립 후 초기 몇 년 동안 아프리카가 선거나 다당제 민주주의를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서구인이 갖는 정치적 권리들을 아프리카 사람은 갖지 말아야 한다는 그러한 주장은 당시의 젊은 지도자에게 설득력이 없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들 중 많은 이가 전성기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가장 뛰어난 지도자 중 하나였던 케냐의 톰 음보야Tom Mboya의 이상주의, 선명성, 약속들은 1969년 그가 암살되면서 함께 사라졌다. 부르키나파소의 토머스 상카라Thomas Sankara와 같은 이들 역시 어려운 현실에 맞서 자신의 이상을 시험해볼 기회를 갖기도 전에 살해되었다. 그 이상주의자들도 살아 있었다면 본래 품었던 뜻과는 달리 일당제 국가를 세웠을 수도 있었겠으나 우리로선 알 길이 없다. 그리고 그들을 죽인 이들은 그렇게 했다. 57-8)<br>아주 작은 진보적 변화까지 알아차리는 데 익숙한 아프리카 전문가들은 1991년 베냉이 국민투표로 정권을 교체한 첫 번째 아프리카 국가라는 점을 지적하는데, 그런 예가 희소하다는 점에서 망연자실해진다. 지난 수십 년간 대부분의 아프리카에서는 어떠한 정치적 발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대륙 인구의 절반은 네 개 국가가 차지한다. 1억 2,700만 명의 나이지리아, 6,400만 명의 에티오피아, 5,100만 명의 콩고민주공화국, 4,300만 명의 남아공이다. 앞의 3개국 인구를 합하면 2억 5,000만 명가량인데, 그들은 삶의 대부분 동안 정치적 혹한기 또는 명백한 사회적 혼란기를 겪었다. 독립 이후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번영을 누린 나라는 인구가 각각 200만 명, 100만 명인 보츠와나와 모리셔스 두 소국뿐이다. 이 두 나라와 남아공은 1980년부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국가경쟁력지수 리스트에 지속적으로 등장한 아프리카 국가다. 이 지수는 냉철한 투자자들에게 투자 가이드 역할을 한다. 59-60)<br>4장. 문화, 부패, 정당성<br>나이지리아의 소설가 치누아 아체베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에 서구적 윤리가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아프리카인들이 삶에 접근하는 방식은 반투인Bantu의 고사성어인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은 이런 구분들이 구시대적이고 논란의 여지를 갖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아프리카인들은 확실히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가치를 주장한다. 그중 하나가 마을 단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관대함과 환대다. 전근대적 문화에는 놀라운 가치가 있고 그중 일부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 고귀한 야만인의 신화를 믿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관대함과 같은 일부 전통 가치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게으름은 악덕으로 여겨졌기에 마을 사람들은 게으름뱅이를 돕지 않고 추방했다. 또한 나눔 문화의 범위는 부족 단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아무튼 아프리카인들 사이의 공동체 의식은 놀라울 정도로 강하다. 76-7)<br>또 하나의 뚜렷한 아프리카의 가치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아프리카 문화는 가족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의 개인은 부모나 형제자매에 대한 언급 없이 완전해질 수 없다. 전반적으로 아프리카인들은 눈앞의 상황에 몰두한다. 거의 모든 면에서 아프리카인들은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지금의 삶을 즐기는 편이다. 가족과 즐거움 외에 노인 공경 또한 아프리카인에겐 매우 중요하다. 사실 아프리카인들은 권위 있는 연장자들을 극도로 존경한다. 지혜와 경험이 높이 인정받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것들은 영향력의 전제조건이 아니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리더십은 지혜와 경험 대신 무지와 부정직, 완고함을 특징으로 한다. 결함 있는 상사에 대한 인내심은 도시화와 빈곤의 압박으로 무너지고 있지만 젊은 사람들은 거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 대개는 그룹에서 더 나이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인물이 먼저 의견을 말하기를 기다리거나,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중개자를 활용하는 3각 대화에 의존한다. 77-8)<br>누군가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아프리카인의 특징이 1950~1960년대의 이탈리아인이나 스페인인의 특징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가족관계, 삶에 대한 사랑, 나이와 권위에 대한 존중은 경제발전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는 가치다. 그러나 아프리카인의 특징 중에는 라틴계 사람들을 압도하는 어두운 면이 있다. 가족우선주의는 아프리카에서 압제적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자발적으로 가족을 우선시하지 않으면 잔혹한 방식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또 친척 중 누군가 성공할 경우 그리 큰 성공이 아니어도 다른 친척들은 종종 그 성취의 열매를 나누어 받겠다고 고집한다. 이는 1960년대에 이미 사회적 관습이 되어 있었다. 한 관찰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규칙을 어기는 자는 누구든 배척당하고, 씨족에서 추방되며, 끔찍할 정도로 버림받는 상태에 처한다.” 심지어 연장자에 대한 존경심도 대륙의 쇠퇴에 기여했다. 아프리카인들은 독재와 권위 있는 선출직 공무원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79)<br>아프리카인들의 종교적 신념 또한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다. 순수한 종교 외에 사악한 종교도 그들을 넘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인들은 대개 숙명론적이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들의 세계관에서 보자면 자신들은 사건 통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저 그것을 받아들이고 순종한다. 많은 부모가 아이가 숨을 거둬도 그 원인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거두어가셨다.”라는 문구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로한다. 초자연적 질서에 대한 이러한 포용성은 아프리카인들이 현세에서 가혹한 현실에 도전할 가능성을 낮춘다. 사실상 그들의 믿음이 사회정의 구현의 의지를 꺾는 것이다. 프랑스계 캐나다인이 처음으로 프랑스를 방문할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시 조상의 나라에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찾을 수 없는 것은 수 세기 동안 억압받았던 분노, 야망, 그리고 순수한 인간의 용기일 것이다. 80)<br>역설적이게도 부패의 뿌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강력한 가족 유대에 원인이 있다. 가족의 압력이 너무 만연하여 아프리카인들은 그것을 농담거리로 삼기도 하고, 할 수만 있다면 가족으로부터 도망가기도 한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는 장관과 고위 공무원들이 있는데, 그들의 문 밖에는 심지어 주말에도 불만을 토로하거나 물질적 지원을 받으려는 사촌, 지인, 유권자가 줄을 서 있다. 아프리카에서 부패가 늘어난 것은 명백한 순수함 때문이다. 이는 변명이나 용납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부패는 아프리카의 매우 고질적인 문제이므로 세계는 이제 아프리카인을 돕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권력이나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은 정치적 격변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크다. 심지어 야당들도 자신들이 악용할 차례를 기다리기 때문에 그런 시스템을 별로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반부패 캠페인의 목적은 홍보일 뿐이고 홍보 대상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82-5)<br>아프리카인의 특성이 그들을 운명론자로 만들고 부패가 그들의 사회지도층을 서로 꽁꽁 엮는다면, 서구사회가 생각하는 올바른 정치는 아프리카의 불행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교정이 필요한 서구의 인식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첫 번째이자 그나마 가장 나은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점점 더 가난해진 아프리카에 대한 일반적 동정심이다. 자신의 복지가 다른 사람들의 복지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실업자들을 실직 상태에 있다고 비난하는 것만큼이나 아프리카에 대한 비판을 꺼린다. 교정이 필요한 두 번째 인식은 프랑스, 독일, 영국 등 과거 식민 국가들이 갖는 역사적 또는 인종적 죄책감이다. 이런 나라의 시민들은 식민지 시대가 아프리카의 일부 ‘황금기’를 파괴했으며 인위적인 국경을 만들어 독립정부가 지속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별 이견 없이 받아들인다. 그들은 서구의 이해관계가 아프리카에 가한 피해에 대해 보상해야 할 의무가 있다 여기고 있다. 85)<br>세 번째로 교정이 필요한 인식은 아프리카가 실제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잘살고 있으며 많은 문제를 훌륭히 처리하고 있다는 견해이다. 어떤 사람들은 서구가 아프리카에서 배울 것이 많고, 문제는 오히려 유럽과 북미에 많다고 믿는다. 아프리카인들이 균형 잡힌 시각, 공동체 의식, 회복력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네 번째로 정치적 교정이 필요한 인식은 세계화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국제무역이 어떻게 가난하고 무방비 상태에 있는 국가를 도울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사람들은 더 나아가 세계 경제를 도덕적 전쟁터로 묘사한다. 그들에 따르면 기업의 이윤은 ‘피 묻은 돈bloody money’이고 세계무역기구WTO: World Trade Organization는 ‘전쟁 기계’이며, 부유한 국가는 ‘가난한 사람들과의 세계 전쟁’을 벌이고 있다. 표현 형태가 세속적이든 극단적이든 서구의 이러한 감수성은 아프리카 지식인들이 자신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도록 허용한다. 85-6)<br>2부_ 최전방 이야기<br>5장. 탄자니아: 아프리카식 사회주의<br>현대 아프리카의 초창기 영국의 탕가니카 보호령과 이슬람 섬 국가인 잔지바르가 합쳐져 1964년에 탄생한 탄자니아는 무엇보다 자립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이 실험과 이를 주도한 인물은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다. 줄리어스 니에레레 대통령에겐 높은 이상, 강한 공직자 의식, 자신을 표현하는 재능, 목표 달성에 대한 완고함이 있었다. 이런 특징들이 가장 잘 표출된 것이 1967년의 아루샤 선언Arusha Declaration이다. 아루샤 선언은 원조기구들에게 최소한 탄자니아만큼은 스스로 중장기 개발을 계획하고 있으며 국제 현실에 맞게 속도나 목표를 조정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우자마아Ujamaa’ 또는 ‘가족주의familyhood’라 불리는 니에레레식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보다는 아프리카의 연대와 기독교의 전통에서 영감을 받았다. 역설적이게도 탄자니아는 자립을 고집한 덕에 매우 많은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니에레레의 예상대로 외부 지원은 항상 부족했다. 94-6)<br>아루샤 선언 후 10년이 지난 1977년, 니에레레는 원조사업 진행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내놓았다. 1967년엔 탄자니아 목화솜 대부분이 천으로 만들어지지 못했으나 1975년까지 여덟 개의 방직 공장이 생겨났고, 초등학교 입학률은 거의 두 배로 뛰었으며, 인구의 약 3분의 1인 500만 명 이상이 성인 문해력 교육을 받는 중이고, 농촌 보건소의 수는 세 배 이상 증가했으며, 300만 명의 시골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이용하게 되었고, 개인 소득의 격차가 줄어들었으며, 마을화 프로그램이 거의 완성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아루샤 선언의 핵심인 농업 부문은 가장 낮은 수익을 기록했다. 식량생산 증가 속도가 인구 증가 속도와 보조를 맞추지 못했고 정부가 정한 농작물 가격은 너무 낮았다. 글로벌 경제 상황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수입 가격은 높고 수출 가격은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탄자니아는 비효율적이었다. 국영기업은 부의 창출은커녕 흡수를 하고 있었고 생산성은 하락 중이었다. 97-8)<br>니에레레는 경제가 성장하는 속도보다 빠른 정부 조직의 확대는 탄자니아 및 아프리카 전역을 예산 부족의 고통에 빠뜨릴 것임을 깨달았다. 개발 예산의 60퍼센트는 해외원조로 이루어졌는데 그가 보기에 이 수치는 지나치게 높은 것이었다. 게다가 탄자니아의 부정부패는 처음에 억제되는 듯 보였으나 점차 퍼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탄자니아는 계속해서 많은 지원을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채상환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자 몇몇 원조기구들은 그 부채 중 일부를 탕감해줘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느꼈다. 개별 지원국의 부채 탕감만으로는 탄자니아를 살릴 수 없었다. 고유가, 낮은 수출·입, 악천후 및 늘어나는 부채상환은 1981년까지 이 나라의 목을 졸랐다. 탄자니아 정부는 매주 말 그대로 돈을 세계은행 프로젝트에 쓸지, 아니면 배 한 척 분량의 긴급구호 식량을 더 구매할지를 선택해야 했다. 정부는 아주 자연스럽게 부채 대신 긴급 구호 식량을 택했고 세계은행은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했다. 98-100)<br>탄자니아 친구들은 그에게 늘 상충된 조언을 해주었다. 우선 초등교육을 강조했던 그를 칭찬하고는 나중에는 고등교육을 소홀히 했다며 항의를 표했다. 1970년대 중반의 재앙적인 가뭄 이후 식량 가격 인상을 장려해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옥수수를 이용한 자급자족을 달성했으나 커피와 차 같은 수출작물 농업을 붕괴시켰다며 되레 비난을 받았다. 1977년 외부인들은 산업계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원자재 및 예비 부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수입통제를 완화해달라고 촉구했으나 얼마 후 원조기구들은 탄자니아 정부가 전 세계의 커피 붐이 끝나갈 무렵에야 커피 산업과 관련한 조치를 취했다고 이야기했다. 이 모든 조언은 최고의 분석과 의도에서 나온 것이지만 우선순위와 인식의 변화 속도는 너무나도 빨랐고 탄자니아는 경제적 자립이란 목표와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탄자니아 경제에 대한 실험적 시도에 이미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고, 세계적 경기침체와 낮은 국제 원자재 가격은 선택지를 더욱 줄어들게 했다. 101)<br>아루샤 선언이 있은 지 30년 뒤인, 그리고 니에레레의 성과 평가가 있은 지 20년 뒤인 1997년 세계은행은 연례원조회의를 다르에스살람에서 개최했다. 탄자니아의 요구는 전반적으로 더 많은 원조를 해줄 것, 원조기구는 개별 프로젝트 비용을 더 많이 분담할 것(그러나 이미 80~95퍼센트가 원조기금으로 운영 중이었다), 그리고 해외원조 채무상환을 위한 특별기금 조성을 포함하여 더 많은 부채를 탕감해줄 것 등이었다. 탄자니아의 벤저민 음카파Benjamin Mkapa 대통령은 50개 마을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도 인용했다. 경제원조 결과로 예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느끼는 것은 다섯 가구 중 한 가구 꼴에 불과했고, 더 안 좋아진 것으로 느낀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40퍼센트였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달라지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남아공 사람들은 양조장과 담배회사를 인수했고, 인도인들은 자전거 공장을 매입했으며, 탄자니아의 인구는 22년 만에 1,700만 명에서 3,300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101-2)&nbsp;<br>6장. 코트디부아르: 기적의 종말<br>1960~1990년에 번영했고 안정적이었으며 개인투자자가 몰렸던 이 나라는 인근 국가에서 온 구직자들의 안식처였다. 비록 1990년대 초반에는 주요 수출품인 코코아의 가격하락 및 고평가된 통화로 어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기적은 1999년 12월 24일 군부의 정부 전복과 함께 끝났다. 쿠데타는 아프리카 여타 지역들에선 흔한 일이었지만, 코트디부아르로서는 1960년 독립 이후 처음 발생한 것이라 큰 충격이었다. 코트디부아르 내의 다양한 커뮤니티, 내국인과 외국인 간의 관계는 내가 아비장에 살았을 때부터 그 나라에 독이 되었다. 과거 이민자 보호소는 ‘이부아리테Ivoirité’라 불리는 개념에 집착했다. 이부아리테는 코트디부아르 국경 밖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수상한 존재라 암시하는 국수주의 개념이었다. 한때 종교적 관용을 자랑했던 코트디부아르에 새롭게 등장한 이 개념은 이 나라의 최대 단일집단인 이슬람교도들이 기독교인들보다 열등하고 시민권도 차별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04)<br>1990년에 다당제 선거가 도입되었는데도 코트디부아르는 여전히 일당제 국가나 마찬가지였으며 공개토론 자리는 거의 없었다. 반정부 성향의 야당 언론이 존재하긴 했으나 라디오와 TV 방송은 여당 전용이었고, 정치적 시위는 1992년 2월 이후 금지됐다. 정치적 표현들에 대한 압박, 그리고 ‘좋은 행동’으로 점수를 따려는 야당의 노력에 대한 압박은 여론 형성을 막았다. 이제 대중의 열망과 좌절은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어야만 했다. 이렇게 격앙된 환경에서 대통령이 된 로베르 구에이Robert Gueï 장군은 모든 올바른 조치를 취했다. 첫 대국민 방송에서 크리스마스와 이슬람 축제를 방해한 것을 사과했고, 몇 달 전 자국민 수백 명을 강제송환한 것에 대해 이웃나라인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에 유감을 표했다. 그는 통합을 약속했고, 형제애 및 이해와 관련해 우푸에부아니가 가장 좋아하는 격언들을 인용했다. 로베르 구에이의 연설은 이런 변화가 대개 투표보다 쿠데타나 암살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105-6)<br>다음 선거는 2000년 10월로 결정되었으며 로베르 구에이는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말을 한 지 불과 몇 주도 지나지 않아 전임자의 행보를 따랐다. 가장 중요한 안건인 대통령 출마 자격을 두고 그는 처음엔 모호한 입장을 보였으나 결국엔 ‘외국인’을 선거 과정에서 배제하려는 이들의 편에 섰다. 이부아리앵 인민전선FPI: Ivorian Popular Front당의 로랑 그바그보 대표는 민주주의자이므로 이러한 선거 조작에 반대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공명정대한 선거가 자신의 당선 확률을 낮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악마와 계약을 했고, 후보 자격 관련 제한을 받아들여 경쟁 구도를 보다 편리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로랑 그바그보는 코트디부아르의 네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지지자들은 열광했고 그간 정치에서 배제되었던 많은 인사가 중용되었다. 그렇지만 그바그보 정부는 코트디부아르 역사에 또 다른 추한 면을 남겼다. 한때 국제주의자였던 새 대통령은 ‘이부아리테’ 개념을 새로운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113-4)<br>사실 건국 이래 30년간 지속된 정치적 탄압은 격정과 질투심을 키웠고, 세기 말에는 추악한 모습으로 터져나오게 했다. 또한 자아도취와 자산증식에만 몰두하던 정치 지도자들은 다른 이들이 뒤따를 수 있는 패턴을 형성했다. 혼인을 통해 이미 부유해진 우아타라 같은 사람조차 역사가 자신을 대통령으로 원한다고 생각했다. 그바그보처럼 권력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감투를 위해서라면 조작된 선거 규정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때 자랑스러웠던 이 나라는 고집 센 정치인 셋과 장군 하나(로베르 구에이)로 불과 10년 만에 몰락했다. 우아타라와 그바그보 같은 몇몇 인물은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결국 권력에 눈이 멀어 원칙보다 잇속을 우선시했다. 2004년 말까지 아비장은 마치 아프리카의 축소판처럼 후미진 곳이 되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 11월 분쟁이 격화되자 코트디부아르인들은 처음으로 안전을 찾아 국경을 넘었다. 그들이 향한 곳은 한때 유혈 사태와 혼돈의 대명사였던 라이베리아였다. 115)<br>7장. 중앙아프리카의 불화<br>탄자니아와 코트디부아르는 각자 다른 이유로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았다. 이 둘보단 덜 유명하지만 다른 나라들 또한 독재, 시시콜콜한 다툼, 경제에 대한 엄청난 무관심으로 험난한 시기를 겪었다. 중앙아프리카경제통화공동체는 그 명칭이 무색하게도 상호혐오로만 단결된 채 6개 회원국을 엮는 데는 그리 큰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6개국 중 가장 큰 카메룬은 가장 부유한 가봉과 대화를 주고받을 정도의 사이가 아니었다. 차드는 카메룬이 지배하려 든다고 생각했으며,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차드를 불신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작은 이웃나라인 콩고공화국은 정치 분쟁으로 분열되었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반군들을 숨겨주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적도기니는 야만적 인권침해 사건으로 국제사회에서 배제되었지만 연안에서 막대한 매장량의 석유를 발견함에 따라 더 이상 이웃나라들을 필요치 않게 되었다. 6개국 중 어느 나라의 역사가 가장 슬픈지를 꼽기란 어려운 일이다. 116)<br>3부_ 사실과 마주하기<br>8장. 경제학의 실패<br>아프리카의 경제규모가 작은 이유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부가 소규모 농가를 짓밟고 못살게 굴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가 민간투자 유치에 좀더 적극적이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주요 산업인 농업은 모든 종류의 잘못된 관리 정책 탓에 위축되었다. 호주, 캐나다, 덴마크, 뉴질랜드와 같은 부국에서 농업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아프리카의 경제 기획자들은 경제발전의 ‘다음 단계’, 즉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의 전환을 갈망했다. 민간투자는 산업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아프리카는 소비자들을 잃는 것과 더불어 민간투자자들의 외면도 받았다. 높은 환율 때문에 일부 상품은 현지에서 생산하는 것보다 수입하는 편이 더 저렴했고 너무나 많은 세금, 이해할 수 없는 규제들, 타성에 젖은 행정, 법 체계, 임시 또는 계절적 노동자 고용을 어렵게 만드는 노동법, 독점, 부패, 사기 탓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프리카에 투자하길 꺼렸던 것이다. 125-6)<br>아프리카의 문제를 시정하려는 노력에 만족하거나 당당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여자들은 자유낙하 상태의 누군가에게 안전망을 제공한다 여겼고, 아프리카인들은 자신들이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박해당한다고 생각했다. 아프리카의 상황이 안정되길 바라는 원조기구들 입장에선 가끔씩 모래 위에 콘크리트를 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한편, 아프리카인들은 자신들이 마취 없이 고통스러운 수술을 받는 데다 수술대 위에서 몸부림치거나 징징거리지 말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고 믿었다. ‘아프리카의 권력자들’은 게임의 방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 경제를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새로운 아이디어, 기술 및 접근 방식을 가진 이는 거의 없었다. 아프리카인을 포함한 신규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은 초기 학습과 경험 축적의 기간이 아니라 빠르게 규칙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모두가 그 규칙을 존중하는 것이다. 많은 국가가 다시 성장하고 있지만 그 속도는 인구증가 속도와 겨우 보조를 맞추는 수준일 뿐이다. 131-2)<br>9장. 국제원조의 험난한 길<br>해외원조의 기본 철학은 ‘유대-기독교적 가치’에 기초한다.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20억 명의 사람들이 하루에 2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부유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기 부의 일부를 내어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해외원조가 경제적으로도 타당하다는 예는 1946년 세계은행의 설립으로 가장 잘 표현되었다. 당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라 불렸던 세계은행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무역의 지속적 확장을 촉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목적은 자선이 아닌 자기이익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모든 이에게 혜택을 줄 것이라 예상되었다. 원조는 자기이익의 다른 측면에도 호소할 수 있다. 나눔은 우리를 더 안전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1970년대 후반 세계은행 총재였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연간 약 500억 달러에 달하는 해외원조가 군비경쟁에 지출된 4,000억 달러보다 국제안보에 있어 더 나은 투자라고 주장했다. 135)<br>원조기구들은 모든 방법을 시도했다. 1960~1970년대엔 국영 산업을 지원하는 방향이었으나 1980~1990년대엔 민간투자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또한 농업, 산업 및 주택과 같은 특정 부문에 대한 신용한도 설정부터 시작해 국가 금융 시스템을 지원하고 세부적인 차관 결정은 현지 전문가에게 맡기는 일, 특정 지역의 복잡한 농촌개발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지원부터 유사 목적의 간접적 달성에 필요한 폭넓은 국가 서비스를 위해 자금을 조달하는 일까지 담당했다. 원조 기획자들은 농업 연구, 도로 건설, 값싼 에너지(수력 전기 등)가 경제성장의 주요 구성요소로 간주되고 결국 보다 균등한 부의 분배를 이룬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의 경험에 의지했다. 이러한 실험들이 시도되기도 전에 회의론자들은 실패를 예상했다. 보수주의자들은 국가라면 마땅히 번영을 위해 자국만의 방법을 찾아야 하고, 외부의 도움은 해당국의 우선순위를 왜곡시키고 국내 저축을 저해하며 의존성을 유발할 것이라 이야기했다. 137)<br>원조기구들은 피지원국이 특정 개혁과제를 달성할 시 그 보상으로 농업, 교육, 또는 보건 분야 국가 예산의 일부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부문별 프로그램 원조’를 개발 촉진 수단으로 선호하기 시작했다. 이는 프로젝트와 기술을 제공하기보단 개발도상국의 국가 정책을 바꾸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점점 강해진 결과였다. 그러나 원조기구와의 합의를 존중할 거라 신뢰할 만한 국가의 수는 매우 적었고, 이 ‘당근과 채찍’ 접근법은 원조효과에 대한 수년간의 연구결과에 반하는 것이었다. 실제 경험에 따르면 원조는 외국 자본가에게 잘 보이려는 정부보다는 이미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자발적으로 파악한 필요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를 설정 및 시행하며, 그에 필수적인 기관을 설립하는 정부의 나라에서 잘 작동한다. 하지만 그러한 판단력과 용기를 갖춘 나라는 아프리카에 거의 없다. 스스로를 개혁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한 소수의 국가는 바닥을 경험하며 순수한 수치심이나 절망으로 행동에 나섰을 뿐이다. 138)<br>아프리카에서 원조 관계자들은 임기응변과 정치적 타협에 취약했다. 그 예로 1970~1980년대에 두드러지게 논의되다가 1990년대에 화제에서 사라진 인구 정책을 들 수 있다. 아프리카는 지구상에서 가장 젊고 성생활도 가장 활발한 인구구조를 가지고 있다. 국민 두 명 중 한 명이 15세 미만인 아프리카 국가도 많다. 여덟 명 중 한 명꼴인 캐나다, 미국과 대조적이다. 또한 지구상에서 가장 출산율이 높은 상위 40개국 중 34개국이 아프리카 국가다. 그러나 아프리카인들이 “우리의 유일한 재산”이라 일컫는 후손들을 유지하면서도 가난하다고 불평하자 원조 관계자들은 이러한 수치의 인용을 그만두었다. 아프리카 여성들은 산아제한 실천에 긍정적이었으나 그들의 정부와 남편들은 부정적이었다. 남편들은 대가족, 혹은 더 많은 아들을 갖고 싶어 했고, 따라서 콘돔 및 상담을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는 제대로 진행될 수 없었다. 인구 정책이 효과적인 아프리카 국가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145-6)<br>원조 관계자들은 언론인, 기업인, 노동조합원, 환경운동가, 인권운동가, 기타 지역사회 지도자로 구성된 자체 ‘자문 그룹’을 만들어 원조기구에 솔직히 조언하게 함으로써 소속감 고취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공신력 있는 자유언론, 강력한 야당, 모든 층의 여론을 대변할 만한 정부를 그들이 대신하긴 어렵다. 원조기구의 자문 그룹들은 오래되었고 독립성을 잃었다. 또한 회원들은 계속해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와 자문 보수를 소중히 여기기에 때때로 말을 아낀다. 개방된 정치 체제와 평등한 경제적 기회 및 공공 서비스에 대한 접근은 확실히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경제는 1980년대에 전혀 성장하지 않았고, 1990년대엔 역경을 겪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잠재력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경제개혁을 촉진하고 성장의 이점을 공평하게 공유하려면 정직한 선거, 강력한 의회, 활기찬 자유언론을 주장하는 것 외엔 다른 대안이 없다. 147)<br>10장. 차드-카메룬 송유관<br>차드는 아프리카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국토 면적은 프랑스의 두 배가 넘는데 포장된 도로의 길이는 200마일에 불과하고, 모래를 제외하면 천연자원이 거의 없다. 세계 최악의 극빈국 중 하나인 차드의 남부에 사는 엄마들은 건기가 되면 아이들에게 먹일 것이 너무나 간절한 나머지 흰개미 서식지를 습격해 애벌레들을 잡을 정도이다. 1970년 이래 차드에선 큰 유전들이 발견되었으나 개발되진 않았다. 이제는 싸우는 이유조차 모호해진 내전, 어떤 투자자로부터도 신뢰받지 못하는 잔혹한 독재정권, 그리고 카메룬을 지나 대서양 연안까지 약 700마일에 달하는 석유 운송 거리에 따르는 비용을 감당하기엔 국제 유가가 너무 낮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1990년대 중반, 미국 최대 기업인 엑손모빌Exxon-Mobil과 세계은행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손을 잡았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국제여론의 힘, 그리고 ‘좋은’ 대의에 맞서 싸우는 데 이상한 수법을 사용하는 일부 비정부기구 사람들의 맹렬한 반대에 직면했다. 151)<br>사실 차드-카메룬 송유관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선 등장하는 주체들부터가 그야말로 흥미로웠다. 엑손모빌은 1989년에 발생한 알래스카 밸디즈만灣의 재앙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차드-카메룬 송유관 프로젝트의 파트너인 쉘Shell은 나이지리아의 오고닐랜드 지역에 환경적·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입혔으며, 그곳에서의 활동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발을 억누르려다 유혈 사태까지 일으킨 바 있었다. 더불어 과거 프랑스의 국영 석유회사였던 엘프Elf는 수십 년간 때로는 자신들의 주도하에 혹은 프랑스 정부의 지시에 따라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의 무장정권을 지원했고, 차드-카메룬 송유관 프로젝트가 준비 단계였을 당시엔 엘프와 관련된 프랑스 유명 사업가들이 자국에서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세계은행이 그간 기록해온 환경적 발자취를 무색하게 한다는 점과 인권침해의 역사를 가진 독재국가 차드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프로젝트 전체를 거의 명백한 비판 대상으로 만들었다. 151-2)<br>프로젝트에는 여러 먹구름이 드리웠다. 첫 번째 먹구름은 소수의 사람들만 이해 가능하고 매우 정치적인 것이었으나, 그것을 내버려두면 프로젝트엔 치명적일 게 거의 확실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차드와 카메룬은 부채가 많고 국제신용등급이 없었기 때문에 세계은행은 자체 소프트론soft loan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이 나라들을 위해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독일과 미국 같은 세계은행의 주요 기부자들은 학교, 보건소, 아동 영양 및 기타 ‘직접적인’ 빈곤해결 프로젝트에 쓰였던 소프트론 자금을 대규모 민간 부문 에너지 프로젝트에 사용하는 건 반대한다고 알려왔다. 하지만 세계은행 총재 짐 울펀슨이 슈투트가르트에 방문했을 때 독일 정부는 그에게 취임 후 2년간 서방 국가에서 얻은 인기를 잃고 싶지 않다면 소프트론을 활용할 생각은 버리라고 말했다.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길에 울펀슨은 재정부서 직원에게 신용이 낮은 차드와 카메룬에겐 소프트론 대신 상업차관을 빌려주라고 지시했다. 153-4)<br># 소프트론soft loan : 조건이 비교적 까다롭지 않은 차관, 상업차관은 소프트론보다 금리가 높고 만기가 짧다.<br>프로젝트를 둘러싼 다른 의심들은 이보다 익숙한 내용이다. 석유 산업의 환경적 기록 및 그 분야에서 세계은행이 남긴 파란만장한 역사를 고려해봤을 때 과연 송유관에서 기름이 유출되진 않을지, 반대 단체들이 송유관을 폭파시키진 않을지, 송유관 노선에 영향을 받을 취약한 생태계 및 선주민의 권리는 보호될지 등 국제사회가 어떻게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엑손모빌은 철저히 환경평가를 진행했고, 이 프로젝트의 옹호자들은 평가 자료가 열아홉 권에 이를 정도로 많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하지만 분량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었다. 자료에선 이 프로젝트에 어려운 과제가 다수 따른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물론 지진 지역에 발전용 댐을 건설하는 것과 달리 모두가 감당 가능한 과제들이었다. 환경 계획은 양국 정부가 아닌 엑손모빌이 현지 및 세계의 감독하에 시행할 것이었다.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카메룬이나 차드 정부보다 유능했고, 국제여론에 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154)<br>프로젝트와 관련하여 남은 다른 문제는 가장 심각하고 복잡한 사안이었다. 석유 수익이 국가 발전에 쓰일 거라고 누가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지 분명치 않았기 때문이다. 1998년 12월 차드 국회는 세계은행의 촉구에 따라 석유 수익의 10퍼센트를 해외에서 관리될 미래세대기금Future Generations Fund에, 5퍼센트는 생산 지역에, 나머지 80퍼센트는 농업·교육·보건·인프라 프로젝트에 할당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기금 사용에 대한 개방성을 보장하기 위해 엑손모빌은 해외계좌에 정부 몫의 수익을 예치하기로 했다. 차드의 공무원, 국회의원, 종교단체, 인권단체 및 기타 비정부기구들로 구성된 ‘감시’위원회는 정부지출 계획을 심사하고, 국가예산에 대한 석유 수익 공개를 승인하고, 실제 자금사용을 추적할 것이었다. 그 사이 국제환경단체들은 현장방문 시위를 했다. 세계은행의 업무나 프로젝트 최신 정보에의 접근이 제한적인 일부 국제단체들에겐 이 프로젝트가 진심으로 해결해야 할 우려 사안이었던 것이다. 155-6)<br>토론이 이어지던 마지막 해에 세계은행은 이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편지를 5만 통 이상 받았는데, 그중 1만 6,000통은 캘리포니아의 공익 전화회사인 워킹에셋Working Assets에서 보낸 것이었다. 워킹에셋은 수익의 일부를 좋은 대의에 쏟고 매달 가입자들에게 특정 시위에 동참할 것을 촉구해왔다. 환경보호기금과 같은 미국 단체들은 여전히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런 입장이 마치 공익단체가 지닌 힘을 보여주는 증거, 혹은 미래의 기부자들이 볼 수 있게끔 자사 입구에 전시할 트로피라도 되는 듯 말이다.&nbsp;세계은행 총재와 가까운 홍보 직원들도 이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할 경우 세계은행의 ‘브랜드 이미지’가 받을 영향을 우려했는데, 이는 놀라운 추론이었다. 외부 비판자들 대부분은 세계은행의 평판이 이미 망가졌다고 여기는 데 반해, 세계은행 직원들은 어렵지만 가치 있는 대의를 지원하는 기관에서 일하는 점을 자랑스러워한다는 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158-9)<br>11장. 가치의 충돌<br>아프리카의 빈곤은 사실 아프리카의 문제라기보다는 서양의 문제에 더 가깝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정부들은 가난을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일이라기보단 바람이나 비처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로 받아들인다. 아프리카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은 빈민은커녕 국가경제와 관련한 기본적 활동들조차 자신과는 무관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삶을 살고 있다. 2002년 나는 가봉의 수도인 리브르빌의 빈민 지역에서 기획부 장관과 함께 지역사회 도로 프로젝트 상황을 둘러보았다. 장관이 그 동네를 찾은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더욱 놀라웠던 점은 그가 이 나라의 주요 항구에 방문한 것도 그날 저녁이 처음이었다는 사실이다. 14년 동안 기획부 장관을 지냈고 그 전에는 총리로 일했지만, 그는 국가경제의 동맥에 해당하는 지역조차 돌아볼 시간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그날의 방문도 거의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그가 현장으로 따라나선 유일한 이유는 세계은행 부총재가 나와 동행했기 때문이다. 165, 168)<br>4부_ 미래를 향해<br>12장. 아프리카를 바꾸는 열 가지 방법<br>1. 공적자금 추적 및 회수를 위한 메커니즘을 도입한다.2. 대통령, 장관, 고위 관료들의 계좌 공개 및 감사를 실시한다.3. 각 국가에 대한 직접적 원조의 50퍼센트를 축소한다.4. 빈곤감소를 진지하게 원하는 4∼5개국에 집중적인 원조를 실시한다.5. 국제사회 감독하에 선거할 것을 요구한다.6. 자유언론과 사법부 독립 등 민주주의의 다양한 요소를 장려한다.7. 아프리카의 학교 운영 및 에이즈 프로그램을 운영·감독한다.8. 정부 정책 및 원조 협정에 대한 시민사회 감시그룹을 설립한다.9. 인프라 및 국가 간 연결에 더욱 집중한다.10. 세계은행, IMF, 유엔개발계획의 통합을 추진한다.<br>13장. 새로운 시대<br>전 세계는 아프리카 해방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인 자신들이 가장 중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선 그들은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것, 그리고 다른 이들도 자신들을 그렇게 여길 거라 기대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해외원조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에 대한 동정심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성인과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실패에 대해 변명하는 것을 멈추고, 지역적 또는 민족적 기원과 상관없이 아프리카의 인재와 기업을 배출해야 미래가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아직 붕괴되지 않은 한 가지는 ‘아프리카의 정신’이다. 아프리카의 고집 일부는 단순한 인간의 생존본능에서, 또 다른 일부는 진실과 마주하는 것을 꺼리는 데서 비롯되었다. 아프리카는 잠시 희망이 멈춘 상황이다. 아프리카의 인간적 아름다움, 잠재력, 고통에 익숙한 이들만이 향후 10년 안에 돌파구를 희망할 수 있다. 오직 아프리카인들만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테러, 가난, 평범함의 순환을 끊을 수 있음을 그들은 다른 어떤 이들보다 잘 알고 있다. 190-1)]]></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805/86/cover150/e5325323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8058661</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저녁</category><title>지리의 힘 3 / 팀 마샬 - [지리의 힘 3 - 지리는 어떻게 우주까지도 쟁탈의 대상으로 만드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15507</link><pubDate>Thu, 26 Feb 2026 15: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155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178321&TPaperId=171155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01/29/coveroff/89931783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178321&TPaperId=171155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리의 힘 3 - 지리는 어떻게 우주까지도 쟁탈의 대상으로 만드는가</a><br/>팀 마샬 지음, 윤영호 옮김 / 사이 / 2025년 04월<br/></td></tr></table><br/>서문: 우주라는 새로운 지정학적 격전장이 등장했다<br>▣ 1장: 인간, 하늘을 올려다보다<br>▣ 2장: 냉전이 우리를 우주로 끌어올렸다<br>현대 로켓에 관한 경우라면 우주비행 역사가들은 대체로 콘스탄틴 치올콥스키(1857-1935년), 로버트 고더드(1882-1945년), 헤르만 오베르트(1894-1989년), 이 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한다. 미국인인 고더드는 9세기에 중국에서 발명된 이래로 줄곧 사용되던 압축된 가루 고체연료인 화약 대신 액체연료를 사용해 지상에서 로켓을 발사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오베르트는 독일 과학자로 나치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명성이 실추되었는데, 나치는 로켓에 관한 그의 연구를 활용해 베르겔퉁스바페 2(Vergeltungswaffe 2, 보복무기 2호) 혹은 V-2로 불리는 로켓을 개발했다. 1903년 동력을 갖춘 최초의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르기 6개월 전, 독학으로 깨우친 한 무명의 러시아 과학자가 우주비행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증명한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해 말 라이트 형제는 비행에 성공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치올콥스키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견지명을 갖춘 과학자 중 한 명이었음에도 사실상 알려지지 않았다. 28)<br>그의 초기 저서에는 태양에너지로 가동되는 우주정거장 건설하는 방법, 우주선의 방향을 제어하는 자이로스코프(바퀴의 축을 삼중의 고리에 연결해 어느 방향이든 회전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 스케치, 우주선이 서로 도킹할 수 있도록 하는 에어로크, 우주비행사가 우주선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밀(공기가 밖으로 누출되지 않도록 밀폐하는 것) 구조의 우주복 같은 발상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1895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그는 우주 엘리베이터라는 개념도 이론화하고 있었다. 「반작용 장치를 이용한 우주공간 탐험」에서는 로켓이 대기권을 돌파해 지구의 궤도를 돌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치올콥스키는 지구 궤도에 진입하는 데 필요한 수평속도를 계산해 냈는데 그 속도는 연료로 액체수소와 액체산소를 혼합하여 사용하는 로켓을 이용해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치올콥스키 로켓 방정식〉으로 알려진 그의 공식은 바로 우주여행의 기반이 된다. 28-9)<br>스푸트니크 1호는 1957년 10월 4일 카자흐스탄에서 발사되었다. 크기는 비치볼보다 조금 더 컸고 무게는 고작 85킬로그램에 불과했다. 스푸트니크 1호는 외피가 매우 눈부시게 빛나는 고광택의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지구의 대기권에 재진입해 불타버릴 때까지 미국인들은 3개월 동안 매일 90분마다 그것이 머리 위로 지나갈 때면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푸트니크 1호는 그럴 때마다 소련이 미국의 기술을 능가했다는 것을 재차 상기시켰다. 여기서 미국의 걱정은 인공위성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것을 싣고 우주로 올라간 거대한 로켓에 관한 것이었다. 러시아인들이 〈지구의 인공위성〉이라고 불렀던 것은 그야말로 게임 체인저였다. 스푸트니크가 등장하기 전에 미국은 소련의 핵무장 항공기를 요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푸트니크는 사실상 탄도미사일과 다름없는 물체의 최상단에 실려 우주로 발사되었고 그 같은 로켓은 이제 미국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32-3)<br>1961년 4월 12일, 소련의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은 보스토크Vostok 1호 우주선에 다가가면서 자신을 발사대까지 데려다준 차량의 오른쪽 뒷바퀴에 소변을 보기 위해 잠시 멈추었다. 오늘날까지도 러시아의 우주비행사들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이와 똑같은 행동을 한다. (여성 우주비행사들은 병에 담아와 바퀴에 뿌린다.) 이윽고 가가린은 캡슐에 올라 탑승한 후 대기했다. 카운트다운은 없었고(세르게이 코롤료프는 그것을 미국인들의 허세라고 생각했다) 모스크바 시각으로 오전 9시 7분에 발사 버튼이 눌러졌다. 가가린은 “포예칼리Poyekhali!”(가자!)라고 소리쳤고, 그는 이륙하면서 지구의 강력한 속박에서 벗어나 미국의 시인이자 전투기 조종사 출신인 존 길레스피 매기가 “저 높이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우주의 성역”이라고 지칭한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비행은 가가린이 지구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린 108분 동안 이어졌다. 그는 인류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35)<br>코롤료프 사후에 소련이 직면한 문제의 실상을 알지 못했던 미국은 소련이 1968년 12월에 우주선 발사를 위한 최적의 발사가능시간대launch window를 이용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그 기회의 문은 열렸다 닫혀버렸다. 소련 측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오히려 같은 달에 세 명의 미국인이 달의 궤도에 오른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아폴로 8호는 프랭크 보먼, 짐 로벨, 빌 앤더스를 태우고 달 주위를 열 바퀴 돌았다. 이때 앤더스는 그 유명한 〈지구돋이Earthrise〉 사진을 찍었고 훗날 자신들은 달에 갔지만 지구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옅은 대기층의 보호를 받으며 허공에 불안정하게 떠 있는 “창백한 푸른 점”과도 같은 사진 속 지구의 이미지는 그것을 본 사람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영향을 미쳤고 새로이 부상하던 환경운동에 크게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지구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세 사람은 가져간 카메라를 통해 아폴로 8호에서 생방송에 참여했다. 38)<br># 발사가능시간대launch window : 로켓이나 우주선이 발사되어야 하는 특정 시간대를 의미한다. 이 시간대는 궤도 역학, 행성의 위치, 지구의 자전, 날씨 조건 등 여러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성공적인 발사를 위해서는 모든 조건이 적절해야 하며, 이 때문에 발사 기회를 놓치게 되면 다음 가능한 시간대를 기다려야 한다.<br>1969년 7월 20일, 마침내 닐 암스트롱이 고요의 바다 표면에 작은 발자국을 남기면서 인류 역사에 거대한 도약을 이루었다. 그는 자신이 가가린, 치올콥스키, 고더드, 오베르트, 코롤료프, 폰 브라운 같은 위인들, 그리고 그들보다 앞선 여러 시대 위대한 과학자들의 노고에 힘입어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냉전시대 상황에서 그 순간이 지니는 의미를 잘 이해했는데 훗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것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30만 혹은 4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기울인 노력의 결실이고, 이 나라의 희망과 위엄은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는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할 수 있도록 정확한 궤도를 계산해낸 뛰어난 수학자 캐서린 존슨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달 착륙선을 제어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마거릿 해밀턴 같은 드러나지 않은 영웅들도 있었다. 40)<br>▣ 3장: 우주는 21세기의 새로운 부동산이다<br>우리는 사실상 로켓을 발사하기에 최적의 장소를 갖춘 육지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로켓을 발사하는 데 가장 최적의 장소는 연료를 덜 사용하면서 우주에 가능한 한 빨리 진입할 수 있도록 지구의 자전 속도를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는 곧 지구의 자전 속도가 가장 빠른(시속 약 1,669킬로미터) 적도에 인접한 곳을 의미한다. 그래서 미국은 자국 국경 안에서 적도에 가장 근접한 플로리다의 케네디 우주센터를 이용하고 있는데 그곳의 자전 속도는 시속 1,440킬로미터다. 유럽연합 같은 경우는 남미의 프랑스령 기아나를 이용하며 러시아는 카자흐스탄을 이용하고 있다. 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하기 때문에 로켓을 동쪽으로 발사하면 지구의 자전 속도에서 추가로 추진력을 얻어 그만큼 연료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또한 로켓 추진장치의 낙하 지점이 거의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이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런 이유에서 많은 발사대 부지가 동쪽 해안지대에 위치해 있다. 48)<br>지구 표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구름을 뚫고 올라가 빠른 속도로 상업용 비행기의 최대 순항고도(안전한 비행을 위해 유지해야 하는 적절한 해발고도)인 약 12킬로미터 상공을 넘어서까지 상승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60킬로미터를 더 올라가면 우주에 근접하게 되는데, NASA의 정의에 따르면 해발 80킬로미터 상공부터 우주가 시작되며 그 아래에 있는 것은 전부 지구다. 하지만 각종 우주비행 기록을 승인하는 국제항공연맹(FAI)은 우주가 100킬로미터 상공부터 시작된다고 정의한다. 그곳이 바로 카르만 라인Karman line─미국의 물리학자인 시어도어 폰 카르만이 정의한 지구 대기권과 우주의 경계선을 뜻한다─이며 우주선이 지구의 중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제 우리는 지구와 38만 5,000킬로미터 떨어진 달 사이의 시스루나 공간cislunar space에 진입하고 있다. 〈시스루나〉라는 단어는 라틴어가 어원으로 〈달 가까이〉라는 뜻이다. 48)<br>더 위로 올라가 약 160킬로미터에서 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상공인 저궤도에 진입하면 평균 400킬로미터 상공에서 궤도를 순환하는 국제우주정거장(International Space Station, 일명 ISS라고 많이 함)이 시야에 들어올 것이다. 이곳은 스푸트니크가 발사된 이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특히 정치적인 측면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1993년에 미국, 러시아, 유럽, 일본, 캐나다의 우주 관련 기관들은 정치적, 문화적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우주정거장을 건설하는 협약에 합의했다. 이에 1998년에 러시아가 첫 번째 모듈을 쏘아올렸고 2년 후에는 탑승자들이 입주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었다. 이 우주정거장은 인류가 우주에서 협력을 통해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국제우주정거장은 거의 수명이 끝나가고 있고 2031년에는 퇴역할 예정이다. 소위 포인트 니모Point Nemo7라고 알려진 태평양의 외딴 지점에 추락해 그곳에서 물고기들과 함께 영원히 잠들게 될 것이다. 49)<br># 포인트 니모Point Nemo : 임무를 끝낸 인공위성이 회수되는 지점으로, 인적이 없고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인공위성이 추락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흔히 〈인공위성의 공동묘지〉라고도 한다.<br>전략적으로 저궤도는 유력한 〈요충지〉이자 〈관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지상에서 수에즈 운하와 호르무즈 해협 같은 요충지들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다. 그 두 지역은 지형상 바닷길이 협소해 쉽게 봉쇄할 수 있는 곳들이다. 우주의 저궤도를 지상의 수에즈 운하나 호르무즈 해협에 비유하는 것은 정확한 비유는 아닐 수 있지만 효과적인 비유는 된다. 왜냐하면 우주로 탐험을 떠나기 위해서는 로켓 발사장을 지켜내야 하는 것처럼, 광활한 우주의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저궤도에 있는 인공위성들이 제공하는 통신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저궤도를 통과해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약 2,000킬로미터 상공에 이르면 이제 중궤도에 진입하는데 이 궤도는 약 35,786킬로미터 상공까지 이어진다. 이곳에 위치한 인공위성들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대략 12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들 중 다수는 지구에 위치 확인 및 길 찾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보통은 그렇다. 51)<br>계속 위로 올라가 35,786킬로미터 상공을 넘으면 지구 동기궤도와 지구 정지궤도가 시작되는 고궤도에 도달한다. 이 둘의 유일한 차이라면 동기궤도에 있는 인공위성은 어떤 경사각에서도 지구를 돌 수 있는 반면, 정지궤도에 있는 인공위성은 항상 적도를 따라 돈다는 것이다. 저궤도는 통신용 인공위성을 운용하기에는 어려운 곳이다. 고도가 낮아 위성의 이동속도가 워낙 빠른 탓에 지상의 기지국에서 위성의 위치를 계속 추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지궤도에서는 인공위성의 속도가 지구의 자전 속도와 일치하기 때문에 인공위성은 항상 같은 장소 위에 위치한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지상에서 그런 인공위성을 본다면 마치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고궤도(35,876킬로미터 이상)는 나름 분주하지만, 그저 자리만 많을 뿐이지 신호 간섭 때문에 기기로 통신할 수 있는 주파수는 제한적이다. 그래서 유엔 국제전기통신연합은 자리와 주파수를 지정해서 이곳을 함부로 진입하거나 점유하지 못하도록 했다. 52)<br>▣ 4장: 지금 우주는 (사실상) 무법지대다<br>더 많은 인공위성은 필연적으로 더 많은 우주쓰레기를 발생시킬 것이다. 쓰레기가 증가할수록 케슬러 증후군Kessler Syndrome이 실현될 위험성도 더 커진다. 그 시나리오에 따르면 궤도를 떠도는 우주쓰레기가 잦은 충돌을 유발하는 지점에 도달하게 되고, 그러면 재앙과도 같은 연쇄충돌이 일어나면서 우주쓰레기 구름이 허블 우주망원경을 박살내고, 거기서 생겨나는 파편은 지나가는 우주왕복선을 파괴시킨 후 국제우주정거장을 향해 이동한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의 줄거리는 1978년 논문에서 이러한 견해를 제시한 전직 NASA의 과학자 도널드 케슬러의 이론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인공위성이 파괴되고 그로 인해 저궤도에 떠도는 우주쓰레기들로 형성된 고리 때문에 우주선이 아예 지구에서 발사되지도 못할 때까지 연쇄충돌이 일어난다. 케슬러 증후군은 하나의 예측일 뿐이지만 현재 우주쓰레기로 인한 위협은 그저 가설에만 불과한 것이 아니다. 73)<br>자연은 우리를 대신해 일부 우주쓰레기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다. 지구의 중력은 우주쓰레기를 저궤도로 끌어내리고 있는데, 만약 그 우주쓰레기가 600킬로미터보다 낮은 고도에서 궤도 순환을 한다면 보통 그것은 몇 년 안에 대기권으로 추락한다. 해마다 수백 개의 우주쓰레기 파편들이 이런 경로를 따르고 있으며 대부분의 작은 파편들은 도중에 연소되어 사라질 것이다. 일부 인공위성은 소멸설계Design for Demise15라는 공정을 통해 대기권 재진입 과정에서 쉽게 해체되도록 설계된다. 대부분 지상 70-80킬로미터 상공에서 분해되고 부서진 조각들은 소멸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쓰레기를 하늘에서 쏴서 날려버릴 수는 없을까? 한 가지 난관이라면 우주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개발된 모든 장치는 다른 목적(이를테면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을 공격하는 무기)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인공위성과 관련된 모든 계획과 규정은 군사 및 국가안보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76-7)<br>▣ 5장: 중국, 승자보단 리더가 되고자 한다<br>중국 최초의 인공위성은 1970년 4월 24일에 궤도에 진입해서 28일 동안 지구 주위를 돌았다. 이로써 중국은 소련, 미국, 프랑스, 일본에 이어 인공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킨 다섯 번째 국가가 되었다. 인공위성에 탑재된 다섯 개의 배터리를 사용해 중국은 「동방홍The East Is Red」이라는 유명한 노래를 지구로 송출했다. “동녘이 붉어지며 태양이 떠오른다. 중국에 마오쩌둥이 나타났다!” 현재 중국에서 최초의 인공위성이 발사된 4월 24일은 〈우주의 날〉이다. 그때부터 중국의 우주 프로그램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인공위성을 정기적으로 발사했고 다른 국가들에 자국의 시설을 제공하기도 했다. 중국의 우주 프로그램은 처음 몇십 년 동안에는 주로 군사적 야망을 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중국공산당은 자국이 군사, 기술, 경제 분야에서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국가라는 점을 모든 사람에게 선전하는 용도로 인공위성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86)<br>현재 중국은 2011년에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울프 개정안Wolf Amendment 탓에 아르테미스 협정에서 배제되었는데, 이 법안은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NASA 등 미 정부 기관과 중국 간의 협력을 일절 금지한 법안이다. 당시 이 법안을 발의한 공화당 하원의원 프랭크 울프는 우주탐사 및 기술적 진보와 중국 군대와의 관계가 미국이 “성장하는 경쟁국과의 협력”이라는 위험을 감수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논리를 펼쳤다. 중국은 자국을 배제하는 행태에 대해 국제우주정거장의 대항마를 건설하고, 여러 국가와 과학을 통한 전략적 관계를 형성하고, 적어도 미국 우주산업 못지않게 최첨단으로 자국 우주산업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것은 미국의 조언이나 지원 없이 이루어냈다. 그리고 2003년에 38세의 조종사 양리웨이 중령이 중국인 최초로 우주에 진출한 것을 고려하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과를 내고 있다. 《차이나 데일리》는 이것을 “하늘을 향한 위대한 도약”이라고 지칭했다. 88)<br>최근에 중국은 공산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찬양의 수위는 낮추는 대신 오랜 역사적 집단기억에서 민족주의 요소와 신화를 강조하고 있다. 2007년에 달 궤도를 순환한 무인 우주선은 창어 1호로 불렸는데 그것은 중국의 민간설화에서 남편으로부터 불사의 영약을 훔쳐 마시고 달로 날아가 천체의 여신이 된 아름다운 선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창어는 위투(Yutu, 옥토끼)라고 불리는 애완용 토끼와 함께 지내는데 이제 그 토끼는 달 주위를 뛰어다니며 창어가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절구에 불사의 영약을 넣어 찧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2013년에 창어 3호를 달 표면에 착륙시켰을 때 그곳을 덜컹대며 이동하던 로버를 위투라고 부른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 한편 선저우(〈신의 배〉라는 뜻) 우주선을 타고 자국의 우주정거장에 탑승한 중국인 우주비행사들은 자신들이 중국 신화에서 최고의 권위로 우주를 다스리던 천상계 통치자의 궁궐 이름에서 따온 〈하늘의 궁전〉, 즉 톈궁에 들어왔다는 행운에 감격했을 것이다. 89-90)<br>하지만 가장 정치적 의미가 큰 프로젝트는 아마도 중국의 임박한 달 착륙일 것이다. 2021년에 중국과 러시아는 달에 공동으로 기지를 건설한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양국은 “달 기지를 위한 기초 구조물을 조성하기 위해 달의 남극에 대한 탐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달의 남극이 부지로 선정된 이유는 그곳의 얼어붙은 크레이터들이 잠재적인 물 공급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 여름에 중국은 달 기지 건설에 대한 일정을 제시했는데 그 기지의 이름은 미국 주도의 아르테미스 임무만이 유일한 합동 프로젝트가 아님을 천명하기 위해 〈국제달과학연구기지〉로 결정했다. 또한 2028년에 자국의 창어 8호 로켓이 3D 프린팅으로 달의 토양을 벽돌로 만들도록 설계된 로봇을 싣고 달에 착륙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것은 이후의 임무들을 위한 시험운영이 될 것이며, 일부 유인 임무도 포함될 그 과정들은 영구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기지를 위한 기반시설 건설이 목적이다. 93)<br>우주의 지리에 대한 소유권 주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이 제기될 것이다. 중국은 이미 자체 우주정거장인 톈궁 3호를 운영하는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이것은 달 기지만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는 못하겠지만, 우주정치학적 관점에서 유일하게 자국 주권의 우주정거장을 보유한다는 것은 우주에 대한 상당한 의지의 표현이다. 더 잘 알려진 국제우주정거장은 유럽 국가들과 일본, 러시아, 미국, 캐나다 등이 참여한 〈협력 프로그램〉으로 그동안 19개국 250명의 우주비행사들을 수용했다. 하지만 톈궁은 오직 중국이 단독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며 최대 2037년까지 가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허블 우주망원경과 크기는 비슷하지만 직경 2미터의 거울이 장착된 순톈 우주망원경은 300배 넓은 시야와 25억 픽셀을 표현할 수 있는 카메라를 갖추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톈궁에 탑승한 중국 우주비행사들은 우주의학, 생명공학, 극미중력 상태에서의 연소, 3D 프린팅, 로봇공학, 광선빔, 인공지능 등을 연구하고 있다. 94-5)<br>▣ 6장: 미국, 우리가 소유하지 못하면 다른 쪽에게 기회가 간다<br>2019년에 미국 정부는 우주군을 창설했는데 이는 미군의 6개 정규군(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해안경비대, 우주군) 중 가장 최근에 조직된 군이다. 우주군은 다른 군의 수장과 마찬가지로 미군의 수뇌부인 합동참모본부에 소속된 4성 장군이 지휘한다. 우주군의 임무는 다른 나라의 미사일 발사를 감지할 수 있는 GPS 위성을 운용하고 적대국 인공위성의 전파를 차단하는 지상의 전파교란기를 가동하는 것 등이다. 또한 우주쓰레기도 추적한다. 연간 약 260억 달러에 달하는 우주군의 예산은 현대전에서 우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더욱 증가할 것이다. 우주군이 창설되었을 때 일부 평론가들은 그들이 우주를 〈군사화〉했다고 말했지만 그 말은 인류가 처음 대기권을 돌파한 순간부터 이미 우주는 군사화되었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우주군은 이미 미 공군에서 유사한 임무를 수행하던 부대에서 파생되어 편성되었는데, 소련과 미국은 냉전시대에 인공위성을 활용해 서로를 정찰했다. 102-3)<br>언젠가 우주에서 사용될 레이저 무기 개발에도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 미 해군은 2014년부터 여러 형태의 레이저 무기 시스템을 운용해 왔지만, 2022년에 전기만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고출력 레이저 무기로 고속 크루즈 미사일을 격추하는 데 성공하면서 한층 발전된 역량을 과시했다. 당시에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빔이 미사일을 향해 발사되었는데 불과 몇 초 만에 미사일 일부가 오렌지빛으로 불타기 시작하더니 엔진에서 연기가 나면서 아래로 추락했다. 일단 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실제 이 킬 샷kill shot에 드는 비용은 고작 전기료 몇 달러에 불과할 것이다. 반면 유도미사일(목표물을 정확하게 타격하기 위해 레이더, GPS, 적외선 등의 유도에 따라 목표물을 폭발시키는 미사일)은 한 발에 수만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의 비용이 든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레이저 무기는 오직 지상에만 배치될 수 있는데, 만약 어떤 우주비행 국가가 인공위성에 레이저 무기를 장착한다면 다른 국가들도 당연히 따라 할 것이다. 104-5)&nbsp;<br>루나 게이트웨이는 달로 복귀하려는 계획의 핵심으로, 달 주위 타원형 궤도에 위치하게 된다. 이따금 루나 게이트웨이가 달 표면에 더 가까워지면서 착륙이 수월해지기도 하겠지만, 궤도의 특정한 지점에 이르면 지구에 더 가까워지면서 고향 행성에서 오는 우주비행사들과 보급품을 더 쉽게 픽업할 수 있게 된다. 이 방식이 성공을 거두면 인간을 화성으로 이동시키는 계획에도 적용될 것이다. 또한 루나 게이트웨이는 거주및물류거점모듈(Habitation and Logistics Outpost, HALO)을 갖추게 될 예정인데, HALO에 탑승해서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실험은 방사능 수치 측정일 것이다. 우주비행사들은 지구 자기장을 벗어나면 암 발병률을 높이고 중추신경계를 손상시킬 수 있는 고에너지 입자에 노출된다. 게이트웨이는 당연히 내부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겠지만 그럼에도 장기간에 걸친 방사능 수치를 정확히 측정하고 그것이 인체에 미칠 잠재적인 영향력을 반드시 파악해야 한다. 107)<br>▣ 7장: 러시아, 땅에서도 우주에서도 전성기는 지났다<br>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는 이미 로켓 엔진 판매, 인공위성 발사 서비스, 국제우주정거장으로의 우주비행사 수송 같은 경쟁에서 시장 점유율을 잃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발전해온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우주산업이 확장되고 있음에도 러시아는 대부분의 협력관계, 투자, 전문기술 등에서 소외되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 100만 명이 넘는 러시아인들이 조국을 떠났는데 그중에는 수천 명의 엔지니어, 컴퓨터 전문가, 과학자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 러시아의 우주 프로그램에 얼마나 심각한 타격을 입힐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전쟁이 발발한 후 몇 주 동안 작성된 몇몇 확인되지 않은 보고서들에 의하면,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는 자칫 귀국하지 않을 경우를 우려해 직원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금지했고 국경 경비대에는 특정 부류의 과학자들이 조국을 떠나지 못하도록 막으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고 한다. 117)<br>러시아는 현재 러시아판 GPS에 해당하는 글로나스GLONASS라는 위성항법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24개의 인공위성으로 구성된 글로나스 군집위성은 GPS보다 2년 늦은 1995년에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 지구 전체를 감당하는 완전한 기능을 유지하려면 수시로 새 인공위성을 발사해 수명이 끝나가는 인공위성들을 대체해야 한다. 하지만 1990년대의 경제적 혼란 속에서 러시아는 우주 프로그램 관련 예산을 80퍼센트나 삭감했다. 2000년에 자신이 정권을 장악한 후에 경제가 호전되기 시작하자 푸틴은 글로나스 시스템 복구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해당 예산을 두 배 이상 늘렸다. 2011년에는 다시 24개의 인공위성을 갖추었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지구 전체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는 적의 인공위성 시스템을 공격하는 데에도 투자했다. 그중 일부는 군사적 의도를 그럴듯한 핑계로 가릴 수 있는 이중 목적의 시설들이고, 다른 일부는 전쟁을 막기 위한 억지력의 일환이라고 정당화할 수 있는 것들이다. 119-20)<br>러시아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열세인데 어떤 경우에도 중국에 뒤처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하지만 중국은 자금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더 이상 누군가를 뒤쫓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 관계에서 더 절실한 쪽은 러시아다. 이런 현실은 러시아를 돕는 문제에 중국이 보다 신중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관계는 러시아에 이익이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철수하고 나면 러시아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에서 장기간 머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중국의 톈궁 우주정거장뿐이다. 중국이 없으면 러시아는 달에 자체 기지를 건설할 여유조차 없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통해 러시아는 주요 우주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고, 중국은 러시아와의 우정에 대한 대가로 적정한 가격으로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를 사들일 수 있다. 한편 이 거래의 이면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느슨한 민주주의 연대에 맞서는 반대 세력권을 구축해 다른 국가들을 이에 합류하도록 설득하려는 두 나라의 공동 전략이 숨어 있다. 187-8)&nbsp;<br>▣ 8장: 유럽,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의 우주 진출<br>중국, 미국, 러시아 외에 다른 국가들 중에서 유럽우주국은 한 걸음 앞서 있다. 유럽우주국은 1975년에 10개국이 참여해 설립했고 현재는 22개 회원국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우주국은 “한층 더 가까워진 연합”이라는 목표의 일환으로 유럽연합 국가들이 주도하고 있지만 유럽연합과는 전혀 별개의 기관이며 유럽연합의 우주 프로그램과도 무관하다. 유럽우주국의 예산은 유럽연합이 약 25퍼센트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개별 회원국들이 부담한다. 조직으로서 유럽우주국은 갈릴레오 위성항법 시스템(유럽판 GPS), 코페르니쿠스 지구 관측 프로그램, 국제우주정거장에서의 역할 등을 포함해 나름대로 독자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달 기지 건설과 같은 야심찬 프로젝트의 경우 유럽은 서로 간의 협력뿐만 아니라 우주강국과의(이 경우에는 미국) 협력도 이끌어내야 한다. 유럽우주국은 미국과 공고한 동맹을 맺고 있으며 아르테미스 협정의 달 탐사 로켓 발사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다. 130)&nbsp;<br>유럽연합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비군사적 우주강국이지만 동아시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군사용 우주 장비에 대한 투자를 더 이상 거부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망설이는 듯한 행보는 군사용 인공위성 정보를 계속해서 미국에 의존하는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비군사적 차원에서 일본은 인상적인 우주비행 역사를 지니고 있고 거창한 달 탐사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자체적인 발사 역량을 갖춘 극소수의 국가 중 하나다. 1970년에 첫 번째 인공위성을 우주로 발사했고 1990년에는 무인 우주선을 달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국영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목표 지점의 90미터 이내에 착륙할 수 있도록 설계된 달 탐사용 착륙선인 슬림SLIM을 개발해 2023년에 발사했다. 아르테미스 협정 서명국으로서 일본은 루나 게이트웨이 건설에도 협력할 것이고 2028년, 2029년, 혹은 2030년에 일본인 우주비행사를 달에 보낼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137)<br>인도의 우주 관련 역량은 추진력을 얻고는 있지만 2040년 이전에 주요 우주강국이 되기에는 발전 속도가 너무 더디다. 인도는 군사위성 시스템과 민간위성이 있지만 독자적인 글로벌 위성항법 시스템을 개발하려는 중국의 자금력에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인도는 우주와 관련된 민간 부문에서는 훨씬 더 잘 대처하고 있다. 그들은 인공위성 운송 산업을 성공적으로 발전시켰고 화성 궤도에 탐사선을 보내면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행성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켰다. 2008년에는 찬드라얀 1호Chandrayaan-1 탐사를 통해 달의 극지방에서 거대한 얼음 퇴적물을 발견하는 등 달에 물이 존재할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현재 달 기지 건설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을 촉발했던 여러 요인 중 하나였다. 인도는 자체적인 달 기지나 우주정거장을 건설할 여유는 없지만 2023년 6월에 아르테미스 협정에 가입하면서 미국 주도의 달 기지 건설 프로젝트에서 나름의 역할을 맡을 것이다. 140-1)<br>오스트레일리아는 인도와는 쿼드 동맹국이며 주요 군사적 고려 대상이 중국이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하지만 인도와 달리 오스트레일리아는 몇 안 되는 자국 인공위성을 혹시 모를 중국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낼 수단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 남반구에 위치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리적 입지는 정보 수집과 우주추적(인공위성과 우주선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모니터링하는 것)을 실행할 만한 안전한 기지를 물색하던 우방국 미국을 매료시켰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외딴 지역에 기지를 건설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보안도 보장되고 무선 주파수 방해도 거의 받지 않는다. 또한 북반구에서는 볼 수 없는 우주 영역을 관측할 수 있으며 중국 우주발사체의 궤적과 정지궤도를 감시하기에도 적합하다. 1961년에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과 협정을 체결해 자국 내 전역에 걸쳐 그와 같은 기지 여러 개를 건설했다. 일부 기지는 1969년의 달 착륙을 포함한 미국의 우주탐사 로켓을 추적하는 데 사용되었다. 142)<br>2023년 초에 지부티는 중국의 홍콩항천과기그룹과 자국에 우주기지를 건설한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뿔에 위치한 작은 국가인 지부티는 최소 10제곱킬로미터의 토지를 35년 동안 중국에 임대하고 그 기간이 끝나면 중국은 그곳의 기반시설을 지부티 정부에 반환할 예정이다. 10억 달러 규모의 이 프로젝트에는 항만시설과 도로 건설도 포함되는데 중국은 이를 통해 자국의 항공우주 장비를 일곱 개의 인공위성 발사대와 세 개의 로켓 실험용 발사대가 세워질 부지까지 운송할 수 있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실행된다면 중국은 아프리카의 핵심 요지에 우주기지를 보유하게 된다. 지부티는 적도에 가까워 발사 비용이 절감된다. 더불어 그곳은 아덴만에 이르기 전까지 바다가 좁아지는 홍해의 병목지점에 자리하고 있어 중국 해군기지의 거점도 될 것이다. 이런 전략적 요충지에 우주 관련 시설을 건설하면 중국은 그 지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148-9)<br>▣ 9장: 2038년, 결국 우주전쟁이 일어나다<br>우리는 우주에서 평화적인 활동을 수행하도록 이끌 수 있는 유의미한 체제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만약 우리가 우주를 두고 대립을 향해 치닫는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으로 표출될까? 개념상으로 일부 우주정치학 학자들은 우주전쟁을 〈하늘 위의 교통로〉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지구에서 각국이 해상 항로와 그에 따른 교통과 교역을 두고 경쟁을 벌여왔던 것처럼, 전 세계 국가들은 이제 우주에서도 궤도 항로를 두고 경쟁을 벌이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우주전쟁 전문가 블레딘 보웬 같은 사람들은 지상의 강대국들이 해안선 주위의 바다를 장악하는 것처럼 그 위력을 우주에도 투사해 상공의 영역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 이런 궤도 항로를 “우주 해안선Cosmic Coastline”이라고 부른다. 일반인들에게는 우주를 그 아래에 있는 영토나 전장을 지배하기 위해 점령해야 할 장소인 〈고지대high ground〉라고 생각하는 편이 이해하기 쉬울 수도 있다. 154)<br>1962년에 미국은 스타피시 프라임Starfish Prime이라는 코드명의 군사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들은 단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 위해 태평양 상공 400킬로미터에서 수소폭탄을 터뜨렸다. 그것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보다 100배나 더 강력했다. 단 몇 초 만에 전자기 펄스(핵무기로부터 발생하는 진폭이 작은 감마선)가 하와이에 정전을 일으켰고 하와이부터 뉴질랜드까지의 밤하늘은 인간이 만든 오로라로 인해 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이로 인해 지구 주위에는 인공 방사능대가 형성되어 10년 동안 유지되다가 사라졌다. 또한 바로 전날 발사되었던 텔스타 통신위성을 포함해 적어도 일곱 대의 인공위성이 손상되거나 파괴되었다. 만약 불량국가가 저궤도에서 훨씬 더 강력한 핵폭탄을 터뜨리면 수년 동안 인공위성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그 테스트가 입증했다는 것은 불행한 사실이었다. 핵폭풍에 휩쓸린 전자장비는 모두 파괴될 것이고 뒤이은 방사능에 모든 대체장비도 망가질 것이다. 162)<br>상호확증파괴에 따르면, 핵공격은 보복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 모두가 파멸하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돌먼이 설명하는 것처럼 “상호확증파괴는 상호(모두), 확증(변명이나 예외는 없다), 파괴(완전한 손실)의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만약 위협이 믿을 만하지 않다면…… 억제가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억지력이 있다고 해도 전통적인 형태의 전쟁까지 막지는 못한다. 우주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최후의 수단에는 손을 대지 않지만 우주활동 역량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있다. 인공위성에 대한 전파교란, 해킹 등은 어떤 우주쓰레기도 남기지 않는다. 따라서 상호확증파괴의 억지력은 누군가 이런 유형의 기술을 개발하거나 소규모 전투를 벌이는 것까지는 막지 못하는데 그런 행위는 자칫 확전의 양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 대안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확대되는 군비경쟁이다. 따라서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포괄적인 군비감축 협정을 제도화해야 한다. 163)<br>▣ 10장: 달, 화성, 그리고 인간의 마음<br>거주지를 찾을 때는 오로지 입지, 입지, 입지만을 생각해야 한다. 달의 적도 인근은 2주일 동안 자연채광이 지속적으로 비치지만 다음 2주일 동안은 계속해서 밤이 이어진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달의 자전이 지구 시간으로 약 한 달 정도 걸리기 때문인데, 따라서 달의 낮과 밤은 각각 지구 시간으로 대략 14일 동안 지속된다. 또한 달의 적도에서는 기온이 낮에는 영상 132도까지 올라가고 밤에는 영하 179도까지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달의 남극에 위치한 남극-에이킨 분지에서 소위 〈정착지 사냥〉을 하고 있다. 그곳은 태양이 지평선 위로 거의 떠오르지 않아 크레이터 깊숙한 곳까지 태양빛이 닿지 못한다. 따라서 크레이터 대부분이 수십억 년 동안 그늘 속에 있었고 아마도 그 내부에는 산소, 수소, 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얼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원소들로 로켓 추진제를 제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달 기지는 화성으로 향하는 전초기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169-70)<br>NASA의 과학자들은 첫 번째 달 기지 후보지로 기대되는 몇몇 지역을 찾아냈는데 모두 남극의 위도 6도 이내에 자리하고 있다. 각 지역은 15제곱킬로미터 정도의 규모에 다수의 유력한 착륙장 부지도 포함하고 있다. 태양은 하늘에서 아주 낮게 떠 있지만 최초의 거주자들은 태양광 패널로 충분한 에너지를 집적해 그들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서 살든지 숨을 쉴 수 있는 산소가 최우선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다행히 레골리스regolith라고 불리는 달의 표토에서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을 듯하다.&nbsp; 달의 표면 전체를 덮고 있는 레골리스를 용기에 담아 고온으로 가열하다가 수소와 약간의 과학지식을 첨가해 보라. 그러면 산소와 수소로 분리할 수 있는 수증기가 생성된다. 자, 그럼 이제…… 숨을 쉬세요. 그런 다음에는 숨을 내쉬어라. 이유는 우주비행사들의 날숨은 산소를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인데 실제로 그들의 땀과 소변은 이미 재활용되고 있다. 170)&nbsp;<br>이처럼 빛, 물, 산소, 에너지가 있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거주 공간이다. 처음에는 지구에서 가져간 조립식이나 팽창식 구조물들로 만들어질 것이다. 달에 끊임없이 내리쬐는 엄청난 양의 방사선으로부터 거주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 구조물들은 레골리스로 덮어두어야 할 것이다. 중국의 달 탐사 임무 중 독일이 수행한 실험 데이터에 따르면, 희박한 대기로 인해 달 표면의 방사능 수치는 지구 표면보다 200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히도 레골리스는 태양 복사에 대한 강한 내성과 낮은 열전도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달에 기지를 건설할 때 마감재로 사용할 수 있다. 달에는 동굴로 이어지는 구덩이가 알려진 것만 해도 약 200개가 있는데 그들 대다수는 상시 온도가 영상 17도로 과학자들은 이를 〈스웨터 날씨〉(스웨터를 입기 적당한 날씨)라고 표현한다. 돌출된 바위들이 낮에는 구덩이가 뜨거워지지 않도록, 밤에는 열기가 소실되지 않도록 막는다고 추정된다. 170-1)&nbsp;<br>최초의 화성 정착민들이 직면할 문제 중 하나는 화성의 기온이 다소 쌀쌀하다는 것인데 밤에는 영하 63도까지 떨어진다. 또 다른 문제는 희박한 산소 탓에 숨을 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달에서 계획하고 있는 것처럼 산소를 만들어낼 방법은 있지만 그렇게 되면 거주지가 소규모로 제한되고 행성에 제대로 정착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니 테라포밍(terraforming, 다른 행성을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드는 작업)을 시도해 보자. 2019년에 일론 머스크는 “화성에 핵폭탄을 터뜨리자!”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화성의 토양과 극관(polar caps, 화성의 극에서 얼음으로 덮여 하얗게 빛나 보이는 부분)에 저장된 이산화탄소와 다른 가스들을 배출시켜 온실효과를 일으켜 행성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핵폭탄을 터뜨리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후변화는 좋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모든 과학자들이 화성의 표면에 대기를 따뜻하게 할 만큼 충분한 이산화탄소가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173)<br>체액은 우리 체중의 약 60퍼센트를 차지하며 중력으로 인해 우리 몸의 하반신에 모이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지난 수십만 년 동안 직립보행을 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직립한 상태에서 심장과 뇌에 충분한 혈액이 공급되도록 인체 조직을 진화시켜 왔다. 따라서 우주에 있다고 해서 몇 개월 만에 진화가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며 우리의 인체 조직은 무중력 상태에서도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리 몸의 상반신에 체액이 증가하는데 이것이 바로 우주비행사들의 얼굴이 붓는 이유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중력이 없으면 심장이 그렇게 강하게 박동할 필요가 없고 그로 인해 심장 기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체의 모든 근육도 마찬가지다. 심장이 약해진다는 것은 혈압이 낮아진다는 의미이며 그에 따라 뇌에 공급되는 산소의 양 또한 감소할 수 있다. 하중이 실리지 않으면 우리의 뼈도 약해지고 부러지기 쉬운데, 특히 척추와 엉덩이처럼 하중을 지지하는 부위의 뼈들이 약해진다. 174)<br>맺음말: 우주가 우리 호모 사피엔스를 기다리고 있다<br>우리는 항상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유전적 구성에 기인하는 듯하다. 우리는 산 정상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어 했다. 또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이제 지구라는 영역을 완전히 파악하자 더 먼 곳으로 나아가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했고 우리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비록 시간은 걸리겠지만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변화를 이끌어낼 기술적인 혁신들 또한 이루어낼 것이다. 공상과학 소설가인 아서 C. 클라크는 이렇게 말했다. “불이나 전기가 물고기의 상상력을 초월한 것처럼 그런 기술적인 혁신들도 현재 우리의 비전을 훨씬 초월한 것입니다.”&nbsp; 하지만 시간이 우리의 발전을 저해하도록 놔두어선 안 된다.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 완성되는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문명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위대한 금자탑을 쌓아왔다. 문명이라는 유산에는 이런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것은 우리가 여기 있을 때 한 일이다. 이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며, 또한 여러분을 위한 것이다.” 181)]]></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01/29/cover150/89931783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2012932</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저녁</category><title>1417년, 근대의 탄생 / 스티븐 그린블랫 - [1417년, 근대의 탄생 -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08208</link><pubDate>Mon, 23 Feb 2026 07: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082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5416&TPaperId=171082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62/50/coveroff/89729154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5416&TPaperId=171082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1417년, 근대의 탄생 -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a><br/>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이혜원 옮김 / 까치 / 2013년 05월<br/></td></tr></table><br/>서문&nbsp;<br>"르네상스의 탄생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형성해온 힘의 해방을 단 하나의 원인을 들어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르네상스를 특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한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포조 브라촐리니라는 인물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재발견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 재발견을 둘러싼 이야기는 우리가 근대적 삶과 사상의 근원에 대한 문화적 전환을 가리키기 위해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르네상스(renaissance)', 즉 고대의 재생(再生, rebirth)'과 진실로 잘 들어맞는다. 물론, 한 편의 시가 그 자체로서 모든 지적, 도덕적, 사회적 전환을 가져왔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떤 작품도 그럴 수는 없다. 하물며 수세기 동안이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공공연히 자유롭게 입에 올릴 수도 없던 책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특정한 한 권의 고대 서적이 갑자기 사람들의 품으로 돌아옴으로써 분명히 어떤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19)<br>1 책 사냥꾼&nbsp;<br>"가족과 친족관계, 길드와 조합. 이것들이 1417년 당시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 짓는 구성요소였다. 당시 사회는 독자성과 자립심을 거의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한 인간의 정체성은 누구에게나 자명하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명령과 복종의 연결 고리 안에서 결정되었다. 이 연결 고리를 끊고 나오려는 시도는 한마디로 어리석은 짓이었다." "농사꾼은 오직 쟁기질 하는 법만 알면 족했고 방직공은 베 짜는 법, 수도사는 기도하는 법만 알면 그만이었다. 물론 이런 타고난 운명보다 형편이 다소 호전되거나 악화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포조가 살던 사회는 드문 기술을 가진 자는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상당한 범위로 그 능력에 대한 보상도 해주었다. 그러나 딱히 뭐라고 규정하기 힘든 개성이나 다재다능함, 또는 남다른 호기심을 가졌다는 이유로 귀하게 대접받는 일은 결코 없었다. 심지어 교회는 호기심을 치명적인 악으로 단죄했다. 호기심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영원한 지옥살이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25-6)<br>"이 낯선 이방인(포조)의 최종 목적지는 수도원이었지만, 그는 사제도 신학자도 종교재판관도 아니었고, 기도서를 찾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포조의 목표물은 수도원이 보관하고 있는 오래된 필사본이었다. 이런 필사본의 상당수는 곰팡내가 풀풀 나고 벌레가 갉아먹은 상태였으며,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독자도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만약 필사본의 양피지가 여전히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 자체가 현물로서 일정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표면의 글씨를 칼로 긁어내고 활석 가루로 문질러 광택을 내면, 다시 글자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포조는 양피지 판매업자가 아니었고 오히려 그렇게 오래된 필사본의 글자를 긁어내는 자들을 혐오했다. 그는 그 오래된 양피지 위에 쓰여 있는 내용을 보고 싶어했고, 설령 글씨가 알아보기 힘들고 내용이 어렵더라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 10세기, 혹은 그 이전에 작성한 족히 400~500년은 된 필사본에 관심이 많았다."(27-8)<br>2 발견의 순간&nbsp;<br>"포조는 수도사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도덕적으로 진실하며 학식이 높은 훌륭한 수도사들을 몇 명 알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포조가 보기에 대부분의 수도사들은 미신에 사로잡혀 있고 무지할 뿐만 아니라 대책없이 게으른 쓸모없는 인간들이었다. 수도원은 세상에 뿌리내리고 살아가기 힘든 자들을 모아놓은 쓰레기장이나 다름없었다. 귀족은 약골, 사회 부적응자, 혹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 같은 자식을 수도원에 보내버렸다. 상인은 아둔하거나 무기력한 자식을 그곳에 내다버렸고, 농부는 자기 힘으로 먹일 수 없는 남아도는 입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곳을 이용했다." "영적 수련을 위해서 세워진 수도원 회칙에 따른 힘겨운 생활 역시 밭에서 이루어지는 진짜 힘든 노동과 비교하면 대수롭지 않게 보였다. 찬송가 영창을 위해서 일어나 앉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얼마나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의 여지없는 증거이다. 포조에게는 수도사가 하는 수련이라는 것이 몽땅 위선으로만 생각되었다."(49-51)<br>"사실 중세에 가장 명성이 높은 수도원 도서관도 고대 로마 제국의 도서관이나 당시 바그다드나 카이로에 존재했던 도서관에 비하면 형편 없는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을 영원히 바꾸어놓은 활자 인쇄기술이 발명되기 전의 오랜 세월 동안 얼마 되지 않는 수의 책이나마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스크립토리움(scriptorium)이라고 불린 궁극의 시설 덕분이었다. 스크립토리움은 수도사들이 오랜 시간 앉아서 필사를 하던 작업 공간이었다. 아마도 처음에는 수도원에 자리가 생기는 대로 작업 공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필사 목적에 맞게 특별히 설계하고 건축한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귀중한 책을 수집하려는 욕구가 점점 더 강해지면서 훌륭한 수도원마다 깨끗한 유리창이 갖춰진 방을 준비하고 많게는 30명의 수도사가 한꺼번에 같이 앉아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책 사냥꾼들이 그들의 빼어난 유혹기술을 가장 집중적으로 발휘해야 할 사람은 스크립토리움의 책임자인 수도원 도서관 사서였다."(53)<br>"포조는 루크레티우스라는 이름을 틀림없이 알아보았을 것이다. 포조나 그의 동료들 중 누구도 실제로 루크레티우스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기껏해야 다른 사람의 작품에 인용된 한두 줄의 토막글이 전부였다. 그래서 그때까지 루크레티우스의 작품은 영원히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다. 점점 어두어져가는 수도원 도서관에서 수도원장과 사서의 경계심 어린 눈초리를 받으며, 포조는 책의 서두를 읽는 것 이상의 여유는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포조는 루크레티우스의 라틴어 문장이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만큼은 곧장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는 데리고 온 보조 필사가에게 시를 베끼도록 지시하면서 이 어두운 도서관으로부터 그것을 해방시키기 위한 움직임을 서둘렀다. 다만 분명하지 않은 것은 포조가 그 책을 풀어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스스로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이다. 그것은 머지않아 그가 살고 있는 세계 전체를 해체하는 데에 기여하게 될 운명의 책이었다."(66)<br>3 루크레티우스를 찾아서&nbsp;<br>"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이미 수세기 전부터 발생한 사상을 널리 퍼트리려고 한 추종자의 작품이다. 루크레티우스의 철학적 구세주인 에피쿠로스는 에게 해에 있는 사모스 섬에서 기원전 342년 말미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테네 출신의 가난한 선생으로 식민지 개척자로 그곳에 오게 되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한 많은 그리스 철학자들은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자신의 유수한 조상을 자랑스러워했으나, 출신이 한미한 에피쿠로스는 분명 그들과 같은 주장을 펼칠 수는 없었다." "에피쿠로스 사상의 핵심은 하나의 눈부신 아이디어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 지금껏 존재해온 모든 것과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은 파괴할 수 없는 입자로 만들어진 것이며, 그것은 더 이상 작아질 수 없을 만큼 작으며 그 수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스인은 이 보이지 않는 입자들을 가리켜 더 이상 나누어 구분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로 '원자(atom)'라고 불렀다."(93-4)<br>"에피쿠로스의 설명에 따르면, 원자들은 부단히 움직이며 서로 충돌하고 특정한 상황에서는 서로 결합하여 더 큰 물체를 이루기도 한다. 관찰할 수 있는 가장 큰 물체는 해와 달인데, 인간이나 물가의 날벌레, 모래알과 마찬가지로 모두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물질에는 상위 범주도 없으며 원자 간의 위계질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천체(天體)도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신성한 존재가 아니며 진공(void)을 가로지르는 그들의 움직임도 신의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다. 천체는 단순히 자연질서의 한 부분이며, 원자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조물로서, 천체를 구성하는 원자 역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창조와 파괴의 원리를 따른다. 설령 자연의 질서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복잡하다고 하더라도 그 기본적인 구성요소와 보편적인 법칙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실제로 그런 이해야말로 인간의 삶에서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쾌락의 하나이다."(95-6)<br>4 시간의 이빨&nbsp;<br>"팔레스타인에서 온 구세주[예수]에 대해서 에피쿠로스 학파가 던진 조롱과 그에 대한 특정한 이의 내용은 결과적으로 초기 기독교인이 에피쿠로스 사상 전체를 완전히 사장시키게 만드는 배경을 제공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록 이교도였지만 영혼의 불멸을 믿었으며, 그들의 사상은 승리한 기독교에 궁극적으로 영합될 수 있었다. 에피쿠로스 사상은 그렇지 않았다. 에피쿠로스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성(神性)이라는 개념이 매우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다만 에피쿠로스는 신이 이 우주의 창조자도 파괴자도 아니며 아마 자신의 쾌락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은 자신 외의 다른 존재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우리의 기도나 제의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이 보기에 기독교인은 우물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개구리 떼 같았다. 그들은 소리 높여 개골개골 울어댄다. 〈세계는 우리를 위해서 창조되었다!〉"(124-5)<br>"우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교도(pagan)'라는 단어를 오래된 다신교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유피테르, 미네르바, 마르스를 믿었던 사람들은 자신을 이교도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교도'라는 단어는 4세기 후반에 나온 것으로 어원적으로는 '농민(peasant)'과 관계가 있다. 이는 모욕적인 표현으로, 촌스러운 무지에 대한 조롱이었으나 그 방향이 결정적으로 뒤집혔음을 보여준다." "기독교의 논객들은 에피쿠로스와 그 신봉자들에 대항하여 조롱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이 경우에 이교 신들의 희화화는 쓸모가 없었다. 그들은 신에게 희생 제의를 바치는 신앙을 철저하게 배척하고 모든 고대 신화를 부정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상의 창시자인 에피쿠로스에 대한 이야기를 재정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에피쿠로스는 멍청이에 먹보, 미치광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로마인 수제자 루크레티우스의 운명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127, 129)<br>"락탄티우스는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아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였다. 그는 단지 기독교인이 인간적 쾌락을 추구하려는 유혹에 끌려가는 것을 막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신에 대한 에피쿠로스 학파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데에까지 나아갔다. 그러니까 신은 에피쿠로스 학파의 설명처럼 신성한 쾌락의 굴레 안에만 머물며 인간의 운명에는 무관심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락탄티우스는 313년에 쓴 유명한 글을 통해서 신이 인간을 사랑하시며 그 사랑은 마치 탕아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랑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을 보여주는 표시는 바로 신의 분노였다. 그리고 신께서는 인간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니─그리고 그것은 그의 사랑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했다─지엄하고 가차 없는 폭력으로 부단히 인간을 벌하기를 원하셨다. 쾌락의 추구에 대한 혐오와 신의 정당한 분노의 현현. 이로써 에피쿠로스 사상에 대한 조종이 울렸다."(130)<br>"5~6세기의 기독교인은 여러 가지로 울 일이 많았다. 도시들은 붕괴했고, 벌판은 죽어가는 군인들의 피로 물들었으며, 강도질과 강간이 횡행했다. 마치 이전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처럼 인간이 몇 세대 동안이나 이렇게 끔찍한 행동으로 세상을 파국으로 몰아가는지에 대한 어떤 설명이 필요했다. 기독교 신학은 이런 사태의 기저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깊고 근본적인 답을 제시했다. 이 모든 재앙은 한 개인이나 기관의 이런저런 흠 때문이 아니었다. 이 모두는 인간이 원래 태어날 때부터 부패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인간은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물려받은 후손으로서 그들에게 가해지는 모든 끔찍한 재앙을 받아 마땅했다. 엄청난 양의 끝없는 고통은 그들이 치러야 할 당연한 몫이었다. 그들은 모든 인류가 고통을 적극적으로 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이 정의롭고 확고하게 요구하는 진노의 대가를 제대로 지불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133-4)<br>5 탄생과 재생&nbsp;<br>"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고대 문헌을 찾는 일을 페트라르카가 처음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을 다른 어떤 보물찾기보다 우위에 두면서 거의 관능적인 절박함과 쾌락을 동반한 일로까지 새롭게 탄생시킨 사람은 바로 그였다." "페트라르카는 자신이 살아야만 하는 현재라는 시대를 한없이 혐오했다. 그는 자신이 거칠고 무지하며 인간의 기억에서 곧 사라지고 말 하찮고 추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그가 내뱉은 모욕적인 언사는 오히려 그의 카리스마와 명성을 드높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명성은 꾸준히 높아졌고 더불어 과거에 대한 그의 집착이 가진 문화적인 중요성도 점점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페트라르카의 집착은 후대에 부분적으로 관습화 과정을 거치면서 강력한 새로운 교육 커리큘럼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른바 '인문학(studia humanitatis)', 즉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이들 언어로 된 문헌의 습득을 강조하고 수사학에 초점을 맞춘 학문이 탄생한 것이다."(150-1)<br>"초기의 인문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신기원을 이루는 운동에 관여하고 있음을 느꼈고, 여기에 자부심과 함께 경이로움, 그리고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 운동의 일정 부분은 지금껏 살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는 틀린 것을 맞는 척 가장하지 말고 고대와 현재 사이에 연속성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첫 걸음이었다. 사라진 것이 무엇인지를 인정하고 그 비극적인 손실을 애도하고 나자, 죽음의 저편에 누워 있는 것들로 가기 위한 길을 모색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즉 부활을 꿈꾸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부활'은 모든 선량한 기독교인─성직자였으며 진실로 독실한 기독교인인 페트라르카를 포함한─에게 매우 친숙한 개념이었다. 다만 이 경우에 부활은 내세가 아니라 이 세계에서 이루어졌으며, 부활의 대상 역시 근본적으로 문화적이며 세속적인 것이었다."(151-2)<br>"요새화된 탑과 벽으로 둘러싸인 수도원 등이 세워진 비좁은 피렌체 도심에는 공화국의 정치적 심장인 팔라초 델라 시뇨리아(시뇨리아 광장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일명, 베키오 궁)가 있었다. 살루타티에게 그곳은 도시국가 피렌체의 영광이 머무는 장소였다. 피렌체가 다른 국가의 영향력 아래 있지 않고, 교황령에도 속하지 않으며, 왕이나 독재자, 혹은 고위 성직자가 아니라 시민인 그들 자신으로 구성된 집단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독립적인 도시국가라는 사실이야말로 살루타티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그가 피렌체의 지배자인 시민을 대신해서 쓴 편지나 공문, 의정서, 성명서 등은 모두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것으로서 실로 이탈리아 전역에서 널리 읽히고 배포되었다. 살루타티는 과거의 부활이 골동품 애호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페트라르카와 공유했다. 살루타티의 글은 고대 수사학이 아직 살아 있으며 그것이 효과적으로 정치적인 감정과 오래된 꿈을 다시 일깨웠음을 보여주었다."(156-7)<br>"포조가 처음 니콜리를 만난 1390년대 후반만 해도 두 사람의 고대 도서 수집욕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었을 것이다. 이 둘은 처음부터 신앙에 관한 문제를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후대의 것보다 고대의 것이 더 우수하다는 데에 뜻을 같이했다. 그러나 이들에게서는 페트라르카와 같은 놀라운 문학적 야심이나 독창성은 좀처럼 발견하기 힘들었다. 살루타티의 인문주의에 불을 지폈던 열렬한 애국심과 자유에 대한 열망도 시들해졌다. 대신에 그들의 마음을 차지한 것은 정신적으로는 앞에서 언급한 가치들에 훨씬 더 못 미치는 것이면서 동시에 조금 더 이루기 힘들고 고된 것이었다. 그들을 지배한 것은 고대의 모방에 대한 맹목적 추종과 그 모방의 정확성에 대한 강한 집착이었다. 살루타티가 키운 두 젊은이는 새로운 것을 경멸했으며 오래된 것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일만을 꿈꿨다. 정신적으로 편협하고 황폐한 이런 꿈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꿈은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165)<br>6 거짓말 공작소에서&nbsp;<br>"15세기 초에 포조가 로마에서 일할 당시, 해결을 구하며 교황청으로 날아드는 편지는 매주 거의 2,000통에 달했다. 이는 당시 유럽의 어느 법정의 사무량보다도 훨씬 더 많은 양이었고, 이와 같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숙련된 인재가 필요했다. 신학자, 변호사, 공증인, 서기, 비서 등의 특화된 인물들이 로마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청원서는 적합한 서식에 따라서 작성되고 제출되어야 했으며, 의사록도 세심하게 작성, 보관되어야 했다. 모든 결정과 판결도 기록된 뒤 필사되어 보관되었다. 칙령, 특허장, 인가증 등 교황청에서 내리는 일련의 교서들은 모두 필사한 뒤 봉인하여 보관했으며 이들을 축약한 문서를 따로 준비하여 배포했다. 로마 주교는 그 지위에 어울리는 거대한 규모의 내무조직을 갖추고, 로마 주교직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와 예법상 법도에 맞게 궁정인, 고문, 서기, 하인들로 이루어진 대규모 수행단을 거느렸다. 포조가 입문하여 발돋움하고자 하는 세상은 바로 이런 곳이었다."(172-3)<br>"교황청은 그 자신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지식인 계급을 탄생시켰다. 이 지식인들은 사회적 기반이 약했으며 모순적인 구석이 있었다. 이들은 고용주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헌신했고, 고용주의 후원에 전적으로 의존했으나, 한편으로는 그런 형편에 냉소적이었고 자신들의 처지를 불행하게 생각했다. 냉소주의와 탐욕, 위선이 판을 치고, 전 인류에게 도덕적으로 살라고 설교하지만 정작 본인은 비뚤어진 웃전의 비위를 맞추면서 절대군주가 지배하는 궁에서 유리한 지위를 얻고자 경쟁을 해야 했다. 이런 곳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건전한 희망과 품위를 갖춘 인간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포조에 따르면, 교황청 사무국에 있는 모든 사제와 수도사들은 전부 위선자였다. 그곳에서는 종교가 이루고자 하는 숭고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만약 교황청 사무국에서 혹시라도 특별히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를 마주친다면 주의할지어다. 그자는 가장 악질에 속하는 위선자이다."(184, 187)<br>7 여우 잡는 함정&nbsp;<br>"콘스탄츠 공의회(1414)의 가장 중요한 안건은 교회의 균열을 끝내는 것이었지만, 다른 두 개의 주요한 안건도 있었다. 하나는 교황의 통치를 개혁하는 문제로서 이 또한 요한네스 23세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다른 하나는 이단 탄압 문제였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궁지에 몰린 여우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실상 이단 문제는 코사(요한네스 23세)가 손에 쥔 거의 유일한 전략적 무기였다." "체코 출신 성직자이자 종교개혁가인 얀 후스는 몇 년간 교회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보헤미아 지방의 강력한 귀족들의 비호를 받으며 후스는 위험한 사상을 계속 유포시켰으며, 그 위험한 사상은 널리 퍼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교회조직 전체로부터 두려움과 증오의 대상이 된 이 위험한 보헤미아인은 한편으로는 교회 내부에 있는 코사의 적들이 코사를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주요 원칙을 누구보다도 명확한 어조로 밝히고 있었다. 부패로 지탄받는 교황에게 불복종하고 그를 폐위시켜라."(208-9)<br>"코사가 정말 후스에 대한 종교재판이 공의회의 주의를 분산시켜서 교회 분열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저지하거나 정적들을 잠재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었다." "공식적으로 코사에게 통보된 고발장에는 총 70개의 혐의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대중에게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공의회는 고발장의 내용을 그중에서 가장 가증스러운 16개 항목으로 압축했다. 성직 매매, 남색, 강간, 근친상간, 고문, 그리고 살인. 또한 그는 자신의 전임자인 선대 교황을 독살했다는 죄로, 그의 주치의를 포함한 다른 몇몇 사람들과 함께 고발당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최악이라고 할 만한 것은, 그가 고대부터 죄악시된 에피쿠로스 사상을 추종한다는 것이었다. 그를 고발한 자들에 따르면, 교황은 믿을 만한 인사들 앞에서 줄곧 내세니 부활이니 하는 것은 다 거짓이며, 인간은 짐승과 마찬가지로 몸이 죽을 때 영혼도 함께 사멸한다고 완고히 주장했다는 것이었다. 1415년 5월 29일, 교황은 공식적으로 퇴위되었다."(212, 214-5)<br>"포조는 콘스탄츠에 일정 기간 더 머물렀지만, 후스가 공의회가 열리는 회의장 앞으로 불려나왔을 때에도 여전히 콘스탄츠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토록 염원했고 그 자신의 생명을 걸고 나타난 회의장에서 이 종교개혁가는 조롱만 당했다. 그가 입을 열어 뭔가를 말하려고 할 때마다 고함소리와 함께 저지당하고 말았다. 1415년 7월 6일, 콘스탄츠 대성당에서 열린 엄숙한 의식에서 후스는 이단으로 유죄선고를 받고 공식적으로 성직을 박탈당했다. 이단으로 판명된 후스의 머리에는 높이가 약 45센티미터에 달하는 원형 종이 왕관이 씌워졌다. 왕관 위에는 영혼을 잡은 채 갈가리 찢고 있는 세 마리의 악마가 그려져 있었다. 후스는 머리에 이 왕관을 쓰고 몸에는 쇠사슬을 찬 채로 대성당에서 끌려나와 자신이 쓴 책이 화염에 뒤덮여 있는 장작더미 앞을 지나쳐 마찬가지로 화형대 위에서 불태워졌다. 유물이 남지 않도록 형을 집행한 담당자들은 불에 시커멓게 변한 후스의 뼈까지 산산조각 낸 뒤에 라인 강에 뿌렸다."(216)<br>"포조처럼 빈틈없고 매우 숙련된 관료로서 이제 나이도 거의 마흔에 달한 자라면 뭔가 안정을 취할 수 있을 든든한 수단을 강구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포조는 그런 종류의 행보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성 갈렌 수도원에서 돌아온 지 몇 달 만에 이번에는 동행인 하나 없이 콘스탄츠를 떠났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숭고한 작품을 찾아내서 그 끔찍한 감옥에서 꺼내 다시 세상 빛을 보게 해주어야겠다는 포조의 열망은 이런 주변 상황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더 강렬해지기만 한 것 같았다." "포조가 치유사로서의 마법 같은 능력을 다시금 발휘한 것은 1417년 1월, 이번에는 아마도 풀다 수도원에서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선반 위에 놓인 한 권의 장편시를 꺼내 들었다. 포조는 예전에 본 퀸틸리아누스의 글이나 성 히에로니무스가 집대성한 연대기에서 그 시의 저자의 이름을 읽은 적이 있음을 기억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바로 그 시의 제목이었다."(226-8)<br>8 사물의 길&nbsp;<br>"루크레티우스가 생각하기에는 신들이 정말로 인간의 운명에 신경을 쓰거나 혹은 그들이 바치는 여러 종교 제의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상상하는 것은 정말이지 천박한 신성모독이었다. 신이라는 존재의 행복이 우리가 웅얼거리는 몇 마디 말이나 반듯한 행동거지에 달려 있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사실 이런 신성모독도 따지고 보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신들은 인간이 던지는 모욕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혹은 할 수 없는) 그 무엇도 신들의 흥미를 끌 수 없다." "이교도 문헌에서 마주치게 된 이런 위험한 생각들은 그 자체가 막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많지 않았다. 후대에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 공감한 일부 독자들처럼 포조 자신도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빼어난 고대의 시인은 그저 이교도 신앙이 얼마나 공허하며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신들에 대한 희생 제의라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직관적으로 깨달았음을 보여줄 뿐이라고."(231-2)<br>"그러나 무신론─보다 엄밀하게는 신의 무관심─은 루크레티우스의 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문제점이 아니었다. 정작 가장 주요한 쟁점이자 대단히 불온한 논쟁의 시발점이 된 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이 물질계였다. 이 논쟁의 가공할 만한 위력은 수많은 이들─마키아벨리, 브루노, 갈릴레오 등─을 매료시켜서 기묘한 일련의 사상적 조류를 형성했다. 일찍이 이것은 포조의 발견의 결과로서 그 사상이 되살아난 바로 그 지역에서 열정적으로 탐구된 바 있었다." "그 주장들 중 일부는 여전히 생경하고, 다른 일부는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 덕분에 가능해진 과학적 발전의 결과를 향유하는 자들에 의해서 엄청난 항의를 받기도 한다는 사실은 기억해둘 만하다. 포조의 동시대인들도 극히 소수를 제외하면, 그 시 자체는 깜짝 놀랄 만큼 매혹적이고 아름답지만, 루크레티우스가 시에서 주장한 내용의 대부분은 도통 내용을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으며 불경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232-3)<br>"우주가 원자와 진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이 세상은 창조주가 우리를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정신적 삶과 육체적 삶도 다른 모든 생명체들과 비교했을 때 별다를 것이 없다는 것, 영혼도 육신만큼이나 물질적이며 소멸하는 것이라는 것. 이 모두를 깨닫게 된다고 해도 절망에 빠질 이유는 없다. 오히려 사물의 실제 본성을 이해하게 된 것이야말로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길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발걸음이다." "인간은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행복은 인간이 자신을 우주의 중심이라고 착각하거나 신을 두려워하거나 필멸의 존재를 초월한다고 주장하는 어떤 가치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고결하게 희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달랠 수 없는 욕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행복한 인생의 주요 장애물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성의 수련을 통해서 이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248-9)<br>"이성의 수련은 전문가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성직자를 시작으로 하여 거짓 환상을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내뱉는 거짓말을 뿌리치고 사물의 본질을 똑바로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모든 관조의 노력들─모든 과학, 도덕적 고찰, 삶을 가치 있게 만들려는 시도들─은 사물을 이루고 있는 보이지 않는 씨앗인 원자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시작해서 거기에서 끝나야 한다. 이 세상에는 원자와 진공,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 말이다(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차가운 공허함만 느껴질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는 흔히 철학의 기원은 경이롭게 생각하는 마음이자,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뭔가를 알고자 하는 욕구로 바뀌어, 지식에 의해서 경이로워했던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루크레티우스의 설명에서는 이 과정이 뭔가 역전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을 이해함으로써 세상의 가장 깊은 경이로움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249)<br>9 귀환&nbsp;<br>"포조는 새로 선출된 교황 니콜라우스 5세에 대한 봉사에 여러모로 매우 만족했다. 니콜라우스 5세의 속명은 톰마소 다 사르차나로서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부터 교양 있는 인문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는 페트라르카, 살루타티 등 여러 인문주의자들이 열정적으로 몰두했던 고전에 대한 학식과 심미안에 기초한 교육으로 탄생한 결정체라고 할 만한 인물이었다." "결과적으로 니콜라우스 5세의 재위기간(1447~1455)은 매우 만족스러운 시기였다. 그러나 교황의 비서로서 포조가 처음에 꿈꿨던 것만큼 그렇게 완벽하게 목가적인 평온한 시기는 아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기 동안, 포조는 트라브존 출신의 조르조와 터무니없는 실랑이 끝에 비명과 주먹질로까지 이어진 소동을 겪었다. 또한 포조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자들의 보호자가 되어달라는 자신의 청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라도 한 것처럼 교황이 자신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적 로렌초 발라를 교황의 비서로 지명했을 때 틀림없이 당황했을 것이다."(268-9)<br>"1453년 4월, 피렌체의 총리 카를로 마르수피니가 죽었다. 마르수피니는 뛰어난 인문주의자였으며 임종 시에도 『일리아드』를 라틴어로 번역하던 중이었다. 당시 총리직은 더 이상 피렌체 권력의 중심이 아니었다. 메디치 가문의 권력이 실질적으로 도시를 장악함으로써 총리의 정치적 중요성은 줄어들었다. 고전 수사학에 대한 통달이 공화국의 생존에 결정적인 것처럼 보였던 살루타티의 시대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포조의 옛 동료이자 뛰어난 재능의 역사가 레오나르도 브루니가 맡았던 두 차례의 임기를 포함한 지난 세월 동안, 피렌체의 총리직은 여전히 그런 뛰어난 인문주의자들을 위한 자리로 남아 있었다." "포조는 피렌체의 총리로 5년간 봉직했다. 아마도 포조는 총리가 해야 할 소소한 업무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에 그는 보다 상징적인 업무라고 할 수 있는 역할에 충실했다. 약속대로 그는 저술활동에 헌신하여 여러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워 이를 추진했다."(269-70)<br>10 일탈&nbsp;<br>"시적 힘과 더불어 명료하게 기술된 루크레티우스의 시는 무신론을 정의하는 일련의 단죄목록이 담긴 실질적인 교과서라고 할 수 있었다. 보다 정확히는 종교재판관의 심문 교본 역할을 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지식인 사회에 이 사상이 일으킨 파장은 그 시가 가진 시적 힘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이들로부터 초조한 반응을 끌어냈다. 그런 반응의 하나를 대표하는 인물로 15세기 중반의 위대한 피렌체인 마르실리오 피치노가 있다. 일찍이 20대 시절, 피치노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접하고 크게 감명을 받아 시의 저자를 〈우리의 위대한 루크레티우스〉라고 부르며 그에 대한 학술적인 논평까지 썼다. 그러나 훗날, 다시 이성을 찾은─말하자면 기독교인으로 돌아온─피치노는 자신이 쓴 논평을 태워 없애버렸다. 자신이 〈루크레티아니〉라고 부른 루크레티우스 추종자들을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공격했고, 삶의 대부분을 플라톤 철학을 응용하여 기독교를 위한 독창적인 철학적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에 바쳤다."(277)<br>"사실 루크레티우스를 금지한 교회 당국 내에도 인문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이 다수 있었으며, 결국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1549년,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금서목록에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올라왔다. 그러나 몇 년 후에 교황으로 선출되는 추기경 마르첼로 체르비니의 요청으로 금서목록에 오르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가톨릭 지식인은 루크레티우스의 작품에 담긴 생각을 우화라는 매개를 통해서 받아들일 수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에라스무스 역시 『에피쿠로스주의자』라는 제목의 대화체 형식의 글에서 등장인물 중의 한 명인 히도니우스의 입을 통해서 〈경건한 기독교인보다 더 에피쿠로스주의적인 사람은 없다〉라고 언급했다. 금식하고 죄를 회개하며 죄지은 육신을 벌주며 사는 기독교인이야말로 쾌락주의자로 보지 않을 수 없으니 그들이야말로 옳은 삶을 추구하고 있으며 〈옳게 사는 자보다 더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자는 없다〉는 것이다."(284-5)<br>"에라스무스의 이런 역설이 교묘한 속임수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에라스무스의 친구인 토머스 모어의 대표작 『유토피아』(1516)에는 에피쿠로스주의와의 연결점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유토피아의 거주민들은 〈인간이 누리는 행복의 전부 또는 그 대부분〉이 쾌락의 추구에 달려 있다고 확신한다. 좋은 유토피아 사회와 부패하고 사악한 영국 사회(게으른 귀족들이 소작농의 고혈을 짜내고 있는)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의 핵심에는 바로 에피쿠로스주의의 중심 원칙이 있음을 이 작품은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모어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셈이다. 루크레티우스의 시에 등장하는 베누스에 대한 멋진 찬가를 통해서 가장 강력하게 표현된 이 쾌락의 원칙은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생명의 재생산을 수사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쾌락의 추구라는 이 원칙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게 되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매우 급진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모어는 잘 알고 있었다."(285-7)<br>"그러나 유토피아는 영혼이 육체와 마찬가지로 없어질 것이라고 믿거나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자, 설령 신이 존재한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무관심하며 오직 신 자신에게만 신경을 쓸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여겼다." "소수의 계몽된 엘리트만 모인 철학자의 정원에서라면 〈두려워할 것이 없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두려워할 것이 없다면〉 곤란할 것이다. 설령 유토피아를 구성하는 모든 사회적 조건의 힘이 존재한다고 해도 모어는 인간의 본성은 그런 두려움 없이는 결국 무력과 거짓이라는 잘못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야 만다고 믿었다. 이와 같은 모어의 믿음은 두말할 것 없이 그의 열렬한 가톨릭 신앙의 영향이었다. 동시대를 살았던 마키아벨리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군주론』의 저자 역시, 법과 관습은 두려움이 동반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290-1)<br>"그런데 딴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작은 몸집의 도미니쿠스회 소속 수도사 조르다노 브루노가 그 주인공이었다. 1580년대 중반, 브루노는 서른여섯 살의 나이로 나폴리에 있던 수도원에서 도망쳐나와 이탈리아와 프랑스 각지를 계속 떠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런던에 정착했다." "브루노에게 루크레티우스의 우주는 음울한 각성의 장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우주에 시공간의 한계가 없다는 것, 규모가 아무리 크든 작든 모든 것은 원자로 구성된다는 것, 그리고 원자야말로 모든 존재의 기본 구성요소이며 바로 그 원자를 통해서 개체와 무한이 연결된다는 것을 깨닫고 전율을 느꼈다. 멍들고 두들겨 맞은 성자 예수의 몸에 신성을 부여하려고 애쓰는 것이나 머나먼 천국에 있는 성부 여호와를 찾으려는 노력은 모두 무의미한 짓이었다." "브루노가 귀하게 생각한 것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의견을 내는 목소리를 언제든지 틀어막을 준비가 되어 있는 호전적인 바보들에 대항하여 박차고 일어서는 용기였다."(292, 297-8)<br>"브루노가 지구가 우주의 고정된 중심이 아니라 태양 주변을 도는 행성이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지지했을 때,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여전히 교회나 학계 모두로부터 극렬한 반대를 받으며 파문까지 당할 수 있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그러나 브루노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불러일으킨 충격을 더 멀리 끌고 나갔다. 브루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것처럼 태양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한마디로 말해서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1600년 2월 17일, 캄포 데이 피오리 광장에 세워진 화형대 앞에 성직을 박탈당한 전 도미니쿠스회 수도사가 머리를 밀고 당나귀 등에 올라탄 채 모습을 드러냈다." "곧 불이 붙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수행했다. 브루노는 산 채로 불탔고, 채 타지 않고 남은 뼛조각도 긁어모아 산산이 가루로 만들었다. 화형의 흔적인 뼛가루와 재는 그렇게 흩어졌다. 이제 그 작은 입자들은 브루노가 믿었던 것처럼 즐겁고 위대한 영원한 물질의 순환 속으로 돌아갈 것이었다."(298, 302)<br>11 사후세계<br>"브루노가 영국에서 보낸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가도 루크레티우스의 유물론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의 하나인 몽테뉴의 『수상록』을 통해서 루크레티우스의 시를 마주친 적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1580년에 프랑스어로 처음 출판된 『수상록』은 1603년에 영어로 번역되었는데, 100여 행에 달하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내용을 직접 인용했다." "몽테뉴는 루크레티우스와 마찬가지로 사후세계에 대한 악몽을 통해서 도덕성을 강제하려는 태도를 경멸했다. 몽테뉴 역시 자기 자신의 감상의 중요성과 물질계의 증거에 매달렸다. 또한 금욕적인 자학과 육신에 가해지는 폭력을 혐오했으며, 내적 자유와 만족감을 귀하게 여겼다. 몽테뉴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맞서면서 루크레티우스의 유물론과 함께 스토아 사상의 영향도 받았다. 그러나 몽테뉴에게 더 지배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육체적 쾌락을 찬양하도록 이끈 루크레티우스의 유물론이었다."(304-5)<br>"몽테뉴는 에피쿠로스적 세계에서 생각하고 쓰면서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표현했다. 그 과정에서 몽테뉴는 루크레티우스가 가장 소중하게 여긴 꿈 중 하나를 통째로 버릴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몽테뉴는 루크레티우스의 말처럼 고요하고 안전한 땅에 서서 다른 이들에게 닥치는 난파의 운명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말하자면 서 있을 수 있는 안락한 언덕 따위는 없는 것이다. 그는 이미 배에 올라탄 상태였다. 몽테뉴도 루크레티우스와 마찬가지로 명예와 권력, 부를 향한 끝없는 분투에 대한 에피쿠로스의 냉소주의에 완전히 공감했다. 또한 그 역시 자신만의 상아탑으로 물러나 책으로 둘러싸인 개인 서재에서 스스로의 세계에 침잠해 있는 생활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은둔 생활은 끝없는 동요, 형태의 불안정성, 세상의 다원성, 그리고 그 자신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휩쓸려들게 되는 무작위적인 일탈에 대한 깨달음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307)<br>"영국에서도 매우 어렵기는 했지만 신을 최초에 원자를 창조한 자로 설정함으로써 원자론과 신앙의 병존이 가능해졌다. 아이작 뉴턴은 과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의 하나로 여겨지는 자신의 책에서 루크레티우스의 시 제목을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원자론자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입자들이 전체로서 계속 존재하는 한 그들은 모든 시대에 존재하는 똑같은 본성과 성질을 가진 여러 형체를 구성할 것이다. 그러나 입자들이 닳아서 없어지거나 조각나 부서지게 되면, 사물의 본성은 바로 이 입자들에 달려 있으니 그 또한 변할 것이다.〉 그러면서 뉴턴은 조심스럽게 신성한 창조주 이야기를 꺼내든다. 〈그 어떤 일상적인 힘도 신이 최초에 창조한 원자를 쪼갤 수는 없다.〉" "루크레티우스의 유물론은 드라이든이나 볼테르의 회의주의, 디드로나 흄을 비롯한 많은 계몽시대 인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실용주의적이며 대단히 파괴적인 불신론을 낳는 데에도 기여했다."(326-7)<br>"『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토머스 제퍼슨이 가장 좋아하는 책들 중 한 권이었다. 제퍼슨은 루크레티우스의 시를 통해서, 특히 무지와 공포가 인간 존재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소가 아니라는 확신을 품는 데에 도움을 받았다. 사실 제퍼슨은 시의 저자인 루크레티우스가 기대했을 법한 방식이 아니라 16세기 초의 토머스 모어가 꿈꿨을 만한 방식으로 이 고대 유산을 받아들였다. 알다시피 제퍼슨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공적 생활로 인한 격렬한 경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새로운 공화국의 초석이 되는 중대한 정치적 문서를 작성하는 데에 참여했다. 그런데 그 문서의 내용은 루크레티우스의 시가 만든 또 하나의 뜻밖의 전환이었다. 이 문서로 탄생하는 정부의 사명은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복 추구〉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루크레티우스를 이루던 원자들은 이렇게 미국 독립선언서에도 그 자취를 남겼다."(328)]]></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62/50/cover150/89729154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625011</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점심</category><title>오늘의 이스라엘 / 최용환 - [오늘의 이스라엘 - 7가지 키워드로 읽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00239</link><pubDate>Thu, 19 Feb 2026 07: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1002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022531329&TPaperId=171002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26/65/coveroff/e02253132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022531329&TPaperId=171002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늘의 이스라엘 - 7가지 키워드로 읽는</a><br/>최용환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05월<br/></td></tr></table><br/>프롤로그 익숙하지만 낯선 나라, 이스라엘<br>1장 시오니즘과 분쟁<br>1917년 영국군이 오스만제국의 군대를 격파한 이후부터 30여 년 동안 국제연맹의 결의에 따라 영국이 이 지역을 위임통치하였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국제연맹을 이은 유엔은 1947년 11월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과 아랍인이 각각 그들의 개별국가를 건설토록 하는 이른바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안1947 Partition Plan’을 채택했다. 이 분할안에서 주목할 것은 ‘예루살렘’에 대해 내린 결정이었다.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안은 예루살렘을 직접 관할할 수 있는 ‘코르푸스 세파라툼Corpus Separatum’이라는 지위를 유엔에 부여하고 있다. 예루살렘은 앞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설될 유대 국가나 아랍 국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별도로 분리된 지역이라는 뜻이다. 1947년 유엔 ‘영토 분할안’에서 예루살렘은 UN이 직접 관할하는 특별지역으로 규정되었지만, 1949년 휴전협정에서는 예루살렘의 동쪽 부분은 요르단이, 서쪽 부분은 이스라엘이 각각 나누어 관할하는 것으로 양측 간 합의가 이루어졌다. 19)<br># 코르푸스 세파라툼Corpus Separatum. ‘따로 분리된 독립체(separated body)’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이다.<br>예루살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구시가지(올드시티) 구역은 당시 이스라엘이 장악하지 못한 채 요르단의 관할구역으로 남았다. 그 이후 거의 20년 동안은 그린라인(제1차 중동전쟁 때 그어진 1949 휴전선1949 Armistice Line)이 양측 간에 실질적인 국경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일명 ‘6일 전쟁’)에서 마침내 요르단이 장악하고 있던 올드시티 등 동예루살렘 지역마저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이로써 예루살렘 전역에 대한 실질적 통치권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이 같은 상태는 오늘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을 나누고 있던 그린라인은 1949년에 그어졌지만, 국제정치적 관점에서는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중요하다. 현재 이스라엘은 그린라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루살렘은 동과 서로 나눌 수 없는 하나의 도시이며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는 주장이다. 이미 예루살렘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만큼 동예루살렘을 포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20)<br>&nbsp;‘욤 하지카론Yom HaZikaron’이라고 부르는 이스라엘의 현충일은 독립기념일 바로 하루 전날이다. 유대력으로 ‘이야르Iyar’달 4일이다. ‘욤 하츠마우트Yom Haatzmaut’라고 부르는 이스라엘의 건국기념일(독립선언일)은 양력 기준으로 1948년 5월 14일이다. 유대력으로는 ‘이야르달’ 5일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유대력에 따라 각종 기념일을 경축하기 때문에 독립기념일 역시 양력으로는 매년 날짜가 달라진다. 반대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독립기념일 다음 날인 5월 15일을 ‘알 나크바Al Nakba’, 즉 ‘나크바(재앙)의 날’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의 건국 선언 다음 날인 5월 15일 제1차 중동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자신들의 고향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에레츠 이스라엘로 돌아와 나라를 세운 것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사명이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건국이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대재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43-4)<br>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은 상시적이고 현재 진행형이다. 언제 어디서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에는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공항이나 항만이 없다. 두 개로 나누어진 영토 역시 이스라엘 군에 의해 철저히 봉쇄되어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지역 출입 문제에서부터 국제기구가 관장하는 팔레스타인 지역 내에서의 각종 인도적 지원사업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과 외부세계를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데 있어 이스라엘 당국의 협조를 얻는 것이 가장 우선적이면서 또한 필수적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팔레스타인과 관련된 각종 비군사적・행정적 업무를 조정・통제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 ‘코가트COGAT’라는 조직이다. 국방부 산하 조직으로 ‘Coordinator of Government Activities in the Territories’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점령지 민정조정관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코가트의 책임자는 현역 육군 소장이 맡고 있다.&nbsp; 45-6)<br>2장 디아스포라와 이민<br># 유대교 공동체 구분1. 하레디 : 유대율법에 가장 충실한 초정통파 그룹2. 다티 : 근대화된 성향의 종교적 시오니스트 그룹3. 마소르티 : 전통적 가치를 따르면서도 현대적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그룹4. 힐로니 : 종교적 가르침을 지키지 않는 세속적 성향의 그룹<br># 출신 지역별 구분1. 아시케나지 : 독일 지역2. 세파르디 : 스페인 지역3. 미즈라히 : 북아프리카, 중동 지역<br>오늘날 이스라엘의 가장 대표적인 출신 지역 그룹은 ‘아시케나지Ashkenazi’ 그룹이다. 아시케나지는 과거 독일 지역을 가리키는데 9~10세기경 라인강 유역의 유럽에 거주하고 있었던 유대인 그룹을 지칭한다. 현재 지도에서 보자면 주로 독일 서부와 프랑스 북부 일부 지역이 그들의 주요 거주지였다. 이들은 수세기에 걸쳐 동부 유럽 지역인 오늘의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지로 이주했다. 이들은 동유럽과 러시아 등에서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본격적으로 가해지던 시기에는 서유럽과 미국 등지로 다시 옮겨가기도 했다. 이들은 독일어를 바탕으로 히브리어 문자가 결합된 ‘이디시Yiddish’라는 언어를 독자적으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집단이 바로 아시케나지 그룹이다. 하레디 종교정당인 UTJ를 구성하는 ‘아구닷 이스라엘Agudath Israel’과 ‘데겔 하토라Degel HaTorah’도 모두 아시케나지 유대인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64)<br>또 하나의 대표적 그룹은 ‘세파르디Sephardi’ 그룹이다. 세파르디는 히브리어로 스페인을 뜻하는 ‘세파라드’에서 나온 말이다. 이들은 로마 시대부터 오늘날의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등 이베리아반도 지역에 주로 거주해 오던 유대인 집단이다. 이들은 중세를 거쳐 15세기까지 무슬림이 지배하던 시기에 자신들이 거주하던 곳에서 상당한 지위와 영향력을 누리면서 활동했다. 그러나 15세기 말 기독교를 믿는 정치세력이 맹위를 떨치면서 위기를 맞는다. 이베리아반도가 기독교인들의 치하에 들어가자 무슬림은 세력을 잃고 유대인들도 기독교로의 개종을 강요당하며 시련을 겪었다. 세파르디 그룹 유대인들이 주로 이주한 북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는 이미 상당수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미즈라히Mizrahi’ 그룹이라고 부른다. 유럽 중심의 아시케나지와 구분하는 차원에서 지중해 주변 지역 중심의 유대인들을 통칭하여 모두 세파르디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레디 종교 정당 중 '샤스'당은 이들 세파르디가 중심이다. 65)<br>종교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는 최고랍비공의회는 아시케나지와 세파르디 두 그룹을 각각 대표하는 최고 랍비가 모인 2인 협의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건국 이후에 이스라엘 현지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은 유대인인 ‘사브라’들은 자신들의 부모 세대에 비해 조상의 출신 지역이나 인종적 배경에 따른 구분 의식이 별로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사브라들이 해외에서 태어나 이스라엘로 이주해 온 올림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들 사브라들이 이제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는 주도세력으로 성장한 만큼 그동안 존재해 왔던 아시케나지와 세파르디 집단 간의 갈등은 이미 상당히 해소되었다는 것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자유분방한 세속적 힐로니 그룹 내에서는 실제로 아시케나지 출신과 세파르디 출신 간의 결혼도 흔한 편이다. 하지만 초정통파 그룹 내에서는 아시케나지 출신과 세파르디 출신 간 결혼은 여전히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66)<br>이스라엘 유대인들 가운데서 가장 외모가 두드러져 보이는 이들은 피부색이 어두운 유대인들이다. 이들을 ‘이스라엘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타 이스라엘’ 또는 그들의 출신 지역을 따서 ‘에티오피아 유대인’이라고도 한다. 이들 에티오피아 유대인은 오랜 기간 유럽 중심의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채 거의 잊힌 존재로 남아 있었다. 대다수는 교육이나 소득 수준이 높지 않고, 그만큼 사회적으로도 낮은 계층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이스라엘의 슈퍼마켓에 가면 계산대에서 일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유대인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의 소득 수준은 이스라엘 전체 직장인의 월평균 소득보다 20~40% 정도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성보다 여성의 급여가 더 낮다. 이들도 똑같은 유대인이지만 아랍계 국민과 비슷한 소득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 등을 중심으로 피부 색깔에 따른 차별적 대우 때문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66-7)<br>아이러니하게도 아랍 국가들과의 끊임없는 분쟁을 치른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에는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아랍인이 많이 있다. 이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이미 이스라엘의 영토로 선언된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해 온 아랍인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건국과 동시에 치러진 독립전쟁 중에도 살던 지역을 떠나지 않고 계속 버텨왔던 아랍인들이다. 이들을 ‘48 아랍인’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의 건국 연도인 1948년 당시에 이미 그곳에 살던 아랍인들이라는 뜻이다. 이들 48 아랍인들에게는 1952년 제정된 국적법에 따라 모두 이스라엘 국적이 주어졌다. 이들과 그 자녀들은 오늘날 이스라엘 인구의 약 20%에 해당하는 아랍계 이스라엘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종교적으로 보면 이들 대부분은 무슬림이다. 물론 일부 크리스천도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은 자신들의 조국(이스라엘)과 민족(팔레스타인)의 갈등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이들의 정체성은 이중적이다. 69)<br>드루즈Druze는 아랍어를 말할 수 있고, 그들의 종교가 이슬람과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에 이슬람의 한 분파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계 아랍인과는 다른 특유의 종교와 생활방식으로 인해 그들은 통상적으로 별도 민족으로 분류된다. 이스라엘의 드루즈는 약 15만 명 정도로 전체 이스라엘 인구의 2%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미미한 수준이다. 이들은 비록 아랍어를 구사하고 이슬람에서 파생된 신앙을 갖고 있으나 이슬람과는 다른 독자적 신앙체계를 갖고 있다. 드루즈가 유대인 중심의 이스라엘 사회에서 관심을 끄는 이유는 유대인이 아닌 드루즈 남성에게 이스라엘 군대에 복무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동안 아랍세력으로부터 박해를 경험해 온 드루즈는 이스라엘 독립전쟁이 시작되자 적지 않은 남성들이 이스라엘의 편에 서서 아랍권을 상대로 싸웠다. 드루즈의 미래를 위해서는 아랍 민족주의보다는 유대 시오니즘에 동조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74)<br>드루즈가 주로 팔레스타인 북부에 거주해 온 반면 베두인Bedouin은 수천 년 전부터 남쪽 시나이 반도와 네게브 사막 지역을 중심으로 유목 생활을 해 오던 아랍 민족이다. 언어도 주로 아랍어를 사용하고 종교도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스라엘 내 베두인의 인구는 약 25만 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약 3%에 육박한다. 1970년대부터 이스라엘 정부는 네게브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던 베두인들을 지정된 마을들로 이주해 살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강제 이주 문제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으나, 베두인의 상당수는 정부가 지정한 마을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다. 베두인의 일부는 아직도 이스라엘 정부의 공식적 행정체계에 포함되지 않는 무허가 마을에서 살고 있다. 일반인들은 캠핑조차 하기 어려운 네게브 광야 지역에 흩어져 있는 그들만의 마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전체 국민을 사회계층으로 나눌 때 네게브 지역 무허가 주택에 거주하는 베두인이 최하층민이라고 할 수 있다. 75-6)<br>3장 유대 국가와 유대 정체성<br>귀환법이나 시민권법에서는 법률적인 의미에서 누가 유대인인가에 대해 정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대인이라고 하면 전통적으로 유대 종교법 ‘할라카’에 따라 어머니 쪽 혈통을 따른다. 즉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사람만을 유대인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20년 만인 1970년에 귀환법을 개정하면서 이스라엘로 이주할 수 있는 유대인의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개정된 법에서는 유대인의 손자녀(친가든 외가든 조부모중 한 사람만이라도 유대인인 경우), 유대인의 배우자, 유대인의 자녀의 배우자까지 범위를 확대해 이들에게도 이스라엘 이주와 자동적인 국적취득을 허용한 것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어머니가 유대인이지만 신앙으로서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유대교를 믿지 않더라도 다른 종교로 개종만 하지 않았다면 귀환법의 적용대상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와는 반대의 경우였다. 어머니가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다른 종교로 개종했다면 이주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87-8)<br>유대인이 아닌 사람에 대해 유대교로 개종을 허가하는 것은 전적으로 랍비가 재판관을 맡는 종교법원의 배타적 권한에 속한다. 이 종교법원은 초정통파 ‘하레디’ 그룹의 랍비들이 장악하고 있다. 2021년 3월 이스라엘 대법원은 이방인의 유대교 개종과 관련하여 역사적인 판결을 했다. 초정통파 소속이 아닌 개혁파 랍비의 주관으로 개종한 이방인도 귀환법의 적용대상이 된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한 것이다. 이 같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초정통파 측에서는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그들은 기존 방식대로 초정통파가 규정하는 절차를 거친 개종자에게만 귀환법을 적용하도록 대못을 박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대법원의 획기적 판결에 따라 이들의 이스라엘 이주와 국적취득은 허용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유대 종교법상의 유대인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귀환법에 따라 귀환 이주해 국민의 자격을 얻는 것과 종교법상의 유대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90)<br>유대인 중에서 유대교의 일반적인 교리와는 다르게 예수(히브리어로 ‘예수아’)가 곧 메시아(구세주)이며 그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메시아닉 유대인Messianic Jews’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크리스천이 아니라 역시 유대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 스스로의 생각과는 달리 초정통파 유대인 그룹은 이들을 유대인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들은 유대교에서 이탈한 이교도인 크리스천일 뿐이라는 것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메시아닉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모계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자동적으로 알리야의 권리를 주지 않는다. “유대인이었다가 자발적으로 다른 종교로 개종한 사람은 예외로 한다”는 귀환법의 예외 규정에 따르면,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타종교로 개종한 사람(크리스천)일 뿐이다. 이스라엘 대법원도 1989년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90-1)<br>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에서 하레딤이 장악한 의석은 2022년말 현재 18석에 이른다. 하레딤을 배경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종교정당들은 크게 11석을 가진 ‘샤스SHAS당’과 7석을 갖고 있는 UTJ 즉, ‘토라 유대교 연합’United Torah Judaism이라는 정당으로 크게 대별된다. 이들 초정통파 종교인들로 구성된 종교정당들은 의회총선에서 매번 15석 안팎의 의석을 확보한다. 정부 구성을 위해서는 정당 간 연합이 불가피한 이스라엘 정치체제의 특성상 이들 종교정당들은 지난 수십 년간 우파 연립내각에 빈번하게 참여해 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각료직을 배분받아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율법을 실천하고 유대인으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정부의 기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유대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여타 집단들과의 갈등과 충돌은 오늘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93)<br>종교로서의 유대교와 현실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시오니즘을 결합한 것이 종교적 시오니즘이다. 종교적 시오니스트들은 유대인들이 에레츠 이스라엘로 돌아와 유대인의 나라를 건국하려는 시오니즘을 적극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유대교의 정체성을 지키며 토라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토라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세속적 시오니즘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또한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유대교의 근본주의적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강경하다. 예루살렘의 유대교 성지聖地는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정치적으로 극우의 입장에 서 있다. 극우성향을 가진 종교적 시오니스트 그룹은 2022년 가을 총선에서 14석이나 차지할 정도로 약진했다. 하레디 종교정당과 종교적 시오니스트 그룹의 의원들을 합치면 32석이나 된다. 2022년을 기준으로 이스라엘의 연합 정부는 역사상 가장 강경한 우파 정권으로 간주되고 있다. 93-4)<br>초정통파 하레디 그룹은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약 12~13%에 달한다. 그런데 이들 하레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하레디 공동체를 떠나 독자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이렇게 공동체를 떠난 이들을 ‘요침’이라 부른다. 히브리어로 ‘떠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이들은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요침의 상당수는 자신이 살던 집이나 공동체와 거리를 두고,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배척을 당하면서 관계의 상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배신자나 배교자로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미혼인 경우는 상대적으로 비난이 덜하겠지만 결혼한 남성이 공동체를 벗어나면 그야말로 가족을 저버린 ‘나쁜 가장’으로 최악의 비난을 받게 된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하레디 공동체에서 생활할 때보다 궁핍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같이 하레디 공동체를 떠나는 것이 모험에 가까울 정도로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요침의 규모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99-100)<br>4장 작은 나라 강한 군대의 비밀<br>건국 직후부터 최근까지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전쟁국가' 이스라엘에서 국방력을 담당하는 군을 히브리어로 ‘짜할Zahal’이라고 부른다. 영문 약칭으로는 IDF 즉 ‘이스라엘 방위군Israel Defense Force’이다. ‘짜할’은 이스라엘이 독립선언을 한 직후 정식으로 창설되었지만 그 뿌리는 건국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짜할은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위임통치하던 시절 아랍인으로부터 유대인을 보호하기 위해 활동했던 최대 규모의 유대인 무장조직 ‘하가나’를 모체로 하고, 다른 유대인 시오니스트 무장단체인 ‘이르군’ 등을 흡수하여 만들어졌다. 이스라엘 군의 병력 규모는 17~18만 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현역 병력 못지않게 중요한 병력이 약 46~47만 명 정도에 달하는 예비군이다. 예비군은 40세(장교는 45세)가 될 때까지 연간 약 한 달 정도 훈련에 소집된다. 전쟁이 일어나면 당연히 부대별로 예비군 동원령이 내려진다. 그간 이스라엘이 치렀던 수차례의 전쟁에서 예비군은 상당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4)<br>이스라엘의 강력한 국방역량 배경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것이 독특한 군 간부양성 프로그램이다. 그중에서도 ‘탈피오트Talpiot 프로그램’은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엘리트 양성 방식이다. 탈피오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표현으로 ‘난공불락의 망대(파수대)’라는 뜻이다. 이들 탈피온은 중위로 임관해 주로 첨단장비 연구개발 부대, 컴퓨터 통신부대, 사이버 부대, 정보기관 등에 배속되어 6년간 복무하면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이스라엘이 자랑할 만한 최고 수준의 첨단무기를 새롭게 개발하거나 작전에 배치되어 활용 중인 기존 무기의 성능을 개선하는 작업도 이들의 몫이다.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하게 되면 이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최고 엘리트로 대접받는다. 이들이 군 복무 기간 중 습득한 지식이나 경험 그리고 선후배 간에 맺은 인연은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취업으로 연결된다. 탈피오트 프로그램은 군과 학교 및 기업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115-6)<br>다양한 형태의 전문 특수부대들도 이스라엘의 국방안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먼저 탈피오트 프로그램보다 훨씬 앞서 통신 분야의 우수한 인재를 활용해 온 특수부대 ‘쉬모네 마타임’이 있다. ‘쉬모네’는 히브리어로 숫자 ‘8’을 뜻하고 ‘마타임’은 숫자 ‘200’을 뜻한다. 그래서 ‘8200(8-200)’ 부대로도 알려져 있다. 8200부대는 독립전쟁이 끝난 직후에 통신정보수집과 비밀암호 해독 등을 위해 공식 창설된 특수부대이다. 인터넷이나 사이버 분야의 정보수집과 그에 대한 대응 활동도 같이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이나 영국의 정보통신본부GCHQ등과 비슷한 기능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nbsp; 8200부대 출신들은 전역 이후에도 그들만의 모임을 만들어 창업이나 취업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8200부대는 IT 분야의 엘리트 양성조직이면서 전역 이후에도 사회적인 인정과 적절한 보상이 거의 보장되기 때문에 군 복무를 앞둔 고교생들 간에 엄청난 선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116-7)<br>8200부대와 더불어 유명한 군 정보부대 중의 하나로 9900부대가 있다. 9900부대는 위성이나 드론 등을 이용하여 수집한 영상을 판독・분석하여 지리정보를 제작해 정책결정권자나 지상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에 배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특수부대이다. 미국 국가지형정보국NGA의 기능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2013년부터는 이 부대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청년들을 특별 채용하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적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 부대는 특정 사물을 집중적으로 탐색하거나 시각적인 관찰을 반복적으로 즐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독특한 능력을 영상정보 분석이라는 업무에 활용한다. 그 외에도 팔레스타인 주민과 유대인 정착촌이 공존하는 동부의 서안지역, 무장정파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남부의 가자지역, 구릉과 산악이 많은 북부의 레바논 인접 지역 등에는 각 지역별로 특화된 부대들이 있다. 또한 지리적 특성에 따라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다양한 형태의 특수전 부대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117)<br>이스라엘에는 국가 차원에서 크게 세 종류의 정보・보안기관이 있다. 해외에서의 정보수집과 비밀공작을 담당하는 ‘모사드Mossad’, 국내에서의 보안방첩 업무를 담당하는 ‘신베트Shinbeit(일명 샤박)’, 국방부 산하에서 군사정보를 취급하는 ‘아만Arman’이 그들이다. 그중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정보기관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모사드는 ‘기관’, ‘연구소’, ‘협회’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어 공식 명칭은 ‘이스라엘 비밀정보부Israel Secret Intelligence Service’이며, 약칭으로 ‘ISIS’라고 부른다. 모사드는 이스라엘이 건국하기 전부터 있었던 ‘하가나Haganah’ 산하의 비밀조직들을 그 모태로 한다. 모사드의 모토는 《성경》 구절로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리라Where no wise direction is, the people fall, but in the multitude of counselors there is safety, 잠언 11:14”가 그것이다. 모토에서 보듯이 모사드는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보는 정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128)<br>5장 창업 정신과 후츠파<br>이스라엘 국민의 특성을 보여주는 표현 중에 ‘후츠파Chutzpah’라는 단어가 있다. 히브리어 ‘후츠파’는 ‘무례함’, ‘당돌함’, ‘건방짐’, ‘뻔뻔함’, ‘독선적임’, ‘남을 배려할 줄 모름’, ‘후안무치함’ 등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다. 이같이 부정적 의미로 가득 차 있던 후츠파가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의 성공 비결이자 발전의 원동력으로 변모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소멸되지 않고 주변의 안보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아 계속 성장 발전하는 것은 후츠파 덕분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데 강한 유대인의 특성이 원래 부정적이던 단어의 의미조차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그대로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만나는 유대인에게 후츠파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후츠파 정신이라는 찬사에 멋쩍어하거나 어색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칭찬의 뜻으로 사용한 말 한마디가 오히려 심기를 상하게 할 수도 있으니 현지에서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141-3)<br>이스라엘은 물이 만성적으로 부족한 사막 지역이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척박하다. 아직 인구 규모가 1천만 명이 안 되고 다른 환경도 상당히 열악한 편이다. 당연히 경제발전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농업이나 제조업보다 부가가치가 큰 다이아몬드 가공이나 기술집약적 또는 지식기반형 산업의 비중이 훨씬 높은 편이다. 많은 국가에서 T&amp;T를 배우기 위해 이스라엘로 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자주 사용하던 표현인데 ‘Terror(테러) 대응 경험’과 ‘Technology(기술)’가 바로 그것이다. 그만큼 기술은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국가경제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이다. 사실 이스라엘 영토에는 석유가 거의 나지 않는다. 당연히 필요한 석유의 전량을 외국에서 수입하던 나라였다. 하지만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리바이어던’, ‘타마르’ 등 대규모 가스전이 개발되고 2013년부터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이제는 요르단과 이집트로 가스를 수출하는 에너지 수출국으로 변모했다. 143-4)<br>유대인이 이스라엘 땅을 떠나는 것을 ‘예리다yerida’라고 하며, 이를 감행한 유대인들을 ‘요르딤yoredim’이라고 부른다. 이 ‘요르딤’ 중에는 특히 의사, 과학자, 이공계 교수, 하이테크 분야 엔지니어 등이 상당히 많은 분포를 차지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고학력 요르딤은 이스라엘에서의 삶의 질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불만이다. 요르딤들은 특히 자신들이 감당해야 하는 세금이 계속 증가하는 것에도 불만이 크다.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경제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초정통파 하레딤이나 빈곤층 아랍계 등 국가 경제에 별로 기여를 못하는 집단을 위해 너무 많은 세금을 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 중 다수는 종교적으로 세속적 그룹인 세큘라들이 많다. 이에 더해 끝이 보이지 않는 하마스와의 무력 분쟁 등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안보 상황 역시 이스라엘에서의 행복을 해치는 큰 요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148-50)<br>6장 조약 없는 영혼의 동맹 미국<br>이스라엘 임시정부는 1948년 5월 14일을 자정을 기해 독립을 선언하고 건국을 선포했다. 이 독립국가 건설의 선언에 가장 먼저 반응한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다. 선언이 있던 날 자정이 지나고 겨우 11분 만에 미국은 이를 전격 승인했다. 물론 당시 미국의 승인은 ‘사실상의 승인De facto recognition’이었다. 이처럼 미국과 이스라엘은 수십 년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양국은 서로를 ‘동맹allianc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양국 간에는 그 흔한 ‘동맹조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와 미국 간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어 있다. 미국과 일본 간에도 ‘미일안전보장조약’이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미국은 그 같은 조약을 체결한 적이 없다. 이처럼 양국 간에 공식적인 동맹조약이 없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양국의 관계를 일반적인 동맹관계와는 다른 ‘특별한 동맹special alliance’, ‘문서 없는 동맹unwritten alliance’ 또는 ‘인지적 동맹cognitive alliance’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154, 156)<br>이스라엘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유대인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하나는 신앙적 관점에서 현대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나라가 아닌 시오니즘에 입각한 세속국가로 비판하는 일부 초정통파 그룹이며, 다른 하나는 국제사회로부터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인권 탄압 문제를 지탄받는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하는 그룹이다. 하레디 그룹 중에는 시오니즘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을 건국한 것은 불경스러운 선택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죄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시오니스트들은 2천 년간 지속된 디아스포라의 고통에서 벗어나 유대인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유대인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어 왔다. 이와 달리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초정통파 하레딤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반드시 하느님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시오니즘이 민족적인 차원에서 유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세속적인 정치운동인 데 반해 이들은 종교적 차원에서 하느님이 다스리는 진정한 유대 국가 건설을 염원하는 것이다. 158-9)<br>미국 내 유대인 중에서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군사적 점령과 반인권적 분리 정책을 펴는 이스라엘 정부에 비판적인 그룹이 존재한다. 이들은 주로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대의 유대인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미국에서 배운 대로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소수자 보호 등 사회적 정의를 지향하는 진보적 색채가 강한 편이다. 이들은 그간 정신적 조국으로 지지해 온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군사적 강경 조치로 일관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일종의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이들 미국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아직도 남녀가 함께 기도하지 못하도록 한다든가 전 세계 유대공동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랍계 국민을 배려하지 않는 ‘유대민족국가기본법’ 제정을 강행한다든가 하는 이스라엘 정부의 정치적, 종교적 차별조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부 강경한 진보성향의 유대인은 시나고그(유대교 회당)에서 더 이상 이스라엘을 위해 모금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159-60)<br>이 부분에서 오랜 기간 미국에 살면서 누구보다 미국을 잘 알았던 이스라엘 고위 외교관의 주장은 대단히 흥미롭게 들린다. 그는 미국 전체 인구 중에서 유대계 미국인은 겨우 2%에 불과한데, 그들 중 대부분은 이스라엘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인정한다. 그는 따라서 이스라엘로서는 이들 미국 유대인보다 오히려 훨씬 숫자가 많은 미국 내 복음주의 기독교인에 초점을 맞추고 이들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전체 미국인의 25%를 웃돌 정도로 숫자가 많지만 이스라엘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은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를 넘어서는 이스라엘의 현실 인식은 아랍권과의 관계 변화 속에서 미묘한 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이스라엘이 앞으로 이슬람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계속 확대해 나간다면 이슬람에 적대적인 미국 내 일부 강성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시각에 과연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162-3)<br>아랍권 국가들 가운데 이스라엘과 수교한 나라는 현재 모두 6개국이다. 이스라엘은 제4차 중동전쟁이 끝난 후 1979년 이집트와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지난 30여 년간의 적대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아랍 국가 중에서는 최초로 이집트와 수교한 것이었다. 이어 1994년에는 요르단과 두 번째로 수교했다. 두 나라 모두 이스라엘과 남쪽 및 동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이며, 상호 대사관을 설치해 운영 중이다. 2020년에 와서는 걸프만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진전이 보이면서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은 아랍에미리트 및 바레인과 수교한 데 이어 수단 및 모로코 등과도 연이어 국교를 수립하기로 합의했다. 이들 나라 중에서 가장 먼저 아랍 에미리트UAE가 2021년 7월 마침내 이스라엘에 대사관을 개설했다. UAE 대사관이 개설된 지역은 대다수 국가의 대사관이 있는 텔아비브 지역이다. 이는 아랍권 국가로서는 세 번째로 이스라엘 영토 안에 대사관을 개설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171)<br>7장 젊은 나라 속의 오랜 율법<br>이스라엘에는 결혼과 관련한 법률적인 문제를 다루는 두 개의 법원이 있다. 하나는 랍비청이 주관하는 종교법원이고 다른 하나는 세속법원(가정법원)이다. 히브리어로 ‘베이트 딘Beit din’이라고 부르는 유대교 종교법원은 유대 종교법에 정통한 초정통파 랍비가 재판관을 맡는다. 그런데 유대인의 결혼이나 이혼의 허가 여부는 전적으로 종교법원의 독점적 권한에 속한다. 가정법원은 유대인의 결혼이나 이혼에 대한 법률적 판단 권한을 갖지 못한다. 결혼문제와 관해서 이스라엘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일종의 정교일치 국가라고 할 수도 있다. 결혼에 앞서 유대인은 랍비청에 자신이 유대인임을 입증하는 서류, 예컨대 유대인인 모친에게서 출생한 증명서나 종교법원으로부터 발급받은 유대교 개종 증명서 등을 제출하고 결혼허가 신청을 한다. 그런 다음 제출서류에 문제가 없으면 종교법상 권한을 갖춘 랍비의 주관하에 결혼 절차를 밟게 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친 경우에만 합법적 결혼으로 인정을 받는다. 180-1)<br>하레디 가정의 초정통파 여성들은 결혼식 전날 밤 몸을 정결하기 위해 ‘미크베’에 들어간다. 미크베는 일종의 욕탕이다. 그러나 씻고 휴식을 취하려는 실용적인 목적보다 몸을 정결한 상태로 되돌린다는 의식적인 목적이 강하다. 육체적인 정결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정결함을 되찾기 위한 것이다. 미크베는 시나고그(유대교 회당)처럼 유대공동체에 반드시 있어야 할 시설의 하나로 간주된다. 결혼에 있어서 또 하나의 이슈는 랍비와 관련된 문제이다. 결혼문제에 대한 최종 권한은 랍비청이 가진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초정통파 랍비가 아닌 개혁파 랍비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종교적 신념이 개혁적이라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모계 유대인 신분을 입증하지 못해 초정통파 랍비청으로부터 결혼을 거부당할 때 비정통파 랍비들에게 주례를 부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81)<br>히브리어 ‘아구나Agunah’는 결혼한 여성이 여러 가지 이유로 혼인관계를 끝내고 싶어 하지만 혼인이라는 굴레에 속박당한 채 살아가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유대 종교법상 결혼한 여성은 남편이 이혼에 동의하거나 남편이 사망한 경우에 한해서 혼인관계가 종료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재혼도 할 수 있다. 남편이 이혼에 동의한다면 “이제 다른 남자가 당신을 만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게트’(일종의 이혼선언서)를 작성해 아내에게 전달하게 되는데 부인이 이를 받음으로써 비로소 이혼이 성립하고 혼인관계도 끝나는 것이다. 성경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이혼증서(게트)를 주고 집에서 내보내면 그 여자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다. 두 번째 남편도 그 여자에게 이혼증서를 주거나 또는 사망한다면, 그 여자를 내보냈던 첫 번째 남편은 그 여자를 다시 맞이해서는 안 된다”(구약 신명기 24장)는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을 두고 유대 종교법에서는 이혼증서를 줄 수 있는 권한은 오직 남편에게만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183-4)<br>‘샤밧Shabbat’은 유대인의 안식일이다. 샤밧은 양력 토요일로, 금요일 저녁 해가 질 때부터 토요일 저녁 해가 질 때까지이다. 대부분의 관공서와 직장은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간 휴무한다. 일요일은 새로운 일주일이 시작되는 날로 평일이며 일하는 날이다. 물론 오늘날 세속적 성향의 세큘라 유대인은 샤밧을 잘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초정통파 하레딤은 여전히 이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이들은 샤밧에 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TV 시청이나 자동차 운전 등도 금기시한다. 이들은 꼭 필요한 경우 이방인에게 샤밧 동안 율법상 금지된 행동을 대신 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 샤밧 기간 동안 유대인의 부탁을 들어주는 이러한 비유대인을 ‘샤밧 고이’라고 부른다. ‘고이’는 ‘이방인’이라는 뜻이다. 예루살렘에서 체류했던 한 유학생은 자신이 세 들어 살던 집 주인인 초정통파 유대인으로부터 샤밧에 집 안의 전등 스위치를 대신 눌러 달라든지 냉장고를 대신 열어 달라는 등의 부탁을 받았다는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190)<br>유대인들이 기리는 명절에는 봄철의 유월절逾越節, 초여름철의 칠칠절七七節, 가을철의 초막절草幕節 등이 있다. 히브리어로 ‘페사흐’라고 부르는 유월절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유대민족이 모세의 인도로 안전하게 탈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다. 칠칠절은 히브리어로 ‘샤부오트’라고 부르는데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동시에 첫 수확의 기쁨을 감사하는 날이다. ‘수코트’라고 부르는 초막절은 유대민족이 40년간 광야에서 초막을 지어놓고 생활할 때 하느님께서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는 축제의 날이다. 일주일간 진행되는 유월절 기간에는 누룩이 들어있는 발효식품인 ‘하메츠’를 갖고 있거나 먹어서는 안 된다. 유대인은 대신에 누룩이 들어 있지 않아 맛이 없고 딱딱한 ‘마짜’를 먹게 된다. 《성경》에 ‘무교병無酵餠’이라고 나오는 것으로,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빵이나 과자를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유월절을 ‘무교절’이라고도 부른다. 198)<br>에필로그 닮은꼴의 나라, 이스라엘과 대한민국]]></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26/65/cover150/e02253132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7266550</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간식</category><title>나는 물리로 세상을 읽는다 / 크리스 우드포드 - [나는 물리로 세상을 읽는다 - 소소한 일상에서 우주의 원리가 보이는 난생처음 물리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089186</link><pubDate>Fri, 13 Feb 2026 07: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0891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731387&TPaperId=170891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054/29/coveroff/k8427313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731387&TPaperId=170891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는 물리로 세상을 읽는다 - 소소한 일상에서 우주의 원리가 보이는 난생처음 물리책</a><br/>크리스 우드포드 지음, 이재경 옮김 / 반니 / 2021년 05월<br/></td></tr></table><br/>1. 고층빌딩이 안전한 이유 - #중력 #운동법칙<br>우리 삶을 진정으로 지배하는 힘, 우리 중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힘이 바로 중력이다. 지구(질량이 무려 6×10의 24승kg)와 질량이 있는 모든 것 사이의 끌어당기는 힘이 증력이다. 도시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마천루를 생각해보자. 빌딩이 꼼짝도 하지 않으므로 뉴턴의 운동 제1법칙과 제2법칙에 따라, 빌딩에 아무 힘도 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제1법칙에 따르면 움직이지 않는 것은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계속 멈춰 있고, 제2법칙에 따르면 운동은 힘에 의해 시작된다. 종합하면 일반적으로 건물은 외견상 힘을 받지 않고, 따라서 정지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건물에 매순간 중력이 작용한다는 걸 안다. 간단히 말해서 뉴턴의 말이 맞는다면 건물은 가루가 돼 지구 내부로 쓸려 들어가서 영원히 또는 지구 핵의 용광로에서 녹아 없어질 때까지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중력이 건물을 땅속으로 잡아당길 때 땅이 정확히 같은 힘으로 건물을 위로 밀어올리기 때문이다. 11, 14)<br># 뉴턴의 제3법칙 : 힘이 물체에 작용하면 정확히 같은 크기의 다른 힘(반동)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작용・반작용의 법칙<br>건물 기반이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막고, 힘들의 균형이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다면, 그 힘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우리를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은 약 100가지 유형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 생명의 ‘레고블록들’을 화학원소라고 부른다. 원자가 여럿 뭉쳐서 분자라는 더 큰 구조를 만든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대부분의 힘은 원자 내부와 원자 사이, 분자 내부와 분자 사이에서 비롯된다. 원자 내부는 대부분 빈 공간이다. 원자의 가장자리에는 (배터리의 음극처럼) 음전하를 띤 전자들이 일종의 성긴 ‘전자구름’을 형성한다. 한편 원자의 중심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뭉쳐서 원자핵이라고 하는 단단한 내핵을 형성한다. 원자핵은 (배터리 양극처럼) 양전하를 띤다. 원자의 음전하 부분과 양전하 부분은 원자끼리 너무 들러붙는 것을 막는다. 철근은 쥐어짜도 눌리지 않는다. 철 원자 각각을 둘러싼 음전하 전자구름들이 서로를 밀어내기 때문이다. 두 자석의 같은 극처럼 음전하끼리는 서로 배척한다. 14-5)<br>미술관과 도서관 같은 공공건물의 명칭은 흔히 그 기관에 기부한 부자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다. 미터법의 측정단위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해당 단위 뒤의 과학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이 붙는다. 힘의 과학에 대한 뉴턴의 지대한 공헌도 거기 딱 맞는 방식으로 인정받았다. 현대 물리학에서 힘의 단위는 바로 N(뉴턴)이다. 1N에 얻어맞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세평에 의하면 뉴턴은 사과나무 아래에 있다가 떨어지는 사과에 머리를 맞고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사실이 아닌 건 누구나 안다). 무게가 약 100g인 사과에 작용하는 중력의 크기는 약 1N이다. 이제 앞서 말한 힘의 균형을 떠올려보자. 사과가 떨어지지는 것을 막으려면 1N의 힘으로 사과를 떠받쳐야 한다. 여기에 10을 곱해보자. 1kg의 물체에 작용하는 중력의 크기는 약 10N이다. 즉 지구 중력은 1kg당 10N의 힘으로 물체를 잡아당긴다. 내 몸무게가 왜 75kg인지 궁금한가? 지구가 나를 750N의 힘으로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18)<br>2. 살이 찔수록 왜 계단이 싫어질까? - #에너지 #전력<br>과학자들이 쓰는 에너지의 단위는 ‘줄joule’이다. 최초로 에너지 측정 실험을 행한 19세기 영국 물리학자 제임스 프레스콧 줄James Prescott Joule, 1818~89의 이름을 땄다. 커피 한 잔 분량의 물을 끓이는 데 약 120kJ(12만 J)이 든다. 물 한 잔을 끓이는 일(12만 J)은 오렌지 12만 개(12톤)를 1m 들어올리거나 오렌지 하나를 120km 상공(에베레스트산 높이의 14배)으로 던져 올리는 일과 같다. 일상의 각종 일을 수행하는 데 몇 줄의 에너지가 드는지 이론적으로 추산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이는 회계장부로 치면 ‘차변debit’, 즉 에너지의 수요(소비) 측면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초콜릿칩 쿠키, 자동차 배터리, 석탄 한 덩어리에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숨어 있는지, 그걸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도 꽤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이는 차변에 대한 ‘대변credit’, 즉 에너지의 공급 측면이다. 줄의 업적 덕분에 우리는 이 에너지 장부가 항상 균형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에너지 ‘대변’과 ‘차변’은 정확히 일치한다. 25)<br>그런데 에너지양만 알아서는 크게 의미가 없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는 데는 상당한 에너지가 든다. 하지만 관건은 그 일을 얼마의 시간 내에 해내느냐다. 예를 들어 틈틈이 쉬면서 전망을 감상해가며 8시간에 걸쳐 슬렁슬렁 한가롭게 올라간다 치자. 그렇게 분당 네 계단씩 올라간다면 지루하긴 하겠지만 딱히 몸이 힘들지는 않다. 이번에는 꼭대기까지 30분 만에 주파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워보자. 목표를 달성하려면 1초에 한 계단씩 헉헉대며 올라야 하고, 이건 비교할 수 없이 힘들다. 이렇게 에너지에 시간을 더한 개념이 일률power이다. 일률은 에너지 소비율이나 생산율(에너지양을 그것을 사용하거나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에너지처럼 일률도 측정 방법을 알면 개념이 잡힌다. 일률을 측정하는 단위를 와트watt, W라고 한다. 1초에 1J의 일을 할 때의 일률이 1W다. 100W 전등은 1초에 100J의 에너지를 쓰는 전등이다. 26-7)<br>무슨 일이든 거기 드는 에너지양은 항상 같지만, 더 높은 전력을 사용하면 더 쉽고 빠르게 작업을 마칠 수 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까지 어떤 방법으로 올라가든 내 체질량body mass을 같은 거리만큼 끌어올려야 하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항상 같은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전기모터가 내가 내 몸을 옮기는 것보다 훨씬 빨리 내 몸을 위로 옮겨준다. 전기포트, 가스레인지, 모닥불, 또는 숟가락으로 열심히 젓기(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이것들 모두 결국에는 물을 끓게 하겠지만, 각기 다른 일률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각기 다른 전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걸리는 시간은 각기 다르다. 3kW급 고성능 전기포트를 쓰면 1kW급 여행용 포트를 쓸 때보다 세 배 빠르게 물을 끓일 수 있다. 정확히 같은 양의 에너지를 세 배 빠르게, 즉 세 배의 전력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느 전력의 전기포트를 쓰든 에너지 소비량, 즉 킬로와트시는 같다. 29-30)<br>돈은 뜬금없이 내 은행계좌에 나타나거나 이유 없이 내 지갑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남들과 끝없이 거래하면서 돈을 벌고 또 소비한다. 에너지도 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 에너지를 원하면 (음식을 먹거나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식으로) 어디선가 에너지를 ‘벌어야’ 한다. 뭔가 원하는 걸 하려면 가진 에너지를 어느 정도 ‘소비해야’ 한다. 돈을 찍어내거나 위조하는 등 없던 돈을 난데없이 만들어내 금융시스템을 교란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별짓을 다해도 에너지에는 이 수법이 통하지 않는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정해져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으로 제로섬 방식의 거래를 하는 것뿐이다. 즉 어딘가의 에너지 획득은 다른 어딘가의 에너지 손실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것이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물리법칙이다. 이것을 에너지 보존의 법칙Law of Conservation of Energy이라고 한다. 흔히 에너지 절약의 의미로 쓰이는 에너지 보존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30)<br>3. 슈퍼히어로 되는 법 - #지레 #빗면<br>지레는 모든 기계의 아버지다. 도구 대부분이 지레의 원리에 기반한다. 지레는 막대의 한 지점을 받치고 그 받침점에 작용하는 회전력torque을 이용해 물체를 움직이는 도구다. 지레가 길수록 거기에 가하는 힘을 더 많이 늘려준다. 이 원리를 터무니없이 극단화한 것이 아르키메데스의 지구 행성 들어올리기 비유다. 렌치, 스패너, 크로바가 지레의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손잡이, 스위치, 심지어 두루마리 화장지를 포함한 다양한 물건 또한 지레의 원리에 기반한다. 지레는 두 가지 상반된 방식으로 내가 가하는 힘이나 속도를 증강한다. 지레의 끝을 돌리는 것은 뻑뻑한 너트를 스패너로 돌리는 것과 같다. 지레의 끝을 밀어서 원을 그리며 돌리면 원 중심부에는 더 느리지만 더 강한 회전력이 발생한다. 반대로 지레의 반대쪽 끝(원 중심부)을 돌릴 수도 있다. 그런 경우가 도끼를 휘두를 때다. 원의 중심에서 어깨가 회전할 때 원의 끝에서 도끼자루가 길게 회전하면서 속도가 붙고, 무거운 도끼머리가 나무를 반으로 쪼갠다. 38)<br>바퀴의 두 가지 작동 원리 중 간단한 것부터 짚어보자. 일단 바퀴는 지레처럼 작동한다. 바퀴가 커질수록 지레 효과도 커진다. 바퀴 림을 일정량의 힘으로 돌리면, 바퀴 허브(지레의 중심점)는 더 느리지만 더 강한 힘으로 돌게 된다. 이것이 파워핸들이 대중화되기 전 트럭과 버스의 핸들이 그토록 거대했던 이유다. 바퀴의 작동 원리가 한 가지 더 있다. 수레가 있으면 무거운 짐을 옮길 때 편리하다. 바퀴는 어떤 원리로 짐 운반을 쉽게 만들까? 모든 것은 힘의 작용, 다시 말해 바퀴들이 차축이라는 가느다란 쇠막대기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방식과 관계있다. 바퀴는 마찰을 차축으로 전달해 마찰을 줄인다. 아직 약간의 마찰은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수레를 옮기는 데 여전히 힘이 좀 들어가지만 이제는 걱정이 대폭 줄었다. 여기에 바퀴의 레버리지까지 거든다. 수레를 뒤에서 밀면 바퀴들이 지레 역할을 해서 미는 힘을 배가시키고, 결과적으로 바퀴가 더욱 원활하게 차축을 돌면서 남은 작은 마찰을 극복한다. 39-41)<br>에너지를 생각하면 빗면의 원리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0kg의 자갈을 들어서 땅에서 1m 높이의 트럭에 싣는다 치자. 자갈을 트럭에 어떻게 싣든지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라) 거기 드는 에너지의 양은 같다. 이때 필요한 최소 에너지양은 2,000J이다. 자갈을 자루에 채워 똑바로 들어올리는 경우 2,000W의 일률로 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전기포트나 전기토스터만큼 빡세게 일하는 셈이다. 하지만 자갈을 수레에 담아서 완만한 경사로로 약 4초에 걸쳐 밀어올리는 경우는 똑같은 2,000J의 에너지를 네 배 느리게, 즉 500W의 일률로 쓰게 된다. 단점이 있다면 수직으로 들어올릴 때보다 긴 거리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힘을 긴 거리에 걸쳐 분배한다고 할까. 빗면의 경사가 완만할수록 힘이 적게 들지만 거리는 더 길어진다. 이는 어떤 방법을 쓰든 결국 같은 양의 에너지를 써야 함을 의미한다. 힘은 4분의 1만 들지만 대신 네 배 오래 일해야 한다. 41-2)<br>4. 자전거와 빵 반죽의 공통점 - #바퀴 #마찰<br>자전거 바큇살은 구부리기 쉽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잡아 늘릴 수는 없다. 이것이 자전거 바퀴의 작동 비결이다. 하중의 압박을 받는 수레바퀴와 달리, 자전거 바큇살들은 오히려 팽팽히 당겨진다. 즉 인장력을 받는다. 바이올린의 현처럼. 거미집의 줄처럼. 허술해 보이는 바큇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바큇살이 허브를 중심으로 퍼져 있는 양상이다. 수레바퀴와 달리 자전거 바큇살은 림에서 허브까지 똑바로 이어져 있지 않다. 대신 각각의 바큇살이 허브 옆으로 조금씩 비껴서 뻗어 있는데, 이것을 탄젠트 연결tangential connection이라고 한다. 바퀴 허브가 꽤 넓다보니 바큇살의 일부는 한쪽으로, 나머지는 다른 쪽으로 치우쳐서 연결된다. 탄젠트 바큇살은 자전거의 전체 하중이 고르게 분산되는 일종의 팽팽한 철망을 형성해 바퀴가 자전거와 탑승자의 무게를 견디게 해줄 뿐 아니라, 고속으로 방향을 틀거나 커브길에서 기울어질 때 받는 전단력shearing force과 비틀림을 견디게 해준다. 51-2)<br>간단히 말해 기어(톱니바퀴)란 가장자리에 돌기가 있어서 서로 맞물리며 도는 바퀴를 말한다. 한 쌍의 기어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기계의 속도를 높이는 대신 기계의 힘을 줄이거나, 또는 그 반대로 한다. 즉 기어는 속도 또는 힘을 높일 뿐 두 가지를 동시에 높이지는 못한다.&nbsp; 뒷바퀴와 페달바퀴는 신축성 있는 체인으로 연결돼 있고, 양쪽에는 필요에 따라 골라 쓸 다양한 크기의 톱니바퀴가 장착돼 있어서, 변속 레버를 이용해 체인에 걸리는 톱니바퀴 쌍을 바꿀 수 있다. 다시 말해 맞물리는 톱니바퀴들의 상대적 크기를 변경하는 것이다. 이 교묘한 기계적 변속장치를 디레일러dérailleur라고 한다. 디레일러 덕분에 자전거 주행 중에, 심지어 톱니바퀴들과 체인이 고속으로 회전하는 중에도 변속이 가능하다. 고속 기어에서는 뒷바퀴가 페달바퀴보다 빠르게 회전해서(빠르고 약함) 평지를 질주하기 좋다. 저속 기어는 이와 반대다. 뒷바퀴가 더 느리게 회전하는 대신 페달의 힘을 증대해서 언덕을 수월하게 오르게 해준다. 54-6)<br>우리가 자전거를 탈 때 에너지를 소비하는(잃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다. 비비고, 바람을 가르고, 치대느라 잃는다. 이를 전문 용어로 각각 마찰friction, 항력drag, 구름저항rolling resistance이라고 한다. 마찰로 잃은 에너지는 그냥 손실이다. 브레이크와 바퀴로 빠진 열은 다시 주워서 쓸 방법이 없다.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 중 하나는 얼굴에 바람을 느끼며 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즐거움이 에너지를 잃는 또 하나의 경로다. 이렇게 물체가 유체fluids 내에서 운동할 때 받는 저항을 항력이라고 한다. 빨리 달릴수록 공기저항(항력)이 커지고, 공기저항이 셀수록 사람의 에너지 낭비도 커진다. 구름저항은 타이어가 노면을 구르며 받는 저항을 말한다. 자전거 타기는 타이어를 변형시키지 않고 다만 (타이거 안의 공기를) 끝없이 당겼다 풀었다 하며 에너지를 열과 약간의 소음으로 전환한다. 두툼하고 넓은 산악자전거 타이어는 얇고 좁은 경주용 자전거 타이어보다 구름저항을 많이 받는다. 57-9)<br>5. 볼 수 있는 전부이자 결코 볼 수 없는 것 - #빛 #전자<br>빛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특별하다. 우선, 우리 대부분에게 빛은 주요한 정보원이다. 대뇌피질의 1/3에서 1/2이 우리 눈이 세상에서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할애된다. 한편 물리학에서는 빛이 이와는 매우 다른 이유로 중요하다. 아인슈타인 이후 학계는 세상에서, 아니 우주에서 가장 빠른 속도인 광속에 뭔가 특별한 게 있음을 눈치챘다. 그렇다. 흥미롭게도 광속은 시각과 하등 관계없는 물리방정식 여기저기에 등장한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E=mc2이다. 이 방정식은 에너지와 질량은 결국 같은 것이며 빛에 의해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이 개념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준다. 그렇다 해도 빛을 우리의 편의를 위해 우주와 세계의 어둠을 밝혀주는 거대 우주 손전등의 출력물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무식과 안이함의 소치다. 빛은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이유로 존재하며, 동물의 시각이란 진화 과정에서 거기 편승해 우연찮게 얻은 능력일 뿐이다. 65)<br>빛에 대해 알수록 인간이 보는 세계가 다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적외선은 우리 눈이 감지하기에 너무 빨갛고 자외선은 너무 파랗다. 그런데 만약 빛의 파동(light waves, 광파)을 계속 잡아 늘리면 어떻게 될까? 적외선을 더 붉게 만들면? 파장이 550nm(나노미터, 대략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인 광파를 수십만 배 늘려보자. 마이크로파(극초단파)가 된다. 음식을 조리하고 휴대폰 통화를 이어주는 바로 그거다. 마이크로파를 다시 수십만 배 잡아 늘리면,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을 우리 집으로 전송해주는 라디오파(전파)가 된다. 이번엔 스펙트럼의 반대편으로 가서, 자외선을 더 파랗게 만들어보자. 자외선을 미세 죔쇠로 최대한 세게 압착하자. 그렇게 원래 파장의 1,000분의 1로 찌그러뜨리면 그게 엑스선이다. 그걸 더 압축하면 감마선gamma rays이 된다. 따라서 감마선은 사실상 초고에너지 엑스선이다. 이들의 차이는 단지 정도의 차이다. 즉 파동의 크기와 거기 실린 에너지의 크기가 다를 뿐이다. 66)<br>빛은 1초에 30만 km(지구를 일곱 번 도는 거리)를 주파한다. 따라서 빛이 태양에서 지구에 도달하는 데는 몇 분밖에 안 걸린다. 이것이 우리가 빛의 파동을 바다의 파도를 보듯이 볼 수 없는 한 가지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빛이 몹시 작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시광선의 경우 각각의 파장이 수백 나노미터(원자 크기의 수천 배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가 빛 파동을 볼 가능성은 그야말로 제로에 가깝다. 그렇다면 빛을 파동으로 보지 않고 입자로 볼 때는? 빛을 파동으로 볼 때는 빛은 전자기파라고 말하고, 빛을 입자로 볼 때는 빛이 광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광자는 왜 볼 수 없는 걸까? 여기서 우리는 초현실적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세계, 양자이론quantum theory의 세계로 들어간다. 양자이론은 물질이 원자 규모에서 어떻게 거동하는지 이해하는 데 필요한 괴이한 개념들의 묶음이다. 광자도 미치게 작아서 질량조차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광자는 순수한 에너지다. 67-8)<br>6. 봉화에서 스마트폰까지 - #전자기파 #광속<br>스코틀랜드 출신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79은 전기와 자기를 네 개의 간단한 수학 방정식으로 멋지게 엮어서 1873년 최초로 전자기이론을 확립했다. 전자기이론의 기본 개념은 전기와 자기가 완전히 분리된 두 가지라기보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이다. 전기가 앞뒤로 진동하면 자기가 발생한다. 나침반을 전선 근처에 놓으면 나침반 바늘이 움직이는 마법을 다들 한번쯤은 봤을 거다. 사실 바늘을 움직이는 것은 마법이 아니라 전선을 타고 앞뒤로 쇄도하는 전류다. 전류가 주변에 생성한 자기장이 바늘을 돌아가게 한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요동할 때도 전기가 발생한다. 다이너모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바퀴를 돌릴 때 우리가 실제로 하는 일은 전선 코일을 자석 안에서 회전시키는 것이다. 전선의 자기장이 끝없이 요동하면서 전기를 만들어 자전거 램프에 불이 들어온다. 태양에너지를 제외하고 우리가 생산하는 전기는 모두 이런 방식으로 전자기 발전기에서 나온다. 81-2)<br>광파처럼 라디오파도 직선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라디오 송신기는 등대 수준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직진만 가능했다면 라디오파 신호가 그냥 우주로 날아가버려 메시지를 15~30km 이상 전송하는 데는 무용지물이었을 거다. 다행히 라디오파는 둥근 지구를 따라 쉽게 휘어지고, 덕분에 편리한 통신수단이 될 수 있었다. 그 이면에는 두 가지 흥미로운 비법이 있다. 첫째, 높다란 라디오 안테나를 땅에 세우면(지구와 연결하면) 지구 자체가 안테나의 하반부처럼 작동한다. 물이 완전히 정지해 있는 호수 위에 안테나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옆에서 보면 안테나가 물에 비쳐서 두 배로 길어 보인다. 호수에 비친 자기 이미지 위에 서 있는 안테나. 같은 현상이 땅에 접한 라디오 안테나에도 일어난다. 즉 지구가 전기를 전도해서 안테나에 이어진 거울 이미지로 작용한다. 그래서 라디오파가 안테나에서 퍼져나갈 때 지구의 윤곽을 따라 자연스럽게 휘어진다. 이것을 지상파ground wave라고 한다. 83)<br>두 번째 비법은 더욱더 신통하다. 많이들 알다시피 밤에 AM(중파) 라디오를 켜면, 낮에는 감지할 수 없었던 온갖 외국 라디오 방송국들의 치직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지구 대기의 전리권ionosphere이 부리는 조화다. 전리권은 지표로부터 60~500km 떨어진 구간을 말한다. (제트기 비행 고도보다 여섯 배 이상 높다.) 여기서는 분자들이 태양에너지로 인해 이온화된다. 즉 전자를 잃고 양전하를 띠는 원자들과 자유 전자들로 분리돼 있다. 그 때문에 전리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즉 전리권은 전기가 잘 통한다. 전리권은 태양복사(태양에서 방출되는 전자기파)의 영향을 극적으로 받기 때문에 낮과 밤의 거동이 급격하게 변한다. 낮 동안은 전리권의 최하층이 지상에서 발사한 라디오파를 흡수해서 라디오파가 아주 멀리까지 이동하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밤이 되면 이 현상이 줄어든다. 밤에는 전리권의 상층이 라디오파를 거울처럼 반사해서, 다른 때라면 우주로 빠져나갈 신호를 다시 지표로 내리쏜다. 84)<br># 통신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거울이 하늘에 실제로 있다면? 이것이 통신위성communications satellite을 낳은 기본 발상이다.<br>전자기복사(electromagnetic radiation, 파장이 짧은 감마선부터 파장이 긴 라디오파까지를 포함하는 에너지)가 형태만 여럿일 뿐 모두 같은 것이라면, 어째서 우리는 통신에 예를 들어 엑스선이나 감마선이 아니라 굳이 라디오파를 이용하는 걸까?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전자기복사의 파장은 주파수와 반대다. 수학적 표현으로는 반비례관계다. 즉 파동이 길수록 주파수(와 에너지)는 작아진다. 감마선과 엑스선의 경우 파동은 작고(파장이 원자 수준으로 극소하다) 주파수는 끝내주게 높다. 여기에 다량으로 노출되면 건강에 해롭다. 치명적 원자방사선이 자기 집에 비처럼 퍼붓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통신에 라디오파를 쓰는 두 번째 이유는 라디오파가 더 멀리 가기 때문이다. 라디오파의 파장은 하늘을 껑충껑충 가로지르는 거인의 걸음처럼 크기 때문에 신호 손실이 거의 없이 빌딩과 집, 나무와 자동차를 피해 날아갈 수 있다. 또한 건물 안이나 차 안에서도 아무 문제없이 라디오 방송국의 신호를 포착할 수 있다. 86-7)<br>7. 난방은 쉬워도 냉방은 어렵다 - #열역학 #엔트로피<br>열은 물체 내부에서 (운동에너지를 가지고) 요동하는 원자나 분자로 인해 발생하는 에너지의 한 종류다. 뜨거운 것일수록 내부 요동이 더 심하다. 수증기가 물보다 뜨거운 것은 내부에 운동에너지가 더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얼음보다는 물이 운동에너지가 더 크고 따라서 더 온도가 높다. 기체를 가열하면 그 안에 있는 원자나 분자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요동이 심해져서 서로 더 많이 더 심하게 충돌한다. 이렇게 물체 속 열을 원자들의 범퍼카 게임처럼 묘사하는 이론을 분자운동이론kinetic theory이라고 한다. 뜨거운 커피 한 잔과 타이타닉호를 침몰시킨 거대 빙산을 비교해보자. 커피는 그래봤자 물 한 컵에 불과하다. 아무리 많은 분자를 함유하고 또 그 분자들의 평균 에너지가 높다 해도(얼음보다는 물이 뜨거우니까), 커피의 열에너지 총량은 대단치 않다. 이에 비해 빙산은 온도는 훨씬 낮지만 동시에 훨씬 크다. 여기서 관건은 크기다. 커피가 더 뜨겁지만, 열에너지는 빙산이 평균적으로 약 2억 배 더 많다. 92-3)<br>에너지는 마법과 거리가 멀다. 뭔가가 에너지를 잃으면 다른 뭔가가 반드시 에너지를 얻는다. 에너지 교환은 늘 제로섬 게임이다. 이처럼 누가 잃고 누가 얻든 에너지 총량은 결국 변함없이 보존된다는 법칙이 바로 에너지 보존의 법칙(열역학 제1법칙First Law of Thermodynamics)이다. 열 이동에 대한 다른 법칙도 있다. 이번 것은 훨씬 미묘하다. 커피를 빙산에 탁 내려놓으면 커피는 식고 얼음은 따뜻해지지만 절대 그 반대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열역학 제2법칙Second Law of Thermodynamics이 있어서 그런 경우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제2법칙의 내용은 간단히 말해 열은 항상 뜨거운 것에서 차가운 것으로 흐를 뿐 (외부의 힘이 개입하지 않는 한) 결코 그 반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역학 제2법칙은 자연현상의 비가역적 방향성을 말한다. 이렇게 열에너지가 흩어지는 현상을 ‘엔트로피entropy 극대화 경향’이라고 표현한다. 쉽게 말해 우주는 자연적으로 질서에서 혼돈으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93-4)<br>열에너지가 뜨거운 것에서 차가운 것으로 이동하는 방법에는 전도conduction, 대류convection, 복사radiation라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전도는 뜨거운 것에 차가운 것이 접촉해서 열이 분자 간의 직접 충돌로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뜨거운 물체의 활발한 분자들이 자기 에너지의 일부를 차가운 이웃 분자들에게 직접 전달한다. 대류는 기체나 액체처럼 유동성 물체에서 일어나는 열전달 방법이다. 기체나 액체의 소용돌이나 상승과 하강을 통해 열이 전달된다. 예를 들어 냄비 안의 수프를 가열할 때, 불에 가까운 냄비 바닥의 수프가 먼저 따뜻해져 밀도가 낮아지고, 따라서 슬슬 위로 올라가며 위쪽의 차가운 수프를 있던 자리에서 밀어내 아래로 보낸다. 위로 올라간 수프는 식어서 다시 내려오고 내려갔던 수프가 다시 올라간다. 이런 상승과 하강 패턴이 냄비 안의 열에너지를 천천히 순환시킨다. 세 가지 중 마지막 방법인 복사는 열에 들뜬 원자들이 비가시적 광선의 형태로 공기나 허공으로 열을 방출하는 것을 말한다. 97)<br>무언가를 가열하고 냉각하는 것이 등가일 수는 있지만 결코 반대는 아니다. 에어컨은 방에서 열기를 ‘빨아들여’ 밖으로 배출한다. 냉각수(끓는점이 낮은 휘발성 액체)로 채운 파이프를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냉장고와 비슷하고, 공기를 흡입했다가 토해내는 점에서는 선풍기와 비슷하다. 에어컨의 기본 작동 원리는 이렇다. 냉각수가 실내의 열을 흡수해서 가열되고, 파이프를 통해 밖으로 나가고, 밖에서 열을 방출해서 다시 냉각돼 돌아오는 순환 과정이 이어진다. 에어컨이나 냉장고는 열을 차가운 것에서 뜨거운 것으로 (물리법칙에 반하는 방향으로) 이동시킨다. 그래서 에어컨과 냉장고가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스른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거기다 전기를 주입해서 억지로 그 역행을 만든 것뿐이다. 전기에너지가 뜨거운 것을 더 뜨겁게, 차가운 것을 더 차갑게 하는 비정상적 사이클을 가동해서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마땅히 없어져야 할 집 안팎의 온도차를 억지로 유지하는 것이다. 98-9)<br>8. 다이어트의 과학 - #칼로리 #연소<br>우리가 먹은 음식은 복잡한 소화 과정을 통해 포도당(화학에너지)으로 바뀐다. 위와 간이 몸에 들어온 음식을 즉시 사용 가능한 당분으로 저장했다가 느긋하게 사용할 지방으로 변환한다. 우리는 호흡이라는 단어를 숨쉬기의 동의어로 사용하지만, 사실 호흡은 체내에 저장된 연료를 공기에서 들어온 산소를 이용해 다시 가용에너지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호흡은 오히려 광합성(식물이 빛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와 물로 스스로 양분을 만드는 과정)의 역방향 버전과 비슷하고 자동차에서 일어나는 연소와 유사하다. 먹은 칼로리를 저장해두는 인체의 능력 때문에 입에 들어가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즉각 연결되지는 않는다. 우리 몸은 기름이 바닥난 자동차나 배터리가 다 된 시계처럼 그렇게 갑작스런 양분 고갈을 겪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물리법칙에 따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생존 가능 기간에는 절대적인 한계가 있으며, 이 한계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먹는 음식의 에너지 함량으로 결정된다. 108)<br>인체도 음식으로 얻은 화학에너지를 실현하는 능력이 형편없다. 일반적으로 우리 몸은 20~25%의 기계적 효율을 낸다. 다시 말해 호흡을 통해 100kJ의 에너지가 풀려도 그중에서 근육이 몸을 움직이는 데 사용하는 분량은 그중 겨우 20~25kJ에 불과하다. 그럼 나머지는 어디로 갈까? 무려 60~70%는 우리 몸이 하는 일 없이 공회전하는 데 들어가고 남은 10%는 ‘간접관리비’, 즉 우리가 먹은 음식을 처리하는 데 들어간다. 왜 우리는 단백질도 탄수화물도 아닌 지방을 저장할까? 같은 무게일 때 체지방의 에너지 함유율이 두 배이기 때문이다. 즉 체내에 지방 0.5kg을 저장하는 것이 동량의 단백질을 저장하는 것보다 가용 잠재에너지를 두 배 더 확보하게 된다. 세상은 여전히 10억 대의 화석연료 자동차로 굴러간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석유 같은 화석연료가 가진 놀라운 에너지 함유율 때문이다. 체지방은 에너지 밀도가 휘발유와 비슷하고, 다른 일상의 에너지원들(석탄, 목재, 천연가스, 배터리)보다 높다. 110, 113)&nbsp;<br>하버드대학교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의 이론은 매우 독창적이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즉 인간의 진화적 성공은 결국 요리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인류가 식료를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에너지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확보하게 됐고, 두뇌로 더 많은 에너지를 보내게 됐으며, 덕분에 수렵채집 생활에서 벗어나 더 흥미롭고 생산적인 일들을 많이 하게 됐다. 조리가 식료에게 하는 일은 두 가지다. 식료의 에너지 밀도를 즉각적으로 높이고(간단한 예로 뜨거운 음료는 차가운 음료보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체온 유지의 부담을 덜어준다), 식료를 소화하기 쉽게 만들어 신진대사를 돕는다. 랭엄이 말했듯 단백질을 조리하면 단백질 분자의 변성이 일어나 소화하기 쉬워지고 같은 양을 먹어도 더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 우리가 음식을 꼭꼭 씹도록 진화한 것도 같은 이유다. 물론 씹는 데 에너지가 좀 들어가지만 음식을 더 잘게, 더 소화하기 쉬운 입자들로 부수면 음식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회수할 수 있다. 114-5)&nbsp;<br>9. 달리는 페라리에 왜 먼지가 쌓일까? - #기류 #유체역학<br>먼지를 입으로 불어도 상당 부분 그대로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먼지 입자는 놀랄 만큼 미세하다. 이렇게 해로운 미세먼지 입자들을 PM10으로 지칭한다. 입자의 지름이 10μm(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m, 인간의 머리카락 굵기의 약 10분의 1)이하인 대기오염물질을 뜻한다. 작고 가벼운 물질일수록 정전기의 접착력에 의해 물체 표면에 붙들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먼지가 들러붙는 건 작고 가볍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가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지면의 풍속이 0이라는 것이다. 이때 지면이라 함은 말 그대로 지표에서 원자 몇 개 높이 이내를 말한다. 풀잎은 미풍에도 흔들린다. 하지만,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지표에는 어떠한 공기 움직임도 없다. 선풍기 날개는 분당 수백 번씩 공기를 가르는데 왜 그렇게 먼지 더께가 앉는 걸까? 날개 바로 옆의 공기는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공기 움직임이 없을 뿐 아니라 공기와 플라스틱 사이의 끝없는 마찰로 정전기가 발생해 먼지가 더욱 달라붙는다. 121-3)&nbsp;<br>페라리를 몰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면 미끈하게 빠진 차체의 표면을 타고 공기가 미끄러지듯 흐른다. 이처럼 공기가 물체 표면의 저항을 받지 않고 쉽게 흐르도록 간소화한 형상을 유선형streamline이라고 한다. 공기역학적으로 이상적인 자동차는 전진할 때 공기흐름을 방해하지 않아서 차량 후방에 발생하는 공기흐름이 차량 전방의 공기와 많이 다르지 않다. 즉 공기가 방해를 적게 받아 흐트러짐 없이 평행선들처럼 미끄러진다. 이것을 층흐름laminar flow이라고 한다. 전방이 절벽처럼 솟아오른 트럭은 트럭 앞면이 공기와 정면으로 충돌해서 평행하게 흐르던 공기층들의 일부를 막거나 늦춘다. 반대로 트럭 영향권 밖의 공기층들은 곧장 쌩 지나간다. 그 결과 공기층들이 마구 뒤섞여 소용돌이 공기가 생긴다. 이것을 난기류turbulence라고 한다. 난기류는 무질서하게 엉켜 있어서 그걸 뚫고 통과하려는 물체에 엄청난 저항을 만들어낸다. 난기류는 트럭에서 에너지를 얻고 이 때문에 트럭의 속도가 느려진다. 123-5)&nbsp;<br>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을 자세히 본 적이 있는가? 꼭지를 돌리면 물이 쏟아진다. 꼭지를 서서히 잠그면 물줄기가 줄어든다. 이때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위쪽이 아래쪽보다 넓다. 왜 그럴까? 물을 더 작은 공간에 욱여넣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1초 동안 수도꼭지를 떠난 물의 양과 싱크대 바닥에 도달하는 물의 양은 정확히 같다. 그런데 중력 때문에 떨어지는 물에 가속도가 붙는다. 다시 말해 물줄기의 끝 지점이 시작 지점보다 유속이 높고, 따라서 계산이 맞으려면 물줄기의 끝 부분이 시작 부분보다 얇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도꼭지를 떠난 물보다 싱크대 바닥에 도달하는 물이 많다는 건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를 연속 방정식equation of continuity이라고 한다. 유체역학 버전의 질량 보존의 법칙이다. 주어진 시간에 흐르는 물의 양은 어느 지점에서나 동일하다는 뜻이다. 같은 이치로 액체나 기체가 갑자기 좁은 공간(주사기나 고압세척기 같은)을 통과하려면 속도를 높여야 한다. 129)]]></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054/29/cover150/k8427313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0542914</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저녁</category><title>팔레스타인 실험실 / 앤터니 로엔스틴 - [팔레스타인 실험실 - 이스라엘은 어떻게 점령 기술을 세계 곳곳에 수출하고 있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080796</link><pubDate>Mon, 09 Feb 2026 07: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08079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482532131&TPaperId=170807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322/79/coveroff/e48253213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482532131&TPaperId=1708079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팔레스타인 실험실 - 이스라엘은 어떻게 점령 기술을 세계 곳곳에 수출하고 있는가</a><br/>앤터니 로엔스틴 지음, 유강은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12월<br/></td></tr></table><br/>들어가는 말│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br>종족민족주의 국가ethnonationalist state라는 이스라엘의 지위는 1948년 탄생 때부터 존재했지만, 21세기에 접어들어 그 지위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이 정책을 가장 성공적으로 추구한 이스라엘 지도자는 베냐민 네타냐후인데, 그는 팔레스타인 땅을 영원히 점령해야 한다고 열렬히 믿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장기 총리였지만, 12년이 넘도록 정부를 이끈 끝에 2021년에 마침내 물러났다. 하지만 2022년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우파 연합을 이끌고 다시 당선되었다. 그의 비전 자체가 승리를 거두었다. 네타냐후주의는 그 자신보다 오래 살아남을 이데올로기다. 이스라엘은 점령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장비를 편하게 사용해보고 ‘전장에서 시험한’ 무기라고 홍보하면서 세계 최고의 무기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스라엘 방위군 브랜드를 활용한 덕에 이스라엘의 보안 기업들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 대열에 합류했다. 팔레스타인 실험실Palestine laboratory은 이스라엘의 독보적인 홍보 포인트다. 13)<br>1 필요하다면 기꺼이 팔게요!<br>1948년 5월 14일, 유대인기구 의장 다비드 벤-구리온은 2,000년 만에 처음으로 이스라엘 유대 국가의 수립을 선포했다. 같은 날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의 정당성을 승인했다. 독자적으로 생존 가능한 국방력을 발전시킨 이스라엘은 1950년대 중반부터 국경 너머로 살상 도구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 정부 소유의 방산 기업들이 발전했고 1960년대에는 민간이 소유한 기업들이 성장했다. 현재 이스라엘 최대의 민간 무기 제조업체인 엘빗도 그때 성장한 기업이다. 1966년에 설립된 엘빗은 순식간에 이스라엘 탱크와 항공기에 쓰이는 필수적인 장비 공급업체로 올라섰다. 몇 년 뒤 엘빗은 민주 국가와 독재 국가 양쪽 모두에 무기를 수출하는 주요 업자로 올라서서 미군을 비롯한 많은 나라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드론부터 야간투시경과 지상 감시 시스템, 최첨단 살상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장비를 개발했다. 엘빗은 지금도 이스라엘 군경과 긴밀하게 제휴하며, 심지어 출판 산업으로까지 확장했다. 28-9)<br>이스라엘은 처음부터 평판이 좋지 않은 정권에 방위 장비를 판매했다. 1950년대에 공산주의 반군과 전쟁을 벌이던 미얀마도 그중 하나다. 이스라엘이 초기에 가장 성공시킨 무기는 건국 직후인 1940년대 말에 처음 설계한 우지 기관단총이다. 이스라엘은 90여 개국에 우지를 판매했는데 스리랑카,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 벨기에, 독일 등의 군대에서 주력 총기로 사용한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건 벤-구리온이 건국 초기에 총기 생산 산업을 구축하는 게 유대 국가에 유리할 것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1952년 이스라엘이 서독으로부터 받은 거액의 배상금은 무기 부문에 필요한 투자 자원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배상금의 상당 부분을 무기 개발과 실용화 가능한 핵무기 개발 연구에 비밀리에 이전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들어오는 막대한 원조가 독일의 배상금과 결합해서 방위 산업이 이스라엘의 주요한 수출 사업이 되었다. 군국주의는 이스라엘의 지도 원리가 되었고, 그 후 줄곧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31)<br>이스라엘의 역사는 1967년 전과 후라는 두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6일 전쟁 이전에 이스라엘의 정책은 고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적어도 (이따금) 억압에 반대한다는 수사적 인상은 풍겼다. 이스라엘은 탈식민 자유를 누리는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들과 손을 잡았고, 아프리카 나라들은 유엔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언론인 사샤 폴라코-수란스키Sasha Polakow-Suransky는 이스라엘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의 은밀한 관계를 다룬 저서 『무언의 동맹The Unspoken Alliance』에서 1967년이 이스라엘 방위 정책의 분수령이었다고 말한다. 소련과 아랍의 선전에 도움을 받아 ‘이스라엘이 보호를 필요로 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나라라는 이미지는 점차 서구의 제국주의적 앞잡이라는 이미지로 퇴색되었다’. 그 후 많은 제3세계 국가가 이스라엘에 등을 돌렸고, ‘이스라엘 정부는 강경한 현실 정치realpolitik를 위해 도덕적 대외 정책의 마지막 흔적조차 내팽개쳤다’. 34)<br>지금까지 이스라엘이 관계를 맺은 독재 정권의 숫자를 보면 아찔할 정도다. 1965년과 1966년 무슬림이 다수인 인도네시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대규모로 숙청되어 최소한 50만 명이 사망한 뒤, 이스라엘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대다수의 서구 강대국과 나란히) 1967년에 완전히 권력을 잡은 수하르토 장군의 정권과 유대를 돈독히 하는 데 열중했다. 1965년부터 1989년까지 루마니아를 통치한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시절을 생각해보라. 기밀 해제된 당시의 문서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스라엘은 차우셰스쿠가 반유대주의자임을 알았지만 수십 년간 그와 친선 관계를 유지했다. 차우셰스쿠의 루마니아는 1967년 6일 전쟁 이후에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유엔에서 이스라엘 반대표가 점점 많아지는 가운데서도 찬성표를 던진 동유럽의 유일한 나라였다. 이스라엘은 차우셰스쿠가 루마니아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출국하는 것을 오랫동안 막았음에도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세계무대에서 이스라엘이 벌이는 행동을 외교적으로 지지하는 루마니아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36)<br>1983년 〈뉴욕 포스트〉는 모사드와 미국 중앙정보국이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중앙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에서 합동 작전을 진행한다는 협약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핵심 목표는 소련의 영향력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그 보상으로 이스라엘은 미국의 거대한 감시 기구로부터 중동의 군대 이동에 관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과테말라의 제노사이드 정권을 군사적·외교적·이데올로기적으로 엄호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런 현실 정치가 전면에 드러났다. 이스라엘이 과테말라 정권을 지원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하나는 이스라엘의 민간 기업 타디란 이스라엘 전자산업Tadiran Israel Electronics Industries이 컴퓨터 감청 센터를 설립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정교했던 이 기기는 개인 가정에서 전기나 물 사용량의 변화를 탐지함으로써 인쇄기를 사용하는 경우에 반정부 활동에 주목할 수 있었다. 2008년 타디란은 이스라엘 최대의 방산 기업인 엘빗시스템스에 합병되었다. 40)<br>2 더없이 좋은 사업 기회<br>이스라엘은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 42기에 포위된 상태임을 깨달은 뒤 1990년대부터 줄곧 워싱턴으로부터 군사적 자율권을 확대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이 공격 당시 미국은 이스라엘을 도와주지 않았고, 많은 이스라엘인은 조지 H. W. 부시 행정부가 중동에서 가장 가까운 동맹국을 노골적으로 내팽개쳤다는 사실에 격분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정부는 점차 민영화를 받아들이면서 사회주의적 뿌리를 대부분 포기했다. 이스라엘은 이제 미국의 원조에 과거만큼 의존하지 않지만 미국의 지원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상대적 힘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1981년 미국의 원조는 이스라엘 경제의 약 10퍼센트에 해당했지만, 2020년에 이르면 연간 40억 달러에 가까운 미국 원조의 비중이 1퍼센트 정도로 떨어졌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은 요르단 강 서안의 불법 유대인 거주지나 가자에 대한 공격, 동예루살렘의 주택 파괴 등을 축소하라는 미국의 온건한 압력조차 거의 아랑곳하지 않는다. 45)<br>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제 붕괴를 딛고 일어선 이스라엘의 회복력은 독특한 자결권의 서사로 구성되었다. 외교위원회Council on Foreign Affairs가 출간한 『스타트업 국가 : 이스라엘 경제 기적 이야기Start-Up Nation: The Story of Israel’s Economic Miracle』라는 책은 이런 서사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에서 내세우는 명제는 이스라엘이 번성한 것은 주로 강력한 징병제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두 저자는 이스라엘 방위군은 세계의 본보기라고 주장했다. 추정컨대 유대인이 다수인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집단적 믿음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무기와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필수적이었다. 이런 사고방식에 힘입어 네타냐후는 10여 년간 이스라엘을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 개발국의 반열에 올려놓으면서 무기와 감시, 사이버 장비의 전문성을 쌓았다. 이스라엘 정부와 민간 기업 양쪽 모두 자신들의 제품을 팔레스타인인을 대상으로 실전에서 효과적으로 시험한 것이라고 홍보했다. 48-9)<br>점령을 현금화하는 능력은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 이후 폭발적으로 고조되었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적극적으로 나선 나라들에 전달된 메시지는 단순히 테러에 맞서 싸우고 테러 기지를 파괴한다는 것 이상이었다. 스코틀랜드 사회학자이자 감시 연구 전문가인 데이비드 라이언David Lyon에 따르면 그것은 21세기에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완전히 다시 상상하는 것이었다. 런던 퀸메리 대학교에서 국제법과 인권을 가르치는 이스라엘 학자 니브 고든Neve Gordon은 이스라엘이 매력을 발휘하는 이유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제시한 바 있다. 고든은 이스라엘을 (유대인을 위한) 자유의 요새를 자임하는 자칭 민주주의의 맥락 속에서 분석했다. ‘테러와 싸우는 이스라엘의 경험이 매력적인 것은 이스라엘인들이 테러리스트를 죽일 뿐만 아니라(군사주의적 세계관) 테러리스트를 죽이는 것이 반드시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적 목표에 어긋나지 않고 오히려 그런 목표를 진전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53-4)<br>테러리즘의 공포로 이스라엘 군사주의를 정당화하지 못한다면 성적 매혹을 활용하면 된다. 알파건걸스Alpha Gun Girls, AGA는 2018년 이스라엘 방위군 재향군인 오린 줄리Orin Julie가 창설한 단체다. 노출이 심한 위장복 차림으로 이스라엘 무기를 어루만지는 여자들은 미국의 유사한 총기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주면서도 시온주의 의제를 강하게 풍긴다. 줄리의 소셜 미디어 게시물에는 총기를 찬양하는 미사여구와 함께 이런 문구들이 도배되어 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우리는 조국을 지킬 것이다!’ 듀크 대학교 문화인류학 박사과정의 소피아 굿프렌드Sophia Goodfriend는 ‘소셜 미디어와 초국적 민간 방위 산업은 전쟁의 강건한 미학을 민주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알파건걸스는 전쟁을 미학화함으로써 폭력을 부정하고 점령을 정상화하는 이스라엘의 능력을 수출한다. (……) 하이힐과 착탈식 천사 날개를 차려입은 이스라엘의 혼란스러운 에로티시즘은 오늘날 초국적인 상품이 되었다.’ 55)<br>수많은 이스라엘 기업이 점령을 둘러싼 기반 시설을 유지하는 데 관여하는 가운데 이들 기업은 국가에 서비스를 판매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대상으로 최신 기술을 시험하고, 더 나아가 전 세계에 기술을 홍보하기 위한 혁신적 방법을 발견했다. 많은 팔레스타인인이 점령이 어떻게 민영화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을 괴롭히고 모욕하는 상대가 국가 공무원이든 사적 개인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민영화 모델은 이스라엘의 광범위한 집단에 이익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스라엘 본토와 점령지가 전혀 구분되지 않도록 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스라엘 관리들은 여전히 일시적으로 점령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유대 국가 내에서는 서서히 진행되는 점령의 민영화에 관한 활발한 논의가 전혀 없다. 이스라엘 언론에서는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의 식민화를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 정책 결정권자들은 아웃소싱을 ‘검문소의 민간화’나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율권’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56-7)<br>3 평화를 가로막다<br>팔레스타인인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은 피자를 주문하는 일만큼 쉬워야 한다. 2020년 이스라엘군이 설계한 앱의 배후에 놓인 논리는 바로 이것이었다. 전장의 지휘관이 전자 장치에 표시된 표적에 관한 세부 정보를 부대에 보내면 병사들이 그 팔레스타인인을 신속하게 무력화할 수 있는 앱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오렌 마츨리아흐Oren Matzliach 대령은 ‘이스라엘 디펜스’ 웹사이트에 이 공격은 ‘스마트폰으로 아마존에서 책을 주문하거나 피자집에서 피자를 주문하는 일과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점점 많은 정권이 이스라엘이 정치적 학살politicide을 자행하면서도 무사한 비결을 배우는 데 매력을 느끼고 있다. ‘정치적 학살이란 하나의 정당한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실체로서 팔레스타인인의 존재를 해체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과정은 또한 필연적이지는 않더라도 이른바 이스라엘 땅에서 팔레스타인인을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종족 청소하는 것을 포함할 수도 있다.’ 64)<br>분리주의는 이스라엘 주류에서 점점 부상하는 이데올로기다. 이스라엘의 저명한 역사학자 베니 모리스Benny Morris는 2020년 로이터 통신에 팔레스타인인들을 시야에서 없애버리는 것이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이상적 해법이라고 말했다. 모리스는 그 원인을 2000년부터 2005년 사이에 제2차 인티파다 당시 팔레스타인인들이 벌인 자살 폭탄 공격 탓으로 돌렸다. 분리주의의 가장 효과적인 사례는 가자를 포위해 팔레스타인인 200만여 명을 거대한 장벽 안에 가둬둔 채 드론으로 끊임없이 감시하고, 이따금 미사일로 공격하며,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철저하게 국경을 폐쇄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2021년 말 이스라엘이 11억 1,000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가자와 맞닿은 경계선 전체에 65킬로미터 길이의 최첨단 장벽을 완공했을 때, 이스라엘 남부에서는 축하 행사가 열렸다.〈하레츠〉는 이 장벽을 ‘공학과 기술의 복잡한 시스템’이라고 묘사했다. 유럽으로부터 건설 지원을 받아야 했던 ‘세계 유일의 최첨단 장벽 시스템’이었다. 66)<br>오늘날 가자는 이스라엘의 독창적 지배 기술을 테스트하기 위한 완벽한 실험실이다. 가자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무한정 가둬둔다는 종족민족주의의 궁극적인 꿈이다. 2012년 11월 이스라엘이 방어 기둥 작전Operation Pillar of Defense이라는 이름으로 벌인 가자 포격은 팔레스타인인 174명과 이스라엘인 6명을 죽이고 1,000여 명에게 부상을 입힌 7일 전쟁이었다. 2008년과 2009년 초에 이스라엘이 벌인 주물납 작전Operation Cast Lead에서는 가자 주민 1,400명이 사망했다. 이 충돌을 계기로 이스라엘 방위군이 다양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전쟁을 묘사하는 방식이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일부 서구 국가의 여론이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에 반발하는 것을 우려한 가운데 벌어진 이른바 인스타 전쟁instawar은 하마스 대원을 살해하거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체포한 것을 자랑스럽게 발표하기 위해 만든 인포그래픽과 군사작전을 트위터로 생중계하기 위한 일사불란한 기획이었다. 67)<br>오늘날 이스라엘 방위군의 인스타그램 페이지에는 강경한 군사주의적 상징들과 나란히 동성애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메시지가 정기적으로 부각된다. 2021년 10월 1일, 이스라엘 방위군은 여러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분홍색 조명에 감싸인 본부 사진과 함께 이런 메시지를 올렸다. ‘지금 싸우고 있는 이들을 위해, 죽어간 이들을 위해, 살아남은 이들을 위해 이스라엘 방위군 본부는 분홍색 불을 밝혔습니다. #유방암인식제고를위한달.’ 미군도 이스라엘 방위군이 이런 식으로 벌이는 정보전 전략을 똑같이 따라 한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2021년 ‘휴먼스 오브 CIAHumans of CIA’라는 이름으로 소셜 미디어 캠페인을 개시했다. 좀 더 다양한 공동체에서 인력을 충원하기 위한 캠페인이다. 이스라엘의 소셜 미디어 전략은 유대 국가가 벌이는 작전을 서구의 가치와, 또는 적어도 테러리즘(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는 ‘저항’)에 대한 군사적인 대응을 지지하는 정책과 연결함으로써 전 세계에서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정교한 시도다. 68)<br>디지털 혁명이 탄생하던 시기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벌이는 악행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어 퍼뜨리면 팔레스타인의 대의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점령에 대한 전 세계적 인식이 급격히 높아졌다는 점, 그리고 이는 정착민이나 이스라엘 군대와 팔레스타인인의 대결 장면을 편집 없이 그대로 보여준 덕분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 국가가 팔레스타인인들이 겪고 있다고 말하는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명백한 시각적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선별한다는 증거도 많다. 이스라엘인들은 우리가 직접 목격하는데도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을 상대로 잔학 행위를 벌이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더라도 팔레스타인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팔레스타인인은 응징하고 죽여야 마땅한 인종 집단일 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도덕적 불편도 드문 현상이 되었다. 69)<br>4 이스라엘 점령을 세계에 판매하다<br>&nbsp;2018년 크레타 섬에서 테스트를 거친 뒤 2021년 5월을 시작으로 에어버스가 운영하는 IAI의 헤론Heron 드론은 유럽연합 국경관리기구인 프론텍스Frontex의 장비가 되었다. 난민들이 대륙 본토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싸움의 일환이었다. 한때 해군 경비정이 곤경에 빠진 이주민들을 구조하기도 한 반면, 무인 드론은 접촉이 없는 새로운 감시 형태다. 경제학자 시르 헤베르는 이스라엘제를 포함한 드론 사용 증대에는 뚜렷한 정치적 목표가 있다고 말한다. “드론은 누구도 구조할 수 없고 사진만 찍을 수 있죠.” 그가 내게 한 말이다. “실제로 무장한 보트나 의심스러운 선박이 접근하면 드론 조종사가 경비정에 알려서 현장에 출동하게 할 테지만, 물이 새는 난민 보트처럼 보이면 드론 조종사는 항상 시간을 끌고 경비정은 일부러 구조할 사람이 없어질 때까지 늑장 출동합니다. 이게 핵심적 차이이자 드론이 해안 경비를 위한 혁신적 기술인 진짜 이유죠. 난민들이 익사하게 방치하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거죠.” 87-8)<br>프론텍스가 난민을 찾기 위해 드론을 활용한 여파로 많은 이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2021년 10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술라 폰 데어 레이엔은 이주민을 차단하기 위해 ‘철조망과 장벽’에 돈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유럽연합은 그리스와 리비아를 비롯해 수많은 나라에서 바로 그런 일을 했다. 지중해 지역은 위험한 해역으로, 국제이주기구IOM ‘실종이민자’ 프로젝트에 따르면 2014년 이래로 최소한 어린이 848명을 포함해 2만 2,748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이 끔찍한 수치를 받아든 유럽연합은 이민자를 계속 차단하고 그들의 여정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기로 결심했다. 유럽의 무기 회사들은 시리아와 리비아, 예멘, 튀르키예의 분쟁을 악화시키는 무기를 판매함으로써 대규모 피란민을 발생시키는 데 기여했다. 유럽연합이 점점 잔인한 전술을 구사하며 이민자를 차단하기로 결심하지만 유럽에 들어오려는 많은 사람이 유럽의 방위 장비 때문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악순환의 고리인 셈이다. 90-1)<br>이스라엘의 감시 기업 셀레브라이트는 지금까지 디지털 데이터 추출 장비를 최소한 150개국에 판매했다. 그중에는 러시아,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같은 독재 국가도 포함되었다. 셀레브라이트는 유럽연합에서 망명 신청자를 감시하는 업무도 일부 맡고 있다. 휴대전화는 이민자가 가진 물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셀레브라이트의 한 영업사원에 따르면 2019년 난민의 77퍼센트가 이민 서류 없이 유럽연합 국가에 왔고, 43퍼센트가 여정 중에 스마트폰을 휴대했다. 이 회사는 따라서 이민자의 여정과 최근의 지리적 위치와 연락 이력을 알아내는 데 자사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화를 과학 수사 기법으로 분석하는 것은 해당 이민자의 동의가 없으면 국제법 위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프론텍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특별 조치’ 사용을 포함해서 난민의 휴대전화에 있는 암호화된 메시지 앱에 불법 침투해서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 가이드북을 개발했다. 93)<br>팔레스타인 실험실이 번성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많은 나라가 그 밑바탕이 되는 전제를 신봉하기 때문이다. 억압적 정권들이 이스라엘의 억압을 모방하고자 하면서 이스라엘의 기술을 사용해서 달갑지 않거나 반항적인 집단을 억압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은 외교적·군사적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해 서구의 승인을 열망한다. 미국을 제외하면 분명 독일이 가장 탐나는 대상일 것이다. 이스라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산산조각 난 이미지를 복구하는 것을 도운 한편 베를린은 팔레스타인인을 잔인하게 점령하는 나라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독일이 이스라엘 방위 장비를 점점 많이 구매하는 것은 자국의 역사적 범죄를 용서하는 한 가지 방도에 불과하다. 국제방송 도이체벨레는 2022년 행동 규범을 갱신하면서 모든 직원은 조직을 대변하거나 심지어 개인 자격으로 말할 때에도 ‘이스라엘이 존재할 권리를 지지’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최대 해고까지 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98)<br>유럽 전역의 여론은 꾸준히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고 있으며, 2021년 이스라엘과 가자의 전쟁은 이런 추세를 가속화했을 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연합의 네이버사우스Neighbours South 프로젝트가 2020년에 수행한 여론조사에서는 이스라엘인의 과반수가 자신들이 유럽연합과 가치관을 공유하며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불일치는 실제로 뚜렷해서 이스라엘인들은 대체로 유럽연합 지지에 찬성하는 반면, 유럽연합의 많은 사람은 점차 유대 국가가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벌이는 행동을 우려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럽 우파의 일부는 이스라엘의 종족민족주의와, 이슬람과 난민에 대한 비타협적 태도를 옹호한다. 그리고 유대인이 다수인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와 기법을 사들이고 거기서 영감을 얻으려고 열심이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이런 식으로 헝가리, 슬로바키아, 폴란드, 체코공화국에서 친이스라엘 강경파 민족주의자들과 동맹을 이루었다. 100)<br>5 변함없이 사랑받는 이스라엘의 지배<br>이스라엘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비슷한 성향의 나라끼리의 사례에서 가장 두드러진 정치, 군사, 외교, 이데올로기적 동맹을 맺었다. 프리토리아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1948년 권력을 잡자마자 백인 외의 인구에 나치식 제한 조치를 발동해서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하고 여러 직종에서 흑인이 일하는 것을 막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유대인 공동체는 아파르트헤이트를 통해 이득을 얻었고 그 정권의 지속을 지지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이스라엘 정부가 종종 이스라엘군이 개발하고 시험한 무기를 중심으로 정치, 이데올로기, 군사 관계를 공고히 굳히는 1970년대에 이르면 이스라엘을 집권하는 리쿠드당의 다수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세계관에 친밀감을 느꼈다. 언론인이자 『무언의 동맹』의 저자인 사샤 폴라코-수란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두 나라를 문 앞의 야만인들에 맞서 자기 존재를 방어하는, 유럽 문명의 위협받는 전초기지로 규정한 것은 소수자 생존주의 이데올로기였다.’ 103)<br>상호 이득이 되는 관계는 국방 부문에서 돈을 버는 능력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원치 않는 인구 집단을 어떻게 다룰지에 관한 이데올로기적 친연성의 문제이기도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반투스탄Bantustan, 즉 흑인 주민들이 자치권 없이 거주하는 지역은 이스라엘의 많은 엘리트에게 팔레스타인에서 실행할 수 있는 모델로 영감을 주었다. 자기 나라의 나머지 지역에서 차단된 반투스탄처럼, 곳곳에 분산된 고립 지역에 ‘바람직하지 않은’ 팔레스타인인들을 고립시키려는 욕망이었다. 오늘날의 요르단 강 서안에 존재하는 165개 팔레스타인 ‘고립 지역’이 이스라엘 식민 정착촌, 이스라엘 방위군, 폭력적 정착민들에 둘러싸여 질식당하는 기원이 여기에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언어를 사용해 이스라엘의 점령을 옹호하는 행태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최초의 민주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이스라엘은 이 소수 백인 정권과 관계를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였다. 105-6)<br>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총리와 그의 힌두민족주의 정당인 인도인민당BJP이 지배하는 인도에서 카슈미르는 인도 정체성의 새로운 비전을 그릴 수 있는 백지나 마찬가지다. 2019년 모디 정부는 인도 헌법 370조와 35A조를 대부분 무효화하고 잠무카슈미르 헌법을 정지시켜 70년간 제한된 자치권을 누린 분쟁 지역을 거의 완전히 통제하게 되었다. 카슈미르 작가 아리프 아야즈 파레이Arif Ayaz Parrey가 내게 한 말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땅의 상실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결국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질 겁니다) 카슈미르에서는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형태로 나타나죠(언젠가 땅의 상실로 전환될 겁니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보면 두 나라의 강압적 체제는 동일한 것입니다.” 카슈미르와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정착촌은 분명 비슷한 점이 많다. 1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2019년부터 그 지역 주민이 아닌 사람도 카슈미르에서 자산과 토지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지역의 인구 구성을 바꾸려는 시도였다. 107, 111)<br>인도의 엘리트들은 이스라엘의 ‘거리낌 없는 행동’을 부러워했는데, ‘이는 지난 20년간 파키스탄이 테러 집단들을 도구로 활용하는데도 인도는 핵무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처럼 마음대로 보복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좌절에서 기인한 결과’라는 말이었다. 힌두민족주의 분위기가 압도하는 것과 나란히 상호 존중도 증대했다. 힌두민족주의 준군사 조직인 민족의용단Rashtriya Swayamsevak Sangh, RSS을 창건한 지도자 마다브 사다시브 골왈카르는 나치즘 찬양자였다. 힌두근본주의와 무슬림 혐오는 인도인민당 사상의 핵심에 자리한다. 이 이데올로기의 선구자인 비르 사바르카르Veer Savarkar는 ‘무슬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가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은 나치가 ‘유대인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힌두민족주의자들은 오래전부터 종족국가ethnostate 이스라엘이라는 개념을 찬양했다(다만 그들은 유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날 전 세계의 극우파 사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고가 존재한다). 108-9)<br>미국-멕시코 국경은 이스라엘 보안·감시 기업들의 주요 현장이 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에서 한 작업이 선발 도구로 활용된다. 이런 무자비한 입찰 과정은 매우 효과적이고, 백악관 주인이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아무 차이가 없다. 3,000킬로미터 길이의 국경을 지키는 데는 초당적인 지지가 존재한다. 이스라엘의 기술은 국경의 군사화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감시 기술, 국경 기반 시설, 전술부대, 통합 고정탑Integrated Fixed Towers, IFT 시스템을 결합해서 이민자들이 죽음의 사막을 건너는 것을 방지하고 저지한다는 구상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활동가들은 자신들에 대한 억압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어떤 식으로 점차 연결되는지 알고 있다. 9·11 이후 미국-멕시코 국경의 환경은 국가가 군대식 통제 방식의 속도를 높이면서 이민자와 아메리카 원주민을, 관리하고 괴롭혀야 하는 위협으로 규정했다. 2021년과 2022년에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사망한 이민자 수는 최소한 750명으로, 기록적인 수치였다. 116-8)<br>6 휴대전화에 심어진 대중 감시<br>이스라엘의 감시 기구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도청망인 워싱턴 국가안보국의 경쟁자이자 동맹자다. 인력 규모로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이스라엘은 가장 가까운 동맹국을 정탐한 오랜 역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가안보국은 이스라엘과 제휴하며 데이터 채굴과 분석 소프트웨어를 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전 미국 국가안보국의 정보 관리 빌 비니Bill Binney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다시 이 기술을 자국의 민간 기업에 넘겨준다.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이버 감시 기업인 NSO 그룹을 비롯한 이스라엘 하이테크 기업의 역할도 이런 관점에서 파악된다. 〈하레츠〉의 전 IT 담당 기자 아미타이 지브Amitai Ziv는 NSO의 정체를 밝히는 통찰력 있는 작업을 한 언론인인데, NSO의 힘은 많은 돈을 번다는 사실이 아니라 외교에 있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이스라엘이 몇몇 아프리카 나라에 사이버 감시를 판매할 때 유엔에서 그 나라들의 표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점령이 시작된 이래로 우리는 그 표가 필요하거든요.” 121)&nbsp;<br>NSO가 오랫동안 수익성이 가장 좋은 사업을 벌여온 멕시코에서는 스캔들이 속속 터졌다. 마약 카르텔이 부패한 공무원들과 공모해서 페가수스 스파이웨어를 손에 넣어 공통의 적을 제거하는 데 사용했다. 범죄 네트워크는 부패한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어 그들이 제거하거나 감시하기를 원하는 개인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사이버 감시는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는 산업이며, NSO가 장담하기는 하지만 일단 설치된 페가수스가 법률 위반에 대해 모니터되고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국가 부패에 비판적인 언론인들이 NSO 스파이웨어에 의해 휴대전화를 해킹당해 결국 목숨을 잃었다. 2017년에 사망한 프리랜서 기자 세실리오 피네다 비르토Cecilio Pineda Birto도 그중 한 명이다. 그가 살해되기 몇 주 전, 그의 휴대전화 번호가 멕시코 국가에 의해 페가수스 감시 대상으로 선별된 상태였다. 이 사건은 NSO의 잠재적 희생자들 중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126)<br>독재 정권이라면 어느 나라든 페가수스를 구매해서 배치했다. 이스라엘과 공식적 관계를 맺은 나라든 이스라엘 스파이웨어를 절실하게 원하는 나라든 모두 달려들었다. 바레인과 오만의 활동가들은 NSO 기술의 표적이 되고 있다. 르완다는 페가수스를 이용해 반정부 인사 폴 루세사바기나를 감시했다. 모로코는 페가수스를 이용해 에마뉘엘 마크롱을 비롯한 프랑스의 고위 정치인들을 염탐했다. 네타냐후의 긴밀한 동맹자인 헝가리 총리 오르반 빅토르는 페가수스를 구입해 야당 정치인들과 비판적 언론인들을 염탐했다. 아마 사우디아라비아가 NSO가 쌓은 공적의 핵심일 텐데, 아랍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국이자 미국의 긴밀한 동맹자인 이 나라는 이스라엘과 공식적 관계가 전혀 없다. 오바마와 바이든 행정부에서 백악관 고위 관리를 지낸 로브 맬리Rob Malley에 따르면 빈 살만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성가시고 짜증나는 일, 즉 공정하게 해결해야 하는 분쟁이라기보다는 극복해야 하는 문제’라고 보았다. 128-9)<br>사이버 무기 때문에 이스라엘 국민이 우려를 느끼지만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실질적인 행동이 많지 않다는 모순적인 징후가 존재한다.&nbsp; ‘대중은 국방부가 수출 허가를 내주는 한 이스라엘 국가에 좋은 일임이 분명하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2022년 페가수스가 이스라엘 국내의 일부 시민에게 사용된 사실이 폭로되고서야 많은 대중이 갑자기 NSO와 그 기술이 남용될 가능성에 분노를 터뜨렸다. 이스라엘의 많은 유대인이 볼 때, NSO를 비롯한 사이버 무기 제조업체는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이스라엘이 세계무대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고 테러리스트나 소아성애자들에 맞서 싸운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에 담긴 함의는 분명하다. 이스라엘이 진짜 피해자라는 것이다. 인기 웹사이트 ‘와이넷Ynet’의 한 칼럼니스트는 문제는 NSO의 기술이 아니라 정부가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있다고 주장했다. 총이 아니라 사람이 살인을 하는 것이라는 전미총기협회의 주문呪文을 떠올리게 하는 주장이었다. 139)<br>음침한 사이버 산업에서 일할 기회는 비슷한 군 경력의 이스라엘인들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고 있다. 2019년 아랍에미리트에서 채팅 앱 투톡ToTok이 출시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수백만 명이 앱을 다운받았다. 하지만 이 앱은 사실 스파이웨어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민간 기업을 활용해 자국 시민을 모니터하기 위한 감시 시스템을 고안해온 페르시아 만의 수많은 억압적 국가에서 나온 최신 툴이었다. 그 배후에 있는 다크매터는 아랍에미리트 기업으로, 전 이스라엘 정보 관리와 미국 국가안보국 직원을 여럿 거느리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대통령 선거운동에서 활용한 영국의 컨설팅 기업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mbridge Analytica의 최고경영자 알렉산더 닉스Alexander Nix는 이스라엘인들을 활용해 정치적 적수를 함정에 빠뜨린 사실을 인정했다. 지금은 없어진 사이그룹Psy-Group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 회사와 비슷한 다른 회사들은 ‘민간 모사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143-4)<br>7 왜 팔레스타인인을 좋아하지 않을까?<br>〈워싱턴 포스트〉는 2021년 5월에 놀랍도록 솔직한 기사를 헤드라인으로 내보냈다. ‘페이스북의 AI는 미국의 흑인 활동가를 대하듯이 팔레스타인 활동가를 다룬다. 그냥 차단해버린다.’ 이중 기준이 적용되는 게 분명했다. 소셜 미디어 개선을 위한 아랍 센터인 함레7amleh에 따르면 2021년 5월 소셜 미디어에서 히브리어로 이뤄진 공개 대화 109만 건 중 18만 3,000건이 아랍인에 대한 선동과 이스라엘 유대인의 인종주의로 채워졌지만, 이 콘텐츠는 삭제되지 않았다. 아마 가장 노골적인 검열은 페이스북이 소유한 인스타그램이 이슬람의 3대 성지인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에 관한 많은 게시물을 삭제한 사건일 것이다(나중에 일부분만 복구되었다). 2021년 5월 팔레스타인인 수백 명이 사원에서 기도하는 순간에 이스라엘군이 사원을 습격했을 때 벌어진 일이다. 이 장소가 ‘미국 정부의 제재를 받는 조직의 이름’이었기 때문에 페이스북이 ‘폭력이나 테러 단체’와 연관된 곳으로 잘못 지정한 것이었다. 151-2)<br>2021년 중반에 세계 곳곳의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갑자기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예루살렘 기도단Jerusalem Prayer Team’이라는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팔로우를 시작한 것을 발견했다. 7,500만 팔로어를 거느린 이 페이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친이스라엘 페이스북 페이지였다. 기독교 시온주의자이자 친트럼프 활동가인 마이크 에번스Mike Evans가 운영하는 이 페이지가 추구하는 목표는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드높이는 것이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메타는 ‘의도하지 않은 편향’ 때문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히브리어 게시물보다 아랍어 내용을 훨씬 많이 삭제했다. 아랍어 구사자의 부족, 조직 자체의 편향, 결함 있는 머신러닝이 그 원인이었다. 소수집단의 우려에 립서비스를 해주는 것은 기껏해야 불편한 일이었다. 다국적 억압의 시대에 현대 하이테크 산업의 지배자들로서는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것이 손쉬운 선택이었다. 정치적 반발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153-5)<br>요르단 강 서안에 있는 비르자이트 대학교 경영경제학부 부교수인 팔레스타인 학자 아말 나잘Amal Nazzal은 보고서에서 유튜브가 팔레스타인 콘텐츠에 대해 어떤 식으로 지역과 언어 차별을 두루 활용하는지 보여주었다. 아랍어 영상은 내용이 어떻든 신고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특히 ‘하마스’, ‘이슬람 성전聖戰’, ‘헤즈볼라’ 같은 단어가 포함되어 있으면 여지없이 신고를 당했다. 요르단 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이용자인 하메드는 유튜브 채널 ‘팔레스타인 27k’를 만든 사람인데, 자신이 올린 영상 하나가 삭제된 것을 발견했지만 똑같은 영상을 유럽인 친구에게 보내 업로드하게 하는 실험을 하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콘텐츠를 현금화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쳤다. 이런 ‘디지털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의 소셜 미디어 기업들이 활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통제다. 근대에 중동과 북아프리카 사람들을 바라보던 서구의 차별적인 시선과 별다를 바가 없다. 아랍인들은 다시 한 번 당연히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159-61)<br>맺는말│공존할 것인가, 돌연변이가 될 것인가<br>이스라엘은 여전히 포위 상태에서도 번성하는 민주주의이자 극단주의에 맞선 싸움의 핵심 동맹자로 규정된다. 주요 방위 수출국이라는 이스라엘의 지위는 전설과도 같다.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에 군사 원조와 무기, 훈련을 기꺼이 제공하는 나라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드문 경우에만 이런 이미지가 깨진다. 국제앰네스티와 휴먼라이츠워치는 이스라엘이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고 비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시, 드론, 열렬한 종족민족주의 등에서 글로벌 리더라는 이스라엘의 지위는 조만간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은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경제적 대가를 치를 필요가 전혀 없다. 어느 편인가 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전쟁은 특히 유럽에서 세계적 무기 경쟁을 부추길 것이다. 드론부터 미사일과 감시 기술, 휴대전화 해킹 툴에 이르기까지 가장 치명적인 공격용·방어용 무기에 훨씬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고조되는 투자의 직접적 수혜자다. 169-70)<br>그저 지구상에서 가장 침투력과 살상력이 강한 몇몇 군사 장비를 원하는 나라들을 넘어서 이스라엘이 호소력을 계속 확대하길 바라는 것은 종족민족주의의 열정을 공유하는 국가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나라들은 엄격한 종교 생활을 자랑스럽게 옹호하며 다문화주의와 자유의 가치에 반대한다. 이 나라들은 사회적으로 관대한 좌파가 전통적 이상을 훼손하고 그 대신 인종, 젠더, 결혼, 섹슈얼리티에 관한 도덕적으로 혼란스러운 관점을 내세운다고 비난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치학자 요람 하조니Yoram Hazony는 자신의 전망을 설명한 바 있는데, 이스라엘 유대인의 상당수가 이런 견해를 공유한다. 그는 미국은 기독교도가 다수인 기독교 국가이며, 따라서 기독교도가 나라의 법률과 사회적 규칙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수집단은 ‘별도 취급’을 받을 수 있지만, 어쨌든 다수집단이 지배적이어야 한다. 비슷한 부류의 다른 나라들에도 이스라엘의 경험이 계속 유의미하려면 극단적 무력과 감시, 기술을 성취해야 한다. 171)<br>이스라엘은 수많은 나라에 숱하게 많은 방위 장비를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자국의 끝없는 점령에 대한 정치적 반발을 차단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NSO 그룹의 휴대전화 해킹 툴 페가수스를 비롯한 수많은 하이테크 무기를 판매하는 일종의 무기 정책은 권위주의 국가든 민주 국가든 상관없이 동맹과 우방을 보장해준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국가라고 자부한다. 이 전략이 지금까지 작동한 것은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는 것이 단지 제2의 러시아라는 딱지가 붙는 사태뿐이기 때문이다. 외국 영토를 침략, 점령해서 엄청난 비난을 받는 것 말이다. 인권을 침해하는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기 위한 거대한 국제적 캠페인이나 억압적 국가들에 장비를 판매하는 이스라엘 무기 회사를 표적 겨냥한 법적 소송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이 산업은 계속 승승장구할 것이다. 막대한 이윤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도덕은 이 산업과 아무 관계가 없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실험실이 빛을 잃으려면 비난이 가해져야 한다. 173-4)<br>그다지 큰 환호를 받지는 못하지만, 많은 기관 투자자가 이스라엘의 인권 침해에 공모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면서 이스라엘 기업들에서 투자를 회수하기 시작하고 있다. 자산 규모 950억 달러로 노르웨이 최대의 연금기금인 KLP는 2021년 요르단 강 서안 정착촌에서 ‘용인할 수 없는 수준으로 인권 침해 위험을 높인다’는 이유로 16개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다. 같은 해에 뉴질랜드의 슈퍼펀드는 다섯 개의 이스라엘 은행이 보유한 지분 650만 달러를 매각하면서 ‘제외된 기업들이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 건설에 프로젝트 금융을 제공한다는 믿을 만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식으로 물결이 바뀔 수 있다. 2021년 ‘책임 있는 투자자Responsible Investor’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투자 매니저의 67퍼센트가 조만간 인권 문제가 핵심적인 투자 고려 사항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중국이나 미얀마–또는 팔레스타인–에서 억압과 공모하는 기업들에 투자하는 것은 이제 점점 옹호할 수 없는 일이 되고 있다. 174-5)]]></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322/79/cover150/e4825321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3227937</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간식</category><title>나는 화학으로 세상을 읽는다 / 크리스 우드포드 - [나는 화학으로 세상을 읽는다 - 소소한 일상에서 만물의 본질이 보이는 난생처음 화학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072668</link><pubDate>Thu, 05 Feb 2026 07: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0726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732196&TPaperId=170726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210/52/coveroff/k1127321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732196&TPaperId=170726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는 화학으로 세상을 읽는다 - 소소한 일상에서 만물의 본질이 보이는 난생처음 화학책</a><br/>크리스 우드포드 지음, 이재경 옮김 / 반니 / 2021년 06월<br/></td></tr></table><br/>1. 세상 모든 것의 재료 - #원자 #금속<br>어떠한 예외도 없이 지구상 모든 것은 미세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100여 종의 성분으로 만들어진다. 이것을 생명의 레고 블록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탄소, 수소, 질소, 산소만 있어도 생물 대부분과 엄청나게 많은 무생물을 지을 원재료를 갖춘 셈이다. 물질과 물질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안에 있는 원자들만이 아니다. 원자들이 결합 방식에 따라서도 물질이 갈린다. 대표적인 예가 지구에서 가장 풍부하고 가장 필수적인 물질, 바로 물이다. 원자가 (금과 은 같은) 화학원소의 기본 단위인 것처럼 분자는 보다 복잡한 물질의 기본 구성요소다. 둘 이상의 원자를 붙이면 분자가 된다. 이제 원자 쪼개기는 전혀 새롭지 않은 일이 됐다. 러더퍼드 ‘입자가속기’의 현대판 후손들이 원자를 입자들로, 그 입자들을 더 작은 입자들로 쪼개왔다. 오늘날은 원자에 수십 개의 하위 입자가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아원자 입자들은 이제 구닥다리가 된 양성자와 중성자부터 비교적 최근에 인지된 힉스입자Higgs boson까지를 아우른다. 9, 14)<br>철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은 똑같은 크기의 구슬 수백 수천 개가 빼곡히 들어찬 상자의 뚜껑을 여는 것과 비슷하다. 각각의 구슬은 각각의 철원자에 해당한다. 이 원자들이 나란히 줄지어 그리고 층층이 쌓여 있다. 철은 망치로 두들겨 더 나은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 원자의 층층들이 서로를 행복하게 미끄러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유리와 달리 철은 원자들이 위치 이동을 꺼리지 않기 때문에 모양을 잡을 때 구부러진다. 반면 유리는 원자들이 전체 구조를 허물지 않고는 새 장소로 이동하지 못해 산산이 부서진다. 또한 철은 전기를 잘 유도한다. 원자들이 밀집한 구조에서는 각 원자의 외곽을 도는 전자들이 서로 맞물려 전체 구조를 아우르며 앞뒤로 출렁이는 일종의 흐릿한 바다를 형성해서 전기를 이편에서 저편으로 운반하기 때문이다. 열기도 비슷한 방식으로 철을 타고 흐른다. 철을 충분히 가열하면 벌겋게 달아오른다. 원자들이 열에너지를 흡수해서 (붉은)빛의 형태로 내놓기 때문이다. 16)<br>쇳덩어리는 철원자로 돼 있지만 플라스틱 덩어리는 플라스틱 원자로 돼 있지 않다. 플라스틱은 대개 폴리머(polymer, 다량체)라고 부르는 고분자로 이루어지며 각각의 폴리머는 대개 탄소, 수소, 산소, 질소를 기반으로 한다. 폴리머는 모노머(monomer, 단량체)라고 부르는 단순한 분자를 긴 사슬처럼 끝없이 중첩시켜 만든 것이다. 플라스틱은 수명은 억세게 길지만 부드럽고 유연하다. 폴리머 사슬이 꽤 약한 결합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자유전자의 바다가 출렁이며 전기와 열을 전달하는 금속과 달리, 플라스틱의 전자는 모두 원자 안에 안전하게 들어앉아 있기 때문에 열과 전기가 플라스틱 물질은 쉽사리 통과하지 못한다. 하지만 플라스틱이 다 그런 건 아니다. 나일론의 가까운 친척인 인조섬유 케블라Kevlar는 같은 무게일 때 강철보다 무려 다섯 배나 강하다. 케블라 섬유를 30겹 맞대면 1,500km/h 이상의 속도로 날아오는 총알도 막을 수 있는 두툼한 방탄 이불이 만들어진다. 18-9)<br>2. 스파이더맨의 정체 - #접착 #마찰<br>자석이 냉장고에 붙어 있다. 자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금속과 금속을 꽉 들러붙게 하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접착제는 보이지 않는다. 접착제가 있든 없든 모든 종류의 끈적거림과 미끄러움에는 같은 이치가 적용된다. 뭔가가 다른 뭔가에 달라붙을 때는 반드시 그것들을 한데 붙드는 힘이 있다. 그것들이 달라붙지 않거나 미끄러질 때도 대개는 같은 힘이 있다. 다만 둘을 묶기에는 힘이 모자랐을 뿐이다. 눈에 띄게 아름답지만 다소 무거운 벽지를 붙이는데, 벽지가 붙어 있지 않고 자꾸 다시 떨어진다고 치자. 무슨 연유일까? 겉보기에는 단순히 중력(벽지를 벽에서 벗겨지게 하는 벽지의 무게)과 풀(벽지를 벽에 붙여두는 힘) 사이의 싸움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보기보다 복잡하다. 실제로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접착성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첫째, 풀이 벽지에 붙어 있어야 한다. 둘째, 풀의 반대편이 벽에 붙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흔히 간과되는 세 번째는 풀도 스스로 뭉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1-2)<br>보다 면밀히 살펴보면 앞의 세 가지 접착성은 사실상 두 종류다. 자기들끼리 달라붙느냐, 다른 것들에 달라붙느냐. 이 두 가지 유형의 힘을 응집력cohesion과 접착력adhesion이라고 한다. 풀이 정말로 효과적으로 기능하려면 강력한 응집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중간에서 쪼개지지 않는다. 접착력과 응집력이 나란히 작용하는 가장 친숙하고 가장 주목할 만한 예가 바로 물이다. 진정한 응집력의 대명사인 물 분자들은 심지어 근처에 움켜잡을 수 있는 다른 것들이 있을 때도 자기들끼리 똘똘 뭉친다. 이것이 비가 방울방울 후두둑 떨어지는 이유다. 일반적으로 물은 접착력보다는 응집력이 훨씬 강하다. 이것이 빗방울이 퍼지거나 흩어지지 않고 잎사귀 위에 진주처럼 영롱하게 맺힐 수 있는 이유다. 물은 끼리끼리 뭉치는 데는 명수지만 다른 것에 달라붙는 데는 영 젬병이다. 그래서 물을 제대로 퍼지게 하고 물건을 완전히 적시기 위해서는 세제(계면활성제)를 사용해야 한다. 22)<br>모든 물질은 원자들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기억하겠지만 원자들은 우리가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부르는 더 작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양성자는 미소량의 양전하를, 전자는 미소량의 음전하를 가진다. 원자 내부에는 같은 수의 양성자와 전자가 있어 서로를 상쇄하기 때문에 원자 자체는 전하를 띠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원자가 같지는 않다. 어떤 원자는 다른 원자보다 탐욕스럽다. 두 가지 물질을 밀착시켜 반복적으로 문지르면 이쪽 원자들이 저쪽 원자들로부터 전자를 ‘강도질해 온다.’ 이것이 스웨터에 풍선을 비볐을 때 생기는 일이다. 강도(스웨터)는 전자가 늘어 음전하를 띠게 되고, 불쌍한 피해자(풍선)는 전자를 잃어 양전하를 띠게 된다. 그러면 둘은 자석의 양극과 음극처럼 서로 끌어당긴다. 이것이 스웨터에 풍선이 달라붙는 이유다. 0.1g의 굵은 물방울 하나에만 해도 약 30억조 개의 분자가 들어 있다. 이것이 정전기처럼 일견 보잘것없는 힘을 이용해 초강력 접착제를 만들 수 있는 이유다. 24)<br>우리가 서둘러 걸을 때 미끄러지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마찰이다. 마찰이 없다면 걷기는 불가능하다. 발을 내려놓을 때마다 그냥 미끄러져 발라당 넘어지게 된다. 운전도 불가능하다. 정지마찰traction 없이는 자동차 바퀴가 헛돌기만 할 뿐 전진하지 못한다. 마찰은 발이나 바퀴가 새로운 위치로, 앞으로 약간 이동할 만큼만 바닥에 붙어 있게 하는 일종의 일시적 접착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거동의 핵심이다. 마찰은 정전기 접착제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용한다. 두 개의 면이 접해서 이쪽 원자들이 저쪽 원자들과 타격 가능 거리(약 원자 다섯 개 길이)에 들어오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두 표면이 잠시나마 붙어 있다. 그런데 마찰이 접착제와 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면서 어째서 영구적 접착성은 없는 걸까? 모두 규모의 문제다. 차가 주차돼 있을 때 고무 타이어와 노면 사이의 마찰력은 중력(자동차 무게)이나 바람 등 차에 자연적으로 미치는 힘을 이길 만큼 크다. 그래서 주차한 차는 길에 딱 붙어 있다. 26)<br>3. 유리가 맑고 투명한 이유 - #유리 #결정구조<br>금속은 밀집 결정구조지만 원자들이 어느 정도는 이동이 가능하다. 금속을 망치로 때려서 모양을 잡는 것은 원자들의 행과 열을 후려쳐서 새로운 위치로 밀어내는 것이다. 원자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망치 타격이 공급하는 에너지를 쉽게 흡수한다. 반면 유리는 유난스럽다. 유리는 열린 비정형구조라서 원자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지 않고 보다 느슨하게 무작위로 연결돼 있다. 유리는 총을 맞으면 원자들이 재빨리 대오를 정비할 방법이 없고 총알의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소멸시킬 도리도 없기 때문에 전체 구조가 붕괴한다. 이것이 유리가 약간의 압박에도 쉽게 금이 가는 이유다. 요리 좀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유리컵을 박살내기 위해 반드시 내리치거나 총을 쏠 필요는 없다. 뜨거운 유리컵을 차가운 물에 넣으면 유리가 짝! 갈라진다. 아주 깔끔하게. 왜 그럴까? 역시나 문제는 유리의 비정형구조는 신속한 재배열로 에너지를 소멸시키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때의 에너지는 열이다. 35)<br>물질의 투명성과 불투명성은 빛이 그것을 통과하려 할 때 그것이 빛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달려 있다. 금속은 광자photon라고 부르는 빛 입자뿐 아니라 엑스선처럼 빛과 비슷한 것까지 모두 쭉쭉 흡수한다. 금속의 원자들은 자유전자들의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이것이 광자를 쉽게 흡수했다가 쉽게 분출한다. 광자를 공처럼 잡아서 왔던 방향으로 다시 던져버린다. 알루미늄과 은처럼 반짝이는 금속은 모든 종류의 광자(온갖 색의 빛)를 몽땅 잡아서 다시 던진다. 유리의 전자들은 괴상한 비정형구조의 원자들을 흐트러지지 않게 붙들고 있느라 바빠서 가시광선의 광자들을 금속처럼 착착 포착하지 못한다. 그래서 광자들 대부분 유리의 한편으로 들어와 반대편으로 빠져나가고, 유리 원자들은 그걸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자외선은 얘기가 다르다. 자외선의 광자는 가시광선의 광자보다 에너지가 넘쳐서 유리가 흡수하기에 좋다. 이것이 유리가 순수한 자외선 속에서 불투명해 보이는 이유다. 37)<br>열은 적외선 복사infrared radiation 형태로 허공을 돌진한다.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광대한 진공 공간도 그렇게 가로지른다. 열은 일정한 속도(초속 30만 km)로 질주한다는 점에서 빛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열(적외선)과 가시광선의 실질적 차이는 열을 전달하는 파동이 살짝 더 길다는 것뿐이다. 무지개(가시광선)의 빨강(바깥쪽)에서 파랑(안쪽)까지의 스펙트럼을 생각해보자. 적외선은 빨간색 바로 너머에, 즉 우리가 볼 수 있는 색들 바로 밖에 있다. 열이 빛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면 열이 유리창을 곧장 통과하는 것이 하등 신기할 게 없다. 빛이 갈 수 있는 곳은 열도 따라간다. 이걸 막을 해법은 간단하다. 유리에 금속이나 (이산화티타늄 같은) 금속산화물을 얇게 입혀서 부분적 거울로 만드는 것이다. 원자 몇 개 두께의 초박막 코팅은 빛은 투과시키고 열은 차단한다. 타는 듯이 더운 여름날에는 이 보이지 않는 코팅이 바깥의 열을 반사해서 집 안을 상대적으로 시원하게 유지해준다. 38-9)<br>4. 모든 물질은 늙는다 - #탄성 #부식<br>‘엘라스틱’은 물질의 성질이지 물질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탄성은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탄성이란 원상회복이 가능한 신축성을 말한다. 고무줄을 잡아당겼다가 놓으면 원래 크기(길이)와 모양으로 돌아간다. 어느 집이든 고무줄과 고무장갑, 탄성 붕대와 탄성 반창고, 늘어나는 팔찌와 시곗줄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엘라스틱’이란 물질은 없다. 다만 신축성 있는 소재가 있을 뿐이다. 더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거의 모든 것에 신축성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도 바람에 최대 1m 폭으로 흔들린다. 마천루처럼 세상 뻣뻣해 보이는 것조차 신축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지않았다간 빌딩이 뚝 부러진다.) 탄성 있는 물질, 이른바 ‘엘라스틱’의 제대로 된 명칭은 엘라스토머(elastomer, 탄성중합체)다. 그중에서도 천연 엘라스토머인 고무가 대표적이다. 엘라스토머는 커다란 분자들이 엉켜 있는 고분자 물질로, 잡아당기면 고분자들이 쭉 펴지며 길어지고, 손을 놓은 순간 튕겨오르며 다시 뒤엉킨다. 45-6)<br>‘엘라스틱’이 ‘탄성재료’의 대체어로 쓰이듯 ‘플라스틱’은 ‘소성재료plastic material’의 대체어로 쓰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폐가 있다. 우리는 플라스틱을 막연히 세숫대야와 칫솔을 만드는 데 쓰는 형형색색의 물질로 생각하지만, 과학적으로 소성은 매우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소성은 외부에서 힘을 받아 형태가 바뀐 뒤 그 힘이 없어져도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가지 않는 성질이다. 따라서 소성재료는 우리 주위의 플라스틱이 아니라 그 플라스틱의 원료를 말한다. 외력으로 변형된 투명 플라스틱 조각을 편광현미경으로 관찰하면, 광탄성photoelasticity이라는 현상이 만든 놀라운 무지개 패턴을 볼 수 있다. 소성재료는 탄성재료와 달리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소성재료에 계속 힘을 가하면 변형되다가 결국은 뚝 부러지고 만다. 또한 플라스틱은 비틀거나 부러뜨리면 불쾌한 냄새가 난다. 변형에 따른 열로 인해 내부의 플라스틱 폴리머에서 기체가 방출돼서 그렇다. 46)<br>엘라스틱(탄성재료)이 갑자기 또는 서서히 플라스틱하게 변하는 고약한 버릇은 다분히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고무는 계속 늘어나다가 탄성한도elastic limit를 넘어버리면 외부의 힘이 없어져도 본래 모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변형된 상태로 남는다. 이걸 소성변형plastic deformation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금속도 엘라스틱하다. 금속에 탄성이 없다면 주행의 여파로 자동차 차체와 엔진과 그 안을 채운 너트들과 볼트들에 결국 영구적 변형이 일어날 수 있다. 탄성재료는 한계를 넘어서면 갑자기 끊어진다. 하지만 서서히 망가질 때도 있다. 왜 그럴까? 우리가 고무줄을 당겼다가 놓을 때마다 에너지를 받아 늘어났던 분자들이 모두 정확히 원래 위치로 돌아가거나 정확히 같은 에너지를 다시 내놓지는 않는다. 고무줄을 몇 번 빠르게 당겼다가 입술에 대보면 고무줄이 좀 뜨뜻해진 것을 느낄 수 있다. 고무줄에 투입한 에너지의 일부가 열로 낭비된 것이다. 이렇게 날아간 에너지는 되찾을 수 없다. 47-8)<br>직물은 왜 색이 빠질까? 색이 바래는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염색을 했기 때문이고, 기본적으로 염료는 직물 섬유에 주입된 화학약품이다. 볕을 쬐면 색이 바래는 주된 이유는 햇빛에 있는 자외선 때문이다. (맞다. 우리 얼굴을 태우는 바로 그 고에너지, 고주파 광선을 말한다.) 자외선이 염료 분자들을 때리면 광퇴화photo-degradation가 일어난다. 즉 분자들이 다른 형태로 재배열되는 바람에 전과 같은 방식으로 빛을 반사하지 않게 된다. 플라스틱이 누렇게 되는 것은 내부의 분자들에 변형이 와서 빛의 일부만 보내고 나머지는 흡수하기 때문이다. 보내주는 빛이 빨강과 녹색 계열이라서 오래된 플라스틱은 우리가 아는 누런색을 띠게 된다. 부작용도 있다. 변색과 함께 플라스틱 구조도 취약해져서 갈라지고 부서질 가능성이 대폭 높아진다. 짜증나는 일이지만 사실 광퇴화는 플라스틱을 환경에서 분해하는 유용한 방법이다. 광퇴화 같은 자연 효과의 도움이 없으면 플라스틱은 영원히 우리 주위에 뭉개고 있어야 한다. 51-2)<br>5. 배수구와 만년필의 공통점 - #물 #열<br>물의 비열용량specific heat capacity은 엄청나다. 물은 다른 물질에 비해 1kg(약 1ℓ)의 온도를 1°C 올리는 데 많은 에너지(4,200J)를 요한다. 물 분자는 매우 가벼운 원자들(수소는 원자 중 가장 가볍고 산소는 여덟 번째로 가볍다)로 이루어져 있고, 따라서 물 1kg에는 동량의 다른 물질보다 더 많은 분자가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분자는 진동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이면서 일정량의 열을 흡수한다. 다시 말해 물이 열을 흡수하는 힘의 원천은 압도적인 분자 수에 있다. 주전자에 물 1ℓ를 채우고, (만약 가능하다면) 철 덩어리로 주전자 모형을 만든다. 이제 두 주전자를 레인지에 올리고 동일한 시간 동안 가열해 각각 동일한 양의 에너지를 흡수하게 한다. 주전자의 물이 끓어오른다. 그럼 철 덩어리는 어떻게 될까? 녹아내리지는 않겠지만 엄청나게 뜨거워진다. 철의 온도는 700°C까지 무시무시하게 상승한다. 물의 온도를 높이는 데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든다는 사실이 물을 완벽한 열 운반체로 만든다. 59)<br>벌겋게 달아오른 쇠막대는 집을 덥힐 수 없다. 요점은 열에너지와 온도의 차이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뜨거운 것에 열에너지도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물체의 온도(얼마나 뜨거운가)와 그것이 얼마의 열에너지를 함유하는가의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이것이 차가운 빙상이 엄청난 열을 함유한 이유다. 모든 것은 물이 가진 높은 비열용량으로 귀결된다. 물에 빽빽이 들어찬 분자들 덕분에 물은 놀라운 열 유지 능력을 가진다. 철의 비열용량은 물의 약 9분의 1이다. 다시 말해 철이나 강철 1kg의 온도가 10℃ 내려갈 때 내놓는 열에너지는 물 1ℓ(즉 1kg)가 같은 정도로 식을 때 발산하는 열에너지의 9분의 1에 불과하다. 중앙난방시스템의 물은 보일러에서 흘러나와 각 방으로 흘러갔다가 다시 보일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계속 식어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열을 발산한다. 거기다 물은 매우 유동적인 액체라서 신속히 회수돼 열을 다시 공급받아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60-1)<br>파이프 안을 쉽게 흘러다니는 물의 특성도 열을 붙들고 늘어지는 특성만큼이나 중요하다. 만약 물이 더 걸쭉한(점성이 더 강한) 액체라면, 그래서 줄줄 흐르지 않고 진득하게 흐른다면 우리가 지금처럼 물을 많이 사용하지 못했을 거다. 물이 시럽의 속도로 움직이면 샤워하고 변기물을 내리고 설거지하고 옷을 세탁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상상해보라. 시럽 같은 물로 구동되는 중앙난방은 작동은 하겠지만 효과가 훨씬 떨어진다. 찐득한 물도 방에서 방으로 흐르며 같은 방식으로 식겠지만, 잽싸게 보일러로 돌아가 잃은 열을 신속히 보충하지 못한다. 배관은 물의 속성, 그중에서도 압력과 중력에 밀려 줄줄 흐르는 속성에 의지한다. 이 때문에 도시의 급수장과 저수탑은 열이면 열 언덕 꼭대기에 세워진다. 마찬가지로, 집에서 수도를 틀 때 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은 물탱크가 높은 곳(주로 위층이나 옥상)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배관 설비는 첨단 기술 없이도 놀랄 만큼 효과적이다. 61-2)<br>6. 빨래의 과학 - #오염 #용해<br>옷은 동시에 양방향에서 더러워진다. 바깥쪽에서(예를 들어 케첩이 묻었을 때), 그리고 안쪽에서(땀을 비롯한 각종 체액의 분비). 왜 옷은 때가 탈까? 우리가 입고, 신고, 걸치는 것들은 우리의 체온 유지를 위해 설계됐기 때문이다. 집을 벽돌로 짓는다면, 옷은 모와 면(천연섬유), 폴리에스테르와 나일론(합성섬유)을 꼬고, 짜고, 떠서 만든 실과 직물로 짓는다. 새끼양의 양털은 약 5,000만 개의 섬유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양모 스웨터 한 벌에는 족히 수백만 개의 섬유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 스웨터는 원산지가 양의 등이든 유전이든(합성섬유는 석유로 만든다)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고 같은 목적을 수행한다. 즉 촘촘히 얽힌 섬유들이 공기를 가둬서 우리의 체열을 유지한다. 하지만 수많은 미세 섬유가 너무 빡빡하게 엉켜 있으면 먼지를 빨아들이는 부작용이 난다. 뭔가가 달라붙을 표면적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는 데다, 섬유가 워낙 작아서 때와 땀이 원자 단위로 자연스럽게 달라붙는다. 70)<br>물 분자는 수소원자 두 개가 산소원자 하나에 붙어서 삼각형을 이루는데 수소 끝은 약한 양전하를 띠고, 산소 끝은 약한 음전하를 띤다. 물 분자는 이렇게 자석처럼 두 개의 상반된 ‘극’을 가진 까닭에 극성 분자polar molecule라고 불린다. 그리고 정말 자석처럼, 때 같은 것에 달라붙어서 때를 있던 곳에서 떼어낸다. 그렇지만 물이 모든 것에 달라붙지는 않는다. 첫째, 물 분자는 자기들끼리 더 잘 달라붙는다. 이것이 물이 방울지고, 연못 수면에 소금쟁이가 떠 있을 막을 형성하는 이유다. 물이 뭔가를 제대로 적시려면 물의 이 표면장력surface tension부터 깨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극성 분자는 다른 극성 분자에게 달라붙어 그것을 있던 곳에서 떼어낸다. 이 말은 물이 소금(역시 극성 분자) 같은 물질을 쉽게 용해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껌, 접착제, 잉크, 또는 극성 분자를 끌어당길 음극과 양극이 없는 (탄소기반) 유기화학물질로 이루어진 옷 얼룩에는 통하지 않는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비누와 세제다. 70-1)<br>대부분은 물을 증발하는 방법으로 옷을 말린다. 다시 말해 액체 상태의 물을 수증기로 바꾼다. 그러나 물이 수증기로 변할 때 무조건 열이 필요한 건 아니다. 냄비에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들 때 우리는 꾸준한 열에너지 공급으로 물 분자들의 활동성을 키워 그것들이 액체 상태에서 벗어나 증기가 되게 한다. 이때는 열이 증발의 동력이다. 이와 달리 추운 데서 옷을 말릴 때는 지나가는 공기에 의지한다. 공기가 불어서 물 분자들을 자유롭게 풀어준다. 따라서 이때는 꾸준히 부는 건조한 바람이 마법의 요소다. 여기서 ‘건조’가 중요한 단어다. 빨래에서 물기가 얼마나 빨리 없어질지(또는 없어지기는 할지)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이 바로 습기(주변 공기에 이미 잠복해 있는 수증기의 양)이기 때문이다. 열대우림 한가운데 사는 사람은 빨래를 밖에 널어봤자 아무 소용없다. 물이 젖은 빨래를 떠나 젖은 대기로 들어갈 가능성은 낮다. 습도가 낮으면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빨래가 밖에서 잘 마른다. 75)<br>7. 스웨터는 왜 따뜻할까? - #발열 #통기성<br>우리는 어떤 경로로 열을 잃을까? 몸의 심부에서 피부조직과 옷까지는 직접 전도로, 피부에서는 증발로, 옷의 표면에서는 대류와 복사로 열을 잃는다. 운동할 때는 체열의 약 절반이 땀의 증발로 잃고, 10%는 복사로 날아가고, 3분의 1 조금 넘게는 전도와 대류로 사라진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날씨에 달려 있다. 쌀쌀하고 바람 부는 날, 또는 달리거나 자전거를 탈 때 차가운 공기가 계속 몸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대류 작용으로 체열을 절반까지 빼앗아가기 때문에 바람막이용 겉옷을 입는 게 최선의 방어다. 반대로 덥고 습한 날에는 주변 공기가 이미 포화상태여서 증발로 열을 잃을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시원함을 유지하려면 부채질을 해서 일부러 대류를 일으켜야 한다. 춥고 건조하고 바람이 없는 날에는 복사가 체열 손실의 주범이다. 따라서 옷을 겹겹이 입는 것이 몸의 심부에서 옷의 겉면으로 열전도가 일어나 열이 밖으로 복사되는 것을 줄이는 최선의 전략이다. 80-1)<br>통기성과 방수성은 모순처럼 들린다. 어떻게 천이 밖에서 물이 스미는 건 막으면서 내부의 땀은 밖으로 내보낸단 말인가? 모든 것은 비의 물방울과 땀이 기화한 증기의 과학적 차이로 설명된다. 빗방울의 물 분자들은 수십억조 개가 뭉쳐 있는 데 반해, 수증기 분자들은 서로 분리돼 자유롭게 떠다닌다. 다시 말해 빗방울은 물 분자보다 비교가 불허하게 크다. 고어텍스 같은 통기성 방수 직물은 이 차이를 이용한다. 고어W.L. Gore &amp; Associates사의 과학자들에 따르면, 고어텍스는 미세 기공이 무수히 뚫린 얇은 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구멍은 물 분자보다 700배 커서 습기는 쉽게 빠져나가는 반면 빗방울보다 2만 배 작아서 비는 안으로 스며들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소재가 방수성과 통기성이라는 상반된 성질을 동시에 갖게 됐다. 정말 더워서 땀이 많이 나면 어쩔 수 없이 수증기의 일부는 미처 빠져나가기 전에 식어서 응축되고, 그렇게 형성된 물방울은 빠져나가지 못한다. 84)<br>양말과 셔츠부터 드레스와 코트까지 모든 의류에는 공통점이 있다. 날실과 씨실의 패턴. 이는 금속 막대 같은 고체의 내부조직, 즉 원자들이 가로세로로 정렬한 양상과 비슷하다. 다만 금속 막대는 모든 방향에서 동일하게 강한 반면(이를 전문용어로 등방성isotropic이라고 한다) 직물은 특정 방향이 다른 방향보다 더 강하다(이를 비등방성anisotropic이라고 한다). 즉 날실이나 씨실과 평행한 방향보다 대각선 방향으로 더 많이 늘어난다. 대각선 방향의 저항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단사들은 날실과 씨실이 대각선이 되도록 직물을 45도 돌려놓고 재단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옷이 해지기 시작하면 끝장은 순식간이다. 청바지 무릎의 작은 마모가 금세 뻥 뚫린 구멍이 된다. 왜 그럴까? 직물에 결함이 생기면 나머지 실들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전보다 커져서 견디다 못한 실들이 차례차례 뜯겨나가기 때문이다. 구멍이 번질수록 남은 섬유에 미치는 인장력이 세져 구멍이 더 퍼져나갈 가능성도 커진다. 86-7)<br>8. 휘발유부터 전기차까지 - #에너지 #배터리<br>자동차 운전의 진정한 단점은 어디른 가든 쇳덩이를 차고 다니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 휘발유 자동차는 우리가 피할 길 없는 비효율을 기본으로 깔고 간다. 하지만 이건 새 발의 피다. 실질적인 비효율성은 따로 있다. 자동차의 근본적인 문제는 휘발유에 갇혀 있는 에너지의 단 15%만이 실제로 도로를 달리는 데 쓰인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실린더의 열 손실, 기어의 마찰, 엔진이 내는 소리, 차의 전기 설비로 가는 동력 등 다양한 경로로 낭비된다. 만약 자동차가 100% 효율적이라서 휘발유에 내장된 에너지가 남김없이 도로를 내달리는 운동에너지로 전환된다면 동량의 연료로 적어도 5~10배는 더 멀리 갈 수 있을 거다. 차에 사람을 많이 태울수록 차량의 무게 대비 실제로 운반할 유효 하중이 커지기 때문에 에너지 효율이 높아진다. 이것이 트럭, 버스, 열차 같은 차량이 훨씬 크고 무거운 디젤엔진을 탑재하고 있는 데도 효율성 높은 운송 수단에 속하는 이유다. 92-3)<br>휘발유 자동차를 비효율적으로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도시 주행에 따르는 스톱스타트 운전 행태다. 뭐라도 하려면 에너지가 든다. 고장 난 차를 밀어봤다면 자동차의 관성(inertia, 물체가 외부의 힘을 받지 않는 한 정지 상태 또는 운동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을 깨는 것만도 얼마나 등골 빠지게 힘든지 알 것이다. 무게 1.5톤(1,500kg), 주행 속도 65km/h의 자동차는 상당한 운동에너지를 보유한다. 계산해보면 약 240kJ(킬로줄, kilojoule)인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올라가기에 충분한 에너지양이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축구공을 따라 도로에 튀어나오는 아이들이나 교통안전 수칙을 모르는 고양이를 피해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이 240kJ의 에너지는 허공으로 사라진다. 브레이크 패드가 브레이크 디스크와 만나 자동차가 정지할 때 운동에너지는 타이어의 끼익 하는 비명과 풀썩 피어오르는 연기로 사라진다. 주행 중에 이렇게 끔찍히 소모적인 순환이 계속 반복된다. 95-6)<br>모터로 구동되는 전기차는 그런 면에서 크게 유리하다. 극히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전기모터는 원통형 자석 안을 빙빙 도는 구리 코일이다. 코일은 구리선을 촘촘히 감은 것이다. 구리선에 전기를 주입하면 임시 자기장이 발생해 자석의 자성을 밀어낸다. 이 때문에 구리심이 뱅뱅 도는데, 이 현상을 이용해 진공청소기부터 고속열차에 이르기까지 어떤 것에도 동력을 공급할 수 있다. 전기모터의 위대한 점은 이 과정을 역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터는 발전기가 된다. 전기차가 주행할 때는 배터리가 전선을 통해 동력을 모터에 주입해서 바퀴를 회전시킨다. 그러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전류가 끊기지만 자동차의 모멘텀이 바퀴를 계속 돌린다. 이때 모터도 계속 회전하기 때문에 전기가 발생하고, 이 전기가 다시 배터리에 저장되면서 자동차가 감속한다. 전기차는 브레이크를 잡을 때 에너지를 홀랑 날리는 대신 일부를 다시 잡아서 배터리를 재충전한다. 이를&nbsp; 회생 제동regenerative braking이라고 한다. 96)<br>9. 디지털이 세상을 바꾸다 - #디지털 #비트<br>휴대폰에서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모든 디지털 기기의 핵심은 (연속적으로 변하는) 아날로그 신호를 (0 또는 1로 표현하는) 디지털 신호로, 다시 반대로 변환하는 기술에 있다. 이 과정을 샘플링이라고 한다. 정보 뭉치를 작은 덩어리들로 나누고, 각각의 덩어리를 측정하고, 그 측정값을 숫자로 바꾸고, 그 숫자들을 모두 줄줄이 엮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방법으로 &lt;모나리자&gt;를 예컨대 1,000개의 행과 1,000개의 열로 또는 100만 개의 사각형으로 나누고, 각 사각형의 평균 색상과 밝기를 측정해서 (둘 다에 숫자를 부여한 후) 그 측정값들을 상하좌우로 차례대로 배열한다. 즉 한 장의 사진을 200만 개 숫자로 구성된 하나의 패턴으로 (또는 200만 개의 조각으로 구성된 하나의 숫자로)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미지를 컴퓨터에 저장하거나 휴대폰으로 보내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진다. 이렇게 아날로그 사진을 온-오프 이진법 숫자(비트)의 격자 패턴으로 만드는 포맷(저장방식)을 전문용어로 비트맵bit map이라고 한다. 104)<br>구식(아날로그) 카메라에는 렌즈와 셔터가 있다. 이것이 짧게 여닫히면서 밀폐된 카메라 내부로 빛이 들어와 은 기반 화학물질로 코팅된 플라스틱 필름이 빛에 ‘노출’된다. 빛은 이 물질을 미세한 은조각들로 바꾸고 조각들이 한데 뭉친다. 그래서 피사체의 밝은 부분은 필름에 어둡게, 어두운 부분은 밝게 맺힌다. 다시 말해 사진은 명암이 반전된 상태로 시작한다. 이 원본 필름을 우리는 ‘네거티브’라고 한다. 네거티브 필름을 인화하면 피사체의 명암이 다시 반전되고, 따라서 ‘포지티브’ 필름에는 피사체가 원래대로 나온다. 디지털카메라는 전하결합소자charge-coupled device, CCD라는 빛에 민감한 칩을 이용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플라스틱 필름이 빛에 노출돼 물체의 연속적 아날로그 표현을 만드는 것과 달리, CCD는 픽셀(pixel, 화소)이라 불리는 수백만 개의 감광 ‘칸’으로 나뉘어 있고 각 칸이 떨어지는 빛을 측정해서 숫자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아날로그 이미지를 디지털 사진으로 자동 변환한다. 104)]]></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210/52/cover150/k1127321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2105265</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저녁</category><title>교황의 역사 / 호르스트 푸어만 - [교황의 역사 - 베드로부터 베네딕토 16세까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065519</link><pubDate>Mon, 02 Feb 2026 07: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0655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450728&TPaperId=170655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59/78/coveroff/896445072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450728&TPaperId=170655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교황의 역사 - 베드로부터 베네딕토 16세까지</a><br/>호르스트 푸어만 지음, 차용구 옮김 / 길(도서출판) / 2013년 08월<br/></td></tr></table><br/>머리말<br>"교황이라는 칭호 자체는 정작 그 소유자의 위상에 대해서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지만, 그가 신의 대리자라는 주장을 정당화했다. 그 결과 12세기 이후로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ius Christi)로서 신과 인간 사이에 위치하는 존재로 여겨졌으며, 오늘날까지도 매년 발행되는 『교황청 연감』에도 '베네딕토 16세, 로마의 주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천명되어 있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1198~1216)는 '신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인간보다는 더 고귀한' 존재라는 말로써 교황의 위상을 자리매김했다. 또한 그리스도가 주신 하늘나라의 열쇠 덕택에 교황은 하늘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오늘날의 교황은 매고 푸는 권한의 소유자 혹은 베드로와 같은 천국의 문지기라기보다는 윤리와 신앙의 재판관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교리적으로는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대리 직분을 수행하고 하느님을 대리하는 통치자'이며, 이것이 교황 본연의 임무이다. 이는 불변의 원칙으로 남아 있다."(6-7)<br>제1부 교황권의 모습<br>"'거룩한 아버지' 혹은 '교황 성하'. 도대체 무슨 뜻인가? 교황 그레고리오 7세(1073~85)는 모든 교황은 공식적인 직무를 시작함과 동시에 개인적으로도 거룩해진다고 주장하면서, 교황직은 이 직책의 수행자를 더 선한 존재로 만들며, 교황 자신도 이를 인식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세속 왕권은 좋은 사람도 나쁘게 만든다. 중세의 교회법 학자들은 이러한 사고를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어떤 학자는 교황이 거룩함을 전달하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보았고, 또 다른 학자는 교황권은 사도 베드로의 공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즉 개인적으로 거룩함이 없거나 심지어 윤리적인 결점이 있더라도 베드로의 공덕이 이를 만회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천사교황(papa angelicus)이라는 말이 있듯이, 교황이 개인적으로 천사와 같은 거룩함을 지녀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은 늘 있어 왔다. 하지만 맡은 일에서 연유하는 거룩함과 살아온 삶 자체의 거룩함, 이 둘을 동시에 겸비하는 것은 사실 이상적인 목표였다."(33-5)<br>"교황과 관련된 의식은, 교황직의 거룩함이 임종과 더불어 종식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교황의 시신 앞에서 교황 궁무처장이 교황의 본명을 부르면서,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묻는다. 〈알비노, 아직도 잠을 자느냐?〉(Albino, dormisne?) 여기서 알비노는 1978년에 서거한 요한 바오로 1세의 세속 이름 알비노 루치아노를 말한다. 결국 교황에 대한 경의는 교황의 개인적인 업적이 아니라 교황직의 거룩함에 대해서 표해지는 것이기에, 공경에서 불경(不敬)으로의 태도 변화는 너무나도 즉각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그 결과 교황궁과 교황의 시신은 역사적으로도 약탈자들의 주요 표적이 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최근에 '망치 소리가 사라지면, 교황의 직무와 연관된 거룩함도 조용히 종식될 것'임을 지적한 바 있다." "이는 어떤 인간도 교황처럼 높이 공경받지는 않지만, 교황처럼 죽음과 더불어 깊이 추락하는 경우도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교황은 사라지지만, 교회는 존속한다."(39-41)<br>"교황권은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에 근거하고 있다. 신의 독생자는 벳새다 출신의 어부 시몬 베드로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언하고 인류의 영적 구원을 주관하는 로마 주교로 임명했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그를 말이다." "교부(教父) 키푸리아누스는 『마태오의 복음서』가 전하는 말이 단지 베드로에게만 전달된 것으로 보지 않고, '베드로를 통해서' 매고 푸는 권한이 모든 사도들에게 전달되었으며, 사도들은 이 권능을 주교들에게 다시 양도했다고 적고 있다. 즉, 구원의 확신은 단지 로마의 주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주교들에게 있었다. 결국 베드로는 '동등자 가운데 첫째'(Primus inter pares)에 불과한 사도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교단 지상주의' 이념은 교황의 수위권(首位權, Primat) 주장에 항상 장애물이 되어왔다. 그때마다 로마 교황권은 정교한 신학적 교리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옹호되어 왔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인정받아 온 교황의 수위권을 무기로 주교단 지상주의에 대응했다."(56-8)<br>"주교단 지상주의보다 한층 더 강하게, 또 다른 관점이 교황이 주장한 '완전한 최고 권력'에 맞섰다. 바로 공의회주의였다. 처음 1,000년 간 여덟 번의 세계 공의회가 개최되었다고 하는데, 특히 4세기와 5세기에 거행되었던 처음 네 번의 공의회는 초현실적인 권위를 누렸다. 개최 장소만 보더라도 대부분이 오늘날의 터키에 해당하는 옛 로마 제국의 동부 지역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에베소, 칼케돈에서 열렸다. 이는 그것이 처음에는 로마의 황제가, 후대에는 동로마의 황제가 소집한 국가적인 모임이라는 의미이며, 특히 교리 문제를 논의했으며 주교들로 구성된 공의회 참석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사도직에 근거해서 스스로의 책임 아래 회의에 임했다. 황제가 인준한 공의회 결정 사항은 제국 법령으로 공포되었다. 후대에 와서 결정 사항의 효력이 발생하는 데 교황의 관여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서기 1000년 이전에 개최된 모든 세계 공의회도 마치 '교황의 권위에 의해서 축성된 것'처럼 '포장'되었다."(61-2)<br>제2부 교황들의 역사<br>서기 1000년까지&nbsp;<br>"초기 교황 시대를 거친 후, 서기 800년 성탄절에 레오 3세(795~816)가 샤를마뉴의 황제 대관식을 거행함으로써 교황 이념의 정치적 외연을 더욱 확장했다. 그러나 샤를마뉴의 황제 대관식이 유럽의 미래에 지니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교회 운영에서 교황권의 미약한 위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로마가 권위 있는 역할을 수행하길 원했으나, 로마는 이를 실행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샤를마뉴는 전 제국에 통일된 전례를 원했고, 이를 위해 하드리아노 1세(772~95)에게 로마의 성사집(Sakramentar)을 요청했으나, 그가 받은 것은 낡은 책 한 권으로, 프랑크 제국 내에서만 이용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로마와 동일한 보조를 취하려고 했지만, 정작 계속해서 통일적인 지침을 내린 것은 프랑크족의 왕이었다. 결국 811년의 유언장에서 샤를마뉴는 로마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고 제국의 다른 대교구와 동일한 지위를 부여했다. 샤를마뉴를 제위에 올린 교황 레오 3세도 어쩔 수 없이 이를 감내해야만 했다."(123-4)<br>"니콜라오 1세(858~67)는 당대 교황 중에서 재임 기간 동안 독보적인 위상을 확립한 유일한 교황이었다. 그레고리오 대교황 이후 12세기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교황도 니콜라오처럼 수많은 판결을 통해서 교회법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 오토 카르텔리에리의 평가에 의하면, 물론 반세기의 시차가 있었지만 그는 '샤를마뉴의 진정한 대적자(對敵者)'였다. 그의 생각은 새로운 것은 아니었어도, 주장하는 바가 명확했고 이를 관철하려는 의지도 확고했다. 로마는 최고의 사법기관이며, 유죄 선고를 받은 자를 제외한 모든 피고인은 로마에 항소할 수 있으며, 교황이 결의 사항을 인준한 공의회만이 인정된다. 모든 속인은 죄인이며, 최고의 속인인 황제조차도 교황의 재치권에 복속해야만 한다. 이런 것들이 그가 주장한 바였다." "왕은 최고의 세속 군주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가장 미천한 신하와 마찬가지로, 죄인의 신분으로 교회재판소에 굴복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이 사례는 후세까지 계속해서 기억되었다."(124-7)<br># 중(中)프랑크 왕국의 왕 프리슬란트가 본처인 티트베르가와의 사이에서 후사가 없자 후처인 발트라다가 낳은 자식들을 적자로 인정하려고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니콜라오는 티트베르가만을 유일한 정부인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굽히지 않았고, 마침내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br>"교황 니콜라오 1세의 재임 기간에 급상승한 교황의 위상은 10세기와 11세기 초부터 하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가 예측할 수 없는 '잉태의' 시대였기에, 교황의 많은 권리들이 부지불식간에 확보되었고, 이는 수십 년 뒤에 법적 인준을 받게 된다. 991년의 시노드에서 '쓸모라고는 전혀 없는 괴물'로 불릴 정도로 인정받지 못했던 요한 12세는 962년 독일의 왕을 로마의 황제로 즉위시켰다. 이 전통은 이후 1,000년 동안 지속되었다. 또한 교황들은 주교구를 설립하고 이를 교황청 직속 교구로 만들었으며, 지역 교회에 예속되지 않고 교황청에 직속되는 면속(免屬) 수도원들도 생겨났다.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 시성(諡聖)에 대해서도 로마는 명확히 규정했고, 그 결과 993년에 있었던 아우크스부르크의 주교 울리히(923~73)의 시성식은 교황이 주재한 첫 번째 사례가 되었다. 이 모든 권리들이 한마디로 엉성하게 흩어져 있었으나, 이후의 교회법 제정과 더불어 로마의 재치권 속으로 들어온다."(127, 129)<br>교황, 세계 통치를 꿈꾸다<br>"독일 민족주의적 역사 서술에 따르면, 교황 그레고리오 7세(1073~85)는 종교를 단순히 권력 행사의 도구쯤으로 생각했던 '정치의 대가'(Meister der Politik)로 분류되곤 하지만 최근에는 '종교적 천재'(religiöser Genie)로 평가받기도 한다. 신학자 이븐 콩가르는 그레고리오의 신념을 이렇게 기술한다. 〈신에 복종하는 것은 교회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다시 교황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레고리오의 유명한 「교황령」 27개 항목에 그의 세계관이 가장 명확히 드러나 있을 것이다. 이 항목들은 모두 선언조의 문구로 구성되었는데,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로마 교황만이 합법적으로 보편적이라고 불릴 수 있다〉라는 항목이다." "특히 〈교황은 황제를 폐위할 수 있다〉라는 등의 항목과 관련해서, 가톨릭을 신봉했던 절대군주들조차도 그레고리오의 이러한 숭배 의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후대의 마리아 테레지아는 그레고리의 이름을 성무 일과서에서 삭제하도록 명령하기도 했다."(139-40)<br># 1077년 하인리히 4세와 카노사의 굴욕을 연출한 당사자<br>"그레고리오 7세는 교황제 교회(Papstkirche)로 나아가는 길을 다져놓았다. 그 결과 교황이 구원의 조건과 교회에서 옳은 것을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 지배권을 추구하려면 교황에게는 후원자와 조직이 필요했으나, 그레고리오 7세와 같은 혁명가는 그만한 위치에 있지도 못했고 그럴 의향도 없었다. 당시로서는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서서히 구축하기보다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임기응변에 능한 전략가가 필요했다. 개혁적 성향의 교황권은 그레고리오의 두 대 후임 교황인 우르바노스 2세(1088~99)와 더불어 시작된다. 프랑스 귀족 출신인 그는 신앙을 수호하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던 클뤼니 대수도원 공동체의 원장이었다." "우르바노 2세는 어떤 교황보다도 아우구스티노참사수도회(Augustinerchorherren)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왜냐하면 그는 현실적으로 교회 정책을 전개하기 위해서 참사회원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조율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제 1차 십자군 원정의 선언(1095)이었다."(147-9)<br>"우르바노의 행정 조직은 안정적이었다. 임기 시작 직후인 1089년에 교황의 궁정 국가를 의미하는 '로마 교황청'(römischer Kurie)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동시에 문서성(文書省)의 업무가 자리를 잡았고, 재정 담당 부서도 설치되었다. 그러나 재무 및 수납 제도의 정착과 더불어 관료화, 뇌물 수수, 강탈과 같은 문제들도 대두되었다." "교황이 제정한 법령은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고, '산더미 같은' 교황 교령과 서한에 대해서 비난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것을 통계로 표현하면, 교황 알렉산데르 3세(1159~81)의 재임 기간인 22년 동안 작성된 문서가 1200년까지 작성된 서한과 문서의 5분의 1에 달한다. 12세기에만 약 1,000개 정도의 교령이 제정되었는데, 이는 이전의 1,000년 동안 제정된 전체 교령의 수와 비슷하다. 아마도 법률을 공부한 전문가만이 상황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12세기 중반 이후 대부분의 교황들이 이러한 조건을 갖추었고, 최근까지도 그러했다."(150-1)<br>"인노첸시오 3세(1198~1216)는 초창기의 법률적 지식에 정통했던 '세계 통치를 꿈꾸던 교황'(Herrschaftspapst)의 전형적인 유형이었다." "인노첸시오는 베드로의 대리자(Vicarius Beati Petri)라는 칭호 대신에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ius Christi)라는 칭호를 사용한 교황이었다. 그에게 베드로는 자신의 '직무상의 동료'(Amtskollege)였으며, 두 사람 모두 신의 대리권을 행사한다. 최후 심판의 날에 결산을 하는 사람은 세계 심판자가 아닌 바로 교황이다." "그는 또한 법률 정비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지난 수십 년간 공포된 수많은 교령(敎令)들이 무질서의 극치에 달했던 상황에서, 인노첸시오는 법적으로 중요한 교령을 모은 교령집을 간행하고 이를 공식 책자로 배포했다. 교황청은 철저하게 경영 원리에 근거해 조직되어 갔다. 교회 사업과 수납 제도가 정립되면서, 일을 처리하는 대가로 '선물'을 요구하는 등의 행위는 금지되었다. 그러나 '자발적인' 선물은 용인되기도 했다."(151, 154-5)<br>"1198년 이후 독일은 슈타우펜 가문과 벨프 가문에서 배출한 두 명의 왕이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어느 왕이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누가 결정할 수 있을까? 교황이 심판관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그는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교령들을 반포한다. 논지는 다음과 같다. 교황이 독일의 왕을 황제로 등극시키고, 황제권이 본질적으로 독일 왕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교황은 독일의 왕 선출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선택한 후보자가 그로부터 '사도적 축복'(die apostolische Gunst)을 받는다. 선출 자체는 나중에 선제후(選帝侯, Kurfürsten)로 발전하는 '주요 선거인단'에 의해서 결정된다. 라인 강변에 위치한 마인츠, 쾰른, 트리어의 대주교가 선거인단 중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인노첸시오 3세는 두 가문 사이에서 심판관 역할을 수행했고, 마침내 제3자였던 풀리아(Apulia) 지역 태생의 소년인 프리드리히 2세를 권좌에 올려놓았다."(157-60)<br># 1356년 카를 4세는 「금인칙서」(Goldene Bulle)를 반포하여 선제후들이 선출한 인물만이 독일 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등극할 수 있게 하였다.<br>"가문의 조상들 중에서 배출된 교황의 이름을 따서 스스로를 보니파시오라 칭했던 새 교황에게는 교황권과 자기 가문의 물질적 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시급했다. 보니파시오 8세(1294~1303)는 이 두 가지를 별개의 것으로 파악하지 않았다. 후대에 이른바 경험법칙(Faustregel)으로 불렸던 것이 당시에 이미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로마와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은 부유해지려면 교황을 배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메디치, 바르베리니, 델라 로베레, 카라파, 보르게제 가문 등이 모두 그러했다. 물론 이 규칙이 늘 작동하지는 않았지만, 인노첸시오 3세가 대표적이었고, 보니파시오 8세는 이를 더 확실하게 입증했다." "이 교황은 1300년에 성년을 선포하고 특별 성년대사(聖年大赦)를 반포하면서, 매고 푸는 권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보니파시오는 구약성서에 근거해서 성년을 100년 주기로 받아들였으나, 이후 성년의 주기는 50년에서 30년, 마지막으로는 25년으로 줄어들었다."(172-3)<br>"약간의 전초전이 있은 뒤에 1296년부터 로마 교황권과 프랑스 왕권의 관계는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양상을 보였다. 프랑스의 왕 필리프 4세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전쟁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 프랑스 교회에도 세금을 부과하고, 십일조까지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보니파시오는 교령을 통해서 이 과세의 시행을 금지토록 했으나, 필리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중세에 아마도 가장 유명했을 교령은 격렬한 성명전(聲明戰) 속에서 등장한다. 교령 「거룩한 하나의 교회」(Unam sanctam)가 여기서 등장하는데, 이는 교황의 보편적 지배권을 가장 포괄적으로 다룬 이론적 글로,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신앙의 힘에 의해서 우리는 거룩한 하나의 교회만이 있으며, 이는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임을 고백하고 믿는다.〉 하지만 이 문서의 절정은 다음의 문장이다. 〈이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설명하고, 말하고, 확신하고, 천명한다. 모든 사람은 구원을 받으려면 로마 교황에게 복종해야 한다.〉"(175-7)<br>"1303년 9월 7일, 보니파시오 8세를 겨냥한 아나니 암살 계획은 교황권의 역사에서 분기점이 되었다. 이제 교황은 프랑스에 종속적인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아비뇽으로 거처를 옮겼다(1309년). 로마 교회와 보편 교회를 동시에 상징하는 교황이 반드시 로마에 자신의 거처를 두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교황은 프랑스 같은 다른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거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이전에도 교황들이 로마에서 자주 출타했기 때문에, 교황과 교황청이 있는 곳이 바로 로마라는 인식이 싹터 있었다. 수사에서 태어난 위대한 법학자 헨리쿠스(1271년 사망)─일명 호스티엔시스─는 '교황이 있는 곳이 로마'(Ubi papa, ibi Roma)라는 격언을 만들어내었다. 교황권을 아비뇽에 영구 정착시키려는 구상이 진행되자, 로마법과 교회법에 통달한 발두스 데 우발디스(1400년 사망)는 '교황이 있는 곳이 바로 로마, 예루살렘, 시온이며, 모든 사람의 고향'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180)<br>종교개혁, 가톨릭 개혁, 적응 시기의 교황들<br>"교황 보니파시오 8세가 증오해 마지않았던 콜론나 가문의 마르티노 5세가 공의회 교황(Konzilspapst)으로 선출되면서 서유럽 교회의 분열은 종식된다. 그 뒤로는 보르자 가문의 교황 알렉산데르 6세(1492~1503, 체사레 보르자의 아버지)와 같은 특이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스페인 사람인 그는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 예술을 장려하는 데 많은 공헌을 했지만, 그의 부도덕성 역시 이에 못지않게 잘 알려져 있다." "알렉산데르 6세가 사망하던 해에 그와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율리오 2세(1503~13)가 뒤를 이었다. 보르자 일가의 박해를 받던 델라 로베레 집안 사람인 그는 흔히 콘스탄티누스의 옛 교회를 허물고 새로운 피에트로 성당의 공사를 시작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그는 라파엘로, 브라만테, 미켈란젤로와 같은 예술가들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율리오의 뒤를 이은 레오 10세(1513~21)는 흔히 루터 교황(Lutherpapst)으로 알려진 메디치 가문의 사람이었다."(187-8)<br>"로마로부터의 이탈을 방지하고, 가톨릭 교회에 각성의 종소리를 울리며, 개신교의 종교개혁을 가톨릭적 개혁으로 맞서려는 시도가 다음 세대 교황들의 몫이 되었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 성 비오 5세(1566~72)는 신중하면서도 열정적으로 트렌토(트리엔트) 공의회(1545~63)의 개혁안들을 실행에 옮겼다(그 결과로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도미니코 수도회 출신으로 철저한 금욕주의자이자 절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은 종교재판관이었던 그에게 신분과 교양이 높았던 인물들은 표적이 되었다. 그는 1517년에 「금서 목록」을 제정했고, 그 결과 수백 명의 인쇄업자들이 독일과 스위스로 도망을 가야만 했다. 세속 문제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국가에게도 복종을 강요하면서, '스스로 여왕임을 자처하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를 파문하고 폐위시켰다. 하지만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던 교회의 이러한 조치는 교황이 통치자나 국가원수에게 내린 처벌의 마지막 사례가 되고 말았다."(192-4)<br>"당시의 교황들 중에서 크게 부각되는 또 한명의 인물은 정열적인 식스토 5세(1585~90)였다." "식스토 5세와 같은 교황이 기념비 건축에 몰두했다는 사실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식스토의 업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9만 명의 거주자들 가운데 5만 명이 살해당한 1527년의 악명 높은 '로마의 약탈'과 여러 차례 창궐한 페스트 뒤, 로마의 인구는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물 부족 현상이 발생했고, 식스토는 50킬로미터의 거리를 잇는 거대한 수로를 건설해 물을 끌어들였다." "라테라노 궁전은 토대부터 새롭게 건축되었고, 과거 판테온의 위용을 능가하는 피에트로 대성당의 거대한 돔이 마무리되었다." "이집트에서 온 오벨리스크를 네로의 정원에서 피에트로 대성당의 광장으로 옮기는 작업 역시 대단한 사건이었다." "사람들이 보기에 불과 5년 사이에 그가 보여준 엄청난 열정과 성공은 초인간적인 힘과 결탁해야만 가능했다. 그는 교황의 모습을 한 파우스트 박사였던 것이다."(192, 204-7)<br>"식스토 5세는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후계자들 중 어느 누구도 그를 모델로 삼고자 하지 않았다." "식스토 5세 이후, 교황권은 유럽 열강들의 세력 다툼 속에 휘말려 들어갔고, 로마는 가톨릭을 신봉하는 절대군주 국가들, 특히 프랑스와 더욱더 갈등을 빚었다. 절대군주들이 자신들의 지배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종교적 우위권을 거부하기 시작하면서, 콘클라베에서도 다른 국가를 가장 덜 자극하는 후보를 선출하곤 했다. 추기경들은 '이 시기에 독실하면서도 경력이 화려하지 않은 사람들을'(슈바이거) 교황으로 추대했다. 비록 비굴한 인물들이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내적인 불화가 외적으로는 정치적인 압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세속화의 가속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리스도교의 계시와 전통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이성종교'(Vernunftreligion)인 계몽주의의 충격도 교황권에 불어닥쳤다. 볼테르(1694~1778)는 교황권이 구시대의 유산이라며 독설을 퍼부었다."(208, 212)<br>"교황권도 시대정신을 따르려 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는 예수회를 해산시켰다는 사실이다.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1556년 사망)가 16세기에 설립한 교단인 예수회는 특히 '교황에 대한 복종'(Papstgehorsam)을 서약했고, '교황에 대한 복종'이 '교단에 대한 복종'보다 우선시될 정도였다. 제후들의 궁정 고해 신부이자 조언자로서, 학교와 대학의 교사로서, 종교 문화의 전달자로서 예수회 회원들은 가톨릭 신앙과 로마에 대한 복종심을 헌신적으로 설파했다. 1760년 이래로 이 교단은 스페인에서부터 시작해 점차 절대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상습적인 질서 파괴자로 인식되고,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프란치스코 교단의 수도사 출신으로 당시 교황이었던 클레멘스 14세(1769~74)는 세속 권력에 위축된 나머지 예수회의 해산 작업을 서둘러야 했다. 마침내 1773년 7월 21일에 교황의 소칙서(breve)가 반포되면서, 예수회는 해산되었다. 이후에는 어느 교황도 클레멘스라는 교황명을 사용하지 않았다."(216-8)<br>"'필요성'(Nutzen), 이것은 계몽 절대주의에서 교황권을 포함한 종교 단체들에 대한 평가 기준이었다. 합리적인 국가 철학을 추종했던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 요제프 2세는 교회 재산의 국유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 과정은 절망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고, 교황 비오 6세(1775~99)가 요제프 2세에게 교회 관련 법령들을 철회해 달라고 설득하기 위해 1782년 빈을 방문했을 때는 카노사의 역전극이 벌어졌다. 요란한 환영을 받기는 했으나, 정작 비오 6세가 얻은 것은 없었다." "교황 비오 7세(1800~23)는 나폴레옹과 정교 조약을 체결(1801)해 유럽에 화해 분위기를 조성했다. 하지만 프랑스 교회에 대한 나폴레옹의 통제가 강화되고, 무력적인 유럽 팽창 정책이 가속화되자 교황과의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다. 결국 나폴레옹이 로마와 교황령을 점령하려고 들자, 비오 7세는 파문으로 맞섰다(1809). 이후 납치 감금된 비오 7세는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쫓겨나고서야 로마로 귀환할 수 있었다."(218-21)<br>바티칸의 시대 혹은 교황령의 종말과 새로운 교리<br>"새로운 교황 비오 9세(1846~78)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은 컸다. 사람들은 그의 사교성에 매료되어 갔다. '천사'(È un’ angelo)로 불렸던 그는 노쇠하고 병약했던 전임자와는 달리 일주일에 한 번씩 일반 알현을 했고, 정치적 박해자들에 대한 사찰을 중단시키고, 사면을 발표하기도 했다. 교황은 자유주의자로 인식되었고, 통일 자유 이탈리아의 건설을 원했던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기대가 날로 커지면서 그것은 교황에게 압박이 되었다. 언론 자유, 세속인의 관료 등용, 성직자 출신의 장관 임용 금지, 시민군의 무장, 이탈리아 동맹의 가입 등등의 문제가 그러했다. 오스트리아가 점령한 롬바르드 지역에서 1848년 3월에 혁명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교황 군대가 점령군에 대항하는 전쟁에 참여하기를 기대했다. 1850년 로마로 돌아온 그는 모든 자유주의적 이념을 배척하고,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모든 제도에 거부감을 표시했다. 그는 이제 반동(反動)의 상징이 되었다."(225, 229)<br>"'위-이시도르'는 이시도르 메르카토르라는 저자가 9세기에 편찬한 교령집을 뜻하는데, 여기에는 고대와 초대 교회 교황들의 위조된 교황 서한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날조된 일련의 조문들은 교황의 수위권과 관련된 것들로, 바티칸 공의회는 1870년 7월에 교황의 보편적 사교직과 무류성을 교의로 결정했다." "보편적 사교직은 교황이 모든 교회에 대해 직접적이고 정상적인 권력을 소유함을 의미한다. 무류성은 교황이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성령의 도움을 받아 신앙과 도덕의 문제에 있어서 오류가 없는 교리적 결정을 내린다는 뜻이다. 즉, 교황의 교리 결정은 〈교회의 동의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영원불멸하다.〉" "교황의 보편적 사교직과 무류성의 교리들은 교회 구조의 토대를 다지는 과정의 종착점이었다. 마지막에 병적으로 권력 지향적인 인물(비오 9세)의 등장이 화룡점정이었지만, 전통적인 교회관에서 볼 때 교황의 보편적 사교직과 무류성 교리는 지속적으로 담금질되어 온 것이었다."(236-9)<br>새로운 힘의 충전<br>"교황령이 소멸된 1870년 이래로 교황들의 활동 반경은 제한적이었다. 이들은 바티칸, 라테라노, 카스텔간돌포만을 왕래했고, 대면하기에 너무 어려운 존재처럼 여겨졌다. 그렇지만 요한 23세(1958~63)는 공장 노동자, 복지시설 거주자, 교도소 재소자 등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과 사귀고 대화하기를 좋아했고, 대부분의 경우 걸어서 이들을 찾아갔기 때문에 '조니 워커'(Johnnie Walker)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요한은 1959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구상하면서 〈우리는 어떠한 역사적인 재판도 진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밝히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함께 모여서 분열을 종식시키려 합니다〉라고 했다. 문호를 다른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도 개방했다. 이들은 더 이상 교회 밖에 있는 개별적인 그리스도교 신자, 이단, 분파주의자로 분류되지 않았고,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신자들로 간주되었다. 요한 23세는 타 종파의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기도를 함께했던 첫 교황이기도 하다."(259-61)<br>"알비노 루치아니, 일명 '33일의 교황'(1978년 8월 26일~9월 28일)은 처음으로 요한 바오로 1세라는 두 개의 교황명을 택함으로써, 다가올 미래를 암시했다. 비록 교황명 선택의 이유를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로부터 각각 주교와 추기경으로 임명받았기 때문이라는 개인적인 고마움으로 돌리고 있지만, 직무 수행에 대한 그의 의도를 쉽게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요한 23세의 개방성과 자유로움, 바오로 6세의 교리적 엄격함이 바로 그것이었다. 정신적 유연함은 노회함과 더불어 '미소의' 교황이라 불렸던 그의 개성이었다. 하지만 그의 급작스러운 사망은 교황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을 소문들을 만들어내었다. 크라쿠프(Krakau)의 대주교였던 카롤 보이티아가 교황으로 선출된 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비오라는 교황명을 쓴 세 교황들이 토대를 마련해 놓은 덕이 컸다. 하드리아노 6세(1522~23)를 예외로 한다면,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는 1378년 이래로 이탈리아 사람이 아닌 첫 번째 교황이었다."(266-7)<br>"교황 재임 초기에 폴란드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는 성스러운 아버지께서는 폴란드에서 진행된 모든 연설문을 무릎을 꿇고서 작성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대변혁 이후 오늘날에는 그의 열정이 과했다고 받아들여진다. 그는 자신의 크라쿠프 주교좌 성당의 수호성인인 스타니스와프의 이름을 교황명으로 택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눈에는, 폴란드인들이 그리스도교, 국가, 문화 사이의 행복한 융화에 대한 모범이 되어야만 했다. 폴란드는 물질주의와 서구 사회가 직면한 '욕망과 향락 문화'에 대항하는 '선봉'에 서야 했다. 그러나 폴란드에서 제작된 렌즈는 로마라는 눈에 씌우기에는 너무 강했던 것 같다. 라디오 바티칸은 폴란드 내부의 정치적 변동에 대해서 날카로운 논조의 사설을 방송했고, 동시에 평화, 빈곤, 신앙과 같은 유럽과 세계의 문제에 대해서도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낙태를 살인으로 규정하고, 피임약을 거부하며, 성직자 독신제를 옹호하는 데서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272-3)<br>불확실한 미래]]></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59/78/cover150/896445072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597833</link></image></item><item><author>nana35</author><category>저녁</category><title>비잔티움의 역사 /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 [비잔티움의 역사 - 천년의 제국, 동서양이 충돌하는 문명의 용광로에 세운 그리스도교 세계의 정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046522</link><pubDate>Mon, 26 Jan 2026 07: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2108153/170465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831424&TPaperId=170465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056/82/coveroff/k9928314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831424&TPaperId=170465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잔티움의 역사 - 천년의 제국, 동서양이 충돌하는 문명의 용광로에 세운 그리스도교 세계의 정점</a><br/>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지음, 최하늘 옮김 / 더숲 / 2023년 02월<br/></td></tr></table><br/>들어가며 ‘비잔티움’이란 무엇인가?&nbsp;<br>"이름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여기에서는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이 문제이다. 비잔티움(그리스어로는 비잔티온)은 아테네 인근 도시 국가 메가라의 식민지였던 고대 도시를 가리킨다. 비잔티움은 기원전 7세기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뜻이다) 즉 지금의 이스탄불에 세워졌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나라의 이름인 '비잔티움'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6세기의 일이다. 따라서 그 도시에 살았던 사람 중에서 비잔티움이라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은 극소수였을 것이고,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더욱 적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프랑스를 '파리 국가', 대영 제국을 '런던 제국'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우리가 비잔티움이라고 부르는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로마인으로 여겼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아우구스투스의 고대 로마 제국과 그들의 제국 사이에는 어떤 정치적 단절도 없었다. 그것은 사실이다. 이를테면 이 제국의 통치자들은 스스로 고대 로마 제국의 대를 이은 황제로 자처했다."(30-1)<br>"동방의 이웃이자 적이던 셀주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 역시 이 제국과 지역을 룸(Rūm, 로마)이라고 불렀다. 현대 그리스, 최소한 20세기 말까지 로미오스Rhōmios라는 정체성이 살아 있었다. 하지만 발칸 반도와 많은 국가들은 이 제국을 그리스라고 불렀다. 그들의 입장에소 보면 이해할 만하다. 800년 프랑크의 왕 카롤루스 마그누스(샤를마뉴로 알려져 있다)가 교황에 의해 '로마인의 황제'로 대관식을 치르자, 다른 제국들을 더 이상 로마라 부를 수 없었기에 그리스 또는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을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부르는 것은 퍽 노골적이었다. 이는 제국의 권위와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을 잠재적으로 그 수도로 한정하고 '로마 제국'이라는 표현에 담긴 보편성을 부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는 훨씬 문제가 많다. 동방에서 그리스어가 지배적인 언어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부정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스는 언젠가부터 이교도를 의미했기 때문이다."(31-2)<br>"비잔티움이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데에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으나, 서기 300년 이후에는 '로마'라는 말을 쓰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 차이를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 형용사가 도입되었다. 예를 들어 동로마 제국이라는 이름은 동지중해 세계와 레반트에 중점을 둔 명칭으로, 자연히 이탈리아에서 비잔티움 제국이 오랜 기간 보여 준 존재감을 지워 버린다. 최근에는 '로마 정교회'라는 용어가 등장했는데, 이는 그리스도교 교리에 중점을 둔 인상을 준다. 이 용어는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올바른 믿음을 의미하는 '정교'는 모든 그리스도교 교회가 주장하는 속성이었다. 정교가 동유럽과 중동 일부 지역에서 그리스도교인을 가리키는 용법으로 사용된 것은 현대에 이르러서이므로 중세 시대에 적용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비잔티움이라는 관례적인 용어를 사용하지만, 독자는 이 용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32-3)<br>제1장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이 탄생하다(330~491년)&nbsp;<br>"그리스도론 논쟁은 박해가 끝난 순간부터 그리스도교 교회의 주된 문제였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음에도 아리우스파는 콘스탄티우스 2세와 발렌스의 지원 아래 복권되었다. 수많은 그리스도교 성직자가 니케아 정교를 따른다는 이유로 유배당했다. 이 사태의 또 다른 부작용은 아리우스파 주교 울필라스가 고트인에게 선교한 일이다. 울필라스가 《성경》을 고트어로 번역한 일은 엄청난 결과를 낳았는데, 게르만계 종족 대부분이 울필라스를 따라 아리우스파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것이다. 테오도시우스 1세는 열정적인 그리스도교이자 정통 교회를 지원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신학자 나지안조스(지금의 튀르키예 네니지)의 그레고리우스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 선택하여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개최하고 아리우스의 주장이 이단이라고 다시 한번 선언했다.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는 아리우스 분쟁을 멈추기는커녕 문제를 키웠다."(67-8)<br>"431년 에페수스 공의회에서 성모 마리아의 지위는 '하느님의 어머니'로, 네스토리우스는 이단으로 선언되었다. 449년 에페수스에서 다시 한번 공의회가 개최되었으나, 이번에는 안티오키아학파의 세력이 압도적이었다. 제2차 에페수스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독립적인 두 본성을 강조하는 알렉산드리아학파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는 제2차 에페수스 공의회를 부정하여 그리스도는 성부의 신성과 성자의 인성을 지니고 있다고 선언했다. 칼케돈 신경은 실질적으로 알렉산드리아학파의 단성론보다는 안티오키아학파의 양성론에 가까웠다. 그 결과 각 교회 사이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여기서 단성론파Monophysites라는 말은 '단일'을 뜻하는 그리스어 모노스Monos와 '본성'을 뜻하는 피시스Physis의 합성어로, '그리스도는 단 하나의 본성만을 지닌다'는 뜻으로 해석되기에는 문제가 있다. 그 때문에 최근의 학자들은 합성론파Miaphysites라는 표현을 더 선호한다."(69-70)<br># 양성론은 하나의 위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공존한다는 입장[그러나 분리할 수는 없다]이고, 합성론은 신성과 인성이 하나로 융합되어 있다는 입장이다.<br>"이집트의 콥트 교회, 시리아 그리스도교 교파 대부분 그리고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가 이 해석을 지지한다. 오늘날까지 네스토리우스파와 합성론파는 그리스 정교회나 슬라브 정교회, 로마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교회들과 달리 칼케돈 신경을 인정하지 않는다. 칼케돈 공의회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관련된 모든 원칙을 결정하기 위해 기획되어 5대 총대주교 관구(Pentarchy, 로마·콘스탄티노폴리스·알렉산드리아·안티오카아의 4대 총대주교 관구에 예루살렘 추가)를 규정했지만, 결국 보편 교회가 영구히 분열하기 전의 마지막 공의회로 남은 것은 퍽 역설적인 이야기다." "제노는 칼케돈 공의회로 인한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482년 〈통합령Enōtikon〉을 발행했다. 하지만 동방의 교회들은 제노의 명령에 반감을 가졌고, 로마 교회는 5대 총대주교 관구의 수장으로서 지니는 수위권과 자신들의 가르침이 도전받았다고 여기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이교로 선언했다. 이 조치는 518년까지 지속되었다."(70-3)<br>"콘스탄티누스 시대에는 황제가 다른 어떤 지위보다 고귀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도에게 신은 오직 단 하나이므로 오래된 황제의 신적 지위는 축소되었다. 또한 궁정 의례는 지상에 존재하는 신의 대리인인 황제와 신민 사이를 가르는 장벽으로 작용했다." "이 시기 엘리트층을 구성하는 새로운 요소는 주교들이었다. 콘스탄티누스 재위 초기부터 이들은 단순한 영적인 지도자를 넘어 교회의 다양한 자산을 운용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 대다수는 지주 계층 출신이었는데, 교회에서의 경력은 궁정 관직의 대안으로 여겨졌음이 분명하다. 황실과 개인들의 기부금 덕분에 교회는 제국의 최대 지주 가운데 하나로 발돋움했다. 5세기에 이들은 차츰 칼케돈 신경을 지지하고 지키고자 하는 입장으로 모여들었다. 이는 단순히 신학의 문제가 아니었다. 합성론파 지역에서 성직자들은 사회적·경제적으로 하위층을 박해하고 과도한 세금을 지우는 국가에 대항하는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74-5)<br>"그리스도교와 제국의 결합은 어느 곳보다 제국의 수도에서 또렷하게 드러났다. 일곱 개 언덕까지 차용할 만큼 로마를 모범으로 삼은 콘스탄티노폴리스는 곧 '제2의 로마' 또는 '새로운 로마'로 불리게 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종교적 지위는 차츰 성장했다. 교회 사이의 위계도 그러했지만, 주요한 성지에 보관된 성물들이 옮겨진 것이 중대하게 작용했다. 425년 국가가 제공하는 고등 교육을 위한 학교를 세워 문법, 수사학, 철학 그리고 법학을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교육했다. 429~438년에 걸쳐 실시한 콘스탄티누스 1세부터 테오도시우스 2세까지 재위 시기에 발행된 모든 법령을 수집하는 작업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이 작업을 감당할 자원이 충분했음을 의미한다. 5세기에 이르러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명실상부한 제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황제들은 이 도시를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기반 시설과 건축물은 의례와 함께 사람들이 천상의 질서가 지상에 강림한 것으로 느끼게 만들었다."(83-4, 88-9)<br>제2장 지중해의 주인이 되다(491~602년)&nbsp;<br>"아나스타시우스의 대외 정책은 동맹 관계를 통해 비잔티움 제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로고트의 테오도리크는 493년 오도아케르를 살해한 후 왕으로서 이탈리아를 지배했다." "테오도리크는 서방 황제의 지위에 오르지 않는 대신 서방의 주요한 패권국들(프랑크 왕국·비시고트 왕국·반달 왕국)과 결혼 동맹을 맺고, 로마의 옛 원로원 귀족들과 협상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비잔티움 제국은 이에 대응하여 칼케돈 신경을 따르는 프랑크 왕국(이 시점에서 알프스 이북의 최대 세력이었다)과 외교적 친선을 추구함으로써 아리우스파를 따르는 고트인과의 사이에 적대감을 부추겼다. 아프리카 수복이 당장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반달과의 관계를 정상화했다." "또한 502~506년 페르시아와의 전쟁 과정에서 아나스타시우스는 아랍계 부락 연맹인 킨다 및 가산과 동맹을 맺었다. 그들은 페르시아 방면의 국경을 지키고 비잔티움 제국과 함께 싸운 대가로 특권을 누렸다."(92-3)<br>"유스티누스는 아나스타시우스의 대외 정책을 이어 갔다. 그는 서방에서는 아리우스파인 오스트로고트를 고립시키고, 동방에서는 페르시아 방면의 방어를 강화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영향력은 새로운 동맹을 통해 확대되었다. 제국은 캅카스 지방에서 라지카(조지아어로는 에그리시)와 이베리아의 충성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을 거두어 통치자들을 복속시켰다. 한편 남쪽에서는 그리스도교 악숨 왕국(지금의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이 유대화된 유일신교를 추종하며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힘야르 왕국(예멘에 있었다)에 대항해 일으킨 전쟁을 지원했다. 유스티누스 1세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재위 시기는 조카이자 후계자인 유스티니아누스 1세(재위 527~565년)에 완전히 가려진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재위는 527년에 시작되었으나, 학자들은 유스티누스 1세에 재위 기간부터 '유스티니아누스 시대'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유스티니아누스 시대에 작성된 사료가 꽤 많고 다양하다는 점이 작용한다."(94-5)<br>"(황실 강화를 두고 대립하던) 유스티니아누스와 원로원이 의견의 일치를 본 것도 있었는데, 정교회에 대한 태도가 그중 하나이다. 칼케돈 이후 보편 교회를 회복하고자 한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황제와 원로원 모두가 때로는 논쟁을 통해, 때로는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을 강요하려 들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정체성과 직결되었음을 보여 준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과 원로원 엘리트는 칼케돈 신경을 수용했음이 틀림없다. 유스티니아누스와 같은 황제들은 이 흐름에 동조했으므로 그의 정책을 거부할 수 없었다. 아나스타시우스 1세는 원로원 엘리트층의 기득권을 지지하는 듯 보였으나 분명 이단이었다. 여기저기 간섭하기 좋아하던 유스티니아누스가 죽은 뒤 그의 후계자들은 원로원 귀족들과 대립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자 통치 엘리트와 제국의 관리 모두가 정교회를 수호하는 데 집중한 것은 비잔티움 이념의 중요한 특성이 되었다."(111-2)<br>"아나스타시우스 1세는 사실 종교 정책 덕분에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제노의 〈통합령〉을 지지하고 합성론파에 유화 정책을 취했다." "유스티누스 1세는 아나스타시우스 1세의 종교 정책을 부정하고 로마 교회와의 화해를 시도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합성론파에게는 놀라우리만큼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여기에는 아마 합성론자가 너무 많아서 절멸시킬 수 없으리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료는 그의 아내 테오도라가 합성론파 지지자였음을 전해 주고 있으며, 그녀는 공개적으로 합성론파를 보호하고 후원했다. 프로코피우스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부부가 의도적으로 입장을 달리했따고 지적했다. 황제 자신은 칼케돈 신경의 수호자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한편으로는 황후를 통해 간접적으로 동부 지역의 인구를 소외시키지 않음으로써 말 그대로 황제 부부가 '나누어서 지배했다'는 것이다. 합성론파에 대한 황실의 지지 또는 관용으로 인해 합성론파에 대한 위협은 더욱 커졌다."(115-7)<br>제3장 생존을 걸고 투쟁하다(602~717년)<br>"포카스의 짧은 집권(602~610)은 재앙으로 끝났다. 동쪽에서 페르시아의 엘리트층에 자신의 힘을 과시할 필요가 있는 후스라우는 마우리키우스[포카스 전임 황제(582~602)]에게 복수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은 이후 20년간 지속되었다. 처음 몇 년 동안 페르시아 군대는 테오도시오폴리스와 다라, 아미다, 에데사를 잇달아 점령했다. 이 지역들의 상실은 재정 위기와 위신 상실을 의미했다." "특히 페르시아인들이 예루살렘을 함락(614년)한 직후 주민을 학살하고 성십자가를 수도 티스푼으로 가져가 버린 일은 칼케돈파 그리스도교도를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 615년에는 페르시아 군대가 콘스탄티노폴리스 건너편 해안까지 약탈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듬해에는 팔레스타인 지역 전체가 페르시아 손아귀에 들어가면서 이집트로 가는 길이 열렸고, 619년에는 이집트마저 넘어갔다. 이집트의 상실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빵을 더 이상 무료로 배급할 수 없다는 사실을 뜻했다."(125-8)<br>"외교와 전쟁 양면에 기울인 이라클리오스(601~614)의 노력은 성과를 내서 원정이 시작된지 6년이 지난 628년 페르시아 측은 591년 마우리키우스와의 협상에서 결정된 영토 분할안에 따라 평화 조약을 수용했다. 630년 이라클리오스가 성십자가를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져오면서 20년에 걸친 대전쟁은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곧 승리를 환상이었음이 드러났다. 같은 해에 무함마드가 이끄는 종교 집단이 그의 고향이자 622년 무함마드를 추방한 메카를 점령했다."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은 634년부터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공격했다. 비잔티움 제국은 시리아에서 저항했지만 636년 야르무크 전투에서 크게 패하면서 물러났으며, 638년 예루살렘이 아랍인 손에 떨어졌다." "아랍인들로 인해 국가로서의 페르시아는 16세기까지 출현하지 못했으며, 비잔티움 제국은 살아 남았으나 영토의 3분의 2를 상실했다. 게다가 빼앗긴 영토에는 제국 전체를 통틀어 가장 부유하고 생산력이 높은 지역들이 포함되어 있었다."(130-2)<br>"640년대부터 650년대 중반까지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아랍인의 공세는 멈출 줄을 몰랐다. 아랍인들은 소아시아 지역을 공격하고 비록 더디게나마 북아프리카로 확장해 나갔다. 그러나 비잔티움 제국의 입장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랍인들이 함대를 편성해 로도스와 코스, 키프로스, 크레타 등을 공격하면서 우세하던 해상 장악력마저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655년 리키아 해안(지금의 튀르키예 안탈리아·무글라)에서 벌어진, 소위 '돛대 해전'이라 부르는 싸움에서 황제가 직접 지휘하는 비잔티움 함대는 아랍 함대에게 대패했다. 그러나 비잔티움 제국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이 직후인 656~661년 아랍 제국에서 칼리프 직위를 두고 최초의 이슬람 내전(피트나)이 발생하는 바람에 유예 기간을 얻었다. 선지자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 칼리프 알리가 살해당하자 무아위야 1세의 칼리프 즉위를 방해하는 존재는 남지 않았다. 무아위야는 다마스쿠스로 수도를 옮겨 우마이야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다."(133-4)<br>"일반적으로 전근대에는 재해로 인구 감소가 발생하면 몇 세대에 걸쳐 회복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시기에는 이슬람 제국의 정복에 의한 대격변 때문에 그 같은 경향이 사라졌다. 일단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시리아 그리고 나중에는 북아프리카까지 주요 지역들을 잃은 데다가 아랍인들이 계속해서 소아시아를 약탈하는 등 불안한 상황으로 제국의 나머지 지역들도 결혼과 인구 재생산율이 크게 떨어졌다. 여러 방면에서의 '상실'은 농업 생산성의 감소는 물론 군대에 충원할 인력과 세수의 감소를 야기했다. 그리하여 이전에도 취한 적이 있지만, 7세기 말부터 9세기까지 특정 종족 집단을 인구가 부족한 지역이나 변경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활발하게 펼쳐 확실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비잔티움 군대는 회전會戰은 되도록 지양하고 국지화된 방어에 주력했는데, 이 전략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잘 먹혀들었다. 이 때문에 이슬람 군대는 수많은 성채가 촘촘히 배치된 소아시아에서 더 이상 진군하지 못했다."(143-5)<br>제4장 부활의 날개를 펴다(717~867년)&nbsp;<br>"비잔티움 제국을 대상으로 한 아랍인들의 공격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레온 3세와 그의 아들 콘스탄디노스 5세는 740년에 함께 원정에 나서 소아시아 중부의 아크로이논에서 아랍 군대를 대파했다." "이사우리아인들이 새로 배출한 이 두 황제는 비잔티움 제국의 하락세를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악명 높고 그만큼 큰 오해가 있는 성상 파괴운동 때문에 비잔티움 사료 대부분은 두 황제를 혐오하고 조롱했다. 성상 분쟁은 신성한 존재를 묘사하는 방법과 그 가치를 두고 벌어졌다. 성상을 둘러싼 이 분쟁은 복잡하고 논란이 많은 역사적 주제이지만, 크게 4단계로 구분하는 데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우선 754년의 히에리아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성상 파괴주의가 채택되었다. 787년의 제2차 니케아 공의회는 이 조치를 취소했고, 815년의 아야 소피아 공의회는 성상 파괴주의를 다시 채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843년에 일어난 일명 '정교회의 승리'로 성상 공경주의가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었다."(159, 162)<br>"한편 바닥부터 올라온 새로운 인물들도 궁정에서 활동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실리오스이다. 바실리오스는 거친 매력이 있는 미남이자 말을 잘 다루는 레슬러였다. 바실리오스를 총애하여 측근으로 받아들인 젊은 미하일은 862년 바실리오스를 고위 관직인 파라키모메노스Parakoimōmenos(시종장)로 임명했다. 파라키모메노스는 황제가 가장 공격받기 쉽고 가장 위험한 때인 잠든 동안 황제의 곁에 머물러야 하므로 환관들에게만 주어지는 대단히 중요한 직책이다." "867년은 비잔티움 제국에게 중요한 해이다. 바실리오스는 미하일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지만, 이 권력은 전적으로 황제의 총애에 기댄 것이었다. 866년 바르다스를 숙청하고 처형한 바실리오스는 미하일의 총애가 식어 간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미하일마저 살해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바실리오스 1세). 이는 비천한 출신에도 민첩하고 수완이 뛰어난 자가 비잔티움 제국 황제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증거이다."(175-6)<br>"7세기 비잔티움 제국은 아랍인과 불가르인의 공세에 맞서 살아남아야만 했다는 점에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고대 후기 로마 제국과 달랐다." "비잔티움 제국은 크게 두 요인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다. 하나는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와 그 자원을 보존하여 그를 기반으로 제국의 남은 영토를 중앙 집권화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군대 조직에 변화를 가해 변경이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외침을 저지하고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은 것이다." "스트라티이아는 소아시아 곳곳에 설치되며 제국의 변경을 안정시켰다. 생존투쟁 시대에 제국은 중요한 자원을 관리했고, 수도의 통제에서 벗어날 만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몇몇 개인, 즉 5대 군 지휘관(아나톨리콘·옵시키온·아르메니아콘·트라키시온 그리고 소아시아 남부에 새로 설치된 해군 스트라티이아 키비레오톤의 사령관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력을 주었다. 콘스탄디노스 5세는 이를 조정하기 위해 여러 개혁을 추진하여 옵시키온을 더 작은 단위로 나누었다."(178-9)<br>"비잔티움 제국은 모든 영역에서 군사화되었다. 따라서 사회적·문화적 가치도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8세기 초 옛 원로원 엘리트들이 사라지면서 사회 계층에 몇 가지 중대 변화가 있었고, 그들 중 남은 이들은 궁정과 교회라는 두 개의 안정적인 조직에 흡수되었다. 이 중에서 교회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부터 막대한 재산에 대해 면세의 혜택을 받아 왔으므로 경제적인 면에서 덜 약화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 레온 3세와 니키포로스 1세를 비롯한 일부 황제는 교회의 독특한 지위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이제 교회 재산이나 교회에 소속된 농민들도 과세 대상이 되었다. 군부에서 일부 지휘관은 귀족층이었지만 대다수는 신참자였다. 스트라티고스들을 비롯한 장교들의 지위는 사회적·경제적으로 차츰 상승하더니 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비잔티움 제국의 정치를 결정하는 존재가 되었다. 관직은 세습되지 않았지만 장교들을 중심으로 성씨姓氏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혈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었음을 반영한다."(181)<br>제5장 제국의 영광이 찬란하게 빛나다(867~1056년)<br>"바실리오스 1세는 마케도니아 왕조의 문을 열었다. 마케도니아 왕조는 비잔티움 제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통치 왕가이고, 그들이 통치하는 동안 제국은 눈부실 정도로 군사적 확장, 경제 호황 그리고 문예 부흥을 누렸다." "인구와 경제가 호황기를 맞이했고, 과거 비잔티움 제국을 위협하던 강력한 국가들이 이 시기에 쇠약해져 비잔티움 제국 확장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예를 들어 프랑크 제국에서 카롤루스 왕조가 단절되면서 혼란기에 빠진 덕분에 비잔티움 제국은 이탈리아에서 다시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또한 9세기 이래 동쪽에서는 아바스 제국이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명목상 아바스 왕조 칼리프좌에 충성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독립국이나 다름없는 지역 국가들이 등장하여 비잔티움 제국은 이전과 같이 방대한 자원을 조직하고 통제하는 거대한 국가와 싸우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핵심 문제는 새로운 위협을 무력화하고 영토를 보호하는 한편 상업적·외교적·문화적 교류를 촉진하는 것이었다."(191, 197-8)<br>"안보 상황이 안정되자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인구는 경제성장의 기반이 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2세기경에는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이전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다." "이 시기는 전염병과 정치적 불안으로부터 많은 사람이 도피한 결과 너무 넓은 토지에 너무 적은 인구가 살던 과거와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인력은 전혀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토지 관리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은 군대, 사회 기반 시설, 관리의 급료 그리고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외교 정책을 위해 세금을 거두었다. 즉 인구의 대부분인 농촌 지역 소작농이 내는 세금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렇게 거둔 세금의 잉여를 앞다투어 사용私用하려고 했고, 비잔티움 제국의 엘리트층은 국가를 적대시했다. 이것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으나 10세기에는 중대한 국면을 맞았다. 마케도니아 왕조 시대 황제들이 발행한 신법 모음집에서 그들의 공통 목표는 디나티Dynatoi(권세가)였음을 알 수 있다."(209-11)<br>"마케도니아 시대 비잔티움 문화의 특징은 황실의 후원 아래 이루어진 방대한 양의 서적 편찬 사업이다. 이 시기에 제작된 서적들은 과거 서적의 집성이었지만 공통점은 그뿐이다. 일부 책은 단순한 필사에 불과했지만, 비잔티움 제국 역사상 이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들의 지적 유산을 면밀하게 조사하고 종합한 때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세기에 선보인 서적들 가운데 새로 작성된 작품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이루어진 고전 서적의 종합은 단순한 수집이 아니라 나름의 체계를 가진 것이므로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수준 낮은 작업으로 격하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문헌의 상당 부분이 10세기에 복사된 필사본이라는 점은 이 부흥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이다. 비록 비잔티움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적·정치적 기준으로 고대 그리스의 고전을 선택하고 보존했지만, 그들이 없었더라면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의 고전 작품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221-3)<br>"한편 교황 니콜라우스 1세가 라틴어가 곧 로마어라며 로마어를 쓰지도 않는 비잔티움 사람들이 로마를 자칭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 주장하자, 미하일 3세는 라틴어는 이방인의 언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일화는 어느 쪽이 로마 제국이냐 하는 문제가 비잔티움 제국 입장에서도 미묘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 같은 반목은 비잔티움 제국과 오토 왕조의 영향력이 선교 사업을 통해 확장됨에 따라 더욱 불타올랐다. 마케도니아 황제들은 마자르인과 루시인을 개종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마자르인은 폴란드나 덴마크와 같이 독일의 구심력에 포섭되어 로마 교회를 영적인 중심지로 받아들였다. 반면 비잔티움 제국은 루시인을 개종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이것이 이른바 '비잔티움 공동체'의 시작이다. 이제 동유럽 국가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치적·문화적 지향점으로 삼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비잔티움 제국을 공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비잔티움인의 입장에서는 실로 안타까운 사실이다."(224-5)<br>제6장 강인함 속에 나약함이 깃들다(1056~1204년)<br>"서방인 특히 노르만인이나 앵글로색슨인을 용병으로 고용하는 관행은 낯설지 않았다. 서방인 사이에서도 비잔티움 궁정에서 일하는 것이 꽤 수지 맞는 일이라는 것은 이미 유명했다. 알렉시오스 1세는 몇 세대 동안 이용해 온 방법을 구사하여 서방의 유력자들에게 서신과 사절을 보내 용병을 청했다. 그가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게 사절단을 보내 이교도가 그리스도교를 얼마나 억압하는지, 성묘 교회와 성지를 순례하기가 얼마나 어려워졌는지를 강조하며 도움을 청한 것도 마찬가지 일이다. 그러나 비잔티움 제국으로서는 이 요청이 제1차 십자군으로 진화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이는 알렉시오스가 요구한 바 이상이었고 감당하기에 벅찬 일이었다." "제1차 십자군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어마어마한 승리를 거두었으며, 그 결과 레반트 지역에 라틴계 식민 국가 다수가 수립되었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살아남았다. 이 십자군 국가들과 비잔티움 제국은 이제 공존을 생각해야만 했다."(233-5)<br>"비잔티움 제국은 군사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았지만, 2, 3차 십자군이 실패하자, 비잔티움 제국이 십자군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거나 애초에 지지하지 않았다는 식의 비난을 받았다." "비잔티움 제국에게는 불행하게도, 다음에는 유럽에서 해로로 이집트를 직접 타격하여 아이유브 왕조를 붕괴시키고 십자군 국가를 구원하겠다는 목표로 십자군이 준비되고 있었다. 베네치아는 엄청난 여비를 받기로 하고 십자군을 이송할 함대를 채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베네치아에 모인 군대는 기대보다 수가 적었고, 베네치아에 지불할 돈은 충분히 모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달아오른 십자군의 열기는 이집트 공격에서 비잔티움 제국 공격으로 옮겨가더니 결국 목표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전환'되었다." "한 차례 실패하기는 했지만 1204년 4월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해 함락했다. 며칠에 걸쳐 수많은 주민이 학살당하고 재화가 약탈당했다. 동정녀 성모 마리아가 지켜 주는 난공불락의 도시가 마침내 무너졌다."(239, 243-5)<br>"정력적인 세 황제 이사키우스 1세, 알렉시오스 1세, 이오아니스 2세 치하에서 콤니노스 체제는 잘 작동하는 듯 보였다. 토지는 증가하고 거대한 사유지가 형성되며 생산성은 향상되었다. 그러나 정치 체제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일련의 과정이 두 단계에 걸쳐 발생했다. 먼저 황실 인척과 외척에게 방대한 토지를 하사하는 관행이 시작이었다. 그 토지들은 행정적·재정적으로 독립성을 띠기 시작하더니 지역적 정체성을 강화하여 비잔티움 제국의 중심부가 가진 구심력을 저해했다. 12세기 들어 군사 행정 기구인 테마Thema(그리스어로 '장소, 배치') 체제가 붕괴하며 이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종래에 각 테마의 스트라티고스나 행정관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부에게 임명받았기에 주변부는 중앙 정부에 구속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제거된 것이다. 그 역할은 수도와 연결된 권력과 후원의 네트워크 안에 있는 주교가 일부 수행했지만, 지방 도시에서는 지역 엘리트층인 아르혼테스가 출현하여 지방의 원심력은 강해졌다."(249-50)<br>"콤니노스 황제들, 그중에서도 마누일 1세 콤니노스가 추구한 강력한 중앙 권력은 오랜 기간 제국을 틀어쥘 자질과 카리스마를 갖추지 못한 황제가 들어서자 반발에 부딪혔다. 반발은 앞에서 언급한 원심력과 함께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를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몰고 갔다. 10세기 귀족 반란은 정치 체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체제의 중심부를 장악하려는 목적에서 발생했다. 반면 12세기 후반에 발생한 지방 반란들은 지방에 독립된 정권을 수립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졌다. 1204년 시점에서 비잔티움 제국령 상당수는 이미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 황제의 직접적인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반란은 비잔티움 제국의 속국들[예컨대 세르비아나 불가리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아르메니아인이 킬리키아로 이주해서 세운 국가)]에서 해방 운동이 폭발하고, 각지의 적국이 재기하면서 한층 거세졌다. 이 같은 움직임의 원인이 비잔티움 제국 내부의 반란과 달랐다 해도 결국 영토와 패권의 상실을 낳은 것은 마찬가지이다."(250-1)<br>제7장 분열의 유산이 수면 위로 떠오르다(1204~1341년)&nbsp;<br>"1204년 4월에 일어난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과 약탈은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를 결정지었다. 도시 자체는 1261년에 탈환되었지만, 함락에서 비롯된 정치적·경제적·인구적·문화적 여파는 중세 이후까지 비잔티움 세계에 남아 있었다. 1204년 이후 비잔티움 제국의 영역을 그려 보기는 쉽지 않다. 제국은 수십 개의 파편으로 산산이 분열되었다. 이 소국들을 크게 분류하면, 하나는 라틴인 즉 제4차 십자군을 주도한 프랑스인과 이탈리아인이 이끄는 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비잔티움인들이 세우고 통치한 국가로 최소한 처음에는 옛 황가와의 연관성을 통치 근거로 삼았다. 이 국가들의 목표는 당연히 제각기 달랐다. 모두 자국의 영토를 확장하고 단단히 굳히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되, 그리스계 후계국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탈환을 지상 과제로 삼았다. 결과론적인 시각이지만 그 가운데 니케아 제국이 단연 돋보인다. 결국 니케아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했기 때문이다."(261-2)<br># 주요 그리스계 후계국 : 니케아, 이피로스, 트라페준타 / 주요 라틴계 후계국 : 라틴 제국, 아하이아 공국, 베네치아 공화국의 식민지&nbsp;<br>"한때 중앙 집권화를 이루었던 비잔티움 제국은 이제 모자이크화처럼 군소 정치체로 나뉘었다. 이웃 국가들은 이 틈을 타 영토를 확장했다. 불가리아는 차르 이반 아센 2세 재위기에 마케도니아와 트라키아 일부를 정복했고 세르비아는 독립국이 되었다. 소아시아에서 룸 셀주크 왕국은 트라페준타 제국의 영토를 빼앗는 데 성공했으나, 잇따른 계승 분쟁으로 니케아 제국에는 위협이 되지 못했다. 몽골 제국은 1230년대 후반부터 루시 지역을 정복하고 헝가리를 침공했으며 불가리아와 룸 셀주크 왕국, 조지아 아르메니아 일부를 속국으로 삼았다. 비잔티움 세계에 출현한 다수의 국가는 어지러울 정도로 재빨리 동맹을 바꾸어 가며 권력 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때로는 군사 또는 결혼 동맹을 맺고 때로는 영토를 두고 다투었다. 꼭 라틴계 국가와 그리스계 국가로 나누어 싸운 것도 아니어서 그리스계 국가 사이에도 갈등은 있었다. 이 상황 덕분에 약화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라틴 제국은 1261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268)<br>"외부의 위협이 비잔티움 제국을 갉아먹는 동안 내부에서는 신학 논쟁이 비잔티움 제국을 둘로 쪼갰다. 그러나 이 분란은 비잔티움인의 영적 세계와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이는 헤시카즘이라는 용어에 전통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관행과 신념을 둘러싼 논쟁이다. '정적, 침묵'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이시히아Isychia에서 유래된 헤시카즘은 고대 후기에 묵상과 기도라는 수도원의 주된 측면을 특징짓기 위해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13세기 이후 이 용어는 '예수 기도'("하느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 죄인을")를 반복하며 신의 환영을 느끼기 위해 애쓰는 묵상법을 이르는 말로 주로 사용되었다. 이 신비주의적 실천의 옹호자들은 '예수 기도'를 신의 의지를 학구적이고 이성적인 수단으로 읽을 수 있다는 이들에 반대하는 논거로 사용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신학에 맞추어 체계화한 서방 교회의 스콜라 전통에 반대하는 방법이었음이 분명하다."(278)<br>"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로 촉발된 강력한 반라틴 정서는 비잔티움 세계 구성원들의 정체성 형성에 당연히 큰 영향을 주었다. 각 계승국 내에서 정교회는 그 중심에 있었고, 로마 가톨릭 그리스도교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적이었다.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나 헬레니즘이라는 정체성이 싹튼 것은 주목할 만하다. 니케아 대륙 소아시아의 폐허가 된 고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의 업적을 향한 경이와 존경은, 미수복지 회복이라는 이상 그리고 전투적인 정교회와 융합하여 일종의 원시 민족주의를 유발했다." "막시모스 플라누디스(1260~1300년 활동)는 이 시기 문인들 가운데 가장 유명할 것이다. 과거 비잔티움 제국이 자신감이 충만하던 시절의 학자들은 로마 가톨릭 그리스도교권을 야만족이라며 그들의 업적을 하찮은 것으로 무시한 반면, 막시모스 플라누디스는 서방의 학문 수준이 발전 중에 있음을 인정했다. 다른 학자들은 이탈리아 북부의 공화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사건에까지 관심을 가졌다."(287, 291-3)<br>제8장 몰락을 향해 나아가다(1341~1453년)<br>"1341년 안드로니코스 3세 팔레올로고스가 죽자 곧 두 파당이 권력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한 세력은 죽은 황제의 절친이자 정권의 척추이던 이오아니스 6세 칸타쿠지노스가 이끌었다. 반대 세력에는 남편을 잃은 황후 사보이아의 안나, 총대주교 이오아니스 14세 칼레카스 그리고 놀랍게도 칸타쿠지노스의 후원으로 출세하여 메사존의 지위에 오른 알렉시오스 아포카프코스가 속해 있었다." "칸타쿠지노스는 귀족, 군대, 고위 성직자 등 폭넓은 지지 기반을 확보했다. 게다가 그리고리오스 팔라마스와의 우정 덕분에 아토스산의 수도사들도 그를 지지했다. 메시 계층을 포함한 도시민들은 아포카프코스를 지지했다. 유럽은 내전의 무대가 되었고 식량 생산은 심각하게 감소했다. 양 파당은 세르비아와 오스만 왕조 같은 주변의 강국에서 용병을 고용했는데, 들여오기는 쉽지만 돌려보내기는 어려웠다. 어느 쪽을 지지하는 도시건 간에 무질서와 폭력이 들끓었다."(295-6)<br>"한편 오스만 왕조가 전략적 요충지 칼리폴리스를 점령한 사건은 발칸 정복의 첫걸음이었고, 한 세기도 되지 않아 발칸반도 전체가 그들의 손에 들어갔다. 이후 수십 년간 오스만 왕조는 그리스, 라틴, 슬라브 등 동지중해 모든 세력에게 최대의 위협이 되었다. 이제 지휘할 군대가 더 이상 없는 비잔티움 제국에게는 외교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기댈 언덕이라고는 서방으로부터의 도움밖에 없는 상황에서 교황이 그 역할을 해 주기 바랐기에 교회 통합 문제는 다시 한번 시급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이 정책들의 궁극적 목표는 오스만 왕조를 상대로 한 십자군이었다. 1362년 디디모티호와 아드리아노플이, 1363년에는 플로브디프가 함락되었는데 그제서야 십자군이 소집되었다. 이오아니스 5세의 외척인 사보이아의 아마데오 6세의 군대가 1366년 칼리폴리스를 점령했다. 점령군에는 헝가리군과 제노바령 레스보스의 병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성공이 오스만 제국에 대한 유일한 군사적 승리 사례이다."(299-300)<br>"비잔티움 제국의 운명은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연장되었다. 강력한 몽골인 통치자 테뮈르(티무르)가 바예지드의 공세에 노출된 소아시아의 튀르크멘 공국들을 구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테뮈르는 1402년 앙카라 전투에서 오스만 군대를 격파하고 바예지드를 사로잡았다. 이후 10여 년간 바예지드의 아들들은 오스만 왕조의 지배자 자리를 두고 싸움을 벌였다. 그동안 소아시아 각지의 옛 통치자들도 오스만 왕조로부터 영토를 탈환했다. 마누일 2세의 비잔티움 제국은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트라키아의 배후지 약간, 에게해 북부의 몇몇 섬 그리고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모레아 데스포티스령에 불과했고 그나마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제국'이라는 말은 공허했다. 비잔티움 제국의 몰락이 명백하다는 사실은 이웃과 동맹 모두가 자각하고 있었다. 바예지드 1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한 동안 모스크바 대공 바실리 1세가 정교회 신자들에게 교회는 있으나 황제는 없다고 주장할 정도였다."(305-6)<br>"자포자기라는 전염병이 퍼지며 극단적인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비잔티움인, 그중에서도 지식인들은 대체로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어떤 이들은 마법에서 위안을 찾았고 총대주교청은 마녀사냥으로 대응했다. 의식에 참여하거나 동조하는 자를 솎아 내자 엘리트층뿐만 아니라 성직자와 수도사 들도 관여되었음이 드러났다. 이주를 선택한 사람들도 있었다. 지식인들은 적들에게 포위되어 가망 없는 비잔티움 제국을 떠나 이탈리아에서 그리스어 교사로 취업했다. 그리스어를 배우고자 하는 수요는 14세기 중반 이래 점차 증가하고 있었다. 최초로 이 길을 택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조반니 보카치오의 스승 칼라브리아의 바를라암이다." "1438년과 1439년에 걸쳐 진행된 페라라·피렌체 공의회에 많은 학자가 방문하자 이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이 학자들은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학식을 지녔던 데다가 서방 세계가 수 세기 동안 갈망해 온 희귀한 사본을 잔뜩 들고 있었다."(318)<br>제9장 천년 제국의 멸망과 그 후<br>"1453년은 오스만 제국에게도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그 도시'를 손에 넣은 메흐메드는 비잔티움 제국으로부터 교훈을 얻었고 비잔티움 제국을 뛰어넘고자 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오스만 제국은 중앙 집권화의 길을 걸었다. 이전에 오스만 영토의 확장을 견인했던 변경의 수령들은 권력에서 멀어져 갔고, 그 자리는 오스만 제국의 황제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이들로 채워졌다." "오스만 제국이 팽창하자 이탈리아 공화국들은 비잔티움 세계에서 누리던 상업적 특권을 상실하고 쇠퇴해 갔다.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이탈리아인의 활동권은 금각만 너머 갈라타·페라 지역으로 이전되어 축소되었으며 점령 직후 맺은 협정, 다시 말해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 후 체결된 제노바 협정에 관계없이 베네치아와 제노바는 위축되었다. 특히 흑해에서 주로 활동한 제노바의 역할은 15세기 말이 되면 거의 사라진다. 베네치아는 상대적으로 조금 나은 편이어서 17세기까지 오스만 제국의 상업적 동맹으로 활약한다."(331-4)<br>"인문주의자들이 가졌던 그리스어 문헌에 대한 오랜 애정은 변함 없었으나, 이 시기에는 두 가지 추가적인 동인이 생겨났다. 첫 번째는 계속되는 오스만 제국의 확장으로 발생한 튀르크 공포증 때문에 비잔티움 그리스도교도의 운명에 궁금증을 가진 것이다. 두 번째는 독일 지역에서 교회 개혁의 기치를 들어 올린 지도자들이 정교회의 선택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로마 가톨릭 교회에 맞설 잠재적 동맹자로 여긴 것이다. 마르틴 루터는 정교회 쪽이 고대 교회의 전례에 가까우리라 믿었기에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루터의 동료) 필리프 멜란히톤은 아예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와 직접 접촉하기를 희망했다. 양측은 사절을 교환했지만 곧 공통의 경쟁자를 가졌음에도 둘 사이에 용납하기 어려운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가장 곤란한 문제는 성상과 관련되어 있었다. 정교회 입장에서 성상 파괴의 시대는 다시 돌아보기도 싫은 시절이지만, 프로테스탄트들의 눈에는 성상 공경이 우상 숭배에 불과했다."(347-8)<br>"유럽이 계몽주의 시대로 접어듦에 따라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시각도 변화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 보이는 교회와 국가 권력의 결합 및 전제적 통치 방식은 인문주의자들이 가졌던 긍정적인 시각과 비잔티움 출신 스승들이 이룩한 업적에 그늘을 드리웠다. 볼테르나 몽테스키외 같은 이 시기의 저명한 사상가들은 중세의 비잔티움 세계를 후진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간주했다. 이들은 비잔티움 제국이 그토록 오래 존속된 것에 대해 타당하게 평가하지 않았다. 비잔티움 제국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을 당대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규정하고 있는 이는 에드워드 기번이다. 기념비적인 저작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그는 훌륭한 글솜씨와 학술적 권위를 이용해 비잔티움 문화를 '야만족의 승리와 종교의 승리'라고 정의하며 존재 의의를 철저히 깎아내렸다. 기번은 6세기 이후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를 익살스럽게 축약하여 기술했지만, 그의 시각은 몇 세기 동안이나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지었다."(350)<br>"동방 제국은 지리와 역사의 측면에서 서방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끼어, 자신을 계승해 줄 민족 국가 하나 남기지 못했다. 다시 말해 비잔티움 제국을 옹호해 줄 그 어떤 민족주의적 역사학도 존재하지 않고, 비잔티움 제국은 단지 방대하지만 불편한 투사체로만 남았다. 누군가에게 비잔티움 제국은 전체주의와 신정주의 국가이며 낙후되고 정체된 존재이다. 이를 보완해 주는 미덕은 단지 고대 그리스의 지식을 보존하고 이웃에 퍼뜨렸다는 점이다." "비잔티움 제국의 성벽이 대포 등장 이전에만 난공불락이었듯이, 이 나라는 고대 세계에 뿌리를 두고 점진적으로 변화했지만 주변 세계의 변화 속도에 따라가지 못했다. 이탈리아 도시 국가가 투표제를 퍼뜨리고 영국에서 배심 재판을 수용할 때,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모든 것이 황제 또는 총대주교 한 사람에 의해 결정되었다. 14세기의 학자이자 정치가 테오도로스 메토히티스가 지적했듯이 모든 제국은 태어나고, 꽃을 피우고, 쇠퇴하고, 죽었다."(355-7)]]></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056/82/cover150/k99283142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056825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