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히가시노 게이고 초기작들을 워낙 좋아해서, 자연스레 팬심이 생겼는지 신작이 나오면 일단은 그냥 읽어본다.
중간에 한번씩 재미없는 작품도 있긴 있었지만,
전율을 안겨준 뛰어난 몇 작품들 때문에 그냥 이 작가 소설은 가끔 재미없어도 그렇게 밉지는 않다.

확실히 작가가 나이가 들면서 좀 느슨해지고 인간미있어져서 초기작들의 그런 미친 몰입감은 없어졌지만
이 책은 괜찮게 읽었다. (!! 알고보니 30년 전 예전 책이군ㅎㅎ 어쩐지 최근거 치고 재밌다 했더니ㅠㅠ 하하)
서스펜스보다는 드라마에 더 가까운 소설이다.
그렇다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처럼 지루해서 읽다 포기할 지경의 느낌이 아니라,
스토리의 템포라든가 캐릭터 생명력이라든가 담겨있는 메세지 등등이 적당히 조화로워서 딱 몰입감있게 읽기 좋았다.
이전에도 이미 메디컬쪽의 이야기들을 다뤘었기때문에 이전의 소설들과 맥락이 좀 이어지는듯하여 신선함은 살짝 아쉬웠지만,
‘분신’이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참 기발하고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의 미장센이 마음에 든다.
보랏빛과 레몬향 그리고 폭발음의 조화.
마침내 기다려온 결말.

인간의 욕심이 지구를 지배하게 만들었고 세상을 이정도 수준으로 발전시켰기에 “욕심”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그 욕심이 탐욕이 되어버려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한다면 반드시 비극을 맛볼 것이다.
뭐든지 적당히를 알아야한다.
과하면 없는 것보다 못하니 말이다.
⠀ ⠀ ⠀
(𝑝.229) 어떤 곳이든 도시화하면 인간의 개성은 사라지는듯하다.

(𝑝.495) 집단을 이루면 광기가 증폭된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𝑝.569) 자신이 누군가의 분신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누구나 자신의 분신을 원하는 것 아닐까. 그걸 찾지 못해서 모두들 고독한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 번째 읽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best로 <악의> 와 바로 이 <방과 후>를 꼽는다.

열 아홉살 무렵 그냥 우연히 표지만 보고 대충 골랐던 책이었는데, 알고보니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이라 읽는 내내 팔에 소름이 돋아 손으로 팔을 쓰러내리며 시간 가는줄 모르고 끝까지 읽었었다.
다 읽고 나서 독특한 충격에 휩싸였고, 정말 이상한 전율이 일었다.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 자체가 너무 깊고 섬세한 것이라 그 궁극적인 메세지 자체가 충격이자 전율이었다.
당시에 등장하는 여고생들과 나이가 얼추 비슷해서 더 뭔가가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언뜻보면 여느 추리소설과 비슷해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스토리를 서술해나가는 방식이 꽤 독보적이라 아직도 이만한 추리소설은 그리 많지 않다.
잊을만하면 다시 또 읽을 수 밖에 없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한국인과 일본인같은 동양적정서를 가진 사람이 아닌 서양 사람이 읽었을 때 과연 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쩌면 서양사람들은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할것이다.
‘수치심’에 대한 정서라든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군대식 위계질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조금 떨어질 수 있기에 작중 인물들의 감정변화와 맥락을 파악하기 조금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학교 안에서 벌어진 두 번의 살인사건.
첫 번째 살인은 탈의실 밀실 살인사건으로, 피해자는 평소 보수적이고 학생에 대해 막말도 줄곧 일삼는 학생지도부 교사였다.
의문 투성이에 속임수가 너무 많아 경찰도, 교사도 그 누구도 밝혀내지 못하며 애를 먹는다. 속임수 위에 또다른 속임수 그 위에 또 다른 속임수. 풀어도 풀어도 결국 범인은 나오지 않는다.
두 번째 사건 역시 체육행사 날 독극물에 의해 운동장에서 공개적으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피해자는 역시 교사이다.

여자 양궁부 지도교사이자 수학 교사인 나 ‘마에시마’는 사실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몇달 전 부터 의문의 누군가로부터 여러 번 생명의 위협을 느껴왔다.
일부러 누가 위에서 화분을 던진다던지, 샤워실에서 어떤 장치로 인해 감전사 당할뻔한 일도 있었고, 누군가 선로로 밀친적도 있었다.
그래서 두 번의 살인사건과 자신이 밀접한 연관이 있고, 다음 타켓은 자신이 될 수도 있고(어쩌면 원래의 타겟은 자신이었다고 생각해) 누구보다 범인을 잡기위해 애를 쓴다.

독자들은 ‘범인’에 대해 선입견을 갖기 마련이다.
작가가 그렇게 장치를 심어놓기 때문이다.
당장 ‘누가 살인자인지’를 추리하는데 급급할 수 밖에 없다.
마치 이 책에서 실제 범인이 속임수를 통해 ‘선입견’을 심어놨듯이.
대부분은 ‘살인 사건을 추리’할때 감상적인 접근을 하지 않는다.
최대한 냉정하고 계산적으로 접근하려한다.
그렇기에 범인의 정체와 그 동기는 색다른 느낌의 충격이고 조금은 어려운 생각들을 남긴다.

모든 ‘개인’들은 말 그대로 ‘개인’으로서의 시간을 보낼 자유가 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가 아닌 온전한 개인으로서의 시간이 필요하고, 누구에게나 그런 자유시간은 주어진다.
타인에게 맞추고, 규칙과 질서에 따르고, ‘도덕’을 의식해야하고, ‘정조’를 지켜야하는 것들 따위의 모든 사상에서 벗어나 온전하게 자신의 행동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하는 시간.
하지만 우리 사회문화 속에 깊게 뿌리박힌 ‘공동체주의’는 필요 이상의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에서 벗어나면 안된다는 집요한 주입식교육 끝에 필연적으로 ‘자유’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 처절한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누군가가 아주 개인적인 시간까지 침범한다면, 침범 당한 자의 수치심은 어느정도일까.

인간은 남의 일에 너무 지나치게 관심이 많을때가 많다.
그 ‘공동체적’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오바될 때가 많다.
그런 지나친 관심과 규칙이 ‘이해와 공감’ 능력을 상실한 누군가와 만나면 악惡 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𝑝.159) 요코에게는 그런 일을 해치울 듯한 비장감도 있고, 동시에 도저히 그런 짓은 못할 듯한 순진함도 있었다.

#히가시노게이고 #방과후 #추리소설 #책리뷰 #방과후_히가시노게이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단, 이전에 읽었던 기욤뮈소의 ‘아가씨와 밤’ 보다는 괜찮게 읽었다.
두 권정도 읽어보니 이 작가의 매력을 좀 알긴 알겠다.
내용의 흐름 자체가 재미없는 것은 아닌데 뭔가 5프로 정도 아쉬운 느낌. 이게 번역의 한계인지는 모르겠는데, 내용적으로 결정적인 부분의 서술이 좀 아쉽긴하다.
초, 중반부에서는 머리 한 대 얻어맞은듯한 반전과 충격을 줄것처럼 진행시켜 잔뜩 긴장시키는데 막상 후반부에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는 부분이 부풀려놓은 기대만큼 그닥 신선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그걸 단순하게 ‘재미없다’ 라고 표현하긴 애매하다. 뭔가 아쉽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거까진 아니고 표현의 창의성이 조금 아쉽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을 참고한건가 싶은 부분도 있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밀란쿤데라 삘도 나고 뭔가 짬뽕된듯한데 어정쩡한 믹스는 아니고 결국은 기욤뮈소 본인이 그 모든 소스들을 섞어가며 지휘하는 느낌이랄까ㅎㅎ
솔직히, 이 전에 ‘아가씨와 밤’ 읽었을때는 마냥 아쉽다 싶었는데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까지 읽고나니 원래 이 작가가 이런 매력이구나싶다.
캐릭터를 생동감있게 살려내는 능력만큼은 정말 손가락 들어 인정하고싶다.
장소 묘사에, 날씨와 세세한 부분들까지 생명력이 너무 좋아 소설 속 모든 것들이 살아숨쉰다.
내용이 가진 약간의 빈약함을 물리치고 그냥 그 자체로 몰입이 잘될 수 밖에없다.
오죽하면 영상으로 본듯한 느낌이 들어서 책이 아니라 영화를 본듯한 착각이든다. 이 전 작품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브 FIVE (특별한정판)
댄 자드라 지음, 주민아 옮김 / 앵글북스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원래 자기계발서를 잘 안읽는데, 독서 모임 책이라 읽어보게되었다.
읽었다기보다는 그냥 적고 생각해봤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내용 자체는 뭐 뻔한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목표 세우고, 작은 목표부터 실천하자..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자..뭐 대충 이런 느낌이다.
딱히 영양가 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연초,연말에 그냥 기분이라도 내고 다짐이라도 하자는 의미에서 한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듯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로 ‘다른’ 것 들이 한 곳에 뭉쳐 ‘섞여’야 한다는 불편함과 어색함. 거기에서 비롯된 정체성의 혼란과 위기가 잘 표현된 소설이다.
특히 막 스무살이 된 사회초년생에겐 인간 사이의 미묘한 기싸움이 마냥 어렵고 고독하기만하다.
교육과 규율의 모순을 알게되고, ‘자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나이이며 동시에 무력한 나이이다.
‘여자-여자’ ‘여자-남자’ ‘남자-남자’ 사이에 존재하는 그 어려운 감정의 화합과 갈등들은 세월이 흘러 60이 된 나이에도 여전히 쉽지만은 않다.
1977년은 학생운동이 성행했고, 다방이나 레코드점에서 미팅을하거나 데이트를 하는 것이 유행이었고, 14년만에 쌀막걸리가 재등장을 했고, 김승옥이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첫번째 이상문학상을 받았고, 제 1회 대학가요제가 열렸고, 의료보험이 시작된 해이다.
화자는 그 시절을 딱히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고, 그때의 사람들과 재회하기를 꺼린다.
그 시절의 자신을 썩 좋아하지 않고, 딱히 그 시절을 좋게 기억하지 않는다.
내가 겪은 시대가 아님에도 그 감정의 맥락에 공감과 수긍이 가능했던건 40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시대적 혼란과 정치적 혼란, 인간관계와 연애에대한 혼란이 하나의 빛줄기처럼 이어져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했고, 그 시절보다 나아졌다면 많은 것들이 나아지고 발전했다고 할 수 있으나 공동체 안에서 ‘진짜 나’를 잠시 넣어둔채 그럭저럭 그 속에서 적응해나가는 ‘가짜 나’의 고독과 혼란스러움은 그 시절의 그 맥락에서 크게 못벗어났다는 것에 대한 증거이다.

책을 읽으며 은희경 작가의 나이를 실감했다.
60이라 하면 옛날엔 굉장히 늙은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60이 그렇게 늙은 나이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 꼰대도 있고, 나이든 세련된 사람도 있듯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그 뻔하고 진부한 말이 어쩐지 와닿는 날이다.
60대에도 이런 세련된 장편소설을 쓰는 것이 내 또다른 꿈이 되었다.


개별적인 ‘다름’은 필연적으로 ‘섞임’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거기에는 비극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서투름과 욕망의 서사가 개입될 수 밖에 없었다. 다름은 개인성의 독립이지만 섞임이 그 종합은 아니기 때문이다. (p.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