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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평점 :
한 작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구체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뭔가 독특한 종류의 감정적인 교류가 되고있다는 것이 아닐까.
삶의 경험중에 겹치는 부분이 있다던지, 사고회로가 비슷하게 돌아간다던지. 혹은 취향이 겹친다던지.
무라카미 하루키와 내가 삶의 일부 경험이 겹치고, 몇 가지 취향이 비슷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가이다.
(나에게만 사랑받는 무명작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일본과 한국의 동양적 특수 정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국이라든지 러시아라든지 영국 등등 세계 각국에 많은 팬들이 있다.
본인은 자신을 매우 평범한 사람이라고 지칭하지만, 사실 글로 하나의 신드롬을 일으킨다는 것은(물론 그의 말대로 시대적 운빨이나 인복도 있었겠지만) 결코 평범한 사람이 이뤄낼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그가 천재로 인정한 비틀즈나 피카소, 빈센트 반 고흐, 베토벤 정도의 ‘특별한 천재성’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책에서 거듭 이야기하듯,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뚝딱 쓸 수 있는 게 글이고 소설이지만 오랜 시간동안 ‘직업 작가’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절대 누구나 아무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영혼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그것을 굳이 애써 문장화시키고, 문장들을 엮어 음률화하는 예술을 절대 ‘아무나’가 ‘그냥 막’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무라카미의 말대로 너무 똑똑하고 두뇌회전이 빠른 사람은 오히려 소설가가 되기 힘들 수도 있다.
정말 좋아서하는 일이 아닌 이상 스스로가 못버티고 떨어져나갈 수 밖에 없다.
전설이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그렇듯 하늘의 특별한 계시를 받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글 중에서도 ‘소설’은 학문이라기보다 ‘예술’로 접근하는 것이 올바르기에 특별하게 타고난 무언가도 있어야한다.
그가 말하듯 ‘소설’은 발레라든가 음악이라든가 미술 쪽 처럼 애초에 뭔가를 노력해서 실행해야만 진입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그렇기때문에 누구나가 시도해볼 수 있고,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도 취미삼아 슬쩍 문예쪽에 기웃거릴 수도 있지만 결국 그정도로는 오랜시간 작가로서 문학계에 버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무라카미의 소설은 분명 ‘비주류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그의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설’을 좋아하고, 읽고, 느끼는 (소비하는) 사람은 대체로 어느정도 ‘비주류적인’ 모습을 갖고있다.
특히 요즘같은 시대에는 tv,영화,유튜브,넷플릭스,인스타,인터넷 등등 재미있는 볼거리가 넘쳐나는데 굳이 소설을 찾아서 읽는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비주류적인 모습이다.
그런 일종의 음울한 부분을 가진 여러 독자들에게 무라카미의 글이 해소제처럼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준 게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 아주 정신없이 깊고 선명한 꿈을 꾼듯 ‘뿅 가는’ 기분을 느끼며 가슴 속 어떤 부분이 박하향이 된 듯 시원해진다.
처음에는 무라카미의 에세이까지 애써 찾아서 읽고픈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다.
작가에 대한 팬심이 부족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그냥 소설로서가 아닌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현실적인 모습으로 작가를 알게되면 환상같은 게 깨질까봐 조금 걱정했다.
그냥 단순하게 소설매니아라서 ‘에세이 그냥 안볼래’하는 마음도 크게 작용했고.
요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름대로 1일 1 글쓰기를 시전중인데,
무슨 큰 목표가 있다거나 그런 뉘앙스가 아니라 그냥 단순하게 원래 글을 쓰는걸 좋아하기도 하고, 인생이 조금 심심하기도 해서 글을 쓰다보니 좀 구체적인 소설을 써보고 싶어졌다.
쓰고 싶은 이유나 상황 자체야 나열하자면 끝도 없고, 소설을 쓰려고 하니 막상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뭐라도 관련된 책을 한번 읽어보자 싶어서 고른게 이 책이다.
어쩌면 하루키작가라면 뭔가 도움이되지 않을까해서.
그렇게 그냥 막연한 신뢰감하나로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결론적으로는, 소설에서 ‘시점’을 설정하는 것에서 좀 답답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부분이 아주 명쾌하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도움이 되었고,
캐릭터를 만드는 노하우라든가(노하우까지는 아니지만) 운빨의 중요성같은(너무 당연한) 걸 좀 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에세이 하나를 써도 단순한 ‘글’이 아닌 ‘예술’로 만드는 독보적인 힘이 있다.
도움을 좀 받을까 싶어서 시작한 책이었는데, 도움도 물론 되었지만 작가로서 그를 더 리스펙하게 되었다. 어쩜 이런 고유한 자신만의 문체를 가졌을까!
글에서 소리가 들리고 향기가 나는 것은 거의 기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