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리커버)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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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마음에 남았던 것은 내가 행한 차별이 아닌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그동한 당했던 차별이었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여학교의 교복이었을 때, 내가 손을 잡고 있던 이가 장애인이었을 때, 내가 본 시험의 점수가 만족스럽지 못했을 때, 내가 쓰는 말이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였을 때 각기 다른 상황들이었지만 ‘다름‘이라는 것은 결국 차별에 대한 이유가 되었다.
*차별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 순간 스쳐가는 기억나지도 않는 일이겠지만 차별을 받은 사람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된다. 그것이 어린 시절이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생각해볼 만 한 것이다. 내가 차별을 한 기억이 없더라도 누군가에게 그런 상처를 준 일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것을.
*좀 더 어렸을 때에는 지금보다 차별받는 사람 입장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도 있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직장이 생기고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자리 잡기 시작했을 때, ‘연세 많으신 분이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게 당연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니 그건 잘못이 아니야‘, ‘지금 이 자리에 비하되는 당사자가 없으니 괜찮아‘, ‘지금 분위기를 깨면 안돼‘ 등 별의 별 핑계를 대며 말하기를 주저하였다. 밤에 친구에게 전화해 내가 느꼈던 ‘나만 잘못 생각하는 건가? 내가 예민한건가?‘를 확인해가면서 스스로에게 침묵에 대한 면죄부를 주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침묵하였고 암묵적으로 차별에 동의하였던 그 수많은 상황들이 글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책의 9장 ‘모두를 위한 평등‘에서 인용된 말에 따르면 ‘무의식적이었고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억압에 기여한 행동, 행위, 태도에 대해 사람들과 제도는 책임을 질 수 있고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에게는 과거와 현재의 언행에 대해서 끊없이 성찰해야할 책임이 있다.
*완전한 평등은 지금 당장 어렵겠지만 평등에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다. 3부 10장에 인용된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평등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함께 결의할 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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