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chinko : The New York Times Bestseller (Paperback) - 이민진 '파친코'/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작
이민진 / Head of Zeus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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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계 미국작가 Min Jin Lee‘Free Food for Millionaires’라는 작품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을 때 잠시 관심을 두기는 했었지만 곧 잊어버렸다. 제목도 작품의 소재도 나의 흥미를 끌어당기는 요소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Pachinko’가 엄청난 화제작으로 떠오르고 2017National Book Award 결선까지 올랐음에도 여전히 시큰둥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재일교포 가족의 이야기라... 솔직히, 스토리가 어마무지하게 청승스러울 것 같았다. 소싯적부터 허구한 날 접하던 이야기를 한국계 작가가 영어로 썼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하랴 싶었던 것이다. 일제 치하에서 허덕이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는 이제 그만 듣고 싶었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약자들의 자화자찬 탄식스토리... 그 눈물콧물 짜내는 청승블루스 끝에서 어떤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드러나고 자기반성의 계기가 생긴다면 모르겠으나, 그냥 서로 부여안고 울고불고 난리치면 뭐할 것인가? 나라를 잃어버린 것은 우리가 어리석었기 때문이며 이제 정신 차리고 안 잃어버리면 될 일이다. 물론, 진정으로 우리가 정신을 차렸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좌우지간, 이 소설 ‘Pachinko’의 첫 장을 펼칠 때 나의 마음가짐은 이상과 같았다. 냉담했다면 좀 과장일 것이고, 그저 무덤덤하였다. 연말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작품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해마다 재방송하는 설 연휴 특집드라마 보는 정도의 느낌이었달까. 무엇이 나올지 어떻게 풀려나갈지 다 안다고 생각했다.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남자 Hoonie와 그와 결혼하는 여자 Yangjin, 그들이 낳는 아이 Sunja, Sunja를 유혹하는 유부남 Koh Hansu... 그리고, Sunja를 구원하는 젊은 목사 Isak. 정말 하품 났다. 왜 우리들의 이야기는 항상 이런가. 왜 이래야만 하는가? 하기는, 1부의 제목이 ‘Gohyang/Hometown’이었다. 상상력의 빈곤이 빚어낸 멜로드라마의 배경이란 원래 고향아니겠나. 참기로 했다. 그리고, 2‘Motherland’가 시작되었다. 소설의 캐릭터들이 전부 일본으로 갔는데, 괴이한 제목이었다. 누구를 위한 조국인가? 어디가 조국이란 말인가? Sunja가 낳은 첫아들 Noa, Isak과의 사이에서 낳은 둘째아들 Mozasu... 그들 재일교포 2세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본이 조국이어야 했다. 그러나, Mozasu의 아들 Solomon에 이를 때까지 그들은 한국인도 일본인도 될 수 없었다. 그토록 노력했고 미치도록 발악했고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올라갔음에도... 어쩌면, 3‘Pachinko’에서 비유하는 것처럼, 그들이 의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은, 허상을 위한 도박의 나라 파친코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파친코로 인해 부를 획득했고, ‘파친코로 인해 죽어야 했고, 종국에는 다시 파친코로 돌아가야 했다는 것은, 슬프게도 파친코가 수단이자 목적이자 궁극의 무덤이라는 뜻 아니겠는지. 1910년 즈음에서 출발하여 1989년까지, 무려 4세대에 걸친 이들 가족의 대서사는 ‘Pachinko’라는 허망의 상징을 통해서 우리들이 외면했던 역사의 한 자락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들이 무수히 반복해서 세뇌 당했다고 믿었던 그 역사의 뒤안길에 또 다른 한국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간단히 말해, 나만은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나 역시 한반도라는 시야 바깥에 잘 보이지 않는 그들에 대해서는 무심했던 것이다. 그래서, 부끄러웠던가. 마지막에 눈물이 났다. Sunja와 함께 운다는 것이 내가 가장 혐오하는 청승블루스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그녀의 회한에 동참했다.

 

   작품 안에서도 언급되듯이, 차별의 문제는 한국인이고 일본인이고 미국인이고 하는 식의, 국경의 문제를 초월하는 것이다. 나는 오른발에 힘을 주고 서있는데, 저 녀석은 왼발에 힘을 주며 서있을 때, 이미 넘을 수 없는 오른발과 왼발의 간격은 벌어진 것이다. 문제의 저 녀석이 실은 거울 안에 비친 나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 필요한 행위는 무엇일까. 거울을 향해 돌을 던지는 거 아닐까. 파괴를 통한 통렬한 각성...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한계를 증명하는 것이지만, 거울의 파편에 피 흘리는 사람은 어이없게도 저 녀석’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사실을 어떡해야 할 것인가. 재일교포 혹은 전 세계에 흩어진 우리 동포들의 이야기는 거울 안에서 파편으로 부서지는 우리의 일그러진 얼굴일 것이다. 때문에, 소설의 첫 인물 Hoonie가 구개파열 기형으로 나오는 것이 우연 같지 않았다. 그의 기형은 입술에 있었으나 우리 역사의 기형은 애국으로 치장했던 위선자들의 립서비스에 있었으므로. 정녕... 재일동포 3세대 Solomon에게 물려줄 것이 파친코뿐이란 말인가.

 

 

* 영어 등급 : I think I can.

* 내용 등급 : 콩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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