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김민철 지음 / 미디어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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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과거에서 보내 온 편지가 있다. 예전에 우리도 5년 후, 10년 후 자신의 미래를 그리며 자신에게 쓴 편지를 써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떳떳하게 살고 있는 미래의 나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리움과 설렘이 묻어있고, 만약 그때 쓴 편지를 지금 읽어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상상만 해봐도 가슴이 두방망이질 친다. 그게 코로나19라는 극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라면 어떤 느낌일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여행 간 장소라면 어떻겠는가. 어느 신혼부부가 먼 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20년 결혼기념일에는 여기로 다시 한 번 옵시다, 라던가, 가족여행을 떠난 여행지에서 엄마가 자식들에게 여기 참 좋다. 나중에 너희들이 크면 엄마, 아빠하고 다시 여기에 오자, 라는 약속을 우리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서로 주고받는다. 만약 그때 옆에 타임머신 캡슐이 있다면 우리는 편지를 써서 서슴지 않고 뚜껑을 봉한 후 미래로 날려 보낼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또한 같은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가장 좋았던 순간을 가장 다정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의 오롯한 진심을 고이 접어 고스란히 당신 손에 쥐여 주고, 과거의 따스한 온기 앞에 지금의 저를 데려다 놓고 싶었어요. 그곳의 공기와 햇살과 바람과 미소와 나무를 잊지 않도록. 여행이 사라진 시간에도 우리의 여행이 계속되도록.”

_ 프롤로그 「먼 시간, 먼 곳에서 부치는 여행」 중에서


처음엔 책을 읽으면서 좀 당황했다. 장마다 맨 끝에 보면 일시가 적혀 있는데, 죄다 과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의아심을 가지고 앞뒤로 뒤적이다가 ‘아 이건 과거에서 온 편지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거에서 온 편지라, 의미심장한 문장을 음미하면서 계속 읽어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은 스마트폰의 성능이 인공지능 수준이라 예상치 못한 과거 사진을 보며 놀랄 때가 있다. 사진을 넘기면서 그때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들을 복기하면서 소소한 즐거움에 빠져든다. 사진도 이럴진대 편지가 어느 날 나에게 온다면 놀라움을 넘어 감탄을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을 읽어보면 그런 즐거움에 빠질 것이다.


여행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책을 통해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싶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을 떠올리고 감상에 젖을 때, 책은 저절로 우리를 그때 그 시절로 인도할 것이다. 느긋한 마음으로 한껏 여유를 부려보자. 이 또한 게으른 책읽기의 별미가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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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아 수업 - 철학은 어떻게 삶의 기술이 되는가
라이언 홀리데이.스티븐 핸슬먼 지음, 조율리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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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달린 것과 달려 있지 않은 것을 구분하자.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삶의 기술에는 위와 같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코로나와 같은 예기치 못한 재난이나 질병은 우리의 선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렇다고 무방비로 방치한 채로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우린, 우리의 일에 집중하며 나아가는 길을 선택해야만 한다.


스토아 철학은 불행을 이기는 철학이다. 삶에 적용 가능한 진짜 철학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인생을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누고, 인생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고 말한다. 고난과 재난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뜻하지 않을 불행을 피할 방법도 없다. 그렇다면 이미 일어난 불행에 의미 없이 계속 집착하지 말고, 평정심(아파테이아)을 실현하며 그저 지금 할 일을 해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스토아 철학은 고난에 휘둘리지 않고 삶의 균형을 지키는 기술을 알려준다. 노예 출신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노동의 대가는 없었고, 주인에게 혹사당해 한쪽 다리까지 절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일어난 일을 없던 일로 만들 순 없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선택할 수 있다며, 그 선택이 결국 우리가 어떤 인생을 살게 할지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우리에게 준다. “옳은 일을 하라.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심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라.”, “나 자신이 될 수 없다면 죽는 게 낫다.”


아울러,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가 제시하는 아침저녁의 일상을 바꾸는 스토아 철학의 메시지는 다음 일곱 가지다. 첫째, 늘 옳은 일을 하라. 둘째, 현재의 삶을 사랑하라. 셋째,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라. 넷째, 방해물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다섯째, 에고를 버려라. 여섯째,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일곱째,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스토아 철학은 통제하기 힘든 난관에 부딪혔을 때, 내 삶을 지켜줄 최고의 무기가 되었다, 라고 혼돈의 시대 속 불안한 미래에 대처하는 실리콘밸리 리더들은 말한다.


삶 자체는 고통임에 틀림없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미 이천년 전의 철학자들이 우리에게 남긴 귀중한 이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를 깨닫는 삶의 여정이 아닐까싶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이는 자세다. 아무리 멋있고 훌륭한 말이라도 받아들이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니 말이다. 삶의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진리는 이천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삶의 기술이, 이 책 한 권에 전부 들어있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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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365일 365일 1
블란카 리핀스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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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도 우리처럼 성에 대해서 폐쇄적인 암막에 가려진 것 같다. 이제껏 성의 노골적인 표현으로 꼽히는 소설이라면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아닐까싶다. 하지만 『365일』, 이 소설도 여기에 비견되리만큼, 아니 더 노골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자극적이기까지 하다. 이 책의 작가는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저녁을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성에 대한 개방성이 지나치게 결여되어 있고 사랑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소통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결과로 탄생한 이 작품은 단숨에 전 세계 여성들을 사로잡으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운명적인 사랑이란 과연 존재한다 말인가. 내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손짓 하나로 바람이 불면 운명처럼 맞닥트리는 그런 사랑. 『365일』은 호텔에서 일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휴식이 필요해 여행을 떠난 주인공 라우라가 시칠리아에서 마피아 가문의 젊은 수장인 마시모에게 붙잡혀 자신과 함께 365일을 보내달라는 요구를 받으면서 숙명처럼 만난 한 연인의 위험천만하고 파격적인 로맨스가 펼쳐진다.


호텔 관리직으로 일하다 번아웃이 온 라우라는 서른 살 생일을 맞아 남자친구와 함께 휴식기를 갖기 위해 시칠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서 라우라를 기다리는 것은 연인과의 달콤한 여행이 아닌, 몇 년 전 죽음의 고비를 넘긴 뒤로 자신의 환상 속에 매일 라우라가 등장한다고 주장하는 시칠리아 마피아 가문의 수장 마시모였다. 라우라는 마시모에게 붙잡혀 그와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다음 해 생일까지 365일의 시간을 달라는 기묘한 조건을 요구받게 된다.


이와 같은 유혹을 받는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운명도, 숙명도, 아니 유혹이라도 좋다. 분명한 진리는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을 것이고, 감정이 밀물처럼 불어 닥쳐 잠을 못 이루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소설의 여주인공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 라우라는 지금껏 보아온 어떤 여성 캐릭터보다 욕망에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시대착오적이지 않은 여성캐릭터가 표현하는 욕망은 한층 생생하며,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강하게 끌어당길 것이다. 이토록 욕망에 솔직하고 저돌적인 여주인공은 없을 것이다.


운명적인 사랑. 어떻게 보면 서로의 반려자가 된다는 것인 하나의 운명이 아닐까싶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만약 우연히 만났다면 사랑이 너무 허무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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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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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단어와 낯선 문장. 그러나 아름다움을 간직한 문장 속엔 감탄이 숨어있다. 우리말과 한자의 유려함을 넘어 지식의 대혼란이 일어났다. 사전을 뒤져가며 소설을 읽어야 했으니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한 단어 한 문장을 곱씹으며 글에 스며든 단 맛을 쪽쪽 빼먹는 맛이 별미라면 별미였다. 초판 1쇄를 10년 전에 썼으니 10년 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를 알고도 남았다. 10년간 15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말이 15만 부이지 어마어마한 숫자다.

 

또한 여자의 일생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옛 조선의 유교적인 가부장적 집안에서, 속에 품은 꿈을 펼치기도 전에, 여자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던 그러나 현실과의 타협에서 끝내 승리한, 한 여자가 바로 허난설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녀의 동생이 홍길동전을 만든 허균이라는 사실이, 왠지 뭔가 딱 들어맞는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 할 수 있는 것처럼.

 

그 두 남매가 소중하게 간직한 가치관은 무엇일까. 유교라는 조선사회를 볼 때, 아직도 그 뿌리가 우리사회 곳곳에 만연되어 있지만, 남존여비 사상은 여성으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억압과 천대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양반이라 해도 글을 배우면 안 되었고, 결혼하기 전엔 아버지를, 결혼한 후에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의지하고 따라야만 했던 이 땅위에 모든 여성들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유명 시인으로서의 난설원보다 어느 한 여자로서의 난설원을 조명하며,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대명제를 제시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500백년도 더 된 1500년도에 살던 인물을 등장시켜 현실세계의 문제점을 질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의 존엄성은 우리 스스로 지켜나가야만 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상이나 이념에 파묻힌 사회에서 탈피하려면, 적어도 뜨거운 물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 신세는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난설원처럼 혁명을 해야 한다. 신흠소리 하나 없는 그 속박에서 벗어나야 사람다운 냄새가 나지 않겠는가. 한 여자로서 국한된 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혁명에 가담해야 하는 것이다.

 

아마 이 문제는 오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영원한 숙제일지 모른다. 인간 없는 세상이라면 모를까. 인간의 욕망 중에 하나가 타인 위에 서서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한다. 타인을 지배하려는 권력지향형 인간들이 우리 사회를 좀먹는 벌레가 아닐까싶다. 선과 악으로서 표현하자면, 자유와 평등은 선이고 권력과 지위는 악일 것이다. 우리는 선인이 되려는가, 아니면 악인이 되려는가. 스스로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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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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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세계 최대 열대우림인 브라질 아마존의 파괴가 보우소나루 대통령 치하에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산림 벌채가 최근 4개월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나 경종을 울리고 있다,는 뉴스를 텔레비전에서 봤다. 그들은 콩을 심기위해 산림을 훼손하고 있었다. 브라질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생산력을 강화시켜야 한다며 목소리를 한층 높이며 말하는 게 아닌가.


코로나19로 인해 지구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불어 닥친 이 재앙의 끝이 어디까지일지, 그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공포심은 날로 극대화되고 있고 사람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책은 환경재앙을 섬뜩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기후재난과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 창궐이라는 위기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인간이 망쳐놓은 환경의 역습. 기후재난과 팬데믹의 시대에 더욱 섬뜩하게 다가오는 공포. 이 책의 저자인 슈웨블린의 공포가 더욱 서늘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의 소설이 현실의 문제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슈웨블린은 아르헨티나의 무분별한 농약 살포와 그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피버 드림』뿐만 아니라 슈웨블린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일관적인 정서는 ‘두려움’(miedo)이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 고독에 대한 불안, 고통에 대한 공포, 소통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된다. 가족 구성원, 특히 부모와 자식 간에 느끼는 두려움 또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 이유를 슈웨블린은 이렇게 설명한다. “가족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환경이다. 그래서 기묘한 것, 비정상적인 것, 위험한 것이 우리의 가장 작은 사회적 단위인 가족을 덮칠 때 모든 것이 훨씬 더 무시무시해진다.” 두려움이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슈웨블린이 공포야말로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내재한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감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가족을 떠올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가장으로서, 엄마로서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에 어떠한 고통도 이겨내고 살고 있는 이 땅위에 부모들. 그들에게 삶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마찬가지로 가족이 아닐까싶다. 동전의 양면처럼 앞은 뒤를 볼 수 없고, 뒤는 앞을 볼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가족이란 다치기 쉬운 연약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끔직한 공포만 남아 우리를 괴롭힐 따름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주제를 주도면밀하게 다루면서, 코로나19로 인해 인간의 생존에 위협이 되고 있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며, 서둘러야 하는 게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일침을 놓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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