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인간 -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2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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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숨겨진 진실

 

작년 버킷리스트에 우리나라 역사 심도 있게 공부하기가 한 칸을 차지할 만큼 역사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만큼 개인적으로 역사에 대한 흥미와 매력을 느낀다. 이유는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며 알아가는 묘한 수수께끼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파면 팔수록 빠져드는 인간사의 스토리와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매력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특히 권력의 정점인 왕을 중심으로 갈등과 대립이 펼쳐지고, 심지어는 죽고 죽이는 궁중사는 과히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목숨을 내놓고 다툼을 벌이는 정쟁과 권력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 과연 권력이란 무엇인가. 왜 자기의 파멸을 직감하고서도 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가.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는 권력 앞에 스스로 무너지는 수많은 정치가들. 그들은 무엇을 쫓고 있는가. 달콤한 꿀에 유혹되어 결국에 죽음을 맞이하는 벌처럼 권력의 속성도 이와 같다. 권력의 유혹에 많은 사람들이 현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 권력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이처럼 권력 앞에서는 두 개의 태양이 동시에 뜰 수 없는 것이다. 권력은 비인간적이고 몽매주의에 빠지게 한다. 이 책은 사도세자가 정쟁의 제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사도세자의 광기와 반역의 죄로 영조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결론짓는다. 이 내용을 보고 처음에는 놀랐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부모가 공조하여 자기의 아들을 죽인 것이다. 친모인 선희궁이 광기어린 아들을 죽여야한다고 영조에게 간언을 한 것이다. 파렴치한 권력의 현실과 비장한 면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도세자는 광기로 인한 자살미수와 살인, 거기에다 반역까지 앞뒤 안 가리고 만행을 저지르다 죽음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역사 속 인물들과 마주할 때 그들의 심정이 어떠한지, 그들의 입장이 되어본다. 나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진퇴양란이다. 그렇다고 아들을 죽인 것은 권력의 야만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색이 깊어지면서 책을 읽는 내내 감정이입이 쉽게 되었다. 역사속의 인물들이 현실에서 꿈틀거려 살아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흡인력이 대단했다. 소설보다 더 흥미로웠다. 사건의 소용돌이에서 실마리를 찾는 추리소설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1, ‘사도세자의 어른들에서는 세자가 성장하면서 궁중에 있는 어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는 논리다. 그것은 당연하다. 폐쇄된 궁궐 안에서 생활이란 어떠했을까. 왕실의 법도를 지키며 갑갑하고 단조로운 일상이었을 것이다. 세자도 이러한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영조를 비롯해서 인원왕후, 정성왕후, 선희궁에 이르기까지, 사도세자는 그들의 불안한 심리상태와 갈등까지 그대로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왕실의 준엄함과 영조의 엄격함이 어린 세자에겐 크나큰 성격장애로 이어지게 했다. 광기의 서막을 초래한 원인이었다. 2, ‘생장과 교육에서 세자는 왕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면서 부왕인 영조의 질책을 많이 받았다. 대리청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 어린 세자의 입장에서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 했지만 그 때마다 칭찬보다는 질책이 난무했고, 세자는 이것을 극복하지 못했다. 자립심이 부족한 세자에게 당연한 결과였다. 세자는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기, 글쓰기 등 예술가적 소질이 있었다. 국정실습보다는 노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영조는 자기기준에 맞춰 더 엄하게 왕의 길을 가르쳤다. 여기에 더하여 조선시대의 반사회적 교육과 비자주적 교육이 문제였다. 세자 스스로 자존감을 키울 수 없는 교육환경이었다.

 

3, ‘광증의 전개에서는 영조실록이나 한중록에 실려 있듯이 세자의 광증은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본인의 자살시도를 비롯해서 100여명의 내인을 죽이고 자기의 후궁까지 죽인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여기에 가학증까지 더해졌고 죽기직전에는 생모 선희궁과 부왕인 영조까지 살해하려 했다. 광기와 권력의 합작품이 아닐 수 없다. 4, ‘죽음과 사후에서 영조는 결국 아들을 8일 동안 뒤주에 갇히게 해서 죽음으로 몰았다. 죽음으로 가는 길은 초라했다. 대리청정을 한 권력자의 최후의 모습이 고작 이런 모습이었단 말인가. 결국 세자는 광기로 인한 반역죄로 죽었지만 아들을 죽인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사람인 이상 괴롭고 후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조는 세자를 죽인 후 전투에서 승리한 사람처럼 의기양양하게 환궁했다. 여기에 권력의 냉혹함과 두 얼굴이 숨겨져 있다. 더욱이 영조는 자신의 잘못을 신하 탓으로 돌리는 책임회피까지 했다. 신하들의 모함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고 한 것이다. 5, ‘정조의 길에서는 정조 또한 권력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새로운 왕조를 세우기 위해 많은 사람을 죽였다. 권력의 중심에서 사람들을 통제하려 했다. 정조는 만인지상의 임금이 되었지만 그 대가로 많은 목숨을 땅속에 묻어야 했다.

 

숙종, 영조, 정조의 시대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시기였다. 특히, 영조와 정조는 자신들의 출신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군주들이었다. 비록 누구보다 강한 권력을 행사했지만 그들 자신은 불행했을 것이다. 권력의 함정에 빠져 권력의 무상함을 맛보았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유혹 속에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쉽지는 않다. 누구나 권력을 잡으면 쉽게 놓지 못한다. 권력의 최종 종착지는 권력의 무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손에 넣으려고 시도조차 않는 것이 상책이다. 비록 권력을 잡았다 해도 내려놓을 때를 잘 살펴서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현명한 대처 방법이다.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권력의 덧에 걸리지 않도록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욕심 때문에 나누지 않는 권력은 항상 외롭고 위태롭다. 아무리 맛있는 먹잇감이 있어도 권력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악하는 현명한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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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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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새벽, 자전거를 타고 좁은 논길을 따라 출근을 한다. 고개를 들어 안개 속에 가려있는 산의 능선을 응시한다. 새벽의 정적을 깨는 소리가 고요하게 들린다. 산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논에서 우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상상만 해봐도 가슴이 마구 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더욱이 밀 향기를 맡으며 시작하는 시골 빵집의 하루,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내가 그리며 바라던 삶이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찌든 도시의 삶에 싫증이 났다. 자연스레 평화로운 시골의 삶이 그리워졌다. 자본주의 병폐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로 살고 있는 현실의 삶이 싫었다. 아니 벗어나고 싶었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다리가 휘청휘청 거릴 정도다. 비효율적인 무한경쟁에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숨이 막혔다. 하루하루의 삶이 무의미했다. 월요일이 되면 월요병에 시달리곤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자신감 있는 모습이 좋았다. 그 당당함이 부러웠다. 삶의 본질을 천연효모를 통해 이야기 하고 있다. 자기의 길을 찾은 것이다. 1, 부패하지 않는 경제에서는 저자가 효모빵집을 한 동기와 시골빵집의 마르크스 강의를 통해 자본주의의 대안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현재 자본주의의 병폐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인지. 자본가와 노동자는 서로 섞일 수 없는 존재인지. 노동자가 받는 임금의 정체와 이윤이란 무엇인지. 기술혁신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런 자본주의 모순을 작가의 경험치를 반영해서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진정성이 보이는 대목이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정당한 대가를 받기보다는 타인(자본가)의 배를 더 불리게 한다. 이 체제에서는 희망보다는 실망과 좌절이 더 크게 느껴진다.

 

과연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실망과 좌절만 안겨주는가. 작가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토대로 자본주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효모의 발효 원리를 적용시켜 어려운 자본론을 쉽고 명쾌하게 풀어냈다. ‘부패하지 않는 빵부패하지 않는 돈을 같은 이치, 같은 눈높이에서 비교하고 있다. 이스트처럼 인공적으로 배양된 균을 사용하면 부패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 결과로 부패하지 않는 음식이 먹거리의 가격을 낮추고 일자리를 값싸게 만들어 낸다. 부패하지 않는 돈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돈은 자본주의의 경제 안에서 이윤을 낳는다. 또한 금융을 매개로 하여 신용을 창조하고 그 결과로 이자가 점점 불어난다. 자연계의 법칙에서 물질은 언젠가 없어지기 마련인데 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본만 더 커지고 부자연스러운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이것이 돈(자본)의 모순이고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해답은 자연법칙에 순응하면 된다. 효모를 발효시키듯이 돈을 부패시키면 된다. 효모나 돈도 자연에 맡겨보자는 것이다. 눈사람처럼 자본을 계속 키울 것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 본연의 자세로 되돌아가면 된다. 균이 했던 것처럼 사람이나 지역도 부패하는 경제를 통해 우리 안의 있는 잠재력을 일깨워야 한다. 잠자고 있는 잠재력을 깨워 삶의 본질을 되찾아 보자. 그렇게 해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스스로 개척하며 나아가면 된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방법을 제 2, 부패하는 경제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균을 통한 발효와 부패의 경제’, ‘참다운 시골살이의 순환’, ‘착취하지 않는 경영형태를 통해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자본주의의 대안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균을 발효시키는 최적의 방법은 자연 재배한 식물을 사용하고 천연 균을 자연의 상태에서 배양하는 것이다. 물도 그 지역 물이 좋고, 밀도 그 지역에서 나는 밀이 좋다고 한다. 그 지역에서 나는 물과 밀로 자연 그대로 균을 발효시켜 빵을 만들 때, 우리의 먹거리로 최상의 상품이 된다고 한다. 균이 좋아하는 환경에서, 공기 속에 흩어져 있는 생명력 있는 균이 내려와 자연 배양하는 것이 최상급 효모를 만드는 길이다. 시골에서의 경제 순환이란 마을기업을 활성화하여 그 지역의 허브 역할을 하게 하면 해결된다. 빵집은 허브의 역할을 수행하는 최적의 장소를 제공한다. 동네에 있는 복덕방이나 복지관처럼 빵으로 지역 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게 한다. 그 지역 사람들이 빵집으로 모여들면 거기에서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활동들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착취하지 않는 경영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윤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상품의 가격이 하락하면 노동력의 가치도 내려간다. 이러한 반복이 계속 되면 상품과 노동력의 가치가 계속 하락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모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품과 노동력의 가치를 올리는 길밖에는 없다.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고 직원들의 복지에 신경을 써 자본 중심이 아닌 사람중심의 사회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서 저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정당화하고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말하던 사회주의는 어떤가. 그 또한 망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는 다른 모든 역사적인 사회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몰락할 것이지만, 몰락의 주된 이유는 경제 위기와 공황이 심각해지면서 사회의 물적 ,인적 자원이 점점 더 낭비된다는 점과, 이 과정에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투쟁이 격렬해진다는 점에 있다. 특히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생산능력이 모든 주민들을 잘 살게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데도, 일부 거대 자본가들이 모든 이익을 독점하기 때문에 주민들 대부분이 억압과 궁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항이 자본주의 사회를 타도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이게 자본주의의 현실임은 인정하자. 자본주의가 되었건, 사회주의가 되었건, 권력의 이면에 있는 기득권자의 횡포와 권력자의 욕심과 타락이 문제다. 권력을 잡은 자가 이것을 내려놓을 때, 진정한 평화와 자유가 올 것이다. 현실과 이념의 괴리를 극복하지 못한 탓에 영원한 숙제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이념의 논쟁에서 벗어나서 진실한 삶, 삶의 본질은 누구나 찾기를 갈망하고 있다. 작가는 삶의 본질을 효모의 부패하는 과정을 통해 은유법으로 성공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부패하지 않는 빵에서 부패하는 빵으로, 부패하지 않는 자본주의 경제를 부패하는 경제로,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경험으로 터득한 자본주의의 대안적인 삶을 몸소 실천하며, 자연법칙에 순응하며 사는 삶, 그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다. 이 책을 통해 나의 꿈도 바꿨다. 평소에 빵을 즐겨먹는다. 빵집을 운영해보고 싶은 시절도 있었다. 효모로 발효 시킨 빵이라. 건강에도 좋은 빵, 여기에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효모빵집, 근사하지 않은가. 시골에서 효모빵집을 운영하며 글쓰기를 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아직 효모와 빵에 대해서 배울게 많다. 이 책을 통해서 자본론과 글쓰기, 빵집, 이 세 가지 개념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읽는 내내 행복했다. 생각대로 모든 사물이 움직인다고 한다. 생각의 힘을 믿어 보기로 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은가.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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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사건이 발생한지가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 시간의 힘이 뇌의 망각을 재촉하고 있을 쯤에 몽환화라는 책이 내 눈에 띄었다. 분홍색의 꽃 그림이 들어있는 책 표지의 현란함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몽환화’, 환상속에 피는 꽃. 과연 무슨 내용일까, 하고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이 소설은 사회파 추리소설로서 사회적 이슈를 소설화한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의문의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들었다.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숨을 쉬는 박자에 맞춰 글자 하나하나가 제각각 꿈틀거렸다. 읽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아키야마 가와 가모 가의 두 집안에서 벌어지는 의뭉스러운 사건들이 도입부에서부터 장식하고 있다. 주택가에서 벌어지는 무차별 살인사건, 리노의 사촌인 나오토의 자살과 할아버지 슈지의 의문의 타살. 이러한 죽음이 초반부터 독자에게 긴장감을 안겨주었고 관심을 끌었다. 작가의 숨겨진 의도가 피부에 와 닿았다. 심장 박동소리가 두근두근 점점 빨라졌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가모 가의 소타와 아키야마 가의 리노, 그리고 형사 하야세다. 나오토의 자살보다 리노 할아버지의 애지중지한 노란 나팔꽃이 핀 화분이 단초가 되었다. 없어진 화분이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다. 이 노란 꽃을 들러 싼 정체모를 사건들이 있음을 초기부터 암시하고 있다.

 

작가는 노란 나팔꽃을 매개체로 이야기를 긴박하게 전개해 나가고 있다. 10년만의 쓴 작가의 필력이 느껴진다. 미사여구 없이 깔끔한 화자들의 대화, 플롯 간 사건의 전개구성이 짜임새가 있다. 사건의 전개가 중반부로 갈수록, 주인공들은 거미가 먹이를 점점 궁지로 몰듯이 수사망이 좁혀갔다. 그것은 바로 마성의 식물인 돌연변이 꽃, ‘노란 나팔 꽃과 관련이 있었다. 주인공들은 양파를 한 꺼풀 한 꺼풀 벗기듯이 비밀을 하나둘씩 파헤쳐갔다. 노란 나팔꽃에 얽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 주인공 소타와 리노, 하야세는 거침없이 사건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속도와 긴장감이 점점 증폭되어 최고조에 이르렀다. 작가의 화법이 일본 추리소설의 대가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글의 생동감이 넘쳤다.

 

작가는 노란 꽃의 비밀을 꼭꼭 숨긴 채 독자에게 쉽게 알려주지 않는다. 마치 미로 속에 갇힌 물방아개비가 길을 헤매듯이 사건의 실마리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궁금해서 읽는 속도를 더 재촉했다. 책의 후반부로 가야 그 비밀을 알 수 있었다. 끝가지 긴장감을 놓지 않도록 한 작가의 배려일까. 드디어 모든 비밀을 간직한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몽환화는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식물의 총칭을 의미한다. , 앞서 발생한 의문의 죽음들은 이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몽환화 씨앗을 먹고 저지른 사건으로 밝혀진다. 환각상태에서 자살을 하거나 폭력적으로 변해 타인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이 금단의 꽃인 몽환화의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 끝가지 비밀을 지켜온 아키야마 가와 가모 가의 두 집안의 내력은 무엇인가, 그리고 요스케와 다카미. 과연 그들은 무엇을 지켜내려 했을까.

 

두 집안의 내력은 옛날부터 노란 나팔꽃의 사연과 엮여 있었다. 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노란 꽃의 비밀을 끝가지 지켜내는 것이 그들의 책무였다. 마지막에 다카미는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고, 죽음까지 몰고 간 노란 나팔꽃의 씨앗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누군가 감시를 계속 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씨앗의 유출을 막기 위해 다카미 자신이 계속 그 일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맨 마직막장에 소타도 이 사건을 통한 교훈을 하나 얻는다. ‘가령 처리장이 생겨 거기에 묻어둔 방사능 수준이 안전한 수치로 내려가기까지 수만 년이나 걸리지, 실질적으로 이 나라는 이제 원자력발전에서 도망칠 수 없어하면서 그의 전공이었던 원자력발전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을 폐기하는 것이 유지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더 높은 기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다카미가 말했던 그 세상의 빚을 소타 자신도 짊어지고 간다는 것이다. 다카미가 소명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듯, 소타도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상실감을 맛보았던 원자력발전에 대한 생각을 고쳐서, 아버지와 형이 그랬던 것처럼 의무와 책임감으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

 

소설에는 작가의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소설을 통해 잊고 있던 2011년에 발생한 원전사고에 대한 경각심과 책임의식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몽환화의 주인공들이 말하는 책임의식과 원전사고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일치하고 있다. 이 부분이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핵심이다. 무책임, 리더십의 부재로 점철된 세월호 참사. 벌써 세월호 참사가 잊어지고 있다. 분명, 한국 사회도 반 문명주의에 빠져있는 것이다. 배우거나 깨우치려는 생각을 아예 포기해 버렸다. 남의 탓이 아닌 나의 탓으로, 남이 아닌 내가 책임지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산고의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이 고통의 질곡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각자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성심껏 다해서 책임지는 사회, 더 바람직한, 더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소설이 우리 한국사회에도 경종을 울리기를 바란다. 소설을 읽는 내내 손에 땀이 날 정도로 박진감이 있었다. 사건의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나 다행이다. 한꺼번에 맥이 풀렸다.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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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성공 - 더 가치있게 더 충실하게 더 행복하게 살기
아리아나 허핑턴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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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뼛속 깊이 박혀있는 궁금증과 불안의 덩어리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통쾌함을 느꼈다. 과연 우리는 바람직한 삶은 살고 있는 것인가. 왜 나의 삶에 나는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가. 억지로 꿰어 맞춰진 시간의 노예에서 행복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하루하루 이어지는 삶을 간신히 연명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나 자신도 모르게 일속에 파묻혀 정신없이 살고 있지 않은가. 사회라는 틀에서 왜 벗어나지 못하는가.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무수한 질문을 나 자신에게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자괴감에 빠진 나를 발견한다. 뚜렷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미 안전지대로 여긴 사회라는 울타리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 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전통적인 사회의 틀에 갇힌 생쥐 꼴이다. 그 틀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일반적인 잣대를 들이대어 다시 원 상태로 되돌려놓는다. 그러니 꽁꽁 얼어붙은 그 틀을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 틀을 벗어나려면 개인의 용기와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왜 머뭇머뭇 거리고 있는가. 경험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가. 아니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 때문인가. 이러한 두려움과 선입견에 정면으로 맞서는 힘이 부족한 탓이다. 저항하는 근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과감히 물리칠 수 있는 강한 근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이다.

 

강하고 튼튼한 근력을 키우기 위해 제 3의 기준이 필요하다. 이것이 새로운 개념인가. 아니다. 누구나 이미 알고 있다. 전통적인 사회의 통념이 지금까지의 삶의 기준이라면 제 3의 기준은 이것을 탈피하고자 하는 반대 힘이다. 돈과 권력이 액자의 사각형 틀 속에 있는 것이라면 이 틀 속에서 벗어나려는 힘이 제 3의 기준인 것이다. , 작가는 제 3의 기준을 웰빙’, ‘지혜’, ‘경이’, ‘베풂으로 정의하고 있다. ‘웰빙에서는 명상을 통해 내적이 치료를 강조하고 있다. 기도, 묵상, 호흡, 요가도 여기에 포함된다. 명상을 통해 잃어버린 내면의 세계를 되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지혜는 직관의 힘을 믿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게 되면 허점이 없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경이는 아주 크고 위대함에 감탄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이나 소중한 가족, 친구와의 관계에서 소소하게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바람처럼 가볍게 볼 수도 있는 일상의 단편들을 소중하게 간직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베풂웰빙’, ‘지혜’, ‘경이를 지탱해주는 가교역할을 한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은 결국 자기 자신의 내면을 풍족하게 살찌우는 튼튼한 근력을 키우는 셈이다.

 

이 책이 반가운 것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제 3의 기준(The Third Metric)을 명쾌하게 풀어서 해답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또 하나의 성공을 맛보았다는 자부심과 뼛속 깊이 박혀 있던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지배해온 부와 명예, 권력이라는 중력의 법칙에서 탈피하는 것이 작가가 말하는 제 3의 성공이다. 작가는 위험한 상황까지 가고 나서야 이러한 깨달음을 얻었다. 위험과 기회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지만 그냥 지나치기 쉬운 평범함을 소중한 단어로 탈바꿈시켜 주었다. 멈춰 있던 심장이 강한 충격에 의해 다시 되 살아난 느낌이다. ‘베풂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웠다. 평범한 단어지만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온 것은 내면의 작은 변화라고 본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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