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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인간 -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ㅣ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2
정병설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권력의 숨겨진 진실
작년 버킷리스트에 ‘우리나라 역사 심도 있게 공부하기’가 한 칸을 차지할 만큼 역사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만큼 개인적으로 역사에 대한 흥미와 매력을 느낀다. 이유는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며 알아가는 묘한 수수께끼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파면 팔수록 빠져드는 인간사의 스토리와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매력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특히 권력의 정점인 왕을 중심으로 갈등과 대립이 펼쳐지고, 심지어는 죽고 죽이는 궁중사는 과히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목숨을 내놓고 다툼을 벌이는 정쟁과 권력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 과연 권력이란 무엇인가. 왜 자기의 파멸을 직감하고서도 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가.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는 권력 앞에 스스로 무너지는 수많은 정치가들. 그들은 무엇을 쫓고 있는가. 달콤한 꿀에 유혹되어 결국에 죽음을 맞이하는 벌처럼 권력의 속성도 이와 같다. 권력의 유혹에 많은 사람들이 현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 권력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이처럼 권력 앞에서는 두 개의 태양이 동시에 뜰 수 없는 것이다. 권력은 비인간적이고 몽매주의에 빠지게 한다. 이 책은 사도세자가 정쟁의 제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사도세자의 광기와 반역의 죄로 영조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결론짓는다. 이 내용을 보고 처음에는 놀랐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부모가 공조하여 자기의 아들을 죽인 것이다. 친모인 선희궁이 광기어린 아들을 죽여야한다고 영조에게 간언을 한 것이다. 파렴치한 권력의 현실과 비장한 면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도세자는 광기로 인한 자살미수와 살인, 거기에다 반역까지 앞뒤 안 가리고 만행을 저지르다 죽음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역사 속 인물들과 마주할 때 그들의 심정이 어떠한지, 그들의 입장이 되어본다. 나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진퇴양란이다. 그렇다고 아들을 죽인 것은 권력의 야만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색이 깊어지면서 책을 읽는 내내 감정이입이 쉽게 되었다. 역사속의 인물들이 현실에서 꿈틀거려 살아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흡인력이 대단했다. 소설보다 더 흥미로웠다. 사건의 소용돌이에서 실마리를 찾는 추리소설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1부, ‘사도세자의 어른들’에서는 세자가 성장하면서 궁중에 있는 어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는 논리다. 그것은 당연하다. 폐쇄된 궁궐 안에서 생활이란 어떠했을까. 왕실의 법도를 지키며 갑갑하고 단조로운 일상이었을 것이다. 세자도 이러한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영조를 비롯해서 인원왕후, 정성왕후, 선희궁에 이르기까지, 사도세자는 그들의 불안한 심리상태와 갈등까지 그대로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왕실의 준엄함과 영조의 엄격함이 어린 세자에겐 크나큰 성격장애로 이어지게 했다. 광기의 서막을 초래한 원인이었다. 2부, ‘생장과 교육’에서 세자는 왕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면서 부왕인 영조의 질책을 많이 받았다. 대리청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부담이 되었다. 어린 세자의 입장에서 아버지에게 잘 보이려 했지만 그 때마다 칭찬보다는 질책이 난무했고, 세자는 이것을 극복하지 못했다. 자립심이 부족한 세자에게 당연한 결과였다. 세자는 공부보다는 그림 그리기, 글쓰기 등 예술가적 소질이 있었다. 국정실습보다는 노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영조는 자기기준에 맞춰 더 엄하게 왕의 길을 가르쳤다. 여기에 더하여 조선시대의 반사회적 교육과 비자주적 교육이 문제였다. 세자 스스로 자존감을 키울 수 없는 교육환경이었다.
3부, ‘광증의 전개’에서는 영조실록이나 한중록에 실려 있듯이 세자의 광증은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본인의 자살시도를 비롯해서 100여명의 내인을 죽이고 자기의 후궁까지 죽인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여기에 가학증까지 더해졌고 죽기직전에는 생모 선희궁과 부왕인 영조까지 살해하려 했다. 광기와 권력의 합작품이 아닐 수 없다. 4부, ‘죽음과 사후’에서 영조는 결국 아들을 8일 동안 뒤주에 갇히게 해서 죽음으로 몰았다. 죽음으로 가는 길은 초라했다. 대리청정을 한 권력자의 최후의 모습이 고작 이런 모습이었단 말인가. 결국 세자는 광기로 인한 반역죄로 죽었지만 아들을 죽인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사람인 이상 괴롭고 후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조는 세자를 죽인 후 전투에서 승리한 사람처럼 의기양양하게 환궁했다. 여기에 권력의 냉혹함과 두 얼굴이 숨겨져 있다. 더욱이 영조는 자신의 잘못을 신하 탓으로 돌리는 책임회피까지 했다. 신하들의 모함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고 한 것이다. 5부, ‘정조의 길’에서는 정조 또한 권력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새로운 왕조를 세우기 위해 많은 사람을 죽였다. 권력의 중심에서 사람들을 통제하려 했다. 정조는 만인지상의 임금이 되었지만 그 대가로 많은 목숨을 땅속에 묻어야 했다.
숙종, 영조, 정조의 시대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시기였다. 특히, 영조와 정조는 자신들의 출신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 군주들이었다. 비록 누구보다 강한 권력을 행사했지만 그들 자신은 불행했을 것이다. 권력의 함정에 빠져 권력의 무상함을 맛보았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유혹 속에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쉽지는 않다. 누구나 권력을 잡으면 쉽게 놓지 못한다. 권력의 최종 종착지는 권력의 무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손에 넣으려고 시도조차 않는 것이 상책이다. 비록 권력을 잡았다 해도 내려놓을 때를 잘 살펴서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현명한 대처 방법이다.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권력의 덧에 걸리지 않도록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욕심 때문에 나누지 않는 권력은 항상 외롭고 위태롭다. 아무리 맛있는 먹잇감이 있어도 권력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파악하는 현명한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