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읽는 시간
이유진 지음 / 오티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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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부쩍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왜일까?


장인어른이 암에 걸렸다. 벌써 세 번째다. 수술을 두 번이나 한 전력이 있고 마지막 암이 걸렸을 땐 연세가 많은 나이라 손을 댈 수가 없는 상태였다. 장녀인 아내는 장인어른의 병수발을 자처하고 나섰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로서는 그런 아내가 안쓰럽기 그지없다. 장인어른은 아직 자신의 병이 어느 단계인지 적확하게 알지 못한다. 만약 4기 암이라는 것을 장인어른이 알게 되면 자포자기 할까봐 아내는 노심초사다. 하지만 지금은 발병한지 벌써 9개월이 지났기에 장인어른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가 역력하다. 하지만 아직도 3기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 이 상태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뭐라 해야 할지, 말 할 수 없는 묵직한 무언가가 명치끝까지 올라왔다. 어제도 장인어른 혼자 시골에서 올라오셨다. 살고자 하는 의욕이 강하다는 아내의 말이 왠지 모르게 씁쓸하다. 인간의 본성은 죽음을 이길 만큼 강하다는 말인가.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생과 사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없다. 아직 겪어보지 못했기에 더욱더 그런 것 같다. 알고도 반복해서 실수하는 인간으로서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어찌 알 수 있으랴. 오십이라는 고개를 지나면서 이젠 부모들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삶 자체가 고통이다, 라는 말이 있다. 흔한 말이기도 하지만 이것을 달리 표현한다면, 고통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 말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왠지 모르게 죽음으로써 삶의 고통이 없어진다는 말엔 알 수 없는 저항감이 생긴다. 우린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장인어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죽음보다는 살고자 하는 힘이 더 센 것 같다.


한국인 최초 미국의 호스피스 정신과 전문의로 13년간 활동해오며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해온 저자는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돕고자 첫 책 『죽음을 읽는 시간』을 출간했다. 그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을 덜어주려는 도움이라고 말한다. 완치되지 못할 병으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집으로 돌려보내진 사람들은 삶의 의욕을 잃기 쉽다. 이런 극명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자살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할 계획을 품고 있거나, 삶이 자신의 통제권 밖에 있어서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살아야 하나?’라는 의문을 마음속에 품을 정도로 삶의 질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언제든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운명이다. 지금 당장은 건강하고 젊을지라도 한번쯤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질문은 곧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이어지며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만끽할 수 있게 만든다. 저자는 의사의 눈으로 바라본 환자들은 죽음 앞에 놓여 있다. 그들을 통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한지, 무엇을 후회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남은 생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 남은 이들을 위해 어떤 말들을 남겨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후회 없는 현재를 축제처럼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간접경험이라는 말이 있다. 만약 죽음을 경험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막대한 돈을 들여서라도 그 낯선 경험에 투자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미국의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의가 된 최초의 한국인 정신과 의사의 말을 들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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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의 시대 - 미래의 부와 기회를 선점하는 7대 메가트렌드
이시한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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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부터 먼저 알아보자. 메타버스는 메타(Meta)와 유니버스(Unibus)의 합성어이다. 메타는 초월을 뜻하고 유니버스는 우주, 특정한 유형의 경험 세계를 뜻한다. 즉, 여러 개의 경험세계를 초월한다는 뜻이 된다. 현실도 하나의 유니버스이고 가상세계도 하나의 유니버스라고 치면, 메타버스는 이를 초월해 전부 아우르는 상위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보기 전에 메트릭스 영화를 우연찮게 봤는데, 여기서도 가상세계와 현실을 오가는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이해하고 있는― 좀 특이한 장면이 나온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현실이 꿈이고, 꿈이 현실이었으면 하는 생각 말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와 같은 여러 개의 유니버스를 초월한 세계를 메타버스라고 보면 된다. 그렇게 되면 현실세계에 있다가 가상현실1, 가상현실2, 가상현실N의 세계로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고, 이 세상에 없는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지금 영화 속 얘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건 꿈이 아니다.


메타버스 단어 자체는 신조어이다. 그건, 분명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은 메타버스가 대중의 일상은 물론, 연결과 소통 방식 등에서 필연적이고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전방위 ‘혁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나아가 메타버스가 불러올 미래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개인의 삶, 일, 관계 등 인문적 관심에서 살펴보면서 기술적 전망이나 투자 가치보다 근본적인 의미를 짚어냄으로써 개인과 사회가 메타버스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비해야 할지에 관한 통찰을 전하고자 한다. 메타버스에서의 사업 기회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인간이 지구라는 물리적 공간을 극복하는 역사적 진보의 순간이기 때문에, 대항해시대에 못지않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것도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말이다. 저자는 대항해시대에 상응할 만한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점에서 현시점을 ‘메타버스의 시대’라 명명한다.


저자는 메타버스를 결정짓는 7대 메가트렌드로 멀티 아바타 Multi-Avatar, 확장 경제 Extended Economy, 쌍방향 Two-way interaction, 익명성 Anonymity, 플레이 미션 Play mission, 유사현실 In similar life, 동시성 At the same time을 선정한다. 이 단어들의 앞 글자를 따면 ‘메타피아 Metapia’와 같다. 이는 메타버스와 유토피아를 합성한 말로, 메타버스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 즉 개인의 취향과 욕망을 고려한 다양한 형태의 맞춤형 이상향을 제시함으로써 사용자들을 확보하려는 지향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아울러 이 책은 메타버스 비즈니스를 위한 11가지 생존 전략을 제시한다. 우선 메타버스의 핵심인 아바타를 위한 다양한 아이템은 그 자체로 생산과 판매, 소비의 대상이다. 메타버스의 다양한 공간 역시 판매나 임대, 광고 등을 통해 중요한 수익모델로 활용된다. 또한 기존 금융권에 대한 가상화폐의 도전이 계속되면서 안전성과 희소성을 동시에 갖춘 암호화폐인 NFT(대체 불가능 토큰)가 부상하고 있다.


기술과 인간의 결합.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메타버스라면 메타피아, 아니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는 지척에 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계가 코앞에 있다면, 영화 같은 세계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말이다. 이 책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어 패러다임을 확장해나갈 메타버스에 지금 당장 주목해야 할 이유를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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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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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휴가를 영월과 정선에 갔다 왔다. 휴가 1일차 영월 ‘장릉보리밥’으로 출발했다. 집에서 세 시간 정도 가야하기 때문에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보리밥에 묵과 감자전을 먹고 ‘장릉’을 이동했다. 한 낯의 온도가 무려 35도를 넘었기에 한 손에는 양산을 다른 손에는 휴대용 선풍기를 들고 장릉 일대를 구경했다. 두 번째 방문지는 ‘청령포’로 단종 유배지였다. 십 미터도 안 되는 좁은 강폭을 뗏목을 연상케 하는 작은 배를 타고 건넜다. 짧은 시간에 한 바퀴 둘러보고 이곳이 단종 유배지라는 흔적만 남긴 채 다음 목적지인 ‘젊은잘와이파크’로 이동했다. 여기까지 따라와 준 것에 대한 답례로 성인이 된 두 딸들을 위해서였다. 사진을 찍으며 마냥 즐거워하는 두 딸을 보면서 뿌듯했다.


저녁은 태백으로 가서 한우를 먹기로 했다. 그 후 예약해 놓은 정선에 있는 호텔에서 짐을 풀고 카지노를 방문하기로 했다. 고기를 실컷 먹고 배를 채운 후 다시 정선으로 복귀해야 했다. 동선을 미리 알아보지 않은 탓에 길바닥에서 흘려보낸 시간이 제법 됐다. 우선 호텔에서 씻은 후 카지노를 가려고 했는데, 인터넷을 뒤져보니 당일예약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실망하는 딸들의 눈초리를 뒤로한 채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를 먹으며 올림픽을 구경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날이 되자 카지노는 물 건너갔음을 직감했다. 아내의 일정 때문에 카지노 오픈시간이 너무 늦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마지막 코스로 잡은 화암동굴로 직행했다. 동굴 안 온도는 바깥온도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냉기를 뿜어대며 우리 가족을 반겼다. 동굴 끝에 다다르자 냉기가 열기로 바뀌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집으로 오는 길에 과거 강원랜드에서 일했던 생각이 떠오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우연이 두 딸과 함께한 가족여행이 된 것도 그렇고. 강원도 지역이 코로나19 4단계 방역조치가 내려져서 갈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무사히 귀가를 해서 다행이었다.


정선 사북의 정취는 예나 지금이나 같았다. 애들 잠옷을 사러 호텔 밖으로 나갔는데, 시가지의 풍경이 단조로운 불빛과 함께 을씨년스럽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거리에 세워있는 차들을 볼 때는, 저건 전당포에 저당 잡힌 차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휘황찬란한 카지노 분위기와는 다른,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예전에 들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길거리에 많은 차가 세워진 이유를. 그리고 호텔에서 묵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소설은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포트’라는 능력을 가진 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정상과 비정상, 합법과 불법이 복잡하게 얽힌 곳이면서 인간의 욕망이 꿈틀대는 곳이기도 하다.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으로 SF와 한국풍 누아르가 절묘하게 조합된 『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의 세계에서 초능력은 재능에 대한 알레고리가 된다. 주인공 진을 기어이 죽이려는 자들과 지키려는 자들은 각자 재능과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 재능을 억눌러 운명을 바꾸려는 자, 재능에 기만당한 자, 재능에 중독된 자, 재능을 경계하지만 받아들이는 자…. 강력한 힘이 될 수 있기에 모두가 갈망하는 것이 재능이지만, 거기 휘둘릴 때의 우리는 오히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 수많은 유명인의 삶에서 무수히 보아왔듯 말이다.


대박을 노리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그곳에서 함께 기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극적이면서 생동감 있게 전개된다. 몰입해서 읽을 수 있도록 재미있는 장치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숨은 욕망이 분출하면서 천당과 지옥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사뭇 인생사의 축소판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집중해서 읽으면 반나절이면 충분하지만 그 여운은 오래 남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세상과 맞서며 자기 삶에서 지키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절대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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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시아의 여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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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적이면서 막연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힘없고 가녀린 그녀, 이 소설의 주인공인 펠리시아는 연고도 없는 낯선 곳으로, 길을 나선다. 뱃속 아기의 아빠이자 그녀의 애인인 한 남자를 정확한 정보도 없이 공장 주소 하나에 의지한 채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그를 찾아 나선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그녀는 무슨 용기가 있어 그 무모한 여정을 떠나게 되었을까. 아기를 배자 부모의 갖은 언어폭력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시달렸고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방비 상태에서 가족으로부터의 핍박은 그녀의 선택을 외길로 갈 수밖에 없도록 유도했을 것이고, 얼마 안 되는 여비를 챙겨 그녀는 집을 나서게 된다.

 

누가 봐도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막달은 골목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자문해본다. 인생의 모험을 건 펠리시아의 여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는다. 힐다치 씨라는 의문투성이면서 결말에 가야 그의 본성이 드러나는데, 왜 하필 그곳에서, 유일한 희망인 주소 지에 있는 공장에서 그와 맞닥뜨리게 된단 말인가. 힐다치 씨는 그의 본성을 숨긴 채 그녀에게 다가간다. 겉으로는 선하게 행동하면서, 주위의 이목에 신경 쓰면서. 하지만 그의 음흉한 생각(유혹, 편집적인 사랑, 엽기살인 등)이 전신을 관통하면서 우리의 시선을 이끈다. 중간부터는 펠리시아 보다 힐다치 씨의 얘기가 더 많이 나오는데, 오락가락하는 그의 정신착란에 깜박 시선을 놓칠 수 있으니 이점 유의하며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길 바란다.

 

이 소설의 저자는 어느 한 인터뷰에서 이 책은 선함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선은 우리가 악이라 부르는 것을 끔찍할 정도로 가까이에서 접한 후에야 눈에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악이란 힐다치 씨를 말한다. 결말에 도달하면 그의 엽기적인 행보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그녀는 그에게서 벗어난다. 그의 유혹을 뿌리치고 도망쳐 달아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집으로 돌아갈 돈이 없다. 수중에 아무것도 없으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길바닥에서 구걸하는 걸인이 될 수밖에 없다.

 

운명의 장난은 이 정도로 참혹한 것이다. 아기를 밴 상태에서 남자친구를 찾아 나선 그녀에게 더 가혹한 채찍질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좋지 않은 일은 겹치면서 온다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그녀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참혹한 경험을 통해 삶의 이면에 있는 통찰을 얻는다. 이 소설의 결말에 도달하면 불교의 자비와 해탈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힐다치 씨는 결국 죽게 된다. 하지만 그의 못된 짓과는 상관없이 펠리시아는 그를 용서한다. 그리고 현실(옛 애인의 배신과 아기를 잃은 상실)에 처한 상황까지도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선이 악을 이기고,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한없이 평화로운 상태에 이르게 되는데, 이런 마음의 상태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해답은 책 끝에 도달하면 알게 될 것이다. 선은 선을 통해서 오게 된다. 그러한 선이 그녀의 마음을 자유롭고 평화롭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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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 위의 남자
다니엘 켈만 지음, 박종대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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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비웃는 풍자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필요하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마냥 웃을 일만 생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더 이상 반복적인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 된지 오래다. 서로 가지고 있는 생각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오늘도 계속 벌어지고 있으니 경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이 책은 이러한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대의 권력자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비운의 풍운아라는 말이 있다. 딱 이 말에 어울리는 자가 이 소설의 주인공인 틸이 것이다. 틸은 전쟁과 전염병이 휘몰아친 절망의 시대, 가장 밑바닥에서 누구보다 거침없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온 인물 ‘틸’의 생애를 따라가는 거대한 모험기다. 권력자의 위선에 아버지를 잃는 비극을 눈앞에서 경험한 틸은 안락한 삶을 내려놓고 평생을 떠도는 위험천만한 광대의 삶을 선택한다. 황제를 머저리라고 부를 수 있고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을 수 있는 단 한 사람,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크게 세상을 비웃을 수 있는 공중의 제왕 틸의 이야기는 암울한 세상에 던지는 농담이자 역사의 뒤안길에 사라진 수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이 시대의 안부다.


틸은 권력 투쟁의 장이 된 30년 전쟁에서 소모품처럼 희생된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14세기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인물 틸 울렌슈피겔이다. 중세 독일의 민담으로 전해 오는 악동이자 어릿광대인 울렌슈피겔은 온갖 장난으로 사람들을 골탕 먹이고 성직자나 권력층을 조롱하는 캐릭터다. 악마처럼 무모하고 예수처럼 사심 없는 자, 안락한 삶을 내주고 자유를 얻은 예술가 틸은 권력투쟁의 장 속에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희생된 수많은 민중을 대신해 강인한 생명력으로 끈질기게 삶을 이어간다.


이 책의 저자는 틸이라는 인물의 시선을 통해 전쟁과 질병, 기아 속에서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과 절망을 세심하게 포착해낸다. 또한 거대한 역사 앞에서 드러나는, 권력과 지위를 가진 자들-교황과 왕, 제후와 성직자-의 어리석음과 유약함을 한껏 비웃는다. 이것이 다름 아닌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과 꼭 닮아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종교 갈등은 멈추지 않았고, 계급 또한 타파되지 못했으며, 극단주의나 배타주의 또한 극성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또한 당시 페스트가 기승을 부렸듯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었다. 종교와 전쟁, 배타주의로 분열된 유럽의 이 잔혹한 이야기는 거울처럼 지금 우리 시대를 비춘다.


“남들이 우리를 기억해주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기억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죽음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고, 우리는 산 자들의 일에 무심하지 않다. 모든 게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시대의 아픔(불평등, 젠더, 빈부의 격차 등)을 떠안으며 살고 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민중을 해방시킬 자가 생겨난다. 틸처럼 어떤 영웅을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이젠 나 자신이 그 역할을 해야 할 때다. 즉 우리 자신을 스스로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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